갠지스강 가는 길
황태영
입사동기 회식이 벌어지고 있는 전주식당 안은 손님이 많지 않았다. 나는 식당 안에서 쉽게 동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식당의 넓은 방 맨 안쪽 구석에 앉아 가마솥 뚜껑 모양의 불판 위에 삼겹살을 지글지글 구워대며 소주를 목구멍 속에 탈탈 털어넣고 있었다. 얼추 열 명 정도는 되었다. 입사 당시만해도 이십 명은 됐었는데 두어 차례에 걸쳐 명예퇴직의 태풍이 스쳐 지나가자 전산부서도 무풍지대는 아니어서 절반만 간신히 살아 남은 것이다.
"어, 김 과장이 드디어 출두하셨구만. 왜 이렇게 늦었어? 우리만큼 취하려면 벌주를 해야겠는걸? "
동기 중에 가장 진급이 빠른 박진국 차장이 맥주컵에 콸콸 소주를 붓더니 내게 권했다. 난 주저하지 않고 그의 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워 그에게 다시 내밀었다. 그는 잠시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호탕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래, 받자고, 그래도 안 짤리고 살아 남았으니 이렇게 술잔을 받아 먹을 수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내 잔을 받았다.
난 평소에 마음이 잘 통하는 박남순 과장 옆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가 아줌마, 여기 젓가락 하나 더 가져와요, 하고 날 위해 신경 써주었다.
자리에 앉자 취기가 순식간에 올라왔다.
그들은 요즘 한창 장안에 화제인 오 양의 몰래카메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옘병헐, 퇴근하면 밥 처먹자마자 거꾸러져 잠들기 바쁘니 이거 원, 마누라 허벅지 본지도 꽤 됐어. 몸과 마음이 편해야 임도 보고 뽕도 따지."
박희재 차장이 담배 한 가치를 담뱃갑에서 꺼내면서 짜증스레 뱉았다.
나는 갑자기 뒷목이 뻐근해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식당 벽에 걸린 벽시계가 취한 내 눈에 들어왔다. 벽시계는 오후 일곱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길다란 분침이 곧추 세운 사람 몸뚱아리의 옆 모습처럼 보이고, 짧은 시침은 그 몸뚱이의 아랫도리에 매달린 채, 축 처져 있는 성기처럼 보였다. 갑자기 왜 벽시계가 그런 형체로 잘못 해석되는가. 나는 맥주잔에 냉수를 붓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피로가 누적된 탓인가. 사실, 구조조정으로 직원 상당 수가 회사를 그만둔 후로, 용케 살아남은 직원들은 업무량이 과도하게 늘어나서 야근을 해야 하는 날이 많아졌다.
"자네들, 넉 달 전에 명퇴한 구판돌 대리 뒷소식 들었나? 서울역 지하도에서 무료급식 받는 노숙자들 속에 섞여있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던데......"
박진국 차장의 말 중간에, 조덕제 과장이 끼어들었다.
"아니야, 소문에 의하면, 그 친구 지금 북경에서 사업하고 있는 모양이야."
구판돌, 그는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 입사동기 가운데 진급이 가장 늦었던 구판돌 대리로부터, 한 달 전에 몽골에서 불쑥 날아온 이메일을 보고 난 깜짝 놀랐었다.
-여보게, 김 과장, 오랜만일세. 여기는 몽골이야. 허허벌판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외로운 거인 같은 울란바토르 호텔에서 내 여행의 첫날 밤을 보내기로 했다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최고급 호텔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난 어쩔 수 없이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는데, 여행의 시작이 이러하니 앞으로의 한 달이 평탄하지는 않으리라는 예감이 불쑥 드는군. 하긴 어차피 불편함을 각오한 여행이야. 그래서 편안한 유럽 미국 캐나다가 아니라, 몽골-고비 사막-타클라마칸 사막-티벳-인도, 그런 난코스를 고행길을 떠나는 수도승처럼 나는 선택했다네. 여행이 끝날 무렵, 갠지스 강가에서 지친 내 더러운 발을 씻을 때 무언가 얻어지리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훌쩍 서울을 떠났던 것일세.
한 달 전, 구판돌은 그렇게 여행자의 모습으로 몽골에 있었다. 나는 박남순 과장의 빈 술잔을 소주로 채웠다. 평소에 말이 별로 없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기 싫어서 나는 그냥 묵묵히 그들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오늘 점심때 갑자기 비는 쏟아지지, 정말 밤 같이 깜깜한 대낮이었잖아? 그게 다 황사 때문일 거야."
"황사 발원지가 어딘 줄 알아? 바로 몽골과 중국에 넓게 펼쳐져 있는 고비 사막이야. 때로는 타림분지 중간에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에서도 건조해진 모래먼지가 불안정한 대기 속으로 솟구쳐 올라, 강풍이 불 때 우리나라까지 날아온다는 거야. "
고비 사막. 타클라마칸 사막. 동료들이 지껄여대는 대화 속에서 무척 귀에 익은 지명이 나오자, 난 구판돌이 2주 전에 보내왔던 이메일이 떠올랐다.
- 낯선 사막에서 밤을 보낸 적이 있는가. 삼 천여년 전에 죽은 시체가 미이라로 발견된 곳. 바로 그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공포를 느껴 본 적이 있는가. 타클라마칸은 위구르말로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이란 뜻이라네. 내가 만약 이 사막에서 죽어 메말라 비틀어진다면 그 누가 나를 알아볼 것인가. 나는 밤하늘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네. 너무나도 눈에 익은 별자리들. 공포감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나는 마치 내가 어머니의 자궁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은, 정신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네. 평상시 무심코 지나쳤던 별자리에서 어떤 중요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 기분이었어. 낙타를 타고 타림분지로 가는 위구르 뚱쌍족 무리와 동행했었는데, 굳이 자기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가라는 바람에 신세를 지게 되었지. '나엉' 이라는, 귀리가루와 옥수수가루를 반죽해 구운 떡과 '씨씨카바부' 라는 양 꼬치구이를 대접 받았다네. 그런데 그 날 저녁, 남편이란 작자가, 자기 아내와 즐거운 밤을 함께 보내라며 자신은 집에서 사라지는 게 아닌가?
대낮에 도시를 부옇게 뒤덮었던 황사가, 어쩌면 구판돌이 탄 낙타가 일으킨 모래먼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묘했다. 구조조정이 또 한 차례 곧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불안하게 돌고 있었다. 나는 요즘 구판돌이 오히려 부러웠다.
만약 내가 이번에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는 해두고 있어야 할 것 같아 며칠 전부터 인터넷방 창업에 대해 체인점 본사에 알아보고 있었다. "사장님, 요즘 용산 조립상가는 인터넷PC방 때문에 경기가 되살아났어요, 잘 되니까 너도 나도 인터넷방을 창업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PC 서른여덟 대를 설치한다고 가정하면 월 매상 천 만원은 충분히 건집니다, 5월부터는 '스타크래프트' 에 대한 단속도 해제되니까 청소년들도 그 게임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거 정말 전망이 대단히 좋은 사업입니다", 그렇게 체인점 본사 전무라는 자가 솔깃하게 말했었다.
술자리가 끝나 식당 밖으로 나오니 가게마다 토해놓는 불빛들로 거리는 화려하게 변해 있었다. 이차 가자는 유혹을 어렵게 뿌리치고 걸어가고 있는데, 저 앞에 '별자리 인터넷 PC방'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그래, 현장조사 차원에서 한번 들어가보자. 인터넷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무리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PC 앞에 앉아 있는 한 사내의 뒷모습이 너무나 눈에 익은 모습이어서 나는 술기운에 비틀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 사내는 검색엔진 심마니를 이용하여 인도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고 있었다. 그는 인터넷 이메일 창을 열더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여긴 인도 델리야. 메인 바자르에 가면 골든 레스토랑이 있는데 40 루피면 충분히 먹을 정도로 음식들이 값이 싸고 맛있는 식당이야. 점심에 탄도리 치킨을 먹었는데 정말 먹을 만하더군. 갠지스강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
그 사내의 자리에는 세계지도가 펼쳐져 있었고, 지도 위에 국물만 남은 컵라면이 얹혀져 있었다. 나는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머리를 디밀었다. 놀랍게도, 사내는 구판돌이었다. 그는 인터넷을 이용하여 배낭도 없이 빈손으로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창 인터넷에 열중해 있던 그가 갑작스런 침입자의 얼굴을 보더니 말했다.
"아니, 자네가 인도에 웬일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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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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