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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상] 이미순 <복숭아 신부>
경남 양산시 양주로 39
[최우수상] 김태일 <복숭아를 읽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산동 한우아파트
[우 수 상] 박광희 <복숭아나무의 두레박질>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주공아파트
[우 수 상] 한상림 <황도의 사랑학개론>
서울시 강동구 둔촌동 546 신성둔촌미소지움@
[우 수 상] 한관식 <넉넉한 방 앞에서>
경북 영천시 고경면 단포리 47
심사평
박영우 (시인,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복숭아 문학상이 어언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복숭아가 해마다 풍성한 결실을 맺듯 복숭아문학상도 이제는 명실상부한 전국적 대회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에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총 응모 편수 387편 가운데 예선을 통과한 작품은 33편이었습니다. 결선에 오른 작품들은 나름대로 ‘복숭아’라는 제재를 자신의 시적 체험과 연결시켜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완성도 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상작을 선정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기준을 마련하여 심사에 임했습니다.
1. 주어진 제재와 자신의 시적 체험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는가?
2. 시상 전개와 시적 표현들이 얼마나 독창적이고 신선한가?
3. 얼마나 자연스럽게 주제의식이나 시적 정감이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는가?
등의 조건에 부합하는 작품을 심사하여 6편의 최종 입선작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미순의 <복숭아 신부>와 김태일의 <복숭아를 읽다>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였습니다. 이미순의 작품은 시의 운율적 특성과 내용이 잘 어우러진 점에 점수를 주었고, 김태일의 작품에서는 제재를 읽어내는 깊이 있는 심미안과 참신한 이미지의 사용 등에 더 좋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산문시의 특성상 시적 표현에 비해 시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운율의 흐름이 조금은 답답한 느낌이 들었던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결국 전체적으로 ‘복숭아’라는 제재를 우리의 전통적 혼례 의식에 소박하고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면서 시적 완성도에서 앞선 이미순 씨의 작품을 장원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입상을 축하드리며 더욱 정진하여 우리 문단을 이끌 훌륭한 문인으로 다시 만나길 바라겠습니다.
제7회 복숭아문학상 시 부문 입상작
[대상]
복숭아 신부
이미순
허공에 보름달 환히 켠 나무의 향이 번진다
가지들 휘청휘청 단내 흐드러지는
복숭아 마을, 햇살 꽃무늬 원삼을 입고
바람 족두리 쓴 새색시의 웃음으로 밝다.
달콤한 향기로 열매 맺은 저 신부,
어떤 이름으로 불려지는지.
연지곤지 찍은 얼굴 아름다운 그녀
촉촉한 빗방울 당도를 품은 입술로
다소곳이 신방으로 들어간다, 비 온 뒤
며칠 동안 그 방의 습한 공기를
몰아내던 바람, 창호지 얇은 꽃문에
작은 구멍을 몰래 뚫는 그때, 문짝을 활짝
열어젖히고 훤칠한 신랑이 신방으로 들어간다.
틈 사이로 복숭아 신부를 힐끔거리던
새소리가 나무그늘 안쪽에 붉은 노을로 물들고
신랑이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황홀한 밤,
주례자 햇살이 흘리고 간 그 꽃종이에 쓴
신부의 이름은 황도복숭아,
푸른 나뭇잎 한 잎 한 잎 무늬를 품은
꽃문에 보름 달빛이 환하게 번진다.
[최우수상]
복숭아를 읽다
김태일
하늘에 창을 내지 않아도 물큰 붉은 달이 만져지는 때가 있다.
내가 복숭아에서 연어의 몸짓을 본 건 새털구름 속에 은둔하던 바람이 잠시 나와 복숭아 곁에 머물 때였다. 바람에 살결이 닿은 섬모가 잠시 휘청이는 사이 찰랑 팔랑 수백만의 흰 물결 디디며 여름을 건너온 나무의 발자국이 보이고 발자국 속에 뙤약볕 쓸어 담는 가지의 질긴 힘줄 도드라진다. 나무가 무릎에서 무지개를 꺼내 하늘에 던지면 둥글, 달이 되는 복숭아 한 알. 젖을 열어 수액 방울방울 떨어뜨리면 아기 새처럼 입 벌려 쑥쑥 크는 아이들, 발그스름한 볼에 복사꽃 닿으면 남극처럼 맑아지는 눈동자들, 올망졸망 나무의 물관 속에는 연어의 아가미를 단 엄마, 발자국 퍼덕이며 거꾸로 헤엄쳐 오르고 아이들은 박수를 치고 박수소리는 장대비처럼 자라가고.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연어의 붉은 살 함부로 베어 물진 못할 거야. 아이들은 연어 속 엄마의 살을 먹고 자랐으므로, 복숭아의 하늘은 연어 살보다 붉을 것이므로.
들리지 않는가, 복숭아 옷깃 살짝 들면 지금도 우리 엄마 뙤약볕 돌돌 말아 머리에 이고 여름의 발자국 지우는 소리.
[우수상]
복숭아나무의 두레박질
박광희
한밤중, 두레박질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매미 울음소리 달아올랐던 복숭아밭에서
누군가 그릇 가득 물을 채우는 소리
뿌리에서 우듬지 끝으로 물을 길어 올리고 있다
저 끝없는 복숭아나무의 눈 시린 노동
어디 쭈글쭈글한 곳은 없는지
둥글고 팽팽한 얼굴 하나 만들기 위한
물 긷는 소리로 복숭아밭은 벌겋게 달아오른다
그리하여, 아침이면
나무들의 둘레가 어제보다 환해져 있다
달디 단 과즙으로 벌떼와 진딧물을 불러 모으듯
모두 깊이 잠든 밤에도 나무들은 뜬눈이다
아직은 가야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눈빛 까만 아이들과 착한 아내를 위하여
과육 속으로 녹아들 햇살과 바람을 다스리는
이 밤 여울물 거슬러 오르는
나무들의 힘찬 좽이질, 무딘 손끝에
둥근 달과 별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것이다
이 여름 옹골차게 물을 긷고 있는 것이다
[우수상]
황도의 사랑학개론
한상림
심장에 새겨진 붉은 내력을 읽어 보세요
23.5도 갸우뚱 돌고 있는 작은 별에서 태어나
사방에 분홍꽃등 밝혔던 날
간지럽던 발가락 끝에 곰살곰살 뿌려주던 달빛,
그 달빛 품으며 사랑이 시작 되었어요
아기씨 하나 몰래 감추고
엄마가 되게 해 달라 매일 밤 기도 했지요
젖니를 깨물며 튼실해진 속살,
그 여린 속살 감추기 위해 까끌한 것이
햇살 탓만은 아니었어요, 바람은 때때로
험상궂은 소나기를 몰고 와 괴롭혔지만
잘 물러지려면 먼저 단단해져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자, 조심스럽게 벗겨 보실래요
달디단 속 살 한 입 살짝 베어 보세요
온 몸이 들큰해 질 거예요
황금빛 무른 속살을 설탕으로 잠재워볼까요
지난 밤 뒤척이며 흘리던 눈물도 섞어
쓰라린 상처와 잘 버무린 다음 팔팔 끓여주면
맨살 부비며 농익었던 지난여름 사랑이
서서히 녹아내릴거예요
말랑말랑 할수록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달콤한 맛을 내거든요, 잘 우러나거든
차갑게 식혀서 유리병에 담아 자장가도 불러주세요
잠시 단꿈에 빠져들 수 있게요
아참, 단단히 봉해야만 비밀이 보장 되어요
[우수상]
넉넉한 방房앞에서
한관식
저녁이 어제처럼 당도했네.
잘 익은 복숭아 물이 저녁을 염색하네.
애교 버무린 하늘이 닿을 듯 가깝네.
山이 된 산새는 날아가
山으로 피고지고 울음만 무성하네.
창가에 그 울음 앉아 땅거미처럼 앉아
누이야, 부르면 안개가 먹먹하고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쌀뜨물 같은
그리움이 어깨를 움켜잡고 있네.
이제 식탁 주위에 복숭아로 촛불처럼 밝혀야하네.
나그네도 가던 걸음으로 멈춰
속 깊은 저녁 방 앞에 生을 내려놓네.
노을은 시들고 바깥은 둥둥 섬처럼 떠다니고
내 품은 오지게 여울로 구성지네.
한 입 배여 문 복숭아가 우울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아침을 열고 있네.
제7회 복숭아문학상 수필 부문 입상자 명단
[최우수상] 유수현 <판도라의 상자>
부산 연제구 연산1동 582 한성기린아파트
[우 수 상] 김옥희 <7월. 보석을 따다>
대전시 유성구 원신흥동 어울림하트
[우 수 상] 권래현 <무릉도원의 맛-장호원 황도>
서울시 관악구 서원동 92-259번지
[우 수 상] 안옥희 <돌복숭아 서리하던 날>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중4동 한라마을
심사평
복숭아 축제, 그 과일의 숨은 위력
윤재천(한국수필학회 회장)
황금의 계절, 경기도 이천에서는 복숭아 축제가 한창이다.
축제는 복숭아 특유의 단내를 풍기며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그 맛을 선사한다. 특히 복숭아의 수확을 기념하기 위한 글짓기 대회에 응모한 87편중 예심을 거친 18편을 선정, 최종적으로 입상작이 결정되었다.
[최우수상]으로 선정된 유수현의「판도라의 상자」는 아픔이 깔려있는 작품이다. 유수현은 과수원을 운영하던 가정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으나 초등학교 4학년 때 과수원에서 농약을 치던 중, 약에 중독되어 어머니를 잃게 된다.
당시 부녀(父女)는 어머니 잃은 과수원에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어 그곳을 떠났지만 상처가 아물어가자 화자는 그때를 회상하고 있다. 어떤 것도 어렵지 않은 것이 없어 복숭아 재배도 병충해와 싸워야 했으니 그 사정을 모르는 고객은 품질이 좋고 나쁨에 고개를 졌지만, 이 글은 복숭아 재배과정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우수상]으로 선정된 김옥희의「7월, 보석을 따다」는 단내 나는 복숭아가 과수원을 가득 메우고 있어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입안에서 과즙이 진하게 우러나는 순간이다. 무엇보다 과수원에서 복숭아를 따던 중, 김옥희가 상한 과일 앞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아깝다 말고 과감하게 버리소. 안 그러면 다른 놈도 못 씁니더”라는 지인의 말로 인해 깨달음에 도달하는 모습이 장점이다.
인간도 내려놓아야 할 것에 연연하게 되면 감당해야할 부분이 적지 않다. 김옥희는 복숭아를 따면서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에 잠기는 부분이 남다르게 나타난다.
권래현의「무릉도원의 맛- 장호원 황도」는 과일 중에서도 그 맛이 뛰어남을 각인시켜 준다. 권래현은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향할 때도, 임종 직전에도 장호원 황도를 사다 드렸다. 수 만 가지 과일 중에 신선(神仙)까지도 좋아했다는 복숭아의 그 맛 -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맛있게 먹는 과일, 권래현은 그 과일이 복숭아 중에서도 장호원 복숭아라고 말하고 있다.
안옥희의「돌복숭아 서리하던 날」은 입덧을 하던 며느리에게 복숭아를 갖다 주시는 시아버지 사랑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동네에 여섯 명의 새댁들이 시집을 와서 입덧을 하던 중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복숭아 서리를 하였으니, 임산부에게도 인기인 그 과일은 진가를 발휘하고도 남음이 있다. 서리할 때 뱃속에 있던 그 아들이 이제 마흔이 넘었으나, 그 아들을 보면 복숭아가 눈에 보이고, 복숭아를 보면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눈에 보인다는 안옥희는 단내 물씬 풍기는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복숭아는 모든 것을 초월해 가족의 생계까지 해결하는 주체가 되고 있어 복숭아의 숨은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제7회 복숭아문학상 수필 부문 입상작
[최우수상]
판도라의 상자
유수현
어릴 적 살던 내 고향은 복숭아 과수원이 많은 고장이었다. 지천으로 널린 복숭아나무가 여름이 되면 단내를 훅훅 날리며 사람들을 유혹하는 바람에 나무 아래에 서기라도 하면 괜히 헛기침을 하게 만들곤 했다. 우리 집도 예외없이 복숭아 과수원을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복숭아를 아주 좋아 했다. 복숭아 중에서도 한 입 크게 베어 물면 부드러운 속살이 혀끝을 간질이며 과즙을 줄줄 쏟아내는 백도를 특히 더 좋아했다. 농사짓는 사람 마음이 다 그렇듯이 상품가치가 있는 것들은 모두 내다 팔고는 기껏해야 멍들었거나 벌레가 파먹은 것들 밖에 먹지를 못했다. 하지만 나의 엄마는 여자란 시집만 가면 천덕꾸러기가 된다면서 시집가기 전에라도 호강하라고 제일 크고 좋은 복숭아만 골라서 나에게 주셨다. 집안에서는 큰 아들이지만 면사무소 공무원으로 농사엔 거의 문외한이었던 아버지 대신 엄마는 과수원 일을 도맡아 하셔야 했다. 그래도 항상 밝게 웃으시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주변에 보이지 않았다. 내게 복숭아를 주실 때도 언제나 환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눈 속에 따뜻한 모습의 엄마를 심어주셨다. 더러 아버지의 무심함에 돌아서서 한숨을 쉬는 걸 몇 번 본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당시에 별다른 먹거리는 없어도 무언가를 먹어야만 했던 내 또래들에겐 과수원은 말 그대로 무릉도원일 수밖에 없었다. 넓은 과수원을 뛰어 다니다 배가 고프면 눈치 볼 것도 없이 떨어져 있는 복숭아들을 주워 먹으며 배를 채울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무에 달려 있는 복숭아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누가 만든 법칙이었는지 모르지만 모두에겐 불문율처럼 지켜졌던 걸로 기억한다. 인심 좋은 우리 엄마는 일꾼들 뿐 아니라 따라와서 놀던 아이들까지 점심이며 새참을 챙겨주셨으니 아마도 과수원 주인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 아니었나 싶다. 점심에 새참까지 얻어먹은 아이들은 어둑어둑 해지면 그때서야 하루 품앗이를 끝내고 돌아가는 엄마들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돌아가는 길엔 소쿠리마다 어김없이 복숭아가 한 가득씩 담겨져 있었다. 겨우 입에 풀칠하는 정도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인데 조금 더 여유 있는 우리가 나눠 먹어야 세상이 공평한 것이라며 엄마는 뭐든 아끼지 않고 나눠주셨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우리 집은 늘 일손이 넘쳐났고 집안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무남독녀였던 나 역시 북적거리는 집안이 좋았고 넘쳐나는 친구가 좋았기에 그 땐 감히 상상도 못할 양과자 같은 먹거리들을 친구들에게 마구 나눠 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들은 내가 좋았다기 보다 넘쳐나는 먹을 것을 더 좋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름이 지나고 복숭아가 사라지는 계절이 되면 복숭아를 못잊어 하는 나를 위해 엄마는 설탕을 넣고 뭉근하게 끓여 복숭아 조림을 만들어 두고두고 먹을 수 있게 해주셨다. 지금도 딱히 그 이름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엄마는 그걸 복숭아‘간주메’라고 불렀다. 일종의 복숭아 통조림 같은 맛……. 시원하고 달달한 게 여간 맛난 게 아니었다. 엄마와 나는 그렇게 복숭아와 더불어 한 계절을 보내고 또다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며 복숭아 과수원에서 눈부신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장마가 되기 전부터 장마처럼 비가 많이 내려 엄마는 벌레들과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과일은 비가 너무 안 와도 걱정이지만 너무 많이 오면 벌레들이 기승을 부려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다. 더구나 복숭아처럼 속살이 부드럽고 단 맛이 강한 과일에겐 치명 적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복숭아에 농약 치는 걸 극도로 자제하고 가능하면 농약을 치지 않고 벌레들을 소탕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지만 전혀 효과를 보지 못 한 채로 지쳐가고 있었다. 결국 인부들의 설득에 못 이겨 농약을 치기로 합의를 하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비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그쳤고 인부들은 작업을 내일로 미루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시간, 나는 마루 끝에 앉아서 질퍽하게 물이 고인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갈 길을 잃은 듯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있는 개구리 한 마리를 눈으로 쫓으며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엄마는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버지는 장화를 신고 징징거리며 따라나서는 나를 데리고 과수원으로 향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과수원은 며칠 내린 비로 인해 온통 진흙투성이라 발을 옮길 때마다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릴 정도로 미끄러웠다. 진흙에 미끄러져 다리를 다쳐서 오도 가도 못하는 거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엄마는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동이 틀 무렵 동네 사람들이 동원이 되고 과수원을 샅샅이 뒤지고서야 농약 통을 등에 진채로 진흙에 얼굴을 박고 쓰러져 있는 엄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인부들이 돌아간 후에 늘어나는 벌레들이 걱정이 된 엄마는 혼자서 농약을 치신 듯 했다. 하지만 몇날 며칠을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해 피곤한 상태로 마스크조차 쓰지 않아 농약에 중독이 되어 쓰러지셨고, 아무도 없는 과수원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괴롭게 돌아가셨던 것이다.
그 해 가을, 엄마를 잃은 과수원은 말 할 수 없이 황폐해졌다. 아버지는 그런 과수원을 바라보며 한 숨만 쉬다가 겨울이 문턱에 들어서는 어느 날 나를 데리고 고향을 떠나버렸다. 엄마가 없는 과수원에는 아버지나 나나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죽고 못 살 만큼 좋아했던 복숭아였지만 더 이상 내게 단 맛을 주는 과일이 될 수 없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만큼 복숭아가 싫었지만 여름만 되면 기를 쓰고 나오는 복숭아를 보면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지우려고 더욱 열심히 살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도 둘이나 낳았지만 엄마가 없는 허전함은 그 어떤 위로로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찍 가버린 엄마가 얼마나 야속하던지…….
그 빌어먹을 놈의 복숭아가 대체 뭐라고.
사람의 운명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하나님은 지독한 개구쟁이가 아닐까 싶다. 딸내미가 나의 유전자를 빼다 박았나 보다. 복숭아를 그렇게 좋아할 줄이야. 거기에다 시어머님까지 복숭아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셨다. 복숭아가 있는 과일가게는 그냥 지나치질 못하시니 말이다. 나는 그런 어머님이 얼마나 얄미운지 모르겠다. 사돈이 그렇게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으면서도 복숭아를 덜렁덜렁 사 오시는 어머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복숭아를 먹기 위해 며느리에게 핑계를 대기엔 손녀만한 인물이 어디 있을까. 엄마없이 자란 게 너무 서럽고 힘들었던 내가, 딸내미 일이라고 하면 유난을 떨어대는 걸 어머님은 간과를 하신 것이다. 할머니와 손녀는 거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과즙을 줄줄 짜내며 복숭아를 먹고 있었다. 보고 있자니 입안에 침이 가득 고여 왔다. 내 이성은 복숭아 앞에서 도리질을 해대지만 그 단맛에 대한 기억은 어느새 반사 신경을 자극해 참을 성 없는 나의 침샘을 끝없이 유혹하는 모양이다. 침만 꼴깍거리는 내게 어머님은 안사돈이 다 이해하실 거라며 복숭아 한 개를 내밀었지만 외면하고 돌아서 버렸다.
어제는 직장 동료들과 수다를 떨다 보니 복숭아 이야기가 또 나왔다. 난 애써 말을 돌렸다. 좋아하지만 워낙 비싸서 먹을 수가 있나, 시어른들에 애들에 시동생까지, 어찌나 먹는 입이 많은지 내 입에 돌아올 게 없어서 시집와서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독설이라도 하면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가실까 싶어서 말이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자마자 내 업무실 문이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빼꼼이 열리더니 다짜고짜 커다란 복숭아 두 개 불쑥 들어왔다. 깜짝 놀라며 문을 활짝 열어보니 어제 같이 수다 떨던 윤경이가 빙그레 웃으며 두 손에 복숭아를 들고 서 있었다. 식구가 너무 많아 복숭아도 제대로 못 먹는다고 해서 마음이 너무 아프더란다. 그래서 실컷 먹어보라고 제일 크고 예쁜 걸로 거 두 개를 사왔다며 내 손에 쥐어주고는, 아무도 주지 말고 혼자만 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팽 가버렸다. 얼떨결에 받아든 나는 얼굴만큼 큰 복숭아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과즙 같은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
지금 내 책상위엔 아침에 윤경이가 주고 간 복숭아 두개가 엄마의 젖가슴처럼 봉긋하게 얹혀 있다. 하지만 이젠 복숭아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복숭아를 내밀며 웃던 윤경이의 부드러운 미소가 어릴 적 내 눈을 보고 부드럽게 웃어주시던 나의 엄마를 꼭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우수상]
7월, 보석을 따다
김옥희
경운기 소리가 고요를 헤집고 복숭아밭의 입구를 두드린다. 아래로는 땅속에 단단한 힘줄을 내리고 위로는 하늘의 기운을 수유 받고 있는 나무가 건강해 보인다. 초록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태양의 조각들이 박혀 있다. 그 빛이 7월의 탄생석 루비를 닮았다.
선천은 천도복숭아의 일종이다. 해가 막 넘어가기 전 복숭아밭의 선천은 ‘피존블러드’를 연상시킨다. 루비의 빨강 중에서도 최고의 것은 비둘기의 피처럼 진한 색이라 하여 ‘피존블러드’로 불리며 귀하게 여겨지고 있다. 그 빛깔을 지금 나는 이곳에서 보게 된 것이다. 빛깔로 보면 선천은 땅 위의 열정으로 피워낸 보석임이 틀림없다.
지인이 복숭아 하나를 따서 내게 보여준다. 따야 할 복숭아의 크기를 알려주려는 것이다. 처음엔 감이 없어 요리조리 재어보고 망설이다가 겨우 하나를 땄다. 시간이 지나자 손안에 쥐어지는 알의 느낌이 왔다. 주먹을 살짝 쥐었을 때 꽉 차는 느낌이 적당한 크기였다. 복숭아가 똑똑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에서 내 손안으로 들어온다. 경쾌한 소리가 7월의 햇살 속에 점처럼 박혀든다.
그저 빨갛게 익은 놈을 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탐스러운 루비 빛깔에 연실 감탄사를 내뿜으며 신 나게 복숭아를 땄다. 바구니에 그득한 복숭아가 댕글댕글하다. 그것을 플라스틱 상자에 옮겨 담던 지인이 주의하나를 덧붙인다. 조금이라도 상처가 났거나 엉덩이가 무른 놈은 버리라는 것이다.
이번엔 꼼꼼히 모양새를 살피며 조심스레 복숭아를 딴다. 때깔 좋게 잘 익은 놈이 엉덩이가 살짝 물러 있다. 손에 쥐고 이리저리 돌려 본다. 며칠 전 태풍도 이겨내고 살아남았는데 이대로 버려야 한다니 손길이 주춤거린다. 차마 버릴 수가 없어 장갑 낀 손으로 쓱 문질러 입속으로 가져갔다. 새콤달콤한 맛에 몸이 움찔한다. 과즙이 입 주위로 흘러내리는 것을 닦으며 버리기 아까운 것들을 배 속에 담았다.
그것도 잠시, 서너 개를 먹으니 더 이상은 배가 불러 먹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깝다. 버릴 수 없는 존재를 손에 쥐고 절절거렸다.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어리석은 욕심으로 바구니에 슬쩍 담아 버렸다.
“아깝다 말고 과감하게 버리소. 안 그라면 다른 놈도 못 쓰니더”
행동보다 마음이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올랐다. 흐느적거리는 마음 밭에 지인의 말 한마디가 단단히 못질을 한다.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내일이면 그 피해는 엄청나게 커진다는 것이다. 배속에 담을 수도 바구니에 넣을 수도 없어 눈을 질끈 감고 저 멀리 던져본다. ‘퍽’ 하는 소리에 가슴이 둔탁하게 울린다. 던지는 것은 복숭아였지만 떨어져 내동댕이쳐지는 것은 미련이었다. 풀숲에 떨어지던 그 울림이 내 삶을 공명시킨다.
산을 막 넘고 있는 태양의 몸부림을 땀방울로 받아내며 복숭아를 딴다. 나뭇가지에 썩은 채로 달린 반쪽자리는 손가락으로 톡 건드려 남은 생을 마감해 준다. 흠집 없는 붉은 열매들만이 바구니 가득 담긴다. 다시 큰 플라스틱 상자에 옮겨 담는 손길이 조심스럽다. 행여나 저들끼리 부딪혀 상처라도 날까 봐 살살 쏟아 붓는다. 버려지는 것과 담기는 것들의 경계가 선명해진다.
문득 삶의 나무에서도 열매의 경계는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통해 주어진 시간을 채우며 삶의 광합성으로 맺어지는 열매들이 있다. 그리고 한 해 한 해 수확의 과정을 통해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들이 공존한다. 단단하고 잘 익은 열매를 수확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상처가 있거나 짓무른 열매를 미련하게 끌어안고 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경운기 가득 복숭아 상자를 싣고 지인의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 선별에서 낙오된 것들이 마당 한 귀퉁이에 버려져 있다. 가까이 가보니 엉덩이가 짓무른 채 보기 흉하게 일그러져 있다. 주변에는 날파리가 윙윙거리며 상처의 단내를 핥아 대고 있었다. 복숭아밭에서 지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은 곧 후회스러운 내 마음의 망치질로 더욱 깊이 박혀 들었다.
얼마 전 나도 정리해야 할 인연을 붙잡고 있다가 결국 가슴이 짓물러 버렸다. 애초에 성격을 알면서도 가까이 한 것이 화근이었다. 조그만 상처를 못 본 체 외면하는 시간 속에 가슴이 멍울져갔다. 한때 푼푼한 마음을 나누었던 자리는 알게 모르게 긁히고 긁은 상처들이 선명하다. 그 흔적이 짓무른 복숭아처럼 멍털멍털하게 가슴에 고여 있다.
복숭아의 작은 상처 하나가 다른 복숭아에 전이되어 피해가 심해지듯 과감히 정리하지 못한 것들은 대게는 손실을 동반한다. 과거를 더듬어 보니 미련을 움켜쥔 대가가 크게도 남아 있다. 상대가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것은 누구에게도 미룰 수 없는 온전한 나의 욕심이었다. 아닌 줄 알면서 놓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잡고 있던 나를 이곳에서 복숭아를 따며 만나게 될 줄이야.
때론 단순한 이치를 체험하며 깨달음을 얻는다. 복숭아를 따는 평범한 노동으로 일상을 깨우는 가르침을 받았다. 버려야 할 것에 욕심을 부리면 감당해야 할 면적이 넓어진다는 것을. 아직도 머릿속에서 뭉그적거리고 있던 것들을 찾아 미련의 꼬리표를 과감히 떼어본다. 어둡게 내려앉은 산 그림자가 조용히 그것들을 삼킨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막혀 있던 것들이 땀샘을 통해 한꺼번에 나온 느낌이다. 몸속에서도 미처 버리지 못한 것들이 쌓여 있었나 보다. 한 달 내내 찌뿌둥했던 몸이 개운하다. 안이든 밖이든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고 나니 가벼워졌다. 선천 하나를 옷에 쓱쓱 문질러 한 입 베어 물었다. 7월의 보석이 사각사각 씹힌다. 노란 속살을 밀어 올린 복숭아나무의 삶이 흥건하게 입안으로 스며든다. 도와준 덕분에 출하시기를 놓치지 않고 복숭아를 딸 수 있었다며 지인은 복숭아 두 상자를 차에 실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달콤한 복숭아향이 동행해준다.
7월, 내 인생이란 나무에서도 붉은 열매를 따고 싶어졌다.
[우수상]
무릉도원의 맛-장호원 황도
권래현
무릇 천상의 맛이 이러하지 않을까?
황금처럼 노오란 속살을 품은 황도가 짙은 향기를 뿜어대고 있다. 그윽한 운치가 있는 황도의 달콤한 향기를 맡으면 나도 모르게 깊이 심호흡을 하고 저절로 눈이 감긴다. 유혹하는 듯, 마는 듯, 고고한 자태로 온 존재를 드러내고 달큰한 향을 뿜어대며 그 위용을 뽐내는 황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조심스레 한 입 베어 문다. 짜릿하게 입술을, 혀를, 코를 농락하는 천상의 맛. 단순하게 달콤하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향과 맛. 달큰한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황도. 순간 내 귀에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야, 니, 삼천갑자 동방삭이라고 들어봤나? 복상이 그래 몸에 좋아가 옛날에 동방삭이라카는 사람이 신선 복상을 몰래 훔쳐 묵꼬 삼천갑자를 살았다 카드라.”
복숭아를 복상이라고 부르던 할머니. 유난히 복숭아를 좋아하시던 할머니가 우리집에 들르신다는 날이면 엄마는 서둘러 큼직하게 탐스러운 싱싱한 복숭아를 사러 장으로 향하곤 하셨다.
검버섯 하나 없이 뽀오얀 피부에 오밀조밀 단정한 이목구비가 고우셨던 할머니는 하얗게 세다 못해 은빛으로 빛나는 머리칼을 곱게 쪽을 져서 옥비녀를 야무지게 꼽으시고 손수 빳빳하게 풀을 먹이고 다듬이 방망이로 잘 손질한 한복차림으로 언제나 정갈한 매무새셨다.
“야야, 내는 세상에 이래 맛난 과일이 또 있나 싶으다. 세상에 하고 많은 과일 중에 무릉도원에 있는 과일은 복상 하나 밖에 없다 아이가? 신선들도 수만 가지 과일 중에 복상이 최고라는 걸 인정했다는 증거 아이겠나? 니, 함 무 볼래?”
할머니는 바구니에 담긴 복숭아 중에서 가장 크고 예쁘게 생긴 복숭아를 내게 건네셨다. 하지만 나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할머니가 오시는 날이면 혼자서만 독점하던 방을 할머니와 함께 써야만 한다는 사실을 철없던 일곱 살 꼬마 여자애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늘 세 살 아래의 남동생과 투닥투닥 한 방에서 싸우면서 지내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가지게 된 나만의 방이었다. 엄마가 큰 맘 먹고 사주신 튼튼한 원목 책상과 예쁜 침대는 친구들도 모두 부러워하는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할머니가 오시는 날이면 친구들도 데려와 함께 놀 수 없었고 초저녁만 되면 꾸벅꾸벅 조시는 할머니 때문에 밤늦게까지 침대에 엎드려 동화책을 보며 낄낄거릴 수도 없었다. 아침엔 또 어떤가. 해가 미처 뜨기도 전에 일어나셔서 달그락 달그락 바지런하게 부엌과 마당을 오가시면서 부산하게 뭔가를 하시던 할머니 때문에 늘 하듯 포근한 침대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미적대며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었다.
언젠가 셋째를 낳으신 후, 몸이 많이 안 좋으신 엄마를 대신해서 우리 남매와 아버지를 돌봐주시러 할머니가 거의 반 년간 우리집에서 함께 지냈을 때는 정말 최악이었다.
“야야, 니는 가스나가 우예 그래 게을러 빠졌노? 가스나가 게으르모 천하에 쓸 데가 없대이.”
아침마다 늦잠 자느라, 씻는 둥, 마는 둥,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허둥지둥 학교로 달려가는 나를 보며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셨다. 희뿌염하게 동이 트기도 전에, 온가족이 아직 잠에 취해 있을 이른 새벽, 우물가에서 은빛 실타래 같은 결 고운 머리를 감으신 후, 거울 앞에 다부지게 앉으셔서 참빗으로 마치 자로 잰 듯 정확하게 가르마를 타서 쪽을 지고 비녀를 꽂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정정하시던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대학교 시절의 나는 서둘러 고향집으로 향했다. 늘 매무새가 단정하셨던 할머니는 은빛 쪽진 머리도 짧게 자르고 얇은 종잇장 같은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 계셨다.
“야야, 니 왔나? 이래 먼 데로 번잡시럽게 뭐하러 왔노? 공부는 잘 되나?”
기력이 많이 딸리시는지 할머니의 밭은 목소리에 마음이 아려왔다.
“할매, 할매는 세상에서 복숭아가 젤로 맛나다 그랬재? 내가 특별히 복숭아 중에서도 젤로 귀하고 맛나다는 장호원 황도 사왔다. 함 무봐라.”
“...니, 기억하고 있었나? 우리 손녀딸, 기억하고 있었드나?”
할머니는 눈물이 글썽하신 얼굴로 황도를 한 입 베어 무셨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맛을 음미하듯 스르르 눈을 감으셨다.
“이게 바로 무릉도원 맛 아이가? 맞재?”
할머니는 내 손을 꼬옥 잡으셨다.
“복상 같은 우리 손녀딸! 복상처럼 이뿌게 야물딱지게 잘 살아야 된대이! 알았나?”
나는 목울대로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참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할머니. 할머니처럼, 복숭아처럼, 이쁘게 야무지게 잘 살게요.’
그게 내가 본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복숭아를 보면 쨍! 하는 날카로움으로 할머니가 떠오른다. 늘 바지런하게 자신과 주변을 정갈하게 가꾸며 살고 절약이 생활화되셨던 분이지만 유일하게 복숭아만큼은 사치를 부리는 나름의 풍류가 있으셨던 분. 복숭아를 맛보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으시다며 활짝 웃으시던 할머니의 미소가 떠올라, 내 마음은 온통 달큰한 복숭아향의 그리움으로 젖는다.
오늘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고 나는 할머니의 무릉도원을 잠시 엿본다.
할머니, 무릉도원에서 잘 지내고 계시죠?
[우수상]
돌복숭아 서리 하던 날
안옥희
요즘 과일가계에는 발그레한 볼 함박꽃 같은 복숭아가 미백 실루엣으로 애도愛桃가의 눈길을 당긴다.
이맘때면 간경화로 풍전등화風前燈火 위태한 생의 끈을 잡고있던 시아버님이 생각난다.
황도통조림으로 연명하시면서 물건을 제자리 놓지 않았을 때나 아궁이앞이 지저분 할 때나 정리정돈이 안 될때
대들보가 들먹거리는 불호령을 내리셨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나에게 만큼은 후한 사랑을 주시던 어른이다.
남편은 군대가고 새벽부터 자정이 넘도록 끊임없이 쏟아지는 시어머님 잔소리에 스트레스가 활화산처럼 폭발하기 직전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첫아이 입덧이 시작되었다. 입이 돌아가고 헛것이 보이고 사는것이 죽기보다 더 가혹하다고 생각될 때 였다.
야윈몸을 이끌고 들에 다녀오신 아버님, 한쪽은 파랗고 한쪽은 빨간 복숭아 두 개를 주시면서 “아가 이거라도 먹어라 그렇게 밥을 못 먹어 우애노”하셨다. 나는 보석이라도 발견한듯 복숭아를 보는순간 눈에 빛이났다. 시어머님의 눈을 피해 화장실에서 솔바람에 개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굵고 탐스런 복숭아가 아니라 산이나 들에서 자연적으로 나서 자란 돌복숭아였다. 작고 딱딱하고 시지만 먹을것이 없던 그때는 유일한 간식거리로 인기 만점이었다. 여인네들이 모여 앉으면 어디라도 따라 다니는 돌복숭아는 한입 베어불면 벌레가 술술 기어 나와도 게의치 않았고 벌레를 먹으면 예뻐진다는 말도 있었다. 밤이되어 자리에 누우니 입안에 침이 한 가득 고이고 복숭아가 천장에 아른거려 잠을 잘수가 없었다.
동네에선 여섯명의 새댁들이 일 이년 차이로 시집왔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랬던가 우리는 샘가에서 서로의 속마음을 얘기하곤 했다.
이상하게도 모두가 임신이란다. 내가 아버님 복숭아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들도 복숭아가 너무 먹고 싶다고 했다.
산 넘어 아무개 보리밭에 복숭아가 익어서 맛이 그만이란다. 일단 대상을 확보 했으니 어떤 방향으로 서리를 할 것인지 이마를 맞대고 이야기 하다가 그만 아침밥이 늦어 댄탕 혼나던 날 밤, 어스럼 달빛을 이끌고 여섯명의 새댁들이 산 넘어 보리밭으로 향했다.
누렇게 익은 보리가 산들바람에 까끄라기수염을 곧추세우고 일렁거렸다. 복숭아 볼처럼 젊음이 넘실거리는 여인들,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새댁이라는 신분은 잊었다. 아직 소녀티가 벗겨지지 않은 열아홉 스물 스물 한 살,
이미 어머니로 가는 길목에 들어섰는데 배고픈 하이에나 처럼 복숭아를 보는순간 말괄량이 계집아이였다.
나무위에 올라가 마구 흔들어 보자기로 월남치마로 양껏 따서 귀가길에 올랐다.
뒤돌아 보니 보리밭이 엉망이다. 덜컹 겁이났다. 돌릴수만 있다면 되돌리고 싶다.
남편없는 시집살이를 인내로 견뎠는데 순간 죄인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위치에 섰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범보다 무서운 시어머님 잔소리가 귓볼을 뚫고 귀고리로 꽂혔다.
시아버님 큰 기침 소리도 뒷통수에 따라왔다. 어르고 간 빼는 시누이 요상한 애교도 눈에 선했다.
분수를 모르는 새댁들에게 신은 썩은 동아줄을 내렸는지 이 야밤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야릇한 고함소리“거기 있지 못할까”
먹잇감 발견한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달려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내가 만든 덫에 내가 걸려 눈앞이 캄캄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 걸음아 날 살려라,
고무신은 벗겨지고 발목은 삐었고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까끄라기에 온 몸이 따갑고 소변도 마렵지만 사력을 다해 뛰었다.
얼마나 뛰었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따라오던 사람도, 같이 한 일행도 없었다.
그 많던 복숭아는 어디가고 보자기 안에는 못 생긴 개복숭아 두 개만 들어 있었다.
집에오니 전신이 욱신거렸다. 군데군데 긁히고 찢어지고 배는 등에 붙어 숨 쉴 기운조차 없었다.
복숭아 두 개를 이불 뒤집어 쓰고 눈물콧물 흘려가며 먹었다.
이튿날 동네엔 이 마을 새댁들이 아무개 복숭아를 따갔다고 소문이 파다했다.
더구나 보리밭을 망쳐서 보리값을 물려야 한다고 곧 취재가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깨끗한 마을에 물을 더럽힌 미꾸라지가 되어 얼마나 수치스럽던지 낯을 들수가 없었다.
철광석조각이 제철소에서 온갖 이물질을 걸러내고 1600도 쇳물로 녹아서 우리들 일상에 요긴하게 쓰이는 완제품이 된다.
몸뚱이만 키워 나이만 먹고 사람의 형틀만 갖추어 시집을 온 내가 아닌가,
처녀때 하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신분이 다른 위치에서 스스로 걸러내지 못했으니 반성하며 쇠를 녹이는 고통으로 어른이 되는 공정을 거쳤다.
그 후 아버님은 들에만 가시면 꼭 복숭아를 두 개씩만 따다 주셨다.
혹여 많이먹고 탈이라도 날까봐 일부러 두 개씩만 따 오신 것이다.
며칠 후 소식도 없던 남편이 휴가를 왔다. 저녁밥을 차려 주고는 자리에 누웠다.
밥상에서 풍겨오는 된장 냄새에 당장이라도 올라올 것 같은 구역질을 간신히 참는데 자꾸만 밥을 먹으라고 한다.
밥 먹은지가 언제였던지 기억도 없다하니 깜짝 놀라 이유를 물었다.
오직 먹고 싶은것은 복숭아 밖에 없다고 했더니 이튿날 복숭아를 한 보따리 사 왔다.
분홍빛에 굵고 솜털이 송송 박혀있는 복숭아, 보기만 해도 절로 기운이 났다. 장롱속에 숨겨놓고 한 끼에 한 개씩을 식사 대용으로 먹고 아이를 출산했다. 영양부족으로 아이가 기형이면 어쩌나 했는데 지극히 아이는 정상이었다.
입이 돌아갈 정도로 말랐어도 튼실한 아들을 낳았다고 그렇게도 좋아하시던 아버님,
뜨끈하게 군불을 지피시고 미역을 손수 담그시던 모습, 6개월이 지나 아이가 엉금엉금 기어 다닐때 아버님은 세상을 뜨셨다.
나는 의지할 곳 없는 신세가 되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도지는 병, 복숭아를 끼니삼아 먹으며 여름을 보낸다. 그리고 첫아이 임신때를 떠올린다.
그때 복숭아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몇배로 힘든 임신기를 보냈을 것이다.
시간을 되돌려 요즘 임신했다면 당당히 먹고싶다 말할것을 돌복숭아 때문에 웃지못할 죄를지고 죽은듯이 살았다.
다시 가라하면 못 갈길, 헛헛한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내가 만든 반찬은 무엇이든 “맛있다 내입에 딱 맞다” 하시고 겨울에는 새벽에 나오셔서 내 신발을 소죽 아궁이에 따뜻하게 데워 주시던 아버님, 철없던 시절에 받기만 하고 정중히 모시지 못한것이 한이되어 가슴을 친다.
전화가 울린다.
“어머니 지금 가는 중이예요 필요한 것 말씀 하세요”
“복숭아 한 상자만 사 오너라,“
”예 알았습니다."
옛날 복숭아 때문에 난리를 친 그 아들이다. 벌써 마흔을 넘겼다. 부티가 흐르는 부잣집 종부 같은 복숭아,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장호원 복숭아다. 나는 며칠을 행복에 젖어 살 것이다.
아들을 보면 복숭아가 보이고 복숭아를 보면 아버님이 보인다. 복숭아 단내 물씬 풍기는 여름이 나는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