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수(Cross-Stitching)
김선희
1
제인은 우리가 캐나다의 이 도시로 이사온 후 처음으로 사귄 이웃이었다. 한 사나흘 지났을까, 서울에서 부쳤던 짐이 우리의 새 집에 도착해 짐정리를 대충 마치고 나자, 이제 살게 될 동네를 둘러볼 만한 여유가 조금 생겼다. 나는 줄곧 굽어있던 허리도 펼 겸 제방 정리에 한창인 민아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왔다. 서울의 가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스산한 여느 9월의 날씨였다. 사위는 아직 네 시도 되지 않았건만 벌써 옅은 어둠이 서서히 그 발을 내려놓으려 하고 있었다. 이곳의 겨울은 이렇게 서둘러 찾아온 어둠과 더불어 시작될 터였다. 뺨에 닿는 찬 공기를 양손으로 두드리며 천천히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팔을 앞뒤로 세차게 흔들어 보기도 하고 목도 돌려보면서 이곳의 공기를 흠뻑 들여 마셨다. 민아는 그런 내가 신기한 듯 씽긋 웃었다.
노선버스가 지나다니는 길가 집이었지만, 길거리에서 사람구경하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간혹 개를 데리고 지나가는 운동복 차림의 노인만 눈에 뜨일 뿐 도로를 스쳐지나가는 자동차마저도 흔치 않았다. 차가 다니는 길을 사이에 두고 일자로 늘어선 단층 짜리 집들의 아담한 흰색 나무 담장들은 굳이 담의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마당의 경계를 알려주는 양 낮게 둘러 있어 마당 안이 그대로 훤히 들여다 보였다. 눕혀진 자전거와 잔디 위에 널부러진 고무호스들, 사람 사는 모양은 어디나 다 비슷한 모양이었다. 인도를 따라 두 블록 정도 걸었을까. 그때, 나무로 외관을 장식한 옅은 베이지색의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그다지 눈에 뜨이는 집은 아니었지만, 마치 아무나 들어와도 좋다는 듯이 반쯤 열려진 출입문이 왠지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게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집의 현관문을 바라보자 ‘웰컴(welcome)’이라고 적힌 도화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물감으로 칠한 듯한 그 도화지는 이미 붙여놓은 뒤 많은 시간이 흐른 듯 네 귀퉁이가 각기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비도 들이쳤는지 얼룩도 보였다. 그 순간 ‘딸깍’하고 마침 그 집의 현관등에 불이 들어왔다. 곧 이어 현관 옆의 커다란 발코니 창에 네온의 푸른등도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듯 함께 켜졌다.
“Cross-stitch & Tablecloths”
집주인이 집에서 십자수를 놓으며 직접 그것을 팔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문득 전에 없던 호기심이 일어 민아의 손을 잡고 열려진 문안으로 들어섰다. 출입문에서 현관문까지 마당에 박아놓은 둥그런 나무토막을 지나 그 집의 현관문 앞에 다가섰다. 천천히 현관손잡이를 돌렸다. ‘삐그덕’, 잘 맞지 않는 경칩에서 나는 쇳소리가 들렸다.
“Hello?”
안으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짧고 의례적인, 어느 상점에서나 들을 수 있는 주인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외보다는 아직 실내가 어두워 금방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주인도 찾고 또 이곳의 상품들은 어떤 것일까를 살필 겸 이러저리 둘러보다가 나는 현관 밖 도화지에서 느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실내가 상당히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군인들의 사물함처럼 흐트러짐도 빈틈도 없는 습관적인 정련함이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2인용 소파가 낮은 탁자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놓여져 있는 거실, 그 옆에 부엌의 미닫이문이 달린 평범하고 소박한 구조였다. 다만, 탁자를 덮어둔 탁자보며 소파커버등 집안의 모든 천들 위에 아기자기한 작은 무늬들이 아주 정교하게 십자수로 가득 차있다는 것, 그것이 여느 가정집과 다르다면 달랐다. 벽걸이 시계에서 수건, 냅킨, 현관의 발판은 말할 것도 없이 눈에 보이는 집안의 모든 가재도구들 위에 그야말로 빼곡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나는 마치 쇼핑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느긋하게 집안 이곳저곳을 무심하게 기웃거렸다. 십자수 자체가 원래 그러하듯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았다. 빅토리아풍의 올드 컨추리 로즈문양은 그런대로 마음에 들었지만 오히려 내게는 그 모든 것들이 솔직히 궁상스러워 보였다. 만약 엄마가 지금 이것을 보았다면 아마 내 팔을 잡아당기며 얼른 밖으로 나가자고 나를 채근했을 것이다. 엄마에게 유난히 손재주가 남다른 여자는 피해가야 할 돌부리였다. 손재주란 팔자도 사나워 옆의 사람까지 꼭 잡고 넘어진다고 했다.
천천히 발걸음을 발코니 쪽으로 옮기려할 때였다. 네온등이 걸린 그 발코니창 아래 자그마한 1인용 소파가 있었다. 현관을 들어설 때, 아마도 너무 환한 네온등에 시선을 빼앗겨 바로 그 아래 푸른빛이 도는 검정색의 원피스를 입은 그녀를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제인, 나는 그때 제인을 처음 보았다. 그녀는 그 소파 안에 몸을 깊숙이 묻고 손을 부지런히 놀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고른 이를 환하게 드러내며 우리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순간, 나는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녀가 한국사람이 아닌 핏줄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군살붙을 여유 하나 없는 반지빠른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엄마를 생각했다. 고개를 들어 나를 살짝 올려보던 순간에도 수틀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버릇까지 그녀는 영락없는 엄마의 옛모습 그대로였다. 그녀의 얼굴 반 넘게 차지한 돋보기 안경이 꽤 무거운 듯 걸쳐있었지만 오뚝하고 날렵한 콧날과 갸름한 얼굴선은 그녀가 젊은 날 꽤 미인이었을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려 주었다.
엄마는 미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뭐랄까. 그 스며나는 이미지는 동질적이지만 결코 같은 수 없는 이중적인 얼굴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즈음 나는 아직도 엄마를 내 안에서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살아있다면, 그래서 아직 그곳에 있다면 돈뭉치를 들고 무작정 공항에 나가 서울역 앞에서 버스번호를 묻듯 캐나다로 가려면 어느 비행기를 타야 되느냐고 길가는 사람의 발목을 잡고 있을 엄마. 민아가 다가와 조그맣게 속삭였다.
“저... 아..줌마...., 외할..머니... 많..이 닮...았지?”
2
그 날 이후, 나는 제인을 잊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겠다. 그녀를 일부러 잊으려 한 것도 그녀가 내게 잊혀진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 날 이후, 나는 제인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 그녀에 대해서 다시 떠올릴 일이 만무했을 뿐이었다. 10월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이른 오후, 나는 월마트에서 일주일치 부식거리의 장을 본 다음, 리쿼 스토어에 들러 맥주나 사갈까 하는 생각에 차를 인도에 바짝 당겨 주차하고 상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곳의 상점들은 모두 서너 시만 되면 문을 닫았다. 자정이 넘도록 불 밝혀두던 서울의 상점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언젠가 맥주를 사러 돌아다니다 고작 편의점에서 루트비어(root beer)를 구한 적이 있었다.
문득, 전신주에 매달린 A4 용지만한 크기의 백지에 ‘집에서 1000불 수입 가능’이란 선전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신문 한 귀퉁이에서라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글귀였으니까. 그러나, 내가 읽은 그 광고카피가 영어가 아닌 한글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낸 것은 20여 분이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였다. 그 글이 영어가 아닌 한글이었다는 것과 이곳이 서울에서 비행기로 10시간이나 떨어진 곳이란 걸 깨달은 다음, 나는 마치 방금 지나쳐온 길이라도 되는 양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가능한 한국인이 살지 않는 도시를 고르고 골랐지만, 민아의 학교에도 벌써 한국학생의 수가 부쩍 늘어 10퍼센트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곧 한국 전학생을 전담하여 돌봐주는 한국인 교사를 채용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한국이민자의 수가 이곳 전체 이민자 수의 여덟 번째라니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때, 이상하게도 제인이 떠올랐다. 집에서 1000불의 수입이 가능한 일이란 어떤 것이 있을까를 궁리하다 아마도 내 생각이 제인의 십자수에 미쳤는지도 몰랐다. 1000불은 큰 돈이었다. 나 역시 한 푼이 아쉬운 입장이었기에 그 전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제인의 집에 들러가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녀의 집 앞 네온 빛은 아직 불을 밝히고 있지 않았다. 아마 불 밝힐 시간도 놓친 채 제인은 십자수에 푹 빠져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눈이 어두워 바늘땀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면, 그제야 실내등의 스위치를 찾겠지. 그리고 나서 집밖의 네온등을 생각해 낼 것이다. 나는 그녀의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월마트에서 산 유리병에 담긴 과일쥬스를 하나 꺼냈다. 반쯤 열려진 그녀의 출입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마치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 순간에 또 네온 간판에 불이 들어왔다. 센서라도 있는 것일까? 현관문의 도화지는 여전히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나 하려고 들렀어요.”
그날, 제인의 날 반기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녀의 큰 입은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외국생활을 한 사람이 그러하듯 그녀에게서 필리핀이란 그녀의 국적냄새를 맡을 수는 없었다. 그 나라 사람 특유의 갈색피부는 햇빛이 적은 이곳에서 모두 탈색되어 버린 것 같았으며 여느 필리핀여인들의 넓적한 콧망울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병약한 듯 희어 보이는 피부와 단조로운 주름,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이런 것들이 그녀를 60이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게 했던 것 같다. 세상의 일로부터 한 걸음쯤 뒤로 물러나 자신의 인생조차도 남의 일처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은 마치 수도자의 것 같았다. 두발은 이 곳에 있으나, 곧 갈 곳만을 너무 그리워하여 도저히 이 땅에 정붙이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처럼. 사람이 몹시도 고팠던 그녀의 외로움 덕분에 나는 차까지 얻어 마시며 꽤 오랜 시간을 그녀와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나는 별 필요가 없음을 잘 알면서도 식탁보 위에 길게 덧대어 걸치는 러너를 하나 샀다. 그것은 그녀의 상품 중 가장 단조로운 디자인이었는데, 그나마 천 위의 십자수가 가장 적었기에 내 손이 닿았던 것 같다. 돈을 받지 않겠다는 그녀에게 억지로 10불짜리 지폐를 건네자, 그녀는 싱긋 웃으며 한 달만에 판 상품이라고 계면쩍게 말했다. 이런 주택가에서 제인의 수예품을 사러오는 사람은 당연히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인은 정말 납품날짜에 맞추어서 자신이 수놓은 것들을 어디 상점에라도 대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날 역시,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제인의 십자수를 놓던 투박한 손은 한 번도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다. 자칫 남에게 무례하게 비춰질 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익히 보아왔던 엄마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인지 나는 그녀의 행동이 오히려 살갑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렇게 바쁘게 손을 놀리는 와중에도 그녀는 가끔씩 창 밖에 눈길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누구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아니에요. 그저 습관이에요.”
난 그제서 왜 내 발길이 이 곳에 닿을 때마다 현관등에 불이 들어왔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실제로 스위치는 그녀의 손이 닿을만한 위치에 달려 있었다.
3
민아의 스쿨버스가 도착할 시간이 거지반 되어 어깨에 숄을 대충 걸치고 집 앞으로 나갔다. 이제 한달 반, 걱정했던 것 보다 민아는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서울보다 더 나은 교육환경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보다는 남편의 말처럼 민아가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계속 눌러대고 있었다. 마지막 소화물을 부치고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까지 나는 민아의 야윈 뺨을 계속 훔쳐 보았다.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에 민아는 벌써부터 한국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텔레비전을 보고 혼자 한글을 깨우치고 곧잘 셈도 잘하던 아이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민아는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말을 심하게 더듬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민아에게 자폐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을 때 세상은 내게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란 인간은 딸조차도 피해가야 할 돌부리인 것만 같았다.
간간이 시내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들만 도로 위를 질주해 갈 뿐 거리는 여느 때처럼 한산했다. 빈 길을 휑하니 지나가는 차가 뿌려놓은 찬바람에 어깨에 두른 숄 자락이 나풀거렸다. 차가 지나쳐온 길을 좇아 길이 시작되는 저 아래쯤, 마지막 해 끝자락을 이고 있는 마을을 바라보았다. 빨갛고 파란 지붕을 훨씬 넘게 자라 오른 나무들은 시원스레 하늘을 향해 뻗어 이곳의 멋진 이국적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공기가 맑아 유난히 곱게 물든 단풍이 그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채색했다. 로키산맥이 겨우 내내 찬바람을 막아주어 이 도시의 겨울은 로키산맥 건너편 캘거리보다 훨씬 따뜻했다. 그래서인지 많은 캐나다사람들이 정년을 채우고 나면 남은 여생을 따뜻한 곳에서 보내기 위해 이곳으로 온다고 했다. 노인들로 넘쳐나는 이 마을 역시 가끔 쓰레기를 치워가는 청소차가 멈추었다 가거나, 조간신문과 우유를 현관 앞에 떨구는 소리만 들릴 뿐 거리는 늘 조용했다. 이따금씩 정원을 손질하러 나오는 건너편 이탈리아인 할아버지를 내다보며 반쯤 겨운 눈으로 오후를 보내는 것이 나의 생활이었다. 어디부터 잡아 당겨야 잘 풀려 나올까. 탁자 위에 켜둔 랩탑의 명멸하는 커서를 바라보며 나는 엉킨 실타래의 실마리를 찾아내려 그 즈음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계집애가 어떻게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사니? 10년도 더 된 무거운 랩탑을 두터운 수건에 둘둘 말아 겨울 옷 사이에 끼워 넣는 내 모습이 엄마에게는 마치 시나리오를 쓰러 가는 사람처럼 보였나 보았다. 아주 오래 전, 지금은 사라져 그 명맥도 유지되지 않는 시나리오공모에 당선된 적이 있었다. 물론 내 시나리오는 영화화되지는 못했다.
어느새 스쿨버스가 도착했는지 서너 명의 아이들을 길가에 요란스레 뿌려놓았다. 시끄럽게 재잘대던 아이들이 각기 제 둥지를 찾아 흩어지고 버스가 가던 길을 다시 지나쳐갔건만 민아의 얼굴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아득했다. 불행은 늘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허를 치며 다가오지만 아직은 불행조차도 이곳에서 너무 이른 일만 같았다. 지나간 버스를 향해 멍청히 서 있을 때, 한줄기 서늘한 찬바람과 함께 내 앞에 잿빛의 도요타 승용차가 다가와 섰다. 검은 머리에 회색가죽점퍼를 입은 외국인 남자가 창문을 내리고 내게 손을 들어 보였다.
“Hi?”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의 차 오른쪽 옆문이 열리더니 민아가 내렸다. 그 남자 역시 뒤따라 내렸다. 그는 내게 민아의 엄마냐고 물었다.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벙어리처럼 고개만 끄덕여 댔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백인은 아니었지만 딱히 동양인도 아니었으며, 남미 쪽이나 중동을 생각나게 하는 얼굴이었다. 갈색의 눈동자 아래 가늘게 그어진 작은 부채살같은 옅은 주름은 그의 나이가 아주 적지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게 했다. 말을 시작한 것은 민아였다.
민아는 내게 그의 이름은 마이크이며, 그가 자신의 학교 선생님이란 것과 우리 집과 불과 10여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편백나무로 울타리를 두른 집에 산다는 것을 서툰 영어로 천천히 말해 주었다. 민아가 오랜만에 말하는 꽤 긴 문장이었다. 그때 민아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도 여기에서 또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으리라 짐작했을 것이다. 민아는 그새 마이크와 많이 친해진 모양이었다. 마이크가 건넨 손의 감촉이 꽤 따뜻하다는 것과 동시에 오랫동안 길가에 서 있느라 내 손이 많이 차가워져 있었다는 사실도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내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이렇게 해서 우리에겐 두 번째의 새로운 이웃이 생긴 셈이었다.
4
햇살이 옅게 유리창을 비추는 정오 무렵, 나는 거실 한 켠에 세워 둔 러닝머신으로 다가갔다. 이곳에 공원은 지천으로 널려있어 운동할 곳은 아주 많았지만 1500불이나 들여 러닝머신을 사들이는 고집을 부렸다. 나는 육체의 힘이라도 빌려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돈을 들이면 그 각오가 더 굳을 듯 했다. 돈은 여전히 내게 커다란 우상이었으니까.
비자가 나오자마자,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고 출국일이 정해지기도 전에 일찌감치 선박회사에 이삿짐을 넘겨버렸다. 계집애가 어떻게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사니? 엄마는 이민을 준비하며 여기저기 서류를 준비하느라 종종거리는 내게 이따금씩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엄마의 그 말이 너무 낯설어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 번도 엄마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던 말이었다. 내게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와 달리 운신의 폭이 좁아야한다고 가르쳤던 사람이 아니었다. 여자도 똑똑하면 대학에 가야한다고 말했었고, 나를 오빠들 틈에서 유별나게 혹은 더 소홀하게 대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똑같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남자직원들보다 두 배나 되는 시간을 채우게 했던 차별을 위로해 주며 내 무너진 자존심을 가장 많이 북돋아 주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의 결혼이 어긋나기 시작하자, 엄마는 돌연 시어머니보다 더 아들 낳기를 바랐고, 내게 세상의 이치라는 것과, 순리, 그리고 체념이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애썼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기에 나 역시 그럴 때마다 자꾸 힘 빠진 무릎이 꺽였다.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처럼,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사회가 나로부터 원한 것이었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을 타인으로부터 받아야 한다면 나는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러나, 남편의 가족들에게 며느리였던 나는 사회의 구성원이 아니었다. 내 어미에게도 해본 적 없는 일들을 그들은 아주 당연하게, 그리고 아무런 대가도 없이 누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이 단지 내게 주어진 ‘도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득, 집밖에서 무언가가 세차게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나, 도무지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 집은 아직도 남의 것 같았다. 반사적으로 러닝머신을 멈추고 내려서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감각을 잃은 새처럼 허공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을 뿐 나는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더 이상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잘못 들었을지도 몰라. 다시 천천히 러닝머신 쪽으로 다가가려 할 때였다. 순간 먼저 번 것 보다 더 거칠어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창문 쪽으로 나의 시선이 갔다. 거기에 제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현관에 선 채로 몸을 틀어 집안을 들여다보며 창문을 주먹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껏 나는 이 곳에서 단 한 명의 방문객도 갖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제인의 문소리는 내가 처음 들었던 문소리였던 것이다. 집안에서 십자수를 하던 그녀의 모습에만 익숙해져 있던 터라 집밖의 그런 제인을 보자 문득 섬뜩한 공포감이 일었다. 서둘러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제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밀려오지는 않았지만, 서울의 웬만한 초겨울같은 이 곳의 날씨는 그녀에게도 몹시 싸늘할 것이었다.
“무슨 일이죠? 괜찮아요?”
“정말 미안해. 하지만 부탁 좀 들어주겠어? 옐로우 북에서 Y병원 전화번호 좀 부탁해.”
그녀는 내게 낡아빠진 전화번호부 안내책자를 내밀었다. 세상에, 고작 전화번호를 알아내자고 두 블럭을 이렇게 땀을 흘리며 걸어왔단 말인가. 우선 제인을 집안으로 들이고 나는 그녀를 대신해 전화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5
엠블란스가 도착할 때까지 제인은 죽은 듯이 소파에 누워있었다. 핏기하나 보이지 않는 잿빛의 얼굴에서는 쉴새 없이 땀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가끔씩 잦아들 듯 신음소리도 이어졌다.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잡아보았다. 살며시 뛰는 맥박소리가 내 손에도 약하게 전해져왔다. 굵은 주름이 잡힌 손등의 거뭇거뭇한 검버섯을 보며 그녀에게도 부귀영화의 그림자가 지나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이상하게 고개가 모로 저어졌다. 오르면 반드시 내려가기 마련인 것이 인생이라고 말들 하지만 평생 동안 꽃 한 번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 버리는 인생도 나는 이미 여러 번 보았었다. 지나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박힌 제인의 얼굴에는 엄마의 잠든 모습처럼 단 한 조각 행복의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엄마는 움찔 내 손을 잡아챘다. 잡은 손에 오한이라도 나듯 한참동안 부들부들 떨다 갑작스레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눈을 부릅뜨고 나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절대 안돼. 이혼은 안돼. 선영아. 다 똑같더라. 제발 내말 들어.”
엠블런스가 도착해 들것에 올려져 집밖으로 나갈 때 즈음 제인이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부탁이야. 함께 병원에 가주지 않겠어?”
나는 무심코 벽에 걸려있던 시계를 쳐다보았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그녀가 애원하듯 다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내가 한 일이라곤 제인을 대신해 그녀의 주소와 이름을 적어준 후 응급실 복도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내 머릿속은 다 지워져버린 백지처럼 훵했다. 멈추기라도 하면 금세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좁고 빠른 걸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약간의 현기증이 일었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위암말기가 되도록 우리는 아무도 엄마의 병을 알지 못했다. 의사는 나이가 들어 수술을 해도 그 후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엄마의 병실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곤 고작 엄마가 감당해야 할 고통의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응급실 유리문이 열렸다 닫히기를 거듭하다 거기 조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한 늙수그레한 동양인의 얼굴이 유리 위에 비춰졌다. 나는 얼른 뒤돌아 보았다. 서양인의 눈엔 머리색과 눈빛이 검으면 모두 차이니즈계열로 생각한다지만, 적어도 자기네 나라사람끼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가 있었다.
“어, 한국여자네!”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의 거친 목소리는 이미 많이 갈라져 있었다. 난 아무런 댓구 없이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한국 사람 아닌 척 아무 말 안하고 있으면 내가 모를 줄 알고? 한국여자는 냄새가 나. 이런 데 나와 있는 한국여자는 더 냄새가 난다구.”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 지껄였다.
“너도 위장결혼해서 여기 왔니? 남편한테서 벌써 도망쳤니, 아니면 도망 갈 궁리를 하는 중이냐? 웃기는 세상이야. 남자들이 없으면 빌어먹고 살지도 못하는 것들이 여기와 서는 죄다 지들 세상인 줄 안다니까. 너도 콧대깨나 솟은 걸 보니 그런 년들 중 하나겠어.”
그는 아예 병원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이 시간에 이 사람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병원에서는 이런 사람을 알고나 있는 것일까. 결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나는 돌아서서 앉아 있을 만한 곳을 찾았다. 저기 오른쪽으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배려한 작은 휴게실이 보였다. 나는 그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그 남자가 내 머리채를 뒤에서 잡았다. 나는 잡힌 머리칼을 급히 빼냈다. 그 취한 손아귀의 힘은 보기보다 약했는지 잡힌 머리칼이 금방 빠져나왔다. 남자의 표정은 가당치도 않은 꼴을 보았다는 듯이 그러나, 결코 절대적인 우위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는 오만함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내 왼손에 반지가 느껴졌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천천히 그 반지를 오른쪽으로 바꾸어 끼었다. 그때, 쌓아놓았던 벽돌이 무너지듯 왈칵 그 남자가 넘어졌다. 어디선가 키 큰 남자 간호사 한 명이 급한 걸음으로 뛰어왔다. 남자는 한쪽 팔을 간호사에게 내맡긴 채 질질 끌려나갔다. 나는 눈에 보이는 플라스틱 의자에 아무렇게나 털썩 주저앉았다. 자꾸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니 벌써 세 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빈집에 들어설 민아가 놀라지나 않을까 서서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떼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공중전화를 찾았다. 엄마가 병원에 있으니 방과후 이곳으로 오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수화기 건너편 누군가에 떠듬떠듬 부탁하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시간이 더디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이 곳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병원으로 달려온 민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내려앉는 듯 현기증이 일었다. 민아의 얼굴은 제인만큼 창백해 민아를 보자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민아 역시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나는 민아를 꼭 껴안았다. 녀석도 울고 있는지 어깨를 들먹이고 있었다.
“내가 당신의 전화를 받았어요. 어차피 집으로 가는 길이라 같이 왔어요. 제인은 나도 잘 알아요. 한 5-6년쯤, 물론 그녀가 건강했을 때 우리집에서 일을 했었죠.”
그제서야 민아 뒤의 마이크가 보였다. 민아를 가슴에서 떼어내고 소매자락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마이크는 내가 빠른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아는지 아주 천천히 말해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인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심장병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데스크의 얘기를 들으니 혈압에도 문제가 있다는군요.”
산소호흡기를 거두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지 제인의 입 주위에는 호흡기 자국이 움푹 패여 있었다. 나이가 들면 상처 입기도 쉽지만 저렇게 자욱 또한 오래 남았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마이크를 의식한 탓인지 제인의 영어는 나와 단둘이 있을 때 보다 상당히 빨랐다. 그녀의 영어는 꽤 유창했다.
“병원 전화번호는 늘 따로 두었는데 갑자기 보이지가 않았어. 그래서 민아네 집을 찾았던 거야.”
괜찮다고 너무 미안해 할 필요 없다고 제인을 위로했지만 솔직히 그녀가 왜 직접 전화번호부를 찾는 수고 대신 두 블록씩이나 떨어진 우리 집까지 성치 않은 몸으로 도움을 청하러 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창 밖은 완벽한 어둠이 내려 검은 유리창엔 우리 세 사람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내일 또 올게요. 푹 쉬고 있어요.”
민아와 마이크가 제인의 뺨에 얼굴을 부비며 인사를 나누었다. 내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곳의 인사법이었다. 내가 제인의 얼굴로 다가가려할 때 제인이 나의 손을 꼭 잡고 속삭였다.
“부탁 좀 들어줘. 미안하지만, 우리 집에서 내 십자수를 가져다주면 정말 고맙겠어. 탁자 위의 아이다와 실상자들.”
약속한 날짜까지 끝마쳐야 할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러마 했다. 어차피 제인의 집이 제대로 잠겨있는지 돌아가는 길에 한 번 들려 볼 참이었으니까. 그녀는 깊은 잠에 빠지려는지 그새 눌꺼풀이 굳게 닫혀 있었다.
제인의 집에 도착해 눈에 보이는 대로 대충 십자수용품을 종이가방에 챙겨 넣었다. 한 동안 주인을 잃고 있을 집을 둘러보자 왠지 서글프기도 했다. 사람 사는 것은 정말 어디나 똑같을까? 현관문을 잠그고 뒤돌아보니 여전히 바람에 흔들거리는, 이젠 네 귀퉁이가 반 너머 말려 글자조차 읽을 수 없는 그 도화지가 퍽이나 측은해 보였다. 나는 압정을 빼내고 그 도화지를 떼어냈다. 민아에게 다시 그려주라고 청할 작정이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 속에서 감자 굽는 냄새가 묻어왔다. 민아가 혼자 음식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부엌으로 들어서다 말고 깜짝 놀라 우두커니 서버리고 말았다. 민아만 데려다 주고 돌아간 줄 알았던 마이크가 부엌을 오가며 민아와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를 먼저 알아본 것은 민아였다. 놀란 나를 바라보며 민아가 방긋 웃었다.
“선영, 선영도 어차피 저녁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민아와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오늘 많이 힘들었죠? 내가 실례를 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물론 아니에요. 그냥 조금 놀랐어요.”
민아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 팔을 휘감았다.
이집트인인 마이크의 본명은 히샴 로쉬드였다. 그가 우리집 부엌에서 준비해준 식사는 이태원의 대사관이 즐비한 골목길에 있던 작은 이국풍의 레스토랑의 것 같았다. 어느새 그의 집에 들러서 가져왔는지 훈제연어에 생크림과 양파를 얹고 우리집 냉장고에서 뒹굴고 있던 야채들과 삶은 파스타를 섞은 후 그가 직접 만든 드레싱을 그 위에 살짝 둘러 끼얹었다.
“컨트리 파스타 샐러드예요.”
그가 요리의 이름까지 친절히 말해 주었다. 겨자와 마늘맛이 꽤 상큼했다. 식탁 끝에 놓인 촛대도 낯설은 걸 보니 아마 그것도 마이크가 가져온 모양이었다. 남이 차려준 식탁에 앉아 본 것이 얼마만인지 헤아려지지도 않았다.
6
다음 날 아침, 민아를 마이크의 차에 태워 학교로 보내고 곧장 제인의 병원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백인 간호사로부터 제인의 병실을 확인받은 다음, 나는 그녀의 병실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 남자를 또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복도는 지은 지 많은 세월이 지났는지 그다지 현대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래되긴 했지만 병원의 집기들은 꽤 청결했으며, 나름대로의 규칙이 잘 스며들어 있었다. 병실에 들어서니 제인은 창 쪽을 향한 채 누워있었다. 두 달 가량 입원해 있던 엄마도 욕창이 심해 항상 저렇게 누워있어야만 했었다. 그렇게 옆으로 누워 깨알같은 글씨로 메모를 하곤 했다. 경동시장에 가서 옻나무 사기, 막장 항아리 소제하기, 무청말리기, 늙은 호박 속 긁어내기, 벤자민 화분갈이하기, 세탁소에 맡겨둔 아버지 양복바지 찾아오기... 병원을 나설 날만을 기다리며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 해야할 일들을 순서대로 차곡하게 적었다가 그 다음 날에는 더 효과적인 일의 순서가 생각나기라도 한 듯 순서를 바꾸어 새 종이에 옮겨적곤 했었다.
일한 표시는 나도 논 표시는 안나는 거다. 하루 종일 놀아 봐라? 어디 표가 나나. 그래도 이렇게 꼼지락거리니 웬만하지 않니.
퇴원하자마자 제일 먼저 이불호청을 북북 뜯어 발로 꾹꾹 밟아 빨아 널겠단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엄마.
나는 가만히 다가가 제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름만큼 부르기 편한 호칭이 없는데 나는 자꾸 그녀와의 관계만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가져왔군요. 고마워요.”
그녀의 첫마디였다. 건네준 것들을 받아들자 제인은 익숙한 솜씨로 곧 수를 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언제부터 걸려있었는지 알 수 없는 방구석 그림액자의 주인공처럼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제인이 눈으로 가리켜준 의자에 앉았다. 제인이 실을 잡아당길 때 옥스퍼드지를 스치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려올 뿐 이곳 역시 조용했다.
“쓰고 있다던 영화이야기는 잘 되가고 있어?”
제인은 시나리오란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천천히 해. 이곳 생활에 적응부터 해야지.”
“무언가를 하면 시간이 빨리 가잖아. 빨리 시간이 지나 갔으면 좋겠어. 어서 마흔이 되고 쉰이 되면 좋을 것 같아.”
제인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기다리면 더 안오는 법이야. 참, 마이크는 좋은 사람이야. 그 사람과도 친하게 지내면 좋겠어.”
순간 내 얼굴이 굳어졌다.
“남자를 만나기 위해 이 곳에 온 것은 아니야. 아직 남편과의 문제도 정리되지 않았어.”
문득 제인이 손을 멈추었다.
“마이크는 이웃이야. 민아의 선생님이기도 해. 다른 뜻은 없었어.”
얼굴이 뜨거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걱정은 미리 하지마. 난 네가 남자로 인해 너의 인생이 흔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 정도의 각오도 없이 이 먼 곳으로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생각하지 않아.”
“…….”
“왜 남편과 같이 오지 않았는지 물어도 돼? 프라이버시라면 말 안해주어도 좋고.”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작은 재촉과도 같았지만 그 재촉에 저항감이 일지 않았다. 대신 약간의 의무감이 내 어깨를 누르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그녀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의무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난 가능하면 이 도시에서 빨리 친구를 얻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지극히 계산적인 인간이었기에 친구를 원한다면 공유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실타래. 난 남편을 생각하면 실타래를 떠올렸다. 풀리지 않고 점점 부풀어오르기만 하는 실타래. 난 그 실타래를 쥐고 이쪽저쪽 돌려보기만 할 뿐 감히 실마리를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남편의 누이 얼굴을 주먹으로 갈겨버렸거든. 그것도 반지 낀 손으로. 그녀 콧등에 꽤 깊은 상처가 났어.”
난 갑자기 건들거리는 깡패가 된 기분이었다.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제인을 나는 좀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마치 주먹깨나 쓰는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발로 그녀의 침대 다리를 툭툭 건드리며 대단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영웅처럼 병실을 거닐었다.
“너 슬프구나.”
후드득 내 눈에서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7
나란 인간은 제법 적응을 잘 한다고 믿었었다. 내가 최선을 다해 잘 적응하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남편하고의 관계는 처음부터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는 보통의 명석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권력으로 풀어 설명하는 버릇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나와 크게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그의 집안에서 아버지 중심으로 흐르는 권력은 왜 인정하려 들지 않는지 그것이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시어른들에게 죽은 조상은 신이었고 종교였다. 1년에 제사를 14번씩이나 치러내면서 가족간의 우애를 절대적인 덕목으로 여겼다. 제사뿐만 아니라 모든 집안 행사에 시아버지는 당신의 여식부터 여동생들까지 모이기를 종용했다. 그러나, 그들은 초대받은 손님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의 외며느리인 나에 대한 칭찬은 너무나 화려했다. 내가 정말 대단한 일을 치러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들은 시아버지의 그늘 아래 누릴 수 있는 권력을 즐기고 있었다. 식탁이 모두 채워지고 수저까지 놓여져야 식당으로 나타나는 그들을 보며 내 마음에 미움의 싹이 자라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싱크대에 쌓여진 설거지감을 보자 내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때, 시누이 한 명이 빈 물잔을 쌓여진 설거지감 위에 얹어 놓았다. 수고가 많네. 잠깐만요. 왜 그랬을까? 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타자에 대한 무관심을 백치같은 순수로 포장하고 있는 그녀가 역겨웠다. 나는 고무장갑을 천천히 벗었다. 그때 왼 손에 반지가 끼워져 있다는 생각이 났다. 반지를 오른 손으로 옮겨 낀 나는 그녀의 콧잔등으로 주먹을 날렸다. 내 안에 그러한 폭력에 대한 욕망이 존재할 줄은 나조차 알지 못했었다. 이 맛에 사람들은 권투라는 운동경기를 관람하는 것일까? 코피가 방울방울 부엌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그녀의 비명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미안했다. 내가 화를 내야 할 상대는 그녀가 아니었는데. 부끄러웠다. 고작 한나절 그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한 것뿐인데 내가 왜 이렇게 옹졸해졌을까. 내가 도대체 언제부터 대가만을 바라는 속물스런 인간이 되었는가. 난 마치 내 자신의 문제인 듯 자신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체념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 흔한 운명이라는 말속으로 안주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나는 제법 적응을 잘 한다고 믿었는데….
8
한 날은 내가 병원에 도착하자 제인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약봉투를 내밀었다. 글자가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다며 내가 그녀를 대신해 읽어주기를 바랬다. 건네준 약봉투에 쓰여진 낯선 단어를 띄엄띄엄 발음하자 그녀는 곧 각각의 봉투에서 정해진 개수만큼의 약을 꺼냈다. 이 글자보다 훨씬 작은 십자수 문양은 돋보기 없이도 잘 보면서 이렇게 커다란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니. 아, 그제야 나는 그녀가 왜 다 쓰러져가는 몸을 이끌고 두 블록씩이나 지나 우리집까지 왔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인은 등 뒤의 베개를 서너번 두드려 고르게 만든 후 편안한 자세로 고쳐 앉았다.
“남편의 누이를 때리고 이곳으로 도망쳐 온 거야? 너희 나라도 어떤 나라처럼 남편의 형제를 때리면 경찰이 잡아가니?”
그녀가 심각하게 물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떨구어졌다.
“제인, 난 너무나 부끄러웠어. 이런 하찮은 것에나 연연하며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싫었어. 나를 너무 치사하고 졸렬한 인간으로 만드는 그곳이 싫었던 거야.”
그러나, 난 시댁에 들어가면 미친 듯이 일을 찾았다. 설거지를 마치면 장식장을 열어 오래된 그릇들마저 꺼내어 행주질을 했고, 싱크대 서랍까지 빼낸 후, 그 안쪽에 쌓여있는 먼지를 청소기로 빨아들였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말을 그때처럼 고맙게 여겼던 적이 없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설거지를 마치고 자정이 너머 집으로 돌아가 땀에 절은 몸을 샤워도 못한 채 잠이 들어 다음 날 뒤통수가 푹 꺼진 머리를 만지지도 못하고 다시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출근하는 생활을 14년간 했다. 지각도 무단 결근도 한 번 해보지 못했다. 누군가 마치 내 등뒤에서 칼자루를 겨누며 감시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궤도에서 벗어나는 일은 상상조차 못했었다.
“제인, 난 이제 그만 쉬고 싶어. 더 이상 내켜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억지로 하지 않는 척, 아니 아주 기쁘게 하는 척하는 이중적인 삶을 살고 싶지 않았어.”
그러나, 삶이 길을 가다가 이제 그만 가고 싶다고 딱 멈추어 버리면 그만인 것이었던가.
때맞추어 나는 직장을 잃었다. 직장을 빼앗기자 봇물이 터지 듯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기 사작했다. 민아의 학교생활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결혼 안의 내 생활도 같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 결혼생활을 접기로 결심하자 공교롭게도 엄마의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 난 남편이 아니라 엄마와 전쟁을 치러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남편은 자신의 문제가 아닌 듯 한 걸음 물러나 엄마의 뒤로 몸을 숨겼다.
“애를 낳아라. 아들을 낳아야 네가 딴 생각을 안 먹지.”
“엄마, 이혼하겠다는 사람에게 아이를 더 낳으라니 그게 말이 돼?”
“난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그런 거 몰라. 아들을 낳아.”
“엄마, 나한테 한 번도 그런 말 한 적 없잖아. 이제 와서 왜 이래요? 내게 결혼이란 애초에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었더라면 결혼 같은 거 하지도 않았어요.”
“소용없는 짓이야. 사람들은 아무리 떠들어대도 자기하고 이해관계 없으면 절대로 귀담아 듣지 않아. 결국 그 입장이 돼봐야 그 속을 아는 거야. 너라고 해서 내가 말해봤자, 내 말을 들었을 것 같아? 아무튼 안 돼. 이혼은 절대 안돼.”
우리는 죽게 되면 모두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 된다, 선영아. 살아서는 살찐다고 기름에 지진 음식에 손도 안댔던 너 같은 사람도 죽어서는 모두 밀가루와 계란을 발라 기름에 부친 음식으로 차려진 제상을 받아야 된단다. 밀가루와 계란으로 덮여 있다고 어떤 음식인지 모를 염려는 없어. 처음엔 조금 헷갈리겠지만, 곧 익숙해질 거야. 음식그릇 놓는 위치마저 홍동백서, 어동육서, 동두서미, 전서초동 이렇게 이름 부쳐 똑같은 자리에 며느리들이 상 위에 올려 줄테니까.
제사상을 준비하며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이제야 내 머리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먹은 것을 모두 게워내고 위액까지 흘려내 보내고 있는 엄마와 나는 병실에서 지독히도 싸워댔다. 그런 엄마의 고통을 위로하는 대신 나는 악을 써대며 엄마와 같이 싸웠다. 엄마가 나의 머리채를 잡아대면 나 또한 엄마의 머리채를 잡았다. 옆 침대의 환자가 짜증을 부리다 지쳐 결국 병실을 옮겨가기까지 했다. 그러다 죽음의 문턱이 다가왔을 때,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한다며 엄마는 갑자기 음식 먹기를 거부했다.
“절대 이혼은 안돼. 선영아. 다 똑같더라. 제발 내 말들어.”
이것은 엄마의 고통이 참을만하다는 뜻이었다.
“자식 신세 망칠 년! 남의 집 대를 끊어 놓을 년! 밥값도 못하는 년 같으니라구!”
이 정도면 엄마의 고통은 거의 엄마의 전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다 물결처럼 곡선을 그리는 고통의 그래프가 잠시 낮아지면 엄마는 조용히 말했다.
“난 배운 게 없어서 유식하게 말 할줄은 모른다. 선영아, 넌 다를 줄 알았다. 널 오빠들이랑 똑같이 공부시키면서 넌 배웠으니까 나하고는 다르게 살 줄 알았다.”
날이 어두워지려는지 병실 복도의 형광등에 하나 둘씩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인이 침대 옆 서랍장을 열더니 내게 종이로 포장된 꾸러미 하나를 내밀었다.
“선물이야. 아직 집정리도 다 못했을텐데 내게 시간을 많이 빼앗겨 정말 미안했어. 이곳에 와서 만든 침대보야. 선영의 마음에 들면 좋겠어.”
“제인, 급한 일감이 아니었던 거야? 난 급히 일을 마쳐야하는 줄 알았는데.”
제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없어. 그냥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야.”
9
“Trick or Treat?”
저녁을 먹고 소파에 누워 영어공부를 하고 있을 즈음 누군가 세게 문을 두드렸다. 민아가 슬리퍼를 끌며 나가 현관문을 열자 언젠가 아이들의 만화영화 속에서 보았던 현란한 색상의 옷과 모자로 온 몸을 장식한 마법사들이 서 있었다. 너무나도 동떨어진 세계였다. 그들은 정말이지 어디서 빗자루라도 타고 날아온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찬장을 열고 항아리에 넣어두었던 젤리와 스틱사탕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많이 사다 둘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녀석들은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저희들끼리 지껄이더니 아쉽다는 듯 돌아섰다. 그때, 맨 마지막으로 돌아서는 키 큰 사내 하나가 얼굴에 썼던 주황색의 호박가면을 들추었다. 마이크였다. 씽긋 눈인사를 건네더니 만아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민아는 망설임 없이 신발을 바꾸어 신고 현관 옆에 걸어두었던 코트 속으로 몸을 넣었다. 마이크의 손을 잡고 따라나서는 민아의 보랏빛 코트 등으로 하얀 눈발이 보였다.
“민아야, 눈이 오네!”
민아는 돌아보지도 않고 내게 손을 흔들더니 내리는 눈을 손바닥에 받는 시늉을 했다. 그들이 골목어귀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나는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이 핼러윈데이라고 했다.
다음 날, 새벽 둔중한 것이 부딪히는 소리에 놀라 깨었을 때, 나는 이제와는 사뭇 다른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커튼을 열고 창 밖을 내다보자 온 천지가 그야말로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마을은 온통 눈에 덮여 있었다. 워낙 눈에 예민한 나라인지라 쌓이기가 무섭게 도로 위의 눈을 제설차가 말끔히 치워가고 있었지만 언덕 아래 마을과 저만치 낮은 둔덕의 공원 모습은 마치 내가 깊숙한 로키 산맥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했다. 우리에게 로키산맥자락을 여행할 일은 아직 요원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방안을 돌아다니며 창가의 모든 커튼을 열어 창 밖의 설경을 거실로 불러 들였다. 실내등을 모두 껐는데도 집안은 제법 환했다. 나는 서둘러 민아를 흔들어 깨우며 어서 제인의 집에 가자고 말했다. 제인은 일 주일이 조금 지나 곧 퇴원을 했다. 노환이라 병원에 오래 머물 필요가 없었다. 민아와 만든 팬케 과 한국에서 가져온 모과차를 보온병에 담아들고 집밖으로 나왔을 때 마침 집 앞을 걸어가는 한 금발의 사내아이가 민아에게 손을 흔들며 아는 체 했다. 민아도 그 아이에게 수줍은 듯 손을 흔들었다.
제인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집에서 막 나오고 있는 마이크를 만났다. 그의 손에는 빈 바구니와 제인이 답례로 건넸음직한 하늘색의 린넨천이 들려 있었다. 마이크를 보자 민아가 펄쩍 뛰다시피 달려갔다. 사람의 습관이란 장소에 따라 저렇게 잘도 변하는 것일까. 이곳에서 민아는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이 행동하고 있었다. 곧 현관문을 열고 제인이 나왔다. 어깨에 두툼한 담요를 두르고 그녀는 양손을 앞으로 벌리며 다들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마이크, 찻물이 다 끓었어. 이제 민아의 식구마저 왔으니 시간 좀 내주지 않겠어?”
마이크는 여느 서양인들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제인이 찻잔에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중국사람들은 뜨거운 차를 물먹듯 마시지, 나도 중국인 집에서 일할 때 알게 된 이후론 줄곧 마시고 있는데 좋은 습관인 것 같아. 이 차가 마음에 들면 선영에게도 조금 줄게. 지난 달에 차이나 타운에 가서 사왔거든. 나 혼자 다 마시고 가려면 200년을 더 살아야 할걸.”
그녀의 웃음이 꽤 쓸쓸했다.
“고마워요.”
마이크가 말했다.
“그래요. 이곳에선 차이나타운만큼 활기찬 거리가 드물어요. 물론 다른 도시의 차이나타운만큼 붐비는 것은 아니지만 이 도시에서 그만큼 사람이 몰리는 곳은 없어요.”
그가 다시 제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제인도 이제 십자수를 그만두고 운동을 해야 할거에요. 산책도 좀 많이 할 필요가 있어요. 몸이 많이 굳어진 것 같아요. 집 밖에 나가기가 정 불편하면 선영처럼 러닝머신을 들여놓고 백워킹을 해 보는 것은 어때요? 내 말이 아무 소용없을 거란 거 잘 알아요. 제인은 일과 운동을 구별하지 않으니까….”
이번엔 제인이 난감하다는 듯 어깨를 움츠려 보였다.
“다들 어때요? 이렇게 앉아 있을 게 아니라, 비콘힐 파크 (Beacon hill park)를 산책하는 거? 잠깐이면 되잖아요.”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라곤 하나 없는 공원은 늦게나마 남아 있을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게으른 다람쥐의 발자국만 남아 있을 뿐 적막하기 그지 없었다. 발이 푹푹 빠져 목이 긴 장화를 신지 않은 나와 제인은 걷기에 몹시 불편했다. 서너 발자국 공원으로 접어 들던 제인이 안되겠다 싶었는지 먼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돌아가는 제인을 바라보며 마이크가 말했다.
“제인은 이런 산책도 불편해 해요. 운동을 해야 할텐데”
“…….”
제인은 산책조차 자신에게 사치스럽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곳의 아이들은 핼러윈데이 트릭을 즐기나보죠?”
“아니에요. 이곳의 아이들도 다들 컴퓨터게임을 더 좋아해요.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도 그런 놀이를 유치하다고 생각하죠. 점점 연령층이 낮아지고 있어요. 그 날은 내가 불러 모았어요. 민아야, 그 날 재미있었지? 친구들 집도 어디 있는지 알게 되었고.”
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아가 왜 말을 더듬는지 묻지 않는군요”
“그야, 아직 영어에 서투니까 그런 것 아닌가요?”
민아가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이야기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곧 민아가 잡고있던 손을 풀더니 마이크와 함께 공원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도 밟지 않았던 길에 발자국을 남기다 눈사람이라도 만들려는지 눈을 뭉치기 시작했다.
민아의 자폐증은 말을 더듬는 것으로 그 처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상한 울음소리.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시어머니 집에서 자랐다. 어느 겨울, 회사에서 콘도 한 채를 빌려 가족들과 어울려 수련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낮 일정을 마치고 저녁을 먹은 후, 테이블에 둘러 앉아 땅콩이나 쥐포 따위를 씹으며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민아와 경리과 직원의 사내아이랑 싸움이 붙었다. 아이들 싸움은 잘 놀다가도 눈 깜짝할 사이에 주먹까지 왔다갔다하기 마련이어서 얼른 달려들어 두 아이들을 떼어 놓았다. 그런데, 그 경리과 직원의 아이는 금방 제 어미 품 속으로 들어가 쥐포 한 쪽까지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저희 엄마와 속살거리는데 민아는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고개 숨길 곳을 찾듯 내 품으로 파고들며 숨도 쉬지 않고 흐느끼는 것이었다. 처음엔 어디서 무언가를 보고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아이의 울음은 늘 그 패턴을 유지했고 한 번씩 친구들과 싸울 때마다 말을 더듬는 강도가 깊어져 갔다. 민아는 언제나 목젖이 보이도록 큰 소리로 울어 재끼던 아이였다.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구나. 내 심장은 추운 겨울 발에 밟힐 때마다 적쩍 갈라져 터지는 얼음장처럼 금이 가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민아에게 사내 아이를 결코 이기려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다고 했다. 어깨가 무너져 내렸다. 어느 결에 민아와 마이크의 떠드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들이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12월이 되면 휘슬러가 관광객들로 넘칠거예요. 그래서 첫눈이 오면 학교에서는 일찌감치 스키캠프를 준비하죠. 아마도 다음 주 중이 될 것 같은데, 선영이 괜찮다면 발런티어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네요. 선영 말고 다른 두세 명의 부모들이 더 있으니까 내키지 않으면 다음 번에 해주어도 돼지만.”
10
제인은 눈에 띠게 쇠약해져가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소파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조금 오래 앉아 있었다 싶으면 영락없이 눕고 싶어해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거처를 침실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침실로 옮겨졌다고 해서 십자수에서 손을 뗀 것은 아니었다. 등을 반침에 기대고 앉아 한 땀을 놓고 한참을 허공을 바라보다 다시 또 한 땀 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퇴원할 날만을 기다리며 집에 돌아가 할 일들을 메모지에 빼곡이 적던 엄마를 그만두게 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런 그녀에게 십자수를 그만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제인을 부탁해요. 그는 정식 크리스천도 아니고, 중국인들처럼 부디스트도 아니라 특별히 어떤 방식을 편안히 여길지 잘 모르겠군요.”
내가 제인을 돌보아야한다는 핑계로 스키캠프 봉사자가 되지 않았을 때 그는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그렇게 말했다.
“꼭 종교가 제인을 구원하지는 않을 거예요.”
순간 나는 멈칫했다. 이집트인인 마이크. 어쨌거나 그는 무슬림이었다.
“그 말은 선영에게 종교가 없다는 뜻이군요.”
“꼭 있어야 하는 건가요?”
이러지 말자, 종교나 전통 때문에 마이크와 시간낭비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난 새로운 친구를 잃고 싶지가 않았다.
제인의 집에 들를 때마다 내가 조금씩 가져다 주는 차tea를 제인은 무척 좋아했다. 두 손으로 찻잔을 감싼 채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고맙다는 말을 몇 번씩이나 연거퍼 했다. 평생 남의 것을 한 번도 공짜로 가져 본 일 없는 사람이 그러하듯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그녀는 내게 꼭 선물을 내밀곤 했다. 그것은 차 한잔과 백설기 몇 조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값비싸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녀가 서랍장 깊숙한 곳에서 내게 내민 것들은 제인의 집안을 장식하고 있는 것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것들은 너무도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어디 액자에라도 끼워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호텔로비에 걸어둔다 하더라고 전혀 손색없을 만큼 완벽해 보였다. 그럴 필요 없다고 몇 번씩이나 사양하는 나에게 그녀는 거의 막무가내로 떼밀었다.
우리의 집도 점점 제인의 집과 비슷해져 갔다. 그녀의 테이블 클로우스들이 하나 둘 씩 우리의 가구를 덮어갔다. 열 세 살에 이민선을 타고 미국에 도착해 중국상인의 집에서 하우스메이드로 일하기 시작했다는 제인. 틈틈이 공부할 기회를 엿보았지만, 그 의심 많던 중국상인이 자신의 장부를 누군가 들여다 보는 것을 지독히 싫어하자, 그녀의 결벽스런 깔끔한 성격은 괜한 의심 따위를 사기 싫어 아예 글자 배우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이것은 나의 추측이다) 제인에겐 스튜어디스로 일하는 딸이 하나 있는 모양이었지만, 그녀는 늘 외국에서 생활했고, 제인과는 별 연락없이 지냈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 어땠는지 기억할 수 있어?”
오래 된 일이 아니었다.
“엄마는 스코트 니어링 처럼 음식을 끊었어. 수액도 거절하셨고.”
“수도자 같구나.”
그녀는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인, 가족이 그립니?”
제인이 손에 들고 있던 수틀을 내려놓았다.
“난 네 명의 여동생과 세 명의 남동생이 있어. 그들은 아직도 마닐라에서 살고 있지. 처음 생사를 몰라 애태울 땐 전화로나마 듣는 목소리가 하도 반가와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 너무 오래 된 일이야. 그들은 아직도 내가 그들의 가난에 무언가를 해줄거라 믿고 있어.”
“…….”
“지금까지 내 한 몸 지탱하며 살아오기도 너무 벅찼어. 어차피 해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오래 전 마음을 뗐어. 어차피 인생엔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
“…….”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제인의 십자수교본을 나는 계속 뒤적이고 있었다.
“선영, 십자수 좀 해보지 않을래?”
순간, 불에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그녀를 바라다보았다.
“십자수를 놓고 있으면 마음이 상당히 단순해져. 모든 것에서 마음을 뗄 수가 있어.”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사실, 이것은 배울 필요도 없이 단순하고 아주 쉬운 일이야.”
제인에게 십자수란 노동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주인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저절로 잘 돌아가는 기계가 되었을 것이고 십자수란 그것의 연장선 상에 있을 터였다. 내게 십자수란 규방여인들의 매듭과 조각이불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집안의 가장 후미지고 조용한 방이었으며, 한숨이었고, 체념이었다.
“아니, 제인. 아직, 아직은 배우고 싶지 않아.”
제인이 두 번째로 병원으로 가던 날 저녁, 나는 그녀와 함께 가벼운 야채 샐러드와 빵으로 식사를 마치고 그녀의 침대를 봐준 다음, 집으로 돌아가려 할 참이었다. 제인은 여느 때처럼 나를 불렀고 나는 물이라도 필요한가보다 하는 생각에 물 한 잔을 들고 침실로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은 핏기하나 없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고르지 못한 호흡이 목까지 차오르는지 그녀의 가슴이 높이 솟아 있었다. 병원으로 옮겨져 그녀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혼자 남게 되자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분명하고 깔끔하기를 원했다. 쓸데없이 엮이지 않으며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 손해를 보지도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어디 그런가. 뜻하지 않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게 삶인데. 내 삶이 엄마에게 상처가 되고 있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몹시 힘들었다. 그것은 헤엄을 치다 어느 결에 갑작스레 깊어진 곳으로 흘러 들어가 내 손발이 어딘가에도 닿지 않는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알게 되었을 때처럼 무중력적이고 아득한 느낌이었다. 아무리 허우적대도 손 끝에 느껴지는 것 하나 없는 절망감.
“엄마, 잘가!”
그때, 나는 가능한 한 여유로운 표정을 엄마에게 보이고 싶었다.
“엄마, 그 동안 수고 많이 했어. 이젠 푹 쉬어.”
눈물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갔으면 좋겠어. 정말이야. 이젠 정말 푹 쉬었으면 좋겠어, 엄마. 미안하다는 말은 안하고 싶었거든, 근데…, 엄마 저…정말 미안해.”
조용했다. 일찍이 그렇게 조용했던 적이 없었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새떼와 메뚜기떼가 날개를 거칠게 흔들어 대며 내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내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죽은 자도 눈물을 흘린다. 엄마의 심장이 완전히 멈추어 모니터의 그래프가 직선을 유지하고 한참이나 지났건만 엄마의 눈에서는 눈물이 자꾸 흘렀다. 감긴 눈 끝에서 길게 이어진 눈물은 엄마의 하얀 베갯잇 속으로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그곳에서 살아갈 이유가 더 이상 남지 않은 순간이었다. 오늘밤에 마이크에게 전화를 해야하는 것일까? 그들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인은 바람결에 실려가는 마른 풀잎처럼 사뿐히 두 발을 들어올려 우리 곁을 떠나갔다. 유언은 없었다. 유서 따위도 있을 리 만무했다. 평생 일한 것에 비해 변변히 가진 것도 없었다. 카톨릭신부가 그녀의 마지막 미사를 올릴 때는 그녀 앞에 마이크와 민아, 우리 셋 뿐이었다. 서랍에서 오래된 주소를 찾아 제인의 딸에게 부음을 알렸지만 그녀는 우리가 대충 알아서 처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화선에 흘려 보냈다. 제인의 집안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찬장 어디에도 제인은 음식들을 남겨두지 않았다. 조금 남은 시리얼과 향신료 병들은 이미 자그마한 박스에 담겨져 있었다. 냉장고 속 역시 마찬가지였다. 계란 두 개, 파슬리 한 조각과 브로콜리 두 송이, 당근 반 토막. 이 것 역시 비닐 봉지 하나에 담아 한 곳에 모아 두었다. 그녀의 십자수 작품들만이 갈 곳 없이 탁자 위에 수북히 쌓여져 있었다.
11
Only 10$ each.
오후가 되자 산책하려는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좀체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 이곳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봄이었다. 우리는 계절의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마이크가 익숙한 솜씨로 공원입구에 이동식 탁자를 펴고 그 위에 제인의 십자수를 펼쳐놓았다. 그리고 그 위엔 민아가 그려온 포스터, 십자(x)를 연결하여 쓴 Cross-stitch Only 10$의 종이간판을 세워놓았다. 우리의 첫날 수확은 예상했던 것보다 나았다. 워낙 싼 가격이기도 했지만, 제인의 작품은 누가 보아도 나무랄 데가 없었으니까. 다만, 누렇게 찌든 세월의 때를 꺼리는 사람들에게 중성세제로 한 번 빨면 감쪽같다는 말을 꼬박꼬박 해주어야만 했다.
“선영, 혹시 그 말 들었어요. 아까 어떤 여자가 이거 훔쳐온 물건 아니냐는 말 말이에요.”
“어머, 그럼, 우리 내일은 다른 장소를 찾아야겠군요.”
마이크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런 마이크를 보며 민아 역시 목젖을 보이면서 웃고 있었다. 우리는 그 날, 반 넘게 제인의 십자수를 팔았다. 이 모든 것, 역시 제인의 딸은 우리가 처분해 주기를 원했고, 우리는 그 돈을 제인의 묘지 앞 꽃가게에 맡기기로 했다. 그 꽃집 주인도 제인을 잘 알아 우리 대신 그녀의 무덤가에 일 주일에 한 번씩 꽃을 놓아주기로 이미 약속을 해주었다.
“내일은 5 달러에 파는 것은 어떨까요?”
그렇게 되면 좀 더 빨리 제인의 십자수를 처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자, 렌트카 회사의 스티커가 붙여진 낯선 차 한 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현관을 올려다보니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마이크의 차에서 내리는 나를 남편은 마치 거리의 여자를 바라보는 듯 노려보았다. 남편이 이곳까지 오리라곤 예상치 못했었다.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아파트 전세금과 나의 14년간의 직장생활을 통해 얻은 퇴직금을 양보해 주었다. 남편이 그 모든 것을 양보한 것은 나의 이곳 생활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조금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을 보내 듯 민아와 내게 데면데면했다. 남편은 처음부터 그래왔듯이 내겐 허울 뿐이었다. 헛바지 저고리라도 수양산 그늘이 관동 80리를 덮는다는 시어머니의 말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처럼 남편은 민아와 내게 오로지 그림자의 역할만을 했다. 하긴 그래도 그는 살아갈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직업을 구하기 위해 이게 아니면 안되는 것처럼 악착같이 매달릴 필요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절실하게 원하지 않아도 기다리면 얻을 수 있었다. 내게 가장의 의무를 떠넘기면서도 여성도 이제 남자들의 의무를 함께 짊어질 때가 된 것이라고 말했던 남자. 그런 그는 기껏해야 실업연금이나 받는 생활로 떠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민아의 교육비와 우리 두 식구의 의료비를 부담해준다는 조건이 내게 얼마나 절실했었는지 다달이 가게부를 적으며 살았던 나를 그는 알지 못했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는 습관처럼 식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내가 으깬 감자와 야채를 버무리는 동안 민아가 개인 접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샐러드 접시와 찰기 없는 쌀로 만든 볶음밥을 식탁 중앙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자 남편은 음식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남편의 스푼이 그릇에 부딪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어떻게 지냈어?”
식사를 끝낸 그가 무릎 위에 놓았던 냅킨으로 입을 닦은 후, 처음 말을 시작했다.
“잘.”
우린 마치 비극적인 대사를 나누고 있는 무대 위의 배우 같았다.
“민아에게 이런 일그러진 가정을 꼭 줘야겠어? 당신은 기본적인 모성애도 없는 사람이었나?”
남편은 내게 이기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의 표정은 문제학생이라도 꾸짖는 양 짐짓 근엄하고 위압적이었다. 나는 그보다 좀 더 강한 배역을 해보고 싶었다. 독백을 하는 배우처럼, 그의 시선을 외면하고 민아를 바라보았다.
“모성애엔 한 가지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는 상황이 먹히지 않을 때 종종 그러하듯 갑작스레 태도를 바꾸어 말했다.
“당신, 그 동안 나 내조하느라고 힘들었단 거 잘 알아. 이젠 다 끝났어. 이번 봄학기부터 전임이 됐으니까. 실은 그래서 온거야.”
내조? ‘가장의 의무’를 그는 이제 내조라고 말하고 있었다.
“잘 됐네요. 뒷바라지 지쳐서 아내가 도망갔다는 소리는 듣지 않겠군요.”
내 마른 목이 갈라진 소리를 흘려 보냈다.
“무얼 할 건데? 도대체 가족 하나 없는 이곳에서 민아를 데리고 뭘 어쩌겠다는 거야?”
월요일에는 도서관엘 가고, 화요일은 극장요금이 싸니까 영화를 보러 가고…, 어쩌면 나 또한 제인처럼 살게 되겠지. 난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말도 했던가. 남편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시나리오? 여자들은 한낱 이루지 못한 꿈에서 왜 그렇게들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야? 당신, 마치 대단한 재능이라도 썩혀둔 사람처럼 말하는군. 사람사는 건 어디나 다 비슷해. 여기라고 뭐 별난 줄 알아?”
나는 깜짝 놀랐다. 그에게서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전혀 생각치 못했다. 그럴까? 어디나 비슷할까?
“아니...야. 아..니에요.”
남편의 말을 자른 것은 민아였다.
“여기... 애..들은 내가 아..픈..거 모..몰라..요.”
다음 날 오후 역시, 우리는 선착장으로 나갔다. 우리가 사는 도시와 벤쿠버 사이에는 다리가 놓여져 있지 않아 벤쿠버로 나가는 배를 타기 위한 진입로는 배에 오르기 위한 차량들로 항상 긴 두 줄을 이루고 있었다. 배 시간을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은 지루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가끔 빈 공터에 차려진 벼룩시장으로 나오기도 했다. 우리 자리 옆, 인디오는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는 은세공품들을 손수건만한 융조각으로 꼼꼼히 닦고 있었다. 커다란 CD 플레이어를 들고 나온 주근깨 투성이의 백인 남자는 ‘앙드레 가뇽’과 어려서 함께 피아노를 배웠다며 자신이 연주한 기타곡을 한 장 내밀었다. 사진 속 그의 모습이 제법 진지해 보였다.
아직 찬기운을 머금은 봄바람이 내 긴 스커트 자락을 흔들었다. 아침에 감고 말리느라 묶지 않았던 머리도 바람에 자꾸 흩날렸다. 손목에 끼워 두었던 헤어밴드를 빼서 머리를 묶으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저만치 멀리 남편이 운전하는 차가 긴 줄의 끝에 가 서는 것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남편은 유리창을 내리고 우리 일행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도 손을 들어 아는 체 했다.
“5달러, 거의 공짜라구요.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나는 뒤돌아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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