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담한 그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찾은 곳이 묘조식품이었고, 사장이 오쿠이 기요스미였다. 오쿠이는 전중윤에게 “왜 라면 사업을 하려는가”라고 물었다. “꿀꿀이죽 먹는 동포들이 더 이상 배곯지 않게 구하고 싶다”. 오쿠이는 답 없이 다음 날 다시 오라고 했다. 오쿠이 옆에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제면기 업체의 우에다 사장과 튀김 가마 제조 업체의 오쿠타니 사장이었다. 그 자리에서 오쿠이는 “선생을 전면적으로 돕겠습니다. 기술료, 로열티는 필요 없습니다. 기계 값도 실비만 받겠습니다. 일본은 6·25전쟁으로 일어섰습니다. 묘조식품이 직접 그 혜택을 입은 건 아니지만 갚겠습니다. 내일부터 두 사람에게서 기술을 배우세요.”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들어선 군사 정부는 나라를 다시 건설하겠다는 '재건 운동'을 펼치고 생활 개선 운동의 하나로 '혼분식 장려 정책'을 실시했어요. 학교에선 도시락에 잡곡을 섞었는지 확인하는 '도시락 검사'가 일상이었죠. 부족한 쌀 대신에 잡곡이나 밀을 먹게 하려는 의도였는데, 이제 라면이라는 새로운 분식이 출현한 겁니다. 정부는 "근대화된 식생활에 어울리는 음식"이라며 라면을 크게 홍보했어요. 지금 보면 상당히 이상하지만 '라면이 쌀보다 몸에 좋다'는 문구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 고추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고추가 우리 땅에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이후 일이기 때문입니다. 고추는 남쪽에서 들어왔다고 해서 남만초, 먹으면 맵고 쓰다고 해서 고초라고도 했죠. 이런 고추가 우리 밥상으로 올라오고 마침내 배추와 어우러진 것은 한참 나중의 일이었어요. 그 전까지의 배추김치는 백김치였습니다.
[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반찬을 뜻하는 남인도말 '카리'에서 서구식 표현 '커리' 거쳐 '카레' 됐죠
세계 음식 여행
표정훈 출판평론가
입력 2026.02.02. 00:50
150만년 전쯤 등장한 직립 인간 호모 에렉투스가 최초로 불을 사용하면서 음식을 익혀 먹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익힌 음식은 부드러워 소화가 잘되고 영양분도 많이 흡수할 수 있어 체력도 좋아집니다. 음식이 부드러우니 치아와 아래턱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뇌 용량은 커졌습니다.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탄생한 배경이 된 것입니다.
정상혁 기자 입력 2025.11.29. 00:30 업데이트 2025.12.01. 09:49
송탄·파주·평택 등 미군 주둔지마다 부대찌개 대표 맛집이 여럿 포진해 있지만, 의정부에서 가장 번성했다. 이 지역 원조는 1960년 ‘오뎅집’으로 불린 포장마차를 열었던 고(故) 허기숙 할머니. 당시 손님 대부분이 미군 부대 군속(軍屬)이었고, 그날그날 몰래 가져나온 햄·소시지·베이컨·칠면조 고기 등을 내밀며 안주 요리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걸 한데 볶으니 ‘부대볶음’이 됐는데, 뜨끈한 국물을 청하는 손님이 늘자 여기에 김치·고추장을 넣고 찌개로 변형한 게 바로 부대찌개의 시작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