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63)
김형엽
( 지금 시간이 9 시. 2 시간정도면 충분하겠지. )
사내는 가방을 정리하고 나서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 층까지 내려와서는 카운타 보이에게 다가갔다. 보이는 단정하게 인사를 했다.
사내는 505 호 키를 보이에게 맡겼다.
" 이따가 나를 찾아오는 여자가 오면 키를 주게. "
" 언제쯤 오실 건가요 ? "
" 한 두시간쯤 걸릴거야. "
사내는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가냘픈 빗줄기가 얼굴을 간지럽혔지만 사내는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사내는 양평교를 지나 양수리까지 순식간에 도달했다. 어느틈인지 사내의 코 밑에는
수염이 달려있었다. 그리고 머리 스타일도 흰머리가 많은 머리로 바뀌었다.
누가 보아도 60 은 넘은 나이로 보였다. 양수리를 거쳐 북한강 줄기를 따라
문호리로 방향을 바꾼 사내는 처음보다 속도를 줄였다. 북한강을 끼고 있는
도로에는 차가 가끔씩 지나갈뿐 조용했다.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사내는
숨을 서서히 토해내면서 꾸준히 같은 속도를 유지했다. 사내가 달리고 있는 좌측은
북한강 줄기였고 우측으로는 산이었다. 그 산을 깎아내고 돈 많은 사람들이 지은
별장이 띄엄띄엄 어둠속에서 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사내는 이제 완전히
속도를 줄였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토해낸 사내가 3 층 별장을 노려보았다.
( 다 왔군. )
사내는 그 별장을 바라보다가 좁은 도로를 통하여 산으로 올라갔다. 별장으로 향하는
커다란 길이 있었지만 사내는 일부러 숲으로 들어갔다.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사내는 능숙하게 숲을 헤쳐 나갔다.
별장은 1 층만 불이 켜져 있었고 2 층과 3 층은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별장 입구에는 커다란 세퍼드 2 마리가 좌우측에 1 마리씩 있었다. 세퍼드들도
어둠이 깊었는지 엎드린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내는 어느 새 별장 뒤에
도착해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찾고 있었다.
( 지하 수영장의 물이 빠지는 하수구 통로가 있을텐데.... )
사내는 건물 뒤를 두리번 거리다가 자신이 찾고자 하는 목표물을 찾았다.
( 음.. 바로 이 곳이야. )
사내가 찾은 곳은 물이 빠지는 하수구였다. 사내는 빠르게 바지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물건을 꺼내었다. 그건 볼펜 크기의 랜턴이었는데 빛을 뿜는 성능은 아주 좋았다.
사내는 허리를 반쯤 숙인채 하수구로 들어갔다. 하수구에서는 아무런 이물질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10 미터쯤 갔을때 머리위로 맨홀 뚜껑이 보였다.
사내는 랜턴을 끄고 천천히 맨홀 뚜껑을 밀었다. 뚜껑이 열리면서 흐린 불빛이
하수구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사내는 맨홀 뚜껑을 완전히 열어 젖히고 밖으로
빠져 나와서는 다시 맨홀 뚜껑을 닫았다.
( 음... 역시 수영장이군. )
사내가 나온 곳은 건물 지하에 설치된 수영장이었다. 수영장은 물이 완전히
빠져있었고 사내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사다리를 타고 수영장 밖으로 나왔다.
( 그래.. 이 곳이 가장 적당한 곳이야. 황 필두가 내일 이 곳에서 수영만 즐긴다면
이 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는데..... )
사내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 비상구가 오른쪽에 하나... 좌측으로는 창고.... 차량이 1 대... 3 명 정도는
충분히 앉을수 있는 소파가 하나..... )
사내가 열심히 주변을 살피고 있을때 비상구 쪽에서 발자욱 소리가 났다.
( 아니.. 누가 내려오나. )
사내는 빠른 동작으로 기둥뒤로 몸을 숨겼다. 갑자기 수영장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 물이 채워지고 있다... )
사내는 긴장하면서 비상구쪽을 바라보았다. 곧 이어 비상구의 문이 열리며
가운을 걸친 여자가 들어섰다. 여자는 서슴없이 문을 닫고는 가운을 벗어 소파에 던져 놓았다.
비키니 차림의 나신이 그대로 사내가 몸을 숨긴 기둥을 지나가더니 그대로 수영장으로
몸을 던졌다.
" 풍덩 --- "
물은 순식간에 수영장을 채웠다. 사내는 숨을 죽인채 수영장을 바라보았다.
( 음.. 옥향이란 계집아이로군. )
사내는 수영장에 들어 온 여자를 알아보았다.
( 황 필두의 노리개..... 저 계집이 혼자 수영을 하는것을 보니 황 필두가 없는 것이
분명하군. 놈은 어디로 갔지. 내일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일에 차질이 생기는 데.. )
옥향은 수영장을 왔다갔다 하며 물장구를 쳤다. 길이가 30 미터에 폭은 10 미터
정도의 수영장이었지만 옥향은 자유자재로 수영을 즐겼다.
( 하필 이런 시간에 .... )
사내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10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 저 계집이 알면 안되지. 제 풀에 지칠때까지 기다려 볼 수 밖에... )
한참을 물장구를 치던 옥향은 지쳤는지 천장을 향하여 누운채로 가볍게 발만 움직이며
물위에 떠 있었다. 그러다가 가슴을 가리고 있던 천 조각과 팬티를 벗어 수영장
밖으로 던져버렸다. 알몸이 흐린 불빛과 물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났다.
( 음.. 늘 저렇게 알몸으로 황 필두와 수영을 즐기며 정사도 즐겨겠군. )
사내는 옥향의 나신을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시계를 바라보았다. 옥향은 몸을
잠수시켰다가 바닥을 차면서 물위로 치솟아 오르는 동작을 반복했다. 옥향의 몸이 물속에서
있다가 치솟아 오를때마다 두개의 젖가슴이 출렁거리며 물위에서 흔들렸다.
( 어차피 비상구를 통하여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졸개들도 있고 세퍼트도
2 마리가 버티고 있으니 내가 왔다는 것이 알려질 것이고.... 나갈 방법은 어차피
배수구밖에는 없는데... 저 계집이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건가.... )
사내는 초조해 하면서 옥향의 행동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옥향은 물에 젖은 머리를 흔들며 사다리를 타고 수영장 밖으로 나와 소파위에 앉았다.
소파뒤의 기둥에 바로 사내가 있었다. 옥향은 숨을 커다랗게 몰아쉬더니 이내
누워버렸다. 키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군살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매끄러운 몸매였다.
사내는 바로 앞의 나신이 있었지만 욕정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 아니 저것이 저대로 잠이 들려고 하나.... )
그 때 비상구쪽에서 묵직한 발자욱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곧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옥향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가운을 대충 걸치고서 비상구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욱씩 걸음을 옮길때마다 두개의 젖가슴은 가운속에서 살랑살랑 춤을
추었다. 옥향은 비상구 문을 조금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 무슨일이지요 ? "
건장한 사내가 비상구 밖에 서 있었다.
" 회장님으로 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
" 어머. 정말이세요. "
옥향은 반가워 문을 활짝 열고 사내를 쳐다보았다. 사내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 어머나... "
옥향은 그제저야 자기가 가운을 걸쳤다고는 하지만 앞이 그대로 노출된 것을 알고서는
옷매무새를 고치고 허리끈을 가볍게 묶었다.
" 무엇이라고 하셨나요 ? "
" 네. 내일 아침 9 시경에 이 곳으로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
" 내일 9 시요... 알았어요. 10 분후 올라갈테니 잠시 후에 물을 빼 주세요. "
" 알겠습니다. "
비상구 쪽에서 둔탁한 발걸음이 멀어지자 옥향은 다시 가운을 벗어 던지고
수영장속으로 뛰어 들었다.
" 풍덩 --- "
빠른 속도로 바른편 쪽을 향해 힘차게 수영을 하더니 돌아 올때는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누워서 발만 움직였다. 천정을 향한 나신이 그대로 물 밖으로 솟아 올라 있었다.
( 음... 내일 오전 9 시면 황 필두가 온다. 아주 잘 된 일이군. 계집이 엄청
굶주렸던 모양이군.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내일도 황 필두하고 같이 내려와서
수영을 즐겨라. 황 필두하고 같이 보내주마. 영원히 같이 있을 곳으로... )
사내는 다시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시계는 벌써 11 시를 향하고 달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