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생활 청산하는 날
황 보 양
한가한 나날이었다
모처럼 고향에 들러 아버지 산소에도 들리고
텅빈 고향집에 바람이 항상 찾아와 드나들고
이름 모를 잡초들 서로 어울어져 더불어 살아가는데
내 마음 어느 한구석 붙일 곳은 없었다
최종 목적지인 부산으로 발길을 돌려야했다
거제리에서 청학동 순환선 버스를 타고 수없이 돌고 돌다
땅거미가 내리면 부산진역 지하도에서
신문지 한 장에 세상을 덮고 뼈속까지 타들어가는
밤을 지새웠다
새벽녁 몰려드는 인파들 힘찬 발걸음 소리
외면할 수 없어 용두산 공원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내 시야에 희미하게 보여지는 비둘기 가족
조알 몇 톨에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비둘기를 본다
문득 나는 생각에 잠긴다
두고 온 가족 울산 병영 나환자촌에 가서
가축 사료 푸대를 구입해서
하나하나 가지런히 털어 작은 봉투를 만들어
울잔 역전 시장 구멍가게를 누비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죄짓는 일 같아 몸둘 바를 몰랐다
어쩌다 친구를 만나 한끼의 식사를 해결하는 날이면
정말 운수 좋은 날이었다
이력서를 들고 사상공단으로
막노동판 공사장으로 수백번 찾아보았지만
나를 반겨 줄 사람은 없고 쌀쌀한 찬바람만 불었다
더 이상 머물 수도 지체할 수도 없던 날
낮소주 몇 잔에 흔건히 취해
해운대 어느 바닷가 바위틈에 기대어
물 속에 비친 초라하고 까칠한
내 모습을 바라 보다
스르르 잠이 든 사이 내 귓전에 아빠를 부르는
딸아이의 목소리 벌떡 일어나 공중전화를 찾았다
수화기를 들고 벨을 누르는 순간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여보 당신이에요 어서 집으로 돌아와요
현대 중공업 하청에서 당신을 찾아요
비둘기처럼 세상을 박차고 날아갈 듯한 내마음
메말랐던 내 눈물샘이 열리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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