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직장에 출근하기 전날

                       안또니오

3월이다. 달력 상으로는 봄이지만 사무실이 아니라 작업 현장에서 노동을 하면, 마음과는 달리  겨울이 끝나지 않았음을  몸은 알아챈다.

처음 공원관리에 뛰어든 작년의 이즈음이 떠오른다.
30년 이상 다닌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후 그동안 너무 시달린 탓에 좋아하던 등산을 하며 마음을 치유하였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자 본격적으로 새로운 직장을 찾기 시작했었다.
관세사 사무소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자 하였는데 쉽지 않았다.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면접을 했는데, 회사 대표와 사무장이 마음에 들어하고 면접 후에도 사무장과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아마도 별도의 교통비도 일부 지원해주실 겁니다."하고 사무장은 넌즈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고마운 말씀이다.

  직장의 위치는 업무가 공항과 관련이 많다보니 화물청사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다.  
출퇴근시 영종대교를 이용하다 보니 통행료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월 30만원이 교통비로 나갈 정도였다. 왜 그 직장에서 직장 근처에 사는 사람을 선호하는지를 알겠더라. 면접하러 가는 날 버스로 환승할 때 반대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바람에 도중에 내렸더니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가  없었다. 희한한 동네였다. 택시를 잡아야 하는데 콜택시만 다녀서 예약없이는 택시조차 잡을 수 없었다. 카카오택시 앱을 사용해본 적 없는 구세대라 더더욱 택시 잡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약속시간보다 좀 늦게  회사에 도착하여 면접을 보았었다.

당시 신입직원 초봉인 150만원을 제시하였으니 교통비 빼고나면 월급이 120만원이 되는 셈인데, 별도의 교통비를 10만원 정도 지원해주신다니 고마울 수밖에.
"최종적으로 함께 일할 우리 직원들과 이야기해보고 다음 주 통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회사대표는 면접을  끝내었다. 

주일에 미사 도중에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동안 실직생활이 길어져서 무의식 중에 아픔이 깊었고 곧 출근한다는 사실에 이제 마음의 아픔,힘듬이 끝이 나는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치솟아 올라왔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출근할 수 없었다. 월요일에 문자메세지가 날라온 것이다. 불합격이라는 전혀 예상 못했던 내용이었다.
그 때 나는 깨달았다. 아무리 회사 대표와 실무자 대표가 마음에 들어해도, 신입직원의 초심으로  출근하면 회사 사무실 바닥까지 밀대걸레로 닦아주고 업무를 시작하리라, 퇴근 후에는 사회 선배로서 힘들어 회사를 그만두려는 젊은 직원에게는 술도 같이 하며 인생 상담도 해주리라, 회사 홈페이지가 없으니 만들어주리라, 회사 개선사항에 대해서도 도움 줄 부분이 발견되면 개선시키리라, 글쏨씨를 발휘하여 홍보실 역할도 해주리라, 등등 여러 열정을 갖고 회사일을 시작하려고 마음 먹고 있더라도, 상사로 모실 젊은 20대,30대 직원들 입장에서는 아버지 같은 나이의 아랫직원은 부담스러운 것이다. 면접하는 날 젊은 직원들을 대면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나의 열정을, 나의 초심을 직원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그들의 걱정을 없애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면접에서는 회사 대표와 고위 임직원만을  만날 뿐 실제 함께 현장을 뛸 실무자들은 만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새로 입사할 사람이 50대 후반이라는 사실만을 듣고는 부담스러워 일을 시킬 수 없다고 반대했을 것이고, 팀워크를 감안하여 아마도 나와 동갑인 회사대표는 어쩔 수 없이 불합격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40대 사무장은  면접 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꽤 오래 사담을 나누었는데 전투적으로 삶을 개척해나가는 사람이었다. 쉬는 날이 별로 없을 정도로, 그리고 가족여행도 거의 안갈 정도로 회사일에만 올인한 사람이었다. 나도 전 직장에서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왔지만, 정녕 이 사무장처럼 인생을 열심히 살아왔던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업무는 사무장으로부터 부족한 부분을 배워나가고, 회사 홈페이지나 전산 부분은 재능기부하듯이 사무장에게 가르쳐주면 그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현실화 되지 못하고 헛된 꿈이 되어버렸다.

그 회사 입사 실패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처럼,  내가 원하는 직장은 많은 나이때문에  받아드려지지 않는 현실을 깨닫게 하였고, 어쩔 수 없이 나를 원하는 직장을 찾는 걸로 방향을 급선회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나는 두해전 퇴직한 동료에게 전화를 하고  점심 약속을 잡았다.  며칠 후 식당에서 만났다. 퇴직후 동료가 전기 기능사  학원을 다니고 있었기에 지금쯤 계획대로 전기일을 하며 다니는 지 궁금하였다. 그는 산불방지원을 하고 있었다. 퇴직후 전기 기능사 시험을 준비한다고 들었는데, 전기일을 하는 게 아니라 산불방지원이라고? 

당시 나는 직업훈련을 배우기로 마음 먹고 전기 혹은 CNC기계 둘 중 하나 배워볼까 고민 중이었는데 어느 쪽이던 6개월이상 소요되는 훈련이었기 때문에, 반년을 공부한 후 취직이 보장되느냐가 최대 관심사였다. 취직이 되지 않는다면 6개월은 실직기간에 포함되는 것이고 그러면 전체 실직기간이 1년 9개월이 되어버리니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퇴직동료는 나의 전철을 비슷하게 밟았었다. 관세사 사무소 문을 두들겼고 오라는데는 전혀 없었고, 전기기능사 학원교육 후 젊은층은 일부 취직이 되지만 나이 많은 층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니 취직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나이들면 아는 인맥으로 지인의 회사에 들어간다면 모를까 일반회사는 취업하기가 어려운 현실을 그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는 산불방지원 5~6개월, 주택조사원  몇 개월, 그런 식으로 힘 안드는 기간제근로자를 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나름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 기간제 근로자였다. 60대가 주축이라는 것. 50대는 상대적으로 젊으니 경력이 없더라도 합격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일단 합격하여 약 1년 일하고 나면  경력자가 되니 다음해에도 합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여러 시설관리공단에서 각각 따로 필요한 기간제근로자들을 별도로 뽑으니 해마다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일할 수 있기에, 일명 메뚜기족으로 불린다는 것. 매년 1월은 시설관리공단이 몇명 뽑을지 계획을 짜는 기간이고 2월은 1주일간 홈페이지에 채용 공고 내고 서류심사,면접을 하는 기간이고 3월부터 일이 시작되어 정해진 몇 개월간 일을 하고 끝난다는 것. 그래서 2월에 뜨는 채용공고를 놓치면 그냥 1년이 지나가니 각 시설공단 홈페이지에 자주 들락거리며 유심히 잘 봐야 한다는 것.

작년 호수공원의 공원관리(조경)에 지원하였고 면접을 잘 통과하여 8개월간 육체노동을 난생 처음으로 해보았다.
면접하는 날 대기하면서 서로 같은 직장에서 일해본 사람들끼리 소규모로 모여 정보교환도 나누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는데, 나는 이 바닥일은 처음 뛰어들었기 때문에 아는 얼굴이 전혀 없었다. 면접에서는 어떤 질문을 하나? 어떤 일을 하는 것일까? 내가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작업들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동료들과는 갈등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평소 나서는 성격이 아니지만 전혀 모르는 무리에 끼어들어 말을 걸며 작은 정보라도 귀기울여 들었다. 


 이 바닥에 일하는 사람들은 작업에 최적화된 작업복을 갖고와서 입고 일했지만, 나는 등산복 바지에 대충 입던 옷 입고 3월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매월 작업용 목장갑을 제공해주었으며, 팔 토시, 장화,작업화, 비옷도 제공해주었다. 새 직장으로 출근하는 내일은 동일직종이므로 무엇을 준비하여 출근해야 할 지는 대충 생각이 난다. 그러나 몇 개월 쉬다보니 기억이 놓치는 부분도 있을 것이므로 빠짐없이 준비해야 할 것이다.  집안에 장기간 입원한 환자가 생겨  간병하느라, 그리고  여러 다른 바쁜 일이 실직 기간 중에 있어서 작업복을 준비하지는 못했다. 등산바지를 입고 일을 하는 거지 뭐.


여러 장비를 사용할 줄 알아야 되는데 호수공원에서는 작업인원이 많았는데 신병이라 그런지 궂은 일을 많이 맡기고 장비는 숙달된 정도로 기회를 주지는 않았다.
올해 새 작업장에서는 인원이 적다보니 여러 장비를 사용할 기회가 많을 것이고 작업능력을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낯선 장비 탓에 안전사고에 조심해야 하니 걱정도 된다. 예초기,엔진톱,전정기 사용법에 대한 동영상을 모아두고도 차일피일 미루며 공부하지 않았는데 대충 보고 내일 첫출근을 해야겠다.

출근길과 퇴근길의 대중교통도 지하철 및 버스 번호가 뭔지,어디서 환승해야 하는 지를  검색엔진의 길찾기 통해 미리 정리해두어야겠다.
창모자도 찾아두어야 한다. 1개는 머리를 보호할 튼튼한 창모자, 다른 1개는 출퇴근  때 쓰고 다닐 캡. 퇴근 때 머리 손질할 시간이 없으므로 캡을 쓰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사무직이 아닌 현장 근로자들이 캡을 쓰고 다니는 이유는 바로 그것.

호수공원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가 저녁 늦게 문자메세지를 보내왔다. 첫출근 축하한다는. 

20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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