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는 1918년 좌-우간에 심각한 내전을 겪었다. 그후 내전의 상처를 치유하던 중에 1939년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해서 영토의 상당부분을 빼앗기게 된다. 이 전쟁을 겨울전쟁이라고 한다.
영토를 빼앗기고 절치부심하던 핀란드는 1941년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손을 잡고 소련을 공격한다. 그래서 잃었던 영토를 되찾는다(이를 두고 '계속전쟁'이라고 한다).
출처 :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80500
** 클래스e - 남보람의 미처 몰랐던 2차 세계대전 - 제1강 히틀러의 친필 사인
[숨어 있는 세계사] 재빠른 핀란드 스키부대 맹활약… 3배 많은 소련軍 쩔쩔맸죠
[소련·핀란드의 '겨울 전쟁']
영토 요구 거절에… 소련 1939년 침공
대규모 병력·전차 등 우세했지만 게릴라식 공격에 소련군 허둥지둥
스키·사격 결합한 '바이애슬론' 원형
출처 :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0/2018022003431.html
소련 100만 대군 떨게한 '귀신 핀란드'···그 기막힌 전술
버티다 못한 소련은 약간의 영토를 받는 다소 후한 조건으로 전쟁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핀란드는 41년 소련 침공에 나선 나치 독일과 손잡고 겨울전쟁에서 잃은 영토를 되찾으려고 계속전쟁(41년 6월 25일~44년 9월 14일)에 나섰다. 하지만 소련이 역공에 나서자 다시 타협하고 이번엔 자국에 들어온 독일군을 쫓아내는 라플란드 전쟁(44년 9월 15일~45년 4월25일)에 나섰다. 주변 강대국 등살에 2차대전 중 여러 차례 말을 바꿔 탄 비극의 역사다.
출처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123824#home
창의적 전술로 소련 격퇴한 핀란드의 전쟁영웅
핀란드군은 세계 최초로 흰색 설상복을 착용했다. 차량도 희게 도색했으며 야포에도 하얀 천을 입혔다. 위장의 전술적 가치를 무시하고 설상복을 지급하지 않은 소련군은 설원과 숲속에서 쉽게 발각됐다. 설상복은 오늘날 현대 군대의 기본 겨울 복장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 최초의 스키부대도 창설했다. 설상복 차림의 군인이 설원을 스키로 빠르게 질주하면 적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눈밭에 푹푹 빠지거나 얼어붙은 빙판길에 미끄러지며 행군한 소련군은 핀란드군의 얼굴도 보기 전에 무너졌다.
출처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0581226#home
약소국 핀란드의 영리한 역공···보드카 취한 소련은 아군 쐈다
누가 핀란드 不正義에 돌 던지랴
[황승경의 Into the Arte] 영화 ‘언노운 솔저’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입력2022-10-14 10:00:01
‘언노운 솔저(Unknown Soldier)’란 무명용사(無名勇士), 즉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신 훼손이 심하거나 학도병과 같이 급하게 징집돼 신원 파악조차 되지 않은 전사자를 뜻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에 대해선 적국(敵國)도 예의를 갖춘다. 역사상 최악의 인물로 손꼽히는 히틀러조차 제2차 세계대전 때 파리 입성 프랑스군 무명용사 묘지가 있는 개선문을 ‘통과’하지 않고 ‘우회’했다.
출처 : https://shindonga.donga.com/culture/article/all/13/3676681/1
** 컬러의 히틀러
[만물상] 핀란드 나토 가입 사건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핀란드는 복수를 위해 히틀러와 손잡았다. 빼앗긴 땅을 잠시 되찾았으나 독일 패전이 분명해지자 한발 먼저 소련에 항복하고 핀란드 내 독일군을 소탕했다. 이후 핀란드는 철저하게 소련에 엎드렸다. 미국 주도 안보 기구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은 물론 경제 지원책인 마셜 플랜도 거부했다. 반(反)소련 서적과 영화를 금지했고, 소련에 대한 언론 비판은 자체 검열했다. 소련의 내정간섭까지 묵인하자 오스트리아 외교장관이 경멸조로 ‘핀란드화’라는 용어를 썼다. 이웃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주권 이익을 점점 더 내주는 현상을 의미한다.
출처: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2/05/14/ALYUCTSOA5ELPLOBXKXFZILPOQ/
[자작나무 숲] 보드카가 그립다
보드카는 원래 슬픈 술이다. 대략 500년으로 어림잡는 러시아 보드카의 역사는 민중과 지식인과 지배자의 역학 관계 안에서 형성되었다. 혁명 이전부터 소련 붕괴 시점까지 보드카는 내내 국가 독점 산업이었고, 푸틴이 집권한 현재에도 최대 보드카 사업체는 국영기업(Rosspritprom)이다. 주권(酒權)을 거머쥔 권력자가 민중의 일상을 장악해 자신의 곳간을 채우는 교묘한 통치 수단 중 하나가 보드카였다.
출처: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1/12/28/Z7EIJHYRBJDGVG27O4C2IJBIWI/
‘핀란드化’ 재조명
입력 2019.06.06 18:00
냉전 시대 서구에서는 이런 핀란드를 냉소적으로 봤다.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1970년대 ‘동방정책’을 펼치자, 보수 반공 정치가들이 브란트의 정책을 ‘핀란드화’ (Finlandization)라고 비꼬았다. 1979년 뉴욕타임스는 핀란드화를 “전체주의적 초강대국의 군사적ㆍ정치적 무자비함에 위압돼 그 옆에 있는 작고 약한 국가가 체면을 버리고 당혹스러울 정도로 자주적 자유를 양보하는 개탄스러운 상황”이라고 정의했을 정도다. 핀란드인들이 ‘핀란드화’라는 단어를 불쾌하게 여기는 이유다.
출처 : https://hankookilbo.com/News/Read/201906061480387344

자연 앞에 평등한 ‘만인의 권리’, 지속가능성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
박현선 지음/헤이북스·1만6800원

겨울전쟁의 비극
- 최종수정2024.10.31 1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