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83)
김형엽
안산 경찰서는 아침부터 최 장환 반장이 뿜어되는 담배 연기로 사무실 안의 공기가
탁했다. 주 우남 형사는 유 길준 형사가 갖다 놓은 자료를 하나씩 살피고 있었다.
주 형사는 유 형사에게 부탁해서 8 월 3 일 서울에서 항공편을 이용해 여수로 떠난
탑승객 명단을 어렵게 구했다. 최 반장이나 유 형사는 괜한 헛고생이라면서
반대하였지만 자료는 뽑아주었다.
" 총 몇명이나 되는것 같아. "
최 반장은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하는 생각에 주 형사가 하는 행동을
내버려두었다.
" 예. 3 일 일곱편의 비행기가 여수에 내렸습니다. 그 중 제주에서 오는 두 편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서울에서 출발한 승객이 564 명 입니다. 그 중 남자가 433 명에
여자는 131 명 입니다. "
" 그 많은 사람들의 주소지를 다 찾아 다닐건가 ? "
" 일단 여수의 목격자에 의한다면 여자나이가 대략 20 대라고 생각이 듭니다.
131 명의 여자중에 20 대의 여자만 골라 조사 대상으로 하겠습니다. "
" 그래. 어서 대상자를 추려 보게. "
" 예. "
주 형사는 그렇게 앉아 30 분이 지나서야 대충 서류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다 끝났나. "
" 예. "
주 형사는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최 반장 곁으로 갔다.
" 저기 소파로 가서 앉지. "
" 그럴까요. "
최 반장과 주 형사는 소파로 가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 그래 몇 명이나 되나. "
" 예. 20 세에서 30 세까지 꼭 22 명이 나왔습니다. "
주 형사는 정리된 리스트를 테이블 위에 내려 놓고 최 반장이 볼수 있도록 펼쳤다.
" 생각보다는 많지 않군. "
" 그렇습니다. 그리고 22 명중 여수가 주소인 사람이 13 명입니다. 그들은 거주지가
원래 여수니까 서울에서 일을 보고 내려가는 사람들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니까
실제 조사 대상자는 9 명인 셈이지요. "
" 음... "
최 반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세차게 빨았다.
" 9 명의 주소지를 보면 서울이 5 명이고, 수원이 1 명, 충청북도가 1 명, 그리고
안양과 안산에서 각각 1 명씩 나왔습니다. "
" 안산도 있어. "
최 반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예. 저도 안산에 주소를 둔 여자가 있기에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
주 형사는 리스트중 하나를 꺼내었다.
" 바로 이것 입니다. "
최 반장은 주 형사가 꺼내준 리스트를 보았다.
" 이름은 유 영옥... 69 년생이면 25 세... 상아아파트라면 이 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이군. "
" 그렇습니다. "
최 반장은 리스트를 내려 놓고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 그래. 이 9 명의 주소지를 모두 찾아 나설건가 ? "
" 예.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외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
" 그렇지만 꼭 비행기를 타고 갔다는 근거도 없는데 너무 무모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군. "
" 그렇다고 그냥 이렇게 앉아서 시간만 보내면서 일이 터지기만을 기다릴수는 없지
않습니까 ? "
" 그렇기는 해. 그러면 지금부터 찾아 나설건가 ? "
" 예. 오늘은 일단 경기도 내에 주소를 둔 사람들을 조사해 보겠습니다. 동사무소에
비치해 놓은 사진과 확인하면 되니까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지요. "
" 날도 무더운데 다니려면 힘이 들겠군. "
최 반장은 소파에서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았다. 어제부터 내린 비는 아직도 그치지
않고 조금씩 내렸다.
" 혼자다니기 힘들면 누구라도 데려가지. "
" 괜챦습니다. 강 형사는 현재 황 필두를 미행중이기 때문에 사람도 없습니다. "
" 아. 지금 황 필두는 어디에 있지 ? "
" 아침에 강 형사로 부터 연락이 왔었습니다. 어제까지 서초동 자택에 있었다가 오늘
아침 팔당쪽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
" 팔당쪽이면 별장으로 갔다는 얘기군. "
" 그런 것 같습니다. "
" 지금 바로 나갈건가 ? "
" 예. 일단 안산 상아아파트가 있는 본오 동사무소로 시작해서 안양과 수원으로 돌겠습니다. "
" 그래. 수고 좀 하게. "
주 형사는 최 반장에게 인사를 하고 리스트를 서류 봉투에 담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비방울이 금새 옷을 적셨다. 주 형사는 리스트를 끌어 안고 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잠시였지만 제법 옷이 젖었다. 차의 시동을 걸며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10 시가 조금 넘고 있었다. 봉투를 뒤적이다가 여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몽타지를
꺼내었다.
( 음. 역시 미인이야. 언제봐도 멋있어.... )
몽타지를 다시 봉투에 넣고 액세레다를 밟았다. 차가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갔다.
정문에 경찰복장을 단정히 입은 경사의 거수경레를 받으며 차는 정문을 빠져나왔다.
본오동 사무소는 불과 10 분 정도 거리밖에 되지않았다. 주 형사은 거침없이 차를
동사무소 주차장에 세웠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민원처리가 한가했다. 주 형사는 주민등록등(초)본 담당자
앞으로 다가가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동사무소 직원은 일어서며 인사를 했다.
" 미안하지만 이 주소의 대장을 좀 보여주십시요. "
주 형사는 주소가 적힌 리스트를 동사무소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 상아아파트 104 동 307 호. 잠깐만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
동사무소 직원은 리스트를 들고 서류가 정리되어 있는 창고로 들어갔다.
주 형사는 의자에 앉아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표정없이 지켜보았다.
잠시 후 동사무소 직원이 대장을 들고 나왔다.
" 여기 있습니다. "
주 형사는 동사무소 직원으로 부터 대장을 건네 받았다.
" 잠깐 앉아서 보겠습니다. "
주 형사는 의자에 앉아 대장을 펼쳐보았다.
( 앗... )
주 형사는 하마터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뻔 했다.
( 이.. 이럴수가.. )
주민등록대장을 쥔 주 형사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주 형사는 봉투에서 몽타지를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대장에 붙혀진 여자의 칼라사진과 몽타지의 여자가
너무도 똑 같았다.
( 바로 이 여자야.... )
주 형사는 숨이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 바로 코 앞에 이 여자가 있었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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