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주인은 누구인가

                         황태영

     문학산 깔딱고개 아래에 도착하니 키 큰 상수리나무 밑에 나뭇가지들이 떨어져있었다. 가지에는 대체로 상수리잎 3장, 도토리 3개가 매달려 있었다. 도토리가 다 익어 열매 무게를 견디지 못해 떨어졌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른 철이고, 말라비틀어져 떨어졌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멀쩡한 생가지가 칼로 베인 듯이 잘라져 있었다. 일행의 말에 의하면, 청설모 혹은 다람쥐가 등산객이 다니는 낮에는 상수리 나뭇가지를 이빨로 잘라 떨어뜨렸다가, 인적이 드문 야간에 땅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들을 모아 인근 창고에 보관한다고 한다. 그 중에 간혹 싹이 터서 큰 상수리나무로 자라기도 한다니 숲을 넓히는 다람쥐의 역할이 작지 않다. 그러나, 이빨자국이라기 보다는, 칼솜씨 좋은 자객에 의해 단칼에 베어진 단면이어서 청설모나 다람쥐의 소행이라고 보기에는 의심스러웠다. 나중에 자세히 알아보니 병충해 때문이었다. 8,9월이면 행동을 개시한다는 도토리 거위벌레의 소행이었다. 덜 익은 도토리 속에 벌레알을 집어넣고는 나뭇가지를 지상으로 떨어뜨리는 바람에 도토리 수확량을 감소시켜 청설모와 다람쥐의 겨울나기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배고픈 다람쥐를 떠올리다보니 20대초에 강원도 향로봉에서 군복무할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식당 주변에 먹고 남은 짬밥을 버리던, 사각형으로 깊게 파인 흙구덩이가 있었다. 배고픈 들쥐들도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그 흙구덩이를 찾았을 터이고, 잡식성의 다람쥐들도 그곳에서 주린 배를 채웠으리라. 그런 짐작을 뒷받침하는 장면이 있었다.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비위가 상한다. 전우가 산토끼 같은 작은 들짐승을 잡기 위해 근처에 함정을 준비해두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잡힌 짐승을 긴 나무에 줄을 매달은 간이 낚싯줄에 묶어 장난 삼아 희롱하고 있었다. 그 짐승의 상반신은 아름다운 줄무늬의 다람쥐였는데 하반신은 더러운 잿빛 털과 쥐꼬리를 가진 들쥐였다. 식사 후 짬밥을 버리다가 그 혼혈동물을 보았을 때 얼마나 비위가 상했을지 상상해보라. 추측컨데 굶주린 다람쥐와 들쥐가 짬밥 구덩이에 자주 오다가 눈이 맞고 배가 맞았으리라. 주변에 만약 상수리나무가 많았더라면 굳이 짬밥 구덩이에까지 올 일이 없을 터이고 이종교배할 일도 없었으리라.

     숲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산짐승들이다. 야생동물들에게 숲은 삶의 터전이요 논이요 밭이요 마을이다.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산짐승의 관점에서 건강한 생태계를, 풍요로운 숲을 만들어야 한다. 산짐승이 살기 위해서는 숲 속에 먹이가 풍부해야 한다. 돌배나무, 돌사과나무, 개살구나무처럼 병충해에 강해 농약이 필요 없는 야생의 과실수를 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야생동물의 먹이도 되고 등산객의 눈에 보기도 좋을 것이니 일거양득이다.

     멧돼지의 번식율을 보면 그해 농사가 풍년이 될 지 흉년이 될 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멧돼지는 흉년 풍년을 미리 예측하여 개체수를 조절하는 능력을 본능적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멧돼지가 뉴스에 의하면 종종 마을로 내려와 고구마 밭을 휘저어 놓는다고 한다. 이는 예삿일이 아니다. 멧돼지 개체수가 많아져서가 아니라 적정수를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숲에 먹을 게 없어져 어쩔 수 없이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민가로 목숨 걸고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산에는 밤나무들도 서식하고 있는데, 한번은 큰 몽둥이를 들고 와서 늙은 밤나무가 도대체 무슨 큰죄를 지었길래 나무의 허리를 여러 차례 퍽퍽, 때려대는 중년의 여자를 본적이 있다. 나무가 아니고 사람이 그 정도로 맞았다면 아마도 허리가 부러지고 혼절을 하였을 것이다. 조선시대 역모사건에 연루된 고관대작 출신의 죄인에 대한 국문 현장의 고문이 이토록 참혹했을까? 가지고 온 등산배낭이 터질 정도로 땅바닥에 떨어진 밤들로 가득 채우는 탐욕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보며,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은 채 굶주린 배로 겨울나기를 할 산짐승들의 모습이 중첩되었다.

     문학산의 신선약수터에는 약수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사각형의 양철통에 일정량 잠시 머무르게 되어 있다. 주위에 세수대야가 몇 개 놓여 있어서 등산객들이 양철통의 물을 세수대야에 담아 세수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한여름철에도 물의 온도가 얼음장과 같아서 정신이 버번쩍들며 이 순간은 신선이 부럽지 않다. 양철통에서 넘쳐흐른 물은 아래로 흘러 흘러 청학사까지 간다. 이 물길을 이용하여 누군가가 숲 속 한 쪽 구석에 만든 소규모의 미나리 밭이 보인다. 미나리 밭을 지나가는 물길이 청학사에 다다르기 전에 옹달샘을 거치게 되는데 이 옹달샘은 온갖 풀들에 의해 가려져 있다. 산새들이 날아와서 물을 마시기도 하고 목욕을 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한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근처 나뭇가지에서 대기하고 있는 산새들도 간혹 보인다. 길게 자란 풀들을 헤쳐 가까이 가서 보니 옹달샘 주위가 돌멩이들로 둘러싸여져 있다. 장마철에 돌멩이들이 흩어지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손에 의해 어느새 무너진 옹달샘은 원상태로 재건축되곤 한다. 그러고 보니 문학산에 사람들이 먹을 약수터는 몇 군데 있지만 산새가 물 마실 옹달샘은 여기 외에는 없다. 산새의 목마름을 배려한 누군가의 고운 마음과는 달리, 무관심하게 등산하고 약숫물로 내 갈증만 해결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나도 그 아래에 작은 옹달샘을 만들었더니 언제부턴가 군번이 낮은 더 작은 새들이 들락거리며 메마른 목을 축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청학사의 넓은 뜰 한쪽 작은 웅덩이에 물이 차 있었는데 모기유충이 징그럽게 번식하자 어느날 보살이 웅덩이를 없애버렸다. 미꾸라지 한 두 마리만 넣어두면 모기유충을 먹어치워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인데 아쉽다.

     청학사 약사여래불 밑에도 약수터가 있는데 넘쳐 흐른 물은 그냥 아래로 흘러 내린다. 아래쪽에 연못을 만들어 민물고기들을 풀어 놓으면 참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스님이 연못을 만들면 집 어항에서 키우고 있는 민물고기들을 그 연못에 풀어주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