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심사 결과 발표하는 날))

어제의 일이다.

전직장 동료와 시설관리공단 산하의 호수공원에 응시원서를 내러 갔다. 이제 이 바닥 일을 한 지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조경 경력 4년.

정년 퇴직후 1여년 백수로 있다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하도록 기회를 준 직장이 바로 호수공원이다.

당시 대공원에 면접할 때 면접관이 관련 경력이 없는데다가 대기업 경력을 보고는 당신은 이 일을 해내지 못한다,  하루 이틀만에 그만둘 것이다, 향로봉에서 군복부했다고 하지만 여기 일은 훨씬  힘든 일이다, 라고 내가 답변을 틈을 주지 않고 입을 봉쇄시켰었다. 몹시 불쾌했다. 그로부터 2년후 재도전에서 나는 대공원에 들어갔고 2년전 면접관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계약기간을 다 채우고 은퇴하였었다.

4년전 대공원의  면접에서 실패하고 호수공원에 면접을 보았는데 합격을 하여 첫단추를 조경업무로 시작하다 보니 계속 4년간 이 바닥의 일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면접관은 질문을 던졌고 답변할 시간을 주었고 입이 봉쇄되지 않은 나는 성실하게 답변을 하였다. 그런데 면접관 중에 한 사람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었다. 그런데, 1년간 쉬었네요?  예상하지 않은 질문은 아니었지만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였다. 다른 질문들은 즉시 답변을 하였지만, 이 어려운, 당혹스런 질문은 생각을 정리할 짧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력서를 수많이 내어 보았지만 면접 보러 오라는 곳은 1군데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가고 싶은 직장이 아니라, 이제는 나를 필요로 하는 직장을 찾기로 하여 여기에 이력서를 내었다,라고 대답하였다. 고맙게도 면접관이 나를 합격시켜주었다.  1년 이상 실직기간이 길어지자 이러다가는 우울증이 오겠다는 생각도 들고, 퇴직금이 점점 줄어들어가는 심리적인 압박감에 짓눌릴 때 수렁에 빠져가는 나 자신을 건져올린 것이 인생 2막을 시작하게 해준 호수공원이었다.

4년이 지나 다시 친정집에 오듯이 취업 응시원서를 제출하러 온 것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동료가 먼저 응시원서를 제출하고, 1시간 거리의 호수공원을 산책한 후 나도 응시원서를 제출하였다. 면접할 때 같은 조로 같이 들어가면 두 명 모두 된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둘 사이에 다른 지원자들이 들어갈 시간을 끼워넣으려는 의도였다. 1시간 호수를 도는 중에 3부 리그에 해당하는 체육관에서 서류합격자에게 문자메세지가 날아 왔다. 동료는 문자메세지를 받았고 나는 불합격이었다. 3부 리그는 올해 처음 응시원서를 내었는데 서류심사에서 탈락하다니. 동료의 말에 의하면 체육관은 대체로 늙은 노동자가 많다고 한다. 경력이 많은 사람을 뽑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올해는 5년 경력자에서 커트라인이 그어진 모양이다.

시청 산하의 대공원 등의 몇 개의 공원들이 1부 리그라면, 시설공단 산하의 공원은 2부 리그, 체육관은 3부 리그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은 면접일 기준이기도 하고 합격일 기준이기도 하다. 응시원서를 가급적 많은 직장에 제출한 후 서류합격이 되면 면접일과 시간을 문자메세지로 통보 받게 된다. 면접을 거친 후 최종합격 발표에서 제일 빨리 발표하는 1부 리그에 합격하면 마음이 편해지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면 2부 리그의 결과를 기다리게 되고, 거기서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3부 리그의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올해 3부 리그는 기회가 사라졌다.

아침에 1부 리그의 3개 공원은 모두 서류 통과되었으니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면접을 오라고 통보가 왔었다.  하루의 시작이 좋았다. 1부 리그는 같은날  면접을 보기때문에 면접시간이 거의 겹치면 3개 공원 중 하나만을 선택하여 면접하러 갈 수밖에 없는데, 나와 동료는 눈치작전이 성공하여 2개 공원은 확실히 면접 보러갈 수 있고 면접이 지체되지 않는다면 3개 공원 모두 면접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오전, 하나는 오후, 또 하나는 퇴근이 가까운 시간이 면접 시간이니까. 면접에 갈 횟수가 많으냐 적으냐에 따라 최종합격 가능성이 비례한다. 

이 날 제출하는 2부 리그는 1부리그와는 달리 하루만에 면접을 끝내는 것이 아니고 3~4일 나누어서 면접하기 때문에 일찍 내면 첫날 면접에 걸릴 수 있으므로 가급적 늦게 내어야 1부 리그 면접일과 겹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접수기간 중의 마지막날 하루 전에 그것도 오후에 가급적 늦게 제출하러 온 것이다. 접수번호가 200번을 넘었으니 면접일이 첫날로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1부 리그에서 합격하지 않으면 2부 리그에서 또 한번의 가능성을 남겨두어야 한다.  경력이 전혀 없었을 때 2부 리그에 다행히 합격하여 조경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뒤이어 3년간은 운좋게도 1부 리그에서 조경일을 계속 해왔었다. 해마다 새로운 정년 퇴직자, 실업자가 물밀듯이 밀려오니 합격을 장담할 수 없다. 정년 퇴직자가 취업을 위한 준비로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들어오는 추세라서 작년에는 나도 주경야독하듯이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독학으로 공부했었다. 필기는 합격했으나 실기는 3점이 모자라서 떨어졌다.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땄더라면 올해 응시원서에 경력난을 한 줄 더 채울 수 있었을테고 면접에서 가산점을 얻을 수 있었을텐데 아쉬운 일이다.

강풍이 불고 추워진다고 일기예보에서 말했지만, 아침에 짧게 머리를 깎은 탓도 있겠지만, 만약을 위해 보험 들듯이 응시원서를 제출했던 3부 리그에서 서류 통과조차 못하였다는 걸 알게 되면서 더더욱 추웠다. 내 서류를 호수공원 접수처에 제출하고 사무실을 나온 후 공원 벤치에서 동료가 가지고온 따뜻한  믹스커피를 마시고 귀가하기 시작했다. 

 늙지 않은 60대의 하루가 흘러간다. 최종합격하기 전까지는 해마다 피말리는 시간이 바로 이 즈음이다.

공원업무가 육체노동이기 때문에 몸이 힘들지만, 실직상태로 집에서 쉬고 있으면 마음이 힘들다. 몸 힘든 것보다 마음 힘든 게 훨씬 더 힘든 법이다.


2021.1.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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