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1)
김형엽
한낮의 뜨겁던 날씨는 밤이 깊어가도 식을줄을 몰랐다.
유 영옥은 시계가 새벽 1 시를 가리키는데도 오지 않는 남편 조 봉석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며 아파트 창문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가끔 늦는 날은 있어도 늘 자정을 넘기
지는 않았었는데 오늘은 벌써 자정이 지난지도 오래고 이렇게 창문 밖을 내다 본지도
30 분은 족히 된것 같았다. 가끔 밤하늘의 별을 바라 보다가도 멀리서 차소리가 들리
면 다시 눈을 돌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차를 응시했다. 또 한대의 택시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고 있었다. 택시는 가볍게 아파트 단지속으로 빠져 들어왔다.
그녀는 두눈을 더 크게 뜨고 혹시나 남편이 아닐까 하는 기대속에서 택시를 주시했다.
이윽고 택시가 멈추고 뒤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술이 취했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도 못하면서 그녀의 아파트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자기의 남편이 아닌
것이 확인되자 짤막한 한숨을 토해 냈다. 택시는 아파트 단지를 서서히 빠져 나갔고
술에 취한 남자도 비틀거리면서도 자기집으로 찾아 들어 갔다. 다시 아파트 단지의
공터에는 가로등 불만이 덩그런히 비출뿐 적막감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스렌지 스위치를 올리고 주전자를 올
려 놓았다. 그리고는 커피잔을 꺼내어 커피를 두 스푼 덜어냈다. 커피잔을 식탁위에
내려놓고 다시 한번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단지내로 들어 오는 차는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한번 더 쳐다보고 이미 1 시가 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허탈감과 공
포감을 동시에 느꼈다. 갑자기 27 평의 아파트가 커 보였다. 방에는 그녀 혼자뿐이
었다. 결혼한지 이제 4 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혼부부였기에 아이도 없었다.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 마시고 커피잔에 물을 부었다. 가스렌지의 불을 끈 후 커피잔
을 든 채로 창가로 갔다. 주위에 아파트 단지를 살펴 보았지만 불이 켜진집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유독 자신의 집에만 불이 환히 켜져 있다는게 꼭 어떤 표적물이 되어버린
기분을 느꼈다. 안방이며 거실의 불을 모두 끄기 시작했다. 실내등 하나만을 남겨놓
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때 한대의 차가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기 시작했
다. 창가로 바싹 붙어 이번에는 제발 남편이기를 바라며 차를 주시했다. 그러나 곧
실망하고 말았다. 그건 택시가 아니라 검은색의 자가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겐 아직 자가용이 없었다. 다시 짧은 한숨을 내 쉬며 실망하면서도 자가용에서
누가 내리는지 주시했다. 곧 검은 자가용은 주차 표시가 되어 있는 곳에 멈추었고 좌
우문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검정색 양복의 30 대 남자였고, 반대쪽에서 내린 사람은 20 대 초반의 짧
은 치마를 입은 여자였다.
그녀는 남자에 비해 여자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이 어느 곳으로 들어 갈까
궁금해 했다. 그러나 그들은 차에서 내려 서로를 쳐다 보고만 있었다. 이상하게 생
각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그들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남자의 오른손이 허공에 떴
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정없이 여자의 빰을 후려 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여자가 남
자를 쳐다보며 무엇라고 말을 하는것 같았다. 그녀는 그들의 그런 행동을 멍한 상태
로 바라만 보았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3 층이었고 그들과의 거리는 불과 20 미터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에 단지를 밝혀주는 조명등이 환히 켜져 있었기에
자세히 보면 그들의 표정까지도 볼 수 있었다.
( 싸움을 하는 것일까? 나이 차이도 좀 나는것 같은 것으로 보아 부부는 아닌 것 같
고.... )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커피잔을 입에 대며 그들을 계속 주시하는 데 갑자기 남자의
오른손이 포켓속으로 들어 갔다가 나오면서 빠른 동작으로 여자의 가슴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여자가 움직임을 멈추더니 남자의 가슴으로 엎어졌고, 사내의 오른손에서 무
엇인가 불빛에 반사되어 번쩍 빛을 뿜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그녀가 소스라치게 놀
라면서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그대로 바닥에 떨구었다.
" 쨍그랑 --- "
커피잔이 깨지는 소리는 어둠속의 고요함을 무참히 깨어버렸다. 순간 남자의 눈이 그
녀의 아파트로 향했다. 실내등이 켜져 있었기에 어둠속에서도 남자는 쉽게 그녀의 모
습을 찾아 내었다. 숨이 막혀 왔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방바닥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그리고는 조금씩 움직여 실내등의 스위치
마저 꺼 버렸다. 그리고는 침대속으로 기어 들어가 엎드린 채로 얇은 이불을 뒤집어
썼다. 이불 전체가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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