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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국무총리상) | 1 | 500만원 | 1 | 300만원 |
금상(농림수산식품부장관상) | 1 | 300만원 | 1 | 200만원 |
은상(산림청장상) | 2 | 200만원 | 1 | 100만원 |
동상(산림조합중앙회장상) | 3 | 100만원 | 2 | 50만원 |
동상(경향신문사장상) | 2 | 100만원 | 1 | 50만원 |
입선(산림조합중앙회장상) | 120 | 20만원 | 5 | 20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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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농림수산식품부장관상) | 1 | 1 | 상장 및 부상 |
금상(산림청장상) | 1 | 1 | |
은상(산림청장상) | 5 | 5 | |
동상(산림조합중앙회장상) | 5 | 5 | |
동상(경향신문사장상) | 5 | 5 | |
장려상(산림조합중앙회장상) | 100 | 80 | |
가작(산림조합중앙회장상) | 200 | 50 | |
입선(산림조합중앙회장상) | 100 | - | 상장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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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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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1 ~ 2009-09-15 | ![]() |
2009-08-31 15:2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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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홍보실 | ![]() |
3041 |
1. 공모전 안내 및 우편, 방문접수를 위한 참가신청서를 다운로드 받으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
일반부 시수필 부문 심사위원은 총3명으로 구성되며 시인 및 수필,소설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올해 심사위원은 오세영 서울대교수(시인), 문정희 고려대교수(시인, 수필가), 오탁번 한국시인협회장(시인, 소설)입니다.
훈 격 | 제 목 | 성 명 | 주 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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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국무총리상) | 젖은 책을 읽다 | 박종인 | 부산시 사하구 감천2동 |
금상(농림수산식품부장관상) | 도토리를 주우며 | 박은숙 | 부산시 북구 화명동 |
은상(산림청장상) | 식장산 벌레 | 이용인 | 서울시 관악구 봉천6동 |
동상(산림조합중앙회장상) | 낙엽을 따라가다 | 조영민 | 경기 부천구 원미구 역곡동 |
동상(산림조합중앙회장상) | 작은 아버지의 소나무부활기 | 이신창 | 경기도 군포시 광정동 |
동상(경향신문사장상) | 숲을 위한 기도 | 임종훈 | 대구시 달서구 도원동 |
훈 격 | 제 목 | 성 명 | 주 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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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산림조합중앙회장상 | 숲에 갇히다 | 김우진 | 경기 부천시 원미구 중1동 |
입선(산림조합중앙회장상 | 처서 | 신준수 | 충북 청주시 가경동 |
입선(산림조합중앙회장상 | 단석산의 밤길 | 윤상근 | 경북 경주시 사정동 |
입선(산림조합중앙회장상 | 금강송 | 주안순 | 경기 군포시 당동 주공 |
입선(산림조합중앙회장상 | 산불 | 이윤경 | 대구시 북구 서변동 |
산림조합중앙회는 10월 12일, 산림청과 공동으로 개최한 제9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입상작 704점을 산림조합중앙회 홈페이지(www.nfcf.or.kr)를 통해 발표했다.
복권발행 수익금인 산림청 녹색자금의 후원을 받아 개최된 제9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은 우리 숲과 나무, 산, 산촌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표현한 작품 공모를 통해 국민들에게 숲을 사랑하는 마음을 확산시키기 위해 지난 8월 20일부터 9월 15일까지 27일간 산림문화작품을 접수하였다.
일반부의 사진과 시?수필, 학생부의 그림과 글짓기 등 4개 부문에 출품된 총 11,400여 작품을 각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공정하고 엄격한 심사를 통하여 대상 4점을 포함 총 704점을 입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일반부 대상(국무총리상)은 사진부문에는 이복현(경북 영주)씨가 강원 태백 매봉산에서 11월에 촬영한『자작나무 숲』으로, 시?수필 부문에는 박종인(부산)씨가『젖은 책을 읽다』로 수상하게 되었다.
또한 학생부 대상(농림수산식품부장관상)은 그림부문에는 서울 세화여자고등학교 1학년 김지선 학생이『그리운 풀 내음과 따스한 햇살의 추억』으로, 글짓기부문에는 서울 목동고등학교 2학년 이혜원 학생이『아버지와의 산행』이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번 공모전 입상작에 대한 전시회는 10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정부대전청사 중앙홀에서, 10월 31일에는 서울숲에서 개최한다.
또한 12월 12일부터 15일까지 4일간 서울 메트로미술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한편 올해 9회째를 맞은 산림문화작품공모전은 접수된 작품 수가 지난해 보다 약 1,300여점이 늘어난 11,400여점으로 매년 접수 작품수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는 등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져 명실공히 산림분야 유일의 종합공모전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특히 숲과 사람의 어울림, 산촌휴양공간, 일상생활속의 숲 등 다양한 주제의 수준 높은 작품들이 접수되어 국민적 휴식공간으로서의 산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일반부 사진 대상 : 이복현, 자작나무 숲
일반부 사진 금상 : 이창우, 겨울연가
학생부 그림 대상 : 김지선(서울 세화여고1), 그리운 풀내음과 따스한 햇살의 추억
학생부 그림 금상 : 전희주(서울 서래초4), 행복을 주는 자연
제9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입상작 발표 보러가기 : www.nfc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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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회 수상작 (일반부) ///////////////
대 상 수락산, 도서실(변삼학)
금 상 준경묘와 미인송(이분희)
은 상 지리산 시편(김찬순)
동 상 라디오속의 숲(김예슬)내산편백자연휴양...(장현재)산마을 산꽃세상(김정윤)
입 선 손(최은묵)가을산(정 수)숲 속엔‘오래된...(박종현)보물찾기(국정숙)푸른 응급실(문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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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독서를 즐기는 이슬이 다녀간 나뭇가지마다
침 바르고 읽은 흔적이 촉촉하다.
벌써 산새들, 오리나무에 앉아 지저귀는 낭독소리
숲가에 무덕무덕 핀 망초들이 경청한다.
바람은 키 큰 느릅나무에 앉아 팔랑팔랑 책장 넘기는
속독의 바람이 계곡의 물소리와 손잡고 합주를 이룬다.
도서관 맨 윗자리로 내려온 흰 구름,
향나무에 앉아 긴 수염으로 향내 맡으며 묵독 중이다.
어느 등산객은 제비꽃 방석을 깔고 앉아
표지가 하얀 자작나무 펼치고 주줄주절 그늘을 읽는다.
이곳 도서관은 대여를 해주지 않는다.
표지가 예쁜 미니 북을 절도(竊盜)해 가는 이를 본다.
연지 솔 같은 엉겅퀴꽃을 뿌리 채 뽑아가는가 하면
주근깨 아가씨, 산나리와 주렁주렁 복주머니를 달고 있는
금낭화 등, 야생화가 서가에서 뽑혀나간다.
도서관 사서인 태양은 보고도 못 본 척 눈을 감아주지만
뽑힌 서가의 빈 무덤에 눈물이 고일 듯 움푹움푹 아프다.
음이온 문장들로 빽빽한 책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언제 불량한 독자가 책갈피 한 장 북 꺾어갈지
표지에 예리한 칼, 펜으로 기념비 같은 낙서를 해댈지,
전날에 그어놓은 숱한 낙서의 흔적이 몸피마다 아프다.
대 상
제목 : 수락산, 도서실작가 : 변삼학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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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봄이었던가? 딸아이가 삼척초등학교 6학년이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하는 말이 “엄마 준경묘에서 소나무 전통혼례식을 하는데 우리 반 친구 신영이가 신부로 선택이 되었어요.” 라고 자랑삼아 떠드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소나무가 무슨 전통혼례식을 해?” 그리고 “초등학생이 또 무슨 신부야!” 라고 하면서 한참을 웃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며칠 뒤 뉴스를 통하여 딸아이가 말한 소나무 전통혼례의 연유를 알 수가 있었다.
보은에 있는 정이품송이 수명이 다하여 볼품이 없어지자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의 혈통보존을 위해 10여 년의 연구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형질이 우수하고 아름다운 소나무를 찾은 결과 준경묘의 미인송이 선택되었고, 그해 5월 8일 전통혼례의식에 따라 신순우 산림청장이 주례를 맡고 보은의 정이품송이 신랑이므로 보은 삼산초등학교 6학년 이상훈 군이 신랑 역을 맡았다.
그리고 삼척 미인송이 신부이므로 신부 역은 딸애의 친구인 삼척초등학교 6학년 노신영 양이 맡았다고 한다. 신랑 혼주는 김종철 보은군수가, 신부 혼주는 김일동 삼척군수가 맡아 치러졌으며, 그 후 두 소나무는 혼례식을 치른 최초의 소나무로 한국기네스에 등재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후 아이들 공부와 남편 뒷바라지에 6년여의 세월을 정신없이 보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삼척시립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숲해설가 교육과정을 이수하면서 준경묘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2007년 하반기부터는 삼척국유림관리소 소속 숲해설가로 십수 차례 준경묘를 드나들면서 주변 식생과 준경묘에 대한 해설을 해오고 있다.
제7호 태풍 갈매기가 전국 곳곳에 피해를 입히고 지나가던 7월 20일 식구들과 준경묘를 찾았다. 소나무 전통혼례식 후 7년, 그 사이에 어엿한 대학생이 된 딸과 고등학생이 된 아들, 그리고 남편, 정말 오랜만에 네 식구가 함께한 오붓한 산행이었다.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마을회관 앞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려 준경묘 입구 쪽을 바라보니 산은 안개에 가려 있고 안개비인지 이슬비인지 모를 빗방울만 간간이 날리고 있었다.
준경묘 입구로 들어서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한 지 10분여가 지나자 딸아이의 콧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기에 뒤를 돌아보니 뱃살이 넉넉한 남편은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다리쉼도 하고 땀도 식힐 겸 하여 식구들에게 나무와 풀 몇 종류를 설명한다. 고욤나무, 갈참나무, 노란 물봉선, 사위질빵 등 눈에 띄는 몇 가지를 짚어가며 설명하니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아는 체하며 몇 마디를 한다. 남편은 두메산골에서 나고 자라 웬만한 나무와 풀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기에 숲해설에 더러 도움이 되기도 한다.
또 다시 가파른 길을 오르기를 5분여 드디어 평탄한 길이 나타난다. 이쯤에서 또다시 직업병이 발동한 나는 “보통은 침엽수와 활엽수가 공존하는데 여기는 이상하게도 길 아래쪽은 활엽수인 참나무 종류가 많고 길 위쪽은 소나무가 주로 서식한단다.” 라고 설명을 하고 나니 남편이 하는 말 “어! 정말이네 일부러 길을 그렇게 낸 것도 아닐 텐데 이상하게 길 아래 위 쪽으로 수종이 다르네.” 하면서 신기하다고 한다.
길 아래쪽에 있는 계곡이 평소에는 메말라 있었으나 때마침 태풍 갈매기의 영향으로 내린 비 때문에 작은 폭포를 이루면서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폭포 때문에 계곡 전체를 덮은 뿌연 물보라 사이로 물까마귀 몇 마리가 먹이를 찾아 날고 있는 모습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원시림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신비하다 못해 두려운 마음까지 들게 하고 있었다.
준경묘를 향해 안으로 들어갈수록 길 위쪽의 송림은 점점 더 우거지고 땅거미가 내리는 듯 길바닥은 어두워져 간다. 땀에 젖었던 몸이 식어 등이 선선해질 즈음 길 위쪽에 울타리로 둘러싸인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이 소나무가 정이품송과 혼례한 소나무 곧 미인송이라고 불리는 소나무이다. “수령이 100년, 둘레 2m, 높이 32m….” 중얼대며 설명을 읽고 있던 남편이 미인송을 쳐다보면서 하는 말이 “야! 정말 멋있다. 뭐라고 해야 하나, 황홀하다고 해야 하나? 현기증이 난다고 해야 하나? 끝내준다 정말.” 심심산골에서 나고 자라서 소나무는 많이 보았으련만 이렇게 아름답고 황홀함마저 느끼는 소나무는 처음이란다. 그리고 왜 미인송이라 하는지 이해가 된단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었는데 자주 보니 이젠 무덤덤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옆에서 소나무 전통혼례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던 딸애가 “잘하면 내가 신부를 할 수 있었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린다. 아들놈이 무슨 말인가 싶어서 “누나! 왜?” 하면서 질문을 하자 “내가 키가 좀 작아서.” 라고 대답한다. 당시에 딸애가 삼척초등학교 어린이회장이었는데 키가 작아서 신부 선정에서 탈락한 것으로 생각하나보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준경묘가 보인다. 언제 좁은 숲 사이로 올라왔나 싶게 넓은 분지가 펼쳐지고 낙락장송 사이로 하얀 안개에 둘러싸인 준경묘가 보인다. 안개 탓일까?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경외감이 든다. 일부러 산을 깎은 것이 아닐까 싶게 산세가 끝나는 마지막 지점에 봉긋하니 봉분이 보이고 묘의 좌우로는 묘를 지키는 호위군처럼 쭉쭉 뻗은 금강송 군락이 에워싸고 있다.
이곳은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필히 찾아오는 답사 코스이고 풍수지리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명당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5대 후에 왕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흰 소의 피와 귀리 짚을 이용하여 장례를 치렀다는 목조의 백우금관 전설을 되씹으면서, 부모가 자식의 성공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잔디밭 위에는 수많은 잠자리가 날고 있었다. 이곳의 잠자리들은 사람 구경을 못해서 그런지 사람을 봐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머리 위에도 어깨 위에도 심지어 내미는 손가락 위에도 날개를 내리고 앉는다. 그 모습이 신기한지 딸은 손을 내밀어 손가락 마다 잠자리가 앉기를 유혹하며 재미있다고 깔깔거리며 웃는다.
일자각 옆에 있는 우물물로 목을 축이고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니 앞에서 볼 때와 또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전후좌우로 금강송이 빽빽하게 도열하여 준경묘를 호위하고 있는 듯하다.
이곳 금강송은 재질이 우수하여 1968년 광화문 복원에도 이용되었고, 2008년 2월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 복원을 위하여 이곳의 금강송을 이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숭례문 복원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운 금강송 숲을 앞으로 100년, 1000년 동안 볼 수 있도록 특별한 보호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금 상
제목 : 준경묘와 미인송작가 : 이분희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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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들 활시위 팽팽히 당기는데,
탱크 뚜껑 같은 그루터기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재선충에 병든 몇 그루의 소나무 숲속에서
팔이 잘린 상이군인처럼 고로쇠나무 몇 그루도 서 있었다.
돌무지에 모가지가 눌린
풀들이 비명을 질렀다.
살갗이 벗겨진 음나무와 팽나무도 신음을 뱉고 있었다.
절룩절룩 발목을 절면서
걸어내려오는 전나무들이
잠시 등 굽은 나무 등걸에 기대서
구름 흐르는 하늘을 오래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안개붕대를 칭칭 감은
지리산 무릎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혼불이 일렁이듯
진달래 철쭉꽃이
맞불처럼 번져가고
총구멍처럼 송송
옹이가 빠져 나간
고로쇠나무 숲에서
우윳빛 아침으로 세수한
이슬들이 툭툭
지리산 이마 위에 떨어졌다.
은 상
제목 : 지리산 시편작가 : 김찬순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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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할머니는 라디오 속에서 숲을 꺼낸다
전파를 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잎사귀들이
어두운 방 안 가득 채워지고
할머니는 허공에 손을 뻗어
오래된 나무의 살결을 더듬는다
라디오에 잡음이 서릴 때면
숲은 바람을 맞이한 듯 낮게 흔들리고
덩달아 떨리기 시작하는 할머니의 호흡
할머니와 숲의 비밀스러운 소통은
포클레인이 나무들의 긴 목을 부러트릴 때부터 시작되었다
사라지는 숲을 힘 없는 몸으론 지킬 수 없어,
할머니는 나뭇가지 사이에 녹음기를 걸어두었다
개발공사가 잠시 멈춘 밤이면
상처입은 나무들의 신음소리부터
그것을 위로하는 주변 나무들의 고요,
흐르는 바람이 연주하는 풀들의 푸른 음역들,
잎새들이 땅 속으로 삭는 소리까지 녹음되었다
할머니는 녹음된 테이프를 틀어
나무들을 위로하듯
오늘도 천천히 숲을 펼치신다
테이프에 새겨진 바람의 결이 천천히 흘러내리며
방 안 곳곳에 숲의 내음을 퍼트린다
할머니와 함께 자라난 오동나무 장롱에도
어린 나무들이 솟아오를 것만 같이 환하게 결이 빛나고
계속해서 잎사귀를 뱉어내는 라디오
할머니의 방을 넘어 거실까지 점점 번져오는 숲!
동 상
제목 : 라디오속의 숲작가 : 김예슬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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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는 산과 바다가 잘 어우러진 섬이다. 섬 하면 부딪히는 파도소리를 연상할 것이지만 삼동면 내산은 골이 깊어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이다. 그런 입지 조건에 산들은 편백나무로 뒤덮여 어머니 젖가슴처럼 골을 이루며 끊임없이 푸름과 맑은 물을 쏟아내고 있다. 그 향기로운 맑음이 흘러 다다른 끝자락에 고사리들의 꿈을 키우는 터전이 있다. 그곳 운동장은 진종일 아이들을 기다리지만 비둘기와 새소리만 주인이 된다. 어쩌다 체육시간이면 새들은 기다렸다는 듯 재잘거림을 싣고 한 고개 넘어 바닷가 물건방조어부림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갈매기의 지휘로 파도소리와 화음을 맞춰 신록보다 더 감미로운 합창을 시작한다. ‘음’ 꿈의 대화!
유월 초! 온 산하는 푸름으로 넘치고 실려 오는 훈풍은 앵두를 농익게 한다. 교실은 잠에서 깨어나고 아이들은 며칠 앞으로 다가온 숲속학교를 생각하며 기대와 설렘으로 그 날을 손꼽는 반짝거림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가는 곳은 내산편백자연휴양림이다. 그곳에서 사흘 동안 장소를 바꾸어 교실에서 못 다한 공부를 하게 된다. 학교를 출발하여 화천(花川)을 따라 봉화삼거리에서 내산마을로 접어든다. 들길을 지나 좁은 길로 들어서자 더 짙은 고요함과 푸름으로 둘러싸인 내산저수지가 나타난다. 댐처럼 넓은 수면엔 산이 거꾸로 보이고 햇살은 포플러 잎사귀처럼 반짝거린다. 그 풍경은 경북 청송의 주산지에 버금간다. 사십 년 넘게 태를 묻은 곳에 살고 있지만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늦봄 초여름의 내산편백림은 초경을 시작하는 소녀의 아픔과 성숙한 여인네의 자태로 유혹의 손길을 사방에서 내민다.
드디어 아이들은 여러 겹의 능선으로 둘러싸인 학습장에 도착한다. 팔십여 명의 전교생들은 한 동기 간처럼 감싸며 정해진 방으로 흩어진다. 잠시 고요가 흐르는 동안 시선을 포개진 산 주름 너머 공제선에 고정시킨다. 하늘과 맞닿은 곳엔 엷게 낀 연무가 한낮의 열기를 말하고 있다.
산속에서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뻐꾸기며 산새가 귀를 간질이고 학교를 벗어난 자유로움이 기분을 한층 더 돋운다. ‘이런 깊은 산 숲속에 오면 시인이 되는 거야!’ 편백휴양림 속에서 아이들은 시인으로 태어나기 시작한다. 하얀 도화지를 주자 나무, 새, 숲속학교 등등 떠오르는 것을 그림과 함께 꾸미기 시작한다. ‘숲속학교 / 우리 학교 / 언제나 다니고 싶어요!’마음이 행복하니 표현도 저절로 된다.
한쪽에서는 ‘아이쿠’하는 소리가 연방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매인 밧줄을 따라 잠행이 시작되었다. 안대가 원망스럽지만 아이들은 끝까지 하려고 한다. 눈의 소중함을 알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깨닫게 된다. ‘풍덩풍덩’ 조금 떨어진 물놀이장에는 개구쟁이들의 물놀이가 시작됐다. 한낮의 햇살이 꽤 두터워 더위를 느낄 즈음, 계곡물을 모아 만든 물놀이장은 아이들에게 천국과 다름없다. 밖으로 나오라 하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늘, 구름, 바람도 머물고 간간이 잠자리도 돌고 간다. 물놀이 모둠 선생님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편백 향기처럼 퍼진다. “선생님, 지렁이도 보고 사슴벌레도 봤어요.” 자연관찰탐구활동을 한 아이들이 신기함 반 호기심 반으로 자랑거리를 쏟아낸다. 시골에 살지만 아이들의 생활반경이 좁아지다보니 이런 경험을 더 신기해한다.
샌드위치 만들기와 다도(茶道), 원어민 선생님과 숲속영어교실을 보낸 아이들은 저녁밥 준비로 바쁘다. 나무들도 순차적으로 성장하듯 모둠활동에서도 고학년들이 동생들을 챙기며 한 끼를 준비하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꿈은 적어지고 물질이 중요시되는 세상이지만 여기에서 체험한 베풂과 협동의 소중함을 종잣돈으로 갖고 나간다면 세상살이는 좋아질 것이라고 혼자 중얼거려본다.
산속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어스름지는가 싶더니만 별들이 한둘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손전등을 챙겨 야간산행을 시작한다. 희끄무레한 비포장 산길이 윤곽을 드러내고 별빛은 한 주먹씩 길 위로 쏟아진다. 밝은 날이었다면 먼 산길을 소화해 내기 어려웠을 것인데, 어둠의 긴장과 친구들과 꼭 잡은 손, 별빛, 소쩍새 소리의 응원으로 전망대에 도착한다. 전망대에서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밤바다와 불빛은 지난날의 반성과 새로움을 그리게 해준다. 그 새 밤하늘은 무수한 야광사탕을 박아 놓은 것 같다. 한 개씩 뽑아 맛을 본다면 어떨까? 아마 달콤한 맛보다는 새콤하면서 차가운 얼음 맛이 날 것 같다.
어둠에 묻혀 내려오는 길! 조금씩 지쳐가는 모습이지만 산길 가장자리 풀섶 여기저기에 반짝임이 나타난다. 아이들은 어둠 속 반짝임의 정체가 반딧불이인 것을 알고는 무척 신기해하며 호기심이 발동하는 눈치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봐야 제격이란다. 어둠 가운데 한 줄기 빛을 우리에게 선물해 준 반딧불이를 고맙게 생각하자. 아이들은 풀냄새, 이슬냄새를 마시며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 꿈속에 젖어든다. 싸늘한 아침공기와 안개, 산새의 합창소리가 금빛 햇살에 자리를 비켜주며 새 날이 시작된다. 편백숲 길을 따라 나비생태공원으로 간다.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보며 아이들은 산과 나무, 자연의 소중함을 새긴다.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좀더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역력하지만 내년을 기약한다.
오늘 티 없이 자라는 아이들은 가을 하늘같이 투명하다. 산새는 아이들이 숲과 나무에게 받은 속삭임을 뻐꾸기에게 전하고, 뻐꾸기는 갈매기에게 전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은 반짝이는 동심의 합창을 수평선에 펼치고 파도는 어부림에 부딪혀 수정 같은 포말을 일으킬 것이다.
나무와 숲, 자연의 소중함을 언제나 잊지 말자고…. 그 섬 아이들의 외침은 태평양을 건너 온 지구촌 사람들에게 숲과 자연의 소중함을 새겨 줄 것이다.
동 상
제목 : 내산편백자연휴양림 숲속학교작가 : 장현재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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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겨울의 여유와 만흥이 봄빛에 녹아나며 보곡산골 골짜기는 꽃빛으로 봄을 틔운다. 봄이 되면 금산땅은 산꽃 세상이 되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인삼꽃은 작은 하얀 점으로 꽃이 피고, 산야는 다양종의 화려한 혼인잔치에 염정이춘색을 피워낸다. 자연의 문맹자가 되고만 현대인에게 산꽃축제는 세상살이 푸념이 성글성글 차오르며, 산향이 오감을 열어주는 금산땅에 눈길을 돌려 소중한 자연의 추억을 담아볼 만하다.
산꽃축제가 열리는 보곡산골은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과 국사봉, 산곡 간 사이에 있는 보광리, 산안리, 상곡리를 말한다. 녹두밭 웃머리라고 했던 땅으로, 토끼와 발을 맞추며 산다는 두메산골이다. 마을형성도 전란을 피하여 입향했던 사람들이 세거했던 피난처로 “오목지간의 피란지지”로 다섯 군데의 험준한 고개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봄이 되면 꽃 세상이 되어 고향의 봄 정서가 물씬 풍겨난다. 십여 년 전 민선군수가 환경에 관심을 보이면서 6백여만㎡의 산벚나무 군락은 국내최대의 자생지로 알려졌다. 산에는 산벚나무, 병꽃나무, 생강나무, 층층나무, 다릅나무, 물푸레나무, 국수나무, 신갈나무, 조팝나무, 때죽나무 등 수많은 종이 살고 있다. 또한 산딸나무의 군락지로 서식밀도가 매우 높다. 산딸나무는 단단하여 지게작대기로 최고로 ‘고자쌈’에서도 지는 일이 없던 나무였다. ‘고자쌈’이란 나무꾼들이 얼마나 심심하고 무료했으면 했겠냐만은, 먼저 다른 한 사람이 지게작대기를 땅에 박아 세운다. 그러면 상대방이 알코쟁이(Y자로 갈라진 부분)를 작대기로 힘을 다해 내려쳐 버리면 작대기끝이 뽀개지든, 부서지든 결단이 난다. 그러나 산딸나무 작대기는 고자쌈에서 끄덕도 없이 버티어주는 나무였다. 보곡산골은 생태환경이 건강하여 많은 수목과 지피식물인 양지꽃, 제비꽃, 산자고, 풀솜대, 윤판나물, 금낭화가 처처에 터잡고 살아가는 자연생태공원이다.
귀중한 문화유산 중 하나인 해인사에 보관하고 있는 「고려팔만대장경」 경판 중 64%가 산벚나무라고 한다. 산벚나무는 조직밀도가 치밀하고 갈라짐이 적어 조각, 가구재로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국궁의 재료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옛 문헌에는 산벚과 자작을 화목(樺木)으로 사용하여 대장경의 소재를 자작나무로 이해하여 왔다. 나비 역시 다양종의 많은 개체군이 살고 있다. 이곳은 남부와 중부의 점이지대로 종다양성이 풍부하고 축적량이 커서 나비연구의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보곡산골의 봄은 영춘목인 생강나무가 노란빛으로 툭 터지며 시작된다.
이어서 양지녘에 찔레순이 돋고 신갈나무가 앞서서 신록을 머금고 산록을 오른다.
이 때쯤이면 수백만㎡의 산속에서 자생하는 산벚나무의 꽃봉우리가 잔뜩 힘을 주며 터질 듯하다. 축제가 시작되면 갑자기 많은 차량이 전국에서 모여든다. 산 공간은 간간이 푸른빛이 차오르고 눈빛보다 더 희고 화사한 산벚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듯이 피어나면 그저 산하가 모두 꽃세상이 되고 만다. 눈은 꽃으로 차고, 마음은 꽃으로 덮이고 마는 것이다.
산벚꽃으로 가득 차버린 산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관광객들은 “산벚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하지만, 애초부터 이 산 속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는 산벚나무의 자생지이다. 산꽃축제장은 임도를 따라 오르며 수종의 군생지에 따라 조팝꽃동산을 이루고, 진달래동산, 생강동산이 꽃을 피운다. 이렇게 초목의 세간을 들여다보듯이 관심을 가지면 자연과 하나로 동화되는 길이 된다. 이런 산길을 걷다보면 산꽃세상의 이름처럼 ‘산꽃세상’ 정자에 오르게 된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가히 꽃들의 정열로 가득 차 있어, 꽃들의 반란으로 일어선 것 같다. 이 때쯤이면 동네사람들은 관광객에게 밀려 동네를 내어주고 만다.
산꽃축제의 구성에는 마을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문화를 공감하는 좋은 소재가 된다. 보곡산골에서는 지게상여놀이가 행해져 왔다. 산에 나무하러 갔던 동네사람이 심심해서 지게를 길게 맞대어서 구성지게 맺고 풀며 상여놀이를 해왔다. 지금이야 지게조차 귀한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한 시대를 뛰어넘는 상여놀이는 산골마을에서 느끼는 흥미진진한 만흥이다. 또 마을 뒷산 산록을 거슬러 오르면 두 아름을 차고 넘는 산제당 소나무가 있다. 지표부의 껍질은 귀갑을 이루고 줄기는 용틀임으로 가지로 오르며 수간을 넓게 펼치며 빼어난 자태로 긴 세월을 지키고 있다. 매년 정월이면 산제를 드리며 마을의 안녕을 축원했던 곳이다. 산제당에는 손품에 들어오는 작은 철마를 모셔 호환을 막았다고 한다.
산꽃축제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축제기간으로 축제기간은 미리 정해지지만 산벚의 개화기는 기후에 따라 달라지므로 산벚꽃의 짧은 화기가 축제기간과 제대로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축제가 먹고 마시며 눈으로 보는 축제라면, 산벚꽃축제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마음이 열리며, 가족과 연인의 따스한 손정이 꽃기운에 어지럽게 훈훈할 것이다.
동 상
제목 : 산마을 산꽃세상작가 : 김정윤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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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입구에서 아이는
엄지와 검지를 벌려 산의 높이를 잰다
한쪽 눈을 감고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하다가
이따금 푸르르르 박새 한 마리 날아갈 때면
엄지와 검지는 금방 권총으로 바뀐다
빵, 아이의 총알을 맞고 굴참나무 부스럭거릴
새를 찾아 산을 오른다
겨우 엄지와 검지에 들어갈 산이
멀리서는 아내 엉덩이마냥 둥글둥글 미끈하더니
할퀴고 찢긴 것들 속으로 품고 있다
구르다 다친 바위 나무뿌리에 기대고
이끼는
깨진 바위틈을
심줄 퍼렇게 부둥켜 잡고 있다
산은
가려진 멍울이 모여 높이를 이루었을까
두 걸음 아래 아내에게
손을 내민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이끼의 손을 잡은 바위
엄지와 검지 틈에 눌려
딱쟁이진 비밀을 가만히 움켜쥔다
보듬어 모인 것들 오르락내리락 서로 이어진
산,
그 손을 잡는다
입 선
제목 : 손작가 : 최은묵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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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우리 집에
가을 산이 택배로 왔다.
알밤 한 자루 산골 어머니가 보내신 마음 한 자루
들어보니 무겁다
해마다 고향의 가을 산을 보내오시는 어머니
당신은 고향의 뒷산이다
새들에게 줄 양식으로 언제나 주머니가 불룩해
봄에는 주머니에서 넌출넌출 고사리를 꺼내주고
가을에 주렁주렁 알밤을 꺼내주시고
새들 훌훌 허공으로 떠났다가 포르르 나무로 날아들 듯
훌훌 객지로 떠났다 명절 때 포르르 고향으로 날아가는 우리들
그 때마다 늘 바쁘신 당신
품에서 먹을 것 꺼내 새들에게 나눠주느라 바쁜 가을 산처럼.
입 선
제목 : 가을산작가 : 정 수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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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연은 후손들로부터 빌린 것이다. 빌린 본전(자연)을 까먹지 말고 그 이자만 가지고 살다가 그 본전만큼은 고스란히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말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생명사상이 담긴 ‘본전론’이 새삼 떠오른다. 우리는 지금 개발이라는 휘호 아래 마음대로 자연을 훼손하거나 파괴하고 있다. 잘 보존된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게 우리를 건강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올해로 15년째 나는 걸어서 다닌다. 직장에서 집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야트막한 선학산 숲길을 에돌아 6km 남짓 되는 거리를 1시간 40분이나 걸려 걸어 다닌다. 처음에는 만성간염과 초기 우울증, 그리고 어지럼증, 약시 등 걸어 다니는 종합병동인 내 병을 고치기 위해 걸어 다니다가 요즘 와서는 하루라도 산길을 걷지 않으면 오히려 병이 날 지경으로 걷기에 중독되어 버렸다. 지금에사 산과 숲이 지닌 진정한 매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근무를 마치고 20여 분을 걸어서 차들이 붐비는 시내를 빠져 나오면 선학산 숲길 초입에 들어선다. 길 옆으로 열병한 삼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채 나를 안내한다.
오르막으로 막 들어설 때면 꽃향기 지천으로 풍기던 아카시아 잎들이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가 하면 낮은 키로 탐스럽게 익은 빨간 산딸기가 길도 없는 산기슭으로 나를 유혹하기도 한다. 손바닥에 딸기물이 배도록 따먹고 나서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반 시간 정도 오르고 나면 정상이다.
정상, 벚나무숲으로 조성해 놓은 체육공원에서 잠깐 땀을 말리곤 곧바로 하산길로 접어든다. 한참 내려오다보면 작은 골짜기를 만난다. 땀범벅이 된 얼굴을 찬물로 훔치고는 물 위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소금쟁이, 물매미, 무당개구리를 보고 있노라면 풀벌레 소리와 매미소리, 뻐꾸기울음이 떼지어 골짜기로 몰려든다. 푸르른 내 몸 속 가득 풀벌레 울음으로 채워지는 듯하다. 숲속 개울물에 비친 맑은 내 모습을 보면서 내려올 때면 온 세상이 모두 내 것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숲에서 나오는 천연 항생제인 피톤치드를 마시며 각시붓꽃, 이질풀, 골무꽃 등 다소곳하게 핀 예쁜 꽃과 원추리, 병꽃, 쑥부쟁이, 구절초, 개미취 등 제법 돋움발을 해서 제 색깔을 뽐내는 꽃들이 이른 봄에서 가을까지 길섶에 나와 나에게 계절 인사를 건넬 때면 하루의 피로가 씻은 듯이 날아가 버린다. 몸도 한결 가벼워지고 머릿속을 지배하던 잡념들도 사라져 버린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산과 숲은 걸어다니는 종합병동인 내 몸을 건강한 몸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젠 숲길을 걸으면서 나무들이 풍기는 향기도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낮은 산기슭에 서식하는 오리나무나 아까시나무와 같은 잡목에서는 좀 눅눅하고 비릿한 냄새가 나고, 산등성이부터 정상까지 지배하고 있는 소나무나 잣나무에선 맑고 상쾌하면서도 달근한 향기가 난다. 그리고 숲은 어느 수종이든 거만을 피우거나 세상을 독점하는 법이 없다. 소나무나 오리나무와 같은 키 큰 나무는 그 아래 국수나무와 거북이손 등 키 작은 나무들을 돌보며 함께 살아가고, 가장 낮은 바닥에는 마삭줄이나 달개비와 같은 풀들이 서식한다. 이처럼 숲은 크고 작은 나무, 잘나고 못난 나무들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하나의 세상을 이룬다는 걸 숲길을 걷는 나에게 가르쳐준다.
산과 숲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갈 무렵,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이유미의 『우린 숲으로 간다』, 소로우의 『월든』등을 읽고 감동을 받아, 환경과 생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한 말을 나는 ‘아는 만큼 사랑한다.’로 바꾸고 싶다.
숲길을 걸으면서 나무들의 생태와 숲의 천이에 대해 알고, 숲-나무와 더불어 꽃과 곤충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 자연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고, 더불어 꽃과 곤충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 자연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고, 그 관심이 자연 사랑을 몸소 실천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도록 했다.
산과 숲은 사색의 공간이자 창작의 공간이며, 생명과 건강의 공간이자 어머니의 공간이다. 숲과 숲길이 있었기에 사상과 종교가 싹틀 수 있었고, 숲이 있기에 뭇 생명이 둥지를 틀 수도 있지 않는가. 인간의 정신을 가꾸게 하고 건강을 지켜주는 숲, 숲속의 수많은 생명들이 우리를 위해 꽃피고 노래하고 그늘을 주며, 나아가 그들의 목숨까지 우리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있음을 직접 본 나는 숲이 곧 나의 스승임을 깨달았다.
숲과 산, 우리가 사는 이 자연은 후손들로부터 빌려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숲과 산, 자연이 주는 혜택을 맘껏 누릴 자격은 있을지언정 그들을 짓밟거나 정복할 권력은 없다. 우리가 빌려 쓰고 있는 이 자연을 처음의 온전한 모습대로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숲길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갈 우리 후손들의 ‘오래 된 미래’를 떠올리는 내 머리 위에서 소나무, 오리나무, 산벚나무들이 일제히 손을 뻗어 하늘에다 넓고 푸른 둥지 하나를 그리고 있었다.
입 선
제목 : 숲 속엔‘오래된 미래’가 산다작가 : 박종현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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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산자락이 강줄기처럼 굽이쳐 흐르는 가운데 마치 용이 사방을 감싸 안듯 사방이 짙푸른 산으로 둘러싸인 조용하고 아담한 작은 마을 도곡리. 추석이 막 끝났음에도 매미가 울고 잠자리가 곧잘 날아다니며, 선선한 초가을 바람이 살랑거린다. 등산복 차림의 아버지가 가방과 두 손 그득히 상수리나무에서 열린 도토리와 잘 익은 밤, 어름이 주렁주렁 달린 나뭇가지를 안은 채로 방 안에 들어서셨다.
“숲에서 보물을 한가득 가져왔지 뭐냐.”
우리 마을 뒷산 고개에는 밤나무가 가득해서 추석철만 되면 곧잘 사람들이 밤을 털어가곤 했다. 산 속에는 상수리나무가 있어 도토리를 줍기 쉽고, 그 근처에는 솜사탕 같은 어름열매가 열려 있다. 아버지가 주워온 도토리는 아직 익지 않아 새파랬지만 밤은 반질반질한 황토 도자기처럼 익었고, 어름은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껍질을 반쯤 벌린 채 탐스러운 과육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도토리는 좀 더 익어야겠더라.”하시며 “숙아, 어름 한 입 먹어봐. 참 달다.”고 어름을 떼어 주셨다. 어름이 혀에 닿자마자 달콤한 과육이 입 안 가득 맴돌았다. 풋풋한 숲 냄새도 코끝을 간질이는 것 같다.
어름의 까만 씨앗을 뱉어내며 달콤함을 즐기는 동안, 문득 지난 2006년 여름에 오서산 자연휴양림으로 캠프에 다녀왔을 때가 떠올랐다.
환경연합에서 일하시는 대학 신문사 선배가 대전충남 생명의 숲에서 주관하는 ‘2006 어린이 여름 숲 체험 캠프’에 자원봉사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셨다. 당시 나는 한창 여름 수련회와 기자 활동으로 정신없었지만, 도시의 어린이들에게 숲을 체험하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하는 이 캠프의 취지에 공감하여 선뜻 하겠다고 나섰다.
8월 1일 이른 아침, 나는 대전지역의 초등학생 몇명과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함께한 가운데 오서산 자연휴양림으로 캠프를 떠났다. 출발과 동시에 주영이라는 꼬마 아이가 엄마랑 떨어지기 싫다며 울어대는 통에 가는 내내 아이를 달래며 ‘괜히 왔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명대계곡이 소폭포를 이루며 흐르고 낚시터로 유명한 정현 저수지와 여섯 개의 줄기가 모아 자란 육소나무가 반기는 오서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하자 주영이는 울음을 그쳤고, 나도 차 안에서 달려 나와 갑갑함을 벗고 맑고 시원한 공기를 가득 마시며 푸르름을 만끽했다.
숲 체험 캠프는 그 해에 6번째를 맞아 프로그램마다 참 알찼다. 아이들과 나무 목걸이를 만들어 자기소개를 하기도 하고, 휴양림에 마련된 수영장에서 물놀이도 했다. 저녁에는 야간 담력 훈련차 아이들과 휴양림 숙소 뒤의 산을 올라갔다 내려왔다. 아이들이 담력 훈련인데 귀신이 없어서 심심하다며 다음번에는 꼭 귀신을 넣어달라고 하기도 했다.
다음 날에는 보다 숲을 가깝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 숲에서 저마다 크고 작은 잎들을 모아서 인디언처럼 귀에 꽂거나 나뭇가지들을 엮어서 왕관을 만들었다. 왕관을 쓰고 굴참나무 숯으로 서로의 얼굴에 안경도 씌워주고, 얼굴에 이름을 쓰기도 하고, 수염을 그리기도 했다.
모든 것들이 즐거웠지만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은 ‘숲속 보물찾기’였다. 나에게 보물찾기란 상품을 타기 위한 놀이였다. 선생님들이 미리 숨겨놓은 하얀 쪽지를 찾아 그 종이에 적힌 연필이나 공책 따위의 상품을 받는 놀이가 바로 보물찾기였다.
그러나 숲 체험 캠프의 아이들은 벌레 먹은 나뭇잎, 곤충, 새의 깃털,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물건, 검은 빛깔의 돌멩이, 사람이 버린 물건, 자연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물건 등을 찾는 것이 보물찾기였다. 그래서 ‘이런 보물찾기는 아이들이 싫어할 텐데….’하고 걱정했으나 아이들은 곧,
“선생님, 이 나뭇잎이 꼭 우리 엄마 손 같죠?”
“동근이가 사슴벌레 잡았어요!”
하며 숲속에 가득한 보물들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주워오기도 하고, 처음 보았을 법한 사슴벌레 같은 곤충도 무서워하지 않고 잡아왔다. 아이들이 기존과는 다른 보물찾기를 재밌어 하는 모습에도 놀랐지만 숲의 나뭇잎이나 돌 등을 아이들의 시각으로 다양하게 바라보는 모습에 더더욱 감탄했다. 더불어 나는 초등학생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컴퓨터나 게임기에 빠져서 동심을 잃지 않았구나 하고 몸소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가 숲속 보물을 찾았다는 그 한 마디에 그 때의 보물찾기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손에 각자의 보물을 주워들고 기뻐하는 아이들이 눈에 선하다. 단단하고 곧은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높게 팔을 뻗은 숲, 제멋대로 자리한 바위가 멋있고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과 새소리가 평온하던 자연휴양림.
그 곳이 부럽지 않은 이 시골 동네에도 뜨겁던 여름을 보내고 파란 가을 하늘과 어울려 넘실대는 산등성이가 숲을 한 폭의 그림처럼 담아내고 있다.
오대산처럼 보물을 숲에 한가득 안은 채.
입 선
제목 : 보물찾기작가 : 국정숙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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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낙관 찍은 나무들
나는 상생지리 수혈 중이다
산비탈 아기자기 들꽃 눈사진 찍으며
구름 한 잔에 노란 비타민 몇 알 삼킨다
가난한 나에게 접수카드를 쓰라거나
또 다른 절차를 요구하지 않는 나무들
생이 생생한 처방대로
정수리 위 파란 아스피린 쏟아주며
땀 흘려 나를 비우라는 권유를 받는다
음이온 캡슐 공짜로 실컷 따먹은
산허리에서 몸을 푸는 중증 빈혈기
소신공양 중인 나무들
은빛 잠언 출렁한 산마루에서
휴식과 정서를 투여할수록
가슴에 한 송이 해바라기 피어
반짝 되살아나는 사랑
눈을 감자 나는 한 그루 바람이다
입 선
제목 : 푸른 응급실작가 : 문윤정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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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회 수상작 (일반부) ///////////////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널리 일깨우고 숲을 사랑하는 마음을 고취 시키자는 취지에서 모집한 작품 공모에 나타난 사람들의 관심과 열기는 역시 뜨거웠다.
총 500편에 육박하는 시와 수필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심사위원들은 시종 즐거운 긴장을 해야만 했다.
그 어떤 문예작품 공모에 투고된 작품들 보다 그 수준에 있어 조금도 뒤지지 않는 가편들이었다.
먼저 대상으로 뽑힌 안태현의 <봄꽃 피는 산을 오르며>는 자연스러운 시상의 전개와 감각적인 표현이 어울린 수작이었다.
"오랫동안 몸 안에 담아 두었던 어둠 벗어버리고 / 바람이 뽑아낸 연두빛 새순처럼/ 혀를 날름 거리며....."
마치 봄산에 피어나는 새순처럼 신선하면서도 나긋나긋하게 풀어내는 시어와 가락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자연을 사랑하자고, 숲은 소중한 것이라고 직접 소리쳐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울림을 주고 있었다.
금상에 뽑힌 진상용씨의 수필 <계양산에 관한 소묘>는 감동적인 수필이다.
조금도 흥분하지 않고 산행과 아버지를 통해 깊은 생의 의미를 서술해 내고 있었다.
은상 신경순씨의 <나무 섬>은 기성시인의 작품에 비교해도 될만큼 시적 긴장이 넘치는 산문시였다.
"...나무는 자신의 머리 위에서 자라는 생물을 떠받치기 위해 더 많은 가지를 만들어야 했고, 더 깊게 뿌리 내려야 했다..."등에서 보여지는 자연스러움도 돋보였다.
동상 김남희씨의 <연교 이야기> 송유미씨의 <식목제>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높은 수준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역시 동상인 김계숙씨의 <가을나무>는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데 자연의 소재가 얼마나 무한한 상상력을 주는 가를 알 수 있게 했다.
“나무는 애초부터 물동이였다. 눈물샘이었다 ....... 지난 날의 이력을 빨래 말리듯 시난고난 습기 찬 시름 한 자락 꼬덕꼬덕 말려버린 나무들,
그 눈물 흘린 흔적 감추기 위해 안개집을 지은 것이리라...”
윤점도, 이신창, 임채수, 윤삼현 제씨의 섬세한 문장의 수필과,
수목장에 대한 아름다운 생각을 피력해준 이용호씨의 <수목장-그 여백의 미>등도 심사위원들의 손에 오래 남았었다.
당선자들에게 아낌 없는 축하를 보낸다.
아울러 이번 문예작품에 사고와 정서의 일단을 주옥같은 글로 표현해준 많은 응모자들에게도 감사와 격려를 보내는 바이다.
심사위원 : 오세영, 문정희
대 상 봄꽃 피는 산을...(안태현)
금 상 계양산에 관한 ...(진상용)
은 상 나무 섬(신경순)
동 상 연교 이야기(김남희)식 목 제(송유미)가을나무(김계숙)
입 선 가을 숲(윤삼현)팔공산에서(윤점도)마을 뒷산과 도...(임채수)수목장-그 여백...(이용호)편백나무 할아버...(이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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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햇살을 비벼
슬쩍 색깔을 풀어놓는 꽃나무들로
온몸이 푸르고 붉어진다
봄꽃이 피는 산
삶의 자투리가 다 보이도록
유연하고 느리게
산의 허리를 휘감아 오르며
나는 한 마리 살가운 꽃뱀 같다
오랫동안 몸 안에 담아 두었던 어둠 벗어버리고
바람이 뽑아낸 연둣빛 새순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푸른 하늘이 내다보이는 산마루까지
달맞이 같은 추억을 끌고 오른다
고즈넉한 이 꽃길에
모두들 마음이 순해진 건지
작대기를 휘두르거나 돌을 던지는 사람이 없다
길을 내주고 기다려준다
꽃뱀 한 마리
겁도 없이
봄꽃 피는 산을 홀로 차지하고 오른다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대 상
제목 : 봄꽃 피는 산을 오르며작가 : 안태현작품평 : 대상으로 뽑힌 안태현의 <봄꽃 피는 산을 오르며>는 자연스러운 시상의 전개와 감각적인 표현이 어울린 수작이었다.
"오랫동안 몸 안에 담아 두었던 어둠 벗어버리고 / 바람이 뽑아낸 연두빛 새순처럼/ 혀를 날름 거리며....."
마치 봄산에 피어나는 새순처럼 신선하면서도 나긋나긋하게 풀어내는 시어와 가락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자연을 사랑하자고, 숲은 소중한 것이라고 직접 소리쳐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울림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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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 들어 첫 휴일, 오랜만에 아버지를 모시고 산에 가기로 작정했다. 버거스C 병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데다 팔순 앞둔 고령의 노환으로 혼자 힘으론 운신도 못하시는 까닭에 멀리 가는 건 무리이니 가까운 산이나마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앞에 밝힌 것 외에 이유 하나가 더 있다.
아버진 불편한 몸을 끌고 자꾸 좁은 베란다로만 나가려 하셨는데, 그것이 창문을 열어 신선한 바람을 쐬거나 햇볕이 그리워서만이 아님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된 것이다.
고향 강원도를 떠나 인천에 뿌리 내린 지 20여 년, 당시의 아버지는 건강했고 산을 좋아하셨기에 우린 함께 계양산에 오르곤 했었다. 지병의 악화로 10여 년째 누워 지내시지만 우리가 처음 이곳에 이사를 올 당시엔 베란다 밖으로 계양산이 마주 바라다보였다. 비록 작은 방이나마 따로 마련해 드렸음에도 그토록 베란다에 집착하시는 이유가 바로 사철 변해가는 산의 모습을 감상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인천의 진산(鎭山)이라 할 계양산(桂陽山)을 나도 꽤 좋아한다. 해발 394m로 인천에선 가장 높은 산으로서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아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 나무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강화도의 마니산이 형이고 계양산이 아우라 불릴 만큼 명산이며 날씨 변화에 따라 산 중턱까지 구름에 휩싸이기 때문에 멀리서 보아도 운치가 있다.
그러던 재작년 어느 날부터 공터에 건물들이 불쑥불쑥 들어서더니 아파트가 산을 완전히 가로막아버렸다. 창문을 통해 바로 보이던 산이 아버지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다.
꼭 그래서라고 끌어대기는 뭣하지만 그 뒤부터 아버지의 병력엔 치매 한 가지가 더 늘어나게 됐다. 소꿉장난을 즐기는 다섯 살 아이가 되었고, 당신 혈육들 얼굴조차 잃어버리고 말았다.
승용차를 산 밑의 주차장에 대놓은 다음 아버지를 휠체어에 옮겨 앉힌다. 그리고 산책로를 따라 휠체어를 민다. 잘 가꿔진 자연공원 휴양림의 나무와 꽃들을 바라보시는 시선에 모처럼 생기가 돈다. 어느덧 아버지의 눈길은 높디높은 산 정상을 향한다. 예전처럼 다리 튼튼하다면 한달음에 달려 오르실 것을.
길가 한적한 곳에 휠체어를 비켜두고 아버지를 업었다. 앙상한 뼈만 잡히는데다가 그나마 절반만 남은 육신은 낙엽인 듯이 가볍다.
줄줄이 오르고 내려가는 등산객들이 우리 부자의 산행을 기이한 광경인 듯 힐끗거리며 길을 비켜준다. 아무리 등산로를 손질해 놓았다고는 하나 쉰다섯 나이에 무릎관절도 좋지 않은 내가 아버지를 업고 오르기엔 만만치 않을 만큼 산이 가파르고 험하다.
문득, 옛일 하나가 기억되었다.
어린 시절의 고향 마을 뒤엔 큰 낭떠러지가 있고 거기에는 ‘공굴장’이란 풍습이 있었다고 전해져 왔다. 예전 살기 어려운 시절에 지독한 흉년이 닥치면 늙고 병든 부모를 지게에 져다가 그 벼랑 아래로 굴려버린다는 거였다.
한 사람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가서 아버지 공굴장을 치르고 돌아서는데 아이가 지게를 버리지 말고 가져가자 하더란다. 잘 두었다가 나중에 저도 아버지를 져다 버려야 할 게 아니냐는 말을 듣고 그는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셔왔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함께 뒷산에 올라 땔나무를 주우면서 아버지가 들려주신 얘기다. 검불처럼 야윈 아버지를 업고 산을 오르며 그런 기억을 떠올리게 된 게 아주 큰 불경(不敬)이긴 하다.
산의 절반도 못 올라왔는데 힘이 빠져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쁜 숨이 턱을 치받는다. 아버지를 산 중턱의 너럭바위에 조심조심 내려서 앉혔다. 솔숲 냄새 가득 묻은 가을바람 한 줄기가 시원하게 불어준다.
산기슭을 덮은 숲이 눈에 들어왔다. 산 속 나무들도 사람세상과 다를 바 없어서 곁의 나무에 기대서 피해를 주는 게 있는가하면, 천년 세월을 꼿꼿이 선 채 살아가는 고고한 나무도 있다.
아, 볼수록 계양산은 얌전한 새색시보다 더 몸가짐이 바르다. 겉옷자락을 안으로 끌어 여미며 속살이 드러날세라 추스른다.
묏새가 멧새를 부르는 저 등강너머엔 산국향기에 취한 산토끼가 낮잠을 자고 있을 듯 고즈넉하고, 꽃단풍이 들기 시작해 더 고운 산, 가을엔 산이 먼저 풍년이다. 가을 산은 세상에서 젤 부자이고, 늘 자기 것을 남에게 베풀어주는 알부자다.
다시 아버지를 업고 걸음을 떼었다. 뒤따라 오르던 중년의 남자가 고맙게도 등을 밀어준다. 없던 힘이 솟아나고 두어 시간 만에야 정상을 밟았다.
여러 방면의 등산로를 따라 올라온 사람들이 어우러져 땀을 식히고 있다. 각자 다른 길을 따라 올라왔지만 한곳에 모여 나름대로의 성취감을 만끽한다. 이들 중에서 오늘은 아버지가 가장 연장자일 듯싶다.
산봉우리에선 사방이 모두 내다보인다. 북쪽의 김포·고양, 동쪽의 부천,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드넓은 서해. 그러고 보니 허허벌판에 우뚝 서있던 이 산이 불과 이십여 년 만에 도심 속의 섬이 되어버렸다.
산 뒤쪽으로 눈을 돌린다. 차라리 그쪽은 보지 않는 편이 좋을 걸 그랬다. 큰 병 걸린 노파처럼 온몸 다 망쳐버린 산은 붉은 멍이 든 채 늘어진 젖가슴을 감출 줄도 모르는가. 단지 풍광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살점을 다 찢어가며 부스럼 같은 건축물들이 산의 발치를 더듬어 올라온다.
새로 골프장을 짓네, 마네, 강행하려는 대기업과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싸움이 갈수록 치열한 계양산은 돈에게 겁탈당하여 마지막 수치심도 잃어가고 있었다.
석양이 붉다. 서해로 지는 노을을 안고, 아버지를 등에 업고서 산을 내려온다. 올라갈 때보다 결코 만만치 않은 하산 길.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아올 산이 아주 가까이 있음에도 그동안 참 무심하였다. 노인의 근력이란 아무도 믿을 수 없기에 이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산행일지, 다음 주에라도 거듭 오게 될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내년 봄의 나무 햇순과 다시 단장할 가을 산을 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
칼바람 시작되기 전에 다시 찾아오리라. 조물주께선 나와 같은 게으름뱅이를 위해 머나먼 설악산, 지리산을 이렇게 가까이에다 옮겨놓아 두셨을 터이므로.
인천시 부평구 삼산동
금 상
제목 : 계양산에 관한 소묘작가 : 진상용작품평 : 금상에 뽑힌 진상용씨의 수필 <계양산에 관한 소묘>는 감동적인 수필이다.
조금도 흥분하지 않고 산행과 아버지를 통해 깊은 생의 의미를 서술해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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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의 한 곤충학자가 기막힌 세상을 찾아냈다. 아마존을 끼고 드러누운 밀림을 온종일 헤매던 그가 발견한 것은 수백 년 된 한 나무다.
높이 40m 둘레 9m나 되는 거대한 이 나무는 지붕에 흡사 땅덩어리가 얹혀 있는 듯 한 줄기 빛조차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가 나무 위에 어떤 곤충이 살고 있는지 궁금해 사다리를 놓아보았다. 하지만 사다리는 턱없이 짧다. 그는 오던 길을 되돌아가 수동 케이블카를 몰고 왔다. 곤충학자를 태운 케이블이 서서히 나무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곧 나무 위의 세상이 드러난다. 그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거기엔 섬이 있었다. 나무 위에 또 다른 나무들이 빽빽이 자라나 단단한 지대가 마련되어, 그 위에 색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여러 종류의 열매와 수십 종의 새도 보인다. 온갖 희귀한 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그 속에 수백 종의 곤충들이 서식하고 있다. 알로에처럼 잎을 겹겹이 둘러싼 어떤 식물은 그 잎들이 모아지는 가운데 7.4ℓ나 되는 물이 채워져 있었다. 이 섬은 누가 언제부터 준비해 온 것일까.
섬은 한 마리 어미 새의 소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미 새는 땅의 온갖 위협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새끼들을 키울 안전한 보금자리가 필요했던 어미새는 드디어 안전한 곳을 찾아냈다. 어미 새 눈에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어미 새는 풀과 마른 가지를 물어와 둥지를 틀기 시작한다. 물고 온 풀에 간혹 씨앗이 섞여 들어와 둥지에 싹을 틔웠다. 얼마 뒤엔 열매도 맺혔다. 햇볕을 받고 발갛게 익어가는 열매는 새들의 먹이가 되었고, 새들의 배설물로 나온 씨앗은 다시 싹을 틔우고 열매 맺기를 반복했다.
나무는 자신의 머리 위에서 자라는 생물을 떠받치기 위해 더 많은 가지를 만들어야 했고, 더 깊게 뿌리내려야 했다. 점점 늘어가는 무리들이 먹어야 할 물이 필요하자, 넓고 튼튼한 잎을 가진 식물은 스스로 물을 가둘 수 있도록 진화되어 갔다.
그들은 한 꿈을 위해 서로를 희생하고 있었다. 식물들은 햇빛으로 엽록소를 만들어 단단하게 우거지고 곤충들은 달빛에 이슬을 받으며 쉼 없이 터전을 일구어 나갔다. 어쩌다 하늘에서 귀하게 비라도 내리면 억센 잎은 넓은 잎을 펼쳐 물을 받아 겹겹이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그 속에 개구리 알을 품어 주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여러 종류의 식물과 곤충이 한데 어울리는 독자적인 섬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곳은 땅의 누구도 간섭할 수 없었던 불가침 영역이었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생태계를 꾸려 나갈 수 있었다.
‘나무 섬’은 얼핏 보기에 우연의 일치 같아 보이지만 땅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소망들이 모여 백 년에 걸쳐 이룩한 꿈이었다.
올챙이가 헤엄치는 물 속에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만히 비춰본다. 공해에 찌들은 하늘이 보이고, 온 종일 매연을 내뿜으며 질주하는 자동차 사이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총총 달려간다. 갑자기 헉 숨이 막혀온다. 이곳으로부터 멀리 달아나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나무 섬’으로 가고 싶다.
나무 섬은 베어지고 있다. 매초 축구장만한 우림지역이 사라지고 있다고 하니, 현대인의 꿈도 그만큼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죽자구나 달려온 이 세상도 언제 그 밑동이 잘려나갈지 모를 일이다.
훗날 나무꾼은 잘라낸 나무의 나이테를 세다가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울며불며 뛰어다니는 개구리들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난데없는 개구리의 출현에 놀라 잠시 두리번대다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세다 만 나이테를 마저 세 갈 것이다.
한 마리 어미 새가 되어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른다. 씨앗 하나를 물고 산과 강, 나무와 풀을 스쳐 지난다. 햇빛에 내 날개가 반짝 빛날 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내 씨앗을 빼앗아 달아난다. 어디선가 그 씨앗은 곧 움터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개구리를 부를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나무 섬을 꿈꾼다.
대전시 서구 관저동
은 상
제목 : 나무 섬작가 : 신경순작품평 : 은상 신경순씨의 <나무 섬>은 기성시인의 작품에 비교해도 될만큼 시적 긴장이 넘치는 산문시였다.
"...나무는 자신의 머리 위에서 자라는 생물을 떠받치기 위해 더 많은 가지를 만들어야 했고, 더 깊게 뿌리 내려야 했다..."등에서 보여지는 자연스러움도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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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약나무꽃이고?”
“엄마가 젤루 좋아하는 꽃이잖아.”
“벌써 피었나?”
십삼 년 전 3월 중순이었다. 일흔여덟 번째 생신상 앞에서 시어머님과 남편이 나눈 첫 마디였다.
오랜 투병으로 기력이 쇠잔해진 시어머님은, 누워서 무슨 생일이냐고 하셨다. 그래도 남편과 나는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음식들로 상을 차렸고, 그 상 위에 올해는 특별히 남편이 준비한 작은 꽃병 하나가 더 놓였다.
한 뼘이 조금 더 되는 꽃가지 세 개에 스물 몇 송이의 노란 개나리꽃이 앙증맞게 달려 있었다. 아직 밖에서 개나리꽃이 피기에는 열흘 정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 때 이른 개나리꽃이었다.
강변으로 저녁운동을 나갔던 남편이 어느 날 볼품없는 나뭇가지 몇 개를 꺾어 들고 오더니 혼자 한참을 부스럭거렸다. 끝을 엇비슷하게 자르고 설탕물에 담갔다가 꽃병에 꽂았다.
“오늘 보니 가지에 꽃망울이 벌써 부풀고 있잖아. 이거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거든. 우리 시골에서는 이 개나리를 약나무라고 불러. 지금 잘 돌보면 어머니 생신 때쯤은 활짝 필 것 같은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
심드렁하게 여겼던 그 볼품없던 가지가 나날이 조금씩 심호흡을 하면서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더니 이윽고 그저께부터는 하나둘 노란 종소리를 터뜨리면서 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늘을 위하여 매일 물을 갈며 해바라기를 시키던 남편의 정성과 소망이 통했던가보다.
조금만 앉아계셔도 금방 숨이 차올라서 몇 번을 쉬시면서야 겨우 조반을 드셨다. 상은 물렸지만 개나리꽃병은 시어머님 눈길이 닿는 머리맡에 내려놓았다. 시어머님은 힘없고 앙상한 손을 뻗어 꽃송이를 어루만지셨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남편이 말했다.
“엄마! 풀쐐기 쏘여가며 땡볕에서 연요 따시던 거 생각나세요?”
“…”
“그 해 내 등록금 걱정 덜었다고 그래 좋아하시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아! 나는 그때 보았다. 어머니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가에 가득 고여서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던 눈물과, 아들을 그윽이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에 참으로 오랜만에 봄 물결처럼 일던 엷은 웃음을!
그날 저녁 큼지막한 케이크 위에 긴 초 일곱 개, 짧은 초 여덟 개가 “생·일·축·하·합·니·다”란 가족들의 합창소리에 맞춰 춤을 췄다. 케이크 옆에 다소곳이 놓인 개나리꽃 송이마다에도 축하의 맑은 종소리가 달려 있었다.
중학생인 막내가 할머니 대신 후- 하고 촛불을 끄면서 말했다.
“오빤 개나리 꽃말이 뭔지 모르지? 희망이야. 서양에서는 개나리꽃을 골든 벨이라고 해. 노란 종처럼 생겼잖아.”
“오, 우리 막내가 대단한데.”
남편이 대단하다는 듯 막내를 바라봤다.
그때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경아 아빠! 당신 아침에 연요 따서 등록금 냈다고 하시던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아침에 들은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 줄을 몰라 하루 종일 궁금했던 참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들려준 개나리에 얽힌 시어머님과 남편의 사연은 봄마다 개나리꽃과 함께 아리게 피어난다.
70년대 초만 해도 시골에서 서울로 대학을 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고, 등록금 철이 되면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다. 봄에는 그래도 곡식이라도 내다 팔든지 하면 되지만, 여름에는 팔 것도 마땅치 않았다고 했다.
그런 어느 해, 구세주처럼 나타난 것이 약나무 열매였다. 지금은 어디서나 ‘개나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노란 꽃이 피는 봄의 전령사. 서울 근교에는 열매가 달리는 개나리가 잘 안 보이지만 남편의 고향인 경상북도 북부 지방에는 열매가 달리는 개나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영춘화로도 불리지만, 열매가 약재로 쓰여서 나무 이름도 ‘약나무’로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열매가 열리는 개나리는 중국이 원산지인 산개나리의 한 종류라고 문헌에는 나와 있다.
그 열매는 연교(連翹) 또는 연요라고 하며 팔월 말에서 구월 중순에 익으며 항균이나 항염제로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평소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않던 것이 그 해에는 근(斤)당 천 원도 넘는 바람에 팔월 땡볕에서 시어머님이 풀쐐기나 벌에 쏘여가면서 하나하나 푸른 열매를 손으로 따, 가마에 찌고 말려서 100근을 넘게 팔았더니 2학기 등록금이 거뜬히 되더라는 것이다.
그 다음 한 해도 마찬가지였고.
그때부터 시어머님은 개나리를 보면 반갑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며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꽃이 되었다고 했다.
강변의 개나리꽃을 본 순간 남편은, ‘아! 어머니가 혹시 이 꽃이 피는 것을 못 보고 돌아가실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쳤고 반사적으로 서너 개 꺾어왔노라고 했다.
시어머님은 이듬해 개나리꽃이 피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 해 병상에서 때 이른 개나리를 본 것이, 결국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노란 개나리꽃이 피고 있다. 아파트 울타리에서, 작은 등산로에서, 강변의 둔치에서도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다.
그 노란 꽃잎 속에서 시어머님 생전의 옅은 미소가 겹치면서 웃음소리가 환하게 퍼져 나오는 것만 같다. 고향 선영에 누워계시는 시어머님 유택 주변도 지금쯤은 개나리, 아니 약꽃의 노란 울타리가 장관을 이루고 있으리라.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
동 상
제목 : 연교 이야기작가 : 김남희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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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이 내리고 나무들 숲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구겨진 달빛처럼 바스락거리는 이파리들, 저만치 앞서가는 오솔길 따라, 나무들 숲으로 사라졌다. 나는 문득 눈 속으로 사라진 나무를 생각했다.
옛사람들이 죽은 자를 위해 심었다는 아그배나무, 경을 새기기 위해 물 속에 삼 년을 담갔다가 그 희디흰 살결에다 팔만대장경을 새겼다는 산벚나무와 자작나무의 껍질을 말갛게 벗겨 나라를 구하기 위해 수천수만 장의 천마도를 밤을 새워 신라 여인들이 수를 놓아 새겼다는 장니와 죽은 자의 떠도는 유혼을 달래기 위해 정원에다 편백나무를 심었다는 선사들의 깊은 뜻과 태양의 아들이 인간을 위해 불을 숨겼다는, 회양나무 속으로 나는 잉걸불처럼 깊이 걸어 들어갔다.
우우우 불씨가 날리고 불탄 나무들이 눈에 덮여 살아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힘찬 발굽 소리와 맥박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잎잎이 푸르른 경을 품고 뿌리째 훌쩍 날아가 버릴 듯 차오르는 우듬지 끝들이 불탄 사람들과 함께 흰 눈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걷고 또 걷다가 한 그루 나이테가 되거나 나무 속에 타다 남은 부지깽이처럼 한 그루 나무로 태어날 수 있다면… 붉은 달이 내 심장처럼 가시나무에 걸려 뻐꾸기처럼 우는 밤이면.
부산시 해운대구 좌동
동 상
제목 : 식 목 제작가 : 송유미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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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애초부터 물동이였다 눈물샘이었다
나무들 죄다 제 몸의 수분을 모조리 빼내고 있다
곧 지상에 뛰어내릴 나뭇잎 아프지 않도록
살면서 거쳐 온 봄과 여름을,
복수 차오른 슬픔과 아픔까지도 길을 내어 흘려보내고 있다
철새들의 이주로 밤새 수런거린 새벽녘,
한숨도 자지 못한 눈으로 숲을 바라보면
가을숲은 물안개 자욱한 유리성이 되어 있다
가을 내내 지난날의 이력을 빨래 말리듯
시난고난 습기 찬 시름 한 자락 꼬덕꼬덕 말려버린 나무들,
그 눈물 흘린 흔적 감추기 위해 안개집을 지은 것이리라
안개의 길을 따라 나선 햇살이 제 붉은 볼을 살짝
잎사귀에 그려 놓았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햇살의 볼이 뽈고족족 가장 붉은 열꽃으로 필라치면,
그때서야 제 하늘을 제 살을 고요히 땅 위에 내려놓는 것이다
가을나무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
동 상
제목 : 가을나무작가 : 김계숙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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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바람이 일고
강물처럼 화음(和音)이 흐르고
그리고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아침나절, 수목들의 끈끈한 수액에 체온을 적시며
신열(身熱)을 삭이는 저들의 실핏줄 하나하나에 시선을 던질 때
한순간 잠들어 있던 깨달음이 이끼마냥 돋는다
맑은 물살을 불러 일렁이는 산 오름길
숲 갈피에 오래 전 끼워 둔 추억의 풀씨들이
안단테 곡조로 발자국을 찍고 있었다
자작나무 몇 개, 철 지난 언어의 껍질을 벗고
바람 속을 날아오르려 하고 있다
이 청정한 가을 숲 어딘가에 은밀히 젖어 흐르는
향기로운 숲의 꿈,
그 베일을 벗기려는 듯 시시각각 손을 끄는
녹색바람, 녹색바람…
갈매빛 하늘 한 자락 숲에 머물러 제 빛깔을 덧입힌다
허상(虛像)의 거울에서 빠져나와 우듬지에 걸쳐 묻고 답하는 새털구름
홀연 숲 언덕으로 푸른 휘파람을 날렸다
그때 내 귀는 무극(無極)의 호흡소리를 듣고 있었다
차오르는 숲의 강물
눈썹이 젖은 채 건강하고 달디단 숲 바람을 마셨다
나는 은빛 자작나무 한 그루로 우뚝 서 있었다
많은 날을 숲의 바람으로, 숲의 강물로
넓고 넓은 세상으로 흘러갈 꿈을 꾸고 있었다.
광주시 동구 지산1동
입 선
제목 : 가을 숲작가 : 윤삼현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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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 깔딱재 넘어가면 새소리
계곡을 흔들어 헹구는 투명한 물소리 마중 나온다
그 소리에 땀을 씻으며 마음 씻으며
오소리가 지나간 길 따라가다 보면
골골이 스며 있는 역사만큼이나 깊은 소나무숲이다
하늘로 하늘로 뻗어 오른 아름드리 한 그루
두 팔 벌려 안아 보니
넘치는 생명력! 맑고 향기롭다
우렁우렁 나무의 폐부를 흘러나오는 기운
내 몸 구석구석 세포들 눈 뜬다
염불암 지나 동봉 올라가는
들숨날숨 가파른 사람들
지고 온 저마다의 무게 등성이에 부려놓고
아스라이 내려다본다, 두고 온 시간들을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굴 껍질 같은 세계를
탁 트인 시야로 굽어보고 있다
비로봉에서 동봉 서봉 좌우로
줄달음쳐 내린 굽이굽이 저 능선
힘껏 날개 펼쳐드는 봉황의 형상이라
한 번 날면 구만리를 간다는 전설의 그 새처럼
폐활량 큰 팔공이 지척에 있어
대구는 사시사철 숨 가쁘지 않았을 것이다
가쁜 숨 풀어 놓는 내 작은 허파에도 이윽고
푸른 숲 하나, 일렁인다.
대구시 북구 복현2동
입 선
제목 : 팔공산에서작가 : 윤점도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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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산은 서울의 동쪽 끝 둔촌동과 경기도 하남시의 경계면에 위치한 남북으로 약 4km 길게 뻗은 야트막한 구릉들로, 가장 높은 봉우리래야 해발 129m에 불과한 우리나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마을 뒷산으로, 특별히 경관이 빼어나다거나 유서 깊은 역사적 유적들을 많이 품고 있는 명산으로 꼽힐 만한 산은 아니나, 도심에서 벗어나 쉽게 깊은 산 속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울창한 숲과 계곡, 곳곳에 맑은 물이 솟는 옹달샘이 있는 등 산림욕을 겸해 가벼운 운동과 산책에 알맞은 산으로, 인근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삭막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쉼터 구실을 하고 있는 산이다.
아까시나무를 비롯한 아름드리 큰키나무들이 그늘 집을 짓고, 관목대열의 찔레나무 등이 군데군데 작은 군락을 이루며, 숲 바닥에는 앉은뱅이 풀들이 숲 깊이까지 들어온 여러 종(種)의 외래식물과 함께 촘촘히 자라고, 딱따구리 등 10여 종 이상의 텃새, 철새들도 천적(사람)들의 눈을 피해 둥지를 감춘 채 살아가고 있다. 거주지의 가까운 마을 뒷산에 철마다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고, 소박한 들꽃을 비롯해 온갖 생명들이 반겨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숲 속 생명체들의 모습과 이들이 내는 소리는 계절에 따라 다르다. 잎눈과 꽃눈을 깨우는 순한 봄바람 소리, 한여름 빗줄기가 넓은 잎을 때리며 내는 “후두둑 후두둑”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화음, 산들바람과 함께 들리는 풀벌레들의 합창소리, 겨울이면 회색빛 숲의 표정이 보이는 바람소리 등 고저장단이 다른 독특한 소리들로 일자산은 사철 건강한 숲으로 충만한 모습이다.
또 일자산은 우리네 삶의 애환과, 생태계 변화의 징후들이 느껴지기도 하는 산이다.
봄이 되어 단단하게 언 대지를 뚫고 얼굴을 내미는 들풀들의 연둣빛 여린 새싹이나, 모진 추위를 나목으로 버텨낸 가지에 돋는 새 움은 엄숙한 자연경외의 시작이다. 새싹에게 겨우내 맹아가 웃자라거나, 얼어 죽지 않도록 수분을 조절해 준 것은 누구이며, 겹겹 맹아의 껍질들이 벗겨질 때마다 내리는 봄비는 어떤 섭리에 의한 것일까?
일자산의 잎눈보다 꽃눈이 먼저 나오는 산수유·개나리·진달래·목련은 해마다 순서가 정해진 듯 차례로 피어왔으나, 근래에는 순서가 무너진 듯하다. 찔레나무의 경우 계속되는 춥지 않은 겨울로 인해 겨우내 맹아조절이 어려운지 파란 잎을 피웠다 지기를 반복한다.
계절과 계절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최근의 기상에 관한 기억들로 1994년 극심했던 가뭄과 함께 체온을 넘나들던 높은 기온에, 마치 ‘이승의 지옥 체험’같은 느낌이 들던 열대야. 2005년 2월 18일 낮 기온이 20°C에, 4월 하순경부터 여름 날씨의 징후를 보였던 ‘잊힌 봄’, 그리고 지난해의 ‘사라진 가을’이 꼽힌다. 지난해는 늦여름 기온(16~20°C)이 입동 무렵까지 이어진 탓인지, 아카시아는 12월 초에도 한여름 못지않게 ‘푸르렀고’ 활엽수들은 단풍 옷으로 갈아입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양, 그 곱던 본래의 단풍 색을 띄지 못하고 말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계절의 반란’이 일상에 가까워진 느낌이 드는 예사롭지 않은 징조들이 두렵기까지 하다.
아까시나무와 참나무는 천연잡목림 일자산 숲의 우점종이다, 매년 5월 초, 아까시 꽃이 한창 흐드러지게 필 무렵이면 필자의 아파트 창에까지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와, 꽃그늘을 찾게 한다. 꽃이 질 무렵의 바람에 날리는 아까시 꽃비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10여 년 전만해도 꽃철에 맞춰 양봉하는 이들이 수십 개의 벌통을 놓았으나, 요즈음은 놓는 이들이 없다.
따라서 벌들이 “잉잉” 날갯짓 소리를 내며 꿀을 모으는 정취는 보고 느낄 수 없게 되었다.가끔 꽃등에, 흰나비 몇 마리가 꽃 사이를 나는 쓸쓸한 꽃 잔치가 된 것이다.
지난 해 6월 중순경, 아까시나무에 이상 현상이 보였다. 일자산뿐만 아니라 전국의 산야 아까시 숲에 나타난 현상으로, 짙은 녹색으로 자라야 할 아까시 잎이 노랗게 단풍지는 황화(黃化)현상이 번진 것이다. 산림전문가들은 ‘병충해가 아닌 생육저하현상’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검증이 안된 전문가의 추측으로 들려, 혹시 ‘소나무 재선충’에 이은 아까시나무 역병(疫病)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일자산 아까시나무는 근래 잦아진 태풍 때 쓰러진 나무가 여럿이고, 노쇠현상이 뚜렷한 나무가 늘어나는 등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우점종의 선두자리를 신갈나무 등 참나무에 넘겨줄 것으로 예측되기도 한다.
일자산의 큰 참나무의 밑동으로부터 1.5~2m 높이에는 예외가 없이 수피(樹皮)가 짓이겨지고 부푼 채 굳어진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예전에 도토리 줍기에 나선 사람들이 떡메나 큰 돌로 참나무의 둥치를 내리친 흔적이다.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더 많은 도토리를 수확하기 위해 참나무를 때리고 또 때렸던 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참나무 밑 도토리를 줍는 일은 숲에서의 보물 찾기였으나, 요즘은 찾는 이들이 없다. 여물어 떨어지는 도토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7월 말경부터 ‘도토리거우벌레’가 풋도토리 열매가 달린 가지 새순의 5cm 근처를 모조리 예리한 칼로 자른 듯 끊어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다. 돌덩이 등으로 몸의 일부가 짓이겨지도록 맞으면서도 거르지 않고 열매를 맺어 결실에 이르던 참나무들도 이 벌레의 심술에는 속수무책인 듯, 결실률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으며, 산밤나무도 가시밤송이 모습만 보여줄 뿐, 밤알이 여물지 못하는 쭉정이다. 사라진 도토리와 함께 최근에는 참나무들이 성장 철에 말라죽는 ‘시들음병’이 이 산에도 번져, 이래저래 참나무의 수난이 우려된다.
겨울을 앞둔 다람쥐는 여기저기에 굴을 파고 도토리를 물어다 양식으로 묻어두는데, 이 중 새봄이 되어 다람쥐가 찾아내지 못한 땅 속의 도토리가 싹을 틔우고 큰 나무로 자라 숲을 이룬 것이라 한다. 결국 참나무는 다람쥐에게 겨울양식을 제공하고, 다람쥐는 참나무의 후손을 퍼뜨리는 데 도움을 준 공생적 관계인데, 참나무들은 다람쥐가 겨울 대비로 도토리를 땅 속에 저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
숲에는 신비한 생명의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뭇잎은 스스로 떨어진다.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다가 훌훌 털고, 거름이 되기 위해 자신을 낳아준 땅으로 돌아가는 숲 속 생명들에서 가을이면 절제된 생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다. 자신이 떠나지 않으면 봄~가을 동안 자신을 키워주고 붙잡아주던 나무의 몸통이 엄동설한에 얼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뭇잎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가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나뭇잎의 뒷모습이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하다.
식물이 잎과 꽃을 피우고 향(香)을 내는 것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후손을 번식시키기 위한 수분(受粉)을 해줄 벌, 나비 등 곤충이나 새를 부르기 위함이고, 눈속임이나 공짜로 손님을 유혹하지 않으며, 수분의 대가로 일용할 양식인 꿀과 꽃가루를 준다. 또 씨앗을 먼 곳에 퍼뜨리는 역할을 하는 운반역 동물에게는 씨앗에 영양가 있는 맛있는 살도 붙여준다.
숲 속을 걷는 일은 고요를 연습하는 일이며, 관찰과 몽상, 예기치 못한 만남, 놀라움 등을 경험하는 기회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숲은 거친 야성과 자연의 순결함과 원기가 충만한 곳이며, 두 발로 걸어야 다가갈 수 있는 곳, 그래서 때때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땀 속에서 자연과 교감을 이루면서, 생태적 상상력을 즐기는 곳이다. 연중 숲 걷기에서 가장 상쾌한 기분이 드는 때는 입동 무렵, 좀 싸늘한 기온에, 가을 가뭄 끝에 비를 뿌려준 날로, 진한 흙냄새가 느껴지는 날이다. 새벽 어둠이 걷히기 전, 숲길을 따라 찬 이슬을 맞은 서양등골나물이 흰 꽃을 피우고 도열하듯 서, 안내하는 착각이 들게 하는 이슬 길도 좋다.
12월의 일자산은 연중 가장 밀도가 느슨한 계절이다. 숲의 바닥에는 푸근한 낙엽 양탄자가 깔리고, 짧은 가을 햇볕을 받으며 잠시 꽃을 피웠던 ‘겨우살이’도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새들도 산수유·팥배나무 가지에 딸린 빨강, 깜장 열매를 외면한 채, 다른 곳을 찾아갔는지 날갯짓과 소리도 뜸해져 적막감은 더해간다. 높아진 그린(green)욕구와 건강을 위한 숲 걷기, 수돗물을 불신하는 ‘물통부대’인파로 사철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붐비는 일자산 거처에 불안을 느껴 떠나는 것일까? 까치밥 남기던 인정조차 메말라가는 세상, 궁지에 몰리고 있는 새들의 선택이 궁금하다.
일자산에 눈이 쌓이면 풍경은 더욱 단순해진다. 흰 눈이 덮인 사면(斜面)의 나무들은 흰 종이 위에 회갈색 점과 선으로 그린 한 폭의 수묵화다. 겨울 숲의 진수는 군더더기가 없는 간결함이다. 잎을 떨어뜨리고 곧추선 줄기의 단정함, 칼바람에 맞서는 의연함, 자연의 질서에 순응함은 우리를 성찰하게 하며, 자주 흐트러지는 정신을 가다듬게 한다.
매정한 인고의 세월 너머 봄의 ‘새싹’을 노래한 한승오 시인의 시를 읊조리며 오늘도 일자산 산행을 위해 신발 끈을 조여 맨다.
“차갑고 시커먼 땅 속, 작고 여린 씨앗이 홀로 몸을 웅크리고 있다./…(중략)/ 죽은 듯한 침묵, 흔들림 하나 없는 고요 속에서 / 씨앗은 아무도 모르게 불을 지핀다/…(중략)/ 아, 새싹은 스스로 불사르는 한없는 뜨거움이구나.”
30여 년을 오르내리던 마을 뒷산 일자산이 머지않아 ‘도시자연공원’으로 변모하리라 한다. 소박한 마을 뒷산 여기저기에 인공 건조물들이 들어 설 모양이다. 일자산을 잡다한 인공적 공원으로 ‘꾸미기’보다는, 옛 마을 뒷산으로 복원·정비하여 가꾸는 자연공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며, 서울을 비롯한 도시 곳곳에 산재한 차별화된 모습과 내용을 별로 찾을 수 없는 공원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에 꾸민 공원이 아닌 옛 마을 뒷산 모습으로 남는 도시공원 하나쯤 가꾸는 것도 뜻 있는 일이며, 따뜻한 이야기가 되지 않겠는가?.
‘개발’이라는 명분의 인간에 의한 자연파괴와 간섭의 결과는 오늘날 각종 공해 발생과 오염의 심화, 이에 따른 생태계 교란, 이상 기후 등 참혹한 재앙의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 손길의 최소화만이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길일 것이다.
서울시 강동구 둔촌2동
입 선
제목 : 마을 뒷산과 도시자연공원작가 : 임채수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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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장(樹木葬), 그것은 살아 숨쉬는 수묵화요!’
올 초, 환경운동가인 어느 후배가 술자리에서 자기 무릎을 치며 한 말이다.
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수목장은 여백의 미를 살린 동양화라는 것이다. ‘김장수 할아버지의 나무’라는 이름표를 걸고 있는 굴참나무 옆에는 바람이 지나가고 새의 노랫소리도 들리는데, 정작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 풍경화 속에는 사람, 즉 이 세상의 주인공이 직접 나타나 있지 않고 여백으로 처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완벽한 여백의 미야, 순수 예술의 극치야. 침까지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는 후배는 모처럼 희색만면이었다.
“형님, 저는 3년 전에 수목장을 이미 유언으로 남겼네요. 형님도….”
그 순간, 내 가슴 속에선 회오리바람 하나가 일었다. 나도 나름대로는 이 시대의 담론인 지구환경문제에 신경을 쓰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막걸리 한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 회오리 바람은 술기운에서 에너지를 얻어 더욱 세찬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혈관을 타고 온몸을 휩쓸고 다니던 그 회오리 바람은 아픈 곳을 쿡, 찌르더니 금세 사라졌다.
지구환경, 그것은 이제 우리 시대의 담론이 되었다. 하나밖에 없는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는 아마존 밀림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지구가 더워지고 있고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지구의 몸살기를 이 시점에서 치료하지 않으면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 환경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가슴에 쌓인 것이 넘칠 기미가 보이면 나는 서둘러 모악산을 찾는다.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늘 처음처럼 늘 푸른 초심으로 나를 맞아주는 어머니의 품 속 같은 산. 서남쪽 자궁자리쯤에 고찰 금산사를 자식처럼 품고 있는 산. 그 모악산 등산은 내게 몸과 마음의 구조조정 과정이다. 얽히고 설킨 세상살이에서 돋아난 상념들 중 성숙되지 못하고 떫게 응어리진 것들을 하나하나 산길에 내려놓으며 내 가슴 속에 여백을 만들어 가는.
약 10년 전, 나는 다니던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당했다. 명분은 있었지만 너무 앞서 간 것이었다. 준비도 없이 너무 높은 산의 정상을 탐낸 결과였다. 욕심에 숨고르기도 잊은 채 오르느라 길 옆에 ‘참나무’가 서 있는 줄도 몰랐다. 나만 옳다고 생각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깨지면서도 바로 앞에 ‘너도밤나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고, 결국 짙푸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마음의 병에는 등산만한 약이 아마 없지…?’
멀리서 안타깝게 지켜보던 어느 선배의 지나가는 말이었다. 직장에서 쫓겨난 나는 갖은 방황 끝자락 어느 날 모악산을 찾았다. 고등학교 시절에 몇 번 가본 후 직장생활 때문에 좀처럼 찾지 못한 산이었다. 그날 나의 모악산 오르기는 생의 한 전환점이 되었다. 몸과 마음의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아이가 엄마의 품 속에 뛰어들어 화풀이를 하듯, 그날 나는 세상에서 소외된 감정을 오악산 품 속에 뛰어들어 풀려고 했던 것 같다. 등산화와 등산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씩씩거리며 뛰듯 올랐다. 좀더 빨리 산 정상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며, 세상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 놓을 심사였다.
그날 나는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칠부능선쯤, 수왕사 바로 앞 어느 키 큰 나무 밑에 주저앉고 말았다. 오버페이스였다. 수왕사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법문소리를 들으며 그곳에 주저앉아 많은 생각을 했다. 발 앞에 몇 장의 나뭇잎이 떨어져 있었다. 또 한 장의 나뭇잎이 내 무릎 위에 떨어졌다. 무심코 주워 보았다. 물들기 시작한 그 나뭇잎은 다섯 갈래로 마치 사람 손가락 모양이었다. 그 나뭇잎으로 흐르는 땀을 훔쳤다. 정상으로 오르는 사람들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아버렸다. 법문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었다. 땀이 식어 한기를 느낄 때쯤 내 가슴 속에는 붉은 나이테 하나가 환하게 그어지고 있었다.
모악산 칠부능선에서 주저앉던 날, 긴 방황을 끝냈다. 빨리걷기와 조깅으로 몸과 마음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5년 이상이 걸린 내 생의 대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 42.195km 마라톤 풀코스를 두 번 완주했으며, 793m의 모악산을 자연스럽게 오를 수 있게 되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오르는 것이 나의 모악산 등산 원칙이지만 내가 잠시 머무르는 곳이 있다. 사철 칠부능선쯤에 서서 나를 기다기고 있는 고로쇠나무 앞이다. 그 옛날 생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그만 주저앉았던 바로 그 자리.
‘인간에게 헌혈을 하고 있는 고로쇠나무!’
사진과 함께 실린 어느 기사의 제목이다. 그 기사는 인간의 무분별한 산림훼손을 지적함과 동시에 점차 각박해지는 헌혈 인심을 꼬집고 있었다. 직장에서 반 강제적으로 했던 한두 번 외엔 헌혈의 기억이 없는 나. 인간에게 자기의 피를 나누어주는 어머니 같은 고로쇠나무, 그녀가 궁금해졌다. 식물도감에서 그녀를 찾았다. 단풍나뭇과로 잎은 마주나고 둥글며 대부분 사람의 손바닥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지며…. 비로소 나는 그 옛날 웃자란 마음으로 모악산에 올랐다가 도중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던 수왕사 앞 그곳이 바로 고로쇠나무 밑이라는 것을 알았다.
올 봄부터 내 가슴 속의 담론은 수목장이다. 내가 미래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일. 수목장, 그 세 글자가 내 가슴에 녹색 글씨로 새겨지는 순간, 내 가슴 속에는 고로쇠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수목장, 그것은 나의 새로운 꿈이 되었다. 요즘 나의 모악산 등산은 하나의 설렘이다. 모악산 칠부능선쯤에서 변함없이 나를 기다려주는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길. 문득 내 전생이 ‘고로쇠나무? ’
얼마 전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그 꿈 속에서, 누군가 나의 고로쇠나무에 하얀 이름표를 걸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 중 몇은 눈물을 흘리고 몇은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나자 사람들이 그 고로쇠나무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들은 나의 고로쇠나무에 누군가의 수목장을 치르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서둘러 모악산에 올랐다. 그 고로쇠나무를 만나러 갔다. 가로 5cm, 세로 3cm의 내 이름표를 만들어 품은 채. 고로쇠나무, 그녀의 몸에 나의 이름표를 달아줌으로써 그녀가 나의 영생목임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 고로쇠나무에는 그 어떤 이름표도 붙어 있지 않았다. 깊은 사색에 잠겨 있던 고로쇠나무는 나를 보자 깜짝 놀라 몸을 추스리더니, 손가락 모양의 나뭇잎을 살랑거리며 반겨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과연 내 선택을 받아들일 것인가. 나는 가지고 간 나의 이름표를 꺼내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나무처럼 서 있었다.
고로쇠나무, 그녀의 전생은 무엇이었을까. 혹, 전생에 맺지 못한 슬픈 인연을 그곳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 번의 심호흡을 하고 나서 모악산 정상을 응시했다. 이윽고, 나는 내 이름표 대신 내 마음을 그 고로쇠나무 우듬지에 걸어주고, 돌아섰다. 그녀의 아름다운 선택의 여백을 위하여….
전북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
입 선
제목 : 수목장-그 여백의 미작가 : 이용호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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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막막했었다. 절망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까 싶었다. 도무지 돌파구가 보이질 않았다. 아들녀석이 퇴근 후 뺑소니 차에 치어 목뼈를 크게 다쳤었다. 그런 아들녀석은 벌써 두 번째 수술을 준비하고 있고, 병원 원무과에서 일주일 단위로 날라오는 병원비 납부통지서는 정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아들이 경추손상으로 목의 한쪽을 몇 센티미터나 째고 수술했는데, 이번엔 반대쪽 목을 크게 째고, 엉덩이 옆 뼈를 잘라내, 손상돼 내려앉은 경추뼈 두 개에 덧붙여 보강시켜 주는 큰 수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수술비마저 없으니 정말, 캄캄한 동굴 속의 벽을 더듬는 심정이랄까, 그런 기분이었다. 얼마 전 산재보험을 신청해 봤으나, 일과 후에 일어난 사고라며 부정적인 답변만 돌아왔었다. 산재마저 안된다니, 그 많은 병원비며, 퇴원 후 요양비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정말 막막할 뿐이었다.
아니, 그런 막막함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갑작스레 무슨 개발이라는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직까지도 고향땅에 할아버지 이름으로 남아 있는 선산이나 다름없는 산지인 임야를 처분하라는 것이었다. 바로 그곳에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이미 근처 산지는 매수가 완료되었고, 마지막으로 우리 땅을 포함한 몇몇 지번만 남아 있어서 종손인 나에게 일차로 연락했다며, 산지 값은 물론, 혹시 그곳에 선조들의 묘가 있다면 파묘에 따른 이장비도 넉넉히 보상해 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길을 잃은 컴컴한 동굴 속에서, 갑작스레 환한 불빛이라도 만난 듯 눈앞이 번쩍하며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렇잖아도, 병원비 때문에 밤을 꼬박 지새며, 궁리 끝에 지금도 할아버지 이름으로 남아 있는 그 산지도 생각해 보았었다. 할아버지가 살아 생전 손수 묘목을 키워 가꾼 지금은 소나무며 자작나무 속에 편백나무도 빽빽이 들어차 있는 산이었다. 혹시, 그런 나무를 저당 잡혀서라도 병원비를 융통할 수 없을까? 하고 몇 군데 알아봤으나 아직까지 꿩 구워 먹은 듯 감감무소식이었다.
나의 어린시절, 객지에 나가 자동차를 운전하던 아버지가 큰 사고를 내는 바람에 할아버지는 그만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 산을 내놓은 적이 있었으나, 그때도 산지가 맹지나 다름없는데다가 나무들도 이제 갓 자란 묘목 수준이라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다. 그때 할어버지께서 사는 집이며 가재도구까지 팔아 아버지의 차 사고를 수습하며 아버지에게 한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무를 보고 배워라! 누운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니 부지런히 일을 해 집을 다시 세워라!”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살아생전 그 산 속에 움막까지 지어놓고 편백나무를 가꾸던 모습이 떠오른다. 가뭄 때는 손수 물지게를 지고 비탈길을 오르며 물을 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마치 그 모습이 내가 보아도 산짐승같이 보여 허리가 꾸부정한 할아버지를 놀린 적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산짐승 같아요”
내가 그렇게 놀리자 할아버지가 대꾸했었다.
“난 짐승이 아니고 나무인기라! 허리가 굽은 나무인기라! 두 발은 뿌리인기고 두 팔은 나뭇가지인기라!”
그 말을 듣는 순간 할아버지가 정말 한 그루 나무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피곤한 듯 나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할아버지! 왜 서서 주무세요?”
내가 할아버지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었다.
“난 나무라서 서서 자는기라. 하늘을 바라보며 서서 살고 싶고 자고 싶은기라.”
그때 그 말을 듣는 순간, 할아버지가 정말 한 그루 나무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시절 할아버지를 만나러 그 숲 속에 들어가면 마치 찬바람이 이는 듯 찬기가 느껴졌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편백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라는 향기가 코를 찌른다며, 윗옷을 벗고 산림욕을 하라고 다그쳤었다.
할아버지는 잎이 황갈색인 편백나무엔 해충은 물론 개미조차 꼬이지 않는다며, 자랑이 끝이 없었다. 그때 효험을 보았는지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아토피나 알레르기 한 번 모르고 자랐었다. 그랬던 산이었는데…. 어느 해인가 늦추위가 극성을 부려 몇 십 년 만에 철 늦은 혹한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 때 할아버지가 짚으로 이엉을 엮어 편백나무 기둥에 감싸며 보온작업을 하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동네 사람들이 뒤늦게 발견해 급히 병원으로 싣고 갔으나 그만 운명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그때 동네 사람들이 나서며 구정 보름 안에 사람이 죽으면 땅을 파서는 안된다며, 날장을 하라고 주장을 펴는 바람에 아버지는 부득이 산 입구에 할아버지의 시신을 날장을 하고 나중에 택일해서 편백나무 곁에 정식으로 모실 요량이었다.
그런데 그해 여름, 갑작스런 폭우로 그만 계곡물이 범람하는 바람에 할아버지의 가묘마저 흔적조차 없이 쓸려가버린 것이었다. 그때, 아버지가 넋을 잃고 맨손으로 땅을 뒤지며 할아버지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겠다고 안간힘을 다했으나 허사였다. 그때 아버지는 끝내 할아버지의 시신을 못 찾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며 말했었다.
“니 할아버지는 편백나무가 됐을끼다!” 아버지는 어린 편백나무를 어루만지며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 산인데…,
내가 그 산을 팔아버린다면…?
그런 나무들을 다 베어버리고 그곳에 골프장이…?
나는 번쩍 정신이 드는 것 같아 급히 차를 타고 개발회사로 달려가서 소리쳤다.
“그 산은 할아버지나 다름없는 산이니 안 팔 겁니다!”
그러자 개발회사 측은 가소롭다는 듯 내 앞에 서류를 내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 사전 환경성 검토서를 보세요! 녹지 자연도도 겨우 7등급이고, 겨우 소나무, 자작나무, 편백나무 몇 그루 가지고… 군락지도 못 된 걸 가지고 그러슈!”
“할아버지가 손수 심은 편백나무들은 어떡하구요?”
내가 의아해하자, 그들은 다시 서류를 내밀며 짜증스럽다는 듯 눈을 흘긴다.
“보라구요! 여기 있는 산지전용 입목축적 표준지 조사 총괄표에도 활잡목만 있다는데 무슨?”
“그 많은 편백나무들은 모두 어디 갔어요? 모두가 엉터리에욧!”
나는 문을 박차고 나와 차를 타고 고향의 편백나무숲 속으로 향했다.
편백나무숲은 예나 지금이나 나직한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나는 잎을 떨군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마치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반기는 것만 같아 그 나무 곁에 앉아 귀를 쫑긋해 보았다.
“내가 나무를 보살피듯, 자식도 정성들여 키우면 이 나무들처럼 아름드리 나무로 보답할끼다.”
마치 편백나무가 우수수 몸을 떨며 할아버지처럼 나에게 말하는 것만 같다. 그 순간 갑작스레 편백나무 향기가 코를 찌른다. 머릿속이 박하사탕처럼 싸해지며 맑아진다.
그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키가 20m나 되고, 수령 사십 년이 넘은 편백나무들이 훌륭하더군요. 그 편백나무를 담보로 해서 필요한 자금만큼 융자해 줄테니 만나서 서류를 꾸밉시다.”
언젠가 수소문해 보았던 금융권에서 그 동안 산지에 나가 직접 나무를 확인했다며, 선박 건조용으로도 수요가 많다고 한다.
그 순간 언젠가 할아버지가 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나무는 거짓말을 안하는기라!”
정말,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편백나무는 그 동안 햇빛이 들면 즐거워하고, 흐릴 때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사람을 배반하지 않고 잘도 컸다. 분명, 편백나무는 땅에 두 발을 뻗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할아버지의 정성을 배반하지 않고 큰 수목이 되어 할아버지의 증손자 병간호에 대신 나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두커니 나무처럼 서서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편백나무 할아버지가 증손자를 살렸어요!”
마음 속으로 외치는 나의 모습도 나무 같았다. 그런 나무들에게 더 이상 대화가 필요없듯이 나무들도 나에게 빈 가지만 흔들면서 마음 속 대화만을 나누자고 한다.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입 선
제목 : 편백나무 할아버지 이야기작가 : 이신창작품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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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회 수상작 (일반부) ///////////////
제6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시와 산문 응모작 심사를 하면서 느끼는 건 자연이 인간을 얼마나 순화시켜주는지 글에 배어있는 글맛도 향기롭다는 점입니다.
산이 좋아서 산에 오르내리는 동안 보고 생각하며 쓰여진 글들이어서 순후하고 정겨웠습니다.
다음을 위해서 충고를 한다면 시나 산문이 좀더 탄탄하게 다듬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는 시로서의 감칠맛이 있어야 합니다. 담겨지는 내용을 최대한 압축하면서 가지치기를 함으로써 한편의 보석같은 영롱한 작품이 완성됩니다.
그렇게 다듬는 동안에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할 말을 고르게 되고 율조와 빛깔이 더해지면서 밀도와 탄력감있는 시가 탄생할 것입니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자신의 시에서 단 한글자도 더 보탤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다고 그렇게 자신있게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그만큼 철저하게 다듬어서 발표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응모작 대다수가 좋은 시상(詩想)을 보였으면서도 덜 다듬어져 호흡이 길어진 결점을 아프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지적은 산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년에는 더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사진부분 심사평 (심사위원 : 박희진, 김후란)
대 상 바다를 품은 산(문순희)
금 상 숲의 노래(임종훈)
은 상 소백산에서(김미숙)
동 상 광릉 숲의 비밀(정정자)산을 닮은 아이(조정아)햇살 나무(김신희)
입 선 초록 하나, 사...(권정자)검룡소 가는 길(최정희)청계산의 겨울나...(나옥실)백덕산이 있어 ...(이효자)월미산에 오르며(박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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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살이 정수리로 내리꽂히는 여름 날
파도소리를 가지마다 걸고 바다를 품은 산에 올랐다
혈관처럼 뻗어있는 숲길을 걷다보면
솔잎향기, 새들의 날개 짓, 알싸한 바다 냄새가 모공을 파고든다
이럴 땐 반쯤 눈을 감고 바람결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산에 오르면 없던 힘도 절로 생겨나니
내게 산사람의 피라도 흐르는 걸까
구릉 같은 산자락은 서서히 키를 높여 산마루에 오르고
숲길은 옹이진 소나무와 갈참나무 깊어진다
길옆으로 잔잔히 흐르는 계곡물도 깊어지고
새소리가 나뭇가지를 흔들면 또 하나의 숲으로 살아 움직인다
바람결에 눈을 씻고 마음도 씻을 쯤
산은 허리춤에 숨겨 놓았던 바다를 꺼내 보인다
산과 바다의 경계에 선 나
눈앞에 극락을 두고도 오욕의 허방다리만 걸어온
내 가난한 삶이 파도에 씻기는 듯 했다
산은 잔잔함의 평화로움도 폭풍우의 성냄도 모두 감싸 안은 적멸보궁
까막딱따구리가 소나무 품에 안겨 무정설법(無情說法)을 읊조리고 있다
문순희 (부산시 해운대 좌2동)
대 상
제목 : 바다를 품은 산작가 : 문순희작품평 : 매우 세련된 시적 언어 구사능력이 강점이었습니다. 시야도 넓고 선이 굵으면서도 섬세한 표현으로 생각을 펼친 글솜씨가 뛰어났습니다. 가령 <산에 오르면 없던 힘도 생겨나니 / 내게 산사람의 피라도 흐르는걸까> 라든가 <바람결에 눈을 씻고 마음을 씻을 때 / 산은 허리춤에 숨겨놓았던 바다를 꺼내 보인다>라는 발상이 신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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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잡지를 정기구독하면서 사은품으로 귀한 사진집을 한 권 증정받았다. ‘사진으로 보는 옛 한국’이라는 제목의 ‘은자의 나라(Korea, The Hermit Nation)’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사진집으로 외국기자들이 촬영한 구한말에서 근대화 초기까지의 우리 나라 문화와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한 것이었다. 거기에 나오는 기록에 따르면 한국의 산들은 대부분이 민둥산들(denuded mountains)이라 폭우가 쏟아지면 황톳물이 급류를 이루어 아래로 쏟아져 내려 마을이 온통 진흙탕이 되고 약한 다리를 휩쓸어버려 마을을 고립시키기도 한다는 목격담이 소개되어 있으며 실제 사진으로 봐도 나무 한그루 변변하게 보이지 않는 불모(不毛)의 황야 그대로였다.
그 사진을 보면서 내 초등학교 시절인 60년대 말의 산의 모습이 떠올랐는데 당시에도 산은 지금처럼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 아니라 곳곳에 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져 있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정도로 볼품없는 산들이었다. 그 시절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자주 불렀던 ‘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 메아리가 살게시리 나무를 심자’라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노래와 전교생이 식목일을 전후하여 산에 가서 나무를 심었던 일, 그리고 징그럽기만 했던 송충이를 잡으러 인근 산에 갔던 일 등등이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랬던 산이 지금처럼 울창하게 우거진 것이 정확히 언제부터 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사라진 숲을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산을 산답게 하는 일이며 아울러 숲이 인간에게 베푸는 다양한 혜택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정부와 국민 모두가 절실하게 인식하고부터 일 것이다. 다시 말해 숲을 잃어버리고 난 후 숲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을 것이며 숲을 이루지 못하는 산은 한낱 커다란 흙무더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면서 심고 가꾸고 보호한 결과가 지금처럼 울창한 숲을 이룬 산으로 되살아나게 되었을 것이다.
숲은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은 숲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단순한 구호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공존(共存)의 이유가 되어야 하는 것은 숲이 인간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참으로 지대하다는 것과 그 숲이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까지 계속 숲으로 존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을 아끼고 보전하려는 사람들의 적극적이고도 실천적인 의지와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숲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어머니의 품속에 안긴 듯 아늑해지고 마음이 그 밑바닥부터 고요해지는 것은 한낱 이미지이거나 상상의 작용이 아니다. 까마득한 날부터 숲은 어머니의 품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여 달래고 어루만지는 정화(淨化)와 진정(鎭靜)의 성소(聖所)였다. 어디 생각만 그러한가. 등산이든 산책이든 실제로 숲에 들어 길을 걷다보면 난마(亂麻)처럼 얽히고 설킨 세상사가 어느 순간 단순해지고 숲처럼 깊은 숨 한 번 길게 내쉬면 애면글면하다 타버린 가슴 속 찌꺼기들이 모조리 빠져나가고 대신 청량하기 그지없는 숲의 푸른 기운이 온 몸 가득 들어차 마치 새 목숨을 얻은 것처럼 신선(新鮮)해 지기도 한다.
고맙게도 잘 자란 나무들이 울울창창한 것을 숲의 육신이라고 한다면 보이지는 않지만 뭇생명들을 키우고 또한, 영위케 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음덕(陰德)들은 숲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설적이기는 하나 숲의 그 고마운 음덕들은 그것이 사라졌을 때 겪어야 할 수많은 고통들을 생각해보면 보다 자명해진다. 생명 유지의 근원인 산소의 생산이 중단되어 호흡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며 숲이 그 모태(母胎)로서 키우거나 보호하고 있던 수많은 야생(野生) 또한 사라져 세상은 다양성을 상실한 삭막한 공간이 되고 말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위 녹색댐이라고 부르는 숲이 없어 집중호우를 갈무리하지 못한다면 해마다 그로 인해 겪어야 할 물질적, 정신적 피해는 돈으로 환산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며 수많은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숲을 거닐며 사색하고 그로부터 영감(靈感)을 얻어 탄생시킨 불후의 사상들과 예술 작품들도 단절되어 문화적 빈곤(貧困)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것들도 숲의 전부가 아닌 일부만을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산불로 숲이 불타거나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산림이 황폐화되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마음이 드는 것은 인간과 숲이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생명을 전제로 긴밀하게 연결된 공존(共存)의 관계이기 때문에 숲이 파괴되고 황폐화된다면 그만큼 인간의 생존자체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근래 들어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자국(自國)의 국부(國富)를 산정함에 있어 산림(山林)의 가치를 녹색 GNP(Green GNP)의 개념으로 그에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숲의 환경적 가치를 당장은 화폐가치로 환산하기 곤란하지만 숲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여 그 보존에 있어 이전과는 다른 보다 합리적이고 실천적인 행동들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한 시도라고 여겨지며 빠른 시간내에 그것이 실현된다면 세계 각국이 건강한 숲을 조성하는데 아낌없는 노력과 투자를 하게 되어 그만큼 삶의 질도 한층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찬 기대를 갖게 된다.
숲은 늘 그곳에 있다. 단단하게 땅을 움켜쥔 나무들이 때로는 푸른 바다로 일렁이고 때로는, 욕심을 모두 떨쳐낸 겸허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그 안에 드는 모든 것의 건강한 야생을 지지한다. 그리하여 숲은, 인공에 지쳐 권태롭고 피곤하기만 한 심신을 변함없는 그대로의 모습과 마음으로 달래고 어루만져 부활(復活)을 꿈꿀 수 있게 한다. 숲에 들어 가만히 귀 기울여 보라. 미풍에조차 흔들리는 낱낱의 잎들이 만드는 것은 한낱 소리가 아니다. 까마득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그리고 훗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가야 할 침묵(沈默)의 노래이다. 그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마다에 푸른 숲 울울하게 우거져 깊어진다면 삶 또한 얼마나 그윽해질 수 있을 것인가? 세간(世間)의 그 어떤 사상이나 이념들도 숲에서는 가볍기 그지없는 한낱 수다에 지나지 않는다. 숲은 처음부터 오직 하나의 생각, 깊고 푸른 자연주의(自然主義)만으로 수없이 많은 목숨들을 키우고 가르쳐온 위대한 어머니이자 스승이다.
아무도 숲이 있는 곳을 말해주지 않지만 숲은 늘, 그곳에 있다.
임종훈 (대구시 달서구 도원동)
금 상
제목 : 숲의 노래작가 : 임종훈작품평 : 60년대와 오늘의 산을 대비하면서 울창한 숲의 음덕과 숲의 노래를 차분히 적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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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코끝에서 살랑대며
떠나라 떠나라 한다
들뜬 마음 구름위에 얹고
아이들과 소백산의 가을 속으로 떠난다
굽이굽이 죽령을 넘어 다다른 소백산
단풍은 민가로 내려오고 단풍든 사람들 산을 오른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권하는 산
눈으로 마시고 코로 음미하며 귀로 듣는 산은 달디달다
새끼다람쥐가 아이들을 환영한다며 꼬리를 치켜세우고
꽃 향유, 투구 꽃, 까실 쑥부쟁이가 보랏빛으로 웃고 있다
희방계곡에게 출입허가를 받고 다다른 깔딱재
인생의 첫 모험처럼 버티고 서 있어도 즐겁기만 한 아이들
‘그래 그렇게 겁없이 달려 들 줄도 알틴峠立?굴참나무가 한마디 한다
가쁜 숨 깔딱깔닥 몰아쉬며 오르는 돌계단
‘사는 일도 이와 같아 단계를 밟아야한다’고 신갈나무도 거든다
‘게 서시오, 서어나무 쉴 줄도 알아야한다’며 쉼표를 찍고 가라한다
고된 여정 끝에 도착한 연화봉, 그 품이 넓다
저 멀리 산 아래 펼쳐진 삶들이 꿈만 같은데
탁 트인 시야는 능선을 하나씩 끌어 올리고
화폭이 웅장한 수묵화가 펼쳐진다
그 큰 붓을 휘둘러 철마다 다른 그림 걸어놓고
초대하는 신에게 무한한 경이를 표 한다
건너야할 능선 하나를 넘은 듯 훌쩍 커버린 아이들
밤낮의 기온차가 클수록 단풍이 아름답듯
구불구불 험하게 올라와 성취감이 더 큰 정상임을 알기에
시련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이 되게 해달라고,
가끔은 산에 올라 인생을 관조할 줄 아는
철학자의 눈을 가진 아이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산을 내려 온다
김미숙 (울산시 동구 서부동)
은 상
제목 : 소백산에서작가 : 김미숙작품평 : 아이들과 소백산에 올라 발아래 펼쳐진 수묵화를 감상하듯 묘사한 것이 재치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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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숲엔 어떤 신비가 숨어 있기에 늘 나를 설렘과 조바심으로 달려가게 하는 걸까? 서울 우리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광릉수목원은 복수초가 눈밭을 뚫고 나올 때부터 국화동산에 무서리가 내릴 때까지 무수한 꽃들의 행렬이 릴레이를 펼치며 삶에 지친 심신을 씻어주는 녹색 전당이다.
하늘을 찌르는 전나무들이 근위병처럼 늘어선 입구에 내리면 바늘 쌈지를 뿌리는 듯한 피톤치드와 서늘한 음이온의 세례가 가슴 속까지 스며들어 온몸의 세포들을 또록또록 눈뜨게 한다.
올해는 유난히도 긴 장마와 폭우로 전국 각지에서 엄청난 수해를 당했다. TV 화면엔 온통 붉은 수마가 혀를 널름거리고 한강은 흙탕물이 위험수위를 범람하는데, 희한하게도 광릉 숲에 굽이치는 냇물은 술독에서 방금 떠낸 청주 빛처럼 아니, 큰 물통에 우유 한 방울을 떨어뜨린듯 하여 늘 그 비밀이 궁금했다.
하지만 아침 산책을 나온 왜가리와 늠름한 메타세쿼이어 안내를 받으며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그 해답의 실마리가 반쯤은 풀리게 된다.
정문이나 후문 쪽 습지원과 수생식물원엔 무성한 부들이며, 창포, 줄, 수련, 마름들이 장마로 흐려진 물을 정화하느라 분주하다. 그 화려하던 꽃들이 사라진 청청한 숲엔 장마에 깨어난 천마와 상사화들이 목을 쑥쑥 내밀고 거북꼬리며 고마리, 멸가치들이 빗물을 거르고 있다. 가녀린 파리풀꽃도 감사하다는 듯 꿀을 빠는 모시나비를 따라 숲 생태 관찰로에 접어들면 나머지 못풀었던 의문을 마저 풀 수 있게 된다.
행여 개미 한 마리라도 다칠세라 굽이굽이 나무판자를 깔아놓은 산책로 주변엔 산뜻한 유니폼을 입은 대자연의 오케스트라 관현악단원들이 질서 있게 정렬을 하고 빗방울 행진곡을 연주하고 있다.
단풍나무들은 프로펠러 씨앗을 돌려 매미 날개를 연주하고, 사랑의 하트로 온몸을 단장한 계수나무들은 향수어린 세레나데를 부르는데, 늠름한 보디빌더 서어나무가 딱따구리 장단으로 지휘봉을 젓고 있다.
침엽수들이 현악기로 아침햇살을 켜 내리면 중간 키 쪽동백, 물푸레나무, 느름나무, 산사나무들은 일제히 햇살건반을 두드리고, 키 작은 국수나무, 고추나무, 싸리나무들은 신나게 드럼을 치며 피리를 분다. 그 밑에 늘어선 물봉선, 천남성, 동자꽃들도 햇살에 반짝이는 트라이앵글이며 찰찰이를 치는데 난쟁이 빈대풀, 주름풀, 조개풀들도 어른거리는 햇살비늘을 잡듯 짝짝이를 치고 있다.
그래 바로 저거였구나. 아무리 울창한 숲이라도 키 큰 수종만 빽빽이 들어차면 키 작은 나무들이며 풀들이 햇빛을 못 받아 죽게 되고, 흙이 드러나며 장마가 질 때 토사가 흘러내린다는 걸 왜 미처 몰랐을까?
광릉 숲은 온갖 수종과 풀이 골고루 자생하도록 간벌을 잘해주어서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층층이 걸러주는 정수기가 되어 물이 늘 깨끗할 수밖에 없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웅장하고 큰소리를 내는 악기들 속에 보잘 것 없는 캐스터네츠도 제몫을 다해야 장엄하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오케스트라악단과도 같다.
숲 생태 관찰로를 벗어나면 소리봉 그림자가 잉어 떼를 키우는 육림호에 다다른다. 육림호 뒤쪽엔 개다래넝쿨 우거진 바위틈에 옛 고향 할머니가 쓰던 표주박을 닮은 옹달샘이 서늘한 눈빛으로 맞아준다.
육림호가 꽁꽁 언 겨울에도 돌돌거리며 입김을 뿜는 이 옹달샘은 광릉수목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찾는 장소이다. 내 어린 시절 고향마을 뒷산에도 이런 옹달샘이 있어서 사철 마르지 않는 그 샘을 동네 사람들은 무지개 샘이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어느 날 전깃불도 안 들어가던 그 산골에 버스가 들어가고, 가재를 잡고 보리수를 따던 무지개 샘 골짜기엔 골프장이 들어섰다. 그 후 고향마을은 독한 농약에 오염되어 샘물도 못 마시게 되었고 옹달샘은 먼 나라로 이민 간 그리운 친구처럼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광릉 숲에서 이 옹달샘을 처음 만났을 때 난 마치 잃었던 고향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갈 때마다 모래가 가라앉은 샘을 청소하고 주변에 떨어진 낙엽을 걷어냈다. 어느 날은 그 옹달샘에 개구리가 들어앉아 눈을 부릅뜨고 주인행세를 하고, 또 어느 날은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이 물은 살아 있다’고 온 몸으로 일러주곤 했다.
아, 그런데 광릉에만 산다는 천연기념물 크낙새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때 산림욕장으로 개방을 하던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때 놀라 달아났다는 크낙새는 안타깝게도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흔한 칡넝쿨은 왜 보이지 않나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칡넝쿨은 다른 나무들을 휘감아 말라죽게 하므로 철저히 뽑아버린단다. 그걸 보면 우리 인간도 너무 독선적이고 욕심이 많으면 공동생활에서 외면당하고 배척당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육림호 밑에는 우리 선조들의 구황식물이었다는 도토리나무 휴게광장이 있다. 날이 가물면 도토리는 햇살을 많이 받아 수정이 잘되므로 흉년엔 도토리가 많이 열린단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도토리묵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도 아깝다고 뜰뜨름한 도토리무거리 떡을 쪄주셨다.
광릉 숲엔 또 천연기념물인 미선나무, 광릉요강꽃, 광릉물푸레, 광릉골무꽃이 있고, 서어나무에만 사는 장수하늘소와 백악기에 살았던 울레미소나무 어린 묘목이 새 뿌리를 내리느라 몸살을 앓고 있다.
백두산 호랑이나 반달곰처럼 보호를 받는 귀족들도 있지만, 일광욕을 나왔다가 미움을 받는 뱀들이며, 멧돼지와 고라니, 다람쥐와 새들, 수많은 곤충들과 미생물들까지 질서를 유지하며 풍요롭게 살아간다.
숲은 이 모든 가족들을 보호하는 아름다운 울타리이고 보물창고이며 특히 우리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생명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4억 년의 역사를 지닌 수목들 앞에서 고작 200만 년밖에 안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또한 잘 가꾸어진 광릉 숲은 넉넉한 인품을 갖춘 성자처럼 늘 풍요로운 신비로 우리를 감싸주고 포용하며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하는 삶의 교육장이 된다.
정정자 (서울시 강동구 둔촌2동)
동 상
제목 : 광릉 숲의 비밀작가 : 정정자작품평 : 광릉 숲을 자주 가면서 그 안의 나무와 새와 곤충등을 사랑으로 관찰하며 아끼는 마음이 아주 정겹게 쓰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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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회 수상작 (일반부) ///////////////
이번 응모작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소나무에 관한 시가 대부분이었다. 근자에 소나무재선충병의 확산에 관한 언론보도가 자주 있어선지, 또는 얼마 전 끔찍한 화재로 양양 일대의 아까운 소나무들이 전소해서인지, 국민일반의 경각심도 높아졌고 차제에 소나무로 나라나무로 제정하자는 운동도 눈에 띄게 높아져 가고 있는게 사실이다.
응모작의 태반이 소나무 일변도로 치우쳤다는 것은 이런 세론의 정직한 반영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선자가 다시 한번 이번 기회에 통감한 것은 소나무라는 제재가 갖는 보편적 본질적 가치의 중요성과 그것이 우리 한국인의 심정에 끼쳐온 뿌리깊은 영향력이 참으로 줄기차고 크다는 것이었다.
모든 응모자가 마치 암묵의 합의를 이루고 있는 듯싶었다. 「소나무는 우리의 민족수다」, 「한국인의 얼이다」, 「생명의 나무다」말하자면 이런 것이 소나무에 대한 한국인 일반의 정서적 공감이며 믿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선작 5편중 대상을 비롯하여 은상, 동상 수상자인 네 분이 다 소나무 시의 작자인 것이다. 그러면 아래에 간략하게나마 몇 마디씩 소감을 적음으로써 심사평에 대신하려 한다.
대 상 강송림(剛松林)...(고수정)
금 상 조령골에는(김용수)
은 상 소나무의 눈물(박재현)
동 상 노송(老松)(유혜진)안면도 솔숲(임지희)
입 선 늘 그대로 인줄...(이기영)가을 속에서는 ...(신준철)수목장(樹木葬)(위성광)패랭이 꽃(서재심)무주구천동(김미숙)월출산에 오르며(조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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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회 수상작 (일반부) ///////////////
산을 사랑하고 나무와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시인이 될 수밖에 없는가 봅니다. 올해도 산림조합중앙회 공모에 보내온 총 480여 편의 시를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를 생각하고 시를 쓰느라고 애쓴 그 과정을 짐작해 보면서 참 수고들 하셨다는 치하의 말씀부터 전하고 싶습니다.
응모작 대다수는 산을 가슴 안에 담고 사는 이의 향기가 배어있었습니다. 그런 정서로 글을 다듬고 살아간다는 것이 남들은 알지 못하는 기쁨이요 소중한 보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번에 선에는 들지 못했더라도 다음 기회를 위해 계속 글을 쓰시고자 하는 분들에게 참고 될 점은, 시를 쓰는 자세와 한편의 시가 알찬 작품으로 숙성되기까지의 그 나름의 기량을 닦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선 소설이나 수필 같은 산문(散文)과 구분되는 시작품(詩作品)은 시로서의 작품화를 위해 시적 감성(詩的感性)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프란스 시인 봐레리는 일찍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의 첫 구절은 신(神) 이 주신 축복이다. 그 다음은 자신의 힘으로 헤쳐 가야 한다." 그러니까 무언가 가슴으로 느낌이 와서 시의 한 구절이 떠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축복은 막연히 기다린다고 와 주는 게 아니라 평소 부단히 시를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남다른 감성의 흐름을 지니고 있을 때 문득 다가와 주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 다음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써야하는데 그것?폭넓은 독서로 문학적 소양을 가꾸고 키워가는 길입니다. 시를 사랑하되 좋아하는 시인의 작품집이나 국내외 명시집을 생활 가까이 두고 많이 읽고 즐기는 습관부터 몸에 익혀야 합니다. 아울러서 문학작품을 폭넓게 읽어 정신적인 충실을 도모하는 독서생활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응모작 대다수가 열심히 썼으면서도 시로서 영글지 못하고 시적 공감이 가지 않는 어수선한 글이거나, 전달이 안되는 글, 또는 시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장황한 시가 많았습니다. 시는 가장 적은 말로써 크고 깊은 세계를 열어보이는 문학입니다. 다듬고 다듬어서 한편의 시가 나와야 하겠습니다.
응모하신 분들은 한결같이 산을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제를 잘 살리고 있기에 그 정서를 소중히 간직하여 계속 정진을 바랍니다.
심사위원 : 박희진, 김후란
대 상 산 행 - 설악...(최찬상)
금 상 산에서 몽땅 털...(이영옥)
은 상 방태산 자연휴양...(이향순)
동 상 너도 알겠구나(김희동)산에 한번 올라...(황승철)
입 선 숲속의 만찬(이순태)금오산을 오르며(주대생)아낌없이 주는 ...(김은진)산에 가는 길(김정경)산 친구(윤현정)뽕나무(홍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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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돋이를 보기 위해 대청봉에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험한 산길을 따라 봉우리로 올라가고
10월 단풍은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소청봉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길 사이
눈잣나무들이 이파리를 고드름 속에 화석처럼 박고 동면에 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룻밤 사이 공중에서 두 계절을 건너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얼음 능선을 밟고 가는 느낌은 차고도 맑았습니다
마지막 숨결의 동아줄을 당기며 대청봉에 올라 섰습니다
파란 새벽 하늘이 이마에 시리게 부딪쳐 왔습니다
나의 발 아래론 가을의 천장을 뚫고 산이 우뚝 솟아 있었고
산의 발치에는 푸른 동해의 파도가 밀려와 부딪칩니다
붉은 여명 속에서, 잠시 나는, 묵념하듯
나에게 봉우리를 허락해 준 산과
산의 조화를 꾸며 온 대자연의 신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드디어 동해를 하나의 부챗살로 펼치며 해가 떠올랐습니다
나의 턱 밑을 조명하는 햇살은 더욱 눈부신 것이었습니다
태양은, 자기를 태우지 않고는 등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스스로를 태워 없애면서 세상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사랑이
온 누리에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 순간 태양의 눈동자 속에 서 있었습니다
차갑고 어두운 곳을 따뜻하게 조명하고자
내 눈동자에도 불을 그었습니다
이렇게 어둠을 뚫고 봉우리로 짊어지고 온 나를 부리고
새로운 나를 짊어지고 황금 빛 정상에서 내려옵니다
그리고 다시 단풍잎들이 불타는 가을로 돌아왔습니다
등 뒤로는 여전히 밤과 낮을 이어가며 내가 넘어온 길이 아득히 솟아 있습니다
이제
앞 길 저 멀리 아스라이 솟아있는 생의 봉우리를 향해
출발할 채비가 되었습니다
최 찬 상 (서울 송파구 송파2동)
대 상
제목 : 산 행 - 설악을 넘으며작가 : 최찬상작품평 : 이처럼 넓은 시야를 가지고 시를 쓸 수 있다는건 매우 귀한 일입니다. 사물을 관조하는 눈길, 인생을 초연하게 바라보는 은근한 직시와 은유법으로 읽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역작이라 하겠습니다. '나의 발아래론 가을의 천장을 뚫고 산이 우뚝 솟아있었고 / 산의 발치에는 푸른 동해의 파도가 밀려와 부딪칩니다.' 처럼 언어의 선택과 비유가 뛰어납니다. 좋은 시인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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