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49)
김형엽
그녀는 가방을 움켜안은 채 동굴밖으로 뛰어 나와서는 정신없이 몸을 흔들어 되었다.
그러나 끈적끈적한 몸에 붙었던 벌레들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가방을 내려놓고는 티를 벗었다. 그녀의 상반신이 어둠속에서 유난히 반짝거렸다.
그녀는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옷으로 자신의 몸을 털었다. 그렇게 움직이는
그녀의 두 눈에는 아직도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 나쁜 자식... 이런 곳에다가 나를 쳐박아 놓고... )
그녀는 연신 몸을 닦아 내면서 사내를 원망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원망하던
시간도 잠시뿐 시커먼 손이 뒤에서 자신의 입을 막으면서 땅바닥으로 주저 앉혔다.
( 음... )
그녀는 신음소리 조차 내지 못하고 강한 힘에 이끌려 주저 앉았다.
" 무슨 짓을 하는거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 "
그녀는 사내가 누군인지를 알고는 잠자코 있었다. 사내는 천천히 그녀의 입에서 손을
떼며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 왜 말을 안 듣는 거야. 그냥 죽고 싶은거야. "
사내가 목소리를 낮추면서 그녀를 노려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 못 견디겠어요. 도저히 더 이상 견딜수가 없었어요. "
그러자 사내의 손이 빠른 동작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 쉿. 목소리가 너무 커. "
그녀의 두 눈에서 또 다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 일어서. 날 따라와. "
사내는 가방을 한쪽 어깨에 매고 한쪽 손으로는 그녀의 부축이면서 조금씩
움직여 처음 있었던 동굴로 향했다. 그녀는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사내는 능숙하게 그녀를 이끌고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에 들어선 사내는 그녀를
잡았던 손을 풀었다.
" 놈들은 지금 배가 있는 곳으로 철수했어. 언제 다시 나를 찾으려고 올 지 모르니까
얼른 호수에서 몸을 닦아. "
그녀는 사내의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치 앞도 볼수
없었기에 그녀는 한 발자국 옮기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사내는 그녀의 움직임을
쉽게 알아보았다. 그녀의 상체가 어둠속에서 유난히 하얗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몸을 일으켜 제대로 움직이는 못하고 있는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 자. 이쪽으로.. "
그녀는 사내의 손을 꼭 붙들고 사내가 이끄는 데로 발걸음을 옮겼다.
" 다 왔어. "
사내가 그녀의 손을 당겨 물이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그녀의 손에 시원하고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 고마워요. "
사내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반바지를 내렸다.
그리고는 발부터 천천히 물 속으로 집어 넣었다. 사내는 동굴입구에서 쌍칼 일행이
있는 배를 지켜보았다. 모래사장위에 두 명의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 저 놈들이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배에서 물건을 가지러 간 걸일까.... 모두 다섯명.... 내가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저들이 타고 온 배를 몰고 갈 수 있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
사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 보았다. 비는 완전히 멈추어 있었다. 그리고
먼 곳으로부터는 조금씩 하늘이 보였고 서너개의 별도 보였다.
( 음.. 날씨가 개고 있군. 지금 이 상태로라면 몇 시간후면 구름이 완전히 사라질것
같은데... 그렇다면 배를 몰고 가는데도 지장은 없다... 문제는 저 들은 어떻게
처리하고 가느냐.... 음... )
사내는 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문질렀다. 몇일 면도를 하지 않아서 턱에는 수염이
제법 자랐다. 사내는 촉감이 나쁘지 않은 지 연신 손으로 턱을 문지르면서 하늘과
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때 동굴안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고개를
돌렸다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내가 본 것은 그야말로 어떻게 표현을 할 수가
없을정도로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 음..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야... )
사내가 본 것은 이제 막 호수에서 나온 영옥의 나신이었다. 한 줄기 빛도 없는
캄캄한 동굴안이 그녀의 눈부신 나신으로 인해 환해지는 느낌을 사내는 느꼈다.
" 저.. 가방 좀 갖다 주세요. "
그녀는 아직도 어둠속에 적응이 안 되었는지 걸음을 제대로 옮기지 못 하였다. 사내는
그녀의 나신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면서 가방을 들고 다가갔다. 그녀는 사내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고 느끼자 몸을 움츠렸다. 그 순간 사내가 그녀를 덥석
안았다. 소리를 치려고 했지만 사내의 입이 어느새 그녀의 입을 막았다.
( 음... )
사내는 집요하게 그녀의 입속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바둥거리며 사내의 몸에 매달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사내는 그녀에게서 몸을 풀고 다시 동굴입구로 갔다.
그녀는 멍한 상태로 잠시 서 있다가 가방을 열고 수건을 꺼내었다. 온 몸 구석구석을
닦은 후 다시 티와 반바지를 툭툭 털어 가지런히 입었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사내에게 다가갔다.
" 대체 저 들은 누구지요 ? 누구길래 당신같은 사람이 다 피하나요 ? "
" ...... "
" 날이 밝으면 갈 수는 있는 건가요 ? "
그녀는 일이 잘 못 되어 만약에 집에 갈 수 없게되는 상황이 벌어질까 봐 두려웠다.
" ...... "
" 무슨 말 좀 해봐요. 갈 수 있는 건지 아니면 갈 수 없는 건지. "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크게 울렸다. 사내의 손이 어느새 그녀의 입술을 와 닿았다.
" 목소리를 낮추어. "
사내의 두 눈은 여전히 쌍칼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있었다. 두 명의 사내들이
갑자기 다가서서는 쑥덕 거렸다. 그러다가 랜턴을 산으로 비추었다. 사내는
빠른 동작으로 그녀를 자기 쪽으로 끌어 당겨 몸을 숨기었다.
" 당신의 목소리를 들은 모양이야. "
사내의 낮고 차가운 음성이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 곧 이어 쌍칼의 일행이 비추는
불빛이 동굴 주변을 맴 돌았다. 사내는 동굴속으로 몸을 완전히 숨기면서도 눈은
여전히 배쪽을 향했다. 그녀는 또 다시 그 조그만 동굴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어쩔까
하며 두려워 했다. 밖을 내다보던 사내가 짧은 한숨을 토해 냈다. 그것은 쌍칼 일행중
한 명이 랜턴 불빛을 밝히면서 산으로 향했었기 때문이었다.
( 음.. 일이 어렵게 될 것 같군. )
사내가 그녀의 손을 이끌고 움직이려고 할 때 밖에서 또 다른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는 다시 멈추어 밖을 내다 보았다. 배 위에서 또 다른 사내가
이제 막 산을 올라가는 사내를 불렀다.
" 왜 그래. 무슨 일이야. "
배 위에는 가물치가 나와있었다. 산으로 오르려던 짝코는 걸음을 멈추고 가물치를
쳐다보았다.
" 무슨 소리가 들린것 같아서요. 아까 그 동굴안을 좀 살펴 보려고 합니다. "
" 너 혼자 말이냐. "
" 예. "
" 잠깐 기다려라. 혼자는 위험해. 나하고 같이 가자. "
가물치가 몸을 날려 배 밑으로 뛰어 내렸다. 그의 손에는 굵은 쇠파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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