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피카소의 장미(2)

김형엽

     밖에서 차소리가 났다. 또 한대의 차가 들어 오는 소리 같았다. 이불속에서 떨면서 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곧 이어 다시 차가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생 각했다.
     ( 그렇다. 전화를 해야한다. 전화를 ..... )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이불속에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천천히 기어서 전화가 있 는 곳으로 갔다. 바로 코 앞에 있는 전화가 상당히 멀리 있는 것처럼 느끼면서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 딩동 딩동 "
     그녀의 방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기겁을 하며 전화 수화기를 떨구면서 구석 모퉁이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 쓴채 떨었다.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제는 이까지 서로 맞닿을 정도로 떨었다. 다시 한번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 그 놈이 여기까지 올라 온거야. )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때 문 밖에서 대문을 두들기며 그녀의 이름을 외쳐대는 소 리가 들렸다.
     " 영옥아! 나야. 나 봉석이야. 문열어."
     그건 뜻밖에도 남편의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조금전 차 소리는 남편을 싣고 온 택시 소리였다는 것이다. 조금씩 기어 방문을 열고 나가 현관문쪽으로 움직였다.
     " 누.. 누구세요? "
     " 나야. 나. 잠이 들었던 모양이지. "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고리를 돌렸다. 덜컹 문이 열였다.
     " 아니 왜 불도 켜지 않았어. "
     방으로 들어서면서 봉석은 거실의 스위치를 올리려고 했다.
     " 안돼. 켜지 마세요? "
     그녀는 봉석을 끌어 들이다시피 잡아 당기면서 곧 대문을 잠갔다.
     " 아니, 왜 그래 당신... 무슨 일 있어. "
     " 일단 방으로 들어 가요. 빨리요. "
     봉석의 팔을 잡아 끌며 방으로 들어 갔다. 그리고는 곧 방문도 걸어 잠갔다. 그리고는 봉석의 품에 안겨 흐느끼기 시작했다. 봉석은 아내를 품어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미안해. 어떻게 해서든지 12 시전에 오려고 했는데 친구들이 어떻게나 붙잡는지... 지금도 겨우 빠져 나온거야. "
     봉석은 자기 자신이 너무 늦어 그녀가 혼자 무서워 했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녀는 봉석의 품에서 고개를 도리질했다.
     " 그래. 내 다시는 이렇게 늦지 않을께. "
     그 때 자동차의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면서 봉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차.. 창가로 가 보세요. 어떤 차가 나가는지... "
     " 차라니 ? "
     " 지금 시동거는 차를 보란 말예요 ? "
     봉석은 그녀를 세워둔 채 창가로 갔다. 검은 승용차가 막 아파트 단지를 빠져 나가고 있었다.
     " 검정색 승용차가 나가고 있는데... 저 차는 왜 ? "
     " 빠져 나갔었요 ? "
     " 응. 이제 단지 밖으로 나가 버렸어. "
     그녀는 곧 창가로 다가 갔다. 검은 승용차는 이제 단지 밖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가 다시 내 쉬었다.
     " 당신 아는 사람이야. "
     " 아니요. "
     봉석이 실내등을 켜려고 침대쪽으로 향하다가 느닷없이 비명을 지른다.
     " 아얏 ! "
     " 왜 그래요 ? "
     " 발에.... 발에 무엇이 찔렸어. "
     " 아. 그렇지. 커피잔이 깨졌었지. "
     " 빨리 불을 켜봐. "
     " 예. "
     그녀가 방안의 실내등을 켜자 방안이 조금 환해졌다. 이미 봉석의 발에서는 피가 새어 나왔다. 봉석을 부축하여 침대에 앉게하고 피가 새어 나오는 왼쪽발의 양말을 벗기었 다. 발바닥이 약 1 센티미터 정도 찢어져 있었다.
     " 어떡해요 여보. "
     근심어린 표정을 짓고 봉석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봉석도 자신의 상처를 보았다.
     " 그리 큰 상처는 아닌것 같아. 그냥 지혈제하고 작은 밴드정도 붙히면 되겠어. "
     그녀는 빠른 동작으로 구급약통을 가져 왔다. 그리고는 민첩하게 상처 부위를 지혈하 고 약을 바른후 가제를 덮고 밴드를 붙였다.
     " 커피잔이 다 깨어지고 정말 무슨일이 있었구나. "
     그녀는 봉석의 오른쪽 양말을 마저 버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전의 사건을 남편 에게 이야기 하려고 했지만 웬지 망서려 졌다.
     " 무슨일이야. 말해봐. "
     " 아니예요. 창가에 놔 두었다가 잠시 놀래서 떨어 뜨린 거예요. "
     " 놀래 ? 왜 ? "
     " 별일 아니예요. 피곤 할텐데 어서 옷 갈아 입고 주무세요. "
     " 무슨 일인지 정말 말 안할거야. "
     봉석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졌다.
     " 그냥 조금전 나간 자가용에서 내린 사람들이 싸울길래, 그 싸움 구경하다 실수로 떨 어뜨린 거예요. "
     " 싸우다니. 왜 ? "
     "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별일 아니니까 어서 주무실 준비나 하세요. "
     그녀는 거실로 나가 비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커피잔이 깨진 주변을 쓸기 시작했다. 봉석은 시계를 들어다 보고는 벌써 2 시가 다 되어가는걸 보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더 물어 보려고 했지만 곧 날이 밝으면 출근도 해야하고 늦게까지 마신 술로 피곤해 금방 잠이 쏟아졌다.
     " 그래. 그럼 오늘은 그냥 자고 내일 퇴근후 얘기하자. " 봉석이 하품을 하며 침대위로 누웠다. 그녀는 깨진 커피잔을 쓸어모아 휴지통에 버리 고는 욕탕으로 갔다. 수도물을 힘차게 틀고는 손으로 물을 받아 얼굴을 씻었다. 거울속에서 또 하나의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아침 일찍 그 곳에 가 보는거야. 칼에 찔렸다면 틀림없이 핏자국이 있을거니까. )
     그렇게 생각하면서 중년 남자의 얼굴을 그려 보았다. 유난히 눈매가 날카로웠다는 것 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그 남자를 다시 본다면 얼굴정도는 알아 볼수 있을것 같 았다.
     ( 남편에게 얘기를 안 한것은 잘한것일지도 몰라. 혹시 내가 잘못 보았을수도 있을수 있으니까. 하지만 핏자국이 있다면... 아냐.. 아닐거야)
     온몸의 진저리를 느끼며 다시 손으로 물을 받아 얼굴을 씻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 으며 거실과 욕탕을 불을 껐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거실문이 잠긴것을 확인한 후 방 으로 들어갔다. 이미 봉석은 작게 코를 골며 잠이 들어 있었다. 창가로 살며시 다가 가서 조금전 검은 승용차가 멈추었던 곳을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짧은 한 숨을 내 쉬면서 커텐을 치고 침대로 갔다. 런닝과 팬티 차림의 봉석을 제대 로 자리 잡게 하고 그녀 자신도 누웠다. 쉽게 잠이 들 것 같지 않았다. 눈을 감아보 았지만 조금전 보았던 사내의 모습이 계속해서 영상으로 떠 올랐다. 몸을 옆으로 돌 려 봉석을 쳐다보았다. 늦게 들어와서 곧 바로 잠이 들어 버린 봉석이 미웠지만 깨우 기가 싫었다. 곧 날이 밝으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직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봉석 이 조금은 가엾다는 생각을 했다. 손으로 봉석의 왼쪽뺨을 쓰다듬다가 고개를 자기쪽 으로 돌리게 했다. 그러자 봉석의 몸이 자연스레 옆으로 돌며 오른팔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봉석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 안기며 눈을 감았다. 공포속에서 벗어나려는 몸 부림 같았지만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느낌이 왔다. 이제서야 마음놓고 잠을 잘 수 있 다는 생각을 하며 봉석을 꼬옥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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