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의 조 교수
황태영
나는 신참 노숙자다. 오늘밤도 노숙을 하려고 서울역 지하도에 굴러 들어왔다. 차가운 바닥에 골판지를 깔고 신문지를 덮은 채 노숙자들이 잠들어 있었다. 오줌을 쌌는지 지린내가 진동하였다. 어떤 이는 두 겹 세 겹으로 겉옷을 걸치고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한쪽 구석에 자리잡았다.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한 무리의 노숙자들이 소주를 마시며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억수로 추운 날씨여. 깡소주라도 먹으니까 속은 따숩네. 닭다리라도 뜯으면 금상첨화일텐데 말이여. 조 교수 안 그런가?"
"닭다리 조옿지. 이왕이면 더 비싼 안동찜닭을 뜯어 볼라는가? 고기도 알고 먹어야 체하지 않고 맛도 더 있는 법이라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담이 좋은 조 교수는 안동찜닭 요리 절차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나라 닭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삼국지위지동이전 한전'(三國志魏志東夷傳 韓傳)에 의하면 말이야. '출세미계 기미계장오척여'(出細尾鷄 其尾皆長五尺餘)라는 대목이 있거든. 동이(東夷), 즉 활 잘 쏘는 동쪽 오랑캐 땅에 '가늘고 긴 꼬리의 닭이 산출되는데
그 꼬리 길이가 모두 5척을 넘는다'라는 뜻이야. 한국에서 닭을 얼마나 오래 전부터 길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 이 꼬리 긴 닭은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도 그려져 있다 그 말씀이야. 어디 것뿐인가. 신라 고분 천마총에서는 세계 최초로 온전한 형태의 달걀들이 발견되었는데 당시에 닭을 키우고 있었다는 역사적인 증거인 거라.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더라고. 지난번에 생태매운탕 만들 때 간 보호에 좋다고 이야기했지? 오늘 만드는 안동찜닭은 여러 가지 아미노산과 비타민이 풍부하여 몸에 아주 좋은 보양식이라 그 말씀이야. 채소와 당면과 닭고기의 황금비율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듣다 보니, 안동찜닭이 가뜩이나 고픈 배를 더욱 아프게 하여 나는 고통의 진원지를 피해 슬그머니 좀 더 멀리 자리를 이동했다.
갑자기 오늘 점심 때의 일이 떠올랐다.
오늘 점심은 용산 신역사 공사장에서 길다랗게 늘어선 노숙자 줄에 30분 이상 서 있다가 된장국,깍두기,멸치조림,쌀밥이 담긴 식판을 받아 해결했었다. 아침도 굶은 상태여서 배 속에서 밥 넣어달라고 아우성이었던 터라 허겁지겁 급하게 밥을 먹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서 "사장님"하길래 쳐다보니 박 주임이었다. 나는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너무 당황하여 하마터면 식판을 떨어뜨릴 뻔했다. 박 주임 때문에 더 이상 용산에서 밥 얻어 먹기는 영 글렀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나는 밸브를 제조하는 공장을 가진 사장이었다. 거래처가 갑자기 망해버리는 바람에 어음이 부도가 나서 허망하게도 나의 회사도 연쇄적으로 부도가 나 버렸다. 자금회전이 안되어 원자재 확보가 불가능해져 공장 기계들도 작동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남아 있는 돈으로 우선 직원들의 밀린 봉급의 일부라도 주고나니 내 손에는 퇴계 이황 선생의 초상화만 딸랑 세 장 남았다. 빚쟁이들이 거의 매일 집에 들이닥쳐 난동을 부리는 통에 그들을 피하여 몸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찜질방 잡부, 여의도 빌딩의 야간 경비원도 해 보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쳤는데 오늘날 노숙자가 된 내 신세가 너무 기가 막힌다.
나는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귀를 쫑긋 세우거나 눈을 힐끔거렸다. 노숙을 위한 정보를 캐내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다. 대낮에 노숙자들은 간밤의 추위로 설친 잠을 보충하려는 듯 코를 골아대며 낮잠을 자고, 밤이 되면
끼리끼리 모여 과거에 맛있게 먹던 음식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관찰하다 보니 어느 인물이 눈에 띄었다. 노숙자들은 그를 조 교수라고 불렀는데 군계일학이라고나 할까 그는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 닭들 가운데 한 마리의 학, 아니 그들의 더러운 몰골에 적당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여러 마리의 메추리들 가운데 한 마리의 닭처럼 남다른 인물이었다고 함이 더 적절한 표현이지 싶다. 그의 외모는 여느 노숙자와 별반 차이가 없었기에 처음에는 그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갔었다. 그러나, 귀동냥을 해보니 먹물을 먹은 사람이라 그런지 대화의 수준이 남달랐다. 아직은 그들의 무리에 끼어들지 못한 탓으로 귀동냥으로 엿듣는 정도여서 그가 어느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치던 교수였는지는 모르겠다.
술이 많이 되었는지 조 교수가 고래고래 질러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일본에는 세븐일레븐이라는 편의점마다 노숙자들의 구역이 정해져 있단 말이야. 쓰레기통에 먹다 만 빵 부스러기, 컵라면 국물 등 먹을 것이 많거든.
남의 구역의 편의점 쓰레기통을 함부로 뒤지다가는 큰일나지. 그런 점만 조심한다면, 일본은 그래도 노숙자들 간의 유대관계가 좋은 편이야. 노숙자 회식이 있는 날은 다 함께 목욕탕에 가서 씻지. 물론 보통 때는 목욕탕 주인이 물 더러워진다고 노숙자들을 받지 않지만, 대빵이 말하면 그 날 하루는 특별히 노숙자들을 받아주거든. 그리고 신참 노숙자가 오면 고참 노숙자가 골판지박스로 집 짓는 방법을 가르쳐주어 적응을 돕기도 하지. 우리도 그런 점은 배워야 한다니까……"
조 교수 그에게도 한 때는 일본에 출장도 다니고 좋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하긴 교수들은 학술 세미나 하러 혹은 교환교수로 해외 나갈 기회는 많을 것이다.
나는 그의 행복했던 과거를 추측하며 부러웠고, 그의 불행한 현재를 쳐다보며 참으로 안되었으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니 정말이지 가슴이 답답했다.
시끄러운 조 교수 때문에 아무래도 오늘밤은 잠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지하도 바깥으로 나가 편의점에서 소주를 두 병 샀다.
노숙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다 보니 노숙하는 방법, 끼니를 때우는 곳 등 알아야 할 것이 한 둘이 아니었지만 아직은 노숙자들에게 말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고참 노숙자들의 남루한 옷차림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심하게 나서 도저히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그들의 더러운 옷 속의 벼룩과 이가 나에게로 이동할 것만 같았다. 아직도 나는 노숙자들의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조 교수 무리에 들어가기 위한 신고식을 하려고 소주를 산 것이다. 어쩌면 조 교수가 현재의 내 처지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해줄지도 모르리라.
지하도로 다시 내려 오니 오줌 누러 갔는지 조 교수 무리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술자리 근처에 있는 고참 노숙자에게 말을 붙였다.
"조 교수님 어디 갔어요?"
내 손에 든 소주병을 보자 고참 노숙자가 경계하는 눈빛을 풀더니 말했다.
"조 교수? 누구 말이요?"
"왜 여기 방금 앉아서 안동찜닭 이야기 재미있게 하시던 조 교수 말입니다."
갑자기 노숙자가 웃음보를 터뜨렸다.
"교수는 무슨 놈의 교수! 성 씨도 조 씨가 아니고 박 씨요. 명퇴 당하고 치킨집을 시작했다가 조류독감으로 빚만 잔뜩 지고 망했다더구먼. 빚쟁이들 피해 이리로 도망 온 거라. 항상 아가리만 벌리면 닭 이야기, 새 이야기 하니까 '새 조'(鳥)자를 붙여서 조 교수라고 부르는 작자도 더러 있기는 하지."
난 어이가 없어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나는 깡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술 두 병은 나 혼자 다 마셔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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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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