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mynews

고종이 대원군보다 더 대담했다... 결과는 나빴지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54296



** [kbs 역사스페셜]   7회  고종황제 독살설   2009.08.15 토


조선일보

獨 묄렌도르프, ‘조선’에서 중용되고 ‘대한’에서 버림받다

[김명섭의 그레이트 게임과 한반도] [11] 독일 제2제국과 조선, 대한제국

이홍장을 배신한 묄렌도르프의 조-러 접근책

1882년 조선으로 하여금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토록 했던 이홍장은 그해 12월 조선에 묄렌도르프를 파견했다. 당시 청나라는 1689년 네르친스크조약 경계선을 넘어 두만강까지 남진한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해 조선이 청나라와 친밀한 동시에 일본과 결속하고, 미국과도 연대해야 한다는 조선 책략을 갖고 있었다. 이홍장은 프랑스에서 유학했던 마건충을 보내 미국과의 조약문 작성을 도왔다. 조약문 안에 조선이 청의 속국이라고 삽입하려 했지만 미국 대표 슈펠트(Robert Shufeldt)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대신 같은 해 체결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안에 조선이 청의 속방이라고 명기했다.



조선일보


‘합성사진’ 속 여자가 왕비요, 마고자 차림 남자가 대원군이라는데…

왕비 민씨와 흥선대원군… 그 사진들의 진실

그런데 임오군란 군인들이 저런 말을 한 장소는 흥선대원군이 사는 운현궁이다. 대원군은 1873년 고종이 친정을 선언하며 자기 집에 유폐된 상태였다. 대원군을 만난 군인들이 이렇게 덧붙인다. “대감은 전혀 걱정마소서. 새 세상을 만들어 대감과 함께 태평을 누리겠나이다(大監勿慮勿慮 作新世上然後 與大監共太平).” 대원군은 이들을 격려했고, 군인들은 궁궐과 한성에 사는 민씨들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질렀다.



조선일보




100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는 '고종 독살' 괴담[박종인의 '흔적']

[아무튼, 주말] 기록에 나와 있는 고종 사망의 진실은

괴담1 숙직한 이완용이 독살 지휘?

거짓말이다. 덕수궁과 창덕궁 당직실에서 작성한 ‘찬시실일기’에 기록된 당직자는 ‘자작 이완용’과 ‘자작 이기용’이다. 그런데 이 ‘자작 이완용(李完鎔)’은 우리가 아는 후작 이완용(李完用)이 아니다. 한자 이름이 다른 동명이인이다.

그런데 재야사학자 이덕일씨는 중앙일보 기고문은 물론 단행본에 ‘숙직시킨 인물들이 자작 이완용과 이기용(李埼鎔)’이라며 이완용의 한자 이름을 은폐했다(이덕일, ‘조선 왕을 말하다’2, 역사의 아침, 2010, p463). 이완용은 영친왕 결혼식 참석을 위해 일본에 있었다.

식혜를 먹인 궁녀들이 의문사했다는 주장도 괴담이다. 당시 궁녀 두 사람이 죽었다. 고종에게 음식을 올릴 위치가 아니었다. 안동별궁 침방 궁녀 김춘형(79)은 감기를 앓다가 1월 23일 죽었다. 덕수궁 잡역 궁녀 박완기(62)는 폐결핵을 앓다가 2월 2일 죽었다(1919년 3월 15일 ‘매일신보’).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