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임오군란 군인들이 저런 말을 한 장소는 흥선대원군이 사는 운현궁이다. 대원군은 1873년 고종이 친정을 선언하며 자기 집에 유폐된 상태였다. 대원군을 만난 군인들이 이렇게 덧붙인다. “대감은 전혀 걱정마소서. 새 세상을 만들어 대감과 함께 태평을 누리겠나이다(大監勿慮勿慮 作新世上然後 與大監共太平).” 대원군은 이들을 격려했고, 군인들은 궁궐과 한성에 사는 민씨들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질렀다.
100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는 '고종 독살' 괴담[박종인의 '흔적']
[아무튼, 주말] 기록에 나와 있는 고종 사망의 진실은
괴담1 숙직한 이완용이 독살 지휘?
거짓말이다. 덕수궁과 창덕궁 당직실에서 작성한 ‘찬시실일기’에 기록된 당직자는 ‘자작 이완용’과 ‘자작 이기용’이다. 그런데 이 ‘자작 이완용(李完鎔)’은 우리가 아는 후작 이완용(李完用)이 아니다. 한자 이름이 다른 동명이인이다.
그런데 재야사학자 이덕일씨는 중앙일보 기고문은 물론 단행본에 ‘숙직시킨 인물들이 자작 이완용과 이기용(李埼鎔)’이라며 이완용의 한자 이름을 은폐했다(이덕일, ‘조선 왕을 말하다’2, 역사의 아침, 2010, p463). 이완용은 영친왕 결혼식 참석을 위해 일본에 있었다.
식혜를 먹인 궁녀들이 의문사했다는 주장도 괴담이다. 당시 궁녀 두 사람이 죽었다. 고종에게 음식을 올릴 위치가 아니었다. 안동별궁 침방 궁녀 김춘형(79)은 감기를 앓다가 1월 23일 죽었다. 덕수궁 잡역 궁녀 박완기(62)는 폐결핵을 앓다가 2월 2일 죽었다(1919년 3월 15일 ‘매일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