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주보] 빛과 소금
2020년 사목교서 ‘성서의 해Ⅱ’ 특집
마태오 복음서 I – 신약성경의 관문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책은 마태오 복음서입니다. 신약성경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책이라 할 수 있겠죠. 마태오 복음이 네 복음서 중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유는 전통적으로 이 복음서가 넷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공관 복음 연구, 즉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을 함께 놓고 비교하는 연구를 통해서 이들의 선후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는데,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태오가 아니라 마르코 복음이 가장 먼저(기원후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 사이) 쓰였다는 학설에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태오 복음서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되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마르코 복음에 비해 내용이 훨씬 풍요로운 마태오 복음은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중요한 문헌입니다. 마르코 복음이 전하지 않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마태 12장)는 물론이고, 마태 5장에서 7장까지 이어지는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특히 진복팔단, 주님의 기도, 황금률 등-은 우리 신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보물과도 같은 가르침입니다.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마태오 복음은 교부들과 교회 학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복음서입니다. 특별히 교회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이에 관한 다양한 전통들을 전해주기 때문에 이 복음서를 ‘교회의 복음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교회”(에클레시아, ἐκκλησία)라는 직접적인 용어를 언급하는 복음서는 마태오 복음서뿐입니다. 이러한 내용적인 풍요로움은 마태오 복음서가 신약의 정경 목록에서 첫째 자리를 차지할 충분한 자격이 있음을 증명합니다.
복음서 본문에는 그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마태오에 의한 복음”이라는 제목이 붙기 시작한 것은 이 복음서가 기록되고 한참 뒤인 2세기 후반부터입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마태오가 아람어로 마태오 복음서를 기록했고, 그것이 그리스어로 다시 번역되어 우리에게 내려온 것이라고 전하지만, 오늘날 이를 받아들이는 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읽고 있는 ‘마태오 복음’이 사도 마태오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가 성령의 영감(靈感)으로 예수님에 관한 복음서를 집필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저자의 모습을 추측해 본다면, 그는 처음부터 그리스어로 복음서를 작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전통과 유다인들의 관습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유다계 출신의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고, 아마도 80~90년경에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이 혼합된 공동체를 대상으로 이 복음서를 기록했던 것 같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매우 조직적으로 구성된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수님의 모습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예수님께서 군중들과 제자들 앞에서 장엄하게 설교하시는 장면일 것입니다. 저자는 예수님의 다양한 가르침을 크게 다섯 가지 설교로 묶어서 전하는데, 이들은 모두 마태오 복음의 특징적 표현인 “하늘 나라”라는 주제와 연관됩니다. 하늘 나라의 시작과 행복을 전하는 “산상 설교”(5-7장), 하늘 나라를 선포하는 이들과 관련된 “파견 설교”(10장), 하늘 나라에 대한 “비유 설교”(13장), 하늘 나라의 맏물인 교회를 주제로 하는 “공동체 설교”(18장), 그리고 하늘 나라의 결정적 도래를 주제로 하는 “종말론적 설교”(2325장)가 복음서 전반에 걸쳐 나타납니다. 모든 설교는 공통적으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7,28; 11,1; 13,53; 19,1; 26,1)라는 표현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다섯 설교의 구분은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구약의 모세 오경(토라)을 본뜬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을 구약의 위대한 인물인 ‘모세’처럼 묘사하는데, 특히 예수님의 산상 설교(5-7장)는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의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모세보다 훨씬 더 위대한 분이시고, 탁월한 권위로 모세가 전한 율법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하여 전달하는 종말론적 스승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은 모세와 비교될 수 없는 분, 구약의 모든 가르침을 완성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마태 16,16)이십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출처 : 인천주보 제2621호 20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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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주보] 빛과 소금
2020년 사목교서 ‘성서의 해Ⅱ’ 특집
구약에서 신약으로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성서의 해 II’를 맞아, 신약성경을 주제로 여러분들과 함께하게 된 정천 사도 요한 신부입니다. 먼저 오랜 기간 ‘빛과 소금’ 지면을 통해 구약성경을 주제로 주옥같은 글들을 남겨주신 박형순 신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여러분들과 만나게 될 스물여섯 주의 시간. 언뜻 생각하기에 긴 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27권으로 구성된 신약성경을 모두 다루기에는 그리 넉넉한 시간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각 권이 포함하는 모든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루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보다 개괄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을 통해 신약성경을 읽는 교우분들에게 부족하게나마 길잡이 성격의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 본 원고의 목적을 미리 밝혀두고자 합니다.
우리는 보통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구분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지난 시간 동안 살펴본 구약(舊約)성경은 하느님의 말씀, 그리고 그분께서 계약을 통해 당신 백성으로 삼으신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들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반면에 신약(新約)성경은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그분의 피로 맺으신 계약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하느님 백성인 교회 공동체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과 신약은 사실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예언과 하느님의 말씀, 즉 이스라엘 백성이 간절하게 기다려 온 해방과 구원의 말씀이 예수님이라는 인물 안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구약에서 계시하신 모든 것을 완성하시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련된 구원의 길은 이스라엘을 넘어서 이방인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에게 열리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약’은 이전의 것과 전혀 무관한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 ‘구약’을 완성하는 의미에서의 ‘새 계약’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신약은 구약 안에 숨겨져 있고, 구약은 신약 안에서 밝혀진다.” 따라서 우리가 신약성경을 읽을 때는 구약성경과의 연속성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하고, 실제로 신약성경의 저자들 또한 구약성경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글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을 이해하는 바탕이 되고,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을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신약성경을 구성하는 책들은 본래 낱권으로 각각 존재하던 그리스도교 문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헌들이 점차 교회의 권위를 얻어 하나의 작품으로 결집되는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 이를 ‘정경화’라고 부릅니다 - 마침내 우리가 알고 있는 스물일곱 권의 신약성경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 책들은 문학 유형에 따라 복음서, 서간, 묵시록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순서에 따르면 먼저 네 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가 등장하는데, 기본적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책들입니다. 앞의 세 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루카)는 서로 공통되는 부분이 많아 함께 비교하며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공관(共觀)복음서라 불리는데, 이와 성격이 다른 요한 복음서를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네 복음서 다음에는 사도행전이 나오는데, 사도들의 설교와 행적, 특히 베드로와 바오로의 선교 과정을 통해 점차 성장해 나가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서간의 유형을 지닌 작품들이 나오는데, 전통적으로 바오로 사도가 다양한 지역의 공동체들을 위해 쓴 것으로 여겨져 온 서간들이 먼저 나열됩니다: 로마서, 코린토 1·2서, 갈라티아서, 에페소서, 필리피서, 콜로새서, 테살로니카 1·2서, 티모테오 1·2서, 티토서, 필레몬서, 히브리서. 이어서 저자가 바오로가 아닌 서간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베드로 1·2서, 요한 1·2·3서, 유다서. 마지막으로 요한묵시록이 등장하는데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묵시문학에 속하는 작품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종말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이 모든 책의 중심에는 우리 구원을 위해 수난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책들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다음 주부터 여러분들과 이 생명의 길을 탐색하는 여정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출처 : 인천주보 제2619호 2020.5.31.
넷’이며 ‘하나’인 복음서
신약성경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네 권의 책을 우리는 ‘복음’ 또는 ‘복음서’라고 부릅니다. 사실 ‘복음(福音)’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에우안겔리온(εὐαγγέλιον)을 번역한 것인데, 이는 ‘기쁜 소식’ 또는 ‘기쁜 소식을 선포함’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시작에 갈릴래아로 가셔서 이렇게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이처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무엇보다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결정적으로 예수님 자신을 통해 실현되고 완성에 이르기 때문에, ‘복음’ 선포는 결국 그분의 파스카 신비(십자가 죽음과 부활)를 전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장됩니다(1코린 15,3-8 참조).
이러한 기쁜 소식으로서의 ‘복음’이 기원후 2세기 중엽부터 서서히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담은 ‘기록’이나 ‘책’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당시에 그런 기록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저자) ···에 의한 복음”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들을 구분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사도들과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증인들은 그분의 행적과 가르침을 기록으로 남기기보다는 구두(口頭)로 전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곧 재림하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후대의 사람들이 읽어야 할 어떤 기록을 남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이 늦어지고, 또 사도들과 목격한 증인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그분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증언을 글로 써 놓아야 할 필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구두로만 전해지던 예수님에 대한 전승들이 점차 기록으로 전해지게 되었고, 마침내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만나게 되는 복음서의 형태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기원후 60년대 말에서 1세기 후반까지).
그런데 신약성경에 있는 복음서는 한 권이 아니라 네 권이고, 저자도 각각 다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각 복음서의 저자라 여겨져 온 인물들의 이름을 따서 이들을 마태오 복음, 마르코 복음, 루카 복음, 요한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은 그 구성이나 내용 및 순서에 있어 서로 공통되는 부분이 많은데, 이들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며 함께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공관(共觀) 복음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반면에 요한 복음은 앞의 세 복음서와 비교할 때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공관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단 한 번 올라가신 것으로 되어 있지만, 요한 복음에는 네 번으로 되어 있습니다(2,13; 5,1; 7,10; 12,12). 이러한 차이점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은 공관 복음서 사이에서도 무수히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마르코 복음에 존재하지 않는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 시절의 이야기가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에 나타나는데, 이들 역시 서로 다른 줄거리를 따르고 있고(마태오는 ‘요셉’ 중심의 이야기; 루카는 ‘마리아’의 이야기), 내용에서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한 분이신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은 하나로 일치해야 할 텐데, 어째서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요?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전승들을 토대로, 본인의 고유한 신학적 관점에 따라,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책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들의 집필 목적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활동의 세부사항을 정확히 재구성하는 데에 있지 않고, 독자들이 예수님을 믿어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이 목적을 뚜렷하게 밝힙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복음서는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나 전기가 아닙니다. 사실 복음서 저자마다 예수님의 신비에 대해 강조한 점과 신학적 의도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해석한 예수님의 모습 또한 조금씩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복음서 저자들이 성령의 영감(靈感)을 통해 “예수님은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증언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그리고 예수님의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넷’이 아닌 ‘하나’의 복음을 읽게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출처 : 인천주보 제2620호 2020.6.7.
**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예수'의 탄생! 기독교의 시작 & 로마 제국 종교 박해의 진실!! 벌거벗은세계사 EP.69
** 로마 제국 인구의 80%가 믿었던 기독교, '박해받던' 종교에서 '박해하는' 종교가 되다?? 벌거벗은세계사 EP.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