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고등어
김기모
얼마 전 친척집 결혼 때문에 고향 안동에 갈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 친지들의 반가운 얼굴들이 고향의 푸근한 정감들을 더해 주고 있었다. 한 식구처럼 가까이 지내던 분들이었지만 이젠 이런 결혼식장이나 병원 영안실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서울도 하루에 갔다 올 수 있고 거미줄 같은 고속도로와 자가용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예전 가난했던 시절보다 오히려 여유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몸은 비록 떠나 있어도 항상 마음의 안식처인 고향.
시장 어물전을 지나오면서 간 고등어가 보여 한 손을 골랐다. 간 고등어 한 손을 들고 나오려다 이 맛있는 고기를 혼자만 먹을 수 있겠느냐는 생각에 몇 손 더 사기로 했다. 후덕한 인심의 주인 아주머니는 깎아 달라는 말을 안 했는데도 여러 손을 파는데 따른 이익을 줄여 자진해서 깎아 주기까지 했다.
간 고등어를 보니 새삼 어린 시절의 가난이 생각났다. 버스가 다니는 면소재지에서 30여리나 떨어진 우리 마을은 5일마다 서는 장날이 되어야만 왕복 5시간을 실히 걸리는 장터에서 생활필수품을 사 가지고 올 수 있었는데 볏짚에 매인 고등어 한 손씩이 아버지 오른 손에 달랑달랑 달려오곤 했다.
보리밥도 얻어먹기 힘든 시절, 그 짭짜름한 고기 맛이 어땠겠는가. 나무를 때어 밥을 하고 난 뒤의 불잉걸 위에 고등어 몸통과 대가리를 네 토막 내어 석쇠 위에 얹어 구우면 온 천지를 진동하는 고소한 맛이 군침을 돌게 한다. 고등어 가슴 부위가 노릿 노릿해지면 가장 잘 구워진 상태가 된다. 제일 실한 가운데 토막은 가장인 아버지의 상에 올라가고 나머지는 온 식구가 먹게 된다.
그냥 놔두면 서로 좋은 놈으로 먹으려고 싸우니까 판사격인 어머니가 나누어주시는데 제일 못한 것을 어머님이 드시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평소보다 맛있는 고등어가 있는데도 평소보다 밥 먹는 속도는 느리다는 것, 그것은 아버지가 숟가락을 놓을 때까지 기다리기 위한 작전이다.
맨밥만 먹어도 맛있을 것을 눈치보며 기다리다 보면 일부러 남겼는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좌우지간 밥과 고등어를 남기고 숟가락을 놓으신 아버지가 숭늉을 드시고 '어흠' 헛기침 한 번 하고 나가시면 우르르 일시에 달려들어 남은 밥과 고기를 맛있게 먹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 숟가락을 놓은 사람은 먹을 자격이 없다.
이런 추억이 담긴 간 고등어를 사와 한 손은 언양에 계신 작은아버지 댁에 드리고 평소 가까이 지내는 이웃집 태성이네, 정민이네, 나나네 집 등에 나누어주었다. 안동 사람이 아닌 아내는 고기를 살려면 갈치나 조기 같은 맛좋은 것을 사올 것이지 하필이면 짜운 간 고등어냐며 반기는 얼굴이 아니었다.
나의 직접 지도로 구워진 간 고등어 맛을 본 아내의 생각이 확 바뀌었음은 물론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도 맛있게 먹었다. 간 고등어는 버릴게 하나도 없는 생선이다. 고등어 대가리도 약간 탈 정도로 바싹 구우면 맛이 그만이다.
그 맛을 고향사람들은 어두일미(魚頭一味)라고 했다. 대가리 하나면 밥 한 그릇을 다 비울 수 있을 정도다. 고등어 뼈도 맛이 있다. 고등어 눈도 맛이 일품이다. 먹고 나면 고등어 갈비뼈 몇 개와 눈알에 들어있던 조그만 구슬 같이 생긴 사기질만 남을 뿐이다.
고등어 대가리의 진가(眞價)를 모르는 아내가 그냥 버리려고 하는 것을 깜짝 놀라 말렸다. 고등어 대가리도 먹을 수 있다는 내 말에 아내는 별 웃기는 말 다 들어보겠다는 태도였다. 역시 나의 손수 지도로 구워진 대가리를 맛본 아내의 감탄하는 얼굴, 요즘은 대가리가 나에게는 돌아오지도 않는다. 괜히 가르쳤군 하는 후회감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기대했던 데로 이웃집에서도 고기 맛이 좋다고 난리가 났다.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가 물었다. "태성이 엄마, 대가리는 어떻게 했어요?" "어떻게 하긴 버렸지." 이미 대가리 맛을 아는 아내는 대경 실색했다. "에구구 어디요?" "쓰레기통에" "쓰레기통 어딨어요." "벌써 쓰레기차가 싣고 갔어, 그런데 왜 그래" "그게 얼마나 맛있는 건데……" 그러나 농담하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정민이네 나나네 집도 모두 버렸다는 말에 빨리 얘기 해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요즈음은 내가 안동에 간다 하면 이웃들 부탁으로 고등어를 무더기로 사오게 되었다. 안동에 있는 어물전 단골 아주머니도 내가 울산에 산다는 걸 알고 더 싸게 주신다.
이젠 공연히 대가리 맛을 알려줘 이웃들도 버리지 않는다. "고양이 주게 대가리는 우리 줘" 했으면 공짜로 생선이 생기는 건데 공연히 알려줘 가지고…… 하는 농담으로 한바탕 웃는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도 간 고등어를 사보고, 울산 중앙시장, 신정시장에서도 사먹어 보았지만 안동의 간 고등어와는 맛의 차이가 엄청났다.
내륙 지방인 안동에는 예로부터 바다 생선이 귀했다. 동해바다와 안동 사이에는 거대한 백두대간이 가로막혀 황장재, 가랫재 등 산을 넘고 내를 건너야만 올 수 있었다. 냉동 시설이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운반할 수 있는 수단은 마른 오징어처럼 말리거나 염장을 하는 거였다.
염장을 한 간 고등어를 달구지에 싣고 영덕을 출발해서 고개가 나오면 다시 지게에 지고 고개를 넘고 다시 평지에선 달구지로 운반하여 지금은 임하댐으로 수몰된 임동을 지나 안동으로 운반했다. 오랜 세월 지나면서 다른 곳에서는 흉내도 못 낼 맛의 노하우가 쌓인 셈이다.
내가 아는 생선도 염장고기 밖에 없다. 드룹, 취나물 등 산나물의 이름은 많이 아는데, 조개도 그냥 조개 하나만 안다. 울산에 와서야 소라, 홍합, 전복, 바지락 등 조개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간 고등어, 간 갈치, 간 꽁치 등 염장 고기가 발달하게 되었다. 그것이 노하우로 쌓인 대표적인 것이 '간 제비'라고도 하는 '간 고등어'이다. 요즈음 먹어도 이렇게 맛있는데 그 당시야 오죽했을까.
얼마 전 퇴근하여 텔레비전을 보는데 '6시 내 고향'이란 프로에서 안동방송의 예쁜 여자 아나운서가 나와 안동의 간 고등어가 안동의 특산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옛날 운반하던 것과 같이 달구지와 지게로 나르는 간 고등어 축제도 열린다는 소식을 전했다. 다른 고장의 사람이 우리 같이 안동 간 고등어에 대한 추억을 이해할 리는 없겠지만 틀림없이 성공하리란 확신이 들었다.
아울러 전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에게 나는 자신 있게 권하고 싶다. "안동 간 고등어 맛을 일단 한번 보시라.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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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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