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버지와 산나물

강미영

    며칠 전 저녁 찬거리를 사러 마트에 들렀었다. 야채 코너를 돌다 보니 진열대위에 온갖 봄나물들이 팩에 담겨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달래, 냉이, 돋나물, 씀바귀 등이 쏟아지는 냉기샤워에 파릇파릇 살아나고 있었다. 나는 된장을 풀고 콩가루를 묻힌 냉이 국을 끓여 야지 하고, 냉이를 집어들었다. 그러면서 그 옆에 두릅이 든 팩을 보게 됐다. 짧게 자른 가지에 두릅 순이 포동포동 살이 올라 있다. 나는 두릅 가격을 보고 입맛을 다시며 다시 내려놓았다. 장바구니에 들여놓기는 너무 값이 비쌌다. 값이 싼 냉이랑 달래를 들고 돌아오면서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봄이 오고, 산에 뾰죽뾰죽 산나물이 돋아나면 평상시에 늘 술만 마시던 아버지는 도시락을 싸들고 산으로 가시곤 했다. 아버지는 다른 거는 몰라도 산나물 하나는 신기에 가깝게 뜯어 오셨다. 한번 산에 올라가시면 80㎏ 들이 정부미 푸대로 꾹꾹 눌러 담아 오셨었다.
    아버지는 산나물 종류를 어떻게 그리 많이 아시는지 산에서 나는 먹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나물을 해 오셨다. 아버지는 늘 혼자서 산에 가셨다.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를 따라 가고 싶어했지만 아버지는 나물하러 갈 때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살짝 가셨었다. 아마도 아버지의 보물 창고를 혼자만 알고 싶으셨으리라.
    아버지가 지고 온 푸대 안에서 쏟아지던 삽추 싹, 잔디 싹, 참나물, 원추리 나물, 다래 순, 두릅 등 다 열거를 할 수 없을 정도다. 갓 씻은 삽추 싹과 잔디 싹을 한웅큼 집어 밥을 한 숟가락 넣어 고추장 발라 쌈을 싸면 삽추 싹의 쌀사름한 맛과, 잔디 싹의 단맛이 어울려 나물 한 소쿠리는 어느새 게눈 감추듯 없어 졌었다. 두릅도 강원도 태백산 깊은 골짜기에서 잎이 필락 말락한 것들로 뜯어 오셨는데, 데쳐서 고추장 양념에 무쳐 내던 두릅 맛과 향은 쇠고기 안심구이랑 비교도 되지 않는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아버지는 온갖 취나물 종류를 해오셨다. 곰 취, 참 취, 수리 취, 등등을 수도 없이 많이 해오셨다. 그러면 엄마는 마당에 큰 무쇠 솥을 걸고, 장작불로 물을 끓여 연신 삶아내 말려 겨우내 먹을 묵 나물을 만드시곤 했다.
    요즘 사람들은 고사리만 알고 있지만 아버지는 고비라는 고사리 사촌쯤 되는 나물도 많이 해오셨다. 아버지 말로는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귀한 나물이라고 하셨다. 고비는 늘 잘 말려 간수 하셨다가 명절 때나 제사 때만 쓰시던 걸로 기억난다.
    “고비” 의 생김새는 고사리하고 많이 다르다. 고사리는 대가 미끈한 대 반해 고비는 대에 털이 많이 나있고, 머리 부분이 달팽이처럼 동그랗게 말려 들어가 있다. 고사리는 그냥 삶아서 말리면 되지만, 고비는 삶아서 건진 다음 대에 털과, 머리 부분을 손으로 일일이 훑어 내야 했다. 우리는 모두 엄마를 도와 고비 다듬는 일을 밤을 새며 해야 했었다. 손이 많이 들어가서였는지, 아니면 정말 아버지 말대로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귀한 것 이였는지는 몰라도 어쩌다 명절날이나, 제사 때 먹는 고비는 고사리 보다 훨씬 부드럽고, 구수했던 걸로 내 혀는 기억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강원도를 떠난 이후로 나는 한번도 고비를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산나물 뿐 아니라 산에서 나는 모든 것들을 나물과 함께 해오셨다. 지금은 너무 비싸서 구경도 할 수 없는 각종 버섯들이 아버지 나물 보따리에 들어 있었다. 자연송이, 느타리버섯, 싸리버섯, 표고버섯 밭을 아버지는 혼자만 알아두시고 아무에게도 알려 주시지 않았다. 내가 아들 이였다면 아버지는 내게는 가르쳐 주시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버지는 나물들 중간 중간에 참 찔레순도 몇 다발씩 꺽어 오시곤 했다. 마땅한 먹을거리가 없던 그 시절에 참 찔레 순의 연하고, 싱그러운 맛은 더 할 수 없는 간식 거리였다.
    가을이 오면 산에서 나는 머루, 다래 게암, 밤, 도토리 등을 주워 들이셨고, 엄마는 또 마당에다 불을 때고 도토리묵을 만들었다. 금방 퍼서 굳힌 도토리묵에 양념 간장을 뿌려 먹으면 도토리 향이 진하게 입안을 채웠었다. 엄마는 도토리의 떫은맛을 우려내고, 설탕을 버무려 안고를 한 찐빵을 만들어 주기도 하셨다.
    하지만 산나물이 언제나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다. 엄마는 아버지가 산에 가실 때마다 외상 술과, 고기를 가지고 가시는 게 화가나 아버지가 해온 산나물을 푸대 째 내다 버리며 싸움을 하신 적도 있다. 엄마는 이까짓 풀 쪼가리말고, 애들과 당신도 고기 드시고 싶으니 제발 돈을 벌어다 달라고 싸움을 하셨었다. 아버지는 술 좋아하시고, 산에 오르시는 것만 좋아했지. 돈을 잘 버시지는 못하셨다. 그 일로 늘 현찰을 좋아하는 엄마랑 참 지긋지긋하게도 싸움을 해서 내 어린 시절은 좀 우울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 엄마의 구박 속에 아버지가 해오시던 모든 산나물이며, 버섯들은 우리 같은 서민들은 구경도 못해볼 만큼 비싸졌다. 지금 아버지가 살아 계셔서 산에서 나오는 자연산 송이며, 잣이며, 벌꿀이며, 산나물 등을 해오신다면 엄마도 예전처럼 아버지를 무능력하다고 구박하시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 씁쓸해 지곤 한다.
    나는 지금 여러 가지 몸에 해로운 습관들을 참 많이 가지고 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공복에 커피부터 마시는 거라든가, 아침밥을 안 먹는다든가, 술을 마시면 안주를 하나도 먹지 않는 등등 위에 나쁜 건 골고루 다 한다. 그리고 누구 보다 인스턴트 음식을 즐겨 먹는다. 그런데도 누구 보다 위가 튼튼한걸 보면 아버지가 뜯어다 주시던 산나물에 들어 있던 각 종 약효들의 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나는 가끔 아버지의 보물 창고였던 곳을 딸이라서 알아두지 못한 게 참 아쉽다. 그랬다면 봄이 오면 애들을 데리고 아버지의 보물 창고를 보여 줄 수 있을텐데....그나마 나이를 먹으면서 몇 안 되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자꾸만 사라져 간다.
    나는 가끔 그곳에는 산을 사랑하고, 산에 나는 모든 것을 알뜰히 수확해 줄 사람을 기다리며 수많은 산나물들이, 버섯들이, 열매들이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좀 더 오래 사시지 못한 아버지가 이 봄. 나는 너무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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