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80)

                                                     김형엽

    밖에서 심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다섯명의 장정들이 불곰 앞에서 나가 떨어졌다.   불곰의 몸이 한 번 움직일때 마다 장정들은 하나씩 쓰러져 나갔다.
   " 이제 너희 세놈만 남았구나. 어서 덤벼라. 그것도 한꺼번에 말이야. "
   불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불곰이 걸음을 옮길때마다 남은 세명의 웨이타들은 뒷걸음질을 했다. 그 때였다. 출구가 열리면서 한 사내가 들어왔다. 배지색의 정장을 한 차림이였다.
   " 형님 ---- "
   웨이타들은 일제히 그 사내에게 다가서며 고개를 숙였다.
   " 아이들을 보살펴라. "
   배지색의 사내는 천천히 불곰앞으로 다가갔다.
   " 흐흐흐... 황소. 이제야 나타났군. "
   불곰이 모자를 고쳐쓰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 황 필두가 보냈냐. "
   " 저승사자가 보냈지. "
   내부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호스테스들도 눈을 초롱초롱 굴리며 황소가 나타나 안도의 한숨을 쉬는 눈치였다. 웨이타들도 모두들 일어나서 한쪽으로 비켜 섰다.
   " 무릎을 끓으면 이 정도에서 용서를 하마. " 불곰이 태연하게 흥정을 걸어왔다.
   " 대단하군. 스타 나이트클럽에서도 자네의 머리가 제법 구실을 했더군. "
   " 흠. 내 머리의 맛을 보고싶다는 얘기군. "
   불곰이 모자를 만지작 거리다가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스포츠의 짧은 머리가 나타났다.
   " 자. 받아라. "
   불곰의 몸이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불곰의 머리는 정확하게 황소의 가슴을 향했다.
   그러나 황소는 기다렸다는 듯이 뒤로 물러서는 척하다가 오른쪽 발을 들어 올려 고개를 숙이고 달려드는 불곰의 안면을 그대로 걷어찼다.
   " 퍽 ---- "
   불곰은 뜻밖의 기습에 안면을 손으로 더듬었다. 어느새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황소의 몸이 우측의 벽을 타고 뛰어 오르는듯 하더니 그대로 날아가서는 양발로 불곰의 가슴을 가격했다.
   " 억 --- "
   불곰의 몸이 허공에 떴다가 바닥에 곤두박질 쳤다. 그렇게 나가 떨어진 불곰은 망치가 들어있는 방문까지 밀려나갔다. 불곰은 상체만 일으킨체 방문을 두드렸다.
   " 야. 망치. 빨리 나와. 내가 당했다. " 망치는 정신없이 미스 김을 자신의 몸 위에다 놓고 흔들어 되고 있다가 불곰의 목소리를 듣고는 동작을 멈추었다.
   " 이게 무슨 소리야. "
   망치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자 미스 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갑자기 돌변한 사내의 행동에 미스 김은 의아했지만 얼른 망치에게서 멀어지며 자신의 옷을 챙겨 앞을 가렸다. 망치는 바지를 추스리더니 곧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미 복도에는 자신의 동료인 불곰이 쓰러져 있었다. 망치는 놀라면서 불곰을 부축했다.
   " 어떻게 된거야. "
   " 저기.. 황소가 왔다. "
   망치는 불곰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황소가 버티고 서 있었다.
   " 이 새끼... 이제 나타났군. "
   망치는 불곰을 일으켜 세워놓고 천천히 황소에게 다가갔다.
   " 저 놈을 죽여야 돼요. 저 놈이 김 양을 강제로 추행했어요. " 울분을 참지 못하고 미스 송이 뛰어 나와 악을 쓰는것을 다른 호스테스들이 말렸다. 미스 김은 울면서 방에서 빠져나와 호스테스들 품으로 들어갔다.
   " 비열한 짓은 골라서 다 했군. "
   황소의 안색이 바뀌면서 망치를 노려보았다.
   " 흐흐.. 네 놈을 무릎 끓게 한 다음 저 악쓰는 계집도 맛 좀 보아야겠다. "
   덩치 큰 망치가 성큼성큼 황소에게로 다가갔다. 둘 사이의 간격이 일미터정도로 좁혀졌다. 망치는 권투하는 폼으로 왼손으로 쨉을 서너번 날렸다. 황소는 상체만 움직여 망치의 왼손을 피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가볍게 쨉만 날리던 망치가 드디어 오른손으로 황소의 턱을 향했다. 황소는 두어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피하다가 등뒤로부터 벽의 촉감을 느꼈다. 황소가 주츰거리자 망치는 빠르게 양쪽 주먹을 휘둘렀다.
   " 죽어라. "
   망치의 힘이 들어간 펀치가 그대로 황소의 안면을 겨냥했다.
   " 퍽 -- "
   " 으읍... "
   망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망치의 주먹은 황소의 얼굴을 치지 않고 시멘트벽만 두들겼다. 황소는 망치의 주먹을 피하면서 어느 새 망치의 뒤로 와서 서 있었다. 망치가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뒤로 돌아섰다. 그러나 황소는 놓치지 않고 몸을 돌렸다. 황소의 몸이 공중에서 한바퀴 회전하면서 그대로 망치의 안면을 오른발로 걷어찼다.
   황소의 주무기인 공중 돌려차기였다.
   " 악 --- "
   거대한 덩치가 그대로 옆으로 나가 자빠졌다.
   " 젠장.... "
   불곰이 비틀거리는 몸을 세우더니 악을 쓰면서 황소를 향해 몸을 날렸다. 황소는 달려오는 불곰을 쓸쩍 피하며 발을 들어 불곰의 등을 세차게 밀었다.
   " 쿵 --- "
   둔탁한 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불곰은 시멘트 벽을 그대로 자신의 머리로 들이 받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머리가 깨져 피가 불곰의 얼굴을 덮었다. 불곰은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그 옆에는 망치가 역시 엎어진 채로 몸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호스테스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손으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 중 미스 송이 한 손에 깨진 맥주병을 들고 복도를 거쳐 망치의 앞으로 다가갔다.
   " 나쁜 자식... "
   한 마디 내뱉더니 그대로 깨진병을 들어 망치의 다리사이를 찍었다.
   " 악 - "
   망치는 처절한 비명소리를 지르며 나뒹굴었다. 그의 다리사이에는 어느새 피가 새어나오면서 바지를 붉게 물들였다. 미스 송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또 다시 맥주병을 쳐 들었다.
   " 그만해. "
   황소의 짧은 명령에 미스 송은 맥주병을 내 던진채 대기실로 향했다.
   " 이 놈들을 밖으로 끌어내라. 밖에 같이온 놈들이 있을거야. "
   " 알겠습니다. "
   웨이타들은 빠른 동작으로 불곰과 망치를 부축하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출입문이 열리며 불곰과 망치가 질질 끌려나오자 그랜저에서 대기하고 있던 둘은 후다닥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 어서 병원으로 옮겨라. 그렇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거야. "
   덩치가 큰 웨이타는 한마디하고 다시 '초야' 룸살롱으로 들어갔다.
   " 형님 -- "
   둘은 불곰과 망치를 부축이며 빠르게 차에 실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했다.
   룸살롱 안에서는 웨이타들이 분주하게 청소를 시작하고 있었다.
   " 철구는 나 좀 보자. "
   황소는 철구를 데리고 입구 바로 옆에 있는 룸으로 들어가 앉았다.
   " 그래 피해는 어느 정도지. "
   " 민식이가 불곰의 머리에 받혀 가장 크게 다쳤고 3 명이 조금 다쳤습니다. "
   " 민식이 상태는. "
   " 한 일주일은 입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
   " 음. 그리고 여자애들은. "
   " 예. 김양이 망치란 놈에게 룸안에서 당했습니다. "
   황소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 당분간 이 곳의 영업을 폐쇄해라. 개미파 놈들이 또 다시 쳐들어 올 것이야. "
   " 예. 알겠습니다. "
   " 그리고 모두에게 연락을 해서 지부장들을 '금단옥' 으로 모이라고 해. "
   " 예. "
   황소는 무엇인가 커다란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비벼 꼈다.

    어둠이 깊어 지면서 하늘에서 조금씩 비를 뿌렸다.
   목욕을 마친 사내는 수건으로 몸을 닦으면서 비가 내리고 있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북한강을 끼고 지은 건물이라 창가로는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많은 건물들이 잔잔한 불빛으로 간판에 불을 밝히면서 젊은 청춘 남녀를 유혹하고 있었다.
   ( 흠. 비가 알맞게 내리는군. )
   사내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었다. 단단한 근육질의 육체가 형광등 불빛에 반사되어 더욱 탄탄하게 보였다. 대충 머리를 말린 사내는 가방을 열어 깨끗하게 포장이 되어 있는 츄리닝을 꺼냈다. 그리고 팬티를 입고 츄리닝을 입었다. 거울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 시간이 9 시. 2 시간정도면 충분하겠지. )
   사내는 가방을 정리하고 나서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 층까지 내려와서는 카운타 보이에게 다가갔다. 보이는 단정하게 인사를 했다. 사내는 505 호 키를 보이에게 맡겼다.
   " 이따가 나를 찾아오는 여자가 오면 키를 주게. "
   " 언제쯤 오실 건가요 ? "
   " 한 두시간쯤 걸릴거야. " 사내는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가냘픈 빗줄기가 얼굴을 간지럽혔지만 사내는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사내는 양평교를 지나 양수리까지 순식간에 도달했다. 어느틈인지 사내의 코 밑에는 수염이 달려있었다. 그리고 머리 스타일도 흰머리가 많은 머리로 바뀌었다. 누가 보아도 60 은 넘은 나이로 보였다. 양수리를 거쳐 북한강 줄기를 따라 문호리로 방향을 바꾼 사내는 처음보다 속도를 줄였다. 북한강을 끼고 있는 도로에는 차가 가끔씩 지나갈뿐 조용했다.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사내는 숨을 서서히 토해내면서 꾸준히 같은 속도를 유지했다. 사내가 달리고 있는 좌측은 북한강 줄기였고 우측으로는 산이었다. 그 산을 깎아내고 돈 많은 사람들이 지은 별장이 띄엄띄엄 어둠속에서 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사내는 이제 완전히 속도를 줄였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토해낸 사내가 3 층 별장을 노려보았다.
   ( 다 왔군. )
   사내는 그 별장을 바라보다가 좁은 도로를 통하여 산으로 올라갔다. 별장으로 향하는 커다란 길이 있었지만 사내는 일부러 숲으로 들어갔다.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사내는 능숙하게 숲을 헤쳐 나갔다.
   별장은 1 층만 불이 켜져 있었고 2 층과 3 층은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별장 입구에는 커다란 세퍼드 2 마리가 좌우측에 1 마리씩 있었다. 세퍼드들도 어둠이 깊었는지 엎드린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내는 어느 새 별장 뒤에 도착해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찾고 있었다.
   ( 지하 수영장의 물이 빠지는 하수구 통로가 있을텐데.... )
   사내는 건물 뒤를 두리번 거리다가 자신이 찾고자 하는 목표물을 찾았다.
   ( 음.. 바로 이 곳이야. )
   사내가 찾은 곳은 물이 빠지는 하수구였다. 사내는 빠르게 바지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물건을 꺼내었다. 그건 볼펜 크기의 랜턴이었는데 빛을 뿜는 성능은 아주 좋았다. 사내는 허리를 반쯤 숙인채 하수구로 들어갔다. 하수구에서는 아무런 이물질도 흘러 나오지 않았다. 10 미터쯤 갔을때 머리위로 맨홀 뚜껑이 보였다. 사내는 랜턴을 끄고 천천히 맨홀 뚜껑을 밀었다. 뚜껑이 열리면서 흐린 불빛이 하수구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사내는 맨홀 뚜껑을 완전히 열어 젖히고 밖으로 빠져 나와서는 다시 맨홀 뚜껑을 닫았다.
   ( 음... 역시 수영장이군. )
   사내가 나온 곳은 건물 지하에 설치된 수영장이었다. 수영장은 물이 완전히 빠져있었고 사내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사다리를 타고 수영장 밖으로 나왔다.
   ( 그래.. 이 곳이 가장 적당한 곳이야. 황 필두가 내일 이 곳에서 수영만 즐긴다면 이 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는데..... )
   사내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 비상구가 오른쪽에 하나... 좌측으로는 창고.... 차량이 1 대... 3 명 정도는 충분히 앉을수 있는 소파가 하나..... )
   사내가 열심히 주변을 살피고 있을때 비상구 쪽에서 발자욱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