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부문>
매 작품을 대할 때마다 느껴지는 안타까움은 역시 ‘연극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딴엔 애착을 갖고 피나는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지만 심사위원 입장에서 그 작품들을 선외로 밀칠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 있었다.
이를테면 이러하다.
1) 어떤 인물이나 극적 사건도 개연성과 필연성에 의해 등, 퇴장을 하고 전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게 눈에 띄었다.
2) 장면의 변화는 치밀한 계산 하의 ‘극적 사건 전개’이지 단순한 장면의 나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극적 플롯(plot)과는 동떨어진 장면 변화가 많았다.
3) 연극의 품격에 대한 연구가 태부족이었다. 막말로 창녀를 다루거나 근친상간을 다루더라도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하려면 그에 따르는 미학적 계산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 점을 소홀히 하는데다가 직설적인 욕말까지 마구잡이로 삽입시켜 일삼아 연극무대를 추잡한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근친상간을 다룬 ‘오이디푸스 왕’이나 창녀가 주인공인 ‘춘희’등이 어째서 명작인지 연구해 보라).
본심에 올라 온 12편의 작품 중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3편을 최우수 및 우수 작으로 선정했다.
<첫눈 나리는 날>은 이른바 서정 극이자 분위기 극으로 한편의 동화를 읽고있는 느낌을 주었다. 사실 분위기 극은 왠만한 솜씨로 쓸 수가 없을 만큼 어려운데도 작가는 끝까지 감상에 빠지지 않고 마무리를 잘 지어 주었다. 주인공 동민이 끝내 ‘현미의 엽서를 찾지 못했다’는 고백을 하는 장면이야말로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코끼리 무덤>은 흰 코끼리의 행방을 쫓는 4인의 이상동몽(異床同夢)을 그린 작품인데 주제도 좋고 사건의 전개에도 별 무리가 없었다. 다만 단막극에서 6번이나 암전을 요하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소혹성 B612호의 겨울>은 젊은이의 정신적 방황과 작가의 시니컬한 사회 의식이 반영된 작품인데 이른바 ‘연극적인 재미’를 계산할 줄 아는 능력을 인정해 주고 싶었다.
<콩트 부문>
비유하자면 작가는 ‘그림(에피소드)’를 그리는(묘사) 사람이지 ‘그림(에피소드)’을 해설해 주는 사람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이번에 내가 읽어 본 15편의 콩트 중에서 그 절반의 원고가 애써 무슨 ‘이야기’를 하려 들고 있었다.
그리고 작가가 미리 자기가 하려는 어떤 ‘이야기’에 취해서 흥분한 경우도 많았는데, 작가가 재미있어 한다고 독자도 덩달아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럴듯한 작품’이란 자연스럽게 읽혀지는 원고에서 비롯된다. 집필자의 무슨 ‘억지’나 ‘무리한 강요’나 속이 빤히 보이는 ‘의도’야말로 절대 금물인 것이다.
<나모의 방>은 취객들의 일상을 그렸는데, 이른바 ‘스프라이스 엔딩’이란 기교로 독자들을 한방 먹이는 여유까지 보여 주었다.
<소각장 아저씨>는 작가가 담담한 필치로 독자들을 이끌고 그야말로 정직하고 우직하면서도 따스한 가슴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물 앞으로 인도한다. 결과적으로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솜씨가 놀랍다.
<자존심>은 한 여사와 컵 라면 청년과의 자존심 대결을 묘사한 글인데, 주인공인 한 여사가 패배 당하는 결말에서 독자와 함께 쓴맛을 보게 된다는 역설의 논리를 자연스레 보여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