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관리인이 만난 숲

    드러누운 십자가 형태의 대형 비닐 하우스가 한 달간 꽃전시관으로 사용되었다. 그 바람에 공원관리 노동자들이 돌아가면서 2명씩 배치되어 길게 이어진 꽃밭의 꽃들이 시들지 않도록 물을 주는 일과 방문객들이 꽃밭에 들어가서 꽃을 훼손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본래의 임무가 아닌 일, 전혀 예상하지 않은 일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되었다.

    꽃전시관의 중앙은 내부의 다른 꽃밭들보다 높아서 언덕처럼 보였다. 언덕 에는 나무를 상징하는 대형 철제 구조물이 높게 세워져 있고 철제 가지마다 열매처럼 구(球)가 매달려 있다. 구(球) 속에는 흙이 채워지고 다양한 색깔의 팬지들이 심어져 얼굴들을 구(球)의 바깥으로 내밀고 방문객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철제 구조물의 밑에 있는 언덕은 원형의 넓은 꽃밭이어서 여러 종류의 화려한 꽃들이 심어져 있다. 꽃들 옆의 어떤 잔디들은 질서있게 모여 영문으로 “환영합니다(WELCOME)”라고 말하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이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언덕의 가에는 동서남북 네 곳에 넓적돌을 깔아놓았다. 그 중에 한 곳에는 키 낮은 동그란 통나무 의자 3개가 놓여져 방문객이 앉아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꽃전시관의 중앙을 제외한 동서남북으로 각각 뻗은 네 곳의 꽃밭들에는 실물 크기의 백설공주 모형, 줄다리기를 하는 우스꽝스런 표정의 어린이들의 모형,사당패의 모형, 철제 튤립, 새집, 속이 비어 있는 붉은 대형 철제 하트, 3개의 나뭇잎 모양의 철제 벤치,새끼 돼지 모형,초가집 모형, 기와집 모형, 장독대, 지게 등이 꽃들과 조화를 이루며 놓여져 있어서 사진의 배경으로 아주 예뻤다.

    꽃전시관의 입구에서 들어오면 좌우에 길게 꽃밭이 이어져 있다. 가운데 작은 면적의 보리밭이 있고 보리밭의 양쪽 가는 목재 바닥으로 된 통로여서 방문객들은 통로를 지나가며 좌우로 시선을 주며 보리밭과 꽃밭을 구경한다. 길게 자란 잔디가 꽃밭 가장자리를 빙둘러 싸고 있어 낮은 울타리 역할을 하였다.

    보리밭 안에 실물 크기의 새끼 백돼지 모형이 두 마리 있다. 돼지 옆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자꾸 사람들이 들어가는 바람에 돼지 주위의 보리들이 발에 밟혀 흉하게 드러누웠다. 못 들어가게 제지하다가 방문객이 기분 상할 수도 있으니 나중에는 돼지를 내가 직접 보리밭 바깥으로 꺼내어 돼지와 사진 촬영을 어린이들이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도로 보리밭으로 돼지를 넣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꽃길만 걸으면 돼지.”라는 입간판이 돼지 모형과는 정반대의 먼 위치에 있는데, 입갑판 근처에서 사진을 찍는 방문객에게는 “되지”가 문법에 맞지 “돼지”는 문법상으로 틀린 표현임을 지적하며 관심을 끌고는, 올해가 돼지해이고 저 반대편 보리밭에 그래서 돼지가 있는 것이고 작가가 의도적으로 문법적으로 틀린 표현을 쓴 것으로 짐작됩니다,라고 설명해준다.

    3D 업종에 취업한 외국인 노동자로 보이는 이가 앉아서 셀카를 찍으려 하는데 얼굴만 크게 나올 뿐 아름다운 꽃과 키 큰 구조물이 다 나오도록 찍기에는 역부족이라고 고민하는 표정이 내 눈에 들어온다. 나는 혼자 왔거나 단체사진을 찍으려는데 도움이 필요한 지를 유심히 관찰하고도 있었으므로 그런 이의 고민이 눈에 들어온다. 그에게 다가간다. 포토(사진)?,라고 물으니 내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유를 이미 이심전심으로 느끼고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폴더폰을 나에게 건넨다. 나는 예술적인 구조물과 좌우에 펼쳐진 꽃밭이 같이 나오도록 카메라를 횡으로 찍는다. 그리고는 외친다. 원스 모어(한번 더)! 카메라를 세워 키 높은 예술적인 구조물이 제대로 나오도록 한장 더 찍어준다. 외국인이 한국말로 고맙습니다,라고 제법 정확한 한국말 발음으로 말한다. 나는 이내 꽃밭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지 이동하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본연의 업무로 돌아간다. 꽃밭 속의“율마”들은 침엽수림을 재현해놓은 것 같다. 동토의 시베리아의 숲을 보는 기분이 든다. 다알리아를 보니 어린 시절 어머니가 화분에 심고 좋아하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혼자 전시관에 우연히 들렀다가 독사진을 찍고 싶은데 부탁할 용기가 나지 않는 방문객들에게 최상의 사진을 얻을 수 있는 포토존들을 알려주며 내가 찍어줄까요,하고 물으면 대부분은 아주 좋아한다. 그런데 드물게 늙은 얼굴을 이제는 사진으로 남기고 싶지않다는 여성도 있다. 나는“지금이 내일보다, 내년보다 더 젊고 예쁜 얼굴이랍니다”라고 말해준다.

    가족이나 단체일 경우는 줄다리기하는 어린이들 모형의 반대편에 서서 평행선을 이루며 동일하게 줄 당기는 동작들을 취하게 한 후 사진을 찍어준다. 아주 재미있는 사진이 나와서 결과물을 보고 그들이 웃을 때 나도 즐거워진다.

    주로 공원에서 내가 하는 업무는 지난 한 해 동안 쌓인 젖은 낙엽더미를 수많은 대형 포대에 넣어 버리는 일, 호수가의 갈대들을 낫으로 제거하는 일, 꽃나무를 심기 위해 삽질하는 일, 씨앗을 심거나 비료를 주는 일, 예초기로 잡초 제거하는 일 등의 육체노동이다. 노동자라서 당연히 꽃이름은 잘 모르는데 노란 조끼를 입고 있으니 방문객들이 꽃이름을 더러 묻는다. 숲해설사도 아닌데 말이다. 꽃 이름표가 곳곳에 꽂혀 있기는 하지만 여러 꽃이 뒤섞여 있는 곳은 이름표에 해당하는 꽃이 어느 꽃인지 몰라서 묻기도 하고, 동일한 꽃들이 여러 꽃밭에 흩어져 있는 경우는 어느 한 곳에만 꽃 명패가 꽂혀 있고 다른 꽃밭에는 꽂혀 있지 않아서 묻는 경우도 있다. 이거 원,방문객을 위해 숲해설사 노릇까지 해야겠는 걸?

    장시간 서 있다보니 다리가 아파 잠시 의자에 앉아 있을 때는 꽃전시관에 있는 꽃들의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서 검색하며 정리해나갔다. 그리고 정리된 정보들로 방문객들에게 꽃해설을 틈틈이 해주었다. 이 꽃 처음 보시지요? "베들레헴의 별"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지가 베들레헴인데 거기의 밤하늘의 별들이 참으로 화려하게 반짝거리는데 이 꽃과 닮았다 하여 "베들레헴의 별"로 이름이 지어진 꽃인데 간단히 줄여서 "베들레헴"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 옆에 심어진 "제라늄"은 본 적이 있는 꽃이지요? 모기가 느끼기에 독특한 싫어하는 향기를 뿜어낸답니다. 그래서 창가에 화분 몇 개 두면 모기퇴치제 역할도 한다는데 모기가 들어오는 걸 100퍼센트 막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꽃이 무척 아름답지요? 오리지널 양귀비가 아니고 관상용 꽃양귀비입니다. 오리지널 양귀비는 잎이 불규칙한 톱니모양으로 되어 있으나 꽃양귀비의 잎은 보시다시피 쑥갓 비슷한 모양입니다. 양귀비는 독특한 빛을 뿜어내기 때문에 야외에서는 카메라 렌즈로 양귀비의 본래의 꽃 색깔을 동일하게 찍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리고 항공사진으로도 몰래 심은 양귀비는 촬영되어 적발이 됩니다. 장염 등에 특효인 양귀비를 약으로 쓰기 위해 시골농부가 몰래 심을 경우 항공사진에 나타나지 않도록 특정 부분을 다 따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양귀비는 항공사진으로 찍히지 않는다고 해요. 그러나 워낙 번식이 잘되기 때문에 어느새 번식된 다른 양귀비가 항공사진에 찍혀서 적발되어 많은 금액의 벌금을 내게 되니 양귀비를 불법적으로 심으면 큰일납니다. 처음 보는 꽃이지요? 디기탈리스입니다. "장갑 속의 손가락"이라는 뜻이 꽃이름에 들어 있어요. 왜 그런 뜻이 있는거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여기 보세요, 제 손가락들을 초롱처럼 생긴 꽃 속에 집어넣으니 장갑 끼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헝가리,루마니아,발칸반도가 원산지입니다. 비가 올라나? 비올라입니다. 제비꽃과 식물이지요. 팬지는 같은 제비꽃과인데 서로 사촌간이라고 할 수있어요. 비올라는 꽃이 작고 팬지는 좀더 꽃이 크고 둥근 형태를 띄고 있어요.저기 기둥 위의 구(球) 속에 동그랗게 꽃들이 모여 있는 게 팬지입니다.이 꽃 말인가요? 루피너스(Lupinus)입니다.“이리(lupus)”라는 뜻으로 이 식물이 토지를 황폐화시킨다는 점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도하게 사용된 농약과 토양 안의 독성물질을 흡수하는 식물이어서 유래와는 달리 좋은 식물이기도 합니다. 지게, 오랜만에 보시지요? 한국전쟁때 미군들이 처음 지게를 보고는 알파벳 "A"를 연상시키는 틀(뼈대, frame)이라 하여 지게를 "Korean A-frame"이라고 명명했답니다. 여기서는 수국,아이비,디기탈리스의 화분 신세가 되어버렸네요.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해주면 방문객들이 재미있어 하고 반응이 좋았다. 언젠가는 전시관 내의 모든 꽃을 설명해줄 수 있으리라.

    꽃에 대해 몰랐던 공원 노동자에게 숲은 그렇게 우연히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