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바람직한 근로자 문학의 진로는 무엇일까?
작품 심사에 임하면서 먼저 그런 문제부터 생각해 보았다. 문학은 ‘인생의 압축 파일’ 같은 것이어서 삶의 여러 모습들을 다양하게 담게 마련이므로 ‘근로자문학’을 따로 떼어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쓴 작품은 비근로자들의 문학에 비해 차별화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는 데에 심사위원들의 의견은 일치되었다. 자신의 삶에 굳건히 뿌리를 내린 글일수록 그것이 더욱 진실되고, 사회의 많은 독자들에게 근로자들의 목소리도 제대로 전달하는 효과 역시 그런 글들이 발휘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서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작품들이 두 부류로 크게 나뉘어 선자들을 당혹케 했다. 그 하나는, 순수문학적 우수성은 돋보이지만 그 속에 근로자의 숨결이 별로 배어있지 않은 작품들이고, 또 하나는, 문학성에 있어서는 다소 뒤떨어지지만 근로자의 삶을 다룬 그 내용이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 작품군이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시켜준 작품이라면 우리들은 주저없이 그것을 최고의 수작으로 골랐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쪽 요소만 우수한 두 그룹의 작품 중에서 우열을 가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년에 응모할 때는 이런 점도 참고하여, 근로자만이 발굴해낼 수 있는 보석들을 잘 찾아내어 다듬어주길 부탁하고 싶다.
먼저 <수필 부문>부터 살펴보자.
수필은 흔히 ‘생활인의 글’이라고 한다. 자신의 체험이 녹아든 글의 형식으로 알맞아서 ‘소설’ 등에 비해 주제를 표현해내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응모작 가운데서 추리고 또 추리다 보니 입상작들이 저절로 앞에 얘기한 두 경향의 작품들이 반반씩 차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근로자들의 삶을 수필로 우수하게 승화시켜낸 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반증도 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발> <새벽> <꿈> <영혼 재활용> <꿈꾸는 남대문 시장> 등 몇편의 작품들이 특히 돋보였다. 그 중 마지막 두 작품 가운데 어느 것을 으뜸으로 정하느냐를 두고 마지막까지 고심했다. 이사할 때 쓰레기처럼 버려지기 쉬운 ‘묵은 편지들’을 분류, 복사하여 옛날 그 편지들을 보내주었던 분들께 다시 발송한 사건을 중심으로 영혼의 재활용 문제까지 잔잔히 다룬 <영혼 재활용>은 문장력도 비교적 안정되어 있고, 삶을 응시하는 따뜻한 시선에 특히 호감이 갔다. 그러나 이런 작품은 근로자가 아니라도 쓸 수 있는 소재이자 주제라는 점이 결함이었다. 이에 비해 <꿈꾸는 남대문 시장>은 근로자의 체험에 근거하여, ‘생활의 만화경’과도 같은 시장 풍경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만 했다. 만약 이 작품의 필자가 전작의 경우와 같은 문학적 성숙도를 보여 주었더라면 두 말 없이 이것을 으뜸으로 정했을 것이다. 그런 아쉬움을 가슴에 담으면서 <영혼 재활용>을 금상으로 정했다. 문학지의 신인상 당선작과 겨루어도 손색이 없다 판단되어 등단 자격 인정의 영광도 함께 안도록 했다.
<단편소설>의 경우는 도전하기가 만만치 않은 장르여서인지 눈에 띄는 수작을 골라내기가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서 비교적 창의성이 돋보이고 문장력과 구성력이 탄탄하다고 생각되는 소설들로 입상작 후보들을 선정한 뒤 마지막 세 편을 대상에 올려놓고 고심했다. 고아 출신인 젊은이가 기댈 언덕 없이 현실 속에서 뿌리 내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 <굴레>는 출구를 찾기 힘든 하층 근로자(호스트바에서 일하는)의 삶을 그런대로 무리없이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았으나 전문 문학지의 등단 당선작 수준에는 아직 미달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대학교수, 기업체 사장 등 아들들을 제쳐놓고 자신의 유산을 문중 장학재단에 기탁한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 <상속>은 세태를 반명하면서 노인문제, 재산의 사회환원 문제 등을 다루고 있어 주제의식은 돋보였으나 스토리 전달에 급급하여 디테일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 게 흠이었다. 이에 비해 노동운동가인 형의 무덤을 찾아가는 동생의 시점으로 ‘근로자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 <벽제리 가는 길>은 대상 후보작으로 올려도 충분할만큼 소설을 써나가는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모처럼 역작을 찾아냈다는 흥분까지 느끼게 해주었으나 나중에 “근로자가 아니어서 응모자의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점 때문에 입상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허망함만 가슴 가득 안게 해주었음도 밝혀둔다. 응모할 때는 자격 유무도 미리 충분하게 확인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