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부문〕
근년에 젊은이가 쓰는 희곡들을 대하면서 언제나 느끼는 안타까움 한가지는 치밀한 계산도 없이 마구 나열하는 장면들이 너무 과다하다는 것이었다.
아마 영상 미디어의 영향 때문이리라.
그런데 희곡의 미학(연극미학 역시)은 절제 미, 압축 미, 은유 미 또는 치밀한 구성미 등에서 발휘되는 법이다.
희랍 극을 읽어보면 단 한 장면에서 하룻밤에 불과 몇 사람의 등장 인물이 그 얼마나 장엄한 비극 미를 표출하고 있던가? (참고 삼아 하는 말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이번에 내가 읽은 11편중에서 막상 상위에 올려놓고 보니 묘하게도 결국은 앞서 말한 희곡의 미학을 웬만큼 터득한 듯한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달집태우기〉는 한마디로 무척이나 깔끔한 우수 단막 희곡이었다. 쓰레기 야적장에서 만난 노인과 사내는 삶에 대한 상반 된 견해(혹은 철학)를 가졌기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사내는 내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흔적을 태우려 하고 노인은 반대로 자기 인생의 비망록을 찾고자 한다.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을 한번 쯤 반추하게 해보는 이러한 작품이 바로 가치 있는 작품이 아닐까? 보기에 따라 하나의 상징극 범주에 속하기도 하리라.
〈거룩한 분향〉은 장례식에서 살아 남은 자들이 고인의 횡포를 고발하기 시작했다가 결국은 자신들의 비겁함을 발견해 내는 과정을 극적 반전으로 다룬 작품이었다. 하나의 작품은 결국 남들이 예사로 보는 세상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유니온의 전설2〉는 분명 연극을 잘 이해하고 희곡을 쓰는 작가의 작품이었다. 물론 희곡 자체만 두고 볼 때는 다소 엉성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대신 수많은 연극적 상상력을 불러 일으켜 주고 연극적 언어를 들려주어서 버릴 수가 없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런 작품은 연출가가 누구냐에 따라 작품의 성패가 결정 나기도 하리라.
〔콩트 부문〕
불행히도 금년도 콩트 부문 최종심에 오른 원고들 중에서는 내가 무릎을 칠만큼 ‘좋다’하고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발견해 내지 못했다.
원래 소설은 소설다워야 하고 수필은 수필다워야 하듯이 콩트는 콩트다워야 한다.
소설의 다이제스트가 콩트도 아니고 소설식 수필이 콩트도 아닌데 아직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콩트 소재는 콩트에만 알맞는 소재여야 하고 표현 역시 그러해야 한다.
다음, 문장에서 쓸데없는 겉멋은 금물이고, 자기 감정을 앞세우는 것 또한 흉한 법이며 독자들에게 공감을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도 말아야 한다.
그리고 설명문이 아닌 묘사 위주의 문장 수련이 필수적이다.
〈어떤 선물〉은 우선 담담한 필치가 흡인력을 가졌다. 화장품을 매개로 한 모녀간의 애정확인에서 인생을 긍정하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을 발견 할 수가 있어 좋았다.
〈How is the weather today?〉은 직장여성의 애환을 소설 형식으로 묘사했는데 지나친 욕심이 다소 눈에 거슬렸지만 일단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어 탈락시킬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이 작가는 필력이 있다는 말이다.
〈해고 통지서〉는 구조조정에 따른 감축 대상자의 심리가 차분하게 그려져 있는 작품이었다. 글이란 실로 묘(妙)해서 별다른 수식어나 치장을 하지 않아도 독자들을 끝까지 이끌고 간다는 하나의 예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