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강(11)              김 헌 일      빙판은 언뜻 보기에 그럴 듯 하였지만, 여기저기 구멍이 파이고 군데군데 얄팍한 얼음으로 간신히 이어져 있어 위험천만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한참 쌍안경의 렌즈에 부릅뜬 눈알을 열심히 굴려 대고 있었다. 그 어느 때였다. 걷어 질린 로버트의 목소리가 땅을 울리며 날아왔다.      " 킴. 저쪽을 자세히 살펴봐. 이상한 것이 있어. "      그가 가리킨 곳은 누더기 같은 빙판을 거의 다 건너간 지점이었다. 빙하를 받치고 있는 빙퇴석 언덕이 팔에 닿을 듯 가까운 곳이었다. 그곳의 얼음 한가운데 동그랗고 까만 점이 하나 있었다. 맨눈으로 보기에 그것은 빙판 위의 한 무더기 흙덩이거나 검정색의 작은 바위처럼 보였다. 나는 그것에 쌍안경의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만 까무러치듯 놀라고 말았다.      거기엔 머리에 하얗게 얼음덩이를 뒤집어 쓴 사내가, 물구덩이에 몸을 빠뜨린 채 허우적거려 기어 나오려는 듯 아니면 하늘을 향하여 무엇인가 간절히 빌고 있는 듯 허공을 향하여 두 팔을 내뻗은 자세로 얼어붙어 있었다. 정녕 데릭의 모습이었다.      - 여길 건너가야만 해!      데릭 그 작자가 거기에 서서 그렇게 외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우리가 크닉 빙하로 떠나기 전날 첫눈이 온 뒤, 한동안 끊겼던 눈이 연일 퍼부어져 내리고 있었다. 벌써 시월 하순이었다. 다른 해 같으면 한겨울이었다. 이제 머지않아 사람들은, 바위틈에서 새어나오는 자그마한 햇빛을 손바닥으로 소중히 받아내는 동굴 속 원시인들처럼 살아야 할 것이었다. 지천에 깔린 것이 전기이고 석유이고 가스이니 그닥 춥지야 않을 것이고 운신을 못할 것도 아니었지만, 어디 그것으로 태양을 대신할 수 있으랴.      데릭의 장례를 치른 뒤 일주일이 지났다. 그날 크닉 빙하에서 돌아온 뒤 우리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에선 그 이튿날 헬리콥터를 동원하여 그의 시체를 건져내었다. 알라스카의 유력 일간지 데일리 뉴스도 그에 관한 기사를 짤막하게 다루었었다. 맨몸으로 빙하를 탐험하려는 무모한 꿈을 지녔던 31세의 한 남자가 빙하의 목전에서 죽어갔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멀리 수림으로 떠날 때, 갖추어야 할 장비며 주의사항도 간략하게 실려 있었다.      리디아는 일년 전 자신이 시민권을 획득하던 날 뭇 사람들 앞에서 '나는 미국이 자랑스러워요' 하고 외치던 바로 그 교회의 강당에서, 데릭을 떠나 보내어야 하였다. 몹시 지쳐있던 그녀는 그다지 울지 않았다. 더 큰 눈물을 집어 심킨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는 길목에서 죽어갔다. 데릭 그 친구도 그랬다. 한가운데 강물이 흐르고 잎 떨어진 나무가 몇 그루 서있고 저물어 가는 태양에 하늘이 온통 노랑 빨강 연두색으로 빛나던 곳을 찾아 헤메이다가 저 세상으로 가 버렸다.      내가 목숨을 바쳐 찾아가야 할 고향은 과연 어디일까? 아버진 그곳을 황해도 연 백군 해동면 홍은 마을이라고 노상 읊조리곤 했다. 그러나 그곳은 지도에서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 이놈아. 너는 어찌 네 조상들의 뼈가 묻힌 고향도 모르느냐? 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줄 아느냐? 네가 이만큼 사는 것도 다 그 양반들 공덕이여!      요즘 세상에 고향이라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하는 내게 아버진 늘 그렇게 타박을 하곤 했다.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북쪽 하늘이 보이는 그늘진 능성이에 아버지의 뼈를 묻으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흉중을 헤아리질 못했었다.      느닷없이 떠오른 아버지 생각에 공연히 시려오는 눈알을 끔벅이며 나는 공항 대합실 벽면에 높다랗게 매달려 있는 큰사슴의 흉상을 바라보았다. 머리엔 커다란 나뭇가지를 닮은 뿔이 매달려 있었다. 무겁지도 않은 지, 그것은 내게 이 온세상의 무게를 송두리째 머리에 이고 다니려는 어리석은 옹고집처럼 보여왔다.      거기엔 몸집이 황소 만한 사향소의 박제도 장식되어 있었다. 머리에서 돋아난 뿔이 한껏 멋을 부리듯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주둥이 께까지 내려와 있고, 눈은 작고 멍청한 듯 하면서도 매서운 구석이 있었다. 거칠고 굵은 검정 빛깔의 털이 온통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그놈에게선 풋풋한 야생의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아득한 옛날의 그 어떤 기억 속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듯 했다.      나는 전송을 나올 로버트와 리디아를 기다리기 위하여 대합실 밖으로 나왔다. 주황색을 띈 조명등 아래로 주먹만한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눈꽃을 하얗게 뒤집어 쓴 나뭇가지들이 노란 불빛을 되쏘며 검고 아득한 허공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거기에선 막 감미로운 선율이라도 흘러나올 듯 했다. 어둠에 물든 하늘을 빼고, 세상은 온통 흰빛 일색이었다. 눈은 주차장에 내려 거기에 서 있는 자동차들의 자취를 감추어 버렸으며 길의 흔적을 지워대고 있었다.      이제 나는 삼년 여의 이곳 생활을 마감하는 순간에 있었다. 변호사 골드만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체류에 관한 건은 없던 걸로 해달라고 통보해 버린 뒤였다. 이제 한 시간만 지나면 비행기에 올라 아직은 따스한 가을의 나라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아이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내는 뽑았던 전화선을 다시금 꽂아 두었겠지. 이젠 전화를 해 댈 곳을 잃어버린 수옥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그녀는 어쩌면 또다시 자신의 말을 들어줄 따스한 인간의 귀를 찾아헤멜 것이 분명했다.      제주도의 한 호텔에서 온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나에게 전화를 하던 날, 수옥은 하나 뿐인 딸을 남편에게 보내었다. 딸이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울고 보채고 앙탈을 부리는 통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했다. 빨강색 불자동차나 두발로 걷는 고릴라, 그리고 고개를 연방 까닥거리며 예쁜 소리로 울어대는 앙증맞은 새 모형도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남편은 아내를 버리고, 아내는 남편을 증오하고, 딸은 그들 부모 중 어느 한쪽도 버릴 수 없던 그 이상한 상황을 그들은 어떻게 처리할까? 고향을 잃은 아픔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고향이 그들을 버렸어도 고향을 잊을 수 없던 그 수많은 사람들. 어쩌면 향수라는 건 우리들 인간의 어리석음이 빚어낸 엄청난 비극일지도 몰랐다.      눈밭에 어지러운 광선을 뿌려대며 한 대의 승용차가 내 앞에 멈추었다. 새벽 세 시의 깊은 시간에 나를 전송 나온 로버트와 리디아였다. 왜 여기에선 한 밤중에 비행기를 떠나 보내는 것일까? 그 까닭을 모를 내가 아니었지만 문득 짜증이 났다. 한낮의 시간이라면, 한 순간의 시간이 소중한 지금을 좀더 의미있게 장식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자동차가 눈구덩이에 빠져서 혼이 났어. 아직 체인을 감질 않았거든. "      로버트가 시간이 지체되었음을 사과하며 악수를 청해 왔다.      " 만나서 반가워요. "      로버트와 악수를 나눈 뒤, 나는 리디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순간 당혹스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인간의 인사에는 반가우니 즐겁느니 하는 투의 말밖에 없는 것일까? 불과 일 주일 전 남편을 잃은 여자에게 그 말은 아무래도 적당한 것이 못 되었다.      슬픔이 채 가시지 않았던지, 리디아는 별 말이 없었다. 내리 감겨진 그녀의 눈시울이 가로등에서 날아온 불빛을 받아 연해 반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 편지 쓸 께. 그리고 다시 만나. "      로버트가 팔을 내밀어 왔다. 떠나려는 내게 리디아는 핸드백을 부스럭거려 무엇인가를 꺼내어 건네 왔다. 그것은 언젠가 보았던 데릭의 어린 시절 사진이었다. 활짝 웃고 있는 개구쟁이 소년의 어깨 뒤로 모네의 '황혼의 설경'이라는 커다란 그림이 또렷이 박혀 있었다.      - 이건 오하이오에 있는 내 집의 사진이야. 여긴 이층이지.      데릭 그 작자의 맑은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오는 듯해서, 나는 잠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탑승교에 이르자 많은 사람들이 날 기다려 거기에 몰려서 있었다. 기내청소부 빅터, 태국여자 밤비, 검둥이 로렌스, 멕시코인 무차. 약속이나 했던 듯 모두 모여 있었다. 한결같이 고향이 그리운 그들이었다. 올 겨울엔 고향엘 가 장가를 들겠다던 바야니는 일찌감치 자신의 꿈을 포기해 버린 뒤였다. 그들은 내게 악수를 청하고 포옹을 해왔다. 그리고 환호를 질러 대었다. 그러나 그들의 환호 소리가 내게는 무참한 절규처럼 들려왔다.      - 나도 가야해! 고향이 보고 싶어!      굉음을 지르며 비행기가 굴러가기 시작하였다. 요란하기만 하던 공항청사의 불빛이 어느새 저만큼 작아져 있었다. 여기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갖가지 일들은 내가 멀어져 가는 속도 만큼 빠르게 잊혀져 갈 것이었다. 그러나 데릭 그 자가 내 가슴에 심어놓은 엉뚱한 불씨는 언제까지나 사그라 지지 않을 것이었다. 정말 우리들의 고향은 빙하 너머에나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 때문에 우리는 있지도 않은 고향을 그리며 끊임없이 괴로워해야 할 것인가? 아버지가 진정으로 그리워 했던 것은 변해도 수없이 변했을 황해도 연백군 홍은 마을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편안하고 즐겁고 인간다운 삶이 아니었을까?      불현듯 일곱살박이 막내아이 녀석의 편지 한 구절이 떠올랐다.      - 아빠. 오늘은 내 생일이어요. 돈도 많이 들 건데 엄마가 초코케이크를 사 주셨어요. 그런데 그걸 먹다가 아빠 생각이나서 막 울었어요.      그랬다! 그것이 바로 내가 찾아가야 할 고향의 소리였다.      이륙을 시작한 항공기의 충격 때문이었을까? 잠시 무중력 상태의 어찔함이 느껴지며 눈알에 팽하니 뜨거운 물이 고여들었다. 손수건을 꺼내며 나는 시선을 창쪽으로 돌려 대었다.      융단처럼 깔린 도시의 화려한 불빛 위로 비행기는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