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이 된 것은 1975년 <대망 1권>과 2005년 <대망 1권>을 동일한 출판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1·2심판단을 뒤집었다. 고정일 동서문화사 대표가 사망 3개월여 전에 명예를 회복한 셈이다.
쟁점이 된 것은 1975년 <대망 1권>과 2005년 <대망 1권>을 동일한 출판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1·2심판단을 뒤집었다. 고정일 동서문화사 대표가 사망 3개월여 전에 명예를 회복한 셈이다.
과도한 미화가 있었던 건 인정해야 할 부분이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생 전반을 담아냈다는 점과 난세의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몸을 일으켜 성장했는지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는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 전국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경쟁자였거나, 협력자였던 30여 명의 무장들을 심도 있게 다뤘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김명섭의 그레이트 게임과 한반도] [4]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침공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3.06.08. 03:00
업데이트 2023.06.08. 07:41
임진왜란(壬辰倭亂)이나 만력조선역(萬曆朝鮮役·만력제 시대의 조선전쟁)이라는 명칭은 조선과 명(明)나라의 유교 성리학적 관념을 반영한다. 베이징의 황제, 즉 천명(天命)을 받은 천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질서를 평화로 보는 관점이다. 전쟁을 일으킨 왜(倭)는 1635년까지 존속한 북원 몽골이나 만주의 여진족과 마찬가지로 난적(亂賊)에 불과했다.
일본에서는 이 전쟁을 분로쿠노에키(文禄の役·분로쿠 시대의 전쟁)라고 부른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천하질서관은 거부되었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는 히데요시를 가리켜 “저 대물(大物)은 명과 인도를 정복하라고 명령하더라도 거절하는 일은 없을 기성(氣性)”이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