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주머니 속에 든 작은 유리병을 만지작거렸다. 그 속에는 청산가리 캡슐이 3알 들어 있었다. 손바닥에 땀이 끈적거렸다. 개인택시로 갈릴래아 호수로 가는 길 내내 나는 렌터카를 이용하지 않은 것이 몹시 후회스러웠다.직접 렌터카를 몰고 순식간에 갈릴래아 호수를 향해 뛰어들면 모든 문제는 일시에 해결될 수가 있으리라.
택시 안에는 아랍인 기사 아메드와 여행 가이드 황도출 그리고 우리 가족 3명이 타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올리브 나무 숲이 펼쳐졌다. 아랍인 농부가 올리브 나무 그늘 밑에서 피타 빵을 먹고 있었다. 현무암으로 지은 검은 가옥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금껏 이스라엘 다른 지역에서 흔하게 보았던 하얀 색의 콘크리트 건물과는 대조를 이루는 색깔이어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갈릴래아 지방은 동서 방향으로는 험한 산이 없어서 이민족의 침입이 많았어요. 기원전 732년 아시리아 제국의 디글랏빌레셀 왕이 점령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시리아로 강제로 끌고 가고 다른 식민지 사람들을 갈릴래아로 강제로 이주시켰어요. 그 이후로도 갈릴래아는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에집트, 시리아, 로마 등에 정복되어 많은 혼혈족이 생겼고 혼합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이방인의 갈릴래아’라고 말하고 있는 게 다 그런 이유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개방된 지리적인 환경 때문에 자유주의 사상이 만연하여 예수님의 복음을 거부감 없이 받아드릴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갈릴래아를 예수님이 최초 복음전파 장소로 선택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겁니다.”
황도출이 곧 도착할 갈릴래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는 유학생답게 여느 관광가이드보다 현학적인 자였다.
드디어 갈릴래아 호수가 가까워지는구나. 나는 두 눈을 감았다.
나는 왜 이토록 아름다운 이스라엘을 무거운 마음으로 찾아온 것인가. 갑자기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무엇인가가 울컥 치밀어 올라왔다. 어느새 내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가구 사업이 부도가 나자 담보로 잡혔던 가구공장, 집까지 넘어갔지만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갚을 길이 막막했다.
투자자들은 거의 매일 곧 내놓아야 할 집으로 모여들어 발악을 해대었고, 우리 가족은 막다른 궁지에 몰렸다. 죽음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다. 갈릴래아 호수에서는 삶을 마감하리라 나는 다짐하고 다짐하였다.

   “어떤 학자는 유일신교는 사막의 풍토에서 생기고, 다신교는 숲의 풍토에서 생긴다고 하더군요.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전자에 속합니다. 사막은 물을 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느냐 죽느냐가 정해집니다. 그래서 유다교는 지나칠 정도로 율법에 얽매이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김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념에 잠겨 있던 나는 황도출의 갑작스런 질문에 애매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일리가 있네요.”
“유다인들은 ’코셰르’, 즉 정결 음식 규정을 엄격하게 지킵니다. 율법이 금하는 음식은 먹지도 않습니다. 레위기와 신명기에 나오는 그대로 지키는 것이지요. 지중해 연안에서는 뱀장어를 잡으면 어차피 먹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대로 놓아줍니다. 게다가 육류와 우유제품은 함께 먹지도 않고 별도의 접시에 담습니다. 싱크대도 분리되어 있어 따로 씻습니다. ‘신명기’에서 ‘너희는 새끼염소를 제 어미의 젖에 삶지 말아라’는 구절때문이지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식사부터 하고 구경할까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티베리아 해안가의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음식을 다양하게 시켰다. 가이드가 추천하는 갈릴래아 특산물이라는 세인트 피터 피쉬, 즉 “베드로 물고기”도 함께 시켰다.
“생각보다 ‘베드로 물고기’가 맛이 없네요.”
검은 생선의 흰 살을 씹으며 아내가 말했다.
“생선의 요리방법이 한국처럼 다양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별다른 양념 없이 통째로 굽거나 튀기는 두 가지 방법뿐이거든요.”
“그런데 왜 이렇게 유명한지 모르겠군요.”
“신약시대 지중해 지역의 식사 메뉴는 빵, 올리브 기름, 포도주, 생선이었어요. 교통이 불편했기 때문에 생선을 부패 안되게 유통시키기 위해 여러 방법이 사용되었지요. 소금에 절이는 방법, 말리는 방법, 훈제하는 방법, 심지어는 작은 생선 정어리는 젓갈로 만들었습니다. 막달라에서는 소금에 절여 가공한 장어를 로마에까지 수출했어요. 로마에서 훈제생선 한 마리의 가격은 양 백 마리와 같았다고 합니다. 주된 음식이자 비싼 음식이니 유명할 수 밖에 없지요. 당시 갈릴래아 어부들은 비교적 부유했다고 추측이 됩니다. 저축도 많이 했을 겁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생업이던 고기잡이와 가족을 두고 쉽게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깊은 신앙심과 함께 경제적인 여유가 뒷받침이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
생선에 대한 황도출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갈릴래아 어부가 몹시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베드로의 물고기, 메기, 정어리, 잉어들로 배에 가득 실어올 때 어부였던 갈릴래아의 예수님의 제자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베드로의 아내는 수시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터진 그물의 코를 바늘로 집었을 것이다.
“베드로 물고기”는 히브리어로 “암눈”이라고 하는데 “물고기를 돌본다”는 뜻이라고 한다. 어미 물고기가 수정된 알을 입안에 넣은 채 치어가 될 때까지 2,3주 동안 보호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려진 것이다. 간혹 동전을 물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런 모성의 본능 탓일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아내의 입과 아들의 입 안에 청산가리를 넣으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신변정리를 하면서 그동안 냉담 상태였던 나는 마지막 고백성사를 했었다. 신부님은 보속으로 성지순례를 다녀오라고 하였다.
새남터, 미리내, 해미읍성, 배론 성지를 떠올렸지만 선택에 고민을 하다가 이스라엘로 결정하였다. 그동안 사업에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 여행 한번 시켜주지 못하고 지나온 세월이었다. 술 마시고 돈 벌고 놀 줄이나 알았지 가족에 신경을 쓰지 않은 한심한 지난 시간들이었다. 마지막 가족 여행 겸 보속 겸 하여 우리 부부는 자살 여행으로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속내를 모르는 내 아들 순돌이는 모처럼 기가 살아 기뻐하며 말이 많아졌다.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 부부의 마음이 천금같이 무거워졌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도마뱀 몇 마리가 발 앞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 바람에 아내는 화들짝 놀라며 내 품에 안겼다. 나는 아내를 꼬옥 안아주었다.택시기사 아메드가 아주 보기 좋다며 사람 좋게 웃었다. 사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너무 심각한 얼굴로 여행을 하고 있어서 아메드를 본의 아니게 불편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내 아들 순돌이는 도마뱀을 잡으려고 쫓아갔지만 별 소득 없이 돌아왔다.
식당 주변의 호숫가에 커다란 종려나무들이 시원스레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바나나 나무에는 커다란 자주색 꽃이 노란색 바나나 열매와 조화를 이루며 매달려 있었다.
거대한 바다와 같은 갈릴래아 호수는 검푸른 빛을 띄며 눈부시게 찬란한 햇살을 반사하고 있었다. 호수 위에는 갈매기 떼들이 끼룩 끼룩 울며 날아다녔다. 우리는 호수를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해 내려갔다.
물 빠진 모래밭을 자세히 보니 조개가 무척 많았다. 조개들이 허겁지겁 모래 속으로 몸을 숨기는 모습이 보였다. 순돌이는 열심히 모래 속에서 조개를 캐기 시작했다. 아내도 아이 옆에서 조개를 함께 잡으며 깔깔대며 몹시 재미있어 했다. 오늘 저녁에는 조개구이를 해먹어야겠다며 아내는 비닐주머니에 조개를 가득 담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호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유리병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갈릴래아 호수에서 죽으려는 생각은 변경해야 할 것 같다. 저렇게 아내와 아들이 즐거워 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자살을 강요하는 것은 도무지 못할 짓이다. 그러나, 끝내 죽을 장소를 찾지 못하면 죽음의 바다 사해에서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사해는 더 이상 자살을 미룰 수 없는 마지막 장소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내와 그렇게 다짐을 해두었었다.
“귀여운 아드님을 두셨네요.”
황도출이 조개를 줍는 순돌을 보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직은 버릇없는 개구장입니다.”
“조개를 줍지 않으니까 좀 지루하시지요? 저기 종려나무 밑으로 가서 기다립시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해드릴께요.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성서에도 언급이 별로 없지요? 저는 몹시 궁금하더라구요. ”
하긴 그랬다. 종려나무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자렛이란 시골에서 태어나 변변한 교육을 받지 못했을 예수님께서 놀라울 정도로 비유법을 잘 사용하시지 않습니까? 좀 이해가 안 되지 않아요?”
“그렇긴 하네요. 답을 알고 있습니까?”
“상상력으로 어느 정도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유다인의 왕 헤로데는 자신의 왕국을 4등분하여 자신의 세 아들로 하여금 다스리도록 했어요. 물론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승인을 얻었지요. 갈릴래아 분봉왕으로 임명된 아들이 ‘헤로데 안티파스’입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갈릴래아 호수 서쪽 찌포리를 갈릴래아 왕국의 수도로 정했어요. 나자렛에서 북동 쪽으로 6킬로미터에 찌포리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찌포리는 ‘새’라는 뜻입니다. 높은 언덕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모습과도 같다는 겁니다. 로마식 대형 극장을 중심으로 거대한 왕궁을 짓는 건설 현장에 시골뜨기 나자렛 주민들도 투입이 되었을 겁니다. 목수였던 요셉도 당연히 몇 년동안 찌포리 건설 현장에서 일했을 것이고 예수님도 어릴 때부터 일을 배우기 위해 따라다녔을 겁니다. 그 때 극장에서 연극도 처음으로 구경하셨을 겁니다. 그리하여 위선자란 의미로 ‘연극배우 같은 자들아’하고 꾸짖는 말씀은 그런 기억으로부터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말하자면 대도시에 유학을 한 셈이지요. 나중에 티베리아스에 로마식 도시를 새로 건설하여 찌포리로부터 티베리아스로 수도를 옮기게 됩니다. 티베리아스는 오늘날 티베리아입니다. 우리가 점심을 먹은 바로 여기이지요.”
“왜 수도를 옮긴 겁니까?”
“갈릴래아 호수의 세금으로서의 중요성 때문일 겁니다. 가버나움은 당시 큰 항구였어요. 올리브 기름, 생선을 수출하는 중요한 항구였기 때문에 세관과 로마군 병영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지중해안을 거쳐 에집트에 이르는 ‘비아 마리스’, 즉 해안도로와도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여서 출입국세 수입도 짭짤했어요. 베드로가 고향이었던 뱃새다를 떠나 가버나움으로 옮긴 이유도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많아요. 막달라는 당시에는 헬라어로 ‘타리케아’라고 불렸는데 ‘생선 가공공장’이란 뜻입니다. 막달라와 가버나움은 헤로데 안티파스의 관할이었지만, 뱃새다는 또 다른 분봉왕 ‘헤로데 필립보’의 관할이었어요. 그러니 뱃새다의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를 가공하려면 가버나움 세관에서 막대한 통관세를 물고 막달라의 가공공장으로 보내야했습니다. 그래서 어업사업장을 가버나움으로 옮기게 된 것이지요. 막달라와는 같은 영토이므로 세금이 훨씬 적어지니까요. 가버나움 근처에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행하신 언덕이 있는데 그 위에 팔복교회가 서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이라 예수님의 갈릴래아 전도의 근거지이기도 했거든요.”
나는 왜 베드로처럼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대처하며 살지 못했을까.
여관에 침대와 대형 벽거울을 한 세트로 납품하면서 정말 대박을 터뜨려 엄청난 돈을 끌어 모았었다. 일본에서 유행한다는 정보를 듣고 가구 생산은 뒷전으로 하고 침대와 대형 벽거울 세트 생산에 매진했던 것이다. 쉽게 번 돈을 매일밤 유흥비로 흥청망청 정말 여한없이 썼었다. 지나고 보면 얼마나 한심한 일이었던가. 그러다가 많은 경쟁사들이 비슷한 제품을 생산해내면서 판로는 점점 줄어들었다. 판매가를 낮추다 보니 원가 이하까지 내려갔고 결국에는 빚만 잔뜩 짊어진 채 가구공장은 부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칼로 뱃가죽을 갈라 내장을 꺼내버릴까? 한쪽 다리를 잘라줄까? 2주일내로 30억을 갚지 않으면 네 가족들에게 두 가지 중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알아서 혀!”
며칠 전 사채업자가 보낸 조직폭력배들에 의해 납치되어 여관에서 하루종일 고문을 당하다가 내 집 앞에 내동댕이쳐졌을 때 공포감으로 인해 대문도 못 찾을 정도로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조개들을 커다란 비닐봉지 두 개에 가득 담고 나서야 아내와 아들은 행복한 얼굴로 종려나무 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우리에게 왔다.
비닐봉지들을 택시 뒷트렁크에 실고는 가버나움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성서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고 하신 예수님의 비유가 왜 나왔는지 이해가 되시지요?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선과 소금은 다른 어느 지방보다도 갈릴래아 어부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현지인들의 가슴에 와 닿는 비유를 하셨으리라.
마지막 남은 돈으로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떠나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었다.그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천 받는 여행 가이드 황도출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황도출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자신에게 전속된 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싸고 편리하다고 하여 그렇게 결정을 하였다. 황도출을 선택한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성서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지요? 바로 ‘산상 설교’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언덕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위에 1930년대에 세워진 팔각형의 아름다운 팔복교회가 있는데 그 곳에서 묵상을 하면 많은 가르침을 얻는다고 합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이 못난 가장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약간의 기대가 싹트기 시작했다.

  팔복교회의 한쪽 공간에 묵상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벽에 흑백 사진들이 많이 걸려 있었다. 황도출은 마음에 와 닿는 사진을 선택하여 그 앞에서 잠시 묵상을 해보라고 하였다. 우리 가족은 사진들을 훑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끄는 흑백 사진을 발견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허수아비 사진이었다. 나는 사진을 한참 보고 나서 두 눈을 감고 묵상을 했다.
흙먼지로 뒤덮힌 채 뜨거운 땡볕에 외로이 서 있는 허수아비는 헌 등산모를 쓰고 낡은 외투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한때는 누군가에게 소중했던 외투였을 것이다. 계절이 바뀌면 깨끗하게 드라이클리닝을 한 후 옷장에 보관되던 외투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누추한 모습으로 논에서 색이 바래가는 신세가 되었구나. 낡은 등산모도 여행의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단풍놀이 추억을 되씹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낡은 외투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부자, 가난뱅이 모두 종말은 저런 모습이 아닐까. 왜 나는 이제서야 깨닫게 되는 것인가.
묵상을 계속하자 이런 생각도 떠올랐다.
어쩌면 낡은 외투는 이제서야 남을 위해 봉사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살다가 이제는 농부를 위해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지난 내 인생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나만을 위해 살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청산가리 캡슐이 진정 우리 가족 전체를 위한 해결책인가 아니면 잘못된 선택인가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러자 허수아비의 외투 안에 드러난 나무 뼈대가 보였다. 바로 십자가였다. 뼈대는 십자가 모양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저런 누추한 모습으로 내 인생에 여러 차례 나타났을런지도 모른다. 아둔한 나는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황도출은 왜 여기로 데리고 와서 우리 가족을 묵상하게 했을까. 아니, 주님은 황도출을 통해 우리 가족을 이곳으로 이끄셨는지도 모른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의 두 눈에서 주루룩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내는 어떤 묵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내의 눈물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눈물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나는 묵상을 계속했다. 갑자기 옷걸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낡은 외투가 걸쳐진 나무 뼈대와 세탁소의 옷들이 걸쳐진 옷걸이의 용도 상의 공통점때문인지도 모른다.
주인이 퇴근한 세탁소에 옷걸이들이 떠들고 있었다. 값비싼 밍크코트를 걸친 옷걸이가 으스대며 잘난 척을 하고 있었다. 다른 옷걸이들이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값싼 와이셔츠가 걸려 있는 옷걸이는 기가 죽어 있었다. 밍크코트 옷걸이는 그런 옷걸이들 앞에서 더욱 기고만장하였다. 그 때 어디에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려 왔다.
“옷걸이야, 옷걸이야. 너는 옷걸이임을 잊지 말아라. 네가 걸친 옷은 잠시 걸친 것일 뿐 너는 한낱 옷걸이에 지나지않음을 잊지 말아라.”
가구 사업이 잘될 때 나는 얼마나 기고만장한 옷걸이였던가. 그럴 때 왜 주위의 다른 옷걸이들에게 관심을 보여주지 못하였던가. 난 감았던 눈을 떴다. 어느새 아내는 눈물 흔적을 말끔히 지워 버렸다. 남편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마음이 읽혀 내 마음이 무거웠다.

  “어떤 사진으로 묵상하셨습니까?”
교회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황도출이 우리 가족이 묵상을 마치고 나오자 궁금한 듯 물었다.
“허수아비 사진이 있더군요.”
“혹시 십자가를 발견하셨나요?”
“처음에는 발견 못했는데 묵상 중에 눈에 보이더군요.”
황도출이 택시에 타라고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가 택시에 오르자 택시는 달리기 시작했다.
“신약시대에 십자가 무게가 얼마나 되었을 것 같습니까?”
“글쎄요…… “
“70 킬로 정도 무게입니다. ‘비아 돌로로사’는 ‘고난의 길’이란 뜻인데 흔히 ‘십자가의 길’이라고 합니다. 골고다 처형장으로 가시는 길에 제3처가 바로 십자가의 무게를 못 이겨 예수님이 처음 쓰러지신 지점 아닙니까? 십자가형은 기원전 800년경에 신아시리아 시대 부조에도 발견되는 형벌입니다. 전쟁포로를 죽여서 나무에 매달았다고 합니다. 페르시아와 페니키아를 거쳐 로마에까지 전파된 가장 잔인한 사형방법이지요. 사형수가 죽을 때까지 최대한 길게 고통을 느끼게 하고 식민지 백성들의 반란을 막는 전시효과도 노리는 비인간적인 형벌이지요.”
“조선시대 왕이 내리는 사약과도 일맥상통한 면이 있군요. 오장육부가 뒤틀리게 심한 고통을 주면서 죽는 데 오래 걸리게 하는 것이 좋은 사약이라고 하더군요.”
“잔인성에 공통점이 있네요. 지금 우리는 마사다로 갑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지은 천연의 요새 마사다 정상에서는 사해가 잘 보이지요. 마사다는 이스라엘의 자존심이기도 합니다. 제 1차 유다전쟁의 최후의 저항지이지요. 원래부터 있던 성을 30년에 걸친 공사로 헤로데 왕이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었어요. 유다인의 반란에도 대비하고 별장으로 쓸 목적으로 만든 화려한 겨울 궁전이기도 합니다. 총 저수량이 4만 톤이나 되는 거대한 물 탱크를 12개나 만들어 지하수도와 연결하여 우기에만 하천이 되는 와디의 물을 저수했다고 합니다. 각 물 탱크에 급수하기 위해 30개의 돌계단을 오르내려야 할 정도로 거대한 저수조였어요. 그래서 마사다 정상에는 샘이 없었지만 목욕탕, 사우나, 수영장에 사시사철 물을 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요새 안에는 화려한 왕궁 2채, 식량 창고, 공격 시설물, 병기고, 방어용 탑은 물론이고 양들도 키웠다고 합니다. 정상은 면적이 워낙 넓은 평지였으니까요.”
“사우나까지 있었다니 놀랍군요.”
“로마제국의 기술력이지요. 마사다의 사우나 시설은 니켈, 청동, 황토를 사용하여 건강에 좋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
차창 밖으로 멀리 평지 한 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절벽이 보였다. 난 단박에 마사다임을 알아 차렸다. 마사다의 동쪽에는 사해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마사다의 서쪽에 유다 광야가 있다고 하니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 바로 유다 광야일 것이다.
“헤로데 가문에 의한 이스라엘 위임 통치가 끝나고, 유다인이 아닌 로마인 총독에 의한 직접 통치로 바뀌면서 유다 백성들에 대한 과도한 수탈이 행해졌어요. 심지어는 겟시어스 플로루스 총독이 성전 재산을 수탈하는 사건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시내를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유다인을 사냥하듯이 살해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분노에 찬 유다의 과격파 열심당이 마사다 요새를 점령하여 로마수비대를 전멸시키면서 제 1차 유다전쟁은 시작됩니다. 파죽지세로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예루살렘의 로마군도 항복시켰어요. 그러자 로마 황제 네로는 유다 반란의 진압을 명합니다. 결국 반란은 진압이 됩니다. 로마군은 반란 의지를 완전히 꺾기 위해 예루살렘 전체를 초토화시켜 버립니다. 예루살렘의 서쪽 성벽, 일명 통곡의 벽을 제외하고는 모든 성벽이 그때 파괴되어 버렸어요. 반란의 잔당들은 각지에서 저항을 계속했는데 최후의 항전을 벌인 곳이 바로 마사다였어요.”

  드디어 마사다 절벽 아래에 도착했다.
우리는 택시에서 내렸다.
“사해에서 마사다로 올라가는 길은 뱀길이라고 합니다. 몹시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좁고 길고 험한 길입니다. 그리고 유다 광야로부터 로마 군단이 공격하기 위해 만든 인공언덕을 타고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로마장군 플라비우스 실바가 이끈 제 10군단 병력이 마사다 요새를 향하여 토성을 쌓아올리면서 공격해간 흔적이지요. 만 명 이상 되는 로마 대병력이 높이가 점점 비슷해져가는 토성들을 쌓으면서 올라오는 것을 보며 천 명 정도의 유다인 반란군들이 느꼈을 절박함을 생각해보세요. 마침내 로마군은 토성 위에 철탑을 세우고 마사다 성 내부를 훤히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로마군은 돌대포를 쏘며 공격을 해대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유다인 포로와 마사다 바깥에서 사로잡은 가족을 돌대포에 실어 마사다 요새 안으로 날려 보냈다고 합니다. 성안으로 떨어져 즉사하는 가족이나 친척들의 시체를 매일 같이 보아야 하는 마사다 저항군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나는 갑자기 가슴 속 어디에선가 아려왔다.
유다인 가족을 돌대포에 실어 쏘아대는 로마군과 내 가족에게 청산가리를 먹이려는 나의 행동이 너무나도 흡사하게 느껴졌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갑시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발 아래에 마사다 절벽과 로마군이 쌓아올린 토성이 까마득하게 펼쳐졌다.
정상에는 화려했던 옛 모습은 사라지고 허물어진 폐허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2,3년간이나 마사다에서 저항했어요. 그러나 한쪽 성벽이 파괴되자 더 이상 로마군의 공격을 막을 수 없는 처절한 상황이 되었어요. 그러자 함락되기 전날밤 지도자 ‘엘리에제르 벤 야이르’가 호소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명예롭게 죽을 수 있는 자유가 남아 있다. 로마군은 우리를 생포하여 욕보이려 한다. 우리는 그런 승리를 로마군에게 허용해서는 안된다.’라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각 가족의 가장들이 자신의 가족들을 죽인 다음 제비 뽑기를 하여 10명의 남자를 선출하여 이 사람들이 나머지 남자들을 살해하게 하였어요. 그 10명 중 다시 제비 뽑기로 1명을 뽑아 그 사람이 나머지 9명을 살해하고 식량창고를 제외한 모든 건물을 태워버린 후 자신은 자살했다고 합니다. 로마군들이 마사다 요새에 마침내 들어왔을 때는 964명의 열심당원 전원이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늙은 부인 둘과 아이 다섯 명이 지하동굴에 숨어 있다가 발각되어 마사다 최후상황이 전해지게 되었어요. 식량창고를 남겨둔 이유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었다는 식의 거짓말을 로마군이 퍼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랍니다. 이스라엘의 자존심을 보여준 것이지요. 그리고 유다인 이름이 적혀 있는 도자기 조각이 발굴되었는데 제비 뽑기에 사용되었으리라 추측됩니다.”
로마제국을 상대로 2,3년간 저항했던 마사다 저항군을 생각하니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는 얼마나 저항하며 살았는가. 저항다운 저항도 못한 채 어려움이 닥쳤을 때 쉽게 좌절해버리지 않았는가.
절벽 아래 사해로부터 바람이 불어 오고 있었다.
“사해를 죽음의 바다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는 ‘아라바 바다’ 혹은 ‘소금의 바다’라고 불렸어요. 물고기만 살지 않을 뿐 사해의 물은 피부병과 류머티스에도 효력이 있는, 말하자면 약이 되는 물입니다. 옛날에는 소금과 역청이 중요한 자원이었어요. 역청 덩어리도 사해 수면에 떠오릅니다. 신약 시대에는 나바데아인이 에집트에 시체 방부용으로 역청을 수출하기도 했어요.”
이제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에 다다른 셈이다. 황도출은 죽음의 바다 사해를 바라보며 생명의 바다, 생산의 바다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 진흙은 양질이어서 머드팩의 원료로 수출이 됩니다. 한국 서해 갯펄의 진흙은 화장품 원료로 쓸 수 없지만 말입니다.”
갑자기 TV방송에서 보았던 국내 모 화장품 사장의 일대기가 떠올랐다.
그 화장품 회사는 사해 진흙을 수입하여 국산 머드팩의 원료로 사용한다는 것이 기억이 났던 것이다.
전문경영인으로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어느날 부도 직전에 있는 그룹사의 사장으로 발령 받는다. 망해가는 회사에 보내 책임지고 함께 침몰하라는 회장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용도폐기를 당하는 셈인가. 월급쟁이로써의 비애를 느끼며 잠시 그는 방황한다. 그러나 이렇게 결말을 내리기에는 자신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발령받은 회사로 내려간다. 그는 회사에 남은 돈을 전직원에게 보너스로 나누어 주고 “할 수 있다”는 소리를 아침마다 내지르게 한다. 일심동체 의식을 불어넣고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나서 그는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난다. 그는 한 때 몸담았던 화장품 회사에서 연구하다 실패한 머드팩 개발을 계속한다. 마침내 머드팩 국산화에 성공하고 외국인의 투자를 유치하여 새로운 화장품 회사를 성공적으로 창업한다.
황도출을 이스라엘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어디에 가장 가보고 싶냐고 물었었다. 사해라고 대답하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다면 마지막날에 갑시다, 라고 했다. 황도출은 왜 마사다 정상에서 사해를 보여주는 것일까. 사해로 가는 길은 많을 텐데 왜 그는 폐허만 남은 마사다에 올라와서 사해를 보여주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다. 그것은 호주머니 속의 유리병을 꺼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유리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청산가리 캡슐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다음에 해야 할 일도 알고 있었다. 마사다 정상에 떨어진 청산가리 캡슐들을 발로 짓밟기 시작했다. 내 모습을 바라보며 아내가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