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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대원군보다 더 대담했다... 결과는 나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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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역사스페셜]   7회  고종황제 독살설   2009.08.15 토


조선일보

獨 묄렌도르프, ‘조선’에서 중용되고 ‘대한’에서 버림받다

[김명섭의 그레이트 게임과 한반도] [11] 독일 제2제국과 조선, 대한제국

이홍장을 배신한 묄렌도르프의 조-러 접근책

1882년 조선으로 하여금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토록 했던 이홍장은 그해 12월 조선에 묄렌도르프를 파견했다. 당시 청나라는 1689년 네르친스크조약 경계선을 넘어 두만강까지 남진한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해 조선이 청나라와 친밀한 동시에 일본과 결속하고, 미국과도 연대해야 한다는 조선 책략을 갖고 있었다. 이홍장은 프랑스에서 유학했던 마건충을 보내 미국과의 조약문 작성을 도왔다. 조약문 안에 조선이 청의 속국이라고 삽입하려 했지만 미국 대표 슈펠트(Robert Shufeldt)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대신 같은 해 체결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안에 조선이 청의 속방이라고 명기했다.



조선일보


‘합성사진’ 속 여자가 왕비요, 마고자 차림 남자가 대원군이라는데…

왕비 민씨와 흥선대원군… 그 사진들의 진실

그런데 임오군란 군인들이 저런 말을 한 장소는 흥선대원군이 사는 운현궁이다. 대원군은 1873년 고종이 친정을 선언하며 자기 집에 유폐된 상태였다. 대원군을 만난 군인들이 이렇게 덧붙인다. “대감은 전혀 걱정마소서. 새 세상을 만들어 대감과 함께 태평을 누리겠나이다(大監勿慮勿慮 作新世上然後 與大監共太平).” 대원군은 이들을 격려했고, 군인들은 궁궐과 한성에 사는 민씨들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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