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미의 제대로 쓰는 해방 전후사] '혁명'인가 '권력 쟁탈'인가, 해방 직후 조선인민공화국의 진짜 얼굴
[6] 인공과 인민위원회의 실체
인공의 지방조직은 다양한 세력 참여
공산당세력 강한 곳서 미군정과 충돌
대표 선정과 운영에서 민주절차 왜곡
'인공이 이끈 민중혁명'이란 서사는
당시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해
대중이 인공 지지했다는 증거도 없어
문유미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교수
입력 2026.06.09. 23:31
김해 인민위원 박영형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1945년 10월 5일 부산에서 열린 건준 대표자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지도부는 건준의 명칭을 인민위원회로 바꾸고 정책 방향을 전환했다. 이에 많은 사람이 지지를 철회하고 탈퇴했다. 김해 인민위는 최유봉을 투표 없이 인민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박영형은 “최유봉은 공산주의자로 인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김해 군수 김중희도 “인공의 경남도지부 의장인 윤일이 최유봉을 선정했고, 군 행정 장악 정책은 상부 인민위원회의 지시였다”고 증언했다.
[이응준의 과거에서 보내는 엽서] [72] 김일성이 살려낸 박정희
이응준 시인·소설가
입력 2026.06.24. 23:39
그렇게 군인으로서는 끝장이 났고 사회인으로서도 별 희망이 없는 박정희에게 ‘역사의 아이러니’가 장난기 많은 신의 주사위놀이처럼 임한다. 김일성이 스탈린, 마오쩌둥의 허락과 도움을 받아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바로 이 덕에, 당시 수원으로 후퇴해 있던 육군본부 정보국 문관 박정희는 남로당 사건 이전의 육군 소령 계급을 회복한다. 그 현장에는 장도영 대령(훗날 육군참모총장으로 5·16쿠데타에 엮여서 참여했다가 반혁명 분자로 축출)과 김종필 중위(훗날 5·16쿠데타의 설계자)가 있었다.
만약 6·25전쟁이 없었다면 박정희는 저절로 시들다가 소멸해버렸을 공산이 크다. 김일성은 제 일생 최대의 적 박정희를 일으켜준 셈이 되고, 박정희의 국방과 경제발전에 가로막혀 남한을 복속시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