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42)
김형엽
" 왜요... 저 배를 이 곳에서 기다려 봐야 하쟎아요. "
" 아직 저 배에 누가 탔는지 모르니 일단 들어가자고. "
사내가 그녀를 잡은 팔에 힘을 주었다.
" 아야 -- 갈테니 살살 좀 잡아요. "
그들은 다시 동굴로 돌아왔다.
사내는 빠른 동작으로 군복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양복을 입기 시작했다.
사내는 처음 이 곳으로 올 때의 복장으로 갈아 입었다.
그녀는 사내의 행동을 바라보며 이상하게 생각을 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사내가 이번에는 자기의 가방을 열었다.
" 이것봐. 그렇게 서 있지 말고 당신 가방을 이리 가져와. "
" 아니. 내 가방은 왜요? "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자신의 가방을 사내에게 가져갔다.
사내는 그녀의 가방을 열어 보더니 짐을 한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방속에 있는 하얀 분말가루들을 꺼내더니 그녀의 가방속에 집어 넣었다.
" 지금 무엇을 하는거지요? 그것이 무엇인데 나의 가방속에 넣지요? "
사내는 그녀가 하는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였다.
이윽고 모두 집어 넣고는 그녀의 가방을 들어보았다. 가볍던 가방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사내는 그 가방을 그녀에게 건네 주었다.
" 자. 이것을 어깨에 걸쳐봐. "
그녀는 사내가 건네 주는 자신의 가방을 받아 어깨에 맸다.
" 대체 무엇이지요? "
"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행동만 해. 그래야만 당신과 내가 무사히 이 곳을
빠져 나갈 수 있어. "
사내의 눈초리가 매섭게 빛을 뿜어댔다.
" 대체 무슨일인지 얘기를 해 주어야 알지요? "
" 알려고 하지마. 당신은 내가 시키는 데로만 해야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나 나나
여기서 소리없이 죽어 버릴지도 몰라. "
" 죽어요? "
그녀는 놀라며 벌어진 입을 손으로 막았다.
" 그게 무슨 말인가요?... 죽다니요?.... "
사내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상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깔려 있던 담요를
비롯하여 모든 짐을 꾸려 다시 상자속에 집어넣었다. 상자 정리가 다 끝나자
이번에는 자신의 가방속에서 번쩍이는 칼을 꺼냈다.
" 헉... "
짧은 비명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사내는 그 칼을 자신의 상위 안주머니에 넣고 가방을 닫았다. 그리고 동굴안을
랜턴을 비쳐가며 쭉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자. 이리로 나와. "
사내가 일방적으로 그녀를 잡아 끌었다.
" 어디로 가는 거지요? "
" 따라와. "
그들은 동굴 밖으로 나갔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 어두우니까 발을 조심하면서 따라와. "
사내는 랜턴을 그녀의 발 근처로 비쳐주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5 분쯤 산을 걷던 사내가 랜턴으로 전방을 비추었다. 사내가 랜턴을 비춘
곳에는 아주 작은 동굴이 보였다. 그 동굴은 사람이 서서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낮았고 깊이도 그리 깊지 않았다.
" 자. 이 곳으로 들어가 있어. "
사내가 랜턴으로 비쳐주는 곳을 보고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 어떻게 저런 곳에 있어요. "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완강히 버티었다.
" 내말 잘 들어. 살고 싶으면 이 곳에 있어. 절대로 내가 올 때까지 나오지도 말고
가만히 있어. "
" 싫어요. 더구나 나 혼자서 어떻게..... "
" 일을 끝내면 돌아올 테니까... 자 어서 들어가. "
사내가 떠밀듯이 그녀를 동굴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동굴속으로 몸을 숙이며 들어갔다. 겨우 앉을 수 있는
공간뿐이었다. 몸을 움직이거나 일어설 수도 없었다.
" 그 가방... 절대로 잃어 버리면 안 돼. "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안은 채 사내를 멀끔히 쳐다 보았다. 사내는 빠른 동작으로
주변의 나무가지들을 모아 동굴을 가렸다. 그녀의 모습이 조금씩 가려지더니
이내 보이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으면 그것이 동굴을 가려놓은
것인지를 모를 정도로 사내는 치밀하게 나무가지들로 위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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