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김태수
《 등장인물 》
◈ 김 만 수 ( 55 세, 열쇠집 주인 )
◈ 박 문 호 ( 28 세, 건달 청년 )
◈ 조 미 령 ( 24 세, 밤무대 여가수 )
무대
앞 마당이 트여 있고, 각기 세 명의 인물이 사는 방이 보이는 무대. 한쪽엔 샌드백, 가운데엔 평상. 좀 초라해 보이는 산 동네 꼭대기 집의 낡은 이미지. 대문 옆엔 「 세 놋슴니다.」 라는 팻말. 이런 기본적인 구성을 제외하고는 모든 배치와 크기 첨가는 연출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1 막 1 장
( 막이 열리면 주제 음악이 흐르며 곧이어 허리가 꾸부정하고 나이보다 더 늙어보이는 느낌의 김만수씨가 조그만 현관에서 나와 앞마당에 진한 가래침을 모아 뱉는다. 현관 앞엔 전화기가 놓여 있다. 느낌으로 봐서는 출근하기 전 상황. 허리춤엔 각종 열쇠들 이 매달려 있다. 객석쪽을 바라본다. 객석쪽이 앞이 트여 한강이 보이는 곳. )
만 수 : (이쑤시개를 내뱉으며) 에-그. 콩나물 2000원 어치 샀다가 주야장천 3일을 먹었네 그려. 아이고 징해라. 그 놈의 과부 웃음에 홀려가지고 그만……. (담배를 피워 문다.) 저 놈의 한강은 같은 낯짝. 같은 신음소리로 변함 없이 흘러가는 구나. (유머스러하 게) 구비쳐 흐르는 한강아 -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님은 언제 오려나 오늘도 까딱 않 는데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니미랄것 어저란 말이냐……. (씁쓸한 표정으로 호주머니 지갑에서 사진을 거내 지긋이 본다.) 다녀오리다…….
(이때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 곧 시동이 꺼지고 문호가 헬멧을 끼고 초췌한 모습으로 들어 온다. 손엔 핸드폰. 만수씨와 눈이 마주치자 기분 나쁘다는 듯 문간방의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 한다.)
만 수 : (비꼬듯) 어이 젊은 놈!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라도 좀 나누는게어떤가?
문 호 : (이야기를 피하려는 듯 들어가려 한다.)
만 수 : Just moment ! 할 말이 있다 이거야 이놈아!
문 호 : (들어가는걸 포기하고 마루에걸터 않는다.) 피곤해요. 뭔데요?
만 수 : 아, 물론 피곤하기도 하겠지. 허구헌날 방바닥에 뒹굴던 놈이 이렇게 몇일간 밤새 외근을 하셨으니피곤할 밖에! 이번 출장은 좀 길으셨습니다.
문 호 : (짜증) 용건이 뭐예요!
만 수 : (실실 웃으며) 해질 무렵이면 기어나가 당구장 출근부에 도장찍고, 동네 술은 다 퍼마신 것처럼 비틀거리다 대문걷어차고 들어오더니, 오늘은 모처럼 아침 일찍 들어오셨구 만 AM 9시!]
문 호 : (신경질적으로) 시비걸지 말고 용건을 말하란 말예요! 용건!
만 수 : 돈이야 이놈아! 월세!! 벌써 이틀을 넘겼어. 네 놈 취할 술값은 있어도 네 놈 자는 방값은 없는 거야? 그렇잖아도 아직까지 저방 월세가 안나가 죽을 지경인데.
문 호 : (우습다는 듯) 거 몇 푼이나 된다고 나침부터 참새처럼 쪼는 거요. 나중에 주면 될 것 아뇨!!
만 수 : 뭐? 참새? 그래서 몇푼도 안되는 방세 못즈는 니놈 꼬락서니는 봉황을 닮았냐? 버르장 머리 없는 놈!
문 호 : 그 돈! 내일 이자까지 쳐서 줄터니까 하루만 참으쇼. 그깐 돈 더러워서 안 떼먹으니까!
만 수 : 뭐? 더러워? 싸가지 없는 놈! 말하는 것 좀 보게.
누가 떼먹히기라도 한다더냐?
문 호 : (어이없는 듯) 관둡시다. 내일 얘기 하자구요.
만 수 : 네 맘대로?
( 문호가 방문을 열려한다. 그러나 닫혀있다. 방문 중간에 자물쇠가 걸려 있는 것을 보 는 문호 )
문 호 : 어휴! 미치겠네!
만 수 : (낄낄대며) 아니꼬우면 다른데로 옮기면 될거 아냐! 그렇지만 이렇게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에 쾌적한 주거환경. 저렴한 월세 가격이 절묘하게 삼위일체된 집이 또 있 을까?
문 호 : (짜증 반, 피곤 반) 아저씨, 나 지금 무척 피곤해요. 오을은 일단 좀 쉬자구요. 돈은 내일 당장 만들어 줄테니까, 문좀 엽시다. 약속한다니까요.
만 수 : 어떻게 믿고 ?
문 호 : 속고만 살았어요?
만 수 : 내가 오죽하면 이러겠어, 너도 양심이 있으면 돈내고 숙박해야지.
문 호 : 농담할 기분 아녜요. 내일 까지만 기다려요. 이자까지 쳐 드릴테니까.
만 수 : 무슨 수로?
문 호 : 돈만 받으면 되지, 그것까진 알필요 없잖아요.
만 수 : (생각하는 듯) 좋아. 중재안을 내지. 담보물을 맡겨. 물론 방세를 주는 즉시 그걸 돌 려주는 조건으로! 하지만 날짜를 어길시엔 그 담보물은 가차 없이 내것이 되는거야.
문 호 : (혼잣 소리) 지독한 영감탱이…… 좋아요! 뭘 맡기면 되겠어요?
만 수 : 밖에 있는 오토바이.
문 호 : 뭐요? 오토바이? 저게 어떤 오토바인지 알기나 하고 하는 소리예요? 우리나라에도 수십대 밖에 없는 아주 귀한 거라 말요.
가와사끼라고 들어 봤어요? 나 참, 보는 눈은 높아가지고 !
옳-아 진작부터 저걸 탐내고 있었구만. 무섭다, 무서워.
만 수 : 짜식. 뭘 그렇게 대단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놈이 어른 앞에서 핏대 올리긴!
임마! 그렇게 귀한 거라면 안맡기면 될거아냐.
문 호 : 여하튼 오토바이 얘긴 다신 입에 올리지 말아요.
만 수 : 짜식 성깔은! 좋아. 그렇다면…… (문호를 훑어본다. 휴대폰 발견) 그거 맡겨. 무선 전화기!
문 호 : (난처한 기색) 이거야 원 -. 이게 밥줄인데…… .
만 수 : 저건 저래서 안되고, 이건 이래서 안돼고! 그럼 냄새나는 속옷 맡길래?
문 호 : (잠시 생각. 휴대폰을 건네며) 조심해서 다뤄요. 오는 전화는 받지말고, 함부로 전화 걸 생각도 하지 말아요.
만 수 : 급할 때 쓰고 한 통화에 40원씩 계산하면 될거아냐. 짜-식 치사하긴!
( 만수씨가 드디어 문호의 방문을 열기위해 문 앞에 선다. 한이름의 열쇠 꾸러미를 뒤지는 만수씨. 이때 만수씨 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폰에서 호들갑스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 리. 깜짝 놀라 전화기를 문호에게 던지고 뒤로 나자빠지는 만수씨.)
만 수 : 간 떨어질 뻔 했네!
문 호 : (비웃듯) 촌스럽긴! (낄길댄다) (통화한다) 여보세요. 응,낙지냐? 그래 지금 막 들어왔다.
(만수씨의 눈치를 보더니 자리를 피해 평상으로 가 몸을 돌려 앉는 문호. 만수씨는 곧 자물쇠 여는 작업을 계속한다.)
문 호 : (조심스럽게) 그래. 다 날렸어. 초장엔 끗발이 오르고 기술도 먹혀, 좀 쓸었는데 막장으로 갈수록 안오는 거야. 서너끗 놓고 배팅할 순 없잖아. 아무래도 새끼들이 자고 치 는 것 같더라구. 그렇다구 판 뒤집을 수도 없고, 젠장 그쪽 패거리들이 갑자기 몰려와서 나만 쳐더보고 있으니 기술을 써먹을 수가 있어야지. 응, 일단은 눈 좀 붙여야겠어. 참, 낙지야. 오늘 밤 간단한거 뭐 없냐? 주인 영감탱이가 방 값 달라고 방방 뜨는데 내일까 지 주기로 했거든. 일 좀 하나 만들어 봐라. 그래 알았어. OK! 저녁때 나갈께.
(전화기를 끈다. 만수씨는 아직도 열쇠를 찿지 못하고 이것저것 찔러 넣고 있다.)
문 호 ; (물끄러미 바라보다 기가 막힌 즛) 오늘 안으로 끝나긴 끝나는 거요?
만 수 : (허리춤에 찬 엄청난 열쇠 꾸러미를 보여주며) 뭘로 잠갓는지 잊어 버렸어. 아직 이만큼이나 남았으니까 좀 기다려.
문 호 : 제기랄 기가 막히는군. (큰소리) 아저씬 열쇠만들어 먹고 사는 사람 아녜요? 열쇠 전문가가 한 눈에 어떤건지 모른다는게 말이되요?
만 수 : 너도 이 만큼 가지고 한번 따 봐 임마. 쉽나!
문 호 : 오죽 하겠수. 알 만 합니다.
만 수 : 그래도 지금껏 먹고 등 따습게 살아왔어.
(자물쇠가 덜컥 열린다.) 땄다. 아이고 힘들다. 헤헤헤.
(문호가 짜증난 듯 휴대폰을 툭 건네더니 문을 연다. 그러나 문이 안 열린다.)
문 호 : 어떻게 된 거야? 왜 안 열려?
만 수 : 헤헤. (손가락을 위로 가르키며) 위에 또 하나 채워 놨거든 !
문 호 : 끄 - 악! 또요?
만 수 : 마음을 굳게 먹어. 맨 밑에 또 하나 채워놨어.
헤헤. 나가서 목욕 한바탕 하고 올래? 좀 걸릴거 같은데, 헤헤.
(문호가 짜증이 최고조에 이르른 듯 아이구하고 괴성을 지르며 암전 - )
2 장
(같은 장소. 텅빈 무대. 오토바이 소리. 문호가 들어선다. 헬멧을 벗어 던지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윗 옷을 벗어 제낀 채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치기 시작한다. 마치 스 트레스를 풀 듯이. 이때 퇴근하여 들어오는 만수씨. 문호의 샌드백 치는걸 보다가 안색 을 바꾸고 집 안으로 들어선다.)
만 수 : 어이 젊은 친구! 웬일 이신가? 공사다망한 가운데 석간운동을 다 하시구.
문 호 : (김샌 듯 한방 힘껏 휘두른 다음 권투 글러브를 벗는다.) …… …….
만 수 : 역시 젊은 놈이 돼나서 내 질르는게 다르구만.
아깝다. 아까워. 저 힘을 가지고 연탄이라도 나르지…….
(문호가 말없이 봉투를 꺼내 평상에 던진다. 이때 누런 봉투 하나가 같이 빠져 나온다. 깜짝 놀란 문호. 그 노란 봉투를 얼른 주워 구겨 놓으며 신경질적으로 샌드백에 주먹 을 꽂는다.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만수씨.)
만 수 :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근데 이건 뭐냐?
문 호 : (퉁명스럽게) 약속한 방세요!
만 수 : (희색) 우-오 좋은 거! (봉투속을 확인하며) 헤헤. 약속을 지키는 걸 보니 영 구제 못할 놈은 아니구만. 헤헤. 수고했다. 이제 푹 쉬어라. 아이고 귀여운 놈!
문 호 : (갑자기 만수씨의 멱살을 잡으며) 한 번만 더 명령조로 말을 하거나 이놈 저놈 하고 욕을 했다간 이 주먹으로 옆구리를 터 놓을 테니 조심하슈. 난 원래 앞 뒤 못가리는 놈이 니까.
만 수 : (갑자기 차갑게) 앞 뒤만 못가리는 놈이 아니라 위 아래도 못가리는 놈이구만. 버르장 머리 없는 놈. 아버지 같은 사람한테…….
(멱살을 잡은 채 문호를 노려보는 만수씨. 서서히 문호의 손이 풀린다. 시선을 피하는 문호.)
만 수 : 짜 - 식. 기( 氣 )도 약해 빠진 놈이 !
문 호 : 뭐요?
만 수 : 넌 이미 눈쌍ㅁ에서 졌어 이놈아! 기에 질린거야. 그런 눈초리 가지고 건달 생활인들 제대로 할 리가 있겠냐. 그러니가 밤낮 요꼴이지.
문 호 : 함부로 말하지 말란말요. 씨이 -.
만 수 : 재롱 떨지마. 이놈아!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여?
그리고 충고 하나 하는데 윗사람 멱살 잡는 버릇 고쳐! 죽기 전에.
문 호 : 아니 어딜까요! 방세를 줬으면 돌려줘야 할거 아뇨!
만 수 : 뭘?
문 호 : 내 휴대폰 말요.
만 수 : 휴대폰? (생각) 아 - 그 전화기 암, 줘야지. 괜히 잃어버릴까봐 마음 고생만 실컷했 네 - 그려. 옛다! (은밀히) 근데 그걸 영어로 (영어식 발음으로) 휴대-포-온! 이라 고 하는 거냐?
문 호 : (조소하듯) 아마 그럴껄요.
(문호가 떨떠름한 얼굴로 전화기를 훓어보며 이상유무를 확인한다. 그리곤 튕겨지듯 자 기 방 쪽으로 간다. )
만 수 : 참. 전화 왔었다.
문 호 : (퉁명스럽게) 전화요?
만 수 : 받지 말라고 해서 안 받을려고 끝까지 버텼는데 어떤 자식인지 받을 때가지 울리더구만.
문 호 : 에이 - 받지 말라니까 ……. 누구래요?
만 수 : 글쎄 근데 그게 잘 생각이…… 무슨 생선 이름 같았는데.
문 호 : 낙지요?
만 수 : 아냐. 그보다 값싼 어종이었어.
문 호 : 날치 형님이요?
만 수 : 날치? 비슷하긴 한데 그것도 아냐. 뭐라 그랬더라. 가물가물하네.
아! 그래! 가물치!!
문 호 : 가물치가요? 뭐래요?
만 수 : 날치 형이란애가 좋은 일감을 만들고 있으니까 책 좀 많이 읽으라더라.
그렇게 애기하면 안대.
문 호 : (감 잡은 듯) 알았어요.
만 수 : 그러데 니들 수산시장에서 노냐? 한결같이 횟감들이야. 쏘주 생각나게.
너보고도 문어라던데?
문 호 : (퉁명스럽게) 이름이 비슷해서 그런겁니다.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 한다.)
만 수 : (갑자기 근엄하게) 너 - !
문 호 : 뭐요. 또 -?
만 수 : (사아. 정색하며) 내, 진심으로 충고하겠는데 패가망신 당하기 전에 손 떼!
문 호 : 뭘 떼요!
만 수 : 그건 남을 죽이는 일이면서 너 자신도 함께 죽는 길이야.
문 호 : 무슨 얘긴지 못알아 넉겠수.
만 수 : 노름해서 팔자 폈다는 놈, 들어 본적이 없다구 이놈아!
문 호 : (약간 움찔. 경계의 눈빛) 지금 무슨 얘기 하고 있는거요?
만 수 : 난 네가 처음 이곳에 왔을 대부터 알았어. 눈동자 돌아가는거나 손 움직임 하나만 봐도 금방 알수가 있지. 너, 화투장 만지지? 왜, 내가 틀렸어?
문 호 : (만수를 노려 본다. 적대감에 의한 분노가 일듯) 그렇게 봤으면 된거지 알면서 눨 물어 보는 거야. 그래. 난 그런 놈이요. 내가 뭘 해먹고 살든 그게 아저씨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거요. 내 인생은 내가 살아. 노름을 해먹든 사기를 쳐 먹든 참견하지 말란 말요!!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만 수 : 잡놈! 되지 못한 성깔 부린다고 누가 겁먹을 줄 알구?
(큰 소리로) 손 잘놀려 이놈아! 한 집에 사니까 그나마 이런 충고하는 줄이나 알아. 결국 칼날이 네 가슴에 꽂힐 테니까. 그게 바로 그 세계의 법칙이라는 거다!
(잔잔한 문호의 방) 내가 너무 목청을 높였나? 아 - 아. 갑자기 목이 깔깔해 지네. 아 - 아, 안되겠군. 처방을 해야지. 소주 한병에 순두부 한 사발! OK! (퇴장한다.)
(다시 텅빈 무대.
이때 세숫대야에 빨래를 담아 나오는 조미령. 한쪽 구석 빨랫줄에 간단한 속옷을 건 다. 입으론 흥겨운 랩을 부르고 있으며 짧은 치마에 율동까지 섞는다. 다 널은 다음에 " 빨래 - 끝! "을 팔을 벌려 외치는 미령. 평상에 걸터 앉으며 담배 하나를 피워문다.)
미 령 : (객석쪽을 바라보며) 야 - 여긴 완전히 전망대네. 높긴 높구나.
(이때 무슨 소린가 하고 나오는 문호. 혼자 앉아 담배를 피워대는 미령을 보고 호기심 을 잔뜩 갖는 표정이다. 좀 훓어보다가 접근하는 문호.)
문 호 : 아가씬 누구야?
미 령 : (문호를 훓어보며) 그렇게 말하는 댁은 누군데요?
문 호 : 어쭈 이것봐라. 난 이방에 사는 사람이야.
미 령 : (우습다는 듯 여유) 난 저 방에 사는 사람이에요. 오늘부터!!
문 호 : (감 잡은 듯) 옳아. 새로 세든 아가씨로군.
(내심 쾌재를 부르며) 이쁘게 생겼는데? 제법 킹카야.
미 령 : (담배만 뻑뻑 피워댄다.)
문 호 : 무슨 일을 하지? 술 나르니, 차 나르니?
(미령이 대구없이 담배를 길게 빤 다음 발로 비벼끄고 자가 방으로 가려 하자 문호가 기분 상한 듯 손을 나꿔챈다.)
문 호 : 너, 사람말이 말 같지 않아? 뭐 이런게 다 있어!
미 령 : (차분히. 여유있는 웃음) 이거 안 놔.
문 호 : 뭐야?
미 령 : 이거 안 놓지.
문 호 : 어럽쇼. 이게 좀 튀네. 허허.
미 령 : (기가 막힌듯 웃음) 너… 죽을래?
문 호 : 뭐라구? 이게!
(문호의 손이 치켜 올라간다. 동시에 미령이 힐 뒷굽으로 문호의 발등을 찍자 '어이쿠' 소리와 함께 손을 놓치는 문호. 미령이 사타구니를 걷어차자 비명과 함께 문호가 주저 않는다.)
문 호 : 어이구. 어쿠. 으으 …….
미 령 : 경고 하겠는데, 나 한테 허튼 수작 부리거나 친한 척 하지마.
너 같은 쓰레기들은 느-끼 해서 비위 상하니까.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게 껄떡대고 있어. (지기 부엌으로 퇴장한다.)
문 호 : (화 난듯 벌떡 일어나 쫗아가며) 뭐? 야! 문열어!
너 이리 나와. 안나와.
(쫗아가다 널어놓은 빨래가 얼굴에 덮친다. 떼어내니 여자 팬티다. 팬티를 내 팽개치는 문호. " 너 나와! 안 나와? " 를 외치며 무대뒤에 숨어있는 미령의 문을 열려한다. 이 때 소주와 안주를 사가지고 들어서는 만수.)
만 수 : 어이 젊은 놈! 왜 처녀방 문고리를 잡고 사정하고 있냐?
문 호 : (포기하고 나오며) 아니 뭐 저런게 다 있어요! 나를 발로 찼다구요.
만 수 : 이놈아. 믿을 소릴 해. 몸도 여리고 착해 보이던데. 너 같이 소도둑같은 놈을 발로 찼다는게 말이 되냐? 첫날부터 괜한 수작부리는 거지? 껄떡대지말고 정신차려.
문 호 : 어휴. 아걸 어떻게 증명하지?
(화를 억제하며) 어디서 굴러먹다 온 계집애래요?
만 수 : 직접 물어봐라. 난 방 세 놓으면서 어디서 굴러먹다 온 계집애십니까하고 안물어보니까!
(이때, 외출 윗 옷을 걸치고 나오는 미령. 만수씨를 보더니 이내 상냥한 표정으로 다가 온다. 아까와는 딴판이다.)
미 령 : (착한 얼굴로) 어머 아저씨. 벌써 일 끝내고 들어오셨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만 수 : (감격하여) 어휴 수고는 무슨! 첫날이라 어수선 할 텐데 짐정리는 다 끝났나?
미 령 : 네-. 근데 집이 아주 맘에 들어요. 앞이 확트인데다 조용하구요.
방세도 싸니 그야말로 삼위일체네요.
만 수 : 집 보는 눈이 있구만. 역시 아는 사람만이 이 집을 선택한다니까.
문 호 : 없는 사람만이 선택하는 거겠지.
만 수 : 저 자식이! 근데 어딜 가시나?
미 령 : 네. 장 좀 봐오려구요.
만 수 : 그래 그래. 장 좋-지. 빨리 다녀 오라구.
(문호를 보고) 너 '장' 하니까 '풍' 떠올렸지?
미 령 : 그럼 다녀 올께요, 아저씨! (굉장히 예쁘고 상냥하다.)
만 수 : 그래 그래요. 조심해서 갔다와요. 에고- 상냥하고 예쁘기도 해라.
(미령이 사뿐사뿐 퇴장하자 문호가 뒤에대고 침을 뱉는다.)
문 호 : 닭살이 돋는 구나, 퉤!
만 수 : 짜식. 하는 짓을 보니 벌써 저 처녀한테 마음이 훽 기울었구만.
문 호 : 무슨 소리에요. 저런 애들이 내가 제일 밥맛 없어하는 타입이라구요.
알겠어요?
만 수 : 네 눈을 보니까 괴장히 밥맛 돌아하는 타입인데!
문 호 : 관둡시다. 나 이래뵈도 싱싱한 여자 외에는 쳐다보지 않습니다.
만 수 : 여우가 포도를 못 따먹을거 같으니까 저 포도는 더럽게 시큼할 거라고 말했대. 너무 높이 달렸었거든.
문 호 : 무슨 뜻이요!!
만 수 : (소주를 내놓으며) 상하지 않은 싱싱한 두꺼비 한 마리 잡아 왔다 - 이런 뜻이야.
마실래?
문 호 : (가소롭다는 듯) 네? 내가 아저씨하구요? 하하하. (길게 웃는다.)
그렇다면 그게 소주겠습니까? 양잿물이지. 많이 드세요.
난 나대로 한잔 붓고 오겠습니다.
(가소로운 웃음을 뒤로하며 퇴장하는 문호.
만수도 뜻 모를 웃음.
소주병을 입으로 따 병째 쭉 들이키면서 암전.)
3 장
( F. I 되면 세수하려다 말고 나온 듯 조미령이 머리수건을 올린채 씩씩거리며 그녀의 손엔 샴푸통과 유사한게 들려 있다. 그러더니 문호 방문 앞에 선다.)
미 령 : 이봐요! 이봐요! 나와 봐요!! (아무소리가 없자 더 큰소리로) 이봐요. 안에 없어요! (문고리를 잡고 흔든다.) 나와 보라니까요!
문 호 : (안에서 잠결 목소리로) 누구야!
미 령 : 면회 좀 합시다. (잔뜩 화가 나있다.)
문 호 : 아 - 참, 모처럼 삼삼한 꿈을 꾸고 있던 참인데……, 기다려!
(잠시 후, 곧 문이 열리자 문호가 알몸 위에 T-Shirt를 걸치며 나온다.)
문 호 : 뭔데 아침부터 방방 뜨는거야?
미 령 : 방방 안 뜨게 생겼어?
문 호 : (귀찮은 듯) 뭔데?
미 령 : 왜 남의 연탄불은 몰래 빼 가는 거야. 눅눅한 방 좀 말랄려고 애써 피워 놓은 연탄인데 댁이 왜 빼가는 거냐구?
문 호 : (화내려다 꼬리를 내린다.) 그거 가지고 그러는 거야?
미 령 : 빼 갔으면 새 연탄 올려 놓는 건 기본아냐? 가져가면 그냥 끝나는 거냐구. 왜 이렇게 사람이 매너가 없어. 매너가 꽝이야!
문 호 : 이봐! 새벽참에 하도 배가 고파서, 라면 하나 끓여 먹을 려고 잠시 빼갔어. 그정도 갖고 한 집에 살면서 그렇게 야박하게 나와야 겠어.
미 령 : 어럽쇼! 뭐한놈이 성낸다더니. 뻔뻔스럽기는.
문 호 : 뭐라구, 놈? 이게 귀여운데가 있어서 좀 봐줬더니 눈에 뵈는게 없나?
미 령 : 그래서 너는 (손에 든 통을 들이민다.) 눈에 뵈는게 많아서 이게 뭔지도 모르고 반통씩 써?
문 호 : 이게 뭐냐니!
미 령 : 이봐, 당신 내 부엌에 몰래 들어와서 샴푸도 쓰고 이것도 썼지?
문 호 : 그거 린스잖아.
미 령 : 글씨도 못읽어? 여성 청결제! 댁이 무슨필요가 있다고 이걸 쓰냐구.
(통을 읽을 수 있게 눈에 들이댄다.)
문 호 : (자세히 보더니얼굴을 찌푸리며) 에이 씨- 어쩐지 소독약 냄새가 나더라니…….
미 령 : 필요하면 이거 다 줄까?
문 호 : 관 둬! 젠장, 비듬이 다 없어지길래 좋은 린스구나 했더니!
미 령 : 경고 하겠는데, 이번 한 번은 그냥 넘어 간다고 치고, 한 번만 더 내물건에 손댔다가는 도둑놈으로 간주하고 112로 신고를 하던지, 팔목을 비틀든지 할테니까 조심해.
문 호 : (어이없듯 웃으며) 어휴. 이 기집애 무지 당돌하네.
미 령 : 그리고 또 하나 경고! 기집애니 뭐니 하면서 여자를 깔보는 듯한 말을 했을 경우에도 몸 성하기 힘들다는거, 꼭 기억해둬!
문 호 : (실실 웃으며) 그럼 어떻게 되는데?
(미령이 문호를 노려보다 구석 샌드백이 걸려 있는 곳으로 간다. 그러더니 기합과 함께 느닷없이 한쪽에 서있는 각목을 들어 검도를 하듯 세찬 기합 소리로 샌드백 여기저기를 사정없이 내려친다. 깜작 놀라는 문호.)
미 령 : (문호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돼.
문 호 : (잠시 주춤하다 박수를 치며) 그렇다면 나도 경고하나 할까? 보아하니 나보다 한참은 아래일 것 같은데, 반말 찍찍해대는게 무척 귀에 거슬리거든. 그걸 당장 시정해주었으 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으면? (샌드백으로 간다. 그러더니 십여발의 좌우 연타를 날린 다.) 이꼴이 될테니까. (그러다가 뒤 돌아서서 아팠는지 맨 주먹을 호호 불어댄다.)
미 령 : 내가 했던 경고를 실천해 준다면 나도 그럴 용의가 있어.
문 호 : (마지못해) 약속해 주지!
미 령 : 좋아요. 그럼 얘기는 끝난 거네요.
앞으로 서로의 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고 살도록 합 시다. (들어가려 한다.)
문 호 : 잠 깐 !
미 령 : 뭐죠?
문 호 : 한집에 살면서 이름이라도 알고 지내야 하는거 아냐? 그래야 내가 '야' 니 '너' 니 이런 말 안할거 아니냐구. 나부터 하지. 난 문호야. 박문호. 글월 문자에… (주춤) 그냥 호 - 호자!
미 령 : (노려보다가) 좋아요. 난 조미령 이에요.
문 호 : 조미령… 캬, 좋은 이름이군. 아름다울 미 자에… (주춤) 령 - 령 자. 앞으로 다정하게 불러 보자구. 네? 조 미 령 씨!
미 령 : (경멸하듯 조소) 못 말려. (들어가려 한다.)
문 호 : (큰소리로) 야! 야! 조미령! (잠잠한 미령의 방쪽을 향해 더 큰소리로) 어쨌든 알아둬! 나, 너한테 관심이 굉장히 많다구. 한 번 잘 지내보잔 말이야!
(이때, 뒤에서 잠옷차림으로 나오는 만수씨. 혼자 얘기해대는 문호를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문 호 : (계속해서) 내가 말야, 우습게 보여도 저 때깔나는 오토바이타고 압구정동에 떴다하면 터프가이 좋아하는 오렌지들은 다 몰린다는거 아니냐. 괜히 나중에 줄 맨 뒤에서 땅 치지 말고 내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줄 때 못 이기는 척 들어오라구. 이미 넌 내 총 애를 받기 시작한거야. 알아들었냐 조미령! 오늘에서야 넌 괜찮은 놈 하나 '콱' 잡은 거 란 말야.
미 령 : (물을 한바가지 들고 뛰어 나오며) 고맙다 이자식아!
(미령이 물을 끼얹는다. 잽싸게 옆으로 피하는 문호. 멋 모르고 물벼락을 맞은 만수씨.)
미 령 : (깜짝놀라) 어머, 죄송합니다. 아저씨.
만 수 : (태연하게 하늘을 보며) 마른하늘에 물 벼락이라는게 이런거구나. 아 - 시원하다. (맛을 보며) 그런데 요즘 수돗물이 왜 이러냐? 물에서 소독약 냄새가 너무 나! 뭘 탔나?
(문호가 '아뿔싸' 하는 표정으로 만수씨를 쳐다보고 미령이는 얼굴을 감싸며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가며 암전.)
4 장
( F . I 되면 평상에 앉아 바가지에 콩나물을 다듬고있는 만수씨. 옆에는 카세트가 놓여져 있고 트롯트 곡이 흘러 나온다. 따라 부르며 콩나물 다듬기를 한다. 오토바이 소 리. 곧 헬멧을 옆에 끼고 휘파람을 불며 들어오는 문호. 미령의 방문을 슬쩍 기웃거려 본다.)
만 수 : (쳐다보지 않은 채) 없어, 나갔어.
문 호 : 누가 물어 봤어요?
만 수 : 물어보고 싶었잖냐. 아니면 말구. 좋은 일 있냐? 입이 귀에 걸렸다!
문 호 : 으흐흐흐. 눈치 하난!
만 수 : 몇일 안 보이더니 손에서 화투냄새 좀 풍기는 구만.
문 호 : 으흐흐흐. 그렇게 눈치 빠르신 분이 왜 이런데서 이 모양이실까? 뽕짝에 콩나물에!
후후 좋아요. 내, 구경한번 시켜 드리지!
(윗옷 안주머니를 살짝 보여준다. 과장하여 놀라는 만수씨.)
문 호 : 아저씬 이런 돈 벌려면 몇 년 동안 열쇠를 파야 할거요.
바로 이런게 한방 승부라는 거요. 하하. 이런 걸 불행 끝 행복시작이라고 하나 봅니다. 하하하.
만 수 : (문호와 같은 톤의 웃음) 하하하. 웃기는 놈! 그런걸 불행 끝 파멸 시작이라고 하는 거다. 네가 어떤 호구놈을 해먹었는지 몰라도 넌 아마 이 일로 더 큰 대가를 지불하게 될 거다.
문 호 : 후후 천만에요. 내 손 기술은 이미 인정 받았어요. 뒷돈 대주는 사람도 제법 있단 말입니다. 난 기술자에요. 테크니션 !
만 수 : 테크니션 ?
문 호 : 더 고상한 표현으로 프로란 말요! 프로! 떠오르는 샛별! 옥수동 문어!
만 수 : 프로? 는 몰라도 문어는 알겠네. 애기인 즉 넌! 전문적인 꾼이다 - 이런 애기구만.
문 호 : 그럼 순진하게 밤새 패돌리다가 운 좋으면 따고 패 안풀리면 깨지는 그런 아마츄어 인줄 아셨수?
만 수 : 떨린다, 떨려 (과장하며) 내 집에 그런 사깃꾼이 살다니 말야.
문 호 : 하하하, 섯부른 비판은 하지 맙시다. 사람은 누구나 다 사는 방법이 다른 거니까. (장난치듯) 하나 보여 드릴까? 동네 화투판에서 먹걸리 값이라도 챙기게 말요.
만 수 : 모르는게 약이지. 일 없네.
문 호 : 하하하, 그래요 관둡시다. 프로가 초자 앞에서 괜히 기술 피워봐야 시간 낭비지!
만 수 : 그래 너 프로다, 그러니 좀 비켜. 콩나물 다듬는 재미나 보게!
문 호 : (장난치듯) 아저씨! 그러지 말고 내기 하나 합시다.
만 수 : 게임도 안되는걸 하자고 하는거 보니까 내 쌈짓돈도 탐나는 거냐? 옛끼, 도둑놈.
문 호 : 하하. 열쇠 구멍도 못 찾는 아저씨 기술이 뭐가 탐나겠수. 그저 배움에 대한 대가가 있는 거지. 기술도 보고 한 수도 배우고. 내가 아저씨 코 뭇은 돈 따먹어서 부자 될 생 각 하겠수?
만 수 : 밑천도 없고 난 관 두겠다.
문 호 : 밑천? 돈은 필요 없수. 한 달치 방세로 합시다. 그 대신 내가 지면 두 달치 방세를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드리지. 현찰 박치기로!
만 수 : 일 없네! 혼자 방에 들어가서 놀아라!
문 호 : 에이 그러지 말고 심심풀이로 한 번 합시다. 내기도 작게 하면 되잖우. 라면 한 박스, 어때요?
만 수 : 글쎄, 안 한다니까!
문 호 : 그럼 담배 한 갑! O . K ?
만 수 : 거 - 자식, 싫다는데 되게 따라붙네.
문 호 : 좋아. 그럼 담배 한 개피!
만 수 : 차-암 웃기는 놈이군. 그렇게 자랑하고 싶냐?
문 호 : (방백) 웃기는 소리! 놀려먹고 싶은 거야, 이 영감아!
만 수 : (사이. 문호를 노려본다.) 좋아. 네가 정 그렇게 나를 놀려먹고 싶다면 딱 한판만 해보자!
문 호 : 헤헤헤헤 그럼 담배 한 개피 내기요.
만 수 : 임마! 그래도 게임인데 담배 한 개피 가지고 승부욕이 나겠냐?
두 개피로 올려!
문 호 : 좋아요. 담배 두 개피라 하하. 베팅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군. 후후.
(문호가 득의에 찬 표정을 지으며 화투를 꺼낸다. 그러더니 빠른 솜씨로 화투를 섞는다.)
우선 재미 있는 연습게임부터 한 번 할까요? 이 세가지 그림 중 에서 이 똥광 한 번 찾아보슈. 눈이 얼마나 빠른가 보게.
(문호가 화투 세장을 들고 번개 같이 뿌린다. 만수씨가 하나를 잡는다. 헛 집는다. 그건 어느새 문호의 손에 있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 대는 문호. 한 번 더 한다. 똑같은 상황.)
문 호 : 하하, 그럼 지금부터 혼방이요. 승부는 단 한판! 도리짓고 땡이나 섰다 중에서 골라 보슈.
만 수 : 니 마음대로 해봐.
문 호 : 후후, 그럼 섰다로 하죠.
(다시 화투를 섞는 문호. 그리고는 패를 두장씩 나눠 갖는다. 자기 패를 은밀히 들춰보 는 두사람. 문호가 먼저 의미 심장하게 웃는다.)
문 호 : 좋은 패 잡으셨습니까? 하하, 까 보시죠!
만 수 : (고개를 갸웃) 잘 못잡은 것 같군.
문 호 : 그래요? 하하. 다 팔자소관 아니요. 왜, 먼저 까기 싫으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대신 얘기해 드릴까요?
만 수 : 알고 있었단 말인가?
문 호 : 글쎄요, 후후. 난 프로랬잖우. (은밀히) 지금 장하고 일을 들고 있죠? 한 끗! 흐흐흐.
만 수 : 아니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지?
문 호 : 프로니까! 게임은 끝났소. 난 땡 잡았거든. 하하하하.
만 수 : 와 --- 아. (놀라는 표정)
문 호 : 후후 궁금하시겠지. 잘 들어요. 아저씨가 든 화투의 뒷장은 이미 나 만의 비밀표기를 다 해 놨지. 그게 햇볕을 받아 선명하게 보이는 거요. 다른 놈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못 찾아 내거요.
만 수 : 그럼 넌 무엇을 들고 있게 돼나?
문 호 : 상대방보다 무조건 높은 거. 후후. 이미 내 소매 속엔 화투를 섞으면서 벌써 몇 장이 들어가 있었어. 그러다 눈 깜짝할 새 에 상대보다 높은 걸로 뒤바뀌는 거지. 복잡한 여 러 기술보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기술, 이게 바로 핵심기술이라는 거요.
(자신있게 자기 패를 펼친다. 9 짜리 두 개) 9땡이요. 하하.
만 수 : 대단하군.
문 호 : 어때요. 이 정도면 놀랄만 합니까? 하하하.
자 그러면 장하고 일 까시죠! 하하하.
(만수가 서서히 자기 패를 펼친다. 한 장은 장. 그러더니 그 위에 덮는 화투. 또 장 이다.)
만 수 : 그런데 어떡하나? 나, 장 땡이야!
(문호가 눈이 휘둥그레져 놀란다.)
만 수 : 내가 이겼지?
문 호 : 아니 이게 어떻게 된거야?
만 수 : 뭘 어떻게 돼? 니가 나 한테 담배 두 개피 줘야지!
문 호 : (안색이 변하며) 이럴 리가 없어. 이럴 리가… 틀림 없이 장 하고 일이었는데……
(쳐다보며 약간 경계의 눈빛) 그럼 내가 속은거요?
만 수 : 속긴 뭘 속아. 난 니가 준 패 두장 들고 있었던 것 뿐인데.
니가 잘못 봤겠지. 아니면 난시 이거나…
문 호 : 그럴 리가 없어. 뭔가 잘못된거야.
잠깐요, 뭔가 착오가 있는거 같으니까 한 판 더 해 봅시다.
만 수 : (손벌리며) 내 놓지. 담배 두 개피!
문 호 : 아니 이건 착각을 한 것이 틀림없다고.
만 수 : (말 허리를 자르며) 어 - 허 ! (손을 문호의 얼굴에 들이민다.) 약속을 지켜!
(문호가 어떤 힘에 제압 당한 채 담배 두 개피를 내 놓는다. 냉큼 주머니에 넣는 만수씨.)
만 수 : 히히 횡재 했구만.
문 호 : 저…… 우리 한판 더 합시다.
만 수 : 이미 승부는 끝났잖아.
문 호 : 글쎄, 또 내기를 걸더라도 한 번만 더 하자니까요.
만 수 : 짜-식. 정말 머리가 둔하군. 한 번의 가르침이 큰 교훈으로 안 와닿는걸 보니. 괜히 더 하다가 프로로서의 자존심 구기지 말고 이정도에서 끝내자구. 내가 그동안 주워 들은 것만 해도 너 보단 한수 위겠다. 이놈아!
문 호 : 그럼 그게 기술이었단 말요?
만 수 : 거봐. 그게 기술이었는지 뭐 였는지도 넌 모르잖아. 난 화투의 수를 보진 못하지만 네 손가락 움직이는건 다 보고 있었어. 다 보이는걸 어떡하나.
문 호 : 그럼 그게 기술이었단 말요?
만 수 : 그래. 워낙 느린 속도로 들어가길래 나도 어쩔수 없이 봤어. 미안해.
문 호 : (놀라움으로) 뭐요?
만 수 : 불러볼께, 맟춰나 보지. (나즈막히) 일 - 사.
문 호 : (당황의 빛이 역력하다.)
만 수 : 그리고 칠! 틀렸나?
문 호 : (입을 쩍- 벌린다.) …….
만 수 : 내가 이렇게 알 정도면 네가 보인 기술은 아주 곶전 같은 거지. 노래로 치면 눈물 젖은 두만강! 랩 이래나 힙합 이래나 하는, 노래가 판치는 세상에, 백날 두만강에서 노 저어 봐야 그리운 내 님이나 찾다 볼장 다 보는 꼴 아냐?
문 호 : 이럴수가… 대체 아저씬 누구요?
만 수 : 몰라서 물어? 니 말대로 열쇠파는 영감쟁이지.
문 호 : 그런데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만 수 : (여유있게 웃으며) 표시하지 않은 기계 하나 꺼내봐.
문 호 : 예?
만 수 : 표시하지 않은 화투 한 목 꺼내보라고 !!
(문호가 넋이 나간 듯 다른 호주머니에서 화투 한 목을 꺼내 준다. 만수씨가 대충 십여 장 정도로 추린다음 문호쪽을 향해 펼친다.)
만 수 :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골라봐.
(문호가 하나를 뽑은 다음에 안 보이게 만수에게 준다. 현란하게 섞는 만수씨. 안 보이 게 뒤 집어서 하나하나 펼쳐 놓는다.)
문 호 : …….
만 수 : 하나만 남겨 놓고 나머지를 빼가. 그리고 최종 남겨 놓은게 네가 뽑은건지 확인해.
(문호가 떨리는 손으로 하나하나를 제거한다. 행여있을 눈속인을 방해하려는 듯 불규칙적으로 뽑아낸다. 이윽고 남은 단 한 장)
만 수 : 까 봐.
(문호가 한 장을 깐 다음 소스라치게 놀란다.)
만 수 : 맞나?
문 호 : 이럴수가…….
만 수 : 어떤가? 한 번 해본건데 우연이겠지.
문 호 : 이 기술은 ?
만 수 : 기술은 ? 심심풀이 게임이야.
문 호 : (뭔가 엄청난 느낌을 받기 시작하며, 만수씨의 말을 가로채듯) 잠깐만요… 나… 들은 적이 있어요. 속임수를 전혀 쓰지 않고도 상대방 눈동자에 비친 색번짐과, 몸에서 느껴 지는 미세한 변화로 상대의 수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읽어 낸다는 …… 그래! 독심화 투술!! 화투에서 입신의 경지라는 그 독심 화투술! (갑자기 만수씨를 쳐다 보다 깜짝놀 라 후다닥 평상에서 내려와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어이쿠 선생님! 몰라뵈어 죄송합니 다!! (머리를 조아린다.)
만 수 : 이 놈이 갑자기 왜 이러나!
문 호 : 이 바닥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독심화투술을 구사하시는 단 한분이 선생님이셨다니요! 부디 절 용서하여 주십시오.
만 수 : 이 놈이 지금 무슨 얘길 하는지 모르겠군.
문 호 : 아닙니다. 이제 알 것 같습니다. 번개손이라는 존함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네? 번개손 선생님!
만 수 : 웬 번개손! 잘못 봤느니라. 난 열쇠나 만들어 먹고 사는 열쇠손 김만수일 뿐이다.
문 호 : 그 선생님이 서울 외진 곳에서 열쇠 만들며 산다는 얘기가 이제야 떠올랐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대성통곡하듯) 아이고 선생님!
(만수씨, 두 눈을 감으며 - 암전)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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