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단편소설 16편과 콩트 15편이었다.
나는 이 작품들을 읽으면서 오늘날 소설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지난 20세기는 산문의 시대라고 일컬어졌던 세기였다. 복잡다단한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기에는 산문의 형식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문학은 더 이상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적지 않다.
소설은 영상매체와 컴퓨터에 밀려서 대중들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진단이야 어떻든, 소설은
대중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면서 그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갈 것 같다. 대개의 응모자들은 노동자(근로자)이자
사회인으로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단편소설 부문
<택시에도 종점은 있다>(김상문)는 택시 운전을 시작한 지 5개월 밖에 안된 젊은이가 사고를 당했건만 제대로 보험 혜택을 받기 어려운 현실의 부조리함을 그려내고 있다. 무난하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으나, 평이한 게 흠이다. 주인공 박상갑 기사의 인간적인 고뇌를 좀 더 깊이 있게 그려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강 건너기>(배수원)는 소위 IMF 관리체제 이후 심각한 불황을 겪는 가운데 실직의 위기에 직면한 자동차 판매사원의 모습이 그려진다. 쉽게 읽히는 것이 장점일 수도 있으나 소설의 전개가 너무 가볍다는 느낌도 든다.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강홍규에게 독자들도 큰 호기심을 갖게 되는데, 마지막 장면의 처리는 조금 억지 같다. 그래서 반전의 효과도 잘 살지 않는다.
<문상 가는 길>(이길환)은 어렵게 살아가는 근로자의 삶과 죽음을 보여주려는 듯이 꽤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 하지만 '사소한 작업 부주의로' 죽음에까지 이르는 김현수의 이야기를 통해서 지은이가 말하려는 게 무엇이었는지 주제 의식이 분명치 못하다.
<개미>(조두진)는 풍자적인 작품으로서, 큰 풍자효과를 내려면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이야기를 보다 더 신랄하게 뒤틀어야 하지 않았을까?
<어떤 하루>(김혜경)는 안정된 문장력을 보이는 게 장점이다.
<한낮, 그 푸른 날의 초상>(석철환)은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아내의 병수발을 감당키 어려워하는 지아비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설적 힘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비교적 성실한 작품이다. '겅더리진' '손떠퀴' '포달진' '생게망게하다' '귀살쩍다' '찜부럭' 등, 이 소설에 보이는 풍부한 어휘구사는 장점이며, 지은이의 성실성을 돋보이게 한다.
<절로 간 흑염소>(황태영)의 주인공은 무량수전을 보러 부석사에 갔으나 그가 지금 팔자 좋아서 관광이나 다니는
건 아니다. 주인공은 억울하게 정리해고를 당한 가장이다. 하지만 그는 판에 박힌 넋두리나 하는 게 아니라
무량수전을 보러 부석사를 찾아간다. 그런데 그가 찾아간 부석사에는 무량수전이 없다. 그러나 그는 무량수전 대신
더 중요한 것을 찾아낸 성 싶다......
이 소설은 심각한 우리의 현실 이야기를 하되, 이야기의 차원을 높이는 설정을 하고 있다. 평범해보이는
일상성 속에서 우리의 삶의 후광 같은 것을 찾아내고 있다. 이건 엉뚱한 비약이 아니다. 작가의 역량과 재능이
엿보이는 수작이다.
꽁트 부문
<허수아비>(류영철)는 건강한 메시지를 담으려한 것이 호감이 들었다.
<돼지>(김해준)는 전형적인 꽁트의 요소를 갖추었다.
<오소리 재판>(이상화)은 정리가 덜 됐지만, 지은이의 체험에서 건져낸 이야기로, 진솔한 감동을 준다.
<소라야 소라야>(이치영)는 흥미 있는 소재, 그리고 예상을 뛰어넘는 재미있는 전개로, 예사롭지 않은 솜씨이다.
꽁트의 맛이 무엇인지를 감칠맛 있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