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강(10)              김 헌 일      " 로버트. 힘을 내. 일어나! "      나는 사정없이 오토바이를 잡아끌며 외쳤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도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오토바이의 무게도 엄청난 것이었지만 그것에 가해지는 물살의 힘은 도저히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한참 만에야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몸을 빼자 이번엔 오토바이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하여 오토바이를 붙잡았다. 그리고 참으로 다행스럽게 그것을 땅 위로 올려놓을 수가 있었다. 오토바이를 끌어내자 로버트는 그걸 내던지고 나를 포옹해 왔다. 감사의 표시였다. 아니 이제 살았다는 감격의 표시일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우리는 떨고 있었다. 이 웅대한 자연의 위력 앞에 떨지 않을 인간은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우리가 강을 다 건넜을 때는 한 시가 넘어 있었다. 오전 여덟 시에 캠프를 떠났으니 여기까지 오는 데 다섯 시간이나 소모해 버린 셈이었다. 잘못하면 데릭을 찾는 일을 중간에서 포기하게 될 는지도 몰랐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그냥 돌아가기에도 빠듯하였다. 평소 같으면, 말수가 적은 내게 다가와 플로리다에 두고 온 제 고향집이며 두번 씩이나 아내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자질구레한 사연을 줄줄이 이야기해 주던 로버트는 말이 없었다. 그는 불가에 앉아 타닥거리며 타오르고 있는 불길만 멍하니 바라볼 따름이었다.      바지며 양말을 벗어 쥐어짜고 꽁꽁 얼어붙었던 발바닥이며 궁둥이에 어지간히 불길을 쏘이고 난 뒤, 우리는 다시 행장을 차렸다. 남쪽으로 둔덕이 져 있어서 빙하는 보이지 않았지만 갈 길이 그다지 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더구나 여기에서 빙하까지는 나무 한 그루 서 있지 않은, 광활한 툰드라 지역이었으므로 단숨에 달려갈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슬쩍 다이아몬드 강을 바라다보았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깜박 속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턱없이 얕고 잔잔한, 한여름이면 동네아이들이 벌거벗고 나와 마구 뛰어 놀 그저 흔해빠진 개울물처럼 보여왔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오토바이 뒤에 매달린 보조연료통을 열고 오토바이에 채워넣은 뒤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삼십 분을 달려간 뒤, 우리는 완만하게 솟아오른 둔덕의 경사면을 향해 피치를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둔덕에 다 올라섰을 때, 우리는 숨을 딱 멈추고 말았다.      그곳에 올라서기가 무섭게 먼저 얼굴에 확 뿜어져 온 것은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대하지 못한 두터운 정적이었다. 무량겁(無量劫)의 시간 동안 삭아지고 쌓여온, 그 철저한 정적에 귀청이 스르름 녹아지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정적 속으로 태고의 세상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울면처럼 잔잔한 청회색 호수에는 수많은 얼음 덩어리가 고요히 떠 있었다. 조그마한 조약돌 만한 것에서부터 두 발을 모으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슴의 모양을 한 것, 포효하는 호랑이나 사자를 닮은 것 그리고 노령산맥 태백산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빙산 조각들이 그윽한 정적 속에 둥둥 떠 있었다. 그것들은 정녕 신의 조각품들이었고 호수는 그것들을 얼싸안은 신의 궁전이라할 만 하였다.      빙하호 건너편으로는 빙하가 내륙 깊숙한 곳에서 옮겨다 놓은 빙퇴석(氷堆石)이 나지막한 산을 이루었고 그 위로 빙하가 솟아 있었다. 머리는 뾰족뾰족한 수많은 봉우리를 이루고 허리로는 흑갈색의 골과 주름을 휘감았으며 호수에 면한 곳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고 있었다. 빙하의 한가운데에는 깊고 거대한 골짜기가 파여져 있었는데, 그 안에 들어가 소리를 지르면 소리가 금방 우렁우렁 울려 퍼져 그 어마어마한 빙하를 송두리째 내려앉힐 듯 하였다.      빙하의 뒤로 만년설을 이고 앉은 높다란 봉우리들이 보였다. 그리고 봉우리 사이사이로 수천 미터 깊이로 쌓여 있는 대륙빙하가 그 신비한 자태를 드러내고, 그 골짝을 휘돌아 가며 누군가 그려놓은 듯 실같은 구름이 걸쳐 있었다.      나는 벌판에 나가서면 제 집을 느낀다는 데릭의 말을 생각해 내었다. 그 말이 옳았다. 난생처음 가까이 들여다보는 빙하의 골짜기는 신비하면서도 무섭지 않았다. 소리 하나 나지 않으면서도 휘휘 하거나 사위스럽지가 않았고 오히려 평온을 느끼게 하였다. 이 지구상에 세상이 시작되는 곳이 아직도 존재한다면, 여기가 바로 그곳일 것이었다. 이 무한한 평화. 그리고 하늘과 땅의 완벽한 조화. 거기엔 무엇 하나 더하거나 뺄 것이 없었다. 여기에선 까마득히 잊혀졌던 어머니의 따스한 숨결이 느껴지는 듯 했다. 여긴 어릴 적, 서산을 넘어가던 태양의 고즈넉한 신비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고향의 모습이었다. 여기엔 그 어떤 질시나 증오도 그리고 아귀다툼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사랑뿐이었다.      - 아무런 돌아갈 곳도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녀에겐 너무나 무서운 일이었어요. 그녀는 실망한 나머지 죽기를 바랬어요. 그 모습이 너무나 비참해서 그녀를 돕고 싶었어요. 그리고 나도 죽으려고 했어요. 나 역시 에이미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도 그걸 믿지 않아요. 모두들내가 그녀를 겁탈했다고 만 믿고 있어요. 내가 그 불쌍한 앨 겁탈하다니요.      고향도 모르고 평생을 살아온 살인혐의자 윤경수는 숨을 넘기기 전 간호사에게 그렇게 속삭였다고 데일리 뉴스 기자는 전했었다. 그리고 에이미 수우 베고비치가 죽기 한달 전 그녀의 고향 사라예보에서 그녀에게 배달된 한 통의 편지를 짧게 인용해 놓고 있었다.      - 사랑하는 에이미. 사람들이 우리들의 고향을 떠나고 있어. 어떤 가족은 아버지만 남고 어머니와 아들은 떠나고, 어떤 사람들은 부모는 남고 아이들만 떠나고… . 헤어지면서 서로 눈물만 글썽이고 있었어.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속이나 편할 텐데. 그런데도 그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를 향해 총질을 하고 있단다. 이젠 묘지나 공원에 죽은 사람 묻을 곳도 없어. 그리고 슬픈 소식을 하나 전하겠다. 이곳에 있는 너의 옛집이 불타버렸단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집들이 한꺼번에 불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손도 써볼 수가 없었어. 미안해. 거길 떠나면서 꼭 돌아오겠다고 눈물을 글썽이던 너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데 말야. 한마디로 여긴 지옥이야. 모두 다 미쳐버렸어.      이곳에서도 데릭의 흔적은 찾아지지 않았다. 그도 필경 이곳에 넋을 잃고 주저앉아 빙하며 산맥을 바라보다가 다음 장소로 옮겨갔을 것이었지만, 하찮은 담배꽁초 하나 남아있질 않았다. 하긴 여기 어디에서 그가 한 갑의 담배를 다 피워대었다 해도 변화무쌍하고 굴곡이 심한 이곳에서 그걸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터이었다.      그는 반드시 이 호숫가를 끼고 서쪽으로 돌아 난 둔덕을 따라 내려간 다음 그 아래 길펀하게 깔려있는 얼음판을 타고 건너편 빙하로 올라갔을 것이었다. 그런 뒤 빙하의 우측 능선을 내려가 알리예스카 숲으로 들어갔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길은 그 길뿐이었다. 그것도 호수면 위에 납작하게 들러붙어 있는 얼음이 사람이 지나다녀도 좋을 만큼 충분히 단단하고 안전하다는 전제에서 였다. 물 속에 떠 있는 얼음은 군데군데 홈이 파여져 있거나 틈이 벌어져 있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호숫가로 난 둔덕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다. 로버트의 오토바이는 그곳에 놓아둔 채였다. 경사지고 길 폭이 불규칙적인 둔덕 길을 오토바이로 타고 달리기엔 아무래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아까 빙하의 서남 쪽 구석에서 미친 여자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처럼 풀어져 있던 구름이 조금씩 걷혀지고 있었다. 흩어진 구름 위로 멀리 산들이 돋아났다. 하나, 둘, 셋, 넷. 깨어진 유리병처럼 날카로운 산들이 디귿자 형태의 대열을 이루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아래에서 그냥 하늘의 한 조각만 같던 구름이 스르름 자취를 감추자 거기에서 육중한 산의 허리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처음에 모습을 드러내었던 것들은 산마루 위에 첨탑처럼 솟아오른 여러 개의 봉우리였다. 마치 은빛의 찬란한 왕관을 뒤집어쓴 듯, 아니면 우람한 기둥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그리스의 신전을 얹어 놓은 듯, 산 위에서 산들이 맥(脈)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더이상 놀라거나 감탄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아름답다거나 신비한 것은 더이상 경이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현상이었다. 그 흔한 구름 한 점, 돌 하나가 저마다 신비를 간직하고 있었다.      잠깐 그 광경에 한눈을 팔던 사이, 우리는 빙하의 서남쪽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곳에선 호수면 위로 납작하게 얼어붙어 있는 빙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빙하로 건너가기에 맞춤인 장소였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까무라 칠 듯한 충격 속에, 지난 며칠 동안 꿈에도 잊지 못하던 데릭의 노란 색 오토바이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데릭의 오토바이는 66 이라는 숫자판을 자랑스레 허공에 치켜세우고 가풀막에 기대어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오토바이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고 성에가 두텁게 올라와 있었다. 나는 넘어져 있는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오토바이에 손길이 닿는 순간 가슴이 움찔해 왔다. 나는 그때 석달 전 서튼에서의 일을 짤막하게 회상하고 있었다. 절벽이라고 하여도 좋을 언덕을 향하여 맹렬히 오토바이를 몰고가던 그 모습, 그리고 기어이 언덕 위에 올라서 버린 뒤 허공을 배경으로 서서 엄지손가락을 한껏 치켜올리던 그 모습들이 감동적인 영화에서 보았던 한 장면처럼 뇌리에 각인 되어 왔다. 그는 무서운 의지를 가진 사내였다. 한번 세운 뜻을 중도에서 그치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오토바이 뒤쪽에 튼튼한 끈으로 감겨진 보따리를 풀기 시작하였다. 거기엔 텅 비어있는 비닐물통 하나와 커피가 바닥난 녹색 보온병 그리고 얼어붙은 장갑 한 짝과 물 젖은 양말 두 켤레 또 다 떨어져 걸레조각처럼 되어버린 수건이 한 장 돌돌 말려져 있었다.      갑자기 로버트가 허공에 총탄을 날리기 시작하였다. 그 돌연한 총성에 건혼이 나서 나는 한동안 의아한 눈초리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의도를 짐작해 내고는 나도 총을 들어 쏘아대기 시작하였다. 분명 데릭 그 작자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이었다. 우리의 총소리를 듣고나면 그도 당연히 응답을 해 올 것이었다.      그러나 허사인 듯 했다. 총소리는 잠자는 호수를 단숨에 뒤엎고 빙하를 무너뜨릴 듯 하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나는 총 대신 쌍안경을 거머쥐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특히 발아래 질펀하게 깔려있는 얼음판을 샅샅이 뒤져갔다. 행여 그의 발자국이 박혀 있거나 소지품 하나라도 건지게 될 는지도 몰랐다. 잘 하면 우리의 모험도 여기에서 끝낼 수도 있었다.      나는 성급하게도 데릭을 만나게 될 경우, 내가 하게 될 첫마디 말을 생각해 내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잘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 어떤 말도 내 마음을 채우기에 부족하였다. 아니었다. 내가 하여야 할 말이 있었다.      - 야, 임마. 우리 오하이오로 가자. 진짜 네 고향으로 데려다 줄께.      그렇게 해서 나는 모네의 '황혼의 설경'이라는 그림이 붙어 있었다는 그의 옛집으로 데려갈 셈이었다.      그러나 생각은 거기에서 막히고 말았다. 그의 옛집은 있으되 거기에 그의 고향이 존재할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차지하여 서까래가 썩어 문드러지도록 살아온 그 집에서, 그리고 이미 다른 사내의 여자가 되어버려 데릭 만큼이나 커다란 아이를 둘씩이나 둔 제 어머니에게서 과연 고향 같은 게 느껴질까? 그리고 저 멀리 카리브 해의 작은 섬에서 자기보다 마흔 살이나 적은 소녀와 꿈 같은 데이트를 즐기고 있을 아버지에게서, 또 수십 번이나 크리스마스가 지나도록 한번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 형이나 누이에게서 그 옛날 팬지꽃이며 히아신스가 만발한 정원의 낭만이 되살아 날 수 있을까?      그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에게서 고향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것은 차라리 저 빙하 너머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찾아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