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현장의 인문학, 쉬운 인문학, 생활속의 인문학 
참여후기

참여후기

참여후기 게시판 입니다.
제목 2012년 12월 1일 ‘길 위의 인문학’ 변산반도~
작성자 김애정 작성일 2012.12.05
이메일 aizhen1013@naver.com
2012121길 위의 인문학
변산반도에 맺힌 인문학의 꽃망울을 다녀왔습니다.
 
  시간을 관통하고 역사를 넘나들며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인문학의 정의가 아니라도, ‘梨花雨 흩날림...’에 매창의 이름이 찰나로 떠오름은 퍽도 오래된 교과서학습에의 훈습 탓인지도 모른다.
 
  초겨울치고는 몹시도 매서운 그 날, 전북 부안으로의 탐방 길은 한 세기에 날까 말까한 천재적 시인이요 문사이자 유불선을 통달한 학자였고 개혁사상가였지만 당시 그에게 주어진 이름은 막된 인간이었다고 하는 허균과 시골 아전의 서녀로 태어나 기생이 되었지만 기생이면서 얼굴이 못생겼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 계양(매창)이 느끼고 바라봤던 세상에 대한 서릿발 같은 냉정함이 여실히 묻어났을 그 만큼의 차고 매서운 추위 속이었다.
 
  참선으로 자기수양에 철저하여 어떤 경우에도 도를 지나치지 않고 몸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고결함으로 시인 묵객들이 부안으로 몰려와 그녀와 어울리기를 열망했었고, 한미한 출신의 시인 유희경과의 허심탄회한 만남도 있었지만, 허균이 젊은 날 부안으로 유배되어 있을 때 그녀와 사귀면서 서로의 시를 높이 평가하면서 나눈 사랑은 절절함으로 깊고 영원했었다고는 하지만 마흔도 채 못 돼 가난한 퇴기로 쓸쓸히 죽어간 그의 애절한 비탄의 시세계는 진정한 인간애에 대한 그리움의 하소연은 아닐는지... 오늘날 전해지는 58수쯤의 그녀의 시는 배꽃향기 흩날리는(梨花雨) 그 계절 아니라도 오래 빛나는 예술의 일부로 남아 우리 곁을 함께 하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그녀를 기리는 공원이 있다는 자체로도 경이(驚異)의 감정이다.
 
IMG_0978.JPG
     IMG_0981.JPG
                         부안 매창공원 '매창묘와비'                                                     매창공원 '기념석'
 
 IMG_0982.JPG        IMG_0980.JPG
       매창과 허균과 유희경을 논하시는 이이화작가님                                매창공원의 '이화우' 시비
  
  허균은 공주목사에서 나와 부안에서 살면서 많은 시와 최초의 국문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계생의 사랑과 지음(知音)으로서의 애절함이 그를 부안에 머무르게 했을 수도 있지만 유토피아적 이상향을 향한 그의 시대를 초월한 혁명적 기질과 언제나 자신보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신분적, 사회적 차별을 자신의 위치와 동일시하여 그 굴레를 벗겨주고 싶은 열망이 소설 홍길동전을 탄생시키지 않아나 생각된다. 현실과의 타협을 불허하고 유학의 예교를 중시하는 당시 사회에서 철저히 이단아적 삶을 산 허균은 어쩌면 일탈을 꿈꾸는 개혁의 선봉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허균이 은거하면서 홍길동전을 집필했다는 부안의 선계폭포도 정사암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깊은 계곡 속에 묻혀있을 그의 체취는 조그만 안내판의 허균이 홍길동전을 저술한 우반도 정사암...’ 이라는 짙은 기억으로만 우리에게 다가와 새김 되었다.
 
IMG_0995.JPG
허균이 실제 은거했다는 우반동 정사암계곡을 바라보며..
허균을 대변하시는 이이화선생님...
 
  간척이 되어 육지로 되었다는 계화도로 간재 (艮齋)전우(田愚)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에 넓게 펼쳐진 간척지는 간재 당시의 흔적은 미미하지만, 유학자로서의 절개를 고수하며 오로지 정신적인 유학의 학습으로 인한 인재 양성으로 먼 미래를 향한 힘을 기를 수 있다는 정신으로 당시의 여러 국난에 임하는 처신에 대해서, 마치도 죽기가 무서워 의병을 일으키지 못했고, 화가 치밀까 두려워 외세를 배척하지 못하였다는 극단의 비판을 역사적 평가로 받고 있기도 하지만, 정통적 국권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간섭에도 의존하지 말고 학문을 일으켜 도()로써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그의 일갈에도 의미가 없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전통적 도학의 중훙만이 국권 회복의 길이라 여긴 도학군자로서의 자부심 또한 정통 유학자로서 추앙받을 만한 평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IMG_0986.JPG IMG_0990.JPG
 간재가 후학을 가르친 繼陽祠                                                           간재 전우의 초상
 
짧은 겨울 해를 비스듬히 두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반계서당다름없이 학습효과가 여실히 드러나는 기억이다. 유형원의 대펴적 실학서 반계수록...조선 후기 성리학을 비판하면서 유교경전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의 일환으로 현실 비판적이며 개혁적인 학자들에 의해 발전된 실학사상은 사회 경제적 배경으로 농업생산의 발달과 새로운 경제상의 변화를 촉진시키게 된다.
실학자 반계 유형원(1622~1673)은 저술반계수록을 통해 나라의 부강과 농민의 생활안정을 위한 토지 제도를 개혁을 주장한다. 토지는 국가가 공유하고 농민들에게 일정량의 경지만을 나누어주는 제도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과 균전제를 도입해 자영농민을 육성해 민생의 안정과 국가 경제를 바로 잡자는 그의 주장을 드러낸다. 병농일치의 군사 제도인 부병제(府兵制)를 강조하고 녹봉제의 정비도 주장하면서 신분제 및 직업 세습제의 개혁 등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에 입각한 과감한 실천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개혁이 이루어지면 천덕(天德)과 왕도(王道)가 일치되어 이상국가라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바로 근처의 우반도 정사암에서 운거하며 저술했던 인간이 인간으로 제대로 살 수 있는 유토피아적 소설 홍길동전을 저술하던 허균(1569~1618)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주어진 시대를 혁명사상으로 일관하며 새로움에의 도전에 주저하지 않았던 부안의 맞수 허균과 유형원의 역사적 평가는 계속될 것이다. 일은 시기(時機)가 있고 시비(是非)는 역사가 내린다고 하지 않던가....
 
 IMG_0998.JPG IMG_0999.JPG
磻溪書堂磻溪亭 
 
길 위의 인문학에 감사함을 보냅니다. 관계하신 모든 분들께로의 감사함도 함께 보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IMG_1006.JPG IMG_1003.JPG
     이원복선생님 '磻溪書堂 '에서 들려주신 좋은 말씀과
                               '磻溪書堂 '에서의 이이화선생님
     팁으로 들려주신 깜짝세계사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
 
 
* 참고:길위의인문학참고자료집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