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2008 진주신문 가을문예 공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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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신문사>는 전국 규모로 열네번째 가을문예를 공모합니다. 대 상: 전국의 신인에 한함 기 타 경 과(역대 당선자) |
![]() [연재]자전거 타는 남자1 | ||||
2008 진주신문 가을문예 소설 당선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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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남자 / 서은아 밤새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설친 그녀는 거실로 나와 커튼을 젖힌다. 창밖은 지독한 안개비에 젖어 있다. 우기로 접어든 지도 두 달이 지난 11월 하순인 것이다. 이 나라의 P주에 온 지 2 년. 이런 날은 어김없이 그녀의 우울 지수도 치솟아 삶의 질이 최상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별로 위안이 되어 주지 못한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마친 그녀는 주방으로 간다. 그녀 집에 머물고 있는 이층의 여학생과 아래층의 최도 일찌감치 집을 나선 것 같았다. 오늘은 본국에서 국회의원이 오는 날이다. 그녀는 행사장으로 가려 했던 것과 달리 국장의 말대로 공항으로 간다. 공항에 도착하니 오 의원은 이미 도착해 있다. 인삼 아가씨까지 포함한 총인원이 20명, 그중 수행기자만 열 명이 넘는다. 여기까지 와서 오 의원, 그를 만나게 되다니. 막상 오 의원과 얼굴을 맞닥뜨린 그녀는 잠시 멀미가 일 듯 현기증이 인다. 오 의원은 아무 의미 없는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다. 그녀가 좌중을 돌아보는 동안 먼저 와 있던 리가 그녀에게 다가 온다. 일간지 세 개, 정보지 두개, 라디오 방송국 하나가 전부인 이곳이다. 교민 행사나 그밖에 자리에서 번번이 마주치게 되던 리는 차가 없던 시절에 그녀를 몇 번쯤 집에 데려다 준 적이 있다. 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쩐지 그늘이 있어 보였다. 국장의 말로는 독재시절 검사였던 리의 아버지가 어떤 사건에 휘말려 망명을 했다. 또한 그 때문에 사법고시 2차에서 몇 번의 낙방을 경험한 리는 한국 쪽으로 머리도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
[연재]자전거타는 남자2 | ||||
2008 진주신문 가을문예 소설당선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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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편은 잘 지내고 있을까? 자신의 일 외에 집안일은 어떤 일도, 하물며 은행에 가는 것도 큰일인 듯 해내던 남편이 그녀 없이 이민 수속을 잘 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소식이 더딘 남편에게 아침부터 신경이 쓰인다. 오늘 메뉴는 조개를 넣은 클렘차우더스프, 종종 썬 열무김치와 오렌지, 요플레를 마늘 바게트에 얹은 카나페, 그리고 가볍게 구운 쇠고기 산적이다. 그녀의 방과 면하고 있는 방을 쓰고 있는 여학생이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주방으로 나온다. 오늘 메뉴는 뭐예요. 수요일, 아침 식탁은 정말 기대가 돼요. 차고에 차를 주차하고 뒷마당으로 들어와 부엌문을 열려다가 그녀는 마당 한쪽에 서있는 자전거를 발견한다. 못 보던 것인데 새 것은 아닌 성 싶다. 공을 들여 닦았는지 바퀴살이 은빛으로 빛난다.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세입자들이 취사용으로 쓰고 있는 아래층 주방은 상당히 넓었고, 편의성을 갖추고 있다. 이 시간에 집에 돌아와 있을 사람은 박일 것이다. 그녀는 이층으로 올라와 욕조에 더운물을 틀고 아침에 채 살펴보지 못한 일간지를 뒤적인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녀의 청각은 예민하게 선다. 목조를 주재료로 쓴 이 주택은 아주 작은 소음도 공명음이 멀리까지 메아리친다. 11월 들어 임대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 남편은 아직 아무 소식이 없다. 본래 일에 대한 진행 상황을 신속하게 전해주는 타입이 아닌 것에 익숙한 그녀다. 하지만 본국 소식을 들은 지 일주일이 지나버렸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아주 바쁘던지 뭔가 계획한대로 안 풀리고 있다는 신호처럼 여겨진다. 그녀는 생활 정보지나 인터넷에 임대 소개 글을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욕을 마친 그녀는 무선 주전자의 스위치를 누르고 티백을 넣어 우린다. 내일 아침 뉴스 작성을 위해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난다. 박이다. 다른 숙소를 찾았을까? 거실로 나오며 마지못해 그녀가 말한다. |
[연재]자전거타는 남자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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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리 기자가 말하는 우리란 이곳의 일간지 기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녀도 그만 집에 가고 싶어진다. 자리로 돌아가 가방을 챙겨 오려던 그녀는 의원 보좌관에게 붙들린다. 수행기자들까지 합세해 가방을 빼앗듯 잡는 바람에 그녀는 도리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리를 불러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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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injunews.com/news/articleList.html?sc_section_code=S1N3 [연재]자전거타는 남자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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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침에 사무실을 들어서면서 그녀는 오 의원 보좌관에게 전화를 받는다. 9시 30분에 호텔로 오시죠. 아직 출근하지 않은 국장에게 그녀는 전화보고를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호텔에 도착하자 현관문을 막 나오던 오의원이 반색을 한다. “어, 방송국 기자 양반 오셨네. 반갑습니다.” 가볍게 목례를 하며 그녀는 보좌관이 이끄는 대로 승용차에 오른다. 차에는 월드코리아사장, 그녀, 오 의원, 그리고 낯이 많이 익은 여자 한 사람을 포함해 네 명이 동승했다. 운전은 월드 코리아 사장이 직접 하는 듯 보좌관은 서서 일행을 배웅한다. “내일이면 일정도 끝나고 오늘은 속닥하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서로 다들 아시죠.” 오의원의 말에 어색한 목례를 나누자 차가 출발한다. “일단 댁으로 가십니다.” 운전석 옆에 여자가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너무 바쁘시겠어요. 그제서야 여자의 얼굴이 제대로 보인다. 남편이 한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여자와 아이들만 이곳에 살면서 남편과는 스무 살 차이가 난다던. 가끔 한국무용 발표회를 하는 민 예랑이라는 여자. 바로 전에 초대권을 보내온 적도 있었다. “아, 네. 잘 지내시죠. 지난번에 못 가뵈어 죄송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자리일까? 오 의원과 민예랑은? 그녀는 옆에 앉은 오 의원의 속내가 점점 궁금해진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짐작이라도 하듯 오 의원이 입을 뗀다. “윤 기자, 우리 세 사람의 인연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어요. 우리끼리 밥이나 먹자고 만든 자리에 내가 윤 기자를 한 번 더 보고 싶어 초대했는데 불편하진 않으시오?” “아, 네 괜찮습니다. 세분 자리에 제가 외려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민폐라니, 우리가 고맙죠. 총기 있는 젊은 분이 우리 사석에 함께 해주셨으니, 오늘은 그냥 맘 편히 같이 밥이나 먹읍시다. 나도 윤 기자도 일은 다 잊어버리고.” 해변을 끼고 달리던 차는 언덕을 올라 정차한다. 언덕위에 자리 잡은 흰 저택은 한눈에도 꽤나 넓은 평수다. 기다렸던 듯 도우미처럼 보이는 이가 문을 열어 준다. 처음엔 두 사람 중 한사람의 집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다. 월드코리아 사장이 출발할 때 ‘댁으로 간다’ 던 말이 떠오른다. 더욱이 오의원의 행동이 제집인 듯 자연스럽다. 저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집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원에 풀장이 갖춰진 집이다. 일행은 거실에 앉아 있다가 도우미의 식사가 준비돼 있다는 말을 듣고 정원으로 나간다. 흰 아사 식탁보가 깔리고, 정성스럽게 세팅된 식탁에 앉는다. 요리사를 불렀음직한 싱싱한 해물요리의 성찬이다. 어젯밤의 비가 말끔히 개고 맑은 하늘에 적당한 바람이 분다. 멀리 기차가, 바닷가를 잇고 있는 나무다리가 아스라이 보인다. 날씨, 사람들, 그리고 오가는 대화까지도 다 지나치리만큼 적당하다. “의원님, 오늘 바람이 요트 타기에 적당한 날씨입니다.” “그렇지? 그러고 보니 요트 탄지 한참 됐구먼. 그렇게 좋아하는데 참 시간을 즐겨야 하는데 시간에 쫓겨 사니 말이야. 윤 기자는 요트 좋아하시나?” 월드 코리아 사장의 말에 대꾸를 하던 오 의원이 화살을 그녀에게 돌린다. “네, 보기엔 좋아 보이는데 타 본 적이 없어서요.” “이렇게 요트 즐기기 좋은 나라에 와서 못 타봤다니. 언제 같이 타 봐야겠구먼. 그런데 우린 전에 어디서 만난 적 있던가. 난 윤 기자가 이상하게 낯이 익어요.” 그녀를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묻는 듯한 어투에 그녀도 고개를 가로 저으며 분명하게 아니요라고 말한다. 오 의원은 잘 손질해 놓은 새우를 들고 말을 잇는다. “하기야 이제 나이가 드니 처음 보는 사람도 낯설지 않고, 다 어디선가 만난 듯해지더라고.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이 사석에서 식사하고 싶은 사람 만나는 게 드문 일인데, 건배합시다.” 오 의원은 글라스에 아이스 와인을 찰랑하게 따라 그녀에게 건넨다. 네 사람의 리델 아이스와인 잔이 허공에서 창 소리를 내며 가볍게 부딪친다. 월드 코리아 사장은 웃음기를 머금고는 있지만, 그녀의 시선을 정면으로 바라보지도 그녀와 말을 섞지도 않는다. “나는 대학을 그리 좋은데 못 나왔어요. 공부보단 딴 데 정신이 팔려서. 어찌어찌하다 정치판에 들어와서 소위 명문대 출신들끼리 노는 걸 보고 참 눈꼴이 시었어. 그런데 말야. 지금은 그들이 우리를 무시 못해요.” “다 의원님이 애쓰신 덕분이죠. 누가 뭐래도 .옹벽 같은 패밀리를 구축하셨잖습니까.” 월드 코리아 사장이 말을 받았다. “옹벽 같긴, 어찌됐든 사람 마음이란 게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울타리 밖에서 그들을 쳐다 볼 때의 꼬였던 심사는 다 잊어버리고 울타리 안에 섞이고 보니 참 편안하더란 말이야.” 오 의원의 패밀리, 21세기 클럽이라는 이름을 빌리고 있지만 오의원의 패밀리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재계, 정계, 학계, 문화계의 내노라하는 명사로 구성된 21세기 리더십 클럽 덕에 살얼음 같은 정치판에서 오 의원은 그 천수를 누릴 것처럼 보인다. 해마다 40명을 엄선하여 새로운 기수로 받아들여 전 과정을 무료로 운영하고 그곳을 수료한 기수들이 수순대로 각지부의 단체장을 맡고 다시 비슷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문어발처럼 오의원지역구, 나아가 세를 불렸다. 그러나 오 의원을 위한 단순한 후원회보다 더 큰 정치적 집단이 배경이었다. 그녀는 신제품 론칭 때 여러 번 명품관에서 다회를 열며, 미디어에 도자기 디자이너로서 얼굴과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때문에 그녀도 회사의 한국 지사장으로부터 여러 차례 가입권유를 받았다. 그녀가 집요한 권유에도 가입을 거절하게 된 것은 일간지에 있던 선배에게 그 모임의 성격에 대해 소상히 들어 알고 있던 탓이었다. 비록 도자기 디자인이지만, 예술가라고 자부하고 있던 그녀에게 오 의원의 그 커뮤니티는 섞이고 싶지 않은 탁한 물이었다. 그러나 그 후, 그녀에게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건, 기억 하고 싶지도 않은 타사 디자인 카피 사건은 오 의원 구성원들의 행태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러나 심증뿐이었다. 그녀는 그 일로 그 업계에서 매장되고 말았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와인 잔을 든다. 오의원도 그녀의 그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일까? 묻고 싶은 것이 많은 그녀도 할 말이 있어 불렀을 오의원도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이상한 식사였다. 어쩌면 오 의원은 그녀에 대해 이미 물을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티타임이 끝나자 소복을 한 민예랑이 정원에서 일명 씻김굿 공연을 펼친다. 씻김굿이라. 그녀는 민 예랑의 춤사위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본다.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는 그곳의 초대 손님 중 VIP는 단연 풍경이었다. 그녀는 방송국 앞에서 오 의원 일행과 헤어진다. “윤 기자. 공항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어요. 윤 기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속 상승을 할 수 있는 열정을 지니고 있어요.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쓸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을 보는 눈이야. 너무 혼자 뭘 하려 하지 말고 같이, 함께 하도록 해요. 언제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해요.” 차에서 내리기 전 오의원이 그녀의 손을 마주 잡고 한 이야기였다. 오의원의 손은 물컹한 연체동물의 그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손이었다. 그녀는 돌아서면서 영 기분이 개운치 않다. 고작 식사 초대를 해서 ‘패밀리‘운운이라니. 월드 코리아 취재 건을 안 오의원이 그런 식으로 그녀에게 사전 경고를 한 것이리라. |
[연재]자전거타는 남자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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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타는 남자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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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 의원이 게이트를 나서기 전에 그녀는 리를 불러 사무실 근처로 온다. 커피 전문점에 가려던 그녀를 카페로 이끈 리는 맥주를 벌써 여러 병째 비우고 있다. 그녀는 레몬에이드를 마신다. 오늘은 꼭 오의원에 관한 리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남편의 말대로 서류는 그다음날 배달되었다. 그녀는 이혼서류와 위임장에 도장을 찍어 인턴사원을 불러 빠른우편으로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그녀가 그렇게 원했던 이혼을 그렇게 간단히 하게 된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작 앎을 가진지 일 년 여밖에 안 된 리에게는 마음을 털어 놓으며, 십 수 년 을 함께 산 남편에게는 고작 건강 조심하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다니. 정말로 남편에게 완전히 소외된 듯한 허망함과 함께 가슴속에서 무거운 돌덩이들이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
[연재]자전거타는남자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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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교민회 선거전 유세는 치열했다. 열두 명의 후보가 올라오자 현 회장단은 선거법을 고쳐서 삼 만 불의 공탁금을 후보자들에게 걸게 했다. 공탁금을 걸 수 없는, 재력이 없는 사람은 선거에 나오지 말란 뜻이었다. 그러자 후보는 세 명으로 줄었다. 그녀는 요즘 부쩍 전화가 잦아진 리와 통화를 한다. “모레가 선거네, 참. 이 짓도 못 해먹겠습니다. 교민은 사만 밖에 안 되는데 왜 이렇게 바쁘대요. 하기야 본국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불법 체류자가 이만 오천이란 말이 떠도니.” “삼 만 불의 공탁금을 걸면서까지 교민회 회장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게 다 대통령 손 한 번 잡아보는 영광을 누리고 싶어서 아니겠습니까?. 내년에 대통령이 들를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고, 그렇게 되면, 교민회 주최로 만찬이 열릴 거고, 대통령 손 한 번 잡아 보자는 거죠.” “참. 한국 사람들은 정치적인 걸 좋아하는 민족성이 있나봐요. 요즘은 어딜 가도 교민회 회장선거 이야기에요” “방송국에서는 어떻게 취재를 하십니까” “중앙 방송국에서 개표 실황 생방 지시가 내려와서 하루 전부터 교민회 가서 텐트 쳐야 할 운명이네요.” “그렇게 까지나. 하기야 다른 도시에서도 관심이 많을 겁니다. 이 선거 끝나면 연합회 회장 선거가 곧 있을 거고, 교민 총 연합회 회장인 거죠. 현 회장도 당연히 출마하니, 그건 그렇고 저녁 시간은요. 얼굴 본 지도 꽤 됐는데 제가 그리 갈까요.” “오늘 저녁은 선약이 있어요. 집에 가서 저녁상을 봐야 해서요.” 수화기 저편에서 리가 말을 고르는 기미가 느껴진다. “혹시 한국에서 손님이 오셨습니까?” “아니요. 생일 맞은 학생이 있어서요.” 이내 쾌활함을 되찾은 리의 목소리가 되돌아온다. “아, 그렇군요. 저도 그 식탁에 초대해 주시면 영광일텐데. 물론 안 되겠지만.…… 교민회에 위문이나 가야겠는데 사양하진 않으시겠죠?” “방문 선물을 스시로 지참하신다면 고려해 보죠.” “하여튼 입맛도. 여기 일간지 기자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알겠습니다. 삼 개월치 가불을 당겨서라도 꼭 초밥으로 대령하죠.” 오랜만에 베트남 가게에서 장을 본 그녀는 집에 도착하자 서둘러 저녁 준비를 한다. 오늘은 여학생의 생일이다. 여학생이 좋아하는 베트남 쌈을 메뉴로 골랐다. 그녀는 아보카도와 붉고 푸른 파프리카와 맛살, 햄, 오이 등을 길게 썬 것들과 불고기 볶음과 날치 알을 모양 좋게 세팅한다.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을 볼에 담고 싱싱한 양상추를 샐러드 볼에 아무렇게나 뜯어 놓는다. 마지막으로 굴로 다시를 낸 미역국을 뜬다. 여학생도, 최도 박도 모처럼의 식탁에 활기 있게 움직인다. 준비한 케이크를 중앙에 놓자 모두들 원탁에 둘러앉는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최가 어쩐지 잔뜩 풀기가 죽어 있다. “와우. 무척이나 근사한 식탁입니다. 한 달을 기다려 온 보람이 있네요. 기대한 것이 바로 이거였어요. 바쁘신데 고맙습니다. 스텔라씨” 여학생이 답례의 인사를 하고 촛불을 끈다. 모두들, 진심의 박수를 치는 이 순간만은 식사의 즐거운 낭만에 젖는다. 그녀가 뒷마당의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것으로 담근 포도주를 한 잔씩 따르고 박이 건배를 제의한다. “소원 비셨습니까?” 박이 여학생에게 물었다. “ 아, 소원요. 당연, 스텔라씨의 쾌유죠. 우리 모두 밥 못 얻어먹게 되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줄 알아요. 가만 보면 스텔라씨 워크 홀릭 증세가 있어요. 것도 중증. 일 좀 그만 하시고 건강 좀 챙기세요.” 그녀가 웃으며 대답한다. “네,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 다신 안 아플 게요. 그럼, 이제 진짜 소원은?” “이것도 소원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영어를 국어처럼 하게 해달라고 빌어야지요.” 여학생은 국문학 전공이었다. “나름대로 우리말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데 약소국가의 국어라는 것이 얼마나 무기력한 것인지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는 참이에요. 이 기회에 석사부터 다시 시작해서 영문학을 전공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게요. 약소국가의 말이란 것이 이 나라의 사람들은 성인이고 우리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입니다. 그들의 역사를 새로 배우고 본국에서는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실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강사들, 어떤 건 우리보다도 문법에 약합니다. 그런데 회화는 정작 밖에 나와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우리나라는 죽은 영어 교육을 하고 있어요.” 기운이 없어 보이던 최가 여느 때처럼 큰 목소리로 말하고, 페이퍼 위에 김을 깐다. 그 위에 쌀국수와 밥, 가지가지 야채를 늘어놓고 마지막으로 날치 알로 덮는다. 어떤 요리든 자신만의 방법으로 음식을 먹는 취향이다. “아하, 페이퍼 위에 김을 까는군요. 그거 맛있겠습니다. 저도 먹어봐야겠어요.” 박이 김을 집어 들며 말한다. “요즘 좀 어때요? 계획대로 잘 되어 가고 있나요.” 그녀가 최를 보며, 묻는다. “그럭저럭요. 형님이 도와주시고 계셔서 잘 될 듯 합니다.” “아 제가 뭘요. 최형이 더 잘하고 있는 걸요” “두 사람, 뭘 같이 하고 있나요?” “아뇨, 최형이 취업이민이나 비자내는 방법에 대하여 아주 잘 알고 계시더라구요.” ‘아유 제가 잘 알긴요. 형님. 내일 시내에 같이 나가시는 시간 비워 놓으시죠. 제가 소개해드릴 분이 있다고” “아. 그래 같이 나갑시다.” 최와 박 두 사람은 아주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인양 친분이 돈독해 보인다. “ 아저씨 보고 싶으시겠어요. 이 댁은 아이도 없는데 왜 기러기 아빠신지? 한국에서 너무 오래 계시는 거 아닌기요.” “그야 그쪽 일을 정리하시는 중이시니까.” 최의 질문에 잠자코 있는 그녀를 대신해 박이 해명을 한다. “근데 사진을 봤는데 인상도 좋으시고, 두 분 금슬이 좋으셨겠습니다.” “아저씨 정말 인상 좋으시고, 매너도 좋으십니다. 아마 형님도 만나면 좋으실 거예요.” “스텔라씨, 자탄 아저씨가 오시고 집안이 얼마나 깔끔해졌는지 아세요? 정말 살림을, 이렇게 말해도 되나? 딱 적성이세요.” 자탄 아저씨는 박이 자전거를 타고 시내 어디든 쏘다닌다고 여학생이 붙여준 별명이다. “맞습니다. 마치 주인아저씨가 돌아오신 것 같아요.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시고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계셔 주시면 좋겠습니다.” 주인아저씨? 그녀는 최의 말에 신경이 쓰인다. “과찬의 말씀, 그런데 제가 여쭤 보지 않고 광고를 냈는데 괜찮으시겠지요?” 그녀가 수저를 멈추고 박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손님이 너무 없어 걱정이 돼 제가 교차로에 광고 신청을 했습니다. 내일부터 일주일간 게재될 겁니다.” 박에 대해 가까스로 가졌던 호의가 다시 의구심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참견의 도가 지나치다. “저한테 묻고 하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너무 바쁘시니까 얼굴을 볼 사이도 없고 또 제 말을…….” 분위기가 일순 싸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애써 화를 참는다. “잘하셨네요. 이 집 세도 만만치 않고 곧 방학이니까 성수기고.” 여학생의 말을 들으며 그녀는 식탁에서 일어선다. 더운물을 다시 끓여 내며 베트남 쌈을 무척 즐기는 남편을 떠올린다. 집을 나서려던 그녀는 하이드로비 청구서를 들고 놀란다. 지나치게 액수가 많이 청구된 것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옆에서 기색을 살피던 박이 청구서를 빼앗듯이 가져가더니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제가 가서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
[연재]자전거타는 남자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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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침에 그녀는 박과 여학생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최가 본국에서 온 방문자들에게 비자를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한인 식당에 소문을 낸 뒤 여러 사람에게 돈을 받아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가끔 일어나던 일을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그런 일을 그녀의 집에 묵던 사람이 저지르다니, 그녀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 다행히 박과 여학생에게는 피해가 없었지만, 최가 여학생에게도 돈을 빌리고자 했으며, 박에게도 역시 미국 비자를 내주겠다고, 사람을 소개시키며 수수료를 챙기려고 했던 것이 확인 되었다. 벼룩의 간을 빼먹지, 불법 아르바이트로 랭귀지스쿨 학비를 마련하는 여학생과 그녀의 집에 빌붙어 의식주를 해결하는 신세의 박에게 돈을 갈취할 생각을 하다니. 그녀는 최가 과장이 심한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믿기 어려워 오금이 떨려 왔다. |
자전거타는 남자11 | ||||||||||||||||||||
2008 진주신문 가을문예 소설당선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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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스텔라씨, 눈이 와요. 눈이에요. 여학생의 들뜬 목소리에 그녀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난다. 크리스마스이브인 오늘, 정말 눈이 온다면 그녀는 거리로 취재를 나가야 한다. 이십일 년 만에 도시가 화이트데이가 될 거라는 기상예보가 있자 백화점에서는 발 빠르게 판매 촉진을 위한 갖가지 이벤트 상품을 내걸었다. 그녀는 거실로 나와 테라스에 선다. 소담스런 함박눈이 펄펄 내린다. 눈은 밤새 내렸던 모양으로 정원에 소복이 쌓여 있다. 부지런한 박이 현관에 길을 내느라 부산하다. 그녀는 박이 구워 놓은 토스트와 커피로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다. “길도 미끄러운데 제가 모셔다 드릴까요? 여왕마마가 어떻게 이 눈길을 걸어가시겠습니까?” “자전거로 데려다 주겠다는 말이죠? 오늘 같은 날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죠.” 눈 탓일까? 박의 과장 섞인 말도 선선히 들린다. 지내볼수록 의지가 되는, 자신의 쓰임을 알고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고즈넉하다. 이따금 가지에 앉았던 새들이 날아오르며, 가지위의 눈을 턴다. 부츠를 신은 정강이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즐기며, 그녀는 모처럼 아름답다는 말을 떠올린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만난 눈으로 인해 그녀의 마음도 설렌다. 버스 안에서 리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는다. “굿모닝. 화이트 데이. 어디쯤입니까. 지금 방송국 근처인데.” “오 분 거리에 있어요. 이렇게 일찍 무슨 일로 오셨어요?” “얼굴보고 이야기합시다. 스타벅스에 있을 게요.” 그녀는 사무실에 들어가 K주와 방송 스케줄을 짜고 스타벅스로 간다. 리는 가게 앞에서 눈을 맞으며 서 있다. “애들도 아니고 눈이 와서 온 건 아니죠?” 그녀가 웃음을 띠며 농담을 건넨다. 리가 그녀에게로 다가와 주머니의 손을 꺼내 그녀의 뺨을 감싼다. 친근해지기 전에는 기습적인 리의 행동이 몹시 싫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이런 리가 싫지 않다. “뺨이 참 이쁜 거 알고 있습니까? 여진씨가 김은애 공연 때, 사회 보는 모습을 봤어요. 무대 위에서 뺨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더군요. 얼마나 이뻤던지. 좁은 동네인 이곳에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구일까, 정말 궁금했어요.” “어른에게 볼이 이쁘다니요.” “이쁜 걸 이쁘다고 하지 뭐라고 그럽니까? 이거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앙드레가뇽을 좋아하는 것 같아 1집부터 8집까지 다 샀습니다. 육개월치 점심 값, 다 털었으니 날마다 점심 사세요. “ “ 전 선물 준비 못했는데” “그거 잘 됐네. 선물대신 제 말을 들어주시죠. 아버지가 여진씨 팬인 건 알죠? 가까운 날에 아버지를 만나줘요. 하실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 ……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은데.” “ 그래요. 연말 지나고 새해에 자리를 만듭시다.” “……” “ 아, 그리고 공적인 일인데 오 의원 자료 아직 가지고 있죠? 그거 우리 신문사에 넘기죠. 국장이 그걸 터트릴 시점이라고 자료를 모으는 눈치라서. 여기서 날려 보려구요. 혹시 본국에서 홈런을 쳐서 승진이라도 할지 알아요?” “그 건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더니. 무슨 일 있어요.?” “지금 여성단체에서 오의원 추문이 모락모락 흘러나오고 있는데 터져서 김이 새기 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걸 먼저 날려야죠..” “ ……” “왜, 문제 있습니까?” “그 파일, 제가 가지고 있지 않아요. 이미 삭제했어요.” “아니, 그 파일 어렵게 만든 게 얼마나 됐다고 삭제라니요. 납득할만한 이유를 대야지.”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꼭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었어요. 더 이상 묻지 말아줘요.” 눈이 펄펄 내리는 풍경 한 가운데 리를 두고 그녀는 돌아선다. 리의 따가운 눈빛이 그녀의 등을 금세라도 관통할 것 같았다. 일상 어딘가에 숨어 있다 예고 없이 출현하는 복병, 그때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녀가 생각 안에 말을 입 밖으로 함부로 내지 못하는 이유고 타인에게 사적으로 불친절해지는 이유였다. 이원 생방송으로 눈 풍경을 방송하는 그녀의 마음 안에는 종일 진눈깨비가 내린다. 그때, 그녀가 오 의원 일을 의논하려고 했을 때 리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들어주었다면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이젠 더 이상 선택의 여지도 시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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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가을문예 시상식 열려
2008년 진주신문 가을문예 시상식이 지난 13일 진주교육대학교 교사교육센터 7층 대강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주인공은 시 당선자 전영관 씨(아버지의 연필)와 소설 당선자 서은아 씨(자전거 타는 남자).
시상식에는 김장하 남성문화재단 이사장, 리영달 진주문화사랑 대표, 경상대 강희근 교수, 본심 심사를 맡았던 서정춘 시인 등을 비롯해 지역 문인들과 문화계 인사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역대 수상자들도 새 당선자들을 축하하기 위해 진주를 찾았다. 역대 수상자들은 이날 남성문화재단 김장하 이사장에게 감사패를 만들어 증정하기도 했다. 올해 가을문예는 시부문 301명, 소설부문 140명이 응모했다.
사진은 수상자와 심사위원들이 함께한 기념촬영. 왼쪽부터 원종국 소설가, 유영금 시인, 유홍준 시인, 서정춘 시인, 전영관 시당선자, 서은아 소설당선자, 강희근 시인, 김장하 남성문화재단 이사장, 조구호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