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도전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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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사는 ㈔해양산업발전협의회와 공동으로 '해양 도시' 부산의 면모와 정신을 널리 고취하고자 '부산일보 해양문학상'을 제정합니다. 2천만 원 고료를 걸고 공모하는 '2010 부산일보 해양문학상'은 기성·신인 작가 구분없이 응모 가능하며 '해양소설'(중편 이상) '해양논픽션' '해양시나리오' 3개 부문에 걸쳐 원고를 받습니다.
■분량=200자 원고지 200~800장을 A4 용지로 출력해서 제출
(줄거리 200자 원고지 10~15장 첨부)
■상금=대상 1천500만 원, 우수상 500만 원(부문 구분없이 수상작 2편 선정)
■마감=2010년 10월 15일(마감일자 소인 유효)
■발표=2010년 10월 말 부산일보
■접수=부산 동구 수정동 1의 10 부산일보사 편집국 문화부<부산일보 해양문학상> 담당자 앞(우편번호 601-738). 문의 051-461-4182.
■저 작 권=당선작의 저작권은 당선 이후 5년간 부산일보가 가짐.
■응모요령=응모작의 겉봉투와 원고의 맨 앞장에 성명 주소 연락처
원고분량 명기.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음.
■후원: 대형선망수산업협동조합
부산일보사는 ㈔해양산업발전협의회와 공동으로 '해양 도시' 부산의 면모와 정신을 널리 고취하고자 '부산일보 해양문학상'을 제정합니다. 2천만 원 고료를 걸고 공모하는 '2010 부산일보 해양문학상'은 기성·신인 작가 구분없이 응모 가능하며 '해양소설'(중편 이상) '해양논픽션' '해양시나리오' 3개 부문에 걸쳐 원고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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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200자 원고지 10~15장 첨부)
■상금=대상 1천500만 원, 우수상 500만 원(부문 구분없이 수상작 2편 선정)
■마감=2010년 10월 15일(마감일자 소인 유효)
■발표=2010년 10월 말 부산일보
■접수=부산 동구 수정동 1의 10 부산일보사 편집국 문화부<부산일보 해양문학상> 담당자 앞(우편번호 601-738). 문의 051-461-4182.
■저 작 권=당선작의 저작권은 당선 이후 5년간 부산일보가 가짐.
■응모요령=응모작의 겉봉투와 원고의 맨 앞장에 성명 주소 연락처
원고분량 명기.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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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김유철
序文
유난히 장마가 길었던 그해 여름, 나는 대한해양기술이라는 회사에서 첫 사회경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요즘 같은 불경기에 정식으로 입사를 했다는 말은 아니다. 경기도에 있는 어느 국립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나는 서른이 넘을 때까지 신림동 고시촌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제대 뒤 복학하고부터 3년을 오로지 검사가 되겠다는 열망 하나에 매달려 살았다. 물론 3년 동안의 인생이라는 것은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것이었다. 한 발짝만 비켜나도 아득한 벼랑 밑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던 - 다분히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 나는 그러나 불행하게도 1차 시험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서른 해를 넘기고 말았다.
그래서 아마 서른한 살이 되었을 무렵 나는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라든가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생각을 가질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달빛조차 없는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당황하고 막막하기만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포기하는 것도 빨랐을 것이다. 잃어버린 3년 동안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변해버렸고 나는 그만큼 뒤쳐져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쌓은 스킨스쿠버 실력이 그나마 위안이 될 정도로.
선배로부터 연락이 온 건 그 즈음이었다. 스킨스쿠버 동아리 시절부터 나를 아껴줬던 선배는 - 누군가로부터 나의 근황을 들었을 것이다 - ‘너한테 딱 맞는 알바 자리가 하나 생겼는데’ 라고 운을 넣은 뒤 ‘너처럼 바달 좋아하는 녀석이 어디 있냐. 마음도 추스를 겸 …… 한 일주일정도 우리 회사에서 일해 봐라.’ 라고 선배의 성격만큼이나 시원스레 제안을 해왔다. 물론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핸드폰 요금이 밀릴 만큼 금전적으로도 쫓기고 있을 때였고 무엇보다 습하고 어두운 고시촌 쪽방이 아니라 코발트색으로 빛나는 바다가 너무나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起
터미널에서 출발한 지 3시간 정도가 지난 뒤였다. 옅은 빗줄기가 떨어졌지만 순천 가까이 왔을 때 비는 그치고 잔뜩 먹구름만 끼어 있었다. 순천 터미널에서 처음 김윤경 과장을 만났다. 그녀는 1미터 70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하얀 피부를 가진 미인이었다. 나이는 삼십대 후반이었지만 실제나이보다 다섯 살 정도는 어려 보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다는 말을 언뜻 비추기도 했지만 나는 무관심한 듯 그녀를 대했다. 이미 그녀에 대해선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간단한 인사만을 나눈 뒤 그녀가 몰고 온 스타렉스 밴에 동승해 순천 시내를 가로질러 벌교로, 거기서 다시 장흥으로 향했다. 장흥에 있는 중국집에서 자장면 - 아주머니가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메뉴다 - 으로 늦은 저녁을 먹은 뒤 마량면으로 이동을 했다. 마량항 근처에 대한해양기술의 현장 사무실이 있었다. 두 달 전까진 3명의 직원이 내려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수원 본사로 철수를 하고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사무실에 있는 소나와 스킨스쿠버 장비를 스타렉스 밴에 옮겨 싣고 나서 과장과 나는 마량리 앞 바다가 보이는 부두 근처의 모텔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옆방으로 건너가기 전에 과장은
“내일 해남에 들어가면 숍에서 렁(산소통)을 먼저 충전해야 할 거예요.”
라고 말한 뒤
“우리가 작업해야할 마을이 토말(땅 끝 마을) 근천데 배를 섭외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군청 해양 자원과 계장에게 부탁을 해 두었어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인근 바다를 청소하는 일이잖습니까.”
내가 대꾸를 하자 그녀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피우며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이상한 일이죠? 거기다 날씨까지……”
“위닌가 하는 태풍 말입니까?”
“네. 뉴스에선 중심기압이 950헥토파스칼에 순간최대 풍속이 23미터인 중형 태풍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다 뭔가를 떠올린 듯 과장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태풍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까요?”
물론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태풍이 부는 날 바다 속을 들어가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고는 그런 짓을 할 다이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하지만 바닷물이 뒤집어 진다란 소린 자주 들었으니까요. 수심이 얕은 곳은 뭐……”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뒷말을 얼버무렸다. 그녀는 ‘음, 그렇겠죠.’ 하는 짧은 응답을 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언제 그런 질문을 던졌냐는 듯 무관심한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뿜어댔다. 나는 그녀의 날이 선 콧날을 흘겨보며 잠깐 동안이긴 하지만 매력적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연예인처럼 작은 얼굴에 긴 속눈썹까지 어디 한군데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선배가 그녀에 대한 과장誇張된 이야길 해 준 탓도 있을 것이다. 2년 전 이혼을 했지만 아직 사귀는 사람은 없다. 가끔 술에 취하면 야한 농담도 곧잘 받아주더라. 너 고시 공부한다고 3년 동안 굶주렸지…… 잘 해봐라. 같은 선배의 은근한 목소리가 아직까지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다. 나는 괜히 어색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미니 냉장고에서 하이트 캔을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담배를 피우던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일었다. 나는 맥주 한 모금을 다시 들이킨 뒤 핸드폰을 꺼내 선배에게 마량리에 잘 도착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때 그녀가 태풍이 오기 전까지 조사를 마무리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한 얼굴로 물어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핸드폰 폴더를 닫고 나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음 주부터 일주일간 여름휴가를 잡아 놨어요. 아이와 함께 일본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라서……”
‘이런 걸 두고 무언의 압력이라고 하는 거겠지?’
“글쎄요…… 조사해야할 바다의 수심이 얼만지, 조류의 세기는 어떤지, 바닥이 개흙(뻘)이라면 분명히 시야도 좁을 거구, 거기다…… 어떤 지형인지도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런 정보들이라면 해수부(해양수산부) 사이트에서 알아보는 방법이 있어요.”
“아뇨. 구체적인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직접 조사구역을 돌아봐야 알 수 있어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어떻게든 배를 구해야겠군요…… 그럼, 내일을 위해서 일찍 눈을 붙이는 게 좋겠어요.’ 라고 말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마 그날 밤이었을 것이다. 나는 심해의 바다 속을 평화로이 유영하는 꿈을 꾸었다. 거추장스러운 렁을 매지 않아도 마음껏 숨을 쉴 수 있었다. 다리를 조금만 휘저어도 날새치처럼 빠르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늘에서부터 거대한 빛줄기가 내려와 바다 속을 밝히기 시작했다. 늘어선 빛줄기는 올림포스 신전을 떠받드는 이오니아식 기둥처럼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나는 아테나 여신의 신전을 산책하는 알카메네스(아테네의 조각가)처럼 빛기둥 사이를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그러다 카리아테이드(소녀상 기둥)를 발견하곤 그 매력에 이끌려 다가갔다. 살아있는 것처럼 섬세한 알몸의 처녀상은 분명 과장을 닮아 있었다. 나는 기둥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닮은 조각상 얼굴 주위를 맴돌았다. 잠을 자는 듯 한 평온한 얼굴 때문인지 내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마력에 이끌리듯 그녀의 입술에 얼굴을 가져갔다. 그녀의 입 안에서 달짝지근한 스트로베리향이 묻어 나왔다. 깊은 속눈썹 사이로 파르르한 떨림이 전해오기도 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채취에 빠져 들었다. 창문 사이로 옅은 새벽의 햇살이 파도 소리에 섞여 들려올 때까지 나는 그렇게 몽롱한 기분에 빠져 있었다.
해남군청 마당에는 수성송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래된 해송이 자라잡고 있었다. 나는 나뭇가지를 받쳐놓은 지지대 근처에서 서성거렸다. 마주보이는 곳엔 군청의 보호수로 알려진 은행나무가 연푸른 잎사귀를 나풀거리고 있었다. 은행나무 주위를 둘러 싼 벤치에는 7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나온 30대 초반의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선 어느 초등학교에서 나온듯한 아이들이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서울에선 볼 수 없는 도심 속의 평화롭고 여유로운 풍경이었다. 핸드폰으로 현재 시각을 확인하면서 초조하게 과장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어쭙잖은 도시 뜨기의 인생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지난 3년 동안의 신림동 고시촌 생활을 회상했다. 오로지 검사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공부에 전념하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에게, 친척들에게, 나를 차버린 가린이에게 보란 듯이 검사 신분증을 내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내 자신을 위한 길이였는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법대에 들어간 건 교사인 아버지의 바람 때문이었고 고시 공부에 매달리기 시작한 건 가린이를 잊기 위해서였다. 따지고 보면 검사가 되던 닭 집 사장이 되던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무엇을 하든 바닷가 근처에서 틈틈이 다이빙이나 하면서 조용히 인생을 즐기고 싶었으니까. 그때 과장이 군청 현관을 뒤뚱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녀는 어장도를 왼쪽 옆구리에 끼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저기 있었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느릿느릿 다가갔다. 과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어장도를 내게 건네면서 ‘그럼 거기서 기다리죠. 20분 뒤에 뵙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해양자원과 계장이 소개시켜 준 선주船主는 군청에서 다섯 블록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나와 과장은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있는 다방에서 그를 만났다. 깡마른 체격에 머리가 반쯤 벗겨진 선주는 80년대식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인테리어 - 금붕어가 들어있는 수족관과 모서리가 달아버린 검은색 가죽소파, 눈두덩이 시퍼런 미니스커트의 레지, 80년대식 록 뽕짝 - 로 가득한 곳에 딱 어울리는 사람 같았다. 첫인상이 그렇게 호감이 가지 않는 나와는 달리 예쁘장하게 생긴 과장에게만 선주는 눈인사를 건넸다. 다가오는 레지에게 커피를 시키고 나서 선주는
“거긴 아무도 안 갈라 하는덴디 요로코롬 귀찮게 굴어샀소?”
하고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저희에겐 선택권이 없어요. 위에서 높으신 공무원들이 정한 일이니까요. 그쪽 부서에서 구역을 정해서 발주를 내면 저희 회산 거기에 맞춰 설계를 하는 것뿐이에요.”
“거기서 양식허는 사람이 워디 있다요. 1년 전에 서울서 내려왔다는 양반이 크게 판을 벌릴라다 마을 사람들 반대에 부딪쳐 나가브럿제. 몇 달 전엔 광주서 온 젊은이들이 전복 양식하겄다고 왔다가 곧 포기해 불고…… 거긴 청소하나마나 아무것도 없당께.”
“그러니까 더 조사를 해야 하는 거죠.”
“아, 고로코롬 말길을 못 알아들어서 어쩐다요. 그게 다가 아니랑께.”
“그럼, 또 뭐가 있는데요?”
선주는 답답한지 담배를 소리 나게 쪽쪽 빨아대면서 카운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 화장을 하고 있는 레지를 불만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뭣땜시 우리가 싫어 하겄소? 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응께 그런 거이제. 저그 쪽 바다엔 가지마라고 말이제.”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단지 그 때문입니까? 옛날부터 내려온다는 말 때문에? 전설의 고향도 아니고……”
선주가 ‘시방 비웃는 것이여?’ 라고 따지듯 눈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봤다. 선주의 표정을 살피던 그녀가 내게 말조심 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상냥한 얼굴로 선주를 계속 설득했다.
“양식장 주변 바닥을 청소한 다음 해엔 생산량이 300퍼센트 가까이 개선되었다는 보고도 있어요. 모든 경비는 국가에서 나오니까 돈 걱정 할 필요도 없구요.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찾아온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그걸 누가 몰라서 그런다요. 그쪽 바다 속을 조사한다는 게 꺼림칙해서 그런 것이제. 왜 아무것도 안하는 거기까증 조사를 하냔 말이여.”
그녀는 어장도를 펼쳐 문제의 조사구역을 형광펜으로 표시했다.
“그럼 이곳은 배만 빌려주시면 저희끼리 조사를 하겠어요. 그러니까 나머지 조사 구역만이라도 선장님이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드립니다.”
“배 몰 사람은 있소?”
“네.”
선주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과장에게 말했다.
“여그 어촌계 사람이지라?”
과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주는 마지 못하는 척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그럴 생각이라면 나도 괜찮하요. 근디 거긴 아무도 안 갈라 했을텐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선주에게 그녀는 확인 도장이라도 찍듯이 약속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그럼 내일 9시 30분까지 선창에서 만나는 걸로 할게요.”
“선창에서라? 하 그 양반 번개에 콩 볶아 먹겄소.”
“태풍이 오기 전에 조사를 마무리할 생각이에요.”
“거시기 대만에서 올라온다는?”
그녀는 ‘네.’ 하고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헤어지기 전에 나는 선주에게 왜 사람들이 어장도 카피 본에 P-4로 표시된 구역을 꺼려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레지가 가져온 찐득찐득한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바다 밑에 협곡이 있다는 소리도 있고…… 그게 얼마나 깊은지, 그 안에 뭐가 있는 진 아무도 모른단 말이제. 임진왜란 땐 왜놈 함선이 그곳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하고 그 근방에서 조난당한 홍가네가 다음 날 멀쩡하게 살아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응께’ 하고는 더 이상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살아 돌아왔다는 사람한테 들은 이야긴 없습니까?’ 라고 물었지만 그는 ‘어이. 김양아 코피 맛이 왜 이러냐. 아침부터 달달 볶는 사람들이 있어 그렇잖아도 심난한디.’ 하고는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사람을 만나볼 순 없을까요?”
“누구 말이라?”
“살아 돌아왔다는 사람이요.”
“날샜소. 그 양반 돌아 가신지가 시방 10년은 됐응께.”
선주는 그만 단념하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간당간당한 미소를 내게 건넸다.
숍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렁을 충전시킨 뒤 마량리의 현장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수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수심 30미터 이상에서는 활동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협곡이 있다면 조류에도 신경을 써야하고, 협곡 주위로 쓰레기가 많이 쌓이기 때문에 작업하기가 그만큼 힘들어 진다는 이야기를 주절거렸다. 말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던 과장은 ‘될 수 있으면 거긴 소나로만 조사할 생각이에요.’ 라고 짧게 응답한 뒤 숄더백을 챙겼다.
“선주가 했던 말들요. 마치 어릴 적에 미스터리 백과사전에서 읽었던 버뮤다 삼각지역이 생각나던데요. 정말 이상한 곳이면 어떡할래요?”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김성철씨. 우린 여기 놀러온 게 아니에요.”
그리고 덧붙이기를
“말하는 김에 한마디만 더 할게요. 사적인 호기심이라면 업무 이외의 시간을 이용했으면 좋겠어요. 우린 배 섭외 문제로 선주를 만난 것뿐이었으니까. 꺼리는 이야길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는 건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었어요. 그 분한테 실례가 되는 일이었다구요. 앞으론 조심해 주세요.”
라고 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사과를 했다. 그녀는 한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바쁜 일이라도 떠올랐는지 ‘그럼, 장비 점검 마무리 해주시고, 숙소는 어제 그 모텔이니까 언제든 들어가서 쉬도록 해요. 내일 6시 쯤 여기서 만나는 걸로 하구요.’ 라고 인사말을 대신했다. 나는 현장사무실 마당으로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어젯밤 꿈을 떠올렸다. 알몸의 카리아테이드. 그러자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꿈속에선 스트로베리향이 가득했지만 실제론 니코틴 냄새로 가득할거야.’ 괜히 쑥스러운 기분이 든 나는 그녀의 말대로 손목과 발목에 지퍼가 달린 슈트와 오리발, 비시 - 부력 조절기, 하우징 - 수중 촬영 카메라, 호흡조절기와 압력 게이지, 손목에 차는 나침반등의 개인 장비를 점검하고 뒤이어 미사일 모양의 사이드 스캔 소나와 로프, 와이어 줄, 플러터, 노트북과 여분의 배터리까지 꼼꼼하게 점검했다. 그리고 노을이 질 때까지 현장사무실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지만 답장을 하진 않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내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직 운 때가 맞지 않은 것뿐이라고, 그리고 로스쿨이라는 게 생겼으니 나에겐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생긴 게 아니냐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나는 어둡고 습한 골방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대신 지금 이 순간이 매우 소중하고 유익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옅은 녹색의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
스킨스쿠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된 가린이는 늘 푸껫이나 서사모아의 바다 속을 동경했다. 나는 다이어리 속에서 사진을 꺼내 들었다. 태종대 바다가 바라보이는 해안에서 찍은 스킨스쿠버 동아리 사진이었다. 제일 아래쪽 중앙에 앉아있는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바로 그 위에 몸을 반쯤 숙인 채 웃고 있는 녀석이 바로 나였다.
“따지고 보면 넌 푸껫이나 서사모아의 바다가 아니라 그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동경했던 것뿐이었어.”
독백하듯이 내뱉는 가슴 한쪽이 찐하게 저려왔다. 나는 사무실 창가로 걸어가 한지에 먹물이 퍼지듯 검게 변하는 수평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承
사이드 스캔 소나를 추를 이용해 20미터 정도의 수심으로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핸드 GPS에서 좌표를 입력하는 것부터 나는 버벅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선주는 다방에서 느꼈던 첫인상과는 달리 차분하게 배를 몰았다. 5톤짜리 어선을 마치 수족을 다루듯 능숙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의외로 협조적이었다. 까다롭고 꼼꼼한 성격의 과장이 요구하는 조건을 거부감 없이 받아주었고 조사구역의 바다 지형이나 시설물이 설치된 곳에 대해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선주가 알아서 일정한 노트로 배를 움직여 주었기 때문에 어장도의 조사구역을 스캔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나는 방향을 틀 때 외엔 그저 사이드 스캔 소나가 어장을 만들면서 설치한 로프나 어구에 걸리지 않도록 주변을 살피기만 하면 되었다. 플로터와 노트북을 만지는 작업은 모두 그녀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P-4구역만이 남았을 때 시간은 오후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바다는 여전히 잔잔했고 태양빛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그녀가 사온 김밥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뒤에 선장은
“이곳에선 날 모르면 간첩이지라…… 다 알아봤응께.”
라는 생뚱맞은 말을 했다.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선장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과장은 다시 한 번 선장에게 고개를 숙여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선장과 그녀의 선문답에 고개를 갸우뚱 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쪽 바다를 들어가려는 분들이 없었어요. 이곳에 사시는 분들 모두가……”
그제야 나는 전날 그녀가 이곳 P-4 구역에서 배를 몰아 줄 사람을 구했다는 말이 거짓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라…… 바다 때깔부터가 다르지 않소. 서울서 사업한다고 내려온 사람이 저그에 가두리 양식장을 만든다고 할 때부터 주민들이 반대를 했응께……”
“그때하곤 다르잖아요. 우린 이곳을 청소하려는 것뿐이니까.”
“그걸 탓하는 게 아니랑께.”
선장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저그 바단 사람 손이 타선 안 되는 곳이란 말이제. 부정을 타니께.”
“왜 그렇게 조심들 하는 거죠? 무슨 이유라도 있나요?”
선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세상엔 상식만으로 이해헐 수 없는 것도 있응께……”
그리고 잠시 P-4구역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회백색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슬며시 수면 위를 스치듯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전까지 물결이 일던 곳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봤어요? 방금 뭐가 떠올랐었는데…… 돌고래? 아니면 상어였나요?”
그녀도 나름 호기심이 일었던지 내가 가리키는 곳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선장이 껄껄거리며 웃어댔다.
“상괭이란 놈이여.”
“상괭이요?”
나는 다시 갑판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으면서 선장에게 물었다.
“여그서 사는 고랜디, 가끔 보게 되지라.”
“아, 이제야 기억났어요. CITES -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 - 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고래죠.”
“여기에 고래도 삽니까?”
내가 중간에 끼어들자 선장은
“시방 뭔 소릴 하는 것이여. 원래 이곳 주인이 상괭이여. 인간이란 놈들은 훨씬 뒤에나 흘러들어 왔응께.”
하고는 정색을 했다. 나는 조금 전에 봤던 상괭이란 고래의 옆모습을 떠올렸다. 어느 순간에 눈이 마주친 것도 같았다. 등지느러미가 없고 2미터 이상 자라지 않는 온순하고 영리한 녀석이라고 선장은 말해주었다.
“옛날 어른들은 모두 상괭이를 바다사람으로 불렀응께. 그만큼 영물이란 말 아니것소. 우리 어렸을 쯕으만 해도 물놀이하다 보문 문득 마주치기도 했응께.”
“지금은요?”
“모르것소. 언제부턴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응께. 그만큼 우리가 바다와 멀어졌는지도 모르것소.”
그날은 끝내 P-4구역에 소나를 띄우지 못했다. 선장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그녀의 부탁에도 털끝하나 변하지 않았다. 바다가 노여워하는 짓은 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그는 줄곧 고집을 피웠다. 날이 기울면서 제법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궂은 날씨에 파고까지 높아지면서 그녀도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게 되었다.
선창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P-4구역은 바다 속을 스캔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쪽 바다에 대해 사전 자료가 없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나는 선장의 말이 생각나 P-4구역의 바다 속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음날은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천둥과 함께 제법 많은 비가 오전부터 쏟아졌다. 별수 없이 비가 그치기를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방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빈둥거리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옆방에서 어제 해안을 돌면서 스캔한 데이터를 가지고 조사구역내 쓰레기 산출량을 계산하고 표본조사를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짜느라 정신이 없었다. 모텔 앞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 그녀의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 해결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소주를 시켜도 되냐고 물었다. 반찬으로 나온 우럭매운탕과 회가 술맛을 돋우고 있었다. 그녀는 ‘오후에도 비가 그칠 것 같진 않으니까……’ 라고 독백하듯이 내뱉고는 70킬로그램은 나갈 것 같은 덩치 큰 주인아주머니에게 소주 한 병과 잔 두 개를 달라고 소리쳤다.
어느덧 그녀와 나는 두 병째 소주를 나누어 마셨다. 빗줄기는 오전보다 가늘어졌지만 여전히 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오후 4시를 넘어서면서부터 마량항 주변의 모든 것이 회색 톤으로 변해갔다. 그녀는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짓눌러 끄자마자 다시 새 담배 한 개비를 입으로 가져갔다. 내가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는 것 아니냐고 걱정스럽게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피식거리며 말했다.
“습관이에요.”
그리고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휴’ 하고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얼마 전까지 본사에 있었다고 들었어요. 현장엔 자원해서 내려왔다고……”
“이 대리가 그렇게 말했어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대답하는 대신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본사로 전근 명령이 떨어졌을 때에도 마량항 사무실에 남아 있기를 희망했다고 들었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고 앞뒤가 꽉 막힌 공무원들과 거친 뱃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라 젊은 사내들도 힘들어하는 현장 일이었다. 선배의 말로는 회사의 사장과도 대학 선후배 사이라고 하는데 그 정도 연줄이나 일하는 솜씨로 보면 수원에서 서류나 작성하면서 편안하게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 때문이에요.”
그녀는 남의 일인 양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곤 소주를 마시고 빈 잔에 술을 따랐다. 다음 주에 여름휴가를 신청했다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아이와 일본에 가기로 약속했다는 말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어두운 표정에서 나는 뭔가 다른 사연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저마다 상처와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게 인생이라는 걸 언제부턴가 깨닫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세상, 사람들, 그리고 갈대처럼 휘둘리는 나약한 우리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씁쓸한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초고추장에 듬성하게 썬 회를 찍어 입안으로 가져갔다. 달짝지근한 초고추장의 맛과 함께 쫄깃한 우럭의 육질이 씹혔다. 그녀는 다시 식당 밖의 항구를 서글픈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발이 묶인 배들이 선창을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비옷을 입은 몇몇 사람들이 선창의 한쪽 건물 안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P-4구역 말입니다.”
화제를 돌리며 내가 말했다. 그녀는 깊은 상념에라도 빠져 있었는지 둥그런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선장의 말처럼 굳이 그곳까지 조사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왜 조사구역에 P-4가 포함되어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서울서 양식장 한다고 내려왔다던 사람이 앙심을 품고 손을 썼는지도 모르지만.”
“조사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잖아요?”
“사람 손만 가도 부정을 타는 곳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곳에 소나를 쏘고 다이버가 들어가 촬영을 하고, 또 표본조사를 하려면 칼코리로 바다 속을 헤집고 다니며 쓰레기를 수집해야 하는데……”
나는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P-4구역을 경외시하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모르겠어요?”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긴 있더군요.”
“이야기라뇨? 누구한테 들었는데요?”
“군청의 계장에게서요.”
그녀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있잖아요.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에……”
“이야기가 아니라 전설이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그럼 제 말이 틀린 것도 아니구…… 전설의 고향요.”
“맞아요. 그런 셈이군요.”
그녀가 다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람을 타고 빗줄기가 식당 창문을 세차게 두들겨댔다. 나는 두터운 먹구름을 올려다보며 ‘내일은 개일까요?’ 라고 물었다. 그녀는 ‘글쎄요.’ 하고는 담배를 피우고 조용히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날 밤에도 나는 빛기둥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는 꿈을 꾸었다. 이틀이나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진 않았지만 이번엔 뭔가 좀 달라진 것이 있었다. 빛기둥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낮에 봤던 상괭이였기 때문이다. 녀석은 호기심 어린 검은색 눈동자를 굴리며 유연하게 몸을 움직였다. 인터넷 검색창에 뜬 상괭이의 모습 - 녀석은 돌고래보다도 작고 귀여웠다 - 그대로 매우 활기차고 순수한 표정이었다. 낮에 봤던 녀석의 눈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상괭이가 지나간 자리는 야광충으로 인해 반짝거렸는데 마치 바다 속에 금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왠지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돼지꿈이나 용꿈을 꿨을 때 느꼈던 기분과 비슷했다. 기분만큼이나 모텔 밖 마량항은 청명한 아침햇살로 가득했다.
轉
빈둥거리며 여유를 부렸던 나와는 달리 그녀는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우 바쁘게 지낸 것 같았다. 아침 식사를 할 때쯤 완도의 현장 사무실에 근무하는 조 대리라는 사람이 7,8인용 고무보트를 갤로퍼 밴에 싣고 모텔에 도착했다. 15마력짜리 수중모터를 단 보트는 소나를 싣기엔 작았지만 스킨스쿠버 장비와 나를 태우기에는 충분했다. 그녀는 어제 하루 동안 P-4를 제외한 조사구역내의 쓰레기 산출량과 표본조사에 필요한 배를 섭외하는 문제 외에도 오늘 계획을 미리 세우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녀는 조 대리와 함께 모텔 앞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면서 나를 그에게 소개시켰다.
“이번에 제 일을 도와주기 위해 오신 다이버예요. 이 대리가 추천한 사람이니까 실력은 확실할 겁니다.”
조 대리라는 사람은 미소를 머금은 채 내게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수원서 온 조상일이라고 합니다.”
그는 첫인상부터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2년 전까진 다이버 생활을 했다지만 SSU나 UDT출신 - 다이버 중에는 해군특공대 출신이 많았다. - 처럼 보이진 않았다.
“과장님이 그러시는데 소나를 띄우지 못했다면서요. 많이 힘들겠습니다.”
나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배도 사람도 구할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P-4구역은 성철씨가 촬영한 비디오를 보고 쓰레기 산출량을 계산할 거예요. 거긴 아마 표본조사도 어려울 것 같으니까.”
그녀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조 대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군요.’ 하고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여긴 유달리 조류가 센 곳이라 물때작업을 해야 할 건데요. 저도 두어 번 이쪽 바다에 들어간 적이 있어 아는데 바닥이 뻘이라 시야도 좁고 또 닻줄을 잡고 내려 가야할 만큼 물살이 세서 작업하기가 쉽진 않을 겁니다.”
“그렇잖아도 소나 작업을 하면서 성철씨가 그런 이야길 하더군요. 물살이 거칠다구요. 6시간 단위로 밀물과 썰물이 바뀌니까 그 사이 정조시간대에 작업하는 게 좋겠다고……”
“이 친구 생각보다 바다에 대해 잘 알고 있군요.”
조 대리가 내 어깨를 ‘툭’ 하고 치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줄곧 탁상행정이란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작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민들 모두가 반대하는 일인데……”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식당의 주인아주머니가 모닝커피를 타서 테이블 앞으로 다가왔다.
“해경 사무실엔 미리 말해두었으니까…… 그럼 30분 뒤에 출발하는 것으로 하죠. 장비점검은 끝났겠죠?”
나는 대답대신 그녀에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전날 내린 비 때문인지 모든 것이 깨끗하고 선명했다. 조사구역을 둘러싼 섬들은 저마다 특색 있는 모양새여서 거북 섬이나 코끼리 섬 같은 특별한 지명을 가지고 있었다. 석회암 덩어리처럼 생긴 이름 없는 작은 돌섬 위에는 갈매기들이 질러놓은 배설물로 하얗게 변해 있었다. 투명한 코발트색 바다처럼 하늘 또한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옅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바람 또한 잦아들어서 호수처럼 잔잔하게 물결이 일었다. 조 대리가 가지고 온 고무보트는 생각보다 안정감이 있었다. 그는 조사구역 내에 있는 바다를 큰 원을 그리며 선회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핸드GPS를 이용해 조사구역의 경계선을 측정했다.
“여기서 부터가 P-4구역이에요.”
그녀가 핸드GPS의 모니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배를 타기 전에 이미 슈트로 갈아입고 그 위에 스노클을 걸쳤다. 작업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릴 것 같아 산소통은 렁 두 개를 붙인 더블렁으로 준비를 하고 호흡조절기, 잔압계같은 게이지들도 따로 점검해 두었다. 수중카메라에 새 배터리를 끼우고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우징 잠금장치를 한 번 더 손으로 확인했다. 조 대리가 모터의 속도를 줄이자 고무보트는 털털거리며 느리게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수경에 침을 뱉어 김이 서리지 않도록 준비했다. 렁의 밸브를 열어 산소량을 조절하면서
“주민들 눈도 있으니까, P-4구역 안에는 될 수 있으면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어요.”
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 대리를 바라보았다. 그도 알겠다는 듯 눈을 찡긋거리며 다시 배의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물살을 헤치며 보트는 P-4구역을 벗어나 외곽을 선회했다. 2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미역 조업을 하고 있던 50대 초반의 마을 주민이 FRP선을 몰고 와 ‘모르는 분들인디…… 워디서 왔어라?’ 하고 인상을 쓰면서 소리쳤다. 과장이 선장의 이름을 대면서 바다정화사업의 설계를 맡은 업체에서 나왔다고 응답했다. 선장의 이름이 약발이 있었는지 남자는 ‘아, 거시기 무슨 해양기술인가 하는데서 왔다는?’ 하고는 온순하게 변해선 ‘저그 쪽 바다는 조사하지 않는다고 안했어라?’ 라고 다시 물어왔다.
“네. 거긴 조사하지 않을 겁니다. GPS를 잘못 측정해서 착각을 했어요. 우린 저기 양식장 주변 바다를 둘러볼 생각이에요.”
그녀는 P-4구역과 반대편 바다를 가리키며 능청스런 거짓말을 내뱉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소리쳤다.
“다행히 날씨가 좋응껭 작업하기가 수월하것소. 그럼 열심히 좀 부탁드리요이.”
남자는 손을 들어 인사치레를 하고는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모터에 달린 틸러핸들로 보트의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고 있던 조 대리가 ‘마을 사람 모두가 저렇습니까? 저쪽 바다에 무슨 사연이 있길래……’ 하고는 신기한 듯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우린 우리 일이나 열심히 하면 되니까.”
하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수경을 끼고 나서 호흡조절기를 입에 물고 길게 산소를 들이켰다가 다시 호흡조절기를 뽑았다. P-4구역이 위치한 위도가 북동쪽이었기 때문에 나침반이 가리키는 바늘의 위치도 미리 확인해 두었다. 밀물과 썰물이 바뀌는 정조시간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현재 시각을 확인하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전 여기서부터 잠수해 들어가겠습니다. 일단 1시간 30분정도 작업하다 나오는 것으로 하죠. 수중촬영은 60분이 최대니까.”
“좋아요. 우린 이곳에서 기다릴게요.”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지켜 세우며 다시 호흡조절기를 입에 물었다. 보트 난간에 등을 대고 앉아 뒤로 입수를 했다. 새우등처럼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가 무게 중심을 잡고 다시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조 대리가 수중 카메라를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두 사람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뒤 바다 속으로 힘차게 잠수를 시작했다.
토말 근처의 바다는 정조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조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수심 5미터 이상 들어가자 라이트를 켜야만 했다. 나는 손목에 달린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고 오리발을 힘차게 저었다. 조 대리의 말처럼 이곳 바닥은 개흙으로 되어 있었다. 폐사한 홍합들이 검은 뻘 아래에 쌓여있었다. 손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시커먼 진흙이 퍼져나갔다. 폐타이어와 버려진 로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안개처럼 뿌연 바닷물 때문에 시야는 랜턴을 켜고도 50센티미터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20분 정도 물의 흐름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자 바위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의 뿌연 이질감도 좀 옅어진 것 같았다. 나는 느낌으로 P-4구역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수중카메라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LCD화면을 바라보면서 촬영준비를 끝냈다.
바위산들을 지나 수심 10미터 정도로 내려가자 고운 모래 바닥이 드러났다. 주민들의 말처럼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풍경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옅은 수심에서는 김이 자라고 있었고 바위표면에 단단히 붙어있는 따개비는 먹잇감을 쫓아 촉수를 드러냈다. 밀감처럼 생긴 귤색군소붙이가 천천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바위 색깔 그대로 변장을 하고 있던 손바닥만 한 문어가 먹물을 뿜어대며 쏜살같이 사라졌다. 게르치 몇 마리가 몸을 좌우로 흔들어대면서 모래 바닥을 헤치며 지나가기도 했다. 나는 수중촬영 전문가처럼 장면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의 방향을 45도 정도로 기울이면서 촬영에 열중했다.
독도 근처의 바다에 들어갔던 선배는 왜 우리가 사람이 살 수 없는 척박한 바위섬 몇 개를 지켜야만 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독도 아래 바다를 보게 된다면 모두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될 거라고 선배는 말했다.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괴사 직전까지 간 연근해 바다의 뼈아픈 현실도 깨닫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처음 10분간은 숨을 쉴 수가 없을 만큼 가슴이 벅차올랐지. 너무나 황홀한 풍경이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손길이 닿기 시작하면 이곳도 곧 파괴될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하는 거야. 이해할 수 있겠니? 우린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근원이 되는 소중한 바다를 - 선배는 바다를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죽여가고 있었던 거니까. 인류의 미래가 바다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처럼 말야.”
선배의 말처럼 바다 속에도 육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살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협곡과 감탄을 자아내는 기암석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꽃밭과 동산과 그곳에 뛰어노는 각양각색의 바다 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잠수를 시작한 지 대략 40분쯤 지났을 무렵부터 나는 선배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마치 디즈니의 만화영화에 나오는 바다 속 삽화를 닮아있었다. 아니 삽화가 이곳 바다를 닮았을 것이다. 시야도 확연히 넓어졌다. 1년에 몇 번밖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청물이 지나가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카메라 렌즈의 각도를 조절하면서 될 수 있으면 많은 것들을 담아가려고 노력했다.
먼저 나를 반긴 건 짙은 갈색의 감태와 대황이었다. 갈조류에 속하는 해초들이 2미터 가까이 자라 하늘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밀림의 정글 속에 와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바다 역시, 환해져서 옅은 비취색을 띠고 있었다. 나는 수중카메라에 달린 67밀리 수중와이드렌즈를 이용해 줌인과 줌아웃으로 번갈아 가며 촬영을 했다. 해초 사이에는 은색의 노래미 떼가 몰려 다녔다. 붉은색의 부채뿔산호 군락을 제주도가 아닌 내륙의 바다 속에서 보긴 처음이었다. 한마디로 가슴이 뭉클해질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왜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보호하려고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분지처럼 생긴 지형을 지나자 선장의 말처럼 긴 협곡이 나타났다. 협곡 아래는 태양빛이 미치지 않은 탓으로 아득한 암흑이었다. 그리고 협곡 아래 수심 20미터 지점을 지나칠 때 쯤 갑작스럽게 강한 해류와 마주쳤다. 몸이 기우뚱거릴 만큼 해류의 유속은 빨랐다. 지금이 정조시간대라는 걸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나는 해류가 흐르는 방향으로 몸을 맡긴 채 카메라의 백라이트를 비춰 보았다. 5분 정도 유영을 했을 때 지름이 30미터는 넘을 것 같은 커다란 동굴을 발견했다. 그곳은 오래 전 화산폭발로 인해 만들어진 것처럼 주변 바위는 현무암처럼 검고 윤기가 흘렀다. 나는 산소량을 점검하면서 조심스럽게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 입구 근처 바위틈에서 혹돔 한 마리를 발견했다. 녀석은 눈깔을 좌우로 돌려가면서 아가미를 벌렁거렸다. 라이트를 비추자 꼬리지느러미를 흔들어 대며 바위틈으로 잽싸게 몸을 감추었다. 동굴은 들어갈수록 오히려 지름이 커지는 것 같았다. 10미터 정도 들어갔을 때 나는 꿈속에서처럼 야광충에 둘러싸여 있었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슈트와 장갑표면에 부딪치는 야광충들이 빛을 뿜어댔다. 어디선가 과장을 닮은 소녀조각상 기둥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나는 묘한 기분에 이끌려 더 깊숙이 몸을 움직였다.
그러다 문득, 정적 속에 갇혀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속도 차츰 느려져서 몸의 균형을 잡기가 쉬워졌다. 갑자기 암흑과 고요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았다. 그리고 방향감각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동굴의 입구가 어디였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해류의 흐름이 사라지면서 어디가 안쪽이고 어디가 바깥쪽인지 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다이버 수칙 중 하나가 파트너 없이 바다 속 동굴 같은 곳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거였다. 잠깐 동안이라도 집중력을 잃어버리면 영원히 바다 속 미아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공포심만이 나의 가슴을 조여오고 있었다. 산소게이지의 형광 바늘이 바닥을 향해 치닫는 환영에 시달리면서 호흡이 가팔라졌다. 이런 식으로 호흡을 하게 되면 열여섯 배 가까이 산소 소비량이 증가할 수도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죽음과 맞닿은 기분일까?’ 순수한 암흑과 고요 속에 갇혀버린 것 같은…… 그리고 두려움 이상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동굴 입구를 찾기 위해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검게만 보이는 수중 아래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가냘프지만 힘 있는 바다생물의 울음소리 같았다. 나는 순간 수중카메라의 백라이트를 아래로 비추었다. 저 아래 바닥에 뭔가가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나는 세이렌에게라도 홀린 것처럼 오리발을 있는 힘껏 움직여 아래로아래로 내려갔다. 이제껏 나는 심해잠수에 필요한 장비 없이 수심 30미터 이상 들어간 경험이 없었다. 장비 없이도 수심50미터 이상 내려간 적이 있는 선배는 그곳에서 20분 이상을 견디는 건 쉽지 않다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
‘숨 쉬는 게 힘들어지지. 수압 때문에 렁 속의 산소와 질소의 비율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거든. 그때부터 질소마취라는 게 시작되는 거야. 뽕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지고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지.’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수압계를 바라보면서 이미 선배가 말한 수심 50미터를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빛 사이로 바닥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백라이트가 미치는 범위 안에서 바라보이는 바닥은 무수한 배의 파편과 뼈들로 가득했다. 프랑스나 이태리의 고대 지하무덤 속을 유영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저 무수한 뼈들의 주인들이 상괭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호흡이 차츰 가팔라지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배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도 이 동굴로 흐르는 해류 때문인 것만 같았다. 산소게이지가 빠르게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수심에 따라 산소의 호흡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수중카메라의 플레이 버튼을 계속해서 눌러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손에 들고 있던 랜턴의 불빛이 먼저 꺼져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이 수중카메라에 달린 백라이트 불빛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이곳에선 충전된 배터리의 수명이 짧아지는 것 같았다. 이젠, 정말이지 완전한 어둠과 고요 속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앞으로 몇 분 뒤면 렁 속의 산소도 완전히 바닥날 게 분명했다. 이상한 건 이때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훨씬 이전부터 죽음이란 존재는 익숙하게 내 옆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호흡조절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산소의 양이 부족해지면서 두통이 생기기 시작했다.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자꾸만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감각도 무디어지는지 더 이상 오리발을 휘저을 수도 없었다.
“삐 - 이.”
짧지만 날카로운 소리가 또 다시 들려왔다. 처음엔 환청인 줄 알았는데 연이어 그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아늑해진 정신 때문에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예전에 수집했던 바다 생물들의 울음소리 중 하나일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무언가가 나의 등을 치며 지나갔다. 나는 감았던 눈을 힘겹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번엔 발밑에서부터 둔탁한 감각이 전해졌다. 나의 몸이 공처럼 튕겨져 위로 올라갔다. 야광충이 반짝이면서 금가루를 뿌려대고 있었다. 그때 문득 무언가가 나를 동굴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렁 속의 산소가 바닥이 났는지 희미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꿈속이 아닌 현실에서 어렴풋이 상괭이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 소나 작업을 할 때 잠시 배 옆을 스쳐지나갔던 녀석인지도 몰랐다. 녀석은 나의 등과 배와 팔에 일부러 몸을 부딪치기도 하고 자신의 머리와 몸을 이용하기도 하면서 나를 동굴 밖으로 밀쳐냈다. 빠른 속도로 나를 앞질러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도 했다. 힘없이 처진 나의 몸은 점점 더 위로 올라갔다. 어느새 주변은 짙은 암흑에서 비취색 빛깔로 바뀌어 있었다. 눈이 부셔 제대로 앞을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수면 가까이 올라왔을 때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있는 힘껏 밖으로 잡아끌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블라인드 사이로 투명한 빛이 스며들었다. 비린 바다냄새에 소독약 냄새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전화가 왔는지 누군가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욕탕 안에서처럼 쿵쿵거리며 고막을 때렸지만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얼굴을 돌렸다. 독한 감기약을 먹은 것처럼 나른해진 몸은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힘들게 눈을 뜨자 서리가 낀 것처럼 흐릿하던 그녀의 모습이 점차 선명해졌다. 과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회사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몸 상태를 보고하던 그녀의 시선이 침대에 누워있는 나와 마주쳤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환해진 얼굴로 다가와서는 링거가 꽂혀있는 나의 손등에 자신의 왼손을 살며시 포개면서 ‘괜찮아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에서 나는 상큼한 오렌지 향에 기분이 좋아져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폴더에 대고 ‘지금 막 깨어났어요. 걱정하실 필욘 없을 것 같아요.’ 라고 사장을 안심시켰다.
“어떻게 된 거죠?”
내가 힘겹게 입을 열었을 때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정말이지, 다행이에요.’ 라고 응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침대 옆에 있는 벨을 눌러 당직간호사를 불렀다. 20대 후반의 젊은 간호사가 들어와 나의 상태를 살핀 뒤 ‘담당 샘 모시고 올게요.’ 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동안 나는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어떻게 살아있을까 란 생각을 했다. 동굴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뒤의 마지막 몇 분간 -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 의 기억들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병실로 되돌아온 간호사가 체온과 혈압을 체크하는 동안 금테 안경을 두른 담당의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퇴원하는 길에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절거렸다. 핸들을 잡은 그녀가 조수석에 앉아있는 내 옆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하고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라디오의 볼륨을 줄였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전 어떻게 구조되었습니까?’ 하고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잠수를 시작한지 1시간 40분이 지났는데도 성철씨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아 걱정을 했어요. 처음엔 조 대리가 보트를 끌고 P-4구역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성철씰 찾았어요. 그 뒤엔 사고가 생긴 것 같다고 해서 해경에 신고를 하고 조 대린 급히 렁을 메고 잠수 준비를 했죠.”
그때 P-4구역 가장 자리에서 갑자기 내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녀와 조 대리가 다가갔을 때 선장이 말했던 상괭이 두세 마리가 주위를 돌면서 물속에 가라앉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믿을 순 없지만 그들이 성철씰 살린 것 같았어요.”
“상괭이들이 날 살렸다구요?”
나는 그녀의 말을 되씹으면서 동굴 속에서의 몇몇 장면들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동굴 밖으로 나를 끌어내던 어떠한 몸짓과 소리, 그리고 영롱한 눈빛들을.
“카메라는요?”
그러다 문득 수중카메라 생각이 났다. 동굴 속에서 백라이트까지 꺼져버린 수중카메라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병원의 지하주차장을 나온 그녀가 스타렉스 밴의 속력을 높이면서 응답했다.
“성철씬 보트 위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어요. 지금쯤 아마 조 대리가 현장사무실에서 촬영한 테이프를 확인하고 있을 거예요.”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다행이에요. 전 또 동굴 속에서 잃어버린 줄 알고……”
“동굴요?”
그녀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나는 대답대신 머리를 긁적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량항의 현장사무실로 가는 동안 P-4구역에서의 단편적인 기억들을 그녀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마량항 현장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조 대리는 이미 완도로 떠난 뒤였다. 그는 떠나기 전에 과장의 책상 위에 메모를 남겼는데 완도 사무실에 급한 일이 생겨서 인사도 못 드리고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현장사무실에 딸린 간이 부엌에서 커피를 타는 동안 그녀는 카메라의 필름을 비디오에 넣고 되감기를 했다. 플레이버튼을 누르자 27인치 LCD텔레비전화면이 밝아지면서 비취색 바다가 나타났다. 그리고 곧 은빛의 노래미 떼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은백색의 몸에 검은 줄무늬가 나있는 노래미는 비취색 바다와 잘 어울렸다. 감태와 대황이 육지의 나무들처럼 바위에 뿌리를 내린 채 위로 솟구쳐 있는 장면에서는 짧은 감탄사를 터뜨리면서 ‘정말 아름다운 곳이군요!’ 하고 그녀는 소리쳤다. 인스턴트커피가 든 머그잔을 들고 그녀 옆자리로 다가간 내가 잔을 내밀면서
“선장과 마을 사람들이 왜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어요.”
라고 말했다. 그녀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장에게 이 테이프를 보여줘야 할 것 같군요. 국가 예산을 낭비할 필욘 없으니까.’ 하고 대답하면서 머그잔을 받았다. 영상이 부채뿔산호 군락으로 바뀌었다. 울긋불긋한 산호와 비취색 바다는 정말이지 서해안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토말 근처에 이런 색깔과 산호 군락을 가진 아름다운 바다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인스턴트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내게 물었다.
“저 영상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카메라를 그렇게 소중히 했던 거군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뭐 어느 정도는요……’ 하고 대꾸를 했다. 그때 텔레비전화면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협곡을 따라 수심 20미터 가까이 내려간 뒤였을 것이다. 잠시 카메라의 플레이버튼을 눌렀는지 하우징에 달린 백라이트가 어둠 속을 밝히면서 동굴 입구의 전경이 나타났다. 지름이 30미터는 될 것 같은 동굴은 화면 속에서도 매우 웅장해보였다. 그리고 다시 화면은 컴컴해졌다. 해류를 따라 동굴 안 깊숙이 들어간 내가 길을 잃고 당황해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가 리모컨을 집어 들어 2배속으로 빠르게 테이프를 돌렸다. 노이즈가 생기는 화면 속에서 다시 카메라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테이프를 정상속도로 되돌려놓자 텔레비전화면엔 수중카메라의 백라이트와 물 사이의 흑백 경계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하얀 불빛 아래에 촬영된 동굴 속 바다에는 플랑크톤이 먼지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동굴에서 길을 잃어버려서 우왕좌왕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카메라에서 손을 떼지 않았군요.”
“동굴 아래에서 무슨 소릴 들었거든요.”
“소리요?”
그녀가 텔레비전화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화면 속의 영상을 가리켰다. 화면에 회색빛의 바닥이 나타나고 있었다. 뻘이 아닌 고운모래바닥이었지만 바닥 사이사이에는 하얀 뼈가 쌓여있었다. 사람이 아닌 고래의 뼈 같았다. 그리고 목조선의 파편들도 보이기 시작했는데 오래전에 침몰한 탓인지 온전히 배의 형태를 갖춘 것은 없었다. 하지만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돛대라든지, 나무못을 대고 박은 나선형의 선체 일부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었다. 파편 근처 바닥에는 모래에 3분의 2쯤 파묻힌 도자기와 금빛을 내는 금속이 듬성듬성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동굴 속 바닥을 촬영한 화면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었다.
“느낌에…… 상괭이들의 무덤 같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저기 배들 사이에 보이는 유물들은요?”
그녀가 머그잔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저런 장면들까지 일부러 촬영하려고 하진 않았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질소에 취해있어서 뭐든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그녀는 ‘질소요?’ 하고는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대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 촬영부분을 리플레이해 살피면서 독백하듯이 내게 말했다.
“우연이든 아니든, 성철씬 뭔가 대단한 걸 발견한 것 같아요. 저기 바닥에 가라앉아있는 배들 말이에요. 어쩌면 선장이 말했던 임진왜란 때 사라졌다던 왜구들의 배인지도 모르겠거든요.”
“도자기와 금괴를 가득 실은……”
내가 농담처럼 대꾸를 하자 그녀는 피식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저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P-4구역을 보호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요?”
“마을 사람들도 알고 있었을 거란 말입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서울서 양식장 하겠다고 내려왔던 사람도 그 때문에 마을에서 쫓겨났는지도 모르구…… 저기…… 홍가네라고 그랬나요? 성철씨처럼 P-4구역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사람요. 거기 가족들을 한번 만나봐야 할 것 같아요.”
“왜요?”
그녀는 화면의 한 컷을 정지시키면서 말했다. 정지된 화면에는 모래바닥 사이에 묻혀있는 하얀색 도자기와 금빛이 나는 금속 덩어리의 일부분이 어렴풋이 드러나 있었다.
“그냥요. 그래야만 할 것 같았어요.”
그녀는 정지화면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라디오에선 위니라는 이름을 가진 중형 태풍이 시속 20킬로미터로 북상중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대만 남부지방을 강타할 것으로 예상했던 태풍이 대만 해협을 살짝 비켜나고 있다고도 했다. 이 상태로 태풍이 진로를 유지한다면 제주도를 우회해 우리나라 서남쪽을 강타할 가능성이 많다는 우려 섞인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선장에게 어렵게 알아낸 홍가네는 선창에서 가까운 어촌에 살고 있었다. 10년 전에 죽었다는 그에게는 환갑을 지난 아내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40대 초반의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어부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성실하고 수완이 좋아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거기다 젊은 나이에 이장 일을 도맡아 처리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듣는 모양이었다. 선장이 알려준 전화번호로 미리 약속을 하고 마을로 들어섰다. 스타렉스 밴을 큰길가에 주차시키고 선장이 그려준 약도를 따라 마을 골목으로 향했다. 골목을 따라 어른 키 정도의 돌담들이 집집마다 둘러싸고 있어 나름 어촌풍경의 정취를 느낄 수도 있었다.
경사진 골목을 15분쯤 오르자 두 갈레 길이 나왔다. 그 중에 오른쪽 골목의 첫 번째 파란 대문이 이장이 사는 집이었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하얀 진돗개 한 마리가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개 짖는 소리 때문인지 젊은 이장이 현관문을 열고 급히 밖으로 뛰쳐나왔다. 나이키 운동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이장은 진돗개를 개집으로 몰아넣은 뒤 다가와 과장과 내게 인사를 건넸다.
“기다리고 있었어라. 싸게 안으로 들어오시오. 어매가 시원한 콩국술 말아 났응께.”
거실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와 나는 이장이 매우 활발하고 재밌는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버지에 대해 말해주었는데 요약하자면 배가 사고로 전복되었을 때 상괭이가 다가와 구해주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도 제 나이 땐 여그서 이장질을 하고 살았응께요. 아침 먹고는 늘 미역 양식장을 둘러보곤 하셨는데 그날도 그랬지라.”
“그러다 사고를 당하신 거군요.”
“말하자면 좀 복잡하요.”
이장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상괭이가 자신의 덩치보다 큰 아버지를 선창에서 가까운 북쪽 방파제 앞에 내려놓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무용담 비슷하게 늘어놓았을 뿐이다. 어제 그런 비슷한 일을 겪지 않았다면 아마 그녀와 나는 젊은 이장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장에게 ‘왜 그들이 아버님을 구해줬을까요?’ 하고 물었다. 이장은 ‘글쎄요……’ 하고는 길게 뜸을 들이다가 덧붙이기를
“다 조상님들 덕분 아니것소.”
하고 대답했다.
“조상님들요?”
그녀가 반문을 하자 이장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께 위대한 유산 말이라.”
“P-4구역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거북 섬 앞바다요.”
이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답했다.
“잘 알고 계시는구먼요. 우린 여지껏 분수에 맞게 바달 섬기며 살았어라. 아무리 인간이 잘난 척, 똑똑한 척해도 자연 앞에선 한낮 미물일 뿐이니께. 바단 그런 곳이지라. 바다를 통해서 먹고사는 우린데 어떻게 그곳을 거스르며 살 수 있것소. 욕심도 크면 죄가 되는 거인디……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고 사는 게 맞지 않것소.”
“사실 이 분도 어제 상괭이가 아니었으면 물귀신이 될 뻔했어요.”
“뭣시라. 참말이여?”
이장이 한쪽 무릎을 치켜세우며 내게 다가왔다. 그는 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지만 전 기억하지 못해요. 반쯤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여서……’ 라고 대꾸했다. 그러나 젊은 이장은 나의 어깨를 살며시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진 그때부터 많이 변했지라. 바다를 공경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달고 다녔응께.”
“왜 하필이면 거북 섬 앞바다가 그런 곳이 되었던 거죠.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아직 모르고 있었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괭이들 말이지라. 우린 모두 상괭이를 바닷사람으로 부르고 있응께…… 그들이 늙거나 병이 들면 모두 그곳 바다로 가지 않것소. 이유는 모르지만서도 거기 거북 섬 앞바다에서 마지막 요양을 하다 죽으니께.”
나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동굴 속에서 봤던 수많은 고래 뼈가 왜 하필이면 그곳에서 발견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다사람이라고 불리는 상괭이들은 마지막 남은 인생을 P-4구역 안에서 지내다 때가 되면 해류를 타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와 그들의 조상이 묻혀있는 그곳에서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개발이란 명목으로, 아니면 생업의 수단으로 바다를 수탈해가는 사람들의 손길이 결코 닿아선 안 되는 최소한의 거룩한 성지.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그들의 마지막 안식처를 지키기 위해 모두들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이 그 바달 신성시 여기는 거군요. 상괭이들도 그걸 알고 있단 거구요.”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라…… 덤으로 옛날이야길 하나 하자면 왜정시대 때 말이여. 쪽발이들이 고래 고길 좋아 않흐요. 그래서 상괭이를 남획한 적이 있었지라. 그때 바다가 노해서 큰 재난이 닥친 적이 있응께. 모두 다 휩쓸고 가 버렸지라.”
“옛날부터 내려온다는?”
그녀의 말에 젊은 이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임진왜란 때도 마을 사람들을 구했다 안허요.’ 라고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스타렉스 밴이 주차된 큰길로 걸어가는 과장의 뒷모습은 어떤 생각에 골몰해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럴 경우 어김없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오래된 습관 같았는데 나는 그런 그녀의 행동이 어색하거나 싫진 않았다. 야트막한 골목에서 바라다보는 항구와 바다는 꽤 운치가 있어 보였다. 거기다 주변의 낮은 돌담과 돌담 사이의 틈새를 비집고 자란 덩굴의 푸른 잎사귀가 정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청바지 호주머니에 양손을 집은 넣은 채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장 집 마당에서 개 짖는 소리에 놀란 그녀가 내 옆에 바짝 다가섰을 때 그녀의 가슴 부위가 팔등을 스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에서 나는 샴푸냄새와 함께 그때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는데, 선배의 말처럼 3년을 오로지 좁고 어두운 고시촌 쪽방에서 법전만을 파고든 탓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한 발짝 앞서 가던 그녀의 뒷모습이 그래서 더 예뻐 보였는지도 모른다.
“성철씬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갑자기 걸음을 멈춘 그녀가 뒤돌아서서 내게 물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나는 얼굴을 붉히며 엉거주춤 되물었다.
“촬영한 필름요?”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굴 속 필름은 없애버리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성철씨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군요.”
나는 그녀의 미소에 또다시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차피 거긴 계장에게 말해서 작업을 하지 않을 생각이잖아요. 그리고 이장의 말처럼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할 것도 같고. 바다와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상괭이들에게요.”
“성철씨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니까.”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되나요?’ 하고 반문을 했다.
표본조사에 필요한 배를 구하는 일은 소나 작업을 할 때와는 전혀 달랐다. 선장이 나서서 사람을 소개시켜준 까닭이다. 선장은 그녀에게 무슨 이야길 들었는지 - 아니면 이장에게서 어떤 소릴 들었는지도 모른다. - 전과는 달리 매우 협조적이었다. 가끔 내게도 ‘시방 홍가네 담으로 목숨이 질긴 양반이구먼.’ 하고 농담을 건네기도 하면서 은근히 친근감을 나타냈다. 그녀가 선장과 함께 표본조사에 필요한 배를 구하러 선주를 만나고 가격을 흥정하고 일정을 잡는 동안 나는 현장사무실에서 촬영한 필름을 편집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손가락 길이만한 6미리테이프에서 동굴 속 화면이 들어있는 마지막 15분을 뺀 동영상을 CD에 복사해 포장하는 일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무렵엔 수원 본사에 근무하는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걱정을 끼치게 해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아직 청소구역의 수중촬영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선배는 내 컨디션을 체크하면서 ‘필요하다면 너와 교대할 사람을 보내줄 수도 있어.’ 라고 말했다. 나는 당연히 그럴 필요가 없다고 응답했다. 이번 일은 내가 끝까지 마무리를 하고 싶다고. 선배는 습관처럼 ‘오케이’ 라는 말을 건네면서
“하지만 너무 무리하진 마라. 네 아버지에게 멱살 잡히고 싶진 않으니까.”
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과장에게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필름편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묻고 나서 내일 오후에 표본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배와 사람도 구해놓았다고. 그렇다면 수중촬영은 늦어도 점심시간이 지나기 전에 끝을 내야만 했다. 다행히 촬영에 필요한 배는 선장이 한 번 더 수고를 해주기로 했다고 말하면서 그녀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 같죠?’ 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들이 정말 동굴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아니요.’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뭐가 더 소중한지 아는 사람들 같았어요.”
“과장님은요? 남은 필름을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저도 마을 사람들과 같은 생각이에요. 위대한 유산은 보호받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욕심이 과하면 그것도 죄가 된다는 젊은 이장의 말이 떠올랐다. 나 또한 그녀나 마을 사람들처럼 동굴 속에 난파된 배들이 어느 시대, 누구의 것이었으며 그 안에 어떤 유물들이 있는지 - 설사 그것이 값나가는 도자기나 금괴라 해도 - 관심이 없었다. 다만 왜 내가 동굴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는지, 왜 그들이 날 살려주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질 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느꼈던 절대적인 고요와 어둠이 공포심이나 두려움이 아닌 편안함으로 다가왔는지에 대해서도.
나는 느긋하게 캔맥주를 마시면서 6미리원본테이프를 불태웠다. 이미 렁과 수중카메라 배터리는 충전을 해 두었고 스킨스쿠버 장비도 점검을 끝낸 상태였다. 편집한 CD는 플라스틱케이스에 넣어 그녀가 준비한 서류들과 함께 판지파일 안에 끼워두었다. 거기다 내일 있을 수중촬영과 표본조사만 끝내면 이곳 일도 마무리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홀가분해져 있었다. 아직 항구의 정취를 잃지 않은 마량항의 밤풍경도 마음에 들었다. 테이프가 타면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무실 베란다 앞 마당에 앉아 MP3의 볼륨을 높였다. 이어폰에선 이루마의 피아노곡이 흘러나왔다. 그때 도로가에서 헤드라이트불빛이 일렁거렸다. 스타렉스 밴이 들어와 마당 한 구석에 주차를 했다. 운전석에서 내린 그녀가 터벅거리며 다가와 ‘맥주 남은 것 없어요?’ 하고 피곤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사무실 안에서 캔맥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녀에게 캔을 건네주면서 ‘수고 많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이게 제 일인데요. 뭐.’ 하고는 맥주를 입으로 가져가 벌컥거리며 마셨다.
그녀도 하루 일과가 끝나면 이곳에 앉아 맥주를 마시곤 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마량항의 밤풍경을 좋아한다는 말과 함께. 나는 수긍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내일 일이 끝나면 다음 주부턴 휴가군요.”
그녀는 맥주를 들이키면서 ‘그래요.’ 하고 말했다.
“성철씨도 집으로 돌아가겠군요.”
나는 대답대신 마량항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대리한테 들었어요. 고시공부를 하고 있다고……”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는요. 하지만 공부도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아르바이트도 하게 된 거구요…… 여길 나가면 진짜 제 길을 찾아볼 생각이에요.”
“염두에 둔 일이라도 있나요?”
“아직요. 하지만…… 동굴 속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말예요. 그때 전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죽음이라는 건 주사를 맞을 때처럼 아프지도 않고 손을 잡아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요……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실, 고시공부를 시작한 것도 제 자신과 부딪쳐 싸울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거든요. 단지 고시촌 쪽방으로 도망친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그런 실수를 반복하고 싶진 않아요.”
“저와 비슷하군요.”
“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저도 이곳으로 도망쳐 온 것뿐이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한동안 마량항의 소박한 밤풍경을 쓸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 역시 갑자기 침울해져서 조용히 맥주만 들이켰다. 차량을 실은 바지선 한척이 항구에 정박하면서 길게 뱃고동을 울리고 있었다.
“말아톤이란 영화 있잖아요. 거기 조승우가 주인공으로 나오죠. 하지만 말예요. 현실은 영화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게 아니거든요. 자폐증이란 건 앓고 있는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참기 힘든 고통을 안겨다주니까.”
“……”
그녀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전 부모로서의 자격이 없는지도 몰라요.’ 라고 덧붙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이혼하면서 아일 시설에 맡겨 버렸으니까요.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럼, 아이와 일본여행을 간다는 건……”
“사실은 죄책감 때문이에요. 그렇게라도 해주지 않으면 제가 힘들어서 못살 것 같았으니까……”
그녀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서 일어나 마당 한 가운데로 걸어갔다. 그리고 빈 캔을 허공을 향해 집어 던졌다. 캔은 곧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시멘트바닥으로 떨어졌다.
“저기 저 캔처럼 아이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이혼한 뒤엔 그 아일 원망하기도 했었죠……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등을 보이고 선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만월이 뜬 밤하늘엔 도시에선 볼 수없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허리에 양손을 가져간 채 그녀는 몇 분을 그런 자세로 가만히 서있었다. 자리로 되돌아온 그녀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태연한 척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오히려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자동차 열쇠를 건네면서 ‘내일은 새벽부터 이동을 해야 하니까 일찍 모텔로 돌아가 쉬세요. 전 서류 정리할 게 남아서 오늘은 여기서 지내야할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애써 그런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동정이라는 건 결코 상대방을 위한 배려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편집한 필름은 CD에 구워서 판지파일 안에 넣어두었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사무적인 목소리로 그녀에게 응답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베란다 밖에 서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냉장고에서 생수를 마시는 모습이, 책상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켜고 판지파일을 펼쳐드는 모습이 마치 슬라이드사진처럼 선명했지만 그만큼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스타렉스 밴으로 걸어가는 대신 사무실 현관으로 들어섰다. 책상의자에 앉아있던 그녀가 뒤돌아서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 키스를 했다. 그녀의 양손이 나의 가슴을 밀치다말고 멈칫거렸다. 꿈속에서처럼 그녀의 입안에선 달콤한 스트로베리향이 나는 것 같았다.
가린이로부터 헤어지자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싸우거나 다툰 적도 없었으며 늘 그렇듯 편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일주일전까지 사랑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던 그녀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즈음 결혼에 대한 생각도 은근히 하고 있었다. 대학시절 내내 그녀와 붙어 다녔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녀 또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평생을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린이는 언제부턴가 나와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던 나에겐 그래서 아마 - 그 후로도 오랫동안 - 실연의 상처가 더 깊고 더 아팠는지도 모른다.
마량항의 수평선에서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붉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어제 마셨던 머그잔에 다시 인스턴트커피를 타고 냉장고 안에 있던 비스킷을 꺼내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일출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비스킷을 먹었다. 그녀도 나도 의식적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피하고 있었다. 대신 오늘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했다. 날씨 이야기나 곧 선장으로부터 연락이 올 거란 어쭙잖은 농담을 나누기도 하면서.
우리는 모두 관계라는 것을 통해서 살아간다. 상괭이란 고래들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바다와 사람이 관계하고 사람과 동물이 관계하고 홍가네 아저씨와 상괭이가, 그리고 나와 상괭이가 관계를 했듯이. 동굴 속에서 느꼈던 평온함은 한동안 내게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던 공간은 어둡고 막막하고 외로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따뜻하고 뭔지 모를 깊이가 있었으며 편안했다. 왜 나는 이제껏 죽음이라는 실체를 그저 두렵게만 여기고 있었을까? 왜 나는 사랑을 하면 또 다시 상처를 받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왜 나는 고시공부를 포기하면 모든 걸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때야 비로소 동굴 속에서 느꼈던 공포 뒤의 평온함이 욕망에 대한 집착을 버렸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내 마음 속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잠시만 숨을 돌리고 주위를 둘러본다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기적적인 것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홍가네 아저씨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와 그의 아들과 선장이, 마을 사람들이 그곳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인지도.
수중촬영과 칼코리를 이용한 표본조사는 순조로웠다. 날씨도 파고도 물때도 모두 좋았기 때문이다. 칼코리로 표본조사에 필요한 쓰레기를 수집해 종류별로 분류하고 샘플을 만들어 촬영하는 것이 그나마 제일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녀와 나는 줄곧 일에만 열중했다. 적어도 내일까지 그녀는 보고서에 파묻혀 살아야할 것만 같았다. 무슨무슨 양식의 서류들과 사진들과 계획서들이 그녀의 커다란 숄더백 안에 가득했다. 나는 오전엔 물속에서 촬영을 하고 오후엔 배 위에서 사진을 찍어대며 그녀의 일을 도왔다. 그러나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그녀와 나는 업무외적인 말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어젯밤 일을 그녀는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두 사람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건 선장이었다. 그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나와 그녀의 미묘한 변화에 대해
“간밤에 무슨 일 있었어라? 두 사람 모양새가 영 거시기 하요.”
라고 농담처럼 내뱉기도 하고 ‘오늘이 마지막이 되는 갑소.’ 하면서 서로들 아쉬워서 그럴 거라고 추측하는 것 같기도 했다.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었을 무렵 시침은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선장은 ‘여기까증와서 전복회도 대접 못하고 보내면 내 가오가 서지 않는단 말이제.’ 라면서 자신과 아내가 운영하고 있는 횟집으로 과장과 나를 초대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일 해남군청에 들어갈 서류작업을 핑계로 정중히 사양을 한 뒤에
“성철씨라도 먹고 오세요. 오늘 촬영한 필름은 제가 편집을 해서 CD로 구우면 되니까.”
라고 말했다. 그녀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나는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나와 단둘이 현장 사무실에 있는 걸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라고 지레짐작을 해버린 탓이다.
해남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괭이 두 마리가 그물에 걸려 죽었다는 소릴 들었다. 포획당한 흔적이 없어 마량항 공판장에서 마리당 30만원에 팔려나갔다는 이야기를 건네는 선장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것소.’ 라고 혼잣말을 하는 그에게 ‘이런 일도 있습니까?’ 라고 내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끔은……’ 하고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날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나는 과음을 했다. 전복회는 생각보다 육질이 단단하고 비린 맛이 났지만 참기름과 어울리는 고소한 전복죽은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자연산 돔을 내오는 선장의 아내는 능청스럽고 구수한 입담을 가지고 있었다. 선장에게서 많은 이야길 들은 탓인지 ‘왜 과장님은 안 오시오. 이 양반이 예쁘다고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해서 보고 싶었는데’ 라고 눈을 흘기며 묻기도 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아니면 싱싱한 횟감 때문인지 나는 평소의 주량보다 많은 술을 마셨다. 선장과 그의 아내가 내뱉는 재밌는 이야기들에 취해 마시고 어젯밤 사무실에서 있었던 그녀와의 일이 떠올라 마셨다. 선장과 상괭이와 P-4구역에 대한 이야길 나누기도 했는데 그는 ‘홍가네도 처음엔 그랬지라. 그리곤 사람이 확 변해선 거북 섬 앞바달 참으로 소중히 여기게 됐응께.’ 라고 농담처럼 내뱉기도 했다. 과장에 대해 수다를 떨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필름이 끊겨버렸다. 두통을 느끼며 눈을 떴을 땐 선장의 아파트 거실이었다.
선장의 아내가 정성껏 끓여준 홍합탕으로 해장을 하고 마량항의 현장사무실로 향했다. 과장은 바다정화사업과 관련된 계획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공무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녀로부터 짐을 챙긴 뒤 현장사무실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핸드폰 문자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나는 속이 메스꺼워서 해남 시가지를 벗어나기 전에 약국에 들러 컨디션을 사서 마시고 선장에게는 피로회복제를 건네주었다.
마량항으로 가는 2차선 도로를 달리면서 이곳도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타너스나무와 은행나무와 벚나무 사이를 차례로 지나쳐갔다. 논에는 연녹색의 벼들이 자라고 있었고 열어놓은 차창으로는 훈훈한 바람이 불어왔다. 선장은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켠 뒤에 ‘오늘이 마지막이지라?’ 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인연이란 게 말이여. 참 거시기하요.”
“저도 선장님이나 이장님을 만나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아요.”
“아니, 상괭이 말이여. 동굴 속에서 자넬 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것소. 참으로 신기한 일이당께.”
“제가 그런 이야기까지 했었습니까?”
머리를 긁적이며 내가 물었다. 선장은 그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랑께 인연 아니것소? 이제껏 여그 살면서도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은 없응께.”
하고는
“아시것소? 젊은 양반, 우리한텐 저그 바다가…… 바다 자체가 보물잉께.”
라고 의미 있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고개 하나를 막 넘어서면서 선장이 말한 소중한 보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연푸른 녹색의 바다가, 그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삶의 터전이 - 어머니의 자궁처럼 - 포근하게 대지를 감싸고 있었다.
結
현장사무실 바닥을 밀대걸레로 닦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책상 위는 걸레질을 했다. 그리고 숙직실에 딸린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와 책상의자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켰다. 과장을 기다리는 동안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메일을 확인하고, 연락이 온 친구들과 고시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몇몇 형들과 동생들에게 밀린 답장을 썼다. 모두들 앞날이 불안하기만 하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주식으로 돈을 잃었고 어느 친구는 구조조정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같은 고시원에 있었던 형은 법원공무원 9급 시험이라도 쳐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 공무원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버지에게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아직 무엇을 할 지 정하진 않았지만 1년 정도 바닷가 주변을 돌면서 천천히 생각해보고 싶다고. 추신에는 아버지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적었다. 적어도 지난 3년 동안 최선을 다해 노력해왔지만 참담한 결과가 말해주듯이 이게 제 실력의 한계인 것 같다는 내용을 포함해서. 수신확인을 하고 나서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날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보단 손도 못 대고 미뤄두었던 일을 마무리 한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해져 있었다.
인터넷 검색창을 돌아다니다 문득 상괭이라는 고래가 떠올랐다. 나는 네이버에 들어가 상괭이란 단어로 검색을 했다. 네이버의 백과사전에는 상괭이에 대해서
‘상괭이(Neophocaena phocaenoides)는 쇠돌고랫과에 속하는 여섯 종의 고래 중 하나이다. 쇠물돼지 혹은 무라치라 부르기도 한다. 몸빛은 회백색이며, 몸길이는 1.5-1.9 미터 정도까지 자란다. 등지느러미가 없는 대신에 높이 약 1 센티미터의 융기가 나있다. 황해에서 비교적 흔히 나타나는 종이다. 바다와 민물에서 모두 목격 가능하다.’
라고 나와 있었다. 뒤이어 나는 어느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상괭이의 동영상을 보면서 ‘저 아기처럼 천진스럽고 순수한 녀석들이 날 살렸을까?’ 라는 생각에 감격하기도 했다.
오후가 되면서 잠잠하던 바다가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바람도 제법 강해져서 열어놓은 사무실 창문을 닫아야만 했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기상정보에는 위니라는 태풍이 오늘 밤 자정 경부터 우리나라 서남해안에 상륙할 예정이라고 나와 있었다. 나는 태풍의 예상 진로를 나타내는 점선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그녀와 나눈 첫 번째 대화가 위니라는 태풍에 관해서였다는 걸 떠올렸다.
그녀가 현장사무실에 도착했을 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5분 전에 미리 그녀의 전화를 받은 나는 사무실 창문을 닫고 태풍에 대비해 차단기를 내려놓았다. 현관문 열쇠를 문 옆 화단 뒤에 숨기고 막 일어섰을 때 스타렉스 밴이 마침 사무실 마당으로 들어섰다. 나는 어깨에 멘 배낭을 뒷좌석에 던져 넣고 일부러 조수석에 앉았다. 안전벨트를 매는 동안 그녀는 차창 문을 반쯤 내린 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일은 잘 끝났습니까?”
어색해지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통장 계좌번호는요?’ 하고 되물었다. 나는 미리 준비한 메모지를 그녀에게 건넸다.
“돈은 두 달 쯤 뒤에 입금될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이번엔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투가 너무 사무적이어서 나는 오히려 마음이 심란해졌다.
광주로 떠나기 전에 우리가 머물렀던 모텔에 잠시 들러 그녀의 소지품을 챙기고 밀린 방값을 지불했다. 카운트에서 졸린 눈으로 앉아있던 모텔 사장이 ‘오늘 새벽에도 상괭이 다섯 마리가 저그 모래 턱 근처까지 떠내려 와 죽었다는디…… 정말이지 무슨 일인지 모르것소.’ 라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무관심한 듯 ‘이장님은요?’ 하고 물었다. 사장은 ‘시방 그것 때문에 난리가 났응께. 그 양반 성격에 현장 조사한다고 벌써 나가 브렀제…… 흉시라고 말이여.’ 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량항에는 태풍을 피해 정박한 어선들과 바지선, 해경순시선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2차선 도로를 달리면서 ‘오늘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었어요.’ 라고 말했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점점 더 굵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 때문은 아니겠죠?”
“뭐가요?”
“상괭이들이 이유도 없이 자살하는 거요.”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성철씨가 촬영한 필름 덕분에 P-4구역이 정화사업에서 제외되었으니까요. 오히려 성철씨가 그들의 터전을 지켜준 셈이에요.”
나는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상괭이들이 이유도 없이 죽어간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과 함께 혹시라도 그들의 고귀한 장소를 허락도 없이 촬영한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다시 말을 건넸다.
“어제 본사에서 전화가 왔었어요. 조 대리요. 갑자기 사직서를 내고 완도 사무실에서도 사라졌다구.”
“네?”
상체를 일으키며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동굴요. 그 동굴 안 영상을 본 건 세 사람이잖아요. 저와 성철씨, 그리고……”
“아!”
나는 그제야 그녀의 말뜻을 알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시트에 몸을 기대고 앉아 서글서글하던 그의 말투와 표정을 떠올렸다.
“좋은 사람 같았는데……”
힘없이 내가 말했다. 그녀는 ‘그러게요.’ 하고는 분위기를 바꾸려는지 라디오를 틀었다. 스피커에서 날씨와 잘 어울리는 이루마의 ‘Kiss The Rain'이 흘러나왔다. 그녀와 나는 조용히 음악을 들었다. 와이퍼가 지나갈 때마다 2차선 도로의 정겨운 풍경이 빗물 사이로 지나갔다.
광주터미널에서 그녀와 어떻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주 근처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면서 ‘위니라는 태풍이 상괭이의 죽음하고도 관계가 있을까요?’ 하고 물었을 뿐이다. 그 후로 1년 가까이 나는 줄곧 외지로만 떠돌아다녔다. 속초에서는 어판장의 점원으로 일했고 부산에서는 냉동 창고에서 일했다. 딱 한번 집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내민 용돈을 쑥스럽게 받고 담배를 피우고 그리고 저녁엔 어머니가 차려주는 술상을 앞에 두고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해에 나는 대양해양기술에 정식으로 입사를 했고 첫 부임지로 내려간 곳이 마량항에 있는 현장사무실이었다. 회사에서는 이미 내가 기적의 사나이로 소문이 나 있었다. 선배가 ‘네 첫 부임지로 거기만한 곳이 없을 거다.’ 라고 어깨를 두드리며 이야기할 정도였다. 물론 마량항 사무실에서 과장을 만날 순 없었다. 그녀는 일본 여행을 다녀온 몇 달 뒤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무실은 비어있었고 나는 여길 떠났을 때처럼 바닥을 닦고 걸레질을 했다. 그리고 마당에 있는 등받이 의자에 앉아 마량항의 가게에서 사온 캔맥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사무실로 내려오기 전에 선배는 위니라는 태풍 - 다행히 마을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 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P-4구역 근처 바위섬에서 반쯤 공기가 빠진 고무보트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보트 안에서 스킨스쿠버 장비가 나오면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상괭이들의 이유 없는 자살과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은 인간들이 거북 섬 앞바다에 흑심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멋대로 정의를 내려버렸다. 시체가 떠오르지 않은 것에 대해선 상괭이들이 구해주었을 거란 의견과 태풍 때문에 먼 바다로 떠밀려 나갔을 거란 의견이 분분했는데 지금까지도 거기에 대해선 확실한 대답을 찾을 순 없었다. 그렇게 마량항의 주민들은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 내면서 위대한 유산을 지켜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남은 캔을 들고 사무실에 딸린 간이 부엌으로 들어간 나는 냉장실에 캔맥주를 넣어 두었다. 그리고 숩관적으로 냉동실 문을 열어봤는데 뜻밖에도 그곳에 그녀와 일출을 보면서 먹었던 비스킷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순간 나는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라 마음이 포근해졌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추억으로 현장사무실에서의 밤을 간직했을 거란 생각에 흐뭇해지는 것이다.
책상 전화기에서 벨이 울렸다. 나는 비스킷 한 봉지를 꺼내 포장을 뜯으며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속에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함께 ‘시방 내려왔는가? 횡한 사무실에 있지 말고 싸게 가게로 오시오. 전복 회라도 먹어야제. 이장도 와 있응께.’ 라는 반가운 선장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200자 원고지 224장)
위대한 유산
김유철
序文
유난히 장마가 길었던 그해 여름, 나는 대한해양기술이라는 회사에서 첫 사회경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요즘 같은 불경기에 정식으로 입사를 했다는 말은 아니다. 경기도에 있는 어느 국립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나는 서른이 넘을 때까지 신림동 고시촌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제대 뒤 복학하고부터 3년을 오로지 검사가 되겠다는 열망 하나에 매달려 살았다. 물론 3년 동안의 인생이라는 것은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것이었다. 한 발짝만 비켜나도 아득한 벼랑 밑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던 - 다분히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 나는 그러나 불행하게도 1차 시험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서른 해를 넘기고 말았다.
그래서 아마 서른한 살이 되었을 무렵 나는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라든가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생각을 가질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달빛조차 없는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당황하고 막막하기만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포기하는 것도 빨랐을 것이다. 잃어버린 3년 동안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변해버렸고 나는 그만큼 뒤쳐져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쌓은 스킨스쿠버 실력이 그나마 위안이 될 정도로.
선배로부터 연락이 온 건 그 즈음이었다. 스킨스쿠버 동아리 시절부터 나를 아껴줬던 선배는 - 누군가로부터 나의 근황을 들었을 것이다 - ‘너한테 딱 맞는 알바 자리가 하나 생겼는데’ 라고 운을 넣은 뒤 ‘너처럼 바달 좋아하는 녀석이 어디 있냐. 마음도 추스를 겸 …… 한 일주일정도 우리 회사에서 일해 봐라.’ 라고 선배의 성격만큼이나 시원스레 제안을 해왔다. 물론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핸드폰 요금이 밀릴 만큼 금전적으로도 쫓기고 있을 때였고 무엇보다 습하고 어두운 고시촌 쪽방이 아니라 코발트색으로 빛나는 바다가 너무나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起
터미널에서 출발한 지 3시간 정도가 지난 뒤였다. 옅은 빗줄기가 떨어졌지만 순천 가까이 왔을 때 비는 그치고 잔뜩 먹구름만 끼어 있었다. 순천 터미널에서 처음 김윤경 과장을 만났다. 그녀는 1미터 70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하얀 피부를 가진 미인이었다. 나이는 삼십대 후반이었지만 실제나이보다 다섯 살 정도는 어려 보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다는 말을 언뜻 비추기도 했지만 나는 무관심한 듯 그녀를 대했다. 이미 그녀에 대해선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간단한 인사만을 나눈 뒤 그녀가 몰고 온 스타렉스 밴에 동승해 순천 시내를 가로질러 벌교로, 거기서 다시 장흥으로 향했다. 장흥에 있는 중국집에서 자장면 - 아주머니가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메뉴다 - 으로 늦은 저녁을 먹은 뒤 마량면으로 이동을 했다. 마량항 근처에 대한해양기술의 현장 사무실이 있었다. 두 달 전까진 3명의 직원이 내려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수원 본사로 철수를 하고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사무실에 있는 소나와 스킨스쿠버 장비를 스타렉스 밴에 옮겨 싣고 나서 과장과 나는 마량리 앞 바다가 보이는 부두 근처의 모텔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옆방으로 건너가기 전에 과장은
“내일 해남에 들어가면 숍에서 렁(산소통)을 먼저 충전해야 할 거예요.”
라고 말한 뒤
“우리가 작업해야할 마을이 토말(땅 끝 마을) 근천데 배를 섭외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군청 해양 자원과 계장에게 부탁을 해 두었어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인근 바다를 청소하는 일이잖습니까.”
내가 대꾸를 하자 그녀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피우며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이상한 일이죠? 거기다 날씨까지……”
“위닌가 하는 태풍 말입니까?”
“네. 뉴스에선 중심기압이 950헥토파스칼에 순간최대 풍속이 23미터인 중형 태풍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다 뭔가를 떠올린 듯 과장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태풍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까요?”
물론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태풍이 부는 날 바다 속을 들어가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고는 그런 짓을 할 다이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하지만 바닷물이 뒤집어 진다란 소린 자주 들었으니까요. 수심이 얕은 곳은 뭐……”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뒷말을 얼버무렸다. 그녀는 ‘음, 그렇겠죠.’ 하는 짧은 응답을 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언제 그런 질문을 던졌냐는 듯 무관심한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뿜어댔다. 나는 그녀의 날이 선 콧날을 흘겨보며 잠깐 동안이긴 하지만 매력적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연예인처럼 작은 얼굴에 긴 속눈썹까지 어디 한군데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선배가 그녀에 대한 과장誇張된 이야길 해 준 탓도 있을 것이다. 2년 전 이혼을 했지만 아직 사귀는 사람은 없다. 가끔 술에 취하면 야한 농담도 곧잘 받아주더라. 너 고시 공부한다고 3년 동안 굶주렸지…… 잘 해봐라. 같은 선배의 은근한 목소리가 아직까지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다. 나는 괜히 어색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미니 냉장고에서 하이트 캔을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담배를 피우던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일었다. 나는 맥주 한 모금을 다시 들이킨 뒤 핸드폰을 꺼내 선배에게 마량리에 잘 도착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때 그녀가 태풍이 오기 전까지 조사를 마무리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한 얼굴로 물어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핸드폰 폴더를 닫고 나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음 주부터 일주일간 여름휴가를 잡아 놨어요. 아이와 함께 일본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라서……”
‘이런 걸 두고 무언의 압력이라고 하는 거겠지?’
“글쎄요…… 조사해야할 바다의 수심이 얼만지, 조류의 세기는 어떤지, 바닥이 개흙(뻘)이라면 분명히 시야도 좁을 거구, 거기다…… 어떤 지형인지도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런 정보들이라면 해수부(해양수산부) 사이트에서 알아보는 방법이 있어요.”
“아뇨. 구체적인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직접 조사구역을 돌아봐야 알 수 있어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어떻게든 배를 구해야겠군요…… 그럼, 내일을 위해서 일찍 눈을 붙이는 게 좋겠어요.’ 라고 말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마 그날 밤이었을 것이다. 나는 심해의 바다 속을 평화로이 유영하는 꿈을 꾸었다. 거추장스러운 렁을 매지 않아도 마음껏 숨을 쉴 수 있었다. 다리를 조금만 휘저어도 날새치처럼 빠르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늘에서부터 거대한 빛줄기가 내려와 바다 속을 밝히기 시작했다. 늘어선 빛줄기는 올림포스 신전을 떠받드는 이오니아식 기둥처럼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나는 아테나 여신의 신전을 산책하는 알카메네스(아테네의 조각가)처럼 빛기둥 사이를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그러다 카리아테이드(소녀상 기둥)를 발견하곤 그 매력에 이끌려 다가갔다. 살아있는 것처럼 섬세한 알몸의 처녀상은 분명 과장을 닮아 있었다. 나는 기둥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닮은 조각상 얼굴 주위를 맴돌았다. 잠을 자는 듯 한 평온한 얼굴 때문인지 내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마력에 이끌리듯 그녀의 입술에 얼굴을 가져갔다. 그녀의 입 안에서 달짝지근한 스트로베리향이 묻어 나왔다. 깊은 속눈썹 사이로 파르르한 떨림이 전해오기도 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채취에 빠져 들었다. 창문 사이로 옅은 새벽의 햇살이 파도 소리에 섞여 들려올 때까지 나는 그렇게 몽롱한 기분에 빠져 있었다.
해남군청 마당에는 수성송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래된 해송이 자라잡고 있었다. 나는 나뭇가지를 받쳐놓은 지지대 근처에서 서성거렸다. 마주보이는 곳엔 군청의 보호수로 알려진 은행나무가 연푸른 잎사귀를 나풀거리고 있었다. 은행나무 주위를 둘러 싼 벤치에는 7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나온 30대 초반의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선 어느 초등학교에서 나온듯한 아이들이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서울에선 볼 수 없는 도심 속의 평화롭고 여유로운 풍경이었다. 핸드폰으로 현재 시각을 확인하면서 초조하게 과장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어쭙잖은 도시 뜨기의 인생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지난 3년 동안의 신림동 고시촌 생활을 회상했다. 오로지 검사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공부에 전념하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에게, 친척들에게, 나를 차버린 가린이에게 보란 듯이 검사 신분증을 내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내 자신을 위한 길이였는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법대에 들어간 건 교사인 아버지의 바람 때문이었고 고시 공부에 매달리기 시작한 건 가린이를 잊기 위해서였다. 따지고 보면 검사가 되던 닭 집 사장이 되던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무엇을 하든 바닷가 근처에서 틈틈이 다이빙이나 하면서 조용히 인생을 즐기고 싶었으니까. 그때 과장이 군청 현관을 뒤뚱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녀는 어장도를 왼쪽 옆구리에 끼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저기 있었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느릿느릿 다가갔다. 과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어장도를 내게 건네면서 ‘그럼 거기서 기다리죠. 20분 뒤에 뵙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해양자원과 계장이 소개시켜 준 선주船主는 군청에서 다섯 블록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나와 과장은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있는 다방에서 그를 만났다. 깡마른 체격에 머리가 반쯤 벗겨진 선주는 80년대식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인테리어 - 금붕어가 들어있는 수족관과 모서리가 달아버린 검은색 가죽소파, 눈두덩이 시퍼런 미니스커트의 레지, 80년대식 록 뽕짝 - 로 가득한 곳에 딱 어울리는 사람 같았다. 첫인상이 그렇게 호감이 가지 않는 나와는 달리 예쁘장하게 생긴 과장에게만 선주는 눈인사를 건넸다. 다가오는 레지에게 커피를 시키고 나서 선주는
“거긴 아무도 안 갈라 하는덴디 요로코롬 귀찮게 굴어샀소?”
하고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저희에겐 선택권이 없어요. 위에서 높으신 공무원들이 정한 일이니까요. 그쪽 부서에서 구역을 정해서 발주를 내면 저희 회산 거기에 맞춰 설계를 하는 것뿐이에요.”
“거기서 양식허는 사람이 워디 있다요. 1년 전에 서울서 내려왔다는 양반이 크게 판을 벌릴라다 마을 사람들 반대에 부딪쳐 나가브럿제. 몇 달 전엔 광주서 온 젊은이들이 전복 양식하겄다고 왔다가 곧 포기해 불고…… 거긴 청소하나마나 아무것도 없당께.”
“그러니까 더 조사를 해야 하는 거죠.”
“아, 고로코롬 말길을 못 알아들어서 어쩐다요. 그게 다가 아니랑께.”
“그럼, 또 뭐가 있는데요?”
선주는 답답한지 담배를 소리 나게 쪽쪽 빨아대면서 카운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 화장을 하고 있는 레지를 불만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뭣땜시 우리가 싫어 하겄소? 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응께 그런 거이제. 저그 쪽 바다엔 가지마라고 말이제.”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단지 그 때문입니까? 옛날부터 내려온다는 말 때문에? 전설의 고향도 아니고……”
선주가 ‘시방 비웃는 것이여?’ 라고 따지듯 눈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봤다. 선주의 표정을 살피던 그녀가 내게 말조심 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상냥한 얼굴로 선주를 계속 설득했다.
“양식장 주변 바닥을 청소한 다음 해엔 생산량이 300퍼센트 가까이 개선되었다는 보고도 있어요. 모든 경비는 국가에서 나오니까 돈 걱정 할 필요도 없구요.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찾아온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그걸 누가 몰라서 그런다요. 그쪽 바다 속을 조사한다는 게 꺼림칙해서 그런 것이제. 왜 아무것도 안하는 거기까증 조사를 하냔 말이여.”
그녀는 어장도를 펼쳐 문제의 조사구역을 형광펜으로 표시했다.
“그럼 이곳은 배만 빌려주시면 저희끼리 조사를 하겠어요. 그러니까 나머지 조사 구역만이라도 선장님이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드립니다.”
“배 몰 사람은 있소?”
“네.”
선주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과장에게 말했다.
“여그 어촌계 사람이지라?”
과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주는 마지 못하는 척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그럴 생각이라면 나도 괜찮하요. 근디 거긴 아무도 안 갈라 했을텐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선주에게 그녀는 확인 도장이라도 찍듯이 약속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그럼 내일 9시 30분까지 선창에서 만나는 걸로 할게요.”
“선창에서라? 하 그 양반 번개에 콩 볶아 먹겄소.”
“태풍이 오기 전에 조사를 마무리할 생각이에요.”
“거시기 대만에서 올라온다는?”
그녀는 ‘네.’ 하고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헤어지기 전에 나는 선주에게 왜 사람들이 어장도 카피 본에 P-4로 표시된 구역을 꺼려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레지가 가져온 찐득찐득한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바다 밑에 협곡이 있다는 소리도 있고…… 그게 얼마나 깊은지, 그 안에 뭐가 있는 진 아무도 모른단 말이제. 임진왜란 땐 왜놈 함선이 그곳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하고 그 근방에서 조난당한 홍가네가 다음 날 멀쩡하게 살아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응께’ 하고는 더 이상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살아 돌아왔다는 사람한테 들은 이야긴 없습니까?’ 라고 물었지만 그는 ‘어이. 김양아 코피 맛이 왜 이러냐. 아침부터 달달 볶는 사람들이 있어 그렇잖아도 심난한디.’ 하고는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사람을 만나볼 순 없을까요?”
“누구 말이라?”
“살아 돌아왔다는 사람이요.”
“날샜소. 그 양반 돌아 가신지가 시방 10년은 됐응께.”
선주는 그만 단념하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간당간당한 미소를 내게 건넸다.
숍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렁을 충전시킨 뒤 마량리의 현장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수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수심 30미터 이상에서는 활동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협곡이 있다면 조류에도 신경을 써야하고, 협곡 주위로 쓰레기가 많이 쌓이기 때문에 작업하기가 그만큼 힘들어 진다는 이야기를 주절거렸다. 말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던 과장은 ‘될 수 있으면 거긴 소나로만 조사할 생각이에요.’ 라고 짧게 응답한 뒤 숄더백을 챙겼다.
“선주가 했던 말들요. 마치 어릴 적에 미스터리 백과사전에서 읽었던 버뮤다 삼각지역이 생각나던데요. 정말 이상한 곳이면 어떡할래요?”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김성철씨. 우린 여기 놀러온 게 아니에요.”
그리고 덧붙이기를
“말하는 김에 한마디만 더 할게요. 사적인 호기심이라면 업무 이외의 시간을 이용했으면 좋겠어요. 우린 배 섭외 문제로 선주를 만난 것뿐이었으니까. 꺼리는 이야길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는 건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었어요. 그 분한테 실례가 되는 일이었다구요. 앞으론 조심해 주세요.”
라고 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사과를 했다. 그녀는 한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바쁜 일이라도 떠올랐는지 ‘그럼, 장비 점검 마무리 해주시고, 숙소는 어제 그 모텔이니까 언제든 들어가서 쉬도록 해요. 내일 6시 쯤 여기서 만나는 걸로 하구요.’ 라고 인사말을 대신했다. 나는 현장사무실 마당으로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어젯밤 꿈을 떠올렸다. 알몸의 카리아테이드. 그러자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꿈속에선 스트로베리향이 가득했지만 실제론 니코틴 냄새로 가득할거야.’ 괜히 쑥스러운 기분이 든 나는 그녀의 말대로 손목과 발목에 지퍼가 달린 슈트와 오리발, 비시 - 부력 조절기, 하우징 - 수중 촬영 카메라, 호흡조절기와 압력 게이지, 손목에 차는 나침반등의 개인 장비를 점검하고 뒤이어 미사일 모양의 사이드 스캔 소나와 로프, 와이어 줄, 플러터, 노트북과 여분의 배터리까지 꼼꼼하게 점검했다. 그리고 노을이 질 때까지 현장사무실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지만 답장을 하진 않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내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직 운 때가 맞지 않은 것뿐이라고, 그리고 로스쿨이라는 게 생겼으니 나에겐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생긴 게 아니냐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나는 어둡고 습한 골방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대신 지금 이 순간이 매우 소중하고 유익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옅은 녹색의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
스킨스쿠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된 가린이는 늘 푸껫이나 서사모아의 바다 속을 동경했다. 나는 다이어리 속에서 사진을 꺼내 들었다. 태종대 바다가 바라보이는 해안에서 찍은 스킨스쿠버 동아리 사진이었다. 제일 아래쪽 중앙에 앉아있는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바로 그 위에 몸을 반쯤 숙인 채 웃고 있는 녀석이 바로 나였다.
“따지고 보면 넌 푸껫이나 서사모아의 바다가 아니라 그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동경했던 것뿐이었어.”
독백하듯이 내뱉는 가슴 한쪽이 찐하게 저려왔다. 나는 사무실 창가로 걸어가 한지에 먹물이 퍼지듯 검게 변하는 수평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承
사이드 스캔 소나를 추를 이용해 20미터 정도의 수심으로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핸드 GPS에서 좌표를 입력하는 것부터 나는 버벅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선주는 다방에서 느꼈던 첫인상과는 달리 차분하게 배를 몰았다. 5톤짜리 어선을 마치 수족을 다루듯 능숙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의외로 협조적이었다. 까다롭고 꼼꼼한 성격의 과장이 요구하는 조건을 거부감 없이 받아주었고 조사구역의 바다 지형이나 시설물이 설치된 곳에 대해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선주가 알아서 일정한 노트로 배를 움직여 주었기 때문에 어장도의 조사구역을 스캔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나는 방향을 틀 때 외엔 그저 사이드 스캔 소나가 어장을 만들면서 설치한 로프나 어구에 걸리지 않도록 주변을 살피기만 하면 되었다. 플로터와 노트북을 만지는 작업은 모두 그녀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P-4구역만이 남았을 때 시간은 오후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바다는 여전히 잔잔했고 태양빛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그녀가 사온 김밥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뒤에 선장은
“이곳에선 날 모르면 간첩이지라…… 다 알아봤응께.”
라는 생뚱맞은 말을 했다.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선장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과장은 다시 한 번 선장에게 고개를 숙여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선장과 그녀의 선문답에 고개를 갸우뚱 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쪽 바다를 들어가려는 분들이 없었어요. 이곳에 사시는 분들 모두가……”
그제야 나는 전날 그녀가 이곳 P-4 구역에서 배를 몰아 줄 사람을 구했다는 말이 거짓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라…… 바다 때깔부터가 다르지 않소. 서울서 사업한다고 내려온 사람이 저그에 가두리 양식장을 만든다고 할 때부터 주민들이 반대를 했응께……”
“그때하곤 다르잖아요. 우린 이곳을 청소하려는 것뿐이니까.”
“그걸 탓하는 게 아니랑께.”
선장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저그 바단 사람 손이 타선 안 되는 곳이란 말이제. 부정을 타니께.”
“왜 그렇게 조심들 하는 거죠? 무슨 이유라도 있나요?”
선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세상엔 상식만으로 이해헐 수 없는 것도 있응께……”
그리고 잠시 P-4구역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회백색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슬며시 수면 위를 스치듯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전까지 물결이 일던 곳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봤어요? 방금 뭐가 떠올랐었는데…… 돌고래? 아니면 상어였나요?”
그녀도 나름 호기심이 일었던지 내가 가리키는 곳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선장이 껄껄거리며 웃어댔다.
“상괭이란 놈이여.”
“상괭이요?”
나는 다시 갑판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으면서 선장에게 물었다.
“여그서 사는 고랜디, 가끔 보게 되지라.”
“아, 이제야 기억났어요. CITES -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 - 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고래죠.”
“여기에 고래도 삽니까?”
내가 중간에 끼어들자 선장은
“시방 뭔 소릴 하는 것이여. 원래 이곳 주인이 상괭이여. 인간이란 놈들은 훨씬 뒤에나 흘러들어 왔응께.”
하고는 정색을 했다. 나는 조금 전에 봤던 상괭이란 고래의 옆모습을 떠올렸다. 어느 순간에 눈이 마주친 것도 같았다. 등지느러미가 없고 2미터 이상 자라지 않는 온순하고 영리한 녀석이라고 선장은 말해주었다.
“옛날 어른들은 모두 상괭이를 바다사람으로 불렀응께. 그만큼 영물이란 말 아니것소. 우리 어렸을 쯕으만 해도 물놀이하다 보문 문득 마주치기도 했응께.”
“지금은요?”
“모르것소. 언제부턴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응께. 그만큼 우리가 바다와 멀어졌는지도 모르것소.”
그날은 끝내 P-4구역에 소나를 띄우지 못했다. 선장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그녀의 부탁에도 털끝하나 변하지 않았다. 바다가 노여워하는 짓은 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그는 줄곧 고집을 피웠다. 날이 기울면서 제법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궂은 날씨에 파고까지 높아지면서 그녀도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게 되었다.
선창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P-4구역은 바다 속을 스캔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쪽 바다에 대해 사전 자료가 없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나는 선장의 말이 생각나 P-4구역의 바다 속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음날은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천둥과 함께 제법 많은 비가 오전부터 쏟아졌다. 별수 없이 비가 그치기를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방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빈둥거리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옆방에서 어제 해안을 돌면서 스캔한 데이터를 가지고 조사구역내 쓰레기 산출량을 계산하고 표본조사를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짜느라 정신이 없었다. 모텔 앞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 그녀의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 해결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소주를 시켜도 되냐고 물었다. 반찬으로 나온 우럭매운탕과 회가 술맛을 돋우고 있었다. 그녀는 ‘오후에도 비가 그칠 것 같진 않으니까……’ 라고 독백하듯이 내뱉고는 70킬로그램은 나갈 것 같은 덩치 큰 주인아주머니에게 소주 한 병과 잔 두 개를 달라고 소리쳤다.
어느덧 그녀와 나는 두 병째 소주를 나누어 마셨다. 빗줄기는 오전보다 가늘어졌지만 여전히 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오후 4시를 넘어서면서부터 마량항 주변의 모든 것이 회색 톤으로 변해갔다. 그녀는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짓눌러 끄자마자 다시 새 담배 한 개비를 입으로 가져갔다. 내가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는 것 아니냐고 걱정스럽게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피식거리며 말했다.
“습관이에요.”
그리고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휴’ 하고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얼마 전까지 본사에 있었다고 들었어요. 현장엔 자원해서 내려왔다고……”
“이 대리가 그렇게 말했어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대답하는 대신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본사로 전근 명령이 떨어졌을 때에도 마량항 사무실에 남아 있기를 희망했다고 들었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고 앞뒤가 꽉 막힌 공무원들과 거친 뱃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라 젊은 사내들도 힘들어하는 현장 일이었다. 선배의 말로는 회사의 사장과도 대학 선후배 사이라고 하는데 그 정도 연줄이나 일하는 솜씨로 보면 수원에서 서류나 작성하면서 편안하게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 때문이에요.”
그녀는 남의 일인 양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곤 소주를 마시고 빈 잔에 술을 따랐다. 다음 주에 여름휴가를 신청했다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아이와 일본에 가기로 약속했다는 말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어두운 표정에서 나는 뭔가 다른 사연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저마다 상처와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게 인생이라는 걸 언제부턴가 깨닫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세상, 사람들, 그리고 갈대처럼 휘둘리는 나약한 우리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씁쓸한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초고추장에 듬성하게 썬 회를 찍어 입안으로 가져갔다. 달짝지근한 초고추장의 맛과 함께 쫄깃한 우럭의 육질이 씹혔다. 그녀는 다시 식당 밖의 항구를 서글픈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발이 묶인 배들이 선창을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비옷을 입은 몇몇 사람들이 선창의 한쪽 건물 안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P-4구역 말입니다.”
화제를 돌리며 내가 말했다. 그녀는 깊은 상념에라도 빠져 있었는지 둥그런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선장의 말처럼 굳이 그곳까지 조사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왜 조사구역에 P-4가 포함되어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서울서 양식장 한다고 내려왔다던 사람이 앙심을 품고 손을 썼는지도 모르지만.”
“조사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잖아요?”
“사람 손만 가도 부정을 타는 곳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곳에 소나를 쏘고 다이버가 들어가 촬영을 하고, 또 표본조사를 하려면 칼코리로 바다 속을 헤집고 다니며 쓰레기를 수집해야 하는데……”
나는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P-4구역을 경외시하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모르겠어요?”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긴 있더군요.”
“이야기라뇨? 누구한테 들었는데요?”
“군청의 계장에게서요.”
그녀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있잖아요.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에……”
“이야기가 아니라 전설이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그럼 제 말이 틀린 것도 아니구…… 전설의 고향요.”
“맞아요. 그런 셈이군요.”
그녀가 다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람을 타고 빗줄기가 식당 창문을 세차게 두들겨댔다. 나는 두터운 먹구름을 올려다보며 ‘내일은 개일까요?’ 라고 물었다. 그녀는 ‘글쎄요.’ 하고는 담배를 피우고 조용히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날 밤에도 나는 빛기둥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는 꿈을 꾸었다. 이틀이나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진 않았지만 이번엔 뭔가 좀 달라진 것이 있었다. 빛기둥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낮에 봤던 상괭이였기 때문이다. 녀석은 호기심 어린 검은색 눈동자를 굴리며 유연하게 몸을 움직였다. 인터넷 검색창에 뜬 상괭이의 모습 - 녀석은 돌고래보다도 작고 귀여웠다 - 그대로 매우 활기차고 순수한 표정이었다. 낮에 봤던 녀석의 눈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상괭이가 지나간 자리는 야광충으로 인해 반짝거렸는데 마치 바다 속에 금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왠지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돼지꿈이나 용꿈을 꿨을 때 느꼈던 기분과 비슷했다. 기분만큼이나 모텔 밖 마량항은 청명한 아침햇살로 가득했다.
轉
빈둥거리며 여유를 부렸던 나와는 달리 그녀는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우 바쁘게 지낸 것 같았다. 아침 식사를 할 때쯤 완도의 현장 사무실에 근무하는 조 대리라는 사람이 7,8인용 고무보트를 갤로퍼 밴에 싣고 모텔에 도착했다. 15마력짜리 수중모터를 단 보트는 소나를 싣기엔 작았지만 스킨스쿠버 장비와 나를 태우기에는 충분했다. 그녀는 어제 하루 동안 P-4를 제외한 조사구역내의 쓰레기 산출량과 표본조사에 필요한 배를 섭외하는 문제 외에도 오늘 계획을 미리 세우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녀는 조 대리와 함께 모텔 앞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면서 나를 그에게 소개시켰다.
“이번에 제 일을 도와주기 위해 오신 다이버예요. 이 대리가 추천한 사람이니까 실력은 확실할 겁니다.”
조 대리라는 사람은 미소를 머금은 채 내게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수원서 온 조상일이라고 합니다.”
그는 첫인상부터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2년 전까진 다이버 생활을 했다지만 SSU나 UDT출신 - 다이버 중에는 해군특공대 출신이 많았다. - 처럼 보이진 않았다.
“과장님이 그러시는데 소나를 띄우지 못했다면서요. 많이 힘들겠습니다.”
나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배도 사람도 구할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P-4구역은 성철씨가 촬영한 비디오를 보고 쓰레기 산출량을 계산할 거예요. 거긴 아마 표본조사도 어려울 것 같으니까.”
그녀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조 대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군요.’ 하고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여긴 유달리 조류가 센 곳이라 물때작업을 해야 할 건데요. 저도 두어 번 이쪽 바다에 들어간 적이 있어 아는데 바닥이 뻘이라 시야도 좁고 또 닻줄을 잡고 내려 가야할 만큼 물살이 세서 작업하기가 쉽진 않을 겁니다.”
“그렇잖아도 소나 작업을 하면서 성철씨가 그런 이야길 하더군요. 물살이 거칠다구요. 6시간 단위로 밀물과 썰물이 바뀌니까 그 사이 정조시간대에 작업하는 게 좋겠다고……”
“이 친구 생각보다 바다에 대해 잘 알고 있군요.”
조 대리가 내 어깨를 ‘툭’ 하고 치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줄곧 탁상행정이란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작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민들 모두가 반대하는 일인데……”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식당의 주인아주머니가 모닝커피를 타서 테이블 앞으로 다가왔다.
“해경 사무실엔 미리 말해두었으니까…… 그럼 30분 뒤에 출발하는 것으로 하죠. 장비점검은 끝났겠죠?”
나는 대답대신 그녀에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전날 내린 비 때문인지 모든 것이 깨끗하고 선명했다. 조사구역을 둘러싼 섬들은 저마다 특색 있는 모양새여서 거북 섬이나 코끼리 섬 같은 특별한 지명을 가지고 있었다. 석회암 덩어리처럼 생긴 이름 없는 작은 돌섬 위에는 갈매기들이 질러놓은 배설물로 하얗게 변해 있었다. 투명한 코발트색 바다처럼 하늘 또한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옅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바람 또한 잦아들어서 호수처럼 잔잔하게 물결이 일었다. 조 대리가 가지고 온 고무보트는 생각보다 안정감이 있었다. 그는 조사구역 내에 있는 바다를 큰 원을 그리며 선회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핸드GPS를 이용해 조사구역의 경계선을 측정했다.
“여기서 부터가 P-4구역이에요.”
그녀가 핸드GPS의 모니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배를 타기 전에 이미 슈트로 갈아입고 그 위에 스노클을 걸쳤다. 작업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릴 것 같아 산소통은 렁 두 개를 붙인 더블렁으로 준비를 하고 호흡조절기, 잔압계같은 게이지들도 따로 점검해 두었다. 수중카메라에 새 배터리를 끼우고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우징 잠금장치를 한 번 더 손으로 확인했다. 조 대리가 모터의 속도를 줄이자 고무보트는 털털거리며 느리게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수경에 침을 뱉어 김이 서리지 않도록 준비했다. 렁의 밸브를 열어 산소량을 조절하면서
“주민들 눈도 있으니까, P-4구역 안에는 될 수 있으면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어요.”
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 대리를 바라보았다. 그도 알겠다는 듯 눈을 찡긋거리며 다시 배의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물살을 헤치며 보트는 P-4구역을 벗어나 외곽을 선회했다. 2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미역 조업을 하고 있던 50대 초반의 마을 주민이 FRP선을 몰고 와 ‘모르는 분들인디…… 워디서 왔어라?’ 하고 인상을 쓰면서 소리쳤다. 과장이 선장의 이름을 대면서 바다정화사업의 설계를 맡은 업체에서 나왔다고 응답했다. 선장의 이름이 약발이 있었는지 남자는 ‘아, 거시기 무슨 해양기술인가 하는데서 왔다는?’ 하고는 온순하게 변해선 ‘저그 쪽 바다는 조사하지 않는다고 안했어라?’ 라고 다시 물어왔다.
“네. 거긴 조사하지 않을 겁니다. GPS를 잘못 측정해서 착각을 했어요. 우린 저기 양식장 주변 바다를 둘러볼 생각이에요.”
그녀는 P-4구역과 반대편 바다를 가리키며 능청스런 거짓말을 내뱉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소리쳤다.
“다행히 날씨가 좋응껭 작업하기가 수월하것소. 그럼 열심히 좀 부탁드리요이.”
남자는 손을 들어 인사치레를 하고는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모터에 달린 틸러핸들로 보트의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고 있던 조 대리가 ‘마을 사람 모두가 저렇습니까? 저쪽 바다에 무슨 사연이 있길래……’ 하고는 신기한 듯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우린 우리 일이나 열심히 하면 되니까.”
하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수경을 끼고 나서 호흡조절기를 입에 물고 길게 산소를 들이켰다가 다시 호흡조절기를 뽑았다. P-4구역이 위치한 위도가 북동쪽이었기 때문에 나침반이 가리키는 바늘의 위치도 미리 확인해 두었다. 밀물과 썰물이 바뀌는 정조시간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현재 시각을 확인하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전 여기서부터 잠수해 들어가겠습니다. 일단 1시간 30분정도 작업하다 나오는 것으로 하죠. 수중촬영은 60분이 최대니까.”
“좋아요. 우린 이곳에서 기다릴게요.”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지켜 세우며 다시 호흡조절기를 입에 물었다. 보트 난간에 등을 대고 앉아 뒤로 입수를 했다. 새우등처럼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가 무게 중심을 잡고 다시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조 대리가 수중 카메라를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두 사람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뒤 바다 속으로 힘차게 잠수를 시작했다.
토말 근처의 바다는 정조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조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수심 5미터 이상 들어가자 라이트를 켜야만 했다. 나는 손목에 달린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고 오리발을 힘차게 저었다. 조 대리의 말처럼 이곳 바닥은 개흙으로 되어 있었다. 폐사한 홍합들이 검은 뻘 아래에 쌓여있었다. 손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시커먼 진흙이 퍼져나갔다. 폐타이어와 버려진 로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안개처럼 뿌연 바닷물 때문에 시야는 랜턴을 켜고도 50센티미터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20분 정도 물의 흐름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자 바위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의 뿌연 이질감도 좀 옅어진 것 같았다. 나는 느낌으로 P-4구역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수중카메라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LCD화면을 바라보면서 촬영준비를 끝냈다.
바위산들을 지나 수심 10미터 정도로 내려가자 고운 모래 바닥이 드러났다. 주민들의 말처럼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풍경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옅은 수심에서는 김이 자라고 있었고 바위표면에 단단히 붙어있는 따개비는 먹잇감을 쫓아 촉수를 드러냈다. 밀감처럼 생긴 귤색군소붙이가 천천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바위 색깔 그대로 변장을 하고 있던 손바닥만 한 문어가 먹물을 뿜어대며 쏜살같이 사라졌다. 게르치 몇 마리가 몸을 좌우로 흔들어대면서 모래 바닥을 헤치며 지나가기도 했다. 나는 수중촬영 전문가처럼 장면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의 방향을 45도 정도로 기울이면서 촬영에 열중했다.
독도 근처의 바다에 들어갔던 선배는 왜 우리가 사람이 살 수 없는 척박한 바위섬 몇 개를 지켜야만 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독도 아래 바다를 보게 된다면 모두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될 거라고 선배는 말했다.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괴사 직전까지 간 연근해 바다의 뼈아픈 현실도 깨닫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처음 10분간은 숨을 쉴 수가 없을 만큼 가슴이 벅차올랐지. 너무나 황홀한 풍경이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손길이 닿기 시작하면 이곳도 곧 파괴될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하는 거야. 이해할 수 있겠니? 우린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근원이 되는 소중한 바다를 - 선배는 바다를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죽여가고 있었던 거니까. 인류의 미래가 바다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처럼 말야.”
선배의 말처럼 바다 속에도 육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살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협곡과 감탄을 자아내는 기암석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꽃밭과 동산과 그곳에 뛰어노는 각양각색의 바다 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잠수를 시작한 지 대략 40분쯤 지났을 무렵부터 나는 선배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마치 디즈니의 만화영화에 나오는 바다 속 삽화를 닮아있었다. 아니 삽화가 이곳 바다를 닮았을 것이다. 시야도 확연히 넓어졌다. 1년에 몇 번밖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청물이 지나가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카메라 렌즈의 각도를 조절하면서 될 수 있으면 많은 것들을 담아가려고 노력했다.
먼저 나를 반긴 건 짙은 갈색의 감태와 대황이었다. 갈조류에 속하는 해초들이 2미터 가까이 자라 하늘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밀림의 정글 속에 와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바다 역시, 환해져서 옅은 비취색을 띠고 있었다. 나는 수중카메라에 달린 67밀리 수중와이드렌즈를 이용해 줌인과 줌아웃으로 번갈아 가며 촬영을 했다. 해초 사이에는 은색의 노래미 떼가 몰려 다녔다. 붉은색의 부채뿔산호 군락을 제주도가 아닌 내륙의 바다 속에서 보긴 처음이었다. 한마디로 가슴이 뭉클해질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왜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보호하려고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분지처럼 생긴 지형을 지나자 선장의 말처럼 긴 협곡이 나타났다. 협곡 아래는 태양빛이 미치지 않은 탓으로 아득한 암흑이었다. 그리고 협곡 아래 수심 20미터 지점을 지나칠 때 쯤 갑작스럽게 강한 해류와 마주쳤다. 몸이 기우뚱거릴 만큼 해류의 유속은 빨랐다. 지금이 정조시간대라는 걸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나는 해류가 흐르는 방향으로 몸을 맡긴 채 카메라의 백라이트를 비춰 보았다. 5분 정도 유영을 했을 때 지름이 30미터는 넘을 것 같은 커다란 동굴을 발견했다. 그곳은 오래 전 화산폭발로 인해 만들어진 것처럼 주변 바위는 현무암처럼 검고 윤기가 흘렀다. 나는 산소량을 점검하면서 조심스럽게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 입구 근처 바위틈에서 혹돔 한 마리를 발견했다. 녀석은 눈깔을 좌우로 돌려가면서 아가미를 벌렁거렸다. 라이트를 비추자 꼬리지느러미를 흔들어 대며 바위틈으로 잽싸게 몸을 감추었다. 동굴은 들어갈수록 오히려 지름이 커지는 것 같았다. 10미터 정도 들어갔을 때 나는 꿈속에서처럼 야광충에 둘러싸여 있었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슈트와 장갑표면에 부딪치는 야광충들이 빛을 뿜어댔다. 어디선가 과장을 닮은 소녀조각상 기둥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나는 묘한 기분에 이끌려 더 깊숙이 몸을 움직였다.
그러다 문득, 정적 속에 갇혀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속도 차츰 느려져서 몸의 균형을 잡기가 쉬워졌다. 갑자기 암흑과 고요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았다. 그리고 방향감각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동굴의 입구가 어디였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해류의 흐름이 사라지면서 어디가 안쪽이고 어디가 바깥쪽인지 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다이버 수칙 중 하나가 파트너 없이 바다 속 동굴 같은 곳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거였다. 잠깐 동안이라도 집중력을 잃어버리면 영원히 바다 속 미아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공포심만이 나의 가슴을 조여오고 있었다. 산소게이지의 형광 바늘이 바닥을 향해 치닫는 환영에 시달리면서 호흡이 가팔라졌다. 이런 식으로 호흡을 하게 되면 열여섯 배 가까이 산소 소비량이 증가할 수도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죽음과 맞닿은 기분일까?’ 순수한 암흑과 고요 속에 갇혀버린 것 같은…… 그리고 두려움 이상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동굴 입구를 찾기 위해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검게만 보이는 수중 아래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가냘프지만 힘 있는 바다생물의 울음소리 같았다. 나는 순간 수중카메라의 백라이트를 아래로 비추었다. 저 아래 바닥에 뭔가가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나는 세이렌에게라도 홀린 것처럼 오리발을 있는 힘껏 움직여 아래로아래로 내려갔다. 이제껏 나는 심해잠수에 필요한 장비 없이 수심 30미터 이상 들어간 경험이 없었다. 장비 없이도 수심50미터 이상 내려간 적이 있는 선배는 그곳에서 20분 이상을 견디는 건 쉽지 않다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
‘숨 쉬는 게 힘들어지지. 수압 때문에 렁 속의 산소와 질소의 비율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거든. 그때부터 질소마취라는 게 시작되는 거야. 뽕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지고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지.’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수압계를 바라보면서 이미 선배가 말한 수심 50미터를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빛 사이로 바닥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백라이트가 미치는 범위 안에서 바라보이는 바닥은 무수한 배의 파편과 뼈들로 가득했다. 프랑스나 이태리의 고대 지하무덤 속을 유영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저 무수한 뼈들의 주인들이 상괭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호흡이 차츰 가팔라지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배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도 이 동굴로 흐르는 해류 때문인 것만 같았다. 산소게이지가 빠르게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수심에 따라 산소의 호흡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수중카메라의 플레이 버튼을 계속해서 눌러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손에 들고 있던 랜턴의 불빛이 먼저 꺼져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이 수중카메라에 달린 백라이트 불빛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이곳에선 충전된 배터리의 수명이 짧아지는 것 같았다. 이젠, 정말이지 완전한 어둠과 고요 속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앞으로 몇 분 뒤면 렁 속의 산소도 완전히 바닥날 게 분명했다. 이상한 건 이때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훨씬 이전부터 죽음이란 존재는 익숙하게 내 옆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호흡조절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산소의 양이 부족해지면서 두통이 생기기 시작했다.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자꾸만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감각도 무디어지는지 더 이상 오리발을 휘저을 수도 없었다.
“삐 - 이.”
짧지만 날카로운 소리가 또 다시 들려왔다. 처음엔 환청인 줄 알았는데 연이어 그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아늑해진 정신 때문에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예전에 수집했던 바다 생물들의 울음소리 중 하나일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무언가가 나의 등을 치며 지나갔다. 나는 감았던 눈을 힘겹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번엔 발밑에서부터 둔탁한 감각이 전해졌다. 나의 몸이 공처럼 튕겨져 위로 올라갔다. 야광충이 반짝이면서 금가루를 뿌려대고 있었다. 그때 문득 무언가가 나를 동굴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렁 속의 산소가 바닥이 났는지 희미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꿈속이 아닌 현실에서 어렴풋이 상괭이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 소나 작업을 할 때 잠시 배 옆을 스쳐지나갔던 녀석인지도 몰랐다. 녀석은 나의 등과 배와 팔에 일부러 몸을 부딪치기도 하고 자신의 머리와 몸을 이용하기도 하면서 나를 동굴 밖으로 밀쳐냈다. 빠른 속도로 나를 앞질러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도 했다. 힘없이 처진 나의 몸은 점점 더 위로 올라갔다. 어느새 주변은 짙은 암흑에서 비취색 빛깔로 바뀌어 있었다. 눈이 부셔 제대로 앞을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수면 가까이 올라왔을 때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있는 힘껏 밖으로 잡아끌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블라인드 사이로 투명한 빛이 스며들었다. 비린 바다냄새에 소독약 냄새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전화가 왔는지 누군가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욕탕 안에서처럼 쿵쿵거리며 고막을 때렸지만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얼굴을 돌렸다. 독한 감기약을 먹은 것처럼 나른해진 몸은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힘들게 눈을 뜨자 서리가 낀 것처럼 흐릿하던 그녀의 모습이 점차 선명해졌다. 과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회사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몸 상태를 보고하던 그녀의 시선이 침대에 누워있는 나와 마주쳤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환해진 얼굴로 다가와서는 링거가 꽂혀있는 나의 손등에 자신의 왼손을 살며시 포개면서 ‘괜찮아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에서 나는 상큼한 오렌지 향에 기분이 좋아져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폴더에 대고 ‘지금 막 깨어났어요. 걱정하실 필욘 없을 것 같아요.’ 라고 사장을 안심시켰다.
“어떻게 된 거죠?”
내가 힘겹게 입을 열었을 때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정말이지, 다행이에요.’ 라고 응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침대 옆에 있는 벨을 눌러 당직간호사를 불렀다. 20대 후반의 젊은 간호사가 들어와 나의 상태를 살핀 뒤 ‘담당 샘 모시고 올게요.’ 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동안 나는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어떻게 살아있을까 란 생각을 했다. 동굴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뒤의 마지막 몇 분간 -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 의 기억들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병실로 되돌아온 간호사가 체온과 혈압을 체크하는 동안 금테 안경을 두른 담당의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퇴원하는 길에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절거렸다. 핸들을 잡은 그녀가 조수석에 앉아있는 내 옆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하고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라디오의 볼륨을 줄였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전 어떻게 구조되었습니까?’ 하고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잠수를 시작한지 1시간 40분이 지났는데도 성철씨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아 걱정을 했어요. 처음엔 조 대리가 보트를 끌고 P-4구역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성철씰 찾았어요. 그 뒤엔 사고가 생긴 것 같다고 해서 해경에 신고를 하고 조 대린 급히 렁을 메고 잠수 준비를 했죠.”
그때 P-4구역 가장 자리에서 갑자기 내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녀와 조 대리가 다가갔을 때 선장이 말했던 상괭이 두세 마리가 주위를 돌면서 물속에 가라앉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믿을 순 없지만 그들이 성철씰 살린 것 같았어요.”
“상괭이들이 날 살렸다구요?”
나는 그녀의 말을 되씹으면서 동굴 속에서의 몇몇 장면들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동굴 밖으로 나를 끌어내던 어떠한 몸짓과 소리, 그리고 영롱한 눈빛들을.
“카메라는요?”
그러다 문득 수중카메라 생각이 났다. 동굴 속에서 백라이트까지 꺼져버린 수중카메라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병원의 지하주차장을 나온 그녀가 스타렉스 밴의 속력을 높이면서 응답했다.
“성철씬 보트 위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어요. 지금쯤 아마 조 대리가 현장사무실에서 촬영한 테이프를 확인하고 있을 거예요.”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다행이에요. 전 또 동굴 속에서 잃어버린 줄 알고……”
“동굴요?”
그녀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나는 대답대신 머리를 긁적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량항의 현장사무실로 가는 동안 P-4구역에서의 단편적인 기억들을 그녀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마량항 현장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조 대리는 이미 완도로 떠난 뒤였다. 그는 떠나기 전에 과장의 책상 위에 메모를 남겼는데 완도 사무실에 급한 일이 생겨서 인사도 못 드리고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현장사무실에 딸린 간이 부엌에서 커피를 타는 동안 그녀는 카메라의 필름을 비디오에 넣고 되감기를 했다. 플레이버튼을 누르자 27인치 LCD텔레비전화면이 밝아지면서 비취색 바다가 나타났다. 그리고 곧 은빛의 노래미 떼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은백색의 몸에 검은 줄무늬가 나있는 노래미는 비취색 바다와 잘 어울렸다. 감태와 대황이 육지의 나무들처럼 바위에 뿌리를 내린 채 위로 솟구쳐 있는 장면에서는 짧은 감탄사를 터뜨리면서 ‘정말 아름다운 곳이군요!’ 하고 그녀는 소리쳤다. 인스턴트커피가 든 머그잔을 들고 그녀 옆자리로 다가간 내가 잔을 내밀면서
“선장과 마을 사람들이 왜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어요.”
라고 말했다. 그녀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장에게 이 테이프를 보여줘야 할 것 같군요. 국가 예산을 낭비할 필욘 없으니까.’ 하고 대답하면서 머그잔을 받았다. 영상이 부채뿔산호 군락으로 바뀌었다. 울긋불긋한 산호와 비취색 바다는 정말이지 서해안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토말 근처에 이런 색깔과 산호 군락을 가진 아름다운 바다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인스턴트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내게 물었다.
“저 영상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카메라를 그렇게 소중히 했던 거군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뭐 어느 정도는요……’ 하고 대꾸를 했다. 그때 텔레비전화면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협곡을 따라 수심 20미터 가까이 내려간 뒤였을 것이다. 잠시 카메라의 플레이버튼을 눌렀는지 하우징에 달린 백라이트가 어둠 속을 밝히면서 동굴 입구의 전경이 나타났다. 지름이 30미터는 될 것 같은 동굴은 화면 속에서도 매우 웅장해보였다. 그리고 다시 화면은 컴컴해졌다. 해류를 따라 동굴 안 깊숙이 들어간 내가 길을 잃고 당황해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가 리모컨을 집어 들어 2배속으로 빠르게 테이프를 돌렸다. 노이즈가 생기는 화면 속에서 다시 카메라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테이프를 정상속도로 되돌려놓자 텔레비전화면엔 수중카메라의 백라이트와 물 사이의 흑백 경계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하얀 불빛 아래에 촬영된 동굴 속 바다에는 플랑크톤이 먼지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동굴에서 길을 잃어버려서 우왕좌왕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카메라에서 손을 떼지 않았군요.”
“동굴 아래에서 무슨 소릴 들었거든요.”
“소리요?”
그녀가 텔레비전화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화면 속의 영상을 가리켰다. 화면에 회색빛의 바닥이 나타나고 있었다. 뻘이 아닌 고운모래바닥이었지만 바닥 사이사이에는 하얀 뼈가 쌓여있었다. 사람이 아닌 고래의 뼈 같았다. 그리고 목조선의 파편들도 보이기 시작했는데 오래전에 침몰한 탓인지 온전히 배의 형태를 갖춘 것은 없었다. 하지만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돛대라든지, 나무못을 대고 박은 나선형의 선체 일부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었다. 파편 근처 바닥에는 모래에 3분의 2쯤 파묻힌 도자기와 금빛을 내는 금속이 듬성듬성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동굴 속 바닥을 촬영한 화면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었다.
“느낌에…… 상괭이들의 무덤 같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저기 배들 사이에 보이는 유물들은요?”
그녀가 머그잔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저런 장면들까지 일부러 촬영하려고 하진 않았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질소에 취해있어서 뭐든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그녀는 ‘질소요?’ 하고는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대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 촬영부분을 리플레이해 살피면서 독백하듯이 내게 말했다.
“우연이든 아니든, 성철씬 뭔가 대단한 걸 발견한 것 같아요. 저기 바닥에 가라앉아있는 배들 말이에요. 어쩌면 선장이 말했던 임진왜란 때 사라졌다던 왜구들의 배인지도 모르겠거든요.”
“도자기와 금괴를 가득 실은……”
내가 농담처럼 대꾸를 하자 그녀는 피식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저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P-4구역을 보호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요?”
“마을 사람들도 알고 있었을 거란 말입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서울서 양식장 하겠다고 내려왔던 사람도 그 때문에 마을에서 쫓겨났는지도 모르구…… 저기…… 홍가네라고 그랬나요? 성철씨처럼 P-4구역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사람요. 거기 가족들을 한번 만나봐야 할 것 같아요.”
“왜요?”
그녀는 화면의 한 컷을 정지시키면서 말했다. 정지된 화면에는 모래바닥 사이에 묻혀있는 하얀색 도자기와 금빛이 나는 금속 덩어리의 일부분이 어렴풋이 드러나 있었다.
“그냥요. 그래야만 할 것 같았어요.”
그녀는 정지화면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라디오에선 위니라는 이름을 가진 중형 태풍이 시속 20킬로미터로 북상중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대만 남부지방을 강타할 것으로 예상했던 태풍이 대만 해협을 살짝 비켜나고 있다고도 했다. 이 상태로 태풍이 진로를 유지한다면 제주도를 우회해 우리나라 서남쪽을 강타할 가능성이 많다는 우려 섞인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선장에게 어렵게 알아낸 홍가네는 선창에서 가까운 어촌에 살고 있었다. 10년 전에 죽었다는 그에게는 환갑을 지난 아내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40대 초반의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어부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성실하고 수완이 좋아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거기다 젊은 나이에 이장 일을 도맡아 처리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듣는 모양이었다. 선장이 알려준 전화번호로 미리 약속을 하고 마을로 들어섰다. 스타렉스 밴을 큰길가에 주차시키고 선장이 그려준 약도를 따라 마을 골목으로 향했다. 골목을 따라 어른 키 정도의 돌담들이 집집마다 둘러싸고 있어 나름 어촌풍경의 정취를 느낄 수도 있었다.
경사진 골목을 15분쯤 오르자 두 갈레 길이 나왔다. 그 중에 오른쪽 골목의 첫 번째 파란 대문이 이장이 사는 집이었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하얀 진돗개 한 마리가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개 짖는 소리 때문인지 젊은 이장이 현관문을 열고 급히 밖으로 뛰쳐나왔다. 나이키 운동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이장은 진돗개를 개집으로 몰아넣은 뒤 다가와 과장과 내게 인사를 건넸다.
“기다리고 있었어라. 싸게 안으로 들어오시오. 어매가 시원한 콩국술 말아 났응께.”
거실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와 나는 이장이 매우 활발하고 재밌는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버지에 대해 말해주었는데 요약하자면 배가 사고로 전복되었을 때 상괭이가 다가와 구해주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도 제 나이 땐 여그서 이장질을 하고 살았응께요. 아침 먹고는 늘 미역 양식장을 둘러보곤 하셨는데 그날도 그랬지라.”
“그러다 사고를 당하신 거군요.”
“말하자면 좀 복잡하요.”
이장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상괭이가 자신의 덩치보다 큰 아버지를 선창에서 가까운 북쪽 방파제 앞에 내려놓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무용담 비슷하게 늘어놓았을 뿐이다. 어제 그런 비슷한 일을 겪지 않았다면 아마 그녀와 나는 젊은 이장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장에게 ‘왜 그들이 아버님을 구해줬을까요?’ 하고 물었다. 이장은 ‘글쎄요……’ 하고는 길게 뜸을 들이다가 덧붙이기를
“다 조상님들 덕분 아니것소.”
하고 대답했다.
“조상님들요?”
그녀가 반문을 하자 이장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께 위대한 유산 말이라.”
“P-4구역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거북 섬 앞바다요.”
이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답했다.
“잘 알고 계시는구먼요. 우린 여지껏 분수에 맞게 바달 섬기며 살았어라. 아무리 인간이 잘난 척, 똑똑한 척해도 자연 앞에선 한낮 미물일 뿐이니께. 바단 그런 곳이지라. 바다를 통해서 먹고사는 우린데 어떻게 그곳을 거스르며 살 수 있것소. 욕심도 크면 죄가 되는 거인디……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고 사는 게 맞지 않것소.”
“사실 이 분도 어제 상괭이가 아니었으면 물귀신이 될 뻔했어요.”
“뭣시라. 참말이여?”
이장이 한쪽 무릎을 치켜세우며 내게 다가왔다. 그는 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지만 전 기억하지 못해요. 반쯤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여서……’ 라고 대꾸했다. 그러나 젊은 이장은 나의 어깨를 살며시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진 그때부터 많이 변했지라. 바다를 공경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달고 다녔응께.”
“왜 하필이면 거북 섬 앞바다가 그런 곳이 되었던 거죠.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아직 모르고 있었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괭이들 말이지라. 우린 모두 상괭이를 바닷사람으로 부르고 있응께…… 그들이 늙거나 병이 들면 모두 그곳 바다로 가지 않것소. 이유는 모르지만서도 거기 거북 섬 앞바다에서 마지막 요양을 하다 죽으니께.”
나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동굴 속에서 봤던 수많은 고래 뼈가 왜 하필이면 그곳에서 발견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다사람이라고 불리는 상괭이들은 마지막 남은 인생을 P-4구역 안에서 지내다 때가 되면 해류를 타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와 그들의 조상이 묻혀있는 그곳에서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개발이란 명목으로, 아니면 생업의 수단으로 바다를 수탈해가는 사람들의 손길이 결코 닿아선 안 되는 최소한의 거룩한 성지.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그들의 마지막 안식처를 지키기 위해 모두들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이 그 바달 신성시 여기는 거군요. 상괭이들도 그걸 알고 있단 거구요.”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라…… 덤으로 옛날이야길 하나 하자면 왜정시대 때 말이여. 쪽발이들이 고래 고길 좋아 않흐요. 그래서 상괭이를 남획한 적이 있었지라. 그때 바다가 노해서 큰 재난이 닥친 적이 있응께. 모두 다 휩쓸고 가 버렸지라.”
“옛날부터 내려온다는?”
그녀의 말에 젊은 이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임진왜란 때도 마을 사람들을 구했다 안허요.’ 라고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스타렉스 밴이 주차된 큰길로 걸어가는 과장의 뒷모습은 어떤 생각에 골몰해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럴 경우 어김없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오래된 습관 같았는데 나는 그런 그녀의 행동이 어색하거나 싫진 않았다. 야트막한 골목에서 바라다보는 항구와 바다는 꽤 운치가 있어 보였다. 거기다 주변의 낮은 돌담과 돌담 사이의 틈새를 비집고 자란 덩굴의 푸른 잎사귀가 정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청바지 호주머니에 양손을 집은 넣은 채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장 집 마당에서 개 짖는 소리에 놀란 그녀가 내 옆에 바짝 다가섰을 때 그녀의 가슴 부위가 팔등을 스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에서 나는 샴푸냄새와 함께 그때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는데, 선배의 말처럼 3년을 오로지 좁고 어두운 고시촌 쪽방에서 법전만을 파고든 탓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한 발짝 앞서 가던 그녀의 뒷모습이 그래서 더 예뻐 보였는지도 모른다.
“성철씬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갑자기 걸음을 멈춘 그녀가 뒤돌아서서 내게 물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나는 얼굴을 붉히며 엉거주춤 되물었다.
“촬영한 필름요?”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굴 속 필름은 없애버리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성철씨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군요.”
나는 그녀의 미소에 또다시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차피 거긴 계장에게 말해서 작업을 하지 않을 생각이잖아요. 그리고 이장의 말처럼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할 것도 같고. 바다와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상괭이들에게요.”
“성철씨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니까.”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되나요?’ 하고 반문을 했다.
표본조사에 필요한 배를 구하는 일은 소나 작업을 할 때와는 전혀 달랐다. 선장이 나서서 사람을 소개시켜준 까닭이다. 선장은 그녀에게 무슨 이야길 들었는지 - 아니면 이장에게서 어떤 소릴 들었는지도 모른다. - 전과는 달리 매우 협조적이었다. 가끔 내게도 ‘시방 홍가네 담으로 목숨이 질긴 양반이구먼.’ 하고 농담을 건네기도 하면서 은근히 친근감을 나타냈다. 그녀가 선장과 함께 표본조사에 필요한 배를 구하러 선주를 만나고 가격을 흥정하고 일정을 잡는 동안 나는 현장사무실에서 촬영한 필름을 편집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손가락 길이만한 6미리테이프에서 동굴 속 화면이 들어있는 마지막 15분을 뺀 동영상을 CD에 복사해 포장하는 일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무렵엔 수원 본사에 근무하는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걱정을 끼치게 해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아직 청소구역의 수중촬영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선배는 내 컨디션을 체크하면서 ‘필요하다면 너와 교대할 사람을 보내줄 수도 있어.’ 라고 말했다. 나는 당연히 그럴 필요가 없다고 응답했다. 이번 일은 내가 끝까지 마무리를 하고 싶다고. 선배는 습관처럼 ‘오케이’ 라는 말을 건네면서
“하지만 너무 무리하진 마라. 네 아버지에게 멱살 잡히고 싶진 않으니까.”
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과장에게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필름편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묻고 나서 내일 오후에 표본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배와 사람도 구해놓았다고. 그렇다면 수중촬영은 늦어도 점심시간이 지나기 전에 끝을 내야만 했다. 다행히 촬영에 필요한 배는 선장이 한 번 더 수고를 해주기로 했다고 말하면서 그녀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 같죠?’ 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들이 정말 동굴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아니요.’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뭐가 더 소중한지 아는 사람들 같았어요.”
“과장님은요? 남은 필름을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저도 마을 사람들과 같은 생각이에요. 위대한 유산은 보호받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욕심이 과하면 그것도 죄가 된다는 젊은 이장의 말이 떠올랐다. 나 또한 그녀나 마을 사람들처럼 동굴 속에 난파된 배들이 어느 시대, 누구의 것이었으며 그 안에 어떤 유물들이 있는지 - 설사 그것이 값나가는 도자기나 금괴라 해도 - 관심이 없었다. 다만 왜 내가 동굴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는지, 왜 그들이 날 살려주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질 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느꼈던 절대적인 고요와 어둠이 공포심이나 두려움이 아닌 편안함으로 다가왔는지에 대해서도.
나는 느긋하게 캔맥주를 마시면서 6미리원본테이프를 불태웠다. 이미 렁과 수중카메라 배터리는 충전을 해 두었고 스킨스쿠버 장비도 점검을 끝낸 상태였다. 편집한 CD는 플라스틱케이스에 넣어 그녀가 준비한 서류들과 함께 판지파일 안에 끼워두었다. 거기다 내일 있을 수중촬영과 표본조사만 끝내면 이곳 일도 마무리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홀가분해져 있었다. 아직 항구의 정취를 잃지 않은 마량항의 밤풍경도 마음에 들었다. 테이프가 타면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무실 베란다 앞 마당에 앉아 MP3의 볼륨을 높였다. 이어폰에선 이루마의 피아노곡이 흘러나왔다. 그때 도로가에서 헤드라이트불빛이 일렁거렸다. 스타렉스 밴이 들어와 마당 한 구석에 주차를 했다. 운전석에서 내린 그녀가 터벅거리며 다가와 ‘맥주 남은 것 없어요?’ 하고 피곤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사무실 안에서 캔맥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녀에게 캔을 건네주면서 ‘수고 많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이게 제 일인데요. 뭐.’ 하고는 맥주를 입으로 가져가 벌컥거리며 마셨다.
그녀도 하루 일과가 끝나면 이곳에 앉아 맥주를 마시곤 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마량항의 밤풍경을 좋아한다는 말과 함께. 나는 수긍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내일 일이 끝나면 다음 주부턴 휴가군요.”
그녀는 맥주를 들이키면서 ‘그래요.’ 하고 말했다.
“성철씨도 집으로 돌아가겠군요.”
나는 대답대신 마량항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대리한테 들었어요. 고시공부를 하고 있다고……”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는요. 하지만 공부도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아르바이트도 하게 된 거구요…… 여길 나가면 진짜 제 길을 찾아볼 생각이에요.”
“염두에 둔 일이라도 있나요?”
“아직요. 하지만…… 동굴 속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말예요. 그때 전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죽음이라는 건 주사를 맞을 때처럼 아프지도 않고 손을 잡아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요……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실, 고시공부를 시작한 것도 제 자신과 부딪쳐 싸울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거든요. 단지 고시촌 쪽방으로 도망친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그런 실수를 반복하고 싶진 않아요.”
“저와 비슷하군요.”
“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저도 이곳으로 도망쳐 온 것뿐이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한동안 마량항의 소박한 밤풍경을 쓸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 역시 갑자기 침울해져서 조용히 맥주만 들이켰다. 차량을 실은 바지선 한척이 항구에 정박하면서 길게 뱃고동을 울리고 있었다.
“말아톤이란 영화 있잖아요. 거기 조승우가 주인공으로 나오죠. 하지만 말예요. 현실은 영화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게 아니거든요. 자폐증이란 건 앓고 있는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참기 힘든 고통을 안겨다주니까.”
“……”
그녀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전 부모로서의 자격이 없는지도 몰라요.’ 라고 덧붙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이혼하면서 아일 시설에 맡겨 버렸으니까요.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럼, 아이와 일본여행을 간다는 건……”
“사실은 죄책감 때문이에요. 그렇게라도 해주지 않으면 제가 힘들어서 못살 것 같았으니까……”
그녀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서 일어나 마당 한 가운데로 걸어갔다. 그리고 빈 캔을 허공을 향해 집어 던졌다. 캔은 곧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시멘트바닥으로 떨어졌다.
“저기 저 캔처럼 아이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이혼한 뒤엔 그 아일 원망하기도 했었죠……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등을 보이고 선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만월이 뜬 밤하늘엔 도시에선 볼 수없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허리에 양손을 가져간 채 그녀는 몇 분을 그런 자세로 가만히 서있었다. 자리로 되돌아온 그녀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태연한 척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오히려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자동차 열쇠를 건네면서 ‘내일은 새벽부터 이동을 해야 하니까 일찍 모텔로 돌아가 쉬세요. 전 서류 정리할 게 남아서 오늘은 여기서 지내야할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애써 그런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동정이라는 건 결코 상대방을 위한 배려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편집한 필름은 CD에 구워서 판지파일 안에 넣어두었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사무적인 목소리로 그녀에게 응답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베란다 밖에 서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냉장고에서 생수를 마시는 모습이, 책상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켜고 판지파일을 펼쳐드는 모습이 마치 슬라이드사진처럼 선명했지만 그만큼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스타렉스 밴으로 걸어가는 대신 사무실 현관으로 들어섰다. 책상의자에 앉아있던 그녀가 뒤돌아서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 키스를 했다. 그녀의 양손이 나의 가슴을 밀치다말고 멈칫거렸다. 꿈속에서처럼 그녀의 입안에선 달콤한 스트로베리향이 나는 것 같았다.
가린이로부터 헤어지자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싸우거나 다툰 적도 없었으며 늘 그렇듯 편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일주일전까지 사랑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던 그녀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즈음 결혼에 대한 생각도 은근히 하고 있었다. 대학시절 내내 그녀와 붙어 다녔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녀 또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평생을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린이는 언제부턴가 나와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던 나에겐 그래서 아마 - 그 후로도 오랫동안 - 실연의 상처가 더 깊고 더 아팠는지도 모른다.
마량항의 수평선에서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붉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어제 마셨던 머그잔에 다시 인스턴트커피를 타고 냉장고 안에 있던 비스킷을 꺼내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일출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비스킷을 먹었다. 그녀도 나도 의식적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피하고 있었다. 대신 오늘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했다. 날씨 이야기나 곧 선장으로부터 연락이 올 거란 어쭙잖은 농담을 나누기도 하면서.
우리는 모두 관계라는 것을 통해서 살아간다. 상괭이란 고래들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바다와 사람이 관계하고 사람과 동물이 관계하고 홍가네 아저씨와 상괭이가, 그리고 나와 상괭이가 관계를 했듯이. 동굴 속에서 느꼈던 평온함은 한동안 내게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던 공간은 어둡고 막막하고 외로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따뜻하고 뭔지 모를 깊이가 있었으며 편안했다. 왜 나는 이제껏 죽음이라는 실체를 그저 두렵게만 여기고 있었을까? 왜 나는 사랑을 하면 또 다시 상처를 받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왜 나는 고시공부를 포기하면 모든 걸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때야 비로소 동굴 속에서 느꼈던 공포 뒤의 평온함이 욕망에 대한 집착을 버렸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내 마음 속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잠시만 숨을 돌리고 주위를 둘러본다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기적적인 것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홍가네 아저씨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와 그의 아들과 선장이, 마을 사람들이 그곳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인지도.
수중촬영과 칼코리를 이용한 표본조사는 순조로웠다. 날씨도 파고도 물때도 모두 좋았기 때문이다. 칼코리로 표본조사에 필요한 쓰레기를 수집해 종류별로 분류하고 샘플을 만들어 촬영하는 것이 그나마 제일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녀와 나는 줄곧 일에만 열중했다. 적어도 내일까지 그녀는 보고서에 파묻혀 살아야할 것만 같았다. 무슨무슨 양식의 서류들과 사진들과 계획서들이 그녀의 커다란 숄더백 안에 가득했다. 나는 오전엔 물속에서 촬영을 하고 오후엔 배 위에서 사진을 찍어대며 그녀의 일을 도왔다. 그러나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그녀와 나는 업무외적인 말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어젯밤 일을 그녀는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두 사람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건 선장이었다. 그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나와 그녀의 미묘한 변화에 대해
“간밤에 무슨 일 있었어라? 두 사람 모양새가 영 거시기 하요.”
라고 농담처럼 내뱉기도 하고 ‘오늘이 마지막이 되는 갑소.’ 하면서 서로들 아쉬워서 그럴 거라고 추측하는 것 같기도 했다.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었을 무렵 시침은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선장은 ‘여기까증와서 전복회도 대접 못하고 보내면 내 가오가 서지 않는단 말이제.’ 라면서 자신과 아내가 운영하고 있는 횟집으로 과장과 나를 초대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일 해남군청에 들어갈 서류작업을 핑계로 정중히 사양을 한 뒤에
“성철씨라도 먹고 오세요. 오늘 촬영한 필름은 제가 편집을 해서 CD로 구우면 되니까.”
라고 말했다. 그녀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나는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나와 단둘이 현장 사무실에 있는 걸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라고 지레짐작을 해버린 탓이다.
해남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괭이 두 마리가 그물에 걸려 죽었다는 소릴 들었다. 포획당한 흔적이 없어 마량항 공판장에서 마리당 30만원에 팔려나갔다는 이야기를 건네는 선장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것소.’ 라고 혼잣말을 하는 그에게 ‘이런 일도 있습니까?’ 라고 내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끔은……’ 하고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날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나는 과음을 했다. 전복회는 생각보다 육질이 단단하고 비린 맛이 났지만 참기름과 어울리는 고소한 전복죽은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자연산 돔을 내오는 선장의 아내는 능청스럽고 구수한 입담을 가지고 있었다. 선장에게서 많은 이야길 들은 탓인지 ‘왜 과장님은 안 오시오. 이 양반이 예쁘다고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해서 보고 싶었는데’ 라고 눈을 흘기며 묻기도 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아니면 싱싱한 횟감 때문인지 나는 평소의 주량보다 많은 술을 마셨다. 선장과 그의 아내가 내뱉는 재밌는 이야기들에 취해 마시고 어젯밤 사무실에서 있었던 그녀와의 일이 떠올라 마셨다. 선장과 상괭이와 P-4구역에 대한 이야길 나누기도 했는데 그는 ‘홍가네도 처음엔 그랬지라. 그리곤 사람이 확 변해선 거북 섬 앞바달 참으로 소중히 여기게 됐응께.’ 라고 농담처럼 내뱉기도 했다. 과장에 대해 수다를 떨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필름이 끊겨버렸다. 두통을 느끼며 눈을 떴을 땐 선장의 아파트 거실이었다.
선장의 아내가 정성껏 끓여준 홍합탕으로 해장을 하고 마량항의 현장사무실로 향했다. 과장은 바다정화사업과 관련된 계획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공무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녀로부터 짐을 챙긴 뒤 현장사무실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핸드폰 문자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나는 속이 메스꺼워서 해남 시가지를 벗어나기 전에 약국에 들러 컨디션을 사서 마시고 선장에게는 피로회복제를 건네주었다.
마량항으로 가는 2차선 도로를 달리면서 이곳도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타너스나무와 은행나무와 벚나무 사이를 차례로 지나쳐갔다. 논에는 연녹색의 벼들이 자라고 있었고 열어놓은 차창으로는 훈훈한 바람이 불어왔다. 선장은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켠 뒤에 ‘오늘이 마지막이지라?’ 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인연이란 게 말이여. 참 거시기하요.”
“저도 선장님이나 이장님을 만나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아요.”
“아니, 상괭이 말이여. 동굴 속에서 자넬 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것소. 참으로 신기한 일이당께.”
“제가 그런 이야기까지 했었습니까?”
머리를 긁적이며 내가 물었다. 선장은 그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랑께 인연 아니것소? 이제껏 여그 살면서도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은 없응께.”
하고는
“아시것소? 젊은 양반, 우리한텐 저그 바다가…… 바다 자체가 보물잉께.”
라고 의미 있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고개 하나를 막 넘어서면서 선장이 말한 소중한 보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연푸른 녹색의 바다가, 그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삶의 터전이 - 어머니의 자궁처럼 - 포근하게 대지를 감싸고 있었다.
結
현장사무실 바닥을 밀대걸레로 닦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책상 위는 걸레질을 했다. 그리고 숙직실에 딸린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와 책상의자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켰다. 과장을 기다리는 동안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메일을 확인하고, 연락이 온 친구들과 고시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몇몇 형들과 동생들에게 밀린 답장을 썼다. 모두들 앞날이 불안하기만 하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주식으로 돈을 잃었고 어느 친구는 구조조정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같은 고시원에 있었던 형은 법원공무원 9급 시험이라도 쳐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 공무원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버지에게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아직 무엇을 할 지 정하진 않았지만 1년 정도 바닷가 주변을 돌면서 천천히 생각해보고 싶다고. 추신에는 아버지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적었다. 적어도 지난 3년 동안 최선을 다해 노력해왔지만 참담한 결과가 말해주듯이 이게 제 실력의 한계인 것 같다는 내용을 포함해서. 수신확인을 하고 나서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날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보단 손도 못 대고 미뤄두었던 일을 마무리 한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해져 있었다.
인터넷 검색창을 돌아다니다 문득 상괭이라는 고래가 떠올랐다. 나는 네이버에 들어가 상괭이란 단어로 검색을 했다. 네이버의 백과사전에는 상괭이에 대해서
‘상괭이(Neophocaena phocaenoides)는 쇠돌고랫과에 속하는 여섯 종의 고래 중 하나이다. 쇠물돼지 혹은 무라치라 부르기도 한다. 몸빛은 회백색이며, 몸길이는 1.5-1.9 미터 정도까지 자란다. 등지느러미가 없는 대신에 높이 약 1 센티미터의 융기가 나있다. 황해에서 비교적 흔히 나타나는 종이다. 바다와 민물에서 모두 목격 가능하다.’
라고 나와 있었다. 뒤이어 나는 어느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상괭이의 동영상을 보면서 ‘저 아기처럼 천진스럽고 순수한 녀석들이 날 살렸을까?’ 라는 생각에 감격하기도 했다.
오후가 되면서 잠잠하던 바다가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바람도 제법 강해져서 열어놓은 사무실 창문을 닫아야만 했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기상정보에는 위니라는 태풍이 오늘 밤 자정 경부터 우리나라 서남해안에 상륙할 예정이라고 나와 있었다. 나는 태풍의 예상 진로를 나타내는 점선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그녀와 나눈 첫 번째 대화가 위니라는 태풍에 관해서였다는 걸 떠올렸다.
그녀가 현장사무실에 도착했을 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5분 전에 미리 그녀의 전화를 받은 나는 사무실 창문을 닫고 태풍에 대비해 차단기를 내려놓았다. 현관문 열쇠를 문 옆 화단 뒤에 숨기고 막 일어섰을 때 스타렉스 밴이 마침 사무실 마당으로 들어섰다. 나는 어깨에 멘 배낭을 뒷좌석에 던져 넣고 일부러 조수석에 앉았다. 안전벨트를 매는 동안 그녀는 차창 문을 반쯤 내린 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일은 잘 끝났습니까?”
어색해지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통장 계좌번호는요?’ 하고 되물었다. 나는 미리 준비한 메모지를 그녀에게 건넸다.
“돈은 두 달 쯤 뒤에 입금될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이번엔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투가 너무 사무적이어서 나는 오히려 마음이 심란해졌다.
광주로 떠나기 전에 우리가 머물렀던 모텔에 잠시 들러 그녀의 소지품을 챙기고 밀린 방값을 지불했다. 카운트에서 졸린 눈으로 앉아있던 모텔 사장이 ‘오늘 새벽에도 상괭이 다섯 마리가 저그 모래 턱 근처까지 떠내려 와 죽었다는디…… 정말이지 무슨 일인지 모르것소.’ 라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무관심한 듯 ‘이장님은요?’ 하고 물었다. 사장은 ‘시방 그것 때문에 난리가 났응께. 그 양반 성격에 현장 조사한다고 벌써 나가 브렀제…… 흉시라고 말이여.’ 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량항에는 태풍을 피해 정박한 어선들과 바지선, 해경순시선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2차선 도로를 달리면서 ‘오늘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었어요.’ 라고 말했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점점 더 굵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 때문은 아니겠죠?”
“뭐가요?”
“상괭이들이 이유도 없이 자살하는 거요.”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성철씨가 촬영한 필름 덕분에 P-4구역이 정화사업에서 제외되었으니까요. 오히려 성철씨가 그들의 터전을 지켜준 셈이에요.”
나는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상괭이들이 이유도 없이 죽어간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과 함께 혹시라도 그들의 고귀한 장소를 허락도 없이 촬영한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다시 말을 건넸다.
“어제 본사에서 전화가 왔었어요. 조 대리요. 갑자기 사직서를 내고 완도 사무실에서도 사라졌다구.”
“네?”
상체를 일으키며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동굴요. 그 동굴 안 영상을 본 건 세 사람이잖아요. 저와 성철씨, 그리고……”
“아!”
나는 그제야 그녀의 말뜻을 알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시트에 몸을 기대고 앉아 서글서글하던 그의 말투와 표정을 떠올렸다.
“좋은 사람 같았는데……”
힘없이 내가 말했다. 그녀는 ‘그러게요.’ 하고는 분위기를 바꾸려는지 라디오를 틀었다. 스피커에서 날씨와 잘 어울리는 이루마의 ‘Kiss The Rain'이 흘러나왔다. 그녀와 나는 조용히 음악을 들었다. 와이퍼가 지나갈 때마다 2차선 도로의 정겨운 풍경이 빗물 사이로 지나갔다.
광주터미널에서 그녀와 어떻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주 근처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면서 ‘위니라는 태풍이 상괭이의 죽음하고도 관계가 있을까요?’ 하고 물었을 뿐이다. 그 후로 1년 가까이 나는 줄곧 외지로만 떠돌아다녔다. 속초에서는 어판장의 점원으로 일했고 부산에서는 냉동 창고에서 일했다. 딱 한번 집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내민 용돈을 쑥스럽게 받고 담배를 피우고 그리고 저녁엔 어머니가 차려주는 술상을 앞에 두고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해에 나는 대양해양기술에 정식으로 입사를 했고 첫 부임지로 내려간 곳이 마량항에 있는 현장사무실이었다. 회사에서는 이미 내가 기적의 사나이로 소문이 나 있었다. 선배가 ‘네 첫 부임지로 거기만한 곳이 없을 거다.’ 라고 어깨를 두드리며 이야기할 정도였다. 물론 마량항 사무실에서 과장을 만날 순 없었다. 그녀는 일본 여행을 다녀온 몇 달 뒤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무실은 비어있었고 나는 여길 떠났을 때처럼 바닥을 닦고 걸레질을 했다. 그리고 마당에 있는 등받이 의자에 앉아 마량항의 가게에서 사온 캔맥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사무실로 내려오기 전에 선배는 위니라는 태풍 - 다행히 마을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 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P-4구역 근처 바위섬에서 반쯤 공기가 빠진 고무보트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보트 안에서 스킨스쿠버 장비가 나오면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상괭이들의 이유 없는 자살과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은 인간들이 거북 섬 앞바다에 흑심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멋대로 정의를 내려버렸다. 시체가 떠오르지 않은 것에 대해선 상괭이들이 구해주었을 거란 의견과 태풍 때문에 먼 바다로 떠밀려 나갔을 거란 의견이 분분했는데 지금까지도 거기에 대해선 확실한 대답을 찾을 순 없었다. 그렇게 마량항의 주민들은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 내면서 위대한 유산을 지켜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남은 캔을 들고 사무실에 딸린 간이 부엌으로 들어간 나는 냉장실에 캔맥주를 넣어 두었다. 그리고 숩관적으로 냉동실 문을 열어봤는데 뜻밖에도 그곳에 그녀와 일출을 보면서 먹었던 비스킷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순간 나는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라 마음이 포근해졌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추억으로 현장사무실에서의 밤을 간직했을 거란 생각에 흐뭇해지는 것이다.
책상 전화기에서 벨이 울렸다. 나는 비스킷 한 봉지를 꺼내 포장을 뜯으며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속에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함께 ‘시방 내려왔는가? 횡한 사무실에 있지 말고 싸게 가게로 오시오. 전복 회라도 먹어야제. 이장도 와 있응께.’ 라는 반가운 선장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200자 원고지 224장)
줄거리
지방의 국립대 법학과 출신인 나는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고시공부를 하지만 3년 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방황한다. 그즈음 대학 선배로부터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받고 마음도 추스를 겸 남해안으로 내려간다.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익힌 스킨스쿠버 실력이 그나마 녹슬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곳에서 김윤경 과장을 만난 건 어쩌면 인연인지도 모른다. 서른 후반의 그녀는 얼마 전 이혼을 하고 마량항 현장 사무실에 홀로 남아 남해안 땅끝 마을의 바다정화사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도와 바다정화사업의 조사구역에 해당되는 바다 밑을 소나로 조사하고 수중촬영을 하고 표본조사를 하는 일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땅끝 마을의 주민들은 유독 P-4구역만은 조사를 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해남 군청 해양자원과 계장에게 소개받은 선장도 마찬가지다. 그녀와 나는 문제의 P-4구역에 대해 '왜 주민 모두가 그쪽 바다를 경외시하는 거죠?'라고 물어보지만 선장은 '모든 게 이성으로만 판단해선 안?縟?' 라는 알 수 없는 말만 한다.
문제의 P-4구역을 제외한 조사구역의 소나 작업을 무사히 마친 그녀와 나는 차츰 업무외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까워진다. 다음 주엔 아이와 함께 일본여행을 갈 예정이라던 그녀는 남자들도 힘들어 하는 현장일을 자원해서 하는 것 역시 아이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 나 역시 법대에 들어가고 고시공부를 시작한 이유가 아버지의 권유와 헤어진 여자 친구 때문이라는 생각에 갈등하기 시작한다.
P-4구역의 소나작업을 하지 못한 그녀는 완도 사무실에 근무하는 조 대리를 불러, 그가 가지고 온 고무보트를 타고 P-4구역으로 향한다. 나는 계획대로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P-4구역의 바다를 잠수해 들어가고 수중촬영을 시도한다.
예상과는 달리 P-4구역의 바다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아름다운 곳이다.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청정지역으로 감태와 대황같은 바다 식물과 산호 군락, 수많은 바다생물이 사는 유토피아 같은 곳이었다. 나는 그 광경에 감탄을 하고 그런 풍경들을 빠지지 않고 수중카메라에 담는다. 그러다 협곡을 지나게 되고 수심 20m지점에서 지름이 30m가 넘는 거대한 동굴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꿈속에서 본 듯한 동굴의 전경에 매료되어 동굴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적막과 고요, 그리고 어김없이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나는 어떤 생물의 소리를 듣게 되고 그 소리에 이끌려 동굴 속 아래로 내려간다. 심해잠수에 필요한 장비 없이 수심 50m이상 내려간 나는 이미 질소마취로 몽롱한 정신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많은 고래 뼈와 난파된 배의 파편을 보게 되지만 곧 의식을 잃고 만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고 과장은 내가 기적적으로 살았다는 말을 한다. '상괭이들이 성철 씰 살린 것 같았어요' 라는 말을 건네면서…. 나는 동굴 속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그 미스터리를 풀어줄 수 있는 열쇠는 내가 그곳에서 찍은 수중카메라의 6㎜ 필름뿐이다.
마량항 현장사무실에서 먼저 필름을 확인한 조 대리는 완도 사무실에 바쁜 일이 생겼다는 메모만을 남긴 채 사라지고, 그녀와 나는 P-4구역의 바다 속을 찍은 필름을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굴 속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마을 사람들이 전설처럼 말하던 이야기들이 실은 모두 사실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녀와 나는 고심 끝에 동굴 속 필름을 불태우게 되고 동굴과 관련된 모든 것은 비밀로 하자고 약속한다.
그러나 그 다음 날부터 상괭이들이 이유도 없이 자살을 하기 시작하고 대만해협을 지난 위니라는 태풍이 서서히 마을로 다가온다.
당선소감 - 힘든 글쓰기… 용기 준 분들께 감사
저에겐 고마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글쓰기란 건 내가 생각했던 낭만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힘들고 갈등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에게 항상 용기와 믿음을 주신 부모님과 누님들에게 먼저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저와 처음 글공부를 시작했던 문우 장소연 씨와 그때 스승이었던 김헌일 선생님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고향 부산을 떠나 방황하던 시절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저에게 작업실과 서재를 제공하며 진정으로 문학에 대한 가치와 보람을 느끼게 해 주신 이문열 선생님도 잊을 수 없는 분입니다. 추리문학관의 김성종 선배님, 이복구 선생님, 그리고 추리작가 선후배들과 문원의 문우들과도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 글을 뽑아주신 부산일보사와 심사위원 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다음 글의 취재에 응해주신 동양체육관 관장님과 관원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며 성실히 글쓰기에 매진하겠습니다.
김유철/1971년 부산 출생. 부산가톨릭대학교 방사선과를 중퇴하고 여러 가지 경험을 쌓으며 글 공부에 전념하고 있음. 현재 역사기록관에서 근무 중.
심사평 - 소설로서의 미덕 고루 갖춘 작품
소재나 체험 자체가 갖는 힘을 애써 외면할 이유는 없지만, 해양소설의 서술방식이 천편일률적이라는 지적, 주제 또한 깊이가 필요하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다행히 이번에 공모된 중편소설들은 이런 우려를 상당 부분 해소하고 있어 우리 해양소설의 수준 높은 성취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과학소설이나 서간체 혹은 항해일지의 도입은 서술방식의 다변화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소재의 외연을 확장하고 보다 심화된 주제의식을 드러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응모작 가운데 '위대한 유산', '폐선 항해', '회귀항로' 세 작품을 두고 고심하다가 '위대한 유산'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회귀항로'는 황천항해라는 상황의 긴박성을 잘 제시했지만, 인물의 행동과 심리에 충분한 동기를 부여하기 어려웠다. 선박 검사라는 특이한 분야를 다룬 '폐선 항해'의 경우, 폐선의 운명을 병상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시켰다면 상징의 깊이를 더했을 것이다. '위대한 유산'은 바다의 신성성,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겸허를 앞세웠다. 바다는 이성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아득한 신비를 감추고 있다는 것, 이기와 탐욕을 버릴 때 인간은 신성한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대한 유산'은 체험 못지않게 상징적 해석에 무게를 둠으로써 주제의 심화에 성공한 작품이다. 이와 함께 긴밀한 구성과 매끄럽고 숙련된 문장 등 소설로서의 미덕을 고루 갖춘 점도 '위대한 유산'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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