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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ㆍ공연

세월의 이끼 소복하니… 투박한 情 더 애틋하네

善을 그린 화가 박수근… 갤러리 현대, 45주기 특별전

한국의 대표적 서양화가인 박수근(朴壽根·1914~1965)의 45주기를 맞아 7일부터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특별전이 열린다. 박수근이 1954년 제3회 국전에 출품해 입선한 〈절구질하는 여인〉을 비롯해 〈시장의 사람들〉 〈노상〉 등 유화 45점이 나온다.

이번 전시는 1961년 서울 반도화랑 시절부터 박수근과 인연을 맺어온 박명자 갤러리현대 사장이 마련했다. 박 사장은 박수근이 타계한 이후 1985년 《박수근 20주기 기념전(展)》과 1995년 《박수근 30주기 기념전》을 여는 등 5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왔다. 박명자 사장은 "갈수록 소장자들에게서 박수근 선생의 작품을 빌려오기가 쉽지 않다"며 "언제 다시 이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수근의〈길(1964)〉. 그는 서민의 삶을 통해 선(善)과 진실을 형상화하려고 노력했다. 왼쪽 흑백 사진은 말년의 박수근 화백. / 갤러리현대 제공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양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는 보통학교 시절 미술 과목에 소질을 보였고, 12세 때 프랑스 화가 밀레의 작품 〈만종〉을 보고 밀레와 같은 훌륭한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산과 들에 나가 스케치하며 미술을 독학했고, 1932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鮮展·선전]에 작품 〈봄이 오다〉가 입선하면서 용기를 얻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선전과 광복 후 국전에 작품을 출품했고, 1959년 조선일보가 주최한 현대작가초대미술전에 〈봄〉 등 3점을 출품했다. 생전에는 국내에서 작품 세계를 인정받지 못해 가난에 시달렸고, 작고 2년 전에는 한쪽 눈을 실명했다. 그는 미국인 후원자의 도움으로 세계순회전을 꿈꾸기도 했지만, 1965년 간경화로 숨을 거두었다.

박수근의 작품이 갈수록 주목받는 것은 한국 산하에서 볼 수 있는 화강암 같은 마티에르와 서민의 삶을 담은 작품이 시간을 초월해 호소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두터운 마티에르는 농촌의 흙담 같기도 하고 거칠지만 강인함이 느껴지는 화강암 같아 마음 깊은 곳을 울린다. 그가 즐겨 그린 대상은 전후(戰後)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물건을 팔거나 젖먹이를 들처 업고 일하는 아낙네였다.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그는 특별한 것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을 그렸고, 가난하지만 선량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선(善)과 진실을 형상화했다.

박수근의〈시장의 사람들(1961)〉
박수근이 그린 나목(裸木)은 집 앞의 평범한 나무로, 지금은 잎이 떨어져 쓸쓸하지만 곧 싹이 움틀 것을 상징한다. 그의 작품은 원근법이 없는 평면화이면서 단순한 형태를 보이지만 맑고 깊은 정신성을 담고 있다. 세월의 이끼가 낀 듯 고적한 색채와 진실한 사람들의 모습이 지치지 않는 생명력과 신선함을 안겨준다. 이번 특별전에 나온 작품들은 그런 박수근의 세계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번 45주기 전시에 맞춰 박수근의 작품 99점을 실은 국·영문 도록(마로니에북스)도 함께 나왔다.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한국의 대표적 작가인 박수근에 대한 영문 자료가 제대로 없어 세계에 알릴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영문 도록은 한국의 국민 화가 박수근이 세계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는 30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 3000~ 5000원. (02)228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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