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중앙일보

홍범도 대한독립군, 망국 10년 만에 국내 진공작전 포문

이덕일의 事思史 근대를 말하다

| 제256호 20120205 입력


대한독립군은 갑산(甲山)과 혜산진(惠山鎭) 같은 국경도시에 주둔한 일본군 병영을 공격했는데, 10월에는 압록강을 건너 만포진(滿浦鎭)과 더 안쪽의 강계(江界)까지 공격했다. ‘독립신문’ 대한민국 원년(1919) 11월 8일자는 “자성(紫城) 지방에서 독립군과 적병(敵兵) 간에 격전이 있었는데 적은 7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나 아군의 사상자는 별로 없으며 강계와 만포진은 아군의 수중에 점령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 [KBS 다큐세상봉오동, 100시간 전투의 비밀         2019.07.23 화


 

chosun.com

"봉오동 전투 패배 보복하려고 日帝는 민족지부터 탄압했다"

조선일보
입력 2020.03.04 03:00

['일제의 한국민족말살…' 낸 신용하 교수]
1920년 조선·동아 무기 정간 조치… 제2의 3·1운동 막으려는 언론 통제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최진동 등이 이끄는 독립군 연합부대에 참패한 일제가 군사 보복을 강행하기 전 민족지부터 무기 정간시켰다는 학설이 제기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04/2020030400079.html



chosun.com

亡國의 군대… 체코군 총 사들여 청산리 승리 이뤘다

조선일보
입력 2020.07.15 03:00

박환 수원대 교수 '독립군과 무기'

"정신력만으로 이긴 전투가 아니었습니다."

박환(62) 수원대 사학과 교수가 말했다. 올해 봉오동 전투(1920년 6월 7일)와 청산리 전투(1920년 10월 21~26일) 100주년을 맞아, 박 교수는 최근 연구서 '독립군과 무기'(도서출판 선인)를 냈다.


chosun.com

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모신나강 소총·맥심 기관총… 연해주로 쫓겨온 체코군에서 구입

입력 : 2020.07.21 03:00                             


3개월 뒤인 1918년 10월,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다음 달엔 독일이 항복하면서 1차 세계대전이 끝났어요.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던 체코 군인들에게는 고향에 돌아갈 뱃삯이 절실했지요. 그런 이들 앞에 나타난 사람들이 있었어요. 다름아닌 한국 독립군이었습니다.

한국일보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 현실로

수정: 2015.08.12 04:40
등록: 2015.08.12 04:40
 

가족 75%가 월소득 200만원 미만

인천 남동구 반지하방에 사는 최정선(76)씨는 1920년 봉오동전투에서 독립군 사령관을 맡은 최진동 장군의 손녀다. 독립운동가 3대인 그의 월 수입은 기초노령연금 20만원과 기초생활급여 30만원이 전부다.

출처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508120486548489


chosun.com

[조용헌 살롱] [1031] 의병장 韓鳳洙와 국방장관

입력 : 2016.03.14 03:00

 한봉수는 충청도를 대표하는 의병 대장이었다. 충청도 청주 일대에서 민중 사이에 전설적으로 회자되던 의병장이 바로 한봉수이다. '독립신문'과 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도 한봉수가 소개되고 있다. 한봉수는 총을 잘 쏘는 명포수(名砲手) 출신이었다. 10대 중반부터 사냥꾼을 따라다니며 총 쏘는 기술을 익혔던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13/2016031302031.html




한겨레21

임경석의 역사극장 1229호

‘나는 홍범도 장군’의 아내, 독립투사로 남다홍범도 귀순 공작에 맞서 싸운 이씨 부인…일제의 참혹한 고문에 저항하다 비명횡사
등록 2018-09-10 13:44 수정 2023-08-28 15:5
이씨 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은 그 뒤 어떻게 살았는가? 그들의 운명은 길지 않았다. 임재덕과 김원흥이 이끄는 토벌대 200여 명은 용문동 더덩 장거리 전투에서 홍범도 부대가 짜놓은 매복에 노출되고 말았다. 그 결과 토벌대 지휘부를 포함해 군경 209명이 포로로 잡혔다.
출처 :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5923.html?fbclid=IwAR0cna39qqm799K7sbtYN23JosOx

조선일보

[만물상] ‘자유시’ 스보보드니

▶하지만 스보보드니의 역사는 자유와 거리가 멀었다. 1921년 이곳에서 독립군이 소련 붉은 군대에 집단 학살되는 참변이 벌어졌다. 청산리·봉오동 전투 승리 후 일제의 강한 압박에 밀리던 독립군은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고 자유시에 총집결했다. 하지만 소련은 독립군에게 무장 해제를 요구했다. 이를 거부하자 소련은 독립군 내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함께 장갑차와 기관총을 앞세워 기습 공격했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최대 500명에 달했고 포로로 잡혀 붉은 군대에 끌려간 이도 1000명에 가까웠다.

출처 :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3/09/13/SDY5F4TTDBB3XESOTPYBYN5PDU/


조선일보


홍범도의 고백 “1922년 레닌 만난 건 自由市 참변 보고 위해서였다” [유석재의 돌발史전]

홍범도에 대한 추가 팩트 세 가지

이 자서전에는 홍범도 자신이 쓴 ‘이력서’가 함께 수록돼 있습니다. 여기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1921년 동지달에 모쓰크와로 레닌동무게로 1921년 자유시에서 조선빨찌산을 어간에 뉴혈적 사변이 난데 대한 보고을 하려고 조선빨찌산대표로 갇다.”

레닌을 만난 이유가 ‘자유시 참변 보고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출처 : https://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3/09/15/UN4IJEXULZGKNBYZ2GGPWM4YIY/

제주일보

봉오동 전투가 일어난 곳은 어디인가
  •  제주일보
  •  승인 2019.09.09


봉오동 또는 봉오골이라 불리는 지역은 골짜기를 따라 밑에서부터 하촌, 중촌, 상촌의 3개 마을로 구분될 수 있는데, 저수지는 하촌 인근에 있고, 실제 봉오동 전투가 일어났던 곳은 하촌에서 직선거리로 8∼10㎞가량 올라가야 하는 상촌 근처라는 것이다.

출처 :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45956


** KBS 봉오동⦁청산리 승전 100년 민족영웅 홍범도  2022.10.24.

** 벌거벗은 한국사 홍범도   

** [시사기획 창] 445회 홍범도와 홍범도 2023. 12. 05 화

** [시사기획 창] 453회 기차는 북으로 가고 있었다 2024. 2. 06 화

** 세계다크투어 : 일본과 독일의 차이,두 전범국의 다른 행보

** 제주도의 슬픈 과거가 서려 있는 알뜨르 비행장

** 제주도를 총알받이로 이용했던 일제의 만행들 | JTBC 220811 방송

** 세계다크투어 10회: 아름다운 성산일출봉에 남겨진 일제의 흔적, 동굴진지

** 제주 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다크투어"

** [10회 선공개] 제주도 성산 일출봉에 '일제의 군사기지'가 있다?! 《세계 다크투어》 8/11(목)

** 세계다크투어 10회 : 제주도 성산 일출봉에 일제의군사기지가 있다.


** 벌거벗은 한국사 일본인을 닮았다는 이유로 강제 이주 당한 시련을 겪은 홍범도… 2021년 서거 78년 만에 유언대로 조국으로 돌아온 대한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   


** 지식채널e- 대한독립군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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