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siheung.go.kr/portal/board.do?method=getView&topCmsCd=CM0002&cmsCd=CM2071&grp=1&clickParentNum=1&clickNum=1&bno=39327![]() 제 10 회 시흥문학상 전국 공모 안내 미래 지향적인 생명도시 시흥시가 주최하고 사)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가 주관하는 제 10회 시흥문학상 작품을 아래와 같이 공모합니다. 21세기 한국 문학을 짊어지고 나갈 전국의 시?수필 부문의 역량 있는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신선한 작품 으로 한국 문학의 새 지평을 넓혀주시기 바랍니다. □ 주최: 시흥시 □주관 : 사)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 □후원 : 사)한국예총 시흥지부, 시흥시 의회 □ 공모부문 : 시 ? 수필 □ 주제 : 자유 □ 제출 작품 수 : 시 3편 이상 5편 이내, 수필 2편 이상 ~ 3편 이내(작품 편수 미달 시 심사배제) □ 응모자격 : 20세 이상, 지역 기성 신인 불문(공모 마감일 2009.10.31 기준) □ 공모기간 : 2009. 10.1 ? 2009. 10. 31 24:00(1개월 간) □ 당선작 시상 ? 대 상 : 1명 상금 ?4,000,000 및 상장 ? 금 상 : 각 부문별 1명씩 상금 ?1,000,000 및 상장 ? 은 상 : 각 부문별 1명씩 상금 ? 500,000 및 상장 ? 동 상 : 각 부문별 1명씩 상금 ? 300,000 및 상장 ? 우수상 : 상장 및 문화상품권 □ 심사 발표 : 2009.11.10 ?시흥예총 홈페이지?시흥시청 홈페이지 □ 시상식 : 일시 및 장소 추후 통보 □ 응모요령 ?응모작품을‘시흥예총홈페이지’에 출품하실 때. 1인 1회에 한하여 접수할 수 있음 ?응모작품은 제출일 이전 미발표된 창작품이어야 하며, 시상일 전까지는 일체 타에 발표를 금해야 됨. ?응모된 원고는 일체 반환하지 않으며, 당선작의 저작권 등은 본 운영위원회에 귀속 ?기 발표된 작품이거나 표절이 밝혀질 경우 당선을 취소함. ?심사는 관외 문단 권위자로 작품 마감 후 위촉하며, 당선작 발표 시 명단을 함께 공개합니다. ?과년도 대상입상자는 작품을 출품하는 것을 금합니다. □ 작품접수처 : 시흥예총 홈페이지 (http://www.sharts.or.kr) ?작품접수는 인터넷으로만 접수합니다. □ 작품집발간 : 전년도 대상작과 본회 당선작 작품집 제작 발표함. ?우수작은 상장 및 상품. 작품집 우편 발송 합니다 □ 문의처 : 시흥문협 016-716-3689, 018-865-4094, 시흥예총 031)316-5700 시흥문학상 운영위원회 =============================================================== [접수 방법] ![]() ![]() 인터넷 접수 방법은 첨부파일에 표시 된 그림과 같이 하셔야 합니다. 시흥예총 홈페이지를 접속하면 그림 1과 같이 공모 안내 창이 뜸니다. 만일 뜨지 않을 시에는 팝업차단을 해제한 후에 다시 상단에 한국예총 시흥지부를 클릭하면 창이 뜸니다. 첨부된 파일을 참조 하여 1번 화면 접수하기를 누르면 자동으로 2번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상단에 빨간 글씨로 적혀 있는 부분을 잘 읽으시고 빈 칸을 채우고 파일을 첨부하한후에 입력완료 -저장 을 누르면 접수가 완료 됩니다. 접수가 완료되면 3번 그림과 같이 "접수가 되었습니다." 라는 문구가 뜨면 정상적으로 접수 된 것입니다. 바로가기 =>http://www.sharts.or.kr/php/board.php?board=form0909&command=write | |||
심사평
1,500여 편 치열한 경쟁
일상을 관조하는 성향이 주류 이뤄
지난 10월 한달 동안 시에서 주최한 ‘제7회 시흥문학상 공모’에서 변삼학(서울 동작구) 씨의 ‘아기의 햇살’이
시부문 대상을 김성희(충남 천안시) 씨의 ‘11월의 미열’이 수필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총 1,587편의 응모작이 접수되어 치열한 경쟁을 벌인 가운데 주로 일상을 관조한 글들이 주류를
이루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시부문 금상에는 ‘아내의 손톱(노점섭)’,
은상에는 ‘기차 안에는 고래가 산다(정희진)’, 동상에는 ‘엿을 고는 어머니(서기묵)’가 선정되었으며
수필부문 금상에는 ‘정거장(고신옥)’, 은상에는 ‘내 인생의 시동(김영순)’, 동상에는 ‘선인장은 가시가 없다(이채금)’가 선정되었다.
심사는 공정성을 위해 박몽구 샘터 편집장, 지연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등 관외 작가 7인을 선정하여 실시했다.
시흥문학상은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전국규모 공모전으로서 응모작 중 90%가 우리시 이외 지역에서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아기의 햇살’은 풍부한 이미지를 진솔한 생활 가족상에 담아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시인의 따스한 심성이 돋보이고, 구체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한 시상 전개에 무리가 없어
심사위원 전원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받게 되었다.
심사평 (심사위원: 배명식 시인, 박몽구 시인, 나해철 시인, 오현정 시인)
제7회 시흥문학상 수상작
시부문 대상
아기의 햇살 / 변삼학
경남 합천 출생 2006년 시집 <자갈치 아지매> 문학의전당
옆자리에 곤히 잠든 아기의 두 발이
가지런히 내 무릎 위로 넘어온다
송이버섯만한 낯선 두 발이 닿는 순간
내 시린 무릎이
보온 덮개를 올려놓은 듯 따뜻하다
달리는 전동차가 요람인 듯 새근새근
잠든 아기의 얼굴이 갓 솟은 햇살 같다
지나는 역과 역의 길이만큼이나
더 퍼져 오른 아기의 햇살 때문일까
내 무릎이 한낮 햇볕으로 데워진다
꿈속의 꽃동산이라도 거니는 것일까
앙증맞은 꽃무늬 양말 속
꼼지락 꼼지락 햇살 발가락이 걷고 있다
몇 개의 역을 지났을까 중천쯤에 떠오른
햇살이 무릎을 지나 가슴속까지
봄볕을 나르는 듯 훈훈하다
온몸 그 훈김에 혼곤히 빠져있을 때
아장아장 돌배기
내 손을 잡고 꿈속의 동산으로 이끌어간다
온갖 꽃 무리 속을 거닐며
그 많은 꽃들의 이름을 일일이 물어본다
저어기 저 노란 꽃은? 저어기 저 분홍 꽃은?
어느새 우리는 가족이었다.
성균관대학교 사회교육 문예창작과 수료
1997년 한국문학예술 소설부문 신인상 당선
2003년 제1회 CJ문학 은상 수상
2004년 제1회 호연재 문학상 금상수상
2004년 계간 <문학마을>로 등단
![]() 제10회 시흥문학상 대상작-이종섶의 '삽' | |
제10회 시흥문학상 당선작 발표, 응모 작품 수준 뛰어나 | |
미래 지향적인 생명도시 시흥시가 주최하고 사)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지부장 : 안봉옥) 가 주관한 제10회 시흥문학상 당선작이 확정 발표됐다. 사)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는 지난 10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한 달간 작품을 공모했으며, 20세 이상 지역 기성 신인을 불문하여 응모 자격을 부여한 결과 응모한 작품들의 수준이 높아 심사위원들을 즐거운 고민에 빠지게 했다. 제10회 시흥문학상 공모에 접수된 작품은 시부문 459명의 1,876편, 수필부문 192명의 503편으로 총 651명의 2,379편이었다. 이 중에서 주최 측의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시부문 40편, 수필부문은 43편이었다. 그 가운데 영예의 대상은 본심 위원들의 치열한 토론을 거친 끝에 시부문의「삽」(이종섶)이 최종 결정되었다. 아래는 제10회 시흥문학상 심사총평, 대상 작품, 당선자 명단이다. 심사총평- 이광복 심사위원장 “본심은 이혜선 시인, 박종철 시인, 이재무 시인, 지연희 수필가와 필자가 맡았다. 우리 심사위원은 본심에 올라온 작품을 차례차례 윤독하면서 고심을 거듭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시흥문학상의 위상이 높아지고, 거기에 비례하여 응모작품의 수준도 매우 뛰어나 그만큼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우리 심사위원은 본심에 올라온 작품을 차례차례 윤독하면서 고심을 거듭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시흥문학상의 위상이 높아지고, 거기에 비례하여 응모작품의 수준도 매우 뛰어나 그만큼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시부문의 경우 저마다의 향기와 빛깔의 언어로 작품의 자태를 드러내어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렇듯 응모자들의 향기와 빛깔이 다양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심사위원들은 즐거움을 금할 길 없었다. 수필부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응모작은 저마다의 특장과 개성이 뚜렷했다. 작품을 쓰되, 자기만의 독특한 언어와 목소리로 주제를 형상화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겠다. 따라서 우리 심사위원들은 기쁜 마음으로 이들 작품을 정독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입상 등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부문별로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 특히 최종적으로 대상을 선정할 때에는 시부문 심사위원과 수필부문 심사위원이 열띤 종합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 우리는 시부문의 「삽」을 영예의 대상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한편,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모두 접수번호만 매겨져 있을 뿐 응모자의 이름이 철저히 은폐돼 있었다. 이는 보다 더 심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주최 측의 주도면밀한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이러한 상태로 입상 등위를 전부 결정한 다음 입상자의 중복 여부를 확실히 검증하고, 심사평을 쓸 때 참고자료로 삼기 위해 주최 측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 입상자의 성명을 입수했다. 이에 따라 우리 심사위원은 부문별 심사평에서 입상자의 이름과 함께 그 작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있게 되었다. 대상을 비롯한 입상자 모두에게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비록 입상권에 들지는 못했을지라도 정성어린 작품을 응모한 모든 분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드리고 싶다. ” |
시 |
접수 번호 |
성 명 |
제 목 |
수필 |
접수 번호 |
성 명 |
제 목 |
대상 |
489 |
이종섶 (고양시 도내동) |
삽(시) |
||||
금상 |
500 |
정명 (의왕시 내손동) |
키쓰는 무장무장 나리고 |
금상 |
340 |
임병숙 (원주 봉산동) |
굳은살 |
은상 |
241 |
김정호 (간석동) |
인어주식회사 |
은상 |
527 |
문혜란 (대구 내당동) |
오란비 |
동상 |
194 |
김대호 (김천시 교동) |
회오리 |
동상 |
60 |
장미숙 (서울 장지동) |
아버지의 발 |
우수상 (15) |
502 |
유영삼 (시흥 매화동) |
안개 |
우수상 (15) |
312 |
정은영 (부산 거제동) |
젓가락 |
146 |
김진기 (수원 고색동) |
은행잎과 은행 |
307 |
박종희 (청주 사작동) |
가리개 | ||
218 |
송준용 (인천 부평) |
귀지 파는 아내 |
62 |
박태남 (부산 덕포동) |
두 여자 | ||
568 |
성영희 (인천 검안돈) |
광명 |
140 |
이정순 (대구 감삼동) |
쉼표와 마침표 | ||
42 |
홍기선 (제주 용담동) |
푸른 조랑말 |
173 |
감별모 (서울 구로동) |
소통 | ||
464 |
노부용 (시흥 월곶동) |
사랑스런 너에게 |
664 |
김인자 (서울 중화동) |
어머니와 설 | ||
504 |
김만복 (울상 신정동) |
향수 |
385 |
강현재 (남해 북변리) |
가마솥 단상 | ||
565 |
김영란 (여수 소호동) |
구두 한 켤레 두고 |
120 |
오민정 (군포 금정동) |
곰삭은 손 | ||
587 |
서정임 (안산 사동) |
미완독의 책 |
246 |
조이지(광주 경안동) |
막사발 | ||
336 |
유택상 (시흥 정왕동) |
재봉틀 속에는 등불이 켜져있다 |
236 |
황점숙 (전주 중화산동 |
절구 | ||
16 |
김경선 (안산 사동) |
턱걸이 |
358 |
황외순 (경주 동천동) |
냄새 | ||
377 |
최정희 (이천 송정동) |
그림자를 품다 |
547 |
배문경 (경주 황성동) |
터 | ||
640 |
김은혜 (인천 간석동) |
홍시를 먹다가 |
442 |
김광희 (경주 서악동) |
뱀 | ||
617 |
이지안 (대구 범어동) |
저 숲에 우리집이 있다 |
561 |
이순미 (원주 단구동) |
편지 | ||
463 |
이경희 (수원 고등동) |
국 이야기 |
581 |
박혜원 (화성 병점동) |
겨울에고 피어나는 |
심사결과 발표는 첨부파일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ㆍ첨부#1 | ![]() |
제10회 시흥문학상 시상식 | ![]() |
[제10회 시흥문학상 수상작품] |
---|
대상 ----시
삽 이종섭
오래 쓰면 쓸수록 뾰족한 그곳이 둥그런 엉덩이처럼 변해가는 삽, 처음부터 찌르기 위해 만들어진 삽날은 흙을 갈아엎고 퍼 나르는 동안 닳고 닳아 유순하게 변화되기까지 수없는 세월을 홀로 울며 견뎌야 했다
조금씩 추해지는 표정을 감추려고 찬물로 세수하는 것도 잠시뿐, 쓰레받기로나 쓰이는 늘그막이 되어서야 위협적인 꼭지 부드럽게 깎여 거름더미라도 한 짐 푸짐하게 퍼주고 싶은 착하디착한 곡선으로 변한 것이다
땅을 파면 팔수록 산봉우리 닮아가고 모래를 뜨면 뜰수록 물의 흐름 배워가는 삽 한 자루의 성실한 노동 앞에 겸손히 머리 숙이고 싶은 날, 평생 맞서기만 하던 땅위에 서서 일방적으로 저지른 잘못을 사과라도 하듯 자근자근 눌러보는 삽날의 애교
나의 노년도 저랬으면 좋겠다 싶어 몇 군데 짚이는 곳을 슬며시 만져보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 남을 찌르며 살아야했던 아픔을 언제까지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괴로운 밤 땅을 파기 위해 삽질을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땅을 파야했던 삽 한 자루의 수행이 떠오른다
땅은 삽날을 갈아내기 위한 숫돌이었을까 강할수록 부드러운 숫돌을 사용해야 한다며 꼬리뼈의 흔적조차 완전히 없애버린 그곳을 내놓고 다니는 짐승 한 마리, 모든 것을 달관한 자세 하나 얻기 위해 날카로운 송곳니도 사나운 포효도 다 버렸다
금상 ----시
키쓰는 무장무장 나리고
정 명
그럽디다 차말로. 어느 시인의 말맨치로, 함박눈이 오믄 우새시럽게도 이웃집 남자가 그립습디다. 아 금메, 그 남자 첫사랑을 탁해가꼬.
긍게 거시기, 그 삼월도 요러크름 눈이 내렸는디, 밤하늘은 아조아조 꺼매서 눈송이는 메밀꽃맹키 빛나등만. 다방 갈 돈도 없는 우리는 뿌담시 동네를 멫 바쿠나 돌았당께요. 그 머시메가 손목 끌고 간 어느 골목길, 배람박에 뽀짝 붙어가꼬 대뜸 이럽디다. 키쓰해 주까. 오메, 낯바닥이 뜨겁고 심장이 통개통개, 난 그만 쫌더 크먼이라고. 내빼부렀제. 뽀뽀도 아니고 숭허게. 그라고 키쓰가 무신 동냥이간디, 낭만적 사랑과 사회*만 알았어도 그짝을 가만 놔두덜 않제. 나가 먼첨 프렌치 키쓰를 퍼부숴줬을 거인디, 짚이짚이 들척지근허니. 그려도 그렇지. 그 놈은, 바보 겉은 그 놈은, 사랑도 짜잔허게 허락받아 허는가벼어. 영산강 하구언둑에서 암시랑토 안허게 들어가지 말라고 붙잡던 보짱은 거시기였당가. 포도시 짱구이마에 차디찬 뽀뽀를 허고 보듬아준 그 놈, 주머닛돈 오백원으로 포장마차에서 홍합 멀국을 홀짝이고 홀짝이다… …. 집 앞 골목꺼정 왔는디, 땡땡 언 내 손을 잡고 애문 눈길만 푹푹 파제낍디다. 워째야쓰까, 솔찬히 커부렀는디, 입태꺼정 지대로 된 키쓰맛을 몰르는 나는, 오늘맹키로 눈이 오는 날이믄 맬겁시 스무 살이 그리워 눈물납디다. 순전히 고놈의 눈 땜시 애간장 녹습디다.
키쓰는 폭설맹키 와야 허는 벱이지라우, 아먼.
시방 못다 한 키쓰맨치로 눈은 나리고
무장무장 눈치 없이 나리고
은상----시
인어주식회사
김정호
그는 불룩 솟은 거대한 도시의 아스팔트 위로 매일같이 출근한다
손가락 뚫린 빨간 코킹장갑을 끼고
눈 내리는 신촌 맥도날드 앞을 지리멸렬하게 헤엄쳐간다
닳아서 반들반들해진, 비늘이 너덜너덜해진,
검은 고무 지느러미를 끌고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란 이런 것이다, 몸소 보여주듯
배 밑에 바퀴를 깔고 두 손을 노 저어 헤엄쳐간다
가끔 배가 고픈 듯 플라스틱 바구니를 손으로 휘휘 저으면
백동전 대신 족보도 없는 기쁘다 구주만 오셨다 가시는 일인 주식회사
그는 젊고 싱싱한 공주가 아니므로, 이곳의 벌이는 시원찮다
펑펑 송이눈은 등가죽 위로 하염없이 쌓이고,
깡총깡총 어린 연인들이 그 옆을 종종거리는,
오늘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그는 수초처럼 흔들리고 휘어져도, 절대 부러지지 않는다는 듯
두 주먹 쥐고 허리 한번 으샤 일으켜 세워 본다
아득한 해저 단칸방에 두고 온 어린 인어들,
아직은 나에게도 두 팔이 있다야,
두 눈을 끔뻑거려 보는 것인데,
그는 바다가 아닌 암초 위에서 젊음을 탕진했으므로, 그리하여
이 거추장스럽게 불룩 솟은 거대한 암초를 묵묵히 갈아버리겠다는 듯
뿌드득 이를 갈며 매일같이 출근을 한다
그가 지났을 아스팔트 수면 위로 새하얀 송이눈이
밤새 징글벨 징글벨 쌓이고 또 쌓여갔다
동상----시
회오리
김대호
나무의 몸에 회오리가 산다
몸을 잘라야 볼 수 있지만
조룡리의 오백 년 된 은행나무 회오리는
한창 때, 뒷산으로 숨는 동학군을 보았다
대개 연륜이 쌓인 회오리는
행간 좁혀 몸에 바람 드는 것을 막는다
외부의 압력은 한 번 걸러 담는다
고향 촌집 대밭을 휘돌아나가던
수다스런 바람들, 젊을 적 애비를 꼭 빼닮은 장남마냥
바람만 불면 집을 나가는 회오리도 있다
어떤 회오리는 성격을 고쳐 종이가 되었다
등짝 가득 문신을 새겼다
몸이 구겨져도 몸에 박힌 사상은 평생 그를 따라다닌다
잔비 내리는 바람재 숲길
허리를 자르면 회오리가 들어 있는 나무들이 따라온다
회오리의 예언은 안으로 돌린 채
시치미 뚝 떼고 바람에 손만 흔드는 나무들
한 치 앞도 점칠 수 없는 사물이
나무의 서식지에서 마구 휘둘리고 있다
수필 금상
굳은살
임병숙
아버지의 발바닥은 평생 칠순 노인의 삶을 지탱해주었다. 길이를 알 수 없는 질곡의 세월이 덧개처럼 쌓여서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혀있다. 피부라기보다는 갑각류의 그것 같다. 발바닥만 감싼 굳은살은 여느 피부처럼 촉촉하거나 매끄럽지도 않고 푸석푸석한 게 아무런 반응도 없어 보인다. 척박하기만 하다. 멈춰선 시계바늘처럼 늘 그 자리에 정지된 모습이다. 만져보면 메마른 바람 소리가 들린다.
갑작스런 마비증상으로 아버지가 입원을 하셨다. MRI 사진을 찍어 보니 뇌 속의 혈액이 하얗게 고여 있는 게 보였다. 뇌졸중이라고 했다.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탁해지면서 무언가를 상실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몸속을 흐르는 혈액도 마찬가지다. 적은 양이지만 혈액이 고여 있어서인지 아버지의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되었다. 입원한 지 하루만이다. 무슨 말인가 의사 표현을 하셨지만, 들리는 것은 제자리를 뱅뱅 도는 혀의 웅얼거림이었다.
하루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하루 사이에 반쪽이 정지 된 아버지에게 스물네 시간은 순식간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그만큼 절망감도 컸으리라.
“으, 으….”
온 몸이 뒤틀리는 고통에 틀니 사이로 발작처럼 비명이 새어 나왔다. 얼굴에는 주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살집이 없던 체격은 며칠사이에 뼈마디만 도드라졌다.
거미줄 같은 혈관을 따라 흐르던 수분이 길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발끝에 닿기 전에 증발해 버린 것일까.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표피가 오랜 침묵을 깨고 스멀스멀 움직였다. 아버지의 발바닥이 탈수증으로 타들어가는 식물처럼 하얗게 변했다. 곧이어 이리저리 가느다란 선을 긋더니 봉긋하게 일어났다. 잘 익은 봉숭아 씨앗 주머니 같은 초조와 긴장감이 돌았다. 굳은살이 툭툭 갈 갈라지면서 소리 없는 파열음이 씨앗처럼 쏟아졌다. 찢겨진 종이조각처럼 너덜너덜해진 굳은살이,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다.
갑작스런 삶의 정지로 혼란을 겪는 것일까. 아버지의 기억력이 몹시 나빠졌다. 숫자 계산은 물론 자식들 얼굴도 몰라보셨다. 아주 오래전의 일들을 기억하다 어느 날은 방금 전의 것도 기억을 못하셨다. 어떤 날은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던 아버지는 직선적인 성격이다. 싫고 좋음이 분명하고 싫은 감정은 거르지 않고 그대로 내색하신다. 그로 인해 여러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하셨다. 그 모든 것을 거세당하듯 누워 있으니 기억력마저 떨어지는 것 같다.
기억이란 지나간 시간이 남긴 유물이다. 그 시간이 많을수록 기억들도 많지 않을까. 아버지도 연세가 많으니 두꺼운 퇴적층처럼 쌓여있으리라. 하지만 똑같은 장면이나 사건일지라도 기억이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구는 슬프고 누구는 슬프지 않고, 혹은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 느낌에 따라 기억 할 수도 있고 기억 못 할 수도 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남다른 느낌을 받았다면 오랫동안 뇌리에 남기도 한다. 또한 큰 사건이라도 그 순간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면, 전혀 기억 못 할 수도 있다.
아버지의 기억의 농도가 다른 것도 그런 차이리라. 그러니 굳이 기억 못한다고 해서 탓할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당신의 뇌리에 깊게 각인 되어서, 두고두고 말했던 것조차 기억 못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수십 년을 함께 살다 먼저 가신 어머니의 기일조차 하얗게 지워버린 아버지. 심지어 당신의 몸에서 떨어진 살비듬이 쌓여 있는 집 주소도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아버지의 세포에 층층이 쌓여 있던 기억들이 굳은살처럼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기억력을 되돌리기 위해 아버지에게 볼펜을 쥐어 드렸다. 날짜가 지나간 달력 위에 단어를 불려드리며 써보라고 했다. 쉬운 단어도 쓰지를 못하셨다. 고대 어느 벽화에 그려져 있는 상형 문자 같은 선만 간신히 그었다. 며칠 동안 연습을 했지만 같은 선 긋기의 반복이었다. 아버지가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얘기를 하면 이해를 하셨다. 하지만 그 중에 한 마디라도 써보라고 하면 쓰지를 못하셨다. 아버지가 기억의 저장고에서 물을 길어 올리지 못해도, 앵무새처럼 지나간 시간들을 되감기 해 보았다.
쓰기 연습을 한 달력이 늘어났다.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글씨지만 아버지만의 생각들을 유추해보았다. 정지된 기억 속에서 들춰내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서모, 자식들, 농사, 술, 아니면 경제적인 문제일까. 아버지의 기억의 저장고에서 꺼내온 것은 매번 엉뚱한 것이어서 답답해 하셨다. 하지만 힘들어 하면서도 틈 날 때마다 글씨를 쓰더니, 마침내 몇 개의 단어를 쓰셨다. 모자르(못자리), 고츠(고추), 송(사위), 불생해(불쌍해). 평생 써 본 적 없는 왼손 글씨는 구불구불 기어서 그림이 되었다. 그 중에 ‘불생해’ 라는 단어가 유독 크게 보였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그렇듯이 아버지도 속정을 쉽사리 표현 못하셨다. 뒤늦게 만나서 당신 때문에 고생하는 서모지만, 한 번도 고생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당연한 걸로 여겨서 서모를 힘들게 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불생해’ 라고 쓰셨다. 지금까지 고생 시킨 것에 대한 미안함과, 혹시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다음의 서모를 걱정하고 있었다. 또한 흙냄새에 성큼성큼 발도 담그고, 사위에게 얹어 준 짐의 무게도 가늠하고 계셨다. 뇌졸중으로 정지된 언어의 틈새로 기억이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인가.
침대 매트리스 위에 바람결에 떨어진 이팝꽃처럼 굳은살이 하얗게 떨어졌다. 양말을 갈아 신길 때마다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언젠가 굳은살처럼 두꺼운 껍질이 갈라진 나무를 본 적이 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매달려 있는 모습은, 껍질 속마저 퇴화되어서 텅 비어 있을 것처럼 보였다. 호기심에 껍질을 벗겨보니 힘없이 툭툭 떨어졌다. 그러나 그 속에는 벗겨낸 껍질보다 더 부드럽고 파르스름한 속살이 자라고 있었다.
담요 밖으로 삐져나온 아버지의 발바닥을 살펴보았다. 굳은살이 떨어진 자리에 부드럽고 마알간 속살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걸음마를 하지 않은 아기의 발이 이보다 더 부드러울까. 평생 농사를 지은 노인의 발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두껍고 투박한 두께로 인해 속살도 하얗게 굳어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속에는 새살이 씨앗처럼 발아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버지에게도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기억력을 차단하는 이물질 때문에 일시적으로 정지 되었을 뿐이다.
굳은살이 각질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면 아버지의 세포마저 소멸되는 듯 했다. 힘겹게 붙들고 있는 작은 희망마저 고기의 비늘처럼, 툭툭 떨어지는 것 같은 초조와 불안감이 가슴 한켠을 차지했다. 하지만 굳은살이 떨어진 자리에는 절망만 있는 게 아니고 희망도 웅크리고 있었다. 쉽게 절망했던 것은 절망이라는 두텁고 단단한 문을 밀치고 나가면, 또 다른 희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쉽게 절망을 하고 쉽게 포기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까.
결국 굳은살이 떨어지는 것은 퇴화가 아니었다. 자신의 살점이 파열되는 고통을 견디며, 가슴 속에 품고 있는 희망을 발아시킨 것이다. 그러니 퇴화 되어서 정지된 것이 아니다. 절망도 아니고 희망이었다. 아버지의 부식되지 않은 삶의 기억들이 되돌아오기를 바라며, 미처 떨어지지 못한 굳은살을 뜯어냈다
수필 은상
오란 비
문혜란
오후의 볕살이 하도 오달져서 뒷산을 오르다가 비를 만났다. 반환점을 눈앞에 두고서다. 숱 많은 굴참나무 밑동에 기대어 비가 멎기를 기다린다. 토독 토독 톡 토독, 살찐 빗방울은 흙 위에 동그란 발자국을 찍는다. 비와 교접하는 마른 대지가 숨 가쁘게 뿜어내는 흙냄새는 엄마의 젖가슴을 열었을 때처럼 비릿하면서도 구수하다. 베어 말리는 풀 향기도 섞여 있다.
소나무 침엽 끝에 매달린 물방울이 진주처럼 반짝인다. 도심의 포도 위에 콩 튀듯 쏟아지는 소란스런 빗소리가 젊은이들이 즐기는 테크노음악이라면, 잘 썩은 부엽토 위에 사뿐사뿐 내리는 비는 차분한 클래식이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는 시든 나뭇잎을 위한 탱탱한 수유의 시간이다. 청진기를 갖다 대면 가지마다 쪼르르 쪼르르 제 몸속으로 물 길어 올리는 소리 들리겠다. 흙과 밀착된 발바닥으로 스며드는 물기는 내 혈관마저 팽팽해지는 느낌이다. 비는 만물의 근원이며 지상에 터 잡은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의 명줄을 잡고 있다.
비에 대한 감성은 저마다 다르다. 소나기가 퍼부으면 미친 듯 거리로 뛰쳐나가 쏘다니고 싶다는 사람,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친구를 불러내는 사람도 있다. 자칭 애우(愛雨)가라는 친구한테 비가 좋은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비가 쏟아질 때면 까닭 없이 흥분되고 이미 재가 되어버린 옛사랑이 부활할 것처럼 꿈틀거린다는 대답이었다. 그만큼 감성이 예민해진다는 뜻일 게다. 일정한 음을 동반한 빗소리와 낮게 내려앉은 하늘이 사람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그와 반대이다. 내 달팽이관을 통과하는 빗소리는 서둘러 토방에 놓인 신발이라도 들여야 할 것 같은 막연한 불안을 동반한다.
그해, 망종도 되기 전에 시작된 장마는 논바닥에 베어 눕힌 보리를 갈무리할 새도 없이 붉덩물에 잠겨버렸다. 고슬고슬 마르지 않으면 도리깨타작은 불가능하다. 여우볕에 말려보려고 물에서 건져낸 보릿단을 안고 밭두렁으로 산비탈로 옮겨 다녔다. 오랜 투병환자의 욕창을 막기 위해 수시로 닦고 돌려 눕히는 병수발이었다. 거두어 쌓아둔 보리 더미에서도 두엄냄새가 피어올랐다. 한 알의 이삭이라도 건져보려고 뒤집고 헤집기를 계속했지만 거둘만하면 다시 젖기를 반복했다. 한 달여 계속된 장마에 보리는 결국 아래로는 뿌리를 내리고, 위로는 잎을 키웠다. 힘 좋은 머슴들도 어찌해볼 수 없는 애간장 타는 일이었다.
보리는 가난과 배고픔의 상징이다. 전해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나고, 보릿고개를 참지 못해 영글지도 않은 풋보리를 삶아서 죽을 쑤어 먹던 집들이 있었다. 가난한 농가에 보리양식은 곧 생명줄이었다. 한 톨의 밥알이라도 먹을거리에 대한 훼손은 금기였으니 배고프지 않아도 되는 집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어머니의 한숨은 밤마다 한 음씩 높아가더니 종내는 끙끙 앓는 심음소리로 변해갔다. 농사일을 두량 하며 몸을 혹사해온 어머니에게 곡식은 자식이나 진배없었을 터이다. 가축이 텃밭의 남새 한이랑 짓이겨도 탈기를 하는 것이 농부의 심정인데 수확을 앞둔 곡식을 곱다시 썩히는 일임에랴. 잠자리에 누워 듣는 빗소리는 가슴이 졸아드는 고문이었으리라.
“제발, 다 떠내려가도 내버려둬라. 끙끙 앓는다고 건질 방도가 있나. 설마 굶어 죽지야 않겠지.”
벽을 타고 건너오는 아버지의 위로는 어머니의 신음보다 더 가슴이 저려왔다. 아버지는 와병으로 공직에서 물러나 휴양 중일 때였다. 세상사엔 어린아이 같아서 부처님 가운데 부분 같다는 남들의 평가였지만, 일가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의 마음은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었으리라. 곁자리에 누워 밤마다 어머니의 한숨을 들어야 했을 아버지. 나처럼 보리가 썩는 걱정보다 어머니의 한숨에서 달아나고 싶지는 않았을까.
어머니가 잠든 새벽녘이면 내방 봉창 너머로 아버지의 숨죽인 발걸음소리가 지나갔다. 조심조심 뒤란으로 돌아가 짚 동 사이에서 소주병을 꺼내 홀짝이셨다. 아버지께 술은 금물이었고 가슴이 철렁했지만 나는 아는 체 하지 못했다. 몇 모금의 술이 위안이 될 것이라 여겼다. 아버지의 심중을 헤아린답시고 눈감은 것이지만, 나 또한 고통스런 신경 줄 하나를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는 척 엎드려 있었지만, 온몸의 신경 다발이 그리로 향한 체 오그라들곤 하였다. 비만 그쳐준다면, 그러면 모든 걱정이 일시에 해결될 것 같은 간절한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한숨과 아버지 음주의 비밀과 코스모스씨앗처럼 홀쭉해진 쓰디쓴 보리밥을 먹던 기억이 비에 섞여 내린다. 내 성장의 언저리에 옹이를 박고 관통해간 그해 여름의 오란 비처럼. 아버지가 드신 술이 그것만은 아니지만, 술이 아버지의 명을 단축시켰음을 부인할 수 없는 까닭이다.
비는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점점이 떨어지는 빗방울이 아버지의 기나긴 말줄임표 같아 서럽다. 오란 비 계절이면 나는 아버지가 못다 하신 이야기 몇 문장 풀어 읽으려고 물음표로 서 있곤 한다.
수필 동상
아버지의 발
장미숙
가을날 오후, 거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햇살이 따스하다. 햇살을 등에 지고 낮잠을 주무시는 아버지의 야윈 몸이 그림자처럼 고요하다. 짧은 바지 밑으로 드러난 아버지의 발은 까칠하고 거무죽죽하다. 깎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엄지발가락의 발톱 양끝은 살 속에 깊이 파묻혀있다. 살 속을 파고들어가 상처를 만드는 발톱이 문득 아버지의 피폐한 정신세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딱딱한 발톱이 살 속에 상처를 내는 것에 아랑곳없이 아버지는 곤한 잠에 빠져있다.
아버지의 정신은 지금 어디쯤에 멈춰있는 것일까. 부처님 귀처럼 생긴 오른쪽 귀가 베개에 눌려있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편안해 보인다. 아버지의 머리를 바로 놓아드리고 나는 아버지의 손등을 훑어본다. 창백해 보이는 손등에 굵은 핏줄이 도드라져 있다. 죽은 살들에 둘러싸인 손톱도 발톱 못지않게 자라나 있다. 손, 발톱을 깎아드리고 싶은데 아버지의 곤한 잠에 방해가 될까봐 꺼냈던 손톱깎이를 살며시 밀어놓는다.
잠든 아버지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본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잠이 든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어서 가슴이 아릿해온다. 곤한 잠속에 빠진 아버지의 옆모습을 보며 젊었던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빨리 늙어서 힘없는 노인이 되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버지의 이런 모습이라도 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꿈에서조차 흐릿한 기억을 더듬고 있는 건 아닌지 문득 아버지의 꿈속을 들여다보고 싶다. 내 상념이 깊어짐에 따라 아버지의 잠도 깊어지나 보다. 아버지의 머리가 베개 한쪽으로 툭 떨어지자 아버지의 긴 그림자가 잠깐 흔들린다.
일흔넷의 아버지는 일흔 다섯인 어머니보다 대여섯 살은 더 젊어 보인다. 주름살이 깊고 굵은, 해가 갈수록 작아지는 어머니 얼굴에 비하면 아버지 얼굴의 주름살은 엷고 가늘다. 언젠가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 작아져버린 것 같아 어머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적이 있다. 그때 내 손에 만져진 건 주름 속에 묻힌 어머니의 아픈 세월이었다. “엄마 얼굴이 왜 이렇게 작아져 버렸어? 한주먹도 안 되겠네.” 내 말에 어머니 얼굴의 깊은 주름들이 탈처럼 허망하게 웃었다.
“나가 느그 아부지보다 빨리 죽으면 큰일인디…. 느그 아부지가 나보다 먼저 가야 할 것인디 아무래도 아닌갑다. 느그 아부지 식사하시는 것 좀 봐라. 으째 밥맛이 저리 좋은가 모르겄다. 나 없으면 느그 아부지 참말 불쌍할 것인디….” 요즘 들어 어머니는 그런 말을 자주 하신다. 그럴 때면 어머니 얼굴의 주름이 더 깊어 보인다.
어머니는 몇 달 전, 종합병원에서 눈과 목 부분 정밀검사를 받으셨다. 일흔다섯이 되도록 어머니는 병원을 모르고 사셨다. 간혹 일년에 두어 번 편도가 부어올랐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머니는 허허 웃어버렸다. 관절염과 신경통은 병이 아니라 오히려 어머니를 악착같이 만든 삶의 오기 같은 것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지쳐가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을 때 어머니는 더 이상 강한 모습이 아니었다. 서둘러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셨지만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걱정했던 목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눈은 심각한 상황이었다.
평소 이물감과 눈물 때문에 힘들어하시던 어머니의 눈은 녹내장으로 시신경이 많이 손상되어 있다고 했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으려면 약을 복용하고 안약을 사용하면서 주기적인 검사를 병행해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이 내려졌다. 농사일로 바쁜 어머니는 당신의 눈보다 서울을 오가느라 농사를 망칠까봐 더 노심초사하는 눈치였다.
어머니의 눈이 그렇게까지 나빠진 건 노환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로 인해 신경을 과도하게 소진한 탓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는 어머니가 왜 아픈지, 어머니의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 무심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아버지에게 세상은 영화속 한 장면 같은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생각은 어느 한 시점에서 정지해버렸고 아버지는 정지해버리기 전의 생각만을 회상하고 되풀이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없으면 불안해하지만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이름은 알지만 자식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는 모른다. 아버지는 어느 때 웃어야 하고, 어느 때 울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 본적이 없다. 아버지의 눈물은 아버지의 잃어버린 이성 속에 깊이 숨어버린 지 오래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아버지의 눈은, 그러나 안개처럼 흐려 있다. 아버지는 잘 웃는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진정한 웃음을 본적이 없다. 아버지의 웃음은 텅 비어있다. 빈 웃음 속에서 바람처럼 헛도는 아버지의 아픈 세월이 만져진다. 아버지가 의식하는 건 기본적인 생존에 대한 행위들과 머리를 다치기 전 오래된 기억들뿐이다.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아버지는 돈과 음식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병원에서 퇴원하신 후 아버지는 신경안정제에 의존하여 그나마 조금은 정상적으로 보이는 삶을 살고 계신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된지 오래고 그 세월을 묵묵하게 살아오셨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어머니가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삶에 대한 오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살게 한 힘은 희망도 의지도 아닌, 이를 악물어야 하는 오기였다. 어머니는 악착같았고 어머니는 치열했으며 어머니는 삶을 초월해버린 사람같이 살아오셨다. 해가 갈수록 어머니의 몸피는 작아지는데 보듬어야 할 생각들은 더 늘어나서일까. 그렇게 악착같던 어머니가 점점 지쳐가고 있음을 느낀다.
어렸을 적, 아니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내 눈에는 병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아버지보다 아버지로 인해 고통 받는 어머니가 더 애처로웠다. 혼미한 정신으로 가족을 괴롭히는 아버지가 미웠고 원망스러웠다. 아버지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게 두렵고 무서웠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내 앞에 초라한 모습으로 서 계셨다. 아버지의 외로움이 내 뼈와 살 속에 날카로운 발톱처럼 스며들었다. 눈물의 의미도 모르는 아버지가 내 가슴속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물로 가슴이 흥건히 젖어들던 날, 나는 아버지의 등을 말없이 껴안았다. 따뜻한 아버지의 등이 내 식은 가슴을 데워주었다. 자식들에게 보고 싶다는 말도 할줄 모르는 내 아버지, 당신의 생각과 손발이 되어주고 있는 어머니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내 아버지, 감정도 이성도 잃어버린 아버지가 빗물처럼 가슴을 타고 흘러 내렸다.
아버지는 주무실 때 무슨 꿈을 꿀까. 나는 아버지의 꿈이 궁금하다. 부디 정신을 잃어버리고 난후가 아닌, 조금이나마 행복했던 이전의 기억들이 아버지의 꿈을 채웠으면 좋겠다. 살 속을 파고 들어간 아버지의 발톱을 깎아드리기 위해 수건을 펼치자 그 위로 맑은 햇살이 스며든다. 아버지의 발이 따뜻하다.
대상
삽 이종섭
오래 쓰면 쓸수록 뾰족한 그곳이 둥그런 엉덩이처럼 변해가는 삽, 처음부터 찌르기 위해 만들어진 삽날은 흙을 갈아엎고 퍼 나르는 동안 닳고 닳아 유순하게 변화되기까지 수없는 세월을 홀로 울며 견뎌야 했다
조금씩 추해지는 표정을 감추려고 찬물로 세수하는 것도 잠시뿐, 쓰레받기로나 쓰이는 늘그막이 되어서야 위협적인 꼭지 부드럽게 깎여 거름더미라도 한 짐 푸짐하게 퍼주고 싶은 착하디착한 곡선으로 변한 것이다
땅을 파면 팔수록 산봉우리 닮아가고 모래를 뜨면 뜰수록 물의 흐름 배워가는 삽 한 자루의 성실한 노동 앞에 겸손히 머리 숙이고 싶은 날, 평생 맞서기만 하던 땅위에 서서 일방적으로 저지른 잘못을 사과라도 하듯 자근자근 눌러보는 삽날의 애교
나의 노년도 저랬으면 좋겠다 싶어 몇 군데 짚이는 곳을 슬며시 만져보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 남을 찌르며 살아야했던 아픔을 언제까지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괴로운 밤 땅을 파기 위해 삽질을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땅을 파야했던 삽 한 자루의 수행이 떠오른다
땅은 삽날을 갈아내기 위한 숫돌이었을까 강할수록 부드러운 숫돌을 사용해야 한다며 꼬리뼈의 흔적조차 완전히 없애버린 그곳을 내놓고 다니는 짐승 한 마리, 모든 것을 달관한 자세 하나 얻기 위해 날카로운 송곳니도 사나운 포효도 다 버렸다
금상 ----시
키쓰는 무장무장 나리고
정 명
그럽디다 차말로. 어느 시인의 말맨치로, 함박눈이 오믄 우새시럽게도 이웃집 남자가 그립습디다. 아 금메, 그 남자 첫사랑을 탁해가꼬.
긍게 거시기, 그 삼월도 요러크름 눈이 내렸는디, 밤하늘은 아조아조 꺼매서 눈송이는 메밀꽃맹키 빛나등만. 다방 갈 돈도 없는 우리는 뿌담시 동네를 멫 바쿠나 돌았당께요. 그 머시메가 손목 끌고 간 어느 골목길, 배람박에 뽀짝 붙어가꼬 대뜸 이럽디다. 키쓰해 주까. 오메, 낯바닥이 뜨겁고 심장이 통개통개, 난 그만 쫌더 크먼이라고. 내빼부렀제. 뽀뽀도 아니고 숭허게. 그라고 키쓰가 무신 동냥이간디, 낭만적 사랑과 사회*만 알았어도 그짝을 가만 놔두덜 않제. 나가 먼첨 프렌치 키쓰를 퍼부숴줬을 거인디, 짚이짚이 들척지근허니. 그려도 그렇지. 그 놈은, 바보 겉은 그 놈은, 사랑도 짜잔허게 허락받아 허는가벼어. 영산강 하구언둑에서 암시랑토 안허게 들어가지 말라고 붙잡던 보짱은 거시기였당가. 포도시 짱구이마에 차디찬 뽀뽀를 허고 보듬아준 그 놈, 주머닛돈 오백원으로 포장마차에서 홍합 멀국을 홀짝이고 홀짝이다… …. 집 앞 골목꺼정 왔는디, 땡땡 언 내 손을 잡고 애문 눈길만 푹푹 파제낍디다. 워째야쓰까, 솔찬히 커부렀는디, 입태꺼정 지대로 된 키쓰맛을 몰르는 나는, 오늘맹키로 눈이 오는 날이믄 맬겁시 스무 살이 그리워 눈물납디다. 순전히 고놈의 눈 땜시 애간장 녹습디다.
키쓰는 폭설맹키 와야 허는 벱이지라우, 아먼.
시방 못다 한 키쓰맨치로 눈은 나리고
무장무장 눈치 없이 나리고
은상----시
인어주식회사
김정호
그는 불룩 솟은 거대한 도시의 아스팔트 위로 매일같이 출근한다
손가락 뚫린 빨간 코킹장갑을 끼고
눈 내리는 신촌 맥도날드 앞을 지리멸렬하게 헤엄쳐간다
닳아서 반들반들해진, 비늘이 너덜너덜해진,
검은 고무 지느러미를 끌고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란 이런 것이다, 몸소 보여주듯
배 밑에 바퀴를 깔고 두 손을 노 저어 헤엄쳐간다
가끔 배가 고픈 듯 플라스틱 바구니를 손으로 휘휘 저으면
백동전 대신 족보도 없는 기쁘다 구주만 오셨다 가시는 일인 주식회사
그는 젊고 싱싱한 공주가 아니므로, 이곳의 벌이는 시원찮다
펑펑 송이눈은 등가죽 위로 하염없이 쌓이고,
깡총깡총 어린 연인들이 그 옆을 종종거리는,
오늘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그는 수초처럼 흔들리고 휘어져도, 절대 부러지지 않는다는 듯
두 주먹 쥐고 허리 한번 으샤 일으켜 세워 본다
아득한 해저 단칸방에 두고 온 어린 인어들,
아직은 나에게도 두 팔이 있다야,
두 눈을 끔뻑거려 보는 것인데,
그는 바다가 아닌 암초 위에서 젊음을 탕진했으므로, 그리하여
이 거추장스럽게 불룩 솟은 거대한 암초를 묵묵히 갈아버리겠다는 듯
뿌드득 이를 갈며 매일같이 출근을 한다
그가 지났을 아스팔트 수면 위로 새하얀 송이눈이
밤새 징글벨 징글벨 쌓이고 또 쌓여갔다
동상----시
회오리
김대호
나무의 몸에 회오리가 산다
몸을 잘라야 볼 수 있지만
조룡리의 오백 년 된 은행나무 회오리는
한창 때, 뒷산으로 숨는 동학군을 보았다
대개 연륜이 쌓인 회오리는
행간 좁혀 몸에 바람 드는 것을 막는다
외부의 압력은 한 번 걸러 담는다
고향 촌집 대밭을 휘돌아나가던
수다스런 바람들, 젊을 적 애비를 꼭 빼닮은 장남마냥
바람만 불면 집을 나가는 회오리도 있다
어떤 회오리는 성격을 고쳐 종이가 되었다
등짝 가득 문신을 새겼다
몸이 구겨져도 몸에 박힌 사상은 평생 그를 따라다닌다
잔비 내리는 바람재 숲길
허리를 자르면 회오리가 들어 있는 나무들이 따라온다
회오리의 예언은 안으로 돌린 채
시치미 뚝 떼고 바람에 손만 흔드는 나무들
한 치 앞도 점칠 수 없는 사물이
나무의 서식지에서 마구 휘둘리고 있다
수필 금상
굳은살
임병숙
아버지의 발바닥은 평생 칠순 노인의 삶을 지탱해주었다. 길이를 알 수 없는 질곡의 세월이 덧개처럼 쌓여서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혀있다. 피부라기보다는 갑각류의 그것 같다. 발바닥만 감싼 굳은살은 여느 피부처럼 촉촉하거나 매끄럽지도 않고 푸석푸석한 게 아무런 반응도 없어 보인다. 척박하기만 하다. 멈춰선 시계바늘처럼 늘 그 자리에 정지된 모습이다. 만져보면 메마른 바람 소리가 들린다.
갑작스런 마비증상으로 아버지가 입원을 하셨다. MRI 사진을 찍어 보니 뇌 속의 혈액이 하얗게 고여 있는 게 보였다. 뇌졸중이라고 했다.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탁해지면서 무언가를 상실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몸속을 흐르는 혈액도 마찬가지다. 적은 양이지만 혈액이 고여 있어서인지 아버지의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되었다. 입원한 지 하루만이다. 무슨 말인가 의사 표현을 하셨지만, 들리는 것은 제자리를 뱅뱅 도는 혀의 웅얼거림이었다.
하루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하루 사이에 반쪽이 정지 된 아버지에게 스물네 시간은 순식간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그만큼 절망감도 컸으리라.
“으, 으….”
온 몸이 뒤틀리는 고통에 틀니 사이로 발작처럼 비명이 새어 나왔다. 얼굴에는 주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살집이 없던 체격은 며칠사이에 뼈마디만 도드라졌다.
거미줄 같은 혈관을 따라 흐르던 수분이 길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발끝에 닿기 전에 증발해 버린 것일까.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표피가 오랜 침묵을 깨고 스멀스멀 움직였다. 아버지의 발바닥이 탈수증으로 타들어가는 식물처럼 하얗게 변했다. 곧이어 이리저리 가느다란 선을 긋더니 봉긋하게 일어났다. 잘 익은 봉숭아 씨앗 주머니 같은 초조와 긴장감이 돌았다. 굳은살이 툭툭 갈 갈라지면서 소리 없는 파열음이 씨앗처럼 쏟아졌다. 찢겨진 종이조각처럼 너덜너덜해진 굳은살이,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다.
갑작스런 삶의 정지로 혼란을 겪는 것일까. 아버지의 기억력이 몹시 나빠졌다. 숫자 계산은 물론 자식들 얼굴도 몰라보셨다. 아주 오래전의 일들을 기억하다 어느 날은 방금 전의 것도 기억을 못하셨다. 어떤 날은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던 아버지는 직선적인 성격이다. 싫고 좋음이 분명하고 싫은 감정은 거르지 않고 그대로 내색하신다. 그로 인해 여러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하셨다. 그 모든 것을 거세당하듯 누워 있으니 기억력마저 떨어지는 것 같다.
기억이란 지나간 시간이 남긴 유물이다. 그 시간이 많을수록 기억들도 많지 않을까. 아버지도 연세가 많으니 두꺼운 퇴적층처럼 쌓여있으리라. 하지만 똑같은 장면이나 사건일지라도 기억이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구는 슬프고 누구는 슬프지 않고, 혹은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 느낌에 따라 기억 할 수도 있고 기억 못 할 수도 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남다른 느낌을 받았다면 오랫동안 뇌리에 남기도 한다. 또한 큰 사건이라도 그 순간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면, 전혀 기억 못 할 수도 있다.
아버지의 기억의 농도가 다른 것도 그런 차이리라. 그러니 굳이 기억 못한다고 해서 탓할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당신의 뇌리에 깊게 각인 되어서, 두고두고 말했던 것조차 기억 못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수십 년을 함께 살다 먼저 가신 어머니의 기일조차 하얗게 지워버린 아버지. 심지어 당신의 몸에서 떨어진 살비듬이 쌓여 있는 집 주소도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아버지의 세포에 층층이 쌓여 있던 기억들이 굳은살처럼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기억력을 되돌리기 위해 아버지에게 볼펜을 쥐어 드렸다. 날짜가 지나간 달력 위에 단어를 불려드리며 써보라고 했다. 쉬운 단어도 쓰지를 못하셨다. 고대 어느 벽화에 그려져 있는 상형 문자 같은 선만 간신히 그었다. 며칠 동안 연습을 했지만 같은 선 긋기의 반복이었다. 아버지가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얘기를 하면 이해를 하셨다. 하지만 그 중에 한 마디라도 써보라고 하면 쓰지를 못하셨다. 아버지가 기억의 저장고에서 물을 길어 올리지 못해도, 앵무새처럼 지나간 시간들을 되감기 해 보았다.
쓰기 연습을 한 달력이 늘어났다.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글씨지만 아버지만의 생각들을 유추해보았다. 정지된 기억 속에서 들춰내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서모, 자식들, 농사, 술, 아니면 경제적인 문제일까. 아버지의 기억의 저장고에서 꺼내온 것은 매번 엉뚱한 것이어서 답답해 하셨다. 하지만 힘들어 하면서도 틈 날 때마다 글씨를 쓰더니, 마침내 몇 개의 단어를 쓰셨다. 모자르(못자리), 고츠(고추), 송(사위), 불생해(불쌍해). 평생 써 본 적 없는 왼손 글씨는 구불구불 기어서 그림이 되었다. 그 중에 ‘불생해’ 라는 단어가 유독 크게 보였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그렇듯이 아버지도 속정을 쉽사리 표현 못하셨다. 뒤늦게 만나서 당신 때문에 고생하는 서모지만, 한 번도 고생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당연한 걸로 여겨서 서모를 힘들게 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불생해’ 라고 쓰셨다. 지금까지 고생 시킨 것에 대한 미안함과, 혹시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다음의 서모를 걱정하고 있었다. 또한 흙냄새에 성큼성큼 발도 담그고, 사위에게 얹어 준 짐의 무게도 가늠하고 계셨다. 뇌졸중으로 정지된 언어의 틈새로 기억이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인가.
침대 매트리스 위에 바람결에 떨어진 이팝꽃처럼 굳은살이 하얗게 떨어졌다. 양말을 갈아 신길 때마다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언젠가 굳은살처럼 두꺼운 껍질이 갈라진 나무를 본 적이 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매달려 있는 모습은, 껍질 속마저 퇴화되어서 텅 비어 있을 것처럼 보였다. 호기심에 껍질을 벗겨보니 힘없이 툭툭 떨어졌다. 그러나 그 속에는 벗겨낸 껍질보다 더 부드럽고 파르스름한 속살이 자라고 있었다.
담요 밖으로 삐져나온 아버지의 발바닥을 살펴보았다. 굳은살이 떨어진 자리에 부드럽고 마알간 속살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걸음마를 하지 않은 아기의 발이 이보다 더 부드러울까. 평생 농사를 지은 노인의 발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두껍고 투박한 두께로 인해 속살도 하얗게 굳어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속에는 새살이 씨앗처럼 발아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버지에게도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기억력을 차단하는 이물질 때문에 일시적으로 정지 되었을 뿐이다.
굳은살이 각질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면 아버지의 세포마저 소멸되는 듯 했다. 힘겹게 붙들고 있는 작은 희망마저 고기의 비늘처럼, 툭툭 떨어지는 것 같은 초조와 불안감이 가슴 한켠을 차지했다. 하지만 굳은살이 떨어진 자리에는 절망만 있는 게 아니고 희망도 웅크리고 있었다. 쉽게 절망했던 것은 절망이라는 두텁고 단단한 문을 밀치고 나가면, 또 다른 희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쉽게 절망을 하고 쉽게 포기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까.
결국 굳은살이 떨어지는 것은 퇴화가 아니었다. 자신의 살점이 파열되는 고통을 견디며, 가슴 속에 품고 있는 희망을 발아시킨 것이다. 그러니 퇴화 되어서 정지된 것이 아니다. 절망도 아니고 희망이었다. 아버지의 부식되지 않은 삶의 기억들이 되돌아오기를 바라며, 미처 떨어지지 못한 굳은살을 뜯어냈다
수필 은상
오란 비
문혜란
오후의 볕살이 하도 오달져서 뒷산을 오르다가 비를 만났다. 반환점을 눈앞에 두고서다. 숱 많은 굴참나무 밑동에 기대어 비가 멎기를 기다린다. 토독 토독 톡 토독, 살찐 빗방울은 흙 위에 동그란 발자국을 찍는다. 비와 교접하는 마른 대지가 숨 가쁘게 뿜어내는 흙냄새는 엄마의 젖가슴을 열었을 때처럼 비릿하면서도 구수하다. 베어 말리는 풀 향기도 섞여 있다.
소나무 침엽 끝에 매달린 물방울이 진주처럼 반짝인다. 도심의 포도 위에 콩 튀듯 쏟아지는 소란스런 빗소리가 젊은이들이 즐기는 테크노음악이라면, 잘 썩은 부엽토 위에 사뿐사뿐 내리는 비는 차분한 클래식이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는 시든 나뭇잎을 위한 탱탱한 수유의 시간이다. 청진기를 갖다 대면 가지마다 쪼르르 쪼르르 제 몸속으로 물 길어 올리는 소리 들리겠다. 흙과 밀착된 발바닥으로 스며드는 물기는 내 혈관마저 팽팽해지는 느낌이다. 비는 만물의 근원이며 지상에 터 잡은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의 명줄을 잡고 있다.
비에 대한 감성은 저마다 다르다. 소나기가 퍼부으면 미친 듯 거리로 뛰쳐나가 쏘다니고 싶다는 사람,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친구를 불러내는 사람도 있다. 자칭 애우(愛雨)가라는 친구한테 비가 좋은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비가 쏟아질 때면 까닭 없이 흥분되고 이미 재가 되어버린 옛사랑이 부활할 것처럼 꿈틀거린다는 대답이었다. 그만큼 감성이 예민해진다는 뜻일 게다. 일정한 음을 동반한 빗소리와 낮게 내려앉은 하늘이 사람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그와 반대이다. 내 달팽이관을 통과하는 빗소리는 서둘러 토방에 놓인 신발이라도 들여야 할 것 같은 막연한 불안을 동반한다.
그해, 망종도 되기 전에 시작된 장마는 논바닥에 베어 눕힌 보리를 갈무리할 새도 없이 붉덩물에 잠겨버렸다. 고슬고슬 마르지 않으면 도리깨타작은 불가능하다. 여우볕에 말려보려고 물에서 건져낸 보릿단을 안고 밭두렁으로 산비탈로 옮겨 다녔다. 오랜 투병환자의 욕창을 막기 위해 수시로 닦고 돌려 눕히는 병수발이었다. 거두어 쌓아둔 보리 더미에서도 두엄냄새가 피어올랐다. 한 알의 이삭이라도 건져보려고 뒤집고 헤집기를 계속했지만 거둘만하면 다시 젖기를 반복했다. 한 달여 계속된 장마에 보리는 결국 아래로는 뿌리를 내리고, 위로는 잎을 키웠다. 힘 좋은 머슴들도 어찌해볼 수 없는 애간장 타는 일이었다.
보리는 가난과 배고픔의 상징이다. 전해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나고, 보릿고개를 참지 못해 영글지도 않은 풋보리를 삶아서 죽을 쑤어 먹던 집들이 있었다. 가난한 농가에 보리양식은 곧 생명줄이었다. 한 톨의 밥알이라도 먹을거리에 대한 훼손은 금기였으니 배고프지 않아도 되는 집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어머니의 한숨은 밤마다 한 음씩 높아가더니 종내는 끙끙 앓는 심음소리로 변해갔다. 농사일을 두량 하며 몸을 혹사해온 어머니에게 곡식은 자식이나 진배없었을 터이다. 가축이 텃밭의 남새 한이랑 짓이겨도 탈기를 하는 것이 농부의 심정인데 수확을 앞둔 곡식을 곱다시 썩히는 일임에랴. 잠자리에 누워 듣는 빗소리는 가슴이 졸아드는 고문이었으리라.
“제발, 다 떠내려가도 내버려둬라. 끙끙 앓는다고 건질 방도가 있나. 설마 굶어 죽지야 않겠지.”
벽을 타고 건너오는 아버지의 위로는 어머니의 신음보다 더 가슴이 저려왔다. 아버지는 와병으로 공직에서 물러나 휴양 중일 때였다. 세상사엔 어린아이 같아서 부처님 가운데 부분 같다는 남들의 평가였지만, 일가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의 마음은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었으리라. 곁자리에 누워 밤마다 어머니의 한숨을 들어야 했을 아버지. 나처럼 보리가 썩는 걱정보다 어머니의 한숨에서 달아나고 싶지는 않았을까.
어머니가 잠든 새벽녘이면 내방 봉창 너머로 아버지의 숨죽인 발걸음소리가 지나갔다. 조심조심 뒤란으로 돌아가 짚 동 사이에서 소주병을 꺼내 홀짝이셨다. 아버지께 술은 금물이었고 가슴이 철렁했지만 나는 아는 체 하지 못했다. 몇 모금의 술이 위안이 될 것이라 여겼다. 아버지의 심중을 헤아린답시고 눈감은 것이지만, 나 또한 고통스런 신경 줄 하나를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는 척 엎드려 있었지만, 온몸의 신경 다발이 그리로 향한 체 오그라들곤 하였다. 비만 그쳐준다면, 그러면 모든 걱정이 일시에 해결될 것 같은 간절한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한숨과 아버지 음주의 비밀과 코스모스씨앗처럼 홀쭉해진 쓰디쓴 보리밥을 먹던 기억이 비에 섞여 내린다. 내 성장의 언저리에 옹이를 박고 관통해간 그해 여름의 오란 비처럼. 아버지가 드신 술이 그것만은 아니지만, 술이 아버지의 명을 단축시켰음을 부인할 수 없는 까닭이다.
비는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점점이 떨어지는 빗방울이 아버지의 기나긴 말줄임표 같아 서럽다. 오란 비 계절이면 나는 아버지가 못다 하신 이야기 몇 문장 풀어 읽으려고 물음표로 서 있곤 한다.
수필 동상
아버지의 발
장미숙
가을날 오후, 거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햇살이 따스하다. 햇살을 등에 지고 낮잠을 주무시는 아버지의 야윈 몸이 그림자처럼 고요하다. 짧은 바지 밑으로 드러난 아버지의 발은 까칠하고 거무죽죽하다. 깎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엄지발가락의 발톱 양끝은 살 속에 깊이 파묻혀있다. 살 속을 파고들어가 상처를 만드는 발톱이 문득 아버지의 피폐한 정신세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딱딱한 발톱이 살 속에 상처를 내는 것에 아랑곳없이 아버지는 곤한 잠에 빠져있다.
아버지의 정신은 지금 어디쯤에 멈춰있는 것일까. 부처님 귀처럼 생긴 오른쪽 귀가 베개에 눌려있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편안해 보인다. 아버지의 머리를 바로 놓아드리고 나는 아버지의 손등을 훑어본다. 창백해 보이는 손등에 굵은 핏줄이 도드라져 있다. 죽은 살들에 둘러싸인 손톱도 발톱 못지않게 자라나 있다. 손, 발톱을 깎아드리고 싶은데 아버지의 곤한 잠에 방해가 될까봐 꺼냈던 손톱깎이를 살며시 밀어놓는다.
잠든 아버지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본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잠이 든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어서 가슴이 아릿해온다. 곤한 잠속에 빠진 아버지의 옆모습을 보며 젊었던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빨리 늙어서 힘없는 노인이 되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버지의 이런 모습이라도 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꿈에서조차 흐릿한 기억을 더듬고 있는 건 아닌지 문득 아버지의 꿈속을 들여다보고 싶다. 내 상념이 깊어짐에 따라 아버지의 잠도 깊어지나 보다. 아버지의 머리가 베개 한쪽으로 툭 떨어지자 아버지의 긴 그림자가 잠깐 흔들린다.
일흔넷의 아버지는 일흔 다섯인 어머니보다 대여섯 살은 더 젊어 보인다. 주름살이 깊고 굵은, 해가 갈수록 작아지는 어머니 얼굴에 비하면 아버지 얼굴의 주름살은 엷고 가늘다. 언젠가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 작아져버린 것 같아 어머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적이 있다. 그때 내 손에 만져진 건 주름 속에 묻힌 어머니의 아픈 세월이었다. “엄마 얼굴이 왜 이렇게 작아져 버렸어? 한주먹도 안 되겠네.” 내 말에 어머니 얼굴의 깊은 주름들이 탈처럼 허망하게 웃었다.
“나가 느그 아부지보다 빨리 죽으면 큰일인디…. 느그 아부지가 나보다 먼저 가야 할 것인디 아무래도 아닌갑다. 느그 아부지 식사하시는 것 좀 봐라. 으째 밥맛이 저리 좋은가 모르겄다. 나 없으면 느그 아부지 참말 불쌍할 것인디….” 요즘 들어 어머니는 그런 말을 자주 하신다. 그럴 때면 어머니 얼굴의 주름이 더 깊어 보인다.
어머니는 몇 달 전, 종합병원에서 눈과 목 부분 정밀검사를 받으셨다. 일흔다섯이 되도록 어머니는 병원을 모르고 사셨다. 간혹 일년에 두어 번 편도가 부어올랐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머니는 허허 웃어버렸다. 관절염과 신경통은 병이 아니라 오히려 어머니를 악착같이 만든 삶의 오기 같은 것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지쳐가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을 때 어머니는 더 이상 강한 모습이 아니었다. 서둘러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셨지만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걱정했던 목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눈은 심각한 상황이었다.
평소 이물감과 눈물 때문에 힘들어하시던 어머니의 눈은 녹내장으로 시신경이 많이 손상되어 있다고 했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으려면 약을 복용하고 안약을 사용하면서 주기적인 검사를 병행해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이 내려졌다. 농사일로 바쁜 어머니는 당신의 눈보다 서울을 오가느라 농사를 망칠까봐 더 노심초사하는 눈치였다.
어머니의 눈이 그렇게까지 나빠진 건 노환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로 인해 신경을 과도하게 소진한 탓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는 어머니가 왜 아픈지, 어머니의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 무심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아버지에게 세상은 영화속 한 장면 같은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생각은 어느 한 시점에서 정지해버렸고 아버지는 정지해버리기 전의 생각만을 회상하고 되풀이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없으면 불안해하지만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이름은 알지만 자식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는 모른다. 아버지는 어느 때 웃어야 하고, 어느 때 울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 본적이 없다. 아버지의 눈물은 아버지의 잃어버린 이성 속에 깊이 숨어버린 지 오래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아버지의 눈은, 그러나 안개처럼 흐려 있다. 아버지는 잘 웃는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진정한 웃음을 본적이 없다. 아버지의 웃음은 텅 비어있다. 빈 웃음 속에서 바람처럼 헛도는 아버지의 아픈 세월이 만져진다. 아버지가 의식하는 건 기본적인 생존에 대한 행위들과 머리를 다치기 전 오래된 기억들뿐이다.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아버지는 돈과 음식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병원에서 퇴원하신 후 아버지는 신경안정제에 의존하여 그나마 조금은 정상적으로 보이는 삶을 살고 계신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된지 오래고 그 세월을 묵묵하게 살아오셨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어머니가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삶에 대한 오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살게 한 힘은 희망도 의지도 아닌, 이를 악물어야 하는 오기였다. 어머니는 악착같았고 어머니는 치열했으며 어머니는 삶을 초월해버린 사람같이 살아오셨다. 해가 갈수록 어머니의 몸피는 작아지는데 보듬어야 할 생각들은 더 늘어나서일까. 그렇게 악착같던 어머니가 점점 지쳐가고 있음을 느낀다.
어렸을 적, 아니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내 눈에는 병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아버지보다 아버지로 인해 고통 받는 어머니가 더 애처로웠다. 혼미한 정신으로 가족을 괴롭히는 아버지가 미웠고 원망스러웠다. 아버지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게 두렵고 무서웠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내 앞에 초라한 모습으로 서 계셨다. 아버지의 외로움이 내 뼈와 살 속에 날카로운 발톱처럼 스며들었다. 눈물의 의미도 모르는 아버지가 내 가슴속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물로 가슴이 흥건히 젖어들던 날, 나는 아버지의 등을 말없이 껴안았다. 따뜻한 아버지의 등이 내 식은 가슴을 데워주었다. 자식들에게 보고 싶다는 말도 할줄 모르는 내 아버지, 당신의 생각과 손발이 되어주고 있는 어머니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내 아버지, 감정도 이성도 잃어버린 아버지가 빗물처럼 가슴을 타고 흘러 내렸다.
아버지는 주무실 때 무슨 꿈을 꿀까. 나는 아버지의 꿈이 궁금하다. 부디 정신을 잃어버리고 난후가 아닌, 조금이나마 행복했던 이전의 기억들이 아버지의 꿈을 채웠으면 좋겠다. 살 속을 파고 들어간 아버지의 발톱을 깎아드리기 위해 수건을 펼치자 그 위로 맑은 햇살이 스며든다. 아버지의 발이 따뜻하다.
올해의 제9회 시흥문학상 전국공모전에는 상금이 예년에 비해 배로 많아서인지
중앙지의 신춘문예에 낸 글 만큼의 많은 작품이 접수되어 열띈 경쟁을 했다.
시부문 2217편, 수필부문 829편의 응모작으로 인해 심사위원들을 힘들게 했다.
구분
장르
이름
작품명
주소
접수번호
대상
시
박노혁
어느 전시회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52
금
상
시
김영호
누이가 오래 된 집으로 걸어온다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2동
86
수필
문춘희
풍선
경북 경주시 동천동
418
은
상
시
윤 훈
오이도
경기도 의정부시 용현동
731
수필
안명지
그 남자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176
동
상
시
이은영
소래에서 이별하다
경기도 고양시 일상서구 탄현동
452
수필
정현교
훨훨 날아오르는연, 날지 못하는 연
강원도 강릉시 송정동
429
시 부문 우수상
이 름
작품명
주소
접수번호
김경성
꽃 핀다, 꽃 피어난다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3동
169
황소라
오늘은 아름다운 추억
대구시 서구 중리동
253
임상태
해 뜨는 집
서울시 강남구 청담1동
111
김은덕
암호
서울시 송파구 잠실3동
46
남상진
외줄타기
경남 마산시 진전면 오서리
248
김명숙
그 여자의 바다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본동
704
서상규
빨랫줄에 뻗은 생명선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
284
박춘희
옛 집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
599
정영희
중심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진우3리
624
김지혜
모두의 바람
서울시 중랑구 망우2동
468
배재형
이슬에 젖다
서울시 중랑구 묵동
587
최복임
枯死木
전북 순창군 인계면 갑동리
68
정철웅
염
광주시 동구 지산2동
415
정영희
비포장도로 송씨
강원도 남산면 수동1리
712
김상욱
다섯 손가락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25
수필 부문 우수상
이 름
작품명
주소
접수번호
김은경
생리적 현상
인천시 남동구 만수3동
30
장재화
경마장 풍경
경남 양산시 남부동
426
신현임
숲에 들면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여치길
216
이현주
점점
수원시 팔달구 화서2동
738
정순옥
틀니와 잔소리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월피동
104
장옥자
갚아야할 사랑
서울시 동작구 상도4동
465
정근식
와이샤츠를 다리며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497
김희자
사리
경북 경산시 진량읍 선화6리
211
박태남
마음을 비우며
부산시 사상구덕포1동
37
전낙월
호통이 그리운 시대
서울시 금천구 독산2동
541
이현두
씨 뿌리는 사람
강원도 영월군 서면 쌍용6리
506
주인석
실눈
울산시 북구 천곡동
260
김해자
어느 날 다시 탈을 쓰고
울산시 중구 반구동
659
박서정
옹이
울산시 북구 화봉동
223
임병숙
발효가 된 그리움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249
제9회 시흥문학상 대상
어느 전시회
박노혁
살아온 시간들은 소멸되지 않는다.
기억들은 집을 짓고
저마다의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때로 길이 끊어져 영원히 갈수 없는 별이 되었다해도
그곳에서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하여 삶이 잔잔해지는 어느 늦은 오후에
꿈틀거리며, 기억들은 시간의 문을 두드린다.
유년의 마당에서
젊은 아버지가 나를 목마 태우고 환하게 웃고 서 계신다..
나의 첫사랑이
목련나무아래 기대어 낙화처럼 손짓하고 있다.
바람의 자락을 잡고 춤추는 보리밭
작은 새와 잠자리, 나비. 양떼구름. 붉은 입술처럼 번지는 노을과
버들피리 불며 뛰어놀던 기억의 능선.
지나간 시간은
스쳐지나온 액자 속의 그림들처럼.
차곡차곡 기억의 마을로 사라져 가고.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하는 날
밤하늘 별들처럼 하늘 한 켠에
빼곡히 전시되어 있으리라.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여.
제9회 시흥문학상 시부문 금상
누이가 오래 된 집으로 걸어온다 / 김영호
1.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장맛비에 젖는다 세족식처럼 길이 씻긴다 가로등 불빛이 울음을 그친 눈빛 같다 실직한지 오래인 아버지 우중충 젖은 벽지에 한숨이 머리를 박는다 책가방이 흠뻑 젖어있다
2.
몇 시간째 눈이 내린다 꿈의 세계로 달려가던 밤이 나침반을 내 던지자 장판 아래 어두운 구들 틈새 사이를 비집고 그림자도 없는 일산화탄소가 방안으로 들어온다 창백한 꿈속에서 차례로 기어 나온 동생들과 누이가 윗목에 엎어진다 한 장씩 늦은 책장을 넘기던 내 눈에 아슬아슬한 뉴스의 한 장면이 스친다 어디선가 북 소리가 불안하게 울린다 하늘에 오르지 못한 하얀 눈이 쓸모없는 날개처럼 굴뚝에 처박혀 있다
3.
꺼지지 않는 연탄불은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이다
소리 없이 시작되는 연극처럼
새벽을 연 어머니
부엌에서 밥솥의 하얀 김이 안개의 발원지처럼 솟고
끼니마다 상에 오르는 콩나물 냄새가
문틈 사이를 지나 동 트기 전 어두운 새벽을 깨운다
연탄불에 엉덩이를 댄 세숫대야엔
언제나 조용히 물이 끓고
그 물을 아끼며 식구들이 차례로 잠을 털어낸다
창호지에 찬란한 아침이 드리우면
오늘의 기대감이 외출 할 시간이다
4.
오래 되어 거뭇한 손과 어두워진 눈이 바늘귀에 실을 꽂듯 고등학교를 졸업한 누이는 우유회사 꿈 많은 스무 살 신입사원이었다 적은 월급이 대나무 살처럼 가늘게 쪼개져도 누이의 얼굴은 늘 갓 따온 채소처럼 파랬다 서른을 넘겨 만난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 사내를 따라 미국으로 간 누이의 목소리는 일요일이면 어머니의 안부를 살피기 위하여 안방에 나타났다 바람난 그 사내가 언젠가 집을 나갔다는 말이 송곳 같았다 뜨거운 연탄불같은 사랑으로 아들을 키우는 누이의 한 쪽 턱이 헤쓱한 하현달처럼 차츰 기울어갔다
누이가 오래된 집으로 걸어온다 선인장 화분에서 백년에 한번 피는 보랏빛 꽃이 봉긋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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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제9회 시흥문학상 수필부문 금상 수상작-문춘희
풍 선
풍선을 한 묶음 샀다. 여러 가지 색깔의 풍선들이 가득 들어있다. 풍선을 꺼내 하나씩 하나씩 분다. “푸-우, 푸-후훕, 푸푸-훕.” 노랑 풍선, 파랑 풍선, 빨강 풍선들이 거실 천장으로 쑥 날아오르는 것을 바라본다. 나는 종종 혼자서 풍선을 분다. 남들은 참 이상한 버릇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뭉게뭉게 부풀어 올라 가슴이 먹먹해져 오면 풍선을 분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늙으신 아버지가 꿈에 보이는 날에는 온종일 풍선을 분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물밀듯이 밀려와 숨이 가빠져 올 때엔 더 빨리 풍선을 분다. 풍선을 불면 숨이 가빠지는 증상이 많이 잦아들고 무언지 모를 불안감도 줄어든다.
겨울바람이 웅웅웅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어 창문을 몹시도 할퀴던 수 해 전 겨울, 나는 병원에 누워 있었다. 퀴퀴한 약품냄새가 나는 병실에 누워 가혹하게 불어대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면 소름이 돋도록 무서웠다. 빗자루에 휴지 조각이 쓸려가듯 저 바람이 나를 이 세상에서 쓸어 가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극도의 불안감이 전신을 엄습해왔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잠을 잔다는 것은 나에게는 숫제 고역이었다. 이리 저리 한참동안 뒤척이다 운이 좋게 잠이 들었다하더라도 거의 발작하듯 일어나야했다. 원인을 알 수없는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나 누워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창문을 온 사방 다 열어 살을 도려낼 것 같은 바람을 흠씬 들이쉬고 나서야 겨우 숨통이 트였다. 그 순간은 내가 출산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산모라 찬바람을 쐬면 안 되는 사실도 까마득히 잊었다. 수시로 숨이 턱에 찰 정도로 가빠지는 증상은 내가 막내를 출산하던 날 밤부터 생긴 증상이었다.
난산 끝에 제왕절개 수술로 아들을 출산한 날 밤, 나는 이승과 저승의 문을 오가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가느다란 산소 유리관으로 세상과 겨우 소통하면서 생(生)의 끈을 가까스로 그러쥐고 있었다. 눈만 감으면, 풍선 끈을 놓쳐버린 아이들이 하늘 높이 날아간 풍선을 바라보며 목 놓아 우는 장면이 나타났다.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떠보면 온몸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직 아들 녀석을 한 번도 품어보지 못했는데 이대로 줄을 놓아 버릴 순 없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둘째와 다섯 살 배기 첫째가 내 명줄을 바투 쥐고선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생사고비를 넘긴 다음날 아침, 아버지께서 병실로 찾아오셨다. 목발을 짚으신 채로 아주 힘겹게 병실 문턱을 넘으셨다.
“고생했다. 요즈음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 해도 이 서방 집은 워낙 아들이 귀한 집이다. 이젠 어깨 펴고 살아라.”
그리곤 장미 꽃 한 송이를 건네 주셨다. 순간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평소 그렇게 무감하시고 엄하시던 아버지께서 장미꽃이라니. 그것이, 바로 그 말씀이, 생전에 내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요, 마지막 말씀이 되실 줄이야……. 그리고 그 날 저녁 한 통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아버지, 돌아 가셨다.”
그 비보는 예리한 칼날이 되어 내 늑골 사이사이로까지 깊숙이 찔러댔다. 내가 열 달 내내 유산기와 조산기의 위험 속에서 새 생명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안간 힘을 쓰는 동안, 아버지의 생의 끈은 서서히 풀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언니나 오빠들에겐 언제나 과묵하고 엄하셨지만 막내인 나에겐 풍선만한 웃음을 푸후후 자주 웃으셨다. 오빠들이 짓궂게 놀리며 야단을 치려할 때도 아버지의 등 뒤에만 숨으면 그만이었다. 끈 하나에 매여 높이 떠있는 풍선처럼 아버지의 시선에만 매여 있으면 나는 이 세상 무엇도 무섭지 않았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암으로 누워 계셨다. 여러 차례의 대수술과 항암치료로 아버지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급속도로 늙으셨다. 나중에는 걷는 것조차 힘들게 되었다. 그러던 그날 아침, 생사의 고비를 막 넘긴 막내딸을 보기 위해 그렇게 힘겨운 걸음을 병원으로 옮기신 것이었다. 아버지께선 막내딸을 보지 않고선 도저히 생(生)의 끈을 놓지 못하셨던 것일까?
‘사람의 나고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만도 못하다니······.’ 눈만 감으면 시간 너머에 계시는 아버지가 걸어 나왔다. 낙타처럼 등이 굽은 아버지가 나를 애처로이 바라보고 계셨다. 어떤 날은 풍선처럼 쪼글쪼글해진 아버지가 하늘 높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보이지도 않는 아버지를 찾아서 꿈속을 걷고 또 걸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여윈 극도의 슬픔에다 내가 잠든 사이 누군가 내 생의 끈을 잘라가 버리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을 들이쉬기가 곤란한 증상이 그때부터 계속되었다. 출산한 지 몇 주가 지났지만 퇴원을 할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다 받아보았지만 의외의 진단결과가 나왔다. 임상적인 문제보다는 산후우울증에다 심리적인 공황상태가 더 커다는 소견이 나온 것이다.
어느 날,출근을 서두르던 남편이 내게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귀찮은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받았다. 예쁘게 포장된 작은 상자였다. 별반 궁금하지도 않아 식탁 한 켠으로 밀쳐두었다. 오후 다섯 시쯤이 되자 거실 창문으로 어둠이 서서히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식탁의자에 앉아 짙은 녹색으로 다가오는 어둠을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아버지가 가신 그 외로운 길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이어 막 숨이 가빠져 오기 시작했다. 그때 작은 상자가 손끝에 닿았다. 숨을 가쁘게 들이쉬고 내쉬며 열어보았다. 거기엔 갖가지 색상의 풍선이 가득 들어 있었다. 작은 메모지엔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당신과 같은 증상에는 자가 치료방법 중 하나로 풍선을 부는 것이 좋다고 함. -남편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풍선을 불었다. 주황 풍선, 검정 풍선, 초록 풍선 자꾸 자꾸 불었다. 너무 빵빵하게 불어 터질 것 같았다. 가슴이 좀 덜 답답했다. 풍선 부는데 집중하느라 아버지도 잠시 잊어 버렸다. 온 집안 가득 풍선이 떠 있는 것을 보고 아이들은 좋아라하며 박수를 쳐댔다. 퇴근해 돌아온 남편도 말없이 웃었다.
그 후 몇 해 동안 나는 풍선을 참 많이 불었다. 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올 때쯤엔 온 집안이 풍선으로 가득 찼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한 방울 한 방울 유리창에 부딪치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풍선을 불었다. 차가운 바람이 강하게 불어 펄펄 종이조각들이 하늘을 날아다닐 때에도 풍선을 불었다.
하늘이 티끌 한 점 없이 맑은 어느 주말, 풍선을 한 묶음 샀다. 그리고 세 아이들을 데리고 강가로 나갔다. 훤하게 터진 강심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수없이 많은 빛의 입자들이 강 낯바닥에 반사되어 서로 부딪치면서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그 강물 위로 하얀 학들이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다. 내 마음도 잔잔한 강 수면처럼 고요해졌다. 아이들과 나는 갖가지 색깔의 풍선을 불었다.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아버지, 이제는 아버지 시선의 줄에 매달려 있는 끈을 놓으려 해요.’
나는 풍선을 날렸다. 풍선은 인연의 줄을 끊고 강바람을 타고 높이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아무 것도 걸릴 것이 없는 창공(蒼空)에서 하얀 학처럼 너울너울 춤을 추듯이 날아가는 풍선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이제 풍선은 슬픔의 노래, 아픔의 노래가 아니라 그리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나는 세 아이의 손을 바투 그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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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시흥문학상 시부문-은상|
오이도(烏耳島)
윤 훈
Ⅰ
태양이 바다로 떨어지는 마을
섬의 새벽은 파도소리와 함께 감겨온다
지난 밤 달빛에 끌려갔던 섬이
치맛자락을 끄을며 돌아오는 새벽
들고나는 바다가 그들에게는 일상의 시간표다
바다보다 더 부지런한 할머니
해안로를 따라가는 그 등이
파도처럼 굽어있다
방게 몇 마리가 그 뒤를 따라간다
바다마을 사람들은 자신만의 바다가 있다
통발 속에서 펄떡거리는 바다 생명들
Ⅱ
제가 품은 생명을 내어주는 바다
그것을 헤아리는 것은 바다사람들의 몫
오이도가 연시처럼 걸려 흔들린다
깎아지른 절벽 위
누군가의 절개 같은 裸木 한 그루
스스로를 살찌우지도, 키우지도 않고
세월 속에 스스로를 삭히는 朱木
햇볕 물러난 자리에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의 결대로 흔들리는 것이
나의 순리
바람도 멈추고 인적도 품어버린 포구가
바다에 길을 내어준다
잠시 유보된 삶 속에
하루에 두 번씩 바다는 맨살을 드러낸다
콘크리트가 키워낸 내 마음 속에도
바다 하나를 담고 돌아선다
뱃전으로 올라오는 투명한 살결들
그 바다 위로 황금빛이 몸을 눕힌다
서쪽하늘과 바다사이에 햇볕은 길을 내고
장대처럼 길게 누운 그림자 하나
노을 속에 서 있다
그 여자의 바다
그 여자의 바다
김명숙
바다가 길을 내어 놓는다
포구를 떠나간 사내가 돌아오지 않자
바다를 통째로 마시겠다던 그녀
사내를 기다리다 썰물이 되어 나섰다
바다 끝자락까지 가면 사내가 있을 것 같아
질벅한 갯벌의 사타구니도 마다하고
수평선을 향해 내닫는다
바다만 바라보다 섬이 되고팠던 여자
그 사내에게만 치마를 벗고 싶었던 여자
덕지덕지 바위에 붙어 있는 따개비 같은 상처가
그녀 안에서 구획을 넓혔다
뚝심 좋은 사내가 미끼를 던져도
아랫입술 질끈 깨물며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던 날들이
그녀 앞에 쌓여갔다, 깻단에서 깨 쏟아지듯.
섬을 떠난 그녀,
어부가 된 남자의 바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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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시흥문학상 전국공모전 시 부문 동상
소래에서 이별하다 - 이은영
버려진 소금 부대를 베고
하릴없이 누워
떠나간 사랑을 생각한다
덤불 가시 같은 햇살을 뭉쳐
녹슨 철길을 닦던 하루가
쭈그리고 앉아 운다
날은 저물어도 기차는 오지 않았다
축축한 바람이 분다
비린내 풍기며 멀리까지 나갔던
바다가 돌아와 출렁거리고
고기비늘처럼 둥둥 떠다니는
뜰채로도 건질 수 없는 기억들이
바람의 허리춤을 잡고
오래된 폐염전으로 쏟아진다
무심한 잡풀이 흔들린다
소금창고 너머 뻘 등에서
그럭저럭 늙어가는 포구 뒷골목
겹쳐진 천막사이로
매캐한 구공탄 연기 질금질금 새 나오고
막사발에 손가락 세워
잊혀져 가는 얼굴을 그린다
물기 남은 가슴에 빈 달이 떠오르고
휘청이던 바람이 차오른다
돌아오지 않을 사랑을 오래 사랑하여
이제
소래에서 사랑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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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시흥문학상 전국공모전 수필부문 은상
그 남자
안명지
한참 해가 뜨거운 오후 세 시이다. 가게 유리문 넘어서 초록색 버스가 멈춘다. 밖을 내다보니 모자를 쓴 남자가 비틀거리며 버스에서 내린다. 또 그 남자이다. 얼마 전부터 오늘 같은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잠시 동안 그의 근황을 유추해본다. 한동안 보이지 않아 새로운 길을 찾아갔겠지 하고 잊었던 참이었다. 손님의 남편이면서 실업자인 그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 건, 가장으로 살아가는 나를 보는 때문인지 모른다.
화창한 날씨가 도리어 그를 주눅 들게 하는듯하다. 이런 날 대낮에 술에 취하다니. 국화꽃 향기를 내는 아내와 산책하는 걸 본 기억이 고작 일 년 전의 일이었다. 그땐, 실직으로 자칫 깨어질 수도 있는 부부사이를 약간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어려움을 사랑으로 극복해나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탐스럽게 아름다운 붉은 장미꽃이 연상되었다.
“여지껏 식구들 먹여 살렸으니 당신은 이제 쉬어도 돼요.”
그 무렵, 아침 산책길에서 남편의 축 늘어진 어깨에 기운을 실어주었다는 그녀의 말이 따뜻하게 들려왔었다. 작대기 두 개가 서로 받치고 있어서 사람‘인’ 자 이듯이 서로 기대고 살아가는 게 부부이긴 했다. 적어도 내게 그들은 그렇게 보였었다.
유리문 건너 선명히 보이는 그에게 가까이 갔다. 붉어있는 딸기코, 풀어진 눈동자는 넋 나간 사람 같다. 사방을 휘둘러보며 이리 비틀 저리 비틀대면서도 중심은 잃지 않는 게 도리어 놀랍다. 타박타박 아스팔트길을 때리는 그의 발짝 소리가 아직 살아있는 최소한의 남자의 자존심이듯 간절하게 들려온다. 그런대도 넓은 하늘아래 짓눌리는 작달만한 그의 뒷모습이 안쓰럽다.
지난겨울, 동료들과 어우러져 맥주 마시는 그의 표정을 지나는 길에 보았을 때, 남자의 눈이 아무도 없는 빈 하늘에 가 있었다. 친구들 위로의 자리 같았다. 그의 눈에서 나는 그들이 더 이상의 동료가 아니라는 것을, 마음과 마음이 합일되지 않았다는 것을 읽어 내려갔다. 실업자와 잘 나가는 직장인 간의 부유, 바로 그것이었다. 관계의 끝이 머지않았으리란 막연한 느낌으로 그들을 지나치던 날이 그를 본 마지막이었다. 그리곤 요즘 버스에서 내리는 그를 보게 된 것이다. 그의 방황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방황이란, 마치고 보면 별 것이 아닌데 강을 건너기까지의 고통은 흐를 만큼 시간이 흘러야한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안다.
타박타박 발짝 소리를 내면서도 그의 몸은 점점 흔들거린다. 아직도 영육간 싸움을 하고 있으리라. 보암직하고 튼실한 열매를 맺는 과실수처럼, 예전의 그의 넉넉해 뵈는 성품의 느낌을, 지금 내 앞에서 걸어가는 그에게선 좀처럼 찾아 볼 수가 없다. 가슴 아픈 일이다. 이품(異稟)도 자존감을 잃은 남자에겐 허세에 불과한가보다. 실직이란 현실 앞에 무너지는 나약하고 초라한 인간의 모습이 내 앞에 있다.
때로 삶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방향을 잃기도 하고 가슴 아파야 할 때가 있다. 원치 않은 일들은 정신을 지배한다. 지배당한 정신은 온몸의 근육을 이완시킨다. ‘무력감’, ‘상실감’ 때문이다.
노숙자들 대부분이 정신이 망가진 사람들이라 한다. 젊음을 바쳤던 직장에서의 퇴출, 부도는 노숙자들을 만들어내는 직선 통로이리라. 그 통로 속에는 내려놓지 못한 내 안의 지식, 세상에서 중요시하는 더께가 짓누른 탓일지 모른다. 그런 것들에 의해 주저앉은 자신을 팽개친 이들.
며칠 전 출근길, 은행 자동화 코너 안에서 그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손가락으로 기계 버튼 하나하나를 눌러댔다. ‘퐁퐁’ 그의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소리가 들려왔다. 인출할 잔액이 남아 있다는 게 한편 다행스럽다. 초점 없는 눈으로 잠시 기계 앞에 서 있는데도 방향을 잡지 못한다. 옆 거울로 본 그의 얼굴빛이 검다. 벌써 코가 빨개있고 곧바로 내 후각이 알코올 냄새를 자극받았다. 밤새 마신 술이 아직도 깨지 않은 건지, 새벽 댓바람부터 마셔댄 건지 구분이 안 되었었다. 아침부터 취했던 걸보면 눈만 뜨면 막걸리 두 어병 배낭에 넣어 산으로 내달리다가, 오후 서 너 시쯤 초록색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모양이다. 일없이 아침부터 산을 오르는 대개의 실업자들처럼. 오늘 남자도 그런 날 중의 하루였나 보다.
방향 잃음은 어쩌면 장거리 여행을 떠나야 하는 생에서, 때로는 쉬어갈 간이역 하나쯤 필요할 때 몸이 제동을 거는 것과 같은, 삶의 또 다른 깨달음의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길, 말이다. 그래서 무엇을 잃는다는 건 마냥 실의에 빠질 일만은 아닐 것이다.
목련이 만개하던 즈음의 올 봄, 솔밭을 거닐다 소나무 꼭대기에서 제법 늙수그레한 남자들이 가지치기 하는 모습을 보았었다. 그들 가까이 다가갔을 때, 노랫가락이 구수하게 들려와서 순간 놀라왔다. 아침 햇살이 그들에게 비춘 속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흥이 나 있었고 무더운 여름 정자에 앉아 가야금연주를 듣는 옛 선비의 자태가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너른 평야에 비친 햇살만큼이나 평화로움이 노랫가락에 녹아들었다. 사람과 자연의 동화, 그 자체였다. 내가 일을 하면서, 저들처럼 노랫가락을 뽑을 만큼 즐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나를 돌아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그들의 삶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이런 삶이야말로 추구해야 할 삶이 아닐까 잠시 생각 했었다. 그러므로 행복이 환경에 있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 날이었다.
분식집이라도 하고 싶은데 남편이 서두르질 않는다고 언젠가 그녀는 한숨쉬며 내게 말했다. 남자에게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낯설고 죽기보다 싫은 직업일지라도 그 속에서의 생활이 슬픔만 있는 것도 아닐 것이요, 즐거움만 있는 것도 아니리라. 사람간의 따뜻한 정이 있는 한, 어떤 삶일지라도 정착하고 나면 또 다른 삶에 적응을 하게 마련일 텐데, 남자는 화려한 옷을 입었던 때에서 아직도 놓여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진다.
‘나뭇잎은 바람에 휘둘려보아야 윤이 난다’ 는 싯귀가 떠오른다. 골목길로 접어 든 그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실직이 그에게 윤이 나기 위해 바람에 맞는 나뭇잎이기를 바래본다. 씁쓸한 가슴을 안은 채,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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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시흥문학상 수필부문 동상
훨훨 날아오르는 연, 날지 못하는 연.
정현교
태백준령이 화사한 가을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 휴일.
발길 닿는 대로 산을 오르다 멈춘 곳은 오대산의 어느 암자였다. 두리번거리다 수행중인 스님과 눈길이 마주치게 되었다. 나를 본 스님은 “오늘은 목구멍의 거미줄이 걷히게 됐구먼!” 하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희죽이 웃기만 했다. 스님은 나를 툇마루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일단 첩첩산중에서 우호적으로 맞아주는 스님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스님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동안 사람을 구경하지 못해 목구멍에 거미줄이 얼기설기 엉켰다는 설명이었다. 먹지 못해 목구멍에 거미줄을 친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말을 하지 못해 거미줄을 친다는 소리는 생전 처음이었다. 스님은 목구멍의 거미줄을 말끔히 걷어낼 작정인 듯했다.
“처사는 한밤에 연을 띄워 본적 있소? 나는 ”그럼요“ 하고 대답하려다 되물었다.
”밤에 연을 띄우다니요?“ 스님이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세상에 어느 누가 한 밤에 연을 띄운단 말인가! 정월 대보름에도 한밤에 연을 띄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스님은 매일 밤 연을 띄운다고 했다. 그것도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쉼 없이 띄운다고 했다.
스님은 삼라만상(森羅萬象)이 곤히 잠들어 있는 한밤, 오대산 암자에는 하늘 높이 연이 날아오른다고 했다. 초저녁에 날아 오른 연은 밤이 이슥할 때까지 높이 난다는 것이다. 새벽녘까지 날아 오른 연은 까만 점으로 오그라들어 여명이 짙어질 때면 초점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나는 연을 너무 높이 띄우다 줄이 끊어져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발 천오백 미터도 넘는 곳이라 바람도 강할 테니!
연은 새싹이 움트는 봄날에도, 별이 쏟아지는 여름 밤에도, 단풍이 불타는 가을 밤에도, 삭풍(朔風)이 몰아치는 겨울 밤에도 어김없이 띄워진다는 것이다. 스님은 그렇게 매일 밤 연을 띄우느라 뜬눈으로 지새운다고 말했다. 그것도 모자라 이른 아침부터 잃어버린 연을 다시 만들고 줄을 꼬느라 하루 해가 짧다고 했다. 연은 날이 갈수록 자꾸 커지고 줄도 더욱 길어진다며 스님은 내게 손바닥을 불쑥 내밀어 보였다. 스님의 손바닥은 굳은살이 알알이 배어 있었다. 왜 그토록 연을 띄우는지 궁금했다.
“연은 소원을 기원하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나도 얼른 맞장구를 쳤다. “내 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는 소원을 기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지요.” 스님의 설명은 어딘지 모르게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아 내가 되물었다. “이런 산중에서 그것도 한밤에 연을 띄워본들 누가 보겠습니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지요. 어디 그뿐 이겠습니까. 명색이 중인데 적어도 중생들의 소원도 함께 실어 보내야지요. 俗世의 질박한 삶도 명치를 뜯어내는 절절한 아픔도, 치를 떨게 하는 미움도, 가슴을 저리게 만드는 그리움도 함께 띄워 보내다 보니 연이 자꾸 커질 수밖에요”
연에는 살을 파고드는 고뇌와 소름 끼치는 외로움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렇게 애써 매일 연을 띄워 보내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 질 것이라 여겼는데, 오히려 빈 가슴은 더 큰 고뇌로 채워진다고 했다. 스님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스님의 표정은 세상의 고뇌를 온통 혼자 떠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가롭게 연이나 띄우면서 무슨 고뇌가 그리 깊다는 것인지? 수행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인가?
마침 방문이 빠금히 열려있었다. 그 안을 훔쳐보고 싶었다. 속내를 들킬까 싶어 찻잔을 들고 얼굴을 반쯤 가리며 틈새를 재빠르게 살폈다. 방안은 틀림없이 연을 만드는 재료들로 어지러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예상은 빚나갔다. 방안은 의외로 깨끗했다. 그 흔한 한지 한 장도, 하다못해 줄을 꼬다 남은 끄나풀 한 가닥도 보이지 않았다. 더욱 궁금했다. 스님이 정곡을 찌르고 들었다. “궁금하지요?” 내 속내가 들통 났나 싶어 얼굴을 붉혔다. “마음의 연입니다.” “마음의 연?”
스님은 언제나 마음의 연만 띄울 뿐 실제로 연은 한 번도 접어보지 못했다며 行하지 못하는 나약함을 부끄러워했다. 밤이 이슥토록 띄우는 마음의 연은 무엇이고 행하지 못한 부끄러움은 또 무엇인가? 스님의 설명은 계속 되었다.
어차피 속세를 떠난 몸 딱히 두고 온 그리움 같은 것은 없지만, 외로움만큼은 得道에 이를 정도라고 했다. “화두를 찾아 정진해야하는데 한가롭게 연이나 날리고 있으니!”하며 말을 흘렸다. 스님의 한탄은 툇마루를 주저앉히고도 남을 만했다. 스님이 찾는 화두란 게 도대체 뭐 길래 그토록 괴로워하는 것인지 나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내가 알 수 없는 뭔가 특별한 것인 듯했다.
마음을 잡지 못해 불경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인가? 수행의 참뜻을 깨달을 수 없어 방황하고 있는 것인가? 수행이란 아무래도 불경의 글자만을 외우는 것이 아닌듯했다. 스님은 끝내 화두의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런 스님의 속내를 한나절의 짧은 시간에 알아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행이란 자체가 뼈를 깎는 고뇌일 것으로 짐작할 뿐이었다. 스님은 자신의 뒤를 이어 수행하게 될 스님도 역시 마음의 연을 띄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내게 향긋한 차를 연거푸 권했다. 나로선 생각지도 못한 횡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첩첩 산중이라 마땅히 대접할게 없으니 물이나 먹여야지!”
스님의 얼굴에는 짓궂은 미소가 흘렀다. 스님의 그런 짓궂음에서 나는 오히려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다감하고 때 묻지 않은 풋풋한 인간이었다. 누구와도 통할 수 있는 툭 터진 그런 사람이었다. 줄곧 느끼고 있던 이질감을 한 순간에 떨칠 수 있었다.
스님의 표현은 투박했다. 미사여구로 포장하려 들지도 않았다.
“여긴 뱀이 많아요. 녀석들이 툭하면 천정을 쏘다니지요. 중이라 죽일 생각은 못하고 천정 곳곳에 압핀을 꽂아 두어도 소용이 없어 그냥 동거하고 있지요. 새들은 좋은 친구이긴 한데 제 배만 부르면 날아가 버려 항상 아쉽지요. 좀 더 오래 붙잡아 놓을 요량으로 좁쌀을 구해 뿌려줍니다. 잔머리를 굴린 것이지요. 허 허 허”
철저하게 재단되고 포장된 말에 익숙해진 내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사람을 구경하지 못해 목구멍에 거미줄을 친다거나, 땔감을 등짐으로 져 나르고 장작을 패느라 굵어진 손마디로 차를 따르는 손길이 정겨웠다. 나는 오랜만에 죽마고우를 만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너덧 시간이나 그렇게 스님과 무릎을 맞댄 채 혀끝을 휘감는 茶香에 마냥 취할 수 있었다.
해가 서산에 걸릴 즈음 나는 암자를 뒤로 한 채 발길을 떼었다.
돌아오는 길목마다 스님의 해맑은 미소가 어른거렸다. 접근할 수 없을 것으로만 여겨지던 수행의 벽을 조금이나마 넘겨다 볼 수 있었다는 특별한 자부심에 젖어 들었다. 마치 내가 수행의 반열에 오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스님의 고뇌를 나눠 짊어진 것 같아 괜히 어깨가 무거워 나도 몰래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銀河의 세계는 스님이 띄워 보낸 세상 사람들의 고뇌가 빼곡히 쌓여있을 것만 같았다. 오늘 밤부터는 내 삶의 아린 것들도 함께 올려 보내질 것이라 기대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그날 밤. 나는 땅거미가 스멀거릴 때부터 스님의 연이 떠오르기를 고대하며 오대산을 주시했다.
별이 총총한 밤. 스님의 연이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다. 스님의 연에는 내 소원이 세상 사람들의 기원과 함께 버무려져 있었다. 그것으로는 흡족할 수 없었다. 나는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내 마음의 연을 접기 시작했다. 연에는 명치에 달라붙은 미움도, 가슴을 저리는 외로움도, 전신에 켜켜이 달라붙은 삶의 무게들을 차곡차곡 포개었다.
그리고 연을 날렸다. 그러나 내 연은 날아오르지 못했다. 나는 안달했다. 연줄을 길게 늘어뜨리며 옥상을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연은 곤두박질만 칠뿐 끝내 날아오르지 못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내 마음의 연은 날아오르기는커녕 되레 아린 가슴을 들쑤시기만 했다.
스님의 애꿎은 고뇌가 내게 덤터기 씌워졌다고 탓했다.
지금까지 고뇌와 같은 것들은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그저 미움은 분노로 그리움은 외로움으로 덧칠하며 살았을 따름이다. 모르면 약인 것을 사색하게 된 것이 예기치 못한 마음의 병을 불러들였다. 가을이 다 가도록 연은 한 장도 띄우지 못한 채 얼기설기 꼬여진 연줄이 전신을 포박했다.
내게 덤터기 씌워진 스님의 고뇌를 암자에 벗어 던져 버릴 작정이었다.
신발 끈을 조여 매고 눈 쌓인 산을 헤치며 암자로 향했다. 그러나 스님은 이미 그곳을 떠나고 없었다. 텅 빈 암자에는 미쳐 스님이 챙겨가지 못한 툇마루의 茶香만 점점이 묻어나고 있을 뿐 이었다.
===================================끝.
제9회 시흥문학상 시부문 동상
소래에서 이별하다
이은영
버려진 소금 부대를 베고
하릴없이 누워
떠나간 사랑을 생각한다
덤불 가시 같은 햇살을 뭉쳐
녹슨 철길을 닦던 하루가
쭈그리고 앉아 운다
날은 저물어도 기차는 오지 않았다
축축한 바람이 분다
비린내 풍기며 멀리까지 나갔던
바다가 돌아와 출렁거리고
고기비늘처럼 둥둥 떠다니는
뜰채로도 건질 수 없는 기억들이
바람의 허리춤을 잡고
오래된 폐염전으로 쏟아진다
무심한 잡풀이 흔들린다
소금창고 너머 뻘 등에서
그럭저럭 늙어가는 포구 뒷골목
겹쳐진 천막사이로
매캐한 구공탄 연기 질금질금 새 나오고
가슴만한 막사발에 손가락 세워
그림을 그린다
물기 남은 가슴에 빈 달이 떠오르고
휘청이던 바람이 차오른다
돌아오지 않을 사랑을 오래 사랑하여
이제
소래에서 사랑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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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시흥문학상 전국공모전 수필부문 우수작
와이셔츠를 다리며 / 정근식
와이셔츠를 다린다. 다리미 판에 와이셔츠를 뉘어 놓고 다리미를 민다. 다리미가 지나간 자리는 신작로처럼 훤한 길이 열린다. 훤한 길 위로 지친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내에게 아이들을 맡겨두고 이곳에 온 지도 두달이 지났다. 아이들과 살림에 부대끼는 아내에게 작은 짐이라도 덜어 주고 싶어서 내 스스로 양말과 속옷을 세탁하고 와이셔츠를 다린다.
평소 아내는 이러한 사소한 일 뿐만 아니라 아이들 교육이나 시골 부모님 안부 전화까지도 모두 도맡아 한다. 나는 평소 직장생활을 핑계로 밤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주말부부가 된 지금에는 더욱 가정에 소홀해졌다. 아내의 말처럼 가장이라기보다는 잠만 자고가는 하숙생이 되었다.
지난 일요일, 그날도 모임이 있어 집에 늦게 들어갔다. 아내는 나에게 눈인사만 했을 뿐 무심한 표정이었다. 아내는 막내의 학교 준비물을 확인하고, 다음날 새벽에 나를 보내기 위해 일주일 동안 먹을 반찬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 근처 학원에 가서 둘째아이를, 밤 1시가 지나서는 근처 독서실에서 수험생인 큰애를 데리고 와서 간식을 챙겨 먹이고, 아이들이 잠자리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방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하려던 아내는 와이셔츠를 다리는 것을 잊었다며 와이셔츠를 다리기 시작했다. 다리미판에 와이셔츠를 올려놓고 옷을 뒤집어가며 정성스레 다림질을 했다. 몇 분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침대에 누워 와이셔츠를 다리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와이셔츠의 소매를 다리고, 등을 다리면서 다림질 할 부위가 바뀔 때마다 아내의 어깨는 들썩였다. 그 모습이 남편인 나를 향해 원망하며 훌쩍이는 모습처럼 보여 잠시동안 가슴이 짠해졌었다.
자취방으로 돌아온 나는 아내가 준비해 준 가방을 열었다. 일주일동안 입을 와이셔츠와 양말, 속옷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비닐에 양말과 속옷을 따로따로 넣어 두었고 와이셔츠는 구겨지지 않도록 한번만 접어 가방의 벤드로 고정시켜 두었다. 그것을 보면서 바쁜 아내의 모습이 떠올라 작은 것이라도 내가 하고나면 미안함이 줄어들 것 같아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시작했다.
와이셔츠를 다리미판에 올렸다. 그리고 가열된 다리미를 손에 쥐었다. 다른 손으로는 와이셔츠를 잡고 먼저 목과 소매를 다렸다. 그리고 와이셔츠 단추사이를 다리고 소매와 등에 다렸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소매와 등에 줄을 세웠다. 군대제대 후 처음하는 다림질이니 20년이 훨씬 지났다. 그래서인지 손이 많이 무디어졌다. 군대시절에는 한번만 다려도 칼줄이었는데 맘처럼 되지 않았다. 애써 다렸지만 또 두 줄이다. 줄을 지우고 다시 다리기를 몇 번을 해서야 다림질을 마무리를 했다. 아내는 잠시 했던 것 같았는데 나는 한참이나 지나서야 겨우 끝이 났다.
다림질을 끝낸 와이셔츠를 옷걸이에 걸었다. 그리고 깔끔히 다려진 와이셔츠를 보았다. 옷걸이에 걸린 와이셔츠는 나와 처음 만난 날 아내의 모습처럼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고 엹은 미소를 짓고 있다.
아내가 지금까지 세탁을 하고 주름을 펴고 줄을 세워야 했던 것이 어찌 와이셔츠뿐이었을까. 성격이 급하고 경쟁에서 지기를 싫어하는 나는 지난 이십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와이셔츠의 주름만큼이나 마음의 상처를 받은 적이 많았다. 첫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 사표를 내기도 했고, 새로운 직장에서 기대했던 승진에 몇 차례나 떨어져 실망을 하기도 했고, 큰 돈을 벌겠다고 주식투자와 사업을 실패하여 많은 돈을 날리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마음에 심한 상처를 받고 방황했었다. 내가 방황할 적마다 아내는 와이셔츠를 세탁하고 주름을 펴고 줄을 세우듯이 나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와 격려로써 내 마음의 주름을 펴서 자존심을 세워 주었다.
진정으로 서로의 주름진 부분을 다려 펴주는 것이 부부의 관계가 아닐까. 가정에서 접혀진 아내의 마음을 다려주고 아내는 직장에서 주름진 남편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부부가 아닐까.
지금까지 나는 아내의 접혀진 마음을 얼마나 잘 헤아렸을까 생각해 본다. 한 집안의 맏종부로서,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역할을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불만을 표현하기보다는 삭이는 일이 많았을 것이고, 만족하기보다는 실망이 많았을 것이다. 그때마다 내가 아내의 주름을 펴주었을까 반성해 본다.
와이셔츠를 다리며 아직 식지 않은 다리미의 온화한 열기에서 아내의 체취가 느껴진다. 멀리 있는 아내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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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 심사위원 약력
심사위원장 / 조병무
시부문
조병무. 평론가, 시인
호는 평리(平里) 함안 고향, 마산 성장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현대문학’(‘63-’65) 문학평론으로 등단.
수상 :
현대문학상. 시문학상, 윤동주 문학상 본상. 동국문학상. 조연현 문학상 등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문학평론가 협회 부회장.
‘96문학의 해 기획팀장 및 기획분과회장,
군포문인협회 회장.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역임.
현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고문 및 평의원,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군포신문 논설위원,
저서 :
문학평론집 : 『가설의 옹호』『새로운 명제』『존재와 소유의 문학』『시짜기와 시쓰기』,『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문학작품의 표현과 기술』『한국소설묘사사전(전6권)』
시집 :『꿈 사설』『떠나가는 시간』『머문 자리 그대로』, 수필집 『니그로오다 황금사슴』『꽃바람 불던 날』『기호가 말을 한다』등 다수.
허 영 자.
시인
경기여고, 숙명여대 대학원 졸업
1962년 <현대문학>지로 등단
수상; 한국시협상, 월탄문학상 등
경력;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 역임
현재 성신여대 명예교수
저서; 시집<은의 무게만큼>외 다수
수필부문
우희정
수필가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월간문학 편집위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양수필문우회,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
?도서출판 소소리 대표
?제13회 수필문학상 수상.
저서
?수필집: ?별이 빛나는 하늘?, ?폴라리스 , ?속절없다?, 시린 꽃빛아? 외
이상보
?수필가
?전남 장성 출생
?국민대학교 명예교수
?한국문학비 건립동호회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기독교수필문학회, 한국수필문학회 회장 역임
?한국장로문인회, 서대문문인협회 고문
저 서
?수필집:?사색의 편린?, ?초원의 백마?,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떠나기 연습?, 등 다수
이론서: ?17세기 가사선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