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84)
김형엽
대장을 상세히 살폈다.
( 남편의 이름은 조 봉석... 4 개월전에 이 곳으로 거주지를 옮긴것을 보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부부 같은데... )
주 형사는 한참을 들여다 보다가 대장을 곱게 접어 동사무소 직원에게 돌려주었다.
" 아주 잘 보았습니다. "
" 네. "
주 형사는 동사무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비방울이 얼굴과 온 몸을
적셨지만 전혀 느끼지 못했다.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 가서 보는거다. 그리고 확인을 하자. )
차는 순식간에 상아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 101.. 102... 103.... 저 곳이 104 동이군. )
15 층의 아파트가 사방에 들어 차 있었다. 주 형사는 104 동 앞에 차를 세웠다.
단지는 조용했다. 날이 좋았으면 동네 아이들이 나와서 시끄러울 놀이터도 비 때문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시동을 껐다.
주 형사는 307 호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열려진 창문사이로 커텐이 조금 보였다.
( 바로 저 곳에 이 여자가 산다. )
몽타지를 보고 있는 주 형사는 연신 마른침을 삼키었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시간이 지나갔다. 가끔 동네 사람이 우산을 들고 지나갔지만 아무도 차 속에 사람이
들어있는지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30 분... 40 분....
주 형사는 마치 고목처럼 움직이지 않고 운전석에 등을 기댄 채 307 호 창문만
바라보았다. 10 분쯤 더 지나서 307 호 창문에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주 형사의 몸이 용수철 튀듯이 일어났다. 여자는 비가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안으로 사라졌다.
( 어렴풋이 보았지만 틀림없이 그 여자야. )
잠시 후 현관으로 사람이 나왔다. 흰색 바탕에 색색의 동그라미가 그려진
원피스차림의 여자가 배지색의 우산을 들고 현관에서 나왔다. 여자의 옷은 무릎을
그대로 드러내어 곱게 뻗은 선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눈부시게 빛났다.
여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우산을 펼쳤다. 그리고는 걸음을 옮기었다.
주 형사가 타고 있는 승용차의 옆을 스쳐 지나갔지만 여자의 시선에는 주 형사가 눈에
띄지 않았다.
( 틀림없다. 틀림없이 그 여자야. )
주 형사는 차 안에서 조금씩 멀어져가는 여자의 뒤 모습을 보았다. 그러다 문을 열고
여자를 따라갔다. 여자는 곧 상가로 들어서더니 지하슈퍼로 내려갔다. 주 형사는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계속 여자를 주시했다. 수퍼에는 몇명의 주부들이 손에 바구니를
들고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여자도 바구니를 왼쪽 옆구리에 끼더니 이것저것 고르기
시작했다.
(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다. 얼굴은 물론이고 몸매까지... )
주 형사는 슈퍼 입구에서 마치 혼이 나간 사람처럼 여자의 모습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건 주 형사 만이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의 물건을 고르던 주부들도 같은
여자이면서도 유독 그 여자의 모습을 한참씩 바라보았다. 여자는 시선같은 것은
아랑곳 없이 몇가지의 물품을 바구니에 담았다.
주 형사가 넋나간 사람처럼 바라보고 있는 데 갑자기 여자가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눈이 마주쳤다. 여자가 동그란 두 눈을 반짝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 형사는 빠르게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계단을 올라갔다.
주 형사는 다시 차로 돌아가 운전석에 앉았다.
( 이제 어떡한다지... 반장님께 보고를 해.... )
주 형사는 망설였다. 주저없이 최 반장을 찾아가 보고를 하여야 하는것이 당연한
것을 지금 왜 이렇게 주저하고 있는지 자신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다.
(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아니 남편도 버젓이 있는 여자가 도데체 어떻게
그런자와 같이 동행을 할 수 있었을까 ? )
백밀러에 여자의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 시장을 다 본 모양이군. )
우산을 쓴 여자의 모습이 조금씩 백밀러를 통해 가까와졌다. 주 형사는 숨을 죽인채
여자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여자는 주 형사가 앉아 있는 승용차를 지나
아파트 현관으로 갔다. 곧 우산을 접더니 여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 평범한 가정 주부에 불과하다. 정말로 저 여자가 그 자와 여수에서 배를 같이 타고
들어간 여자일까 ? 혼자사는 여자라면 이해가 간다지만 어떻게 남편까지 있는 몸으로
그럴수가 있었을까... 설마 저 여자의 남편이라는 조 봉석이라는 자와 우리가 찾고
있는 그 자가 동일인이라면.... )
주 형사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 그렇지만 조 봉석이라는 사람은 체격이 외소했다. 그 자와는 체격조건이 너무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남편인 조 봉석은 아닐텐데... )
주 형사는 시동을 걸었다.
( 일단 조 봉석의 신원을 확인해 보자. )
차가 천천히 상아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
유 영옥은 단지내에서 빠져 나가는 차를 창가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이상한 사람이야. 아까 슈퍼에서 본 사람인데 언제 이 곳에다 차를 주차시켜 놓았을까... )
영옥은 슈퍼로 갈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시장을 보고 집으로 올 때는 슈퍼에서 마주친
사내가 자신의 아파트 앞에 차를 주차시켜 놓았던 것을 알게되었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못 본척 하고 집으로 들어섰던 것이었다.
( 처음보는 사람이었는데 대체 누굴까 ? .... 설마 나를 감시하려고... )
거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방바닥에 주저 앉았다.
(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그냥 단순히 이 곳에 볼 일이 있어서 왔던 사람일뿐이야.... )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로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일어서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미 차는 단지를 완전히 빠져나가고 보이지 않았다.
( 마음을 편하게 갖자. 내일이면 모든것이 끝난다. 장농속의 물건만 전해주고 그
자가 서울만 떠나면 아무도 모르는 것이야. 그래 내일이면 다 끝나... )
그녀는 거텐으로 창을 막았다. 장농 깊숙히 숨겨두었던 가방을 꺼내어 열어 보았다.
하얀 가루가 들어있는 봉지가 수북히 들어있었다.
( 그때 이 가방만 가져오지 않았어도 다시 그 사내를 만날일은 없었을텐데... )
그녀는 배를 타고 오던 날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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