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부산교구

제 목 제24회 부산 가톨릭 문예 작품 공모
글쓴이 전산홍보국 ()
글정보 ◇제2176호 (연중 제21주일) ◇발행일:2012/08/26 ◇등록일 : 2012/08/21 16:39, ◇조회 : 8
제24회 부산 가톨릭 문예 작품 공모

부 문
시, 시조, 동시(3편 이상),
수필, 콩트, 신앙 체험, 동화(20매 내외),
소설(70매 내외) - 200자 원고지 기준

시 상
최우수상 1명 - 100만원
우수상 2명 - 30만원
가작 및 입선 0명 - 부상

마 감 11월 4일(일)

접 수 (613-816) 부산 수영구 남천1동 70-4 천주교부산교구 전산홍보국

이 메 일 mun2012@catp.kr

유의사항 이름(세례명), 본당, 전화번호, 주소, 응모부문 반드시 기입

문 의 051-629-8750(전산홍보국)

※ 타 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은 응모하실 수 없으며, 기존에 등단하신 분도 응모하실 수 없습니다.

제 목 제24회 부산가톨릭 문예 작품 공모전 시상식
글쓴이 전산홍보국
글정보 Hit : 28, Date : 2012/11/28 15:56

제24회 부산가톨릭 문예 작품 공모전 시상식

지난 11월 23일(금) 19:00 교구청 2층 성당 및 1층 쉼터에서 전산홍보국(국장 : 석판홍 신부) 주관으로 ‘제24회 부산가톨릭 문예 작품 공모전 시상식’이 있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부산가톨릭문인협회장 정경수 대건안드레아 씨의 수상작 심사평이 있었고, 수상자(최우수-김임순 안젤라, 우수-김지영 끌로틸다 외 1명, 가작-박미영 젬마 외 5명, 입선-정익준 디모테오 외 9명)들에 대한 시상, 최우수 수상자의 소감 발표 및 수상작 낭송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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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 / 시조 / 김임순 안젤라 / 토현



시월


하루해 꼭지 따면 물살처럼 급히 돌아
한 눈 팔 새 없이 거두고 비워낸다
들판은 자글거리며 지친 몸을 말린다

짙어진 그늘마다 바람 끝 감아 돌고
하늘이 아우르던 느티나무 붉은 물빛
떨어져 누운 그리움 아득한 봄날 저편

사는 일, 허덕이며 돌부리 채이는 일
눈 맞춰 가을 얘기 꺼내지도 못했는데
청 마루 잠시 걸터앉았다 일어서는 시월 손님

 

 

우수 / 시 / 한형석 유스티노 / 주례


장마



여름철 여러 날을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 들었다

열흘이 지나도록 선풍기로부터 밀려오는 음습한 파도가 빨래처럼 방안에 널려있었다 바닥으로 고꾸라진 파도는 신문지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번번이 주저앉고 말았다 사방으로 흩어진 신문지의 검은 활자들이 벽을 기어올라 곰팡이의 검푸른 말을 받아 적었다 구석에 틀어박힌 걸레 밑에선 아직 문장을 이루지 못한 곰팡이의 말들이 망아지처럼 날뛰었다 방안에 눌어붙은 적막이 읽어 내리는 벽의 문장은 빗소리에 씻겨 수챗구멍을 메웠다 열흘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중얼거림이 방 안의 모든 감각을 가물게 했다 내내

내 안의 축축하게 메말라 가는 방을 내가 들여다보고 있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인용.


우수 / 신앙체험 / 김지영 끌로틸다 / 좌동

영원히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리라
- 음악 속에서 만난 하느님


매일 나는 천국을 만난다. 내가 만나는 천국은 음악 속에 있다. 평화롭고 즐겁고 유쾌하고 따뜻한 그 세계 속에서 나는 천국을 맛본다. 하느님께서 내게 살아가는 동안 천국을 매일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주님 계신 천국의 삶이 얼마나 행복할지 늘 기대하고 있다.

어린 시절, 나는 몸이 약하고 자주 아팠다. 감기 같은 잔병치레로 학교에 결석이 잦았고, 그러다보니 밖에서 뛰어놀기보다 집에서 있는 시간이 자연이 많았다. 집에 있을 때는 아버지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동화책을 읽고 시간을 보냈다. 몸이 약하니 집중력도 약해서 한 가지를 오래 못하고 싫증을 잘 내는 편이었고, 특별히 공부를 열심히 노력해서 한 기억도 없다. 다만, 초등학교 1학년 때 교실의 풍금을 쳐보고 싶어서 부모님을 졸라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게 된 일이 내가 기억하는 한, 뭔가를 하고자한 최초이면서 유일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중학교 때 와서는 B형 간염 보균 판정을 받게 되었다. 늘 피곤했고 목욕탕 같은 곳에 가면 쓰러지기도 했다. 이후 오랜 시간 간염은 나를 괴롭히는 내 안의 작은 악마가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중학교에 있는 합창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딱히 하고 싶은 특별활동 부서가 없어서 들어가게 된 것이었는데, 이외로 노래가 정말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졸라 집 그처 음악학원에서 성악 레슨을 두 세 달 정도 받기까지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기초적인 발성법이랑 초보 수준의 노래를 몇 곡 배운 것이었는데 그래도 정말 즐겁고 심취해서 열심히 했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노래에 대한 관심이 이어져서 증폭된 곳이 바로 성당이었다. 초등학교 때 세례를 받고 습관적으로 주일학교에 매주 다녔었는데, 음악을 좋아하게 되면서 성당에 가는 일이 더욱 좋아진 것이다. 주일에 미사에 가면 성가를 열심히 불렀고, 중학교 3학년 때는 미사 전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어 더욱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 몸도 약하고,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없던 소녀에게 ‘특별히 재미있는 일’이 생긴 것이다. 숫기도 없던 내가 학교 수업시간이나 소풍에 가면 다른 학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다. 이상하게도 그것은 떨리지도 않았고 부끄럽지도 않았다.
고등학교에 가서 문과나 이과냐 진로를 결정할 무렵, 나는 성악을 전공하는 음악대학에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부모님께 내 의사를 말씀드렸는데, 그때 아버지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몸도 약한 아이가 큰 목소리로 노래하는 성악을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음대에 가려면 대학교수에게 고액을 레슨을 받아야 입학할 수 있는 풍토가 일반화 되었던 터라, 아버지께서는 경제적 부담을 지면서 뒷거래 같은 대학진학을 시키고 싶어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엄격하고 완고한 아버지의 반대를 꺾기에는 그때의 나는 너무나 유순한 사람이었다. 훗날 들으니 내 친구 중에는 음악 시켜달라고 며칠씩 다른 친구 집으로 가출해서 부모님의 반대를 이긴 친구도 있었는데, 순진하고 고지식했던 나는 그 정도의 용기를 부려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슬피 울면서 성악가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반대학 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전공에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학시절에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 그 때 읽은 많은 책들은 지금까지도 살아가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대학시절엔 학교 방송국 PD로 활동했었는데, 교내에 방송할 음악을 선곡하고 방송할 원고를 직접 썼다. 이 때 나는 많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했고, 많은 책과 자료들을 읽고 글로 정리했다. 음악을 전공하는 대신,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는 또 다른 시간이었고 음악 외적인 것에도 견문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간이었다.
대학 시절 나는 가슴 아픈 첫사랑을 경험했다. 1년 정도 남자친구를 만나고 헤어졌는데 실연의 상처는 마음 뿐 아니라 몸에도 큰 상처를 가져왔다. 잠을 잘 잘 수가 없어 술에 의지해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이렇게 가슴 속의 슬픔과 술은 건강을 헤쳤다. 10여 년 간 보균상태였던 B형 간염이 발병한 것이다. 너무 피곤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멍했고 오후 세 시 정도가 돼야 겨우 머리가 깨서 뭔가를 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었고, 이후에는 간염 때문에 몇 년 간 상당히 오랜 시간을 집에서 요양을 해야했다. 언제쯤 건강이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었던 막막한 시간이었다.
이 무렵부터 묵주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건강해 지고 싶었고, 그리고 믿음이 없던 아버지가 성당에 나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히 들었던 것이다. 묵주의 9일 기도를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성모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실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아프고 막막하던 나는 뭔가에 의지해야 했고, 기도는 내 마음이 기댈 언덕이었다. 그렇게 54일간의 기도가 끝났고, 또 다시 54일간의 묵주의 9일 기도를 드렸다. 몇 년 간 그렇게 묵주의 9일 기도를 했다. 한 가지 지향의 기도가 끝나면, 또 다시 다른 지향을 가지고 기도를 드렸다. 물론 당시에 기도를 했을 때는 모든 기도가 바로 내 지향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건강은 시간이 흐르니 건강이 조금 좋아져 학생들 국어 과외를 짬짬이 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용돈을 쓰고 저축도 할 만큼 벌 수 있었다. 과외를 하니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서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평일 미사에도 갔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미사를 자주 드리다보니 신앙의 새로운 지향점이 생겼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는 완전한 믿음을 갈구하게 된 것이다. 몸이 아플 때나 마음의 고통이 올 때나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지켜주신다는 것, 나를 미워하셔서 고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는 그때 그런 믿음을 가지고 싶었다. 스물 일곱 살 때였다.
그런데 그 때 내가 간절히 완전한 믿음을 보여주신 분이 나타났다. 내가 다니던 해운대 성당에 부임해 오신 권지호 프란치스코 신부님이셨다. 미사에 가면 늘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어떻게 주님께 의탁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사랑을 한없이 베풀어 주시는 햇살 같은 분이라고도 하셨다.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에 신부님의 그런 강론들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권지호 신부님은 얼마 전에 울산대리구장으로 임명받으셨는데, 그 신부님의 올곧고 완전한 믿음을 생각하면 당연한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몇 년간의 기도와 신앙생활 덕분에 나는 좀 더 정신적으로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도 기도를 시작한 지 몇 년 후에 세례를 받으셨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사에 매주 참여하고 계신다. 그 때 나는 깨달았다. 하느님은 기도를 드리면 바로 들어주시는 것도 있지만 하느님이 보시기에 적당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주신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도 나는 기도의 지향은 가지지만 주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안다.
스물 아홉에 나는 울산 모 방송국 작가 공채 시험에 합격해 울산으로 왔다. 처음으로 매일 출근하는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회생활은 쉽지 않았다. 내가 입사하기 얼마 전, IMF 한파로 많은 이들이 방송국에서 감원된 후라 회사내 분위기가 살얼음판 같았던 것이다. 서로 시기와 질투로 깎아내리기 바빴고, 다들 삼삼오오 파벌을 만들어 끼리끼리 모였다. 새로 들어온 사람은 무조건 소외되고 따돌림을 당했다.
방송국 작가생활은 외로웠다. 오늘 쓴 원고는 내일 바로 방송되고,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방송으로 결과가 나오는 냉정한 세계였다. 친구도 별로 없었고, 다른 사람들처럼 파벌에 끼여 남을 깎아내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 때 유일하게 위안이 되었던 것이 음악이었다. 마음 붙일 데가 없어서 방송 원고를 쓰면서도 CD플레이어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고, 집에 가서도 자기 전까지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 성악 레슨을 받았던 기억이 났고, 마침 방송국의 코디 언니가 좋은 선생님이 있다고 해서 소개를 받고 일주일에 한 번씩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내 음악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무섭게 노래 실력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성악 선생님은 매주 늘어가는 실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러던 중 성당의 미사 시간에 옆자리에 앉은 자매분이 내가 성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기도가 된다며 연락처를 달라고 하셨다. 별 생각 없이 명함을 한 장 드렸는데 얼마 뒤에 청년 성가대에서 연락이 왔다. 그래서 청년 성가대에 나가게 되었고, 단원 중에 성인 성가대에 단원을 겸하는 분이 있어서 교중미사에도 함께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성가대의 솔리스트가 되었다. 화답송 성가 독송을 하고 때로는 특송도 불렀다. 그 때는 성가대가 재미있고 즐거워서 교중미사 성가대와 청년 성가대를 같이 활동을 했다. 주일에 교중미사와 청년미사 두 번을 가고 미사 전에 한 시간씩 성가 연습까지 했지만 힘들거나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교중미사에 화답송 솔로를 할 때는 토요일 저녁에 성당에 와서 홀로 연습을 했다. 주일에는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 이상 등산을 하고, 성당에 한 시간 일찍 가서 연습을 하고 미사에 임했다. 성악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리 몸을 풀고 연습하지 않으면 아침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을 성가대를 하고 나니 시편 성가 전체를 꿰뚫게 되었다. 악보도 능숙해졌고 음감도 좋아졌다. 더불어 나가기 시작한 가톨릭 합창단도 재미있었고, 거기서도 머지않아 솔리스트가 되었다. 음악과 함께 해 행복한 시절이었다. 성악 레슨도 계속해서 받고 있었다.
문제는 직장생활이었다. 그렇게 일단 노래에 심취하기 시작하니 직장생활이 재미가없어 졌다. 귀에는 음악소리만 들렸고 다니기 싫어선지 일년 내내 몸살이 났다. 병원에 가도 특정한 병명이 없었고 의사는 쉬어야 된다고만 했다. 결국 방송국 작가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나이든 딸이 방송국을 그만두고 쉬고 있으니 부모님이 보시기에 답답하셨는지 음대 시험을 권유하셔서 석 달 후에 음대 대학원 시험을 보게 되었다. 짧은 준비 기간이었지만 성모님께 간구하는 마음으로 시험에 임하였고,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대학원에 합격하게 되었다. 음대 대학원에 들어가게 된 것도 정말 기쁜 일이었는데, 그 무렵 나는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을 받았다. 한 마트에서 주는 자동차 경품에 당첨된 것이다. 아마 내가 성가대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잘 하기 위해 노력한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고 선물로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학원 입학할 무렵에는, 지인이 내가 음대대학원에 들어간 것을 아시고 집에 있던 피아노를 선물로 주셨다. 그래서 나는 많은 악보와 책을 싣고 다닐 자동차와 피아노가 생겨서 시간을 절약하고 집중해서 음악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을 주님께서 알아서 다 준비해 주셨던 것이다.
학부에서 전공을 안 했기 때문에 대학원 공부는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대학원은 이론 과목이 많아 학부에서 문학을 전공한 나는 다른 학생들보다 유리한 점이 많았다. 리포트나 발표를 잘 해서 우수한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실기도 다른 학생들보다 몇 배 노력한 결과 졸업연주회를 무사히 마치고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대학원을 졸업한지 8년이 되어가는 요즘, 나는 여전히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솔리스트이다. 또 평일 미사에서 10년 가까이 반주를 하고 있다. 지금의 남편과도 성가대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 나는 성당에서 음악을 하면서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아마 평생토록 음악 봉사를 해도 하느님께 받은 사랑의 작은 일부분도 되돌려 드릴 수 없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은 음악학원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쳐왔고, 제자들이 많은 대회에서 입상을 하고 대학에도 합격했다.
불혹이 넘으면서 나는 새로운 계획을 몇 가지 세웠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보람 있지만, 하느님이 주신 목소리로 많은 사람에게 위안과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게 넘치도록 과분한 재능을 주셨고 큰 사랑으로 음악을 통해 천상의 세계를 알게 해주신 주님의 사랑을 널리 알리고 싶다. 그래서 크로스오버 가수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성가와 노래를 작곡하고 싶다. 한때는 학부에서 음악을 전공하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온 것이 안타까워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문학을 전공한 것이 가사를 쓰고 작곡을 하는데 더 많은 도움을 준다. 노래와는 다른 분야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노래를 부를 때도 가사의 내용을 되새기고 더 깊은 감성을 표현할 수도 있게 되었다. 돌아서 왔다고 생각했던 길이 시간이 흐르고 되돌아보니 오히려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생각지 못한 다른 방법으로 음악에의 길을 열어주셨다. 사회에서 사람들이 정해 놓은 길을 걸어야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아름다운 목소리로 주님의 사랑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전능하신 분께서 부족한 나를 택하셔서 당신의 도구로 쓰신 크나큰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감사로 늘 가슴이 벅차올라 마음속으로 나는 다짐한다. 내 일생 주님의 사랑을 영원히 노래하리라고…….

가작 / 동화 / 최선아 루시아 / 사하


날아라 물로켓



“하늘아, 오늘도 학교 잘 다녀왔냐?”
행복 아파트 경비실의 김씨 아저씨가 묻습니다.
“네. 아저씨.”
“친구들과는 잘 지냈고?”
“아뇨. 잘 못 지냈어요.”
“그럼, 혹시 싸우기라도 한거니?”
“네. 병국이 녀석이 제가 만든 물로켓이 형편없다고 놀려대서 한 대 쳤어요.”
“허허. 친구가 그런다고 싸우면 어떡하냐.”
아저씨는 하늘이를 걱정스러운 듯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하늘이의 얼굴은 분이 안 풀린 모습이었습니다. 아저씨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하늘이는 101동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오늘은 학교 운동장에서 물로켓 발사 예선 대회가 있었습니다. 하늘이는 밤낮으로 열심히 만든 물로켓을 친구들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뽐내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이의 로켓은 발사되자마자 물줄기가 이곳저곳으로 모두 흩어지며 힘없이 운동장에 쓰러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하늘이를 놀렸습니다. ‘와, 로켓에서 물이 샌다. 엉터리 물로켓이다.’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습니다. 날갯죽지가 꺾인 비둘기처럼 하늘이는 떨어진 물로켓을 들고 출발점으로 터벅터벅 힘없이 돌아왔습니다. 관중석에는 여기저기에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물로켓을 점검해주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 광경을 보니 하늘이는 마음이 더 울적해졌습니다. ‘내 물로켓을 놀린 녀석들! 본때를 보여주마.’ 하늘이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멀리서 고생하는 아빠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힘을 냈습니다. 두 번째 물로켓이 파란 하늘을 향해 날았습니다. 이번에도 하늘이의 물로켓은 멀리 담벼락을 향해 솟구치는가 싶더니 이내 몇 미터도 못 가서 땅에 곤두박질쳤습니다. 힘없이 떨어진 로켓을 보며 하늘이는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늘이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렇게 몇 분 동안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이내 마음을 추스린 하늘이는 물로켓을 잡고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며 다음 번 승리를 굳게 다짐했습니다. ‘다음에는 꼭 잘 할거야. 결선에는 내가 꼭 1등하고 말거라고.’

하늘이는 몇 년 전 이혼한 부모님 때문에 지금 할머니와 단 둘이 행복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건설노동자인 아빠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시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합니다. 함께 사는 할머니는 폐품을 하루 종일 모으시느라 하늘이를 돌봐줄 수 없어 하늘이는 하루종일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찬바람이 살살 불면서 하늘이의 할머니는 폐품을 주우러 나가시는 일이 적어졌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손자인 하늘이의 표정이 요즘 어두운 것 같아 할머니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오랜만에 하늘이와 얘기를 해보려고 할머니는 고구마를 삶아서 하늘이 방에 들어갔습니다.

“하늘아.”
“네.”
“너 요즘 무슨 고민이 있는 게냐?”
“고민은 무슨 고민요. 없어요.”
“학교에서 누가 너를 괴롭히든?”
“아뇨. 아니라니까요.”
“이 할미가 도와줄 게 없니?”
“할머니가 도와주긴 뭘 도와줘요.”
하늘이는 귀찮은 듯 할머니에게 말을 툭툭 내던졌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아빠와 엄마는 도대체 왜 헤어진 건가요?”
“갑자기 그건 왜 묻냐?”
할머니는 하늘이가 뜬금없이 하늘이 아빠와 엄마가 헤어진 일을 다시 꺼내니 당황스러웠습니다.
“왜 나를 놔두고 엄마 아빠가 왜 헤어졌냐구요?”
하늘이의 목에는 갑자기 핏줄이 섰습니다.
“네 애비가 돈을 많이 못 벌어서 네 애미가 떠난 거지. 다 이 할미 탓이야. 할미 탓. 네 애비를 좀 더 잘 가르쳐서 좋은 학교 보냈으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이 할미가 모자란 탓이야. 이 할미가 못난 탓이야.”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손으로 가슴을 쳤습니다.
“그게 무슨 할머니 탓이예요.”
하늘이는 할머니의 그런 말에 더욱 화가 났습니다.
“아빠가 조금만 더 엄마를 따뜻하게 대했더라면 헤어지지는 않았을 거 아니예요. 아빠 엄마가 정말 미워요.”
하늘이의 눈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습니다. 눈물을 닦아주려고 하는 할머니의 손을 급히 뿌리친 채 하늘이는 아파트 놀이터로 곧장 달려갔습니다.

다행히 놀이터에 아무도 없어 하늘이가 실컷 울 수 있었습니다. 짜증나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는 하늘이에게 그네만큼 좋은 친구가 없는 듯 했습니다. 낡은 임대 아파트의 놀이터 그네 소리가 101동 전체에 울릴 만큼 ‘삐걱삐걱’ 크게 들렸습니다. 그때 바로 경비실 김씨 아저씨가 그곳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수상한 사람이 있는 가 싶어서 후레쉬를 들고 그네 쪽을 비추어봤습니다. 그네 쪽으로 가까이 가보니 하늘이가 그네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늘아, 너 왜 여기에 있냐?”
“그냥요."
"집에 무슨 일 있는 거니?”
“아니예요. 아저씨.”
“녀석 싱겁기는.”
“아저씨, 아저씨는 어렸을 때 아저씨의 엄마 아빠가 사이가 좋았나요?”
“허허허. 그건 왜 묻냐?”
아저씨는 하늘이의 뜬금없는 질문에 약간은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냥요. 우리 엄마와 아빠는 많이 다투셔서 이혼하셨거든요.”
“아. 그러냐. 하늘아.” 하늘이의 말에 경비 아저씨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어른들은 왜 사랑했으면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헤어지는 걸까요?”
“그러게 말이다. 이렇게 씩씩한 하늘이를 두고 하늘이 부모님이 왜 그랬을까?”
“우리 엄마 아빠가 너무 미워요. 얼마 전 학교에서 있었던 물로켓 예선 대회에서 친구들의부모님들이 와서 응원해주는 걸 보며 저는 너무 서러웠어요.”
“아, 그랬구나. 그래서 요즘 네 얼굴이 슬퍼 보였구나.”
아저씨가 하늘이의 마음을 위로해주었습니다.
“아저씨 엄마와 아빠도 우리 엄마와 아빠처럼 많이 싸우셨나요?”
“아저씨는 말이다, 어렸을 적에 고아원에서 자라나 엄마 아빠의 얼굴도 모른단다. 서로 싸우는 엄마 아빠라도 그런 엄마와 아빠가 있는 아이들이 제일 부러웠어.”
“정말요? 진짜 아저씨가 고아원에서 자라나셨다구요?”
하늘이는 고아원에서 자랐다는 아저씨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언제나 푸근한 웃음을 지어주시는 경비 아저씨에게 그런 아픔이 있었는지 처음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늘아, 아빠 엄마가 서로 헤어졌더라도 너에 대한 사랑만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야. 세상의 부모들은 말이야, 자신의 품으로 낳은 자식들이 가장 귀한 보물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자식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한단다.”
“아무튼 이혼하는 것은 정말 옳지 않아요. 저 같이 불행한 아이가 생기잖아요. 엄마 아빠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괜히 심술이 나고 미워진단 말이예요.”
하늘이는 아저씨에게 지금까지 가슴에 쌓여있던 모든 것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래, 하늘아. 네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단다. 하지만 친구들을 미워하는 모습은 우리 씩씩하고 늠름한 하늘이에게 어울리지 않아. 이제는 우리 하늘이가 친구들을 미워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좀 더 사랑하는데 시간을 쓰면 어떻겠니?”
“자기 자신을 어떻게 사랑하는 건데요?”
무뚝뚝한 표정으로 하늘이가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생각해보는 거야. ‘나는 엄마 아빠의 귀한 보물이다. 나는 뭐든지 잘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기쁨이 될 수 있다. 나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 고 말이야.”
“나는 멋진 사람이 될 수 없을 거예요.”
“왜 그런 생각을 하니? 너는 정말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어. 하늘이는 지금도 참 멋져.”
아저씨가 하는 말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지만 속얘기를 들어준 아저씨 덕분에 하늘이의 기분은 좋아졌습니다.
“아저씨, 그런데 제 물로켓 만드는 거 좀 도와주시겠어요?”
“그래. 내일 경비실로 오렴.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실력발휘 한 번 해보마. 허허허”
“네. 아저씨.”
하늘이는 왠지 모를 희망에 부풀어 집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물로켓 결선대회가 희망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렸습니다. 아침부터 학부모들은 관중석에 앉아서 저마다 아이들의 물로켓을 점검하며 결전의 순간들을 기다렸습니다. 오전에는 저학년부의 아이들이 대회 순서를 채웠고, 오후에는 고학년부의 아이들이 차례대로 물로켓을 쏘아 올렸습니다. 페트병으로 만든 물로켓은 저마다 아이들의 꿈을 싣고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았습니다. 어떤 아이들의 물로켓은 얼마 못 가서 물을 뿜으며 땅에 떨어졌고, 어떤 아이들의 물로켓은 방향이 빗나가 학교 담장을 넘어 버렸습니다. 결선 대회라 모두들 긴장한 것 같았습니다. 순서대로 아이들이 물로켓을 모두 쏘아 올렸고 마지막으로 하늘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관중석에는 경비실 김씨 아저씨가 하늘이를 응원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하늘이는 아저씨가 와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제발 멀리 날아라. 엄마 아빠까지 볼 수 있도록 말이야.’
하늘이는 기도를 하고 물로켓을 힘차게 쏘아 올렸습니다. 물로켓은 거침없이 하늘을 날았습니다. 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물로켓은 운동장에 그어진 20미터 선을 훌쩍 넘어 떨어졌습니다. 순간 운동장은 조용해졌습니다. 이윽고 감독 선생님께서 줄자로 길이를 재시더니 놀라며 하늘이를 향해 외쳤습니다.
“하늘아, 28미터야. 네가 제일 멀리 날렸어. 1등이야. 축하해.”
“네? 제가요?”
관중석에서는 큰 박수가 터져 나왔고 하늘이는 너무 기뻐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하늘이는 곧바로 관중석으로 달려가 김씨 아저씨에게 안겼습니다.
“아저씨, 저 1등 했어요. 제 물로켓이 가장 멀리 날았다구요.”
“그래. 하늘아. 장하다. 정말 잘했어. 네 물로켓이 가장 멋있었어.”
아저씨는 하늘이의 등을 어루만져 주며 함께 기뻐했습니다.
“하늘아, 네가 쏘아올린 물로켓처럼 앞으로 너는 지금보다 더 멀리 날 수 있을 거다. 엄마 아빠도 너의 씩씩한 모습을 생각하며 멀리서도 분명히 힘을 얻으실거야.”
“정말 그럴까요? 아저씨?”
“그럼. 그렇고 말구. 우리 1등한 기념으로 다시 한 번 물로켓을 날려볼까?”
“네. 하늘이표 물로켓 다시 발사합니다. 하나, 둘, 셋!”
물로켓이 하늘을 날자 갑자기 물줄기가 뿜어 나오면서 파란 하늘 위로 갑자기 무지개가 번졌습니다. 하늘이의 꿈도 물로켓을 타고 함께 힘차게 날았습니다.

입선 / 소설 / 하명수 베드로 / 토현

유리병 속 어린 왕자



오전 10시 40분, 5월의 따스한 햇살이 배란다와 창을 투영하며 내방으로 부산하게 쏟아져 내렸다. 햇살은 공평하게 베란다와 방의 경계에 놓아둔 사육 통에도 온화하게 쏟아지며 산초나무 잎사귀 더미 위에 몸 니운 작은 생명을 어루만졌다. 침입자가 녹색의 번데기 속에 꼭꼭 숨어 화려하게 펼쳐질 다음 생을 준비하며 한낮의 단꿈에 녹아들어 있었다.
침입자가 처음부터 번데기였던 건 아니었다. 나만의 규칙대로 꾸며놓은 마당에 여러 식물이 모여서 이뤄진 나의 작은 세계에 침범한 2㎝남짓한 초록색의 애벌레에 불과했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침입자에 대해선 농약을 뿌리거나, 손으로 짓이겨서 현세의 생을 강제로 마감시킬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자연다큐멘터리에 소개된 멸종돼가는 나비에 관한 내용을 시청한 데다 애벌레가 침범한 영역이 하필이면 잎이 무성한 어린 산초나무여서, 침입자의 정체를 금세 알아차려 난 용서할 수밖에 없었고, 이파리에 생긴 심한 자상에 아파하는 어린 산초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까닭으로 보기 드물게도 이 애벌레는 용서라는 단어의 갑옷을 몸에 착용하고 현재 사육통의 보호아래 번데기가 돼 당당하게 화려하게 빛날 다음 생을 고대하고 있었다.
침입자를 관찰하다, 어젯밤, 내가 워드프로그램을 실행시켜놓고 넋 놓고 앉아 있는 것을 보신 어머니와의 다툼이 봉인된 큐브의 매듭이 풀리며 자연스럽게 재생되었다.
“그만 좀, 잊어라. 네 꼴이 지금 어떤지 아나? 몇 년 째고, 죽지 못해 사는 사람 같다.”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여기까지 온 건데…….” 나는 반박했다. 적어도 난 현재의 수준에 이르기 위해 가족들의 지원해 줄 수 없는 힘든 환경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현 수준에 이르렀기에 쉽사리 그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언니야, 사람이라도 만나고, 뒤섞이다보면 잊혀 진다. 혹시라도 다시 쓸 수 있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글 못쓴다고 세상이 끝장나는 것 도 아니잖아.” 어머닌 답답함이 가슴에 차오르는지 이마에 주름살을 드러내며 한숨을 크게 내 쉬셨다.
“엄마는 나한테 글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른다. 모른다고!” 글은 내게 심장과도 같은 존재이면서 나를 세상과 이어주는 삶의 터널 이었다. 지금 그 터널이 무너져버린 상태였다.
“일자리라도 구해줄까? 엄마 친구한테 이야기하면…….”어머닌 치미는 화를 다스리며 억양을 누그러뜨리곤 차분한 톤으로 일자리를 구해 사회생활로 다른 삶을 찾아보라고 권했다.
“…….” 난 아무런 대답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고, 답답함에 워드프로그램에 몇 자 적어 봤지만 머릿속에 폭설이 내리며 사고가 멈춰버려 주먹을 쥔 채 컴퓨터 책상을 내리치며 괴성을 질렀다. 그리곤 치미는 분노에 컴퓨터를 평소답지 않게 전원 버튼을 눌러 꺼버렸다.
나의 행동에 놀란 어머니가 내방의 섀시 문이 ‘쿵’ 소리가 날정도로 세게 닫고 나가시며 말했다.
“언니야, 맘대로 해라!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가! 누가나 너처럼 위기는 있다. 게임이나 하며 평생 마음이나 달래는 외톨이로 살아라. 엄마는 저무는 해지만 너는 다르다.”
죄송하단 생각이 들지만 무력감에 흔들리고 망설이는 스스로를 다스릴 용기가 없었다.
난데없이 휴대폰이 칭얼대며 ‘나 좀 봐달라고’ 어린아이 마냥 생떼를 썼다. 휴대폰을 놓아두는 곳이 일정치 않은 습관 탓에 울음소리가 들렸던 방향을 쫓아 시선이 방 입구의 스킨과 로션이 놓인 화장대를 지나고 원목무늬의 책장과 꽂힌 현대작가들의 베스트셀러와 각 분야 전문서적을 훑으며 방의 모서리를 에둘러 이윽고 짙은 갈색 톤의 원목 무늬가 있는 컴퓨터 책상에 다다르고, 휴대폰은 검은색의 컴퓨터 본체위에 지친체로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아마도 며칠 전, 저녁 운동하고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곤 휴대폰은 그곳에 둔 모양이었다. 늘 휴대폰을 둘 곳을 한곳은 지정해둬야지 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건‘규칙적인 생활태도가 몸에 익숙지 않아서가 아닐까?’추측만 할 뿐이었다.
「회사 이리 빠리 끈나서 걸어가는 중이다. 마중 나오래?」틀린 맞춤법을 보면서 누가 보낸 문자인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내 휴대폰의 저장 된 몇 개 안되는 번호들 중 맞춤법이 가장 엉성한 단 한사람. 가난했던 가정형편에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인 올해 연세가 52세이신 어머니뿐이었다.
「등산 갈 예정임!」나는 회신을 보내놓고 휴대폰을 컴퓨터 책상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았다. 방안으로 쏟아지던 햇살이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며 베란다와 내 방의 경계인 네 짝의 새시 문을 넘어 내방의 시작점인 한 짝의 새시 문까지 장악할 기세로 덤벼들지만 닿진 못하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방모서리의 스탠드 옷걸이에 걸린 얇은 등산복바지와 햇살을 막아줄 흰색 창 모자, 흰색의 얇은 티셔츠로 옷을 갈아입고 투명한 내방 창 너머로 밖을 내다보았다. 기상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양떼구름 흘러가는 하늘에서 마당으로 쏟아진 눈부신 햇살이 나만의 작은 정원의 상추, 깻잎, 소엽, 산딸기나무, 어린 고구마, 블루베리, 로즈마리, 산초나무 잎사귀에 공평하게 쏟아지며 녹색의 생기위로 사뿐히 내려앉고 있었다.
제법 강한 바람이 불며 나만의 규칙으로 꾸며진 정원에 한바탕 소란이 일더니 곧, 바람이 약해지며 멈추었다가 바람이 강해지면 소란이 일어나길 수차례 반복했다. 맞은편 ㉮동 현관에서 한 노인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오더니 노인이 입고 있던 회색정장약복 재킷을 펄럭펄럭 휘날리고 내정원도 예외 없이 소란이 일어났다. 복장이 평소와 달라 하마터면 앞 동에 놀러온 누군가의 지인이라고 착각 할 뻔했다. 잘 안 쓰시던 지팡이를 짚고 가벼운 운동복 차림이 아닌 누군가의 행사나 장례식에나 어울릴법한 말끔한 양복차림에 머리엔 날카롭게 각 잡힌 중절모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뚜벅뚜벅 걸어 나오더니 평소 하던 대로 맨션입구 그늘진 곳에 놓여 진 두 개의 의자 중 왼편에 앉았다.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일까. 세월이 남겨진 깊은 주름이 새겨진 손에 힘줄이 꿈틀꿈틀 움직이더니 이내 힘줄은 조용히 제자리에 들어가 앉고 지팡이는 오른편 의자에 기대어져 있었다. 전자식 도어열리는 소리가 ‘띠리리~릭’하고 귓가에 들리더니 이내 중년의 아주머니 한분이 시야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160cm 신장에 아줌마들 대표머리인 파마에 자외선 차단 썬 캡을 착용한 계란형 얼굴에 비교적 날씬한 몸매, 맨션 내에서 일어나는 대소사와 수도세와 관리비를 걷어 맨션을 관리하는 쾌활하며 인사성 밝은 반장아주머니가 흰색바탕 분홍 꽃무늬 실크 상의에 검은색의 정장 바지에 진갈색과 카키색의 체크무늬 숄더백을 어깨에 걸치고 묵직한 종이 가방을 오른손에 들고 곧장 오른편으로 휙 돌더니 맨션 입구를 향했다. 입구의 철제창살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어제 수거하지 않은 배출 쓰레기를 보며 불만을 토로했다.
"아, 진짜! 이건 플라스틱인데 누가 요구르트 병하고 같이 내놨어? 아! 이건 재활용 안 되는 품목인데, 아! 이렇게 짬뽕으로 내놓으니…….¨ 반장의 어조가 다소 격앙돼 있었다. 등지고 있어 반장의 얼굴은 볼 수 없지만, 평소 늘 미소만 짓던 얼굴에 짜증을 머금은 주름이 미간과 이마에 몇 개는 생겼을 것이다. 나는 뭔가가 마음에 걸렸다. 반장이 의자에 앉은 할아버지를 보고도 그냥 지나쳐버렸다는 것이다. 평소라면‘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해야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이웃 간에 크게 언성높일 일도 거의 없는 소규모의 맨션에서 모르쇠적인 이 반응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잠시 후, 내가 사는 ㉯동 1층에서 전자도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흰색의 얇은 블라우스를 착의하고 자주색 꽃무늬 허드레바지를 입으신 할머니가 오른손에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약간 굽은 허리에 왼손을 뒷짐 진 채 모습을 드러냈다. 할머니는 지금 아파트 뒤편 밭에 음식물 쓰레기를 거름 할 겸, 겸사겸사 고추화분에 물을 주러 가는 길일 것이다. 할머니가 현관을 지나 의자 쪽을 향해 깨작깨작 걸어가며 반장 아주머니의 불만 섞인 혼잣말을 들었는지 맞장구치듯 바통을 이어받아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요새 사람들이 지 생각만하고 벽에 저리 요일별 쓰레기 배출 표를 붙여놔도 분리수거 안하고 막 내놓는다. 혼자 사는 곳도 아닌데 어쩌려는지."
"안녕하세요? 어머니, 맞습니다. 이번엔 범인 색출해서 경고를 줘야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너무 하잖아요?" 동의해주길 원하는 반장의 의도에 할머닌 맞장구를 친다.
“맞다! 그거 내놓은 범인 찾아서 경고 줘야한다. 그런데 오늘 옷 빼입고 어디 놀러가나?”
“남편한테 밑반찬하고 과일조금하고 갈아입을 옷가지들 좀 가져다주러 가는 길입니다. 범인은 나중에 잡고…….” 남편에게 가는 일이 우선순위 인 듯 반장은 철재 문을 지나 이내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할머니 또한 회색빛 곱슬머리가 햇빛을 받아 윤기 나게 반짝이다 왼편 모퉁이로 돌더니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번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못 본체 하는 건가?’분명 내 눈에도 보이는 사람을 투명 인간 취급할 만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이가 나쁘지도 않으며 더 나아가서 자식의 사소한 얘기까지 도란도란 나누시던 친밀한 관계임을 알기에 이 상황이 납득이 안 돼지만‘이웃 간의 사소한 일로 어르신들끼리 싸웠겠지?’하며 의아한 생각의 실타래를 나름대로 매듭지었다.
***
"이봐 총각! 잠깐만 이리와 봐."맨션입구의 철제문을 발걸음이 넘어서려는 순간 그늘아래 의자에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나를 불러 세웠다. 평소 난 몇몇 아파트 사람들을 제외하면 거의 대화를 나누거나 인사를 주고받지 않는데 할아버지 또한 나의 인명부에 들어 있지 않은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조건 반사적으로 몸이 뒤돌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조건반사적으로 튀어나가는 말 또한 이성적으로 완전하게 제어 할 순 없었다. 뭔가에 홀린 듯 나타나는 반사적 행동이 후회스러웠다.
"네? 혹시 저 부르셨어요?"난 의아한 표정을 하고 스스로를 검지로 가리켰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여기 총각 말고 누가 또 있어?″ 그 말은 적확했다. 마당은 햇살이 스케치중이며 맨션 앞 인도는 젊은 대학생 커플 몇 쌍과 어머니 또래의 아주머니 몇 명만 바람처럼 스쳐지나 갔을 뿐, 현재 입구의 공간 안은 하늘이 두 쪽 나도 할아버지와 나, 둘 뿐 이었다. 그럼에도 나 자신에게 검지로 삿대질을 했었다.
"마당에 있는 목욕통 뚫어서 만든 큰 화분에 있는 상추, 깻잎 총각이 키운 거야? 실하게 잘 키웠네.” 싫든 좋든 할아버지의 물음에 대답할 상황이 돼버렸다. 이미 이 자리를 회피하기에는 늦어버린 듯했다.
“네. 저기 앞줄에 있는 블루베리…… 그리고 옛날 놀이터 자리에 감자 상추도 제가 키우는 겁니다.”아예 질문을 못하도록 나만의 규칙대로 키워진 작은 세계 일체를 말해주었다.
“벌레도 잘 안 먹고 많이 해본 솜씨네. 깻잎이 아닌 것도 있네? 소엽인가?” 할아버지는 또 질문들 던져놓고 내 대답을 기다리며 나를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눈동자의 빛이 선명해서 총기가 서린 젊은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환영이 느껴졌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맨션 내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깻잎이라 했던 소엽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엽을 아세요? 거의 다 깻잎이 색깔이 특히 하네. 하시던데.” 나도 모르게 이성적으로 이 상황을 벗어나야지 하면서도 되묻고 말았다. 곧 후회가 밀려들지만 이미 늦었다.
“그럼, 알고말고! 내가 소싯적에 총각이 키우는 것 말고도 이런저런 작물 농사를 얼마나 지어봤는데…….” 하며 할아버지가 또다시 나를 집요하게 응시한다. 내 속마음이 읽히는 듯 욕지기가 느껴지는 총기서린 선명한 눈동자가 내 심신을 현재의 이 땅위에 꽁꽁 묶어놓았는지 몸이 나른해져서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들질 않는다. 햇살도 바람도 주변의 인기척도 조금 전부터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5평 남짓한 맨션 입구가 관객 하나 없는 빈 축구경기장 같은 공허함을 품고 나와 할아버지를 둘러싼 기분이었다. 물론 이건 내 착각일 것이었다. ‘하루 중 맨션 입구가 이토록 공허한 시간이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일거고 바로 그때 중 하나가 우연히 겹쳤을 뿐.’이라고 생각을 매듭지어 큐브에 저장했다.
“혹시, 산초나무에 있던 조그만 애벌레 총각이 잡아 가서 어떻게 했나?” 할아버지의 질문 공세가 또 나에게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내 정원에 침입한 침입자를 사육 통으로 데려가던 날 앞마당은 이른 아침이었고 거긴 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의 댁이 ㉮동 몇 층이며, 어디에서 그 광경을 눈여겨봤는지 알 수 없지만, 나만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비밀스런 작은 기억의 큐브하나가 오류를 일으키며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그걸, 보셨어요? 그날 마당엔 저 혼자 뿐 이었는데? 그리고 그 애벌레는 점점 멸종돼 가는 나비의 애벌레여서 제가 차마 죽이진 못 하고 집에서 키우는 중인데요?”
할아버지가 나를 또 응시 하더니 입술을 떼며 조금은 높은 톤으로 말했다.
“이 세상에 비밀 이란 게 어디 있나?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 세상인데, 총각이 데려간 그 애벌레는 지금은 행복하겠지만, 과연 미래가 행복할까? 모든 생물은 자연의 품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법이네. 총각이 그 애벌레에게 베풀 수 있는 호의는 거기까지야. 자연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라고 하지. 적자생존에선 그 이유가 중요하지 않거든.”
할아버지가 갑자기 달리 보였다. 유명대학의 강사라도 해보신 듯 인생의 연륜을 머금은 철학적인 낱말들이 빗장을 열고 내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파문은 점점 나를 둘러싼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전율하며 잠시 가수면 중인 또 다른 나를 깨워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네. 그러겠습니다!’하고 깨어난 다른 내가 대답하지만, 내 입은 아직 이성적으로 제어가 간신히 되고 있어“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점점 할아버지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김과 동시에 속마음을 읽는 듯한, 저 선명한 검은 눈동자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어떡해서라도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고 내 이성에게 강요하고 압력을 행사하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일부러 휴대폰을 꺼내어 문자를 확인하는 척했다. 문자왔다고 생떼를 쓰지 않는 폰을 꺼내어 만지작거리는 내 행동이 비참하지만 이 상황에선 이러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았다. 내 의도를 읽었는지 알 수 없지만 선명한 빛이 서린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내게서 멀어지며 기다리던 음성이 들려왔다.
“바쁜 거 같은데 어서 가봐! 대화 즐거웠네.”
기다려온 할아버지의 끝맺음에 온몸으로 쾌재를 부르고 싶지만 나른해진 마음이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몸이 마취에서 깨어나듯 움직여지더니 내 뒤통수로 부터 할아버지의 음성이 들렸다. “총각, 머지않아 다시 대화하세.”
어느 순간 멈췄다고 느꼈던 강한 바람이 불어 내 몸을 매만지며 흘러가더니 그 위력을 잃고 처녀를 유혹하는 꽃향기 품은 순풍으로 변해버렸다. 인기척 소리가 귓가로 들려오고 집 앞 차도를 따라 주인을 기다리는 소포를 실은 택배회사 상호가 적힌 흰색 트럭이 지나가고 뒤이어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빨간 투피스 정장을 입은 갸름한 계란형 외모의 미인 여성이 운전하는 작은 빨간색 경차가 봄바람 난 엔진 음을 뱉으며 내 시야를 쏜살같이 벗어났다. ‘입구에서 느꼈던 한적한 시간이 수명을 다해 다시 요란한 현실이 돌아온 건 뿐.’ 이라고 속으로 매듭지어 큐브에 저장하여 뇌리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네, 기회가 되면요.”대충 예를 차례를 대답하곤, 발걸음이 안전한 인도의 마름모꼴 보도블록을 밟기 시작하며 맨션은 내 뒤태로 부터 점점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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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솔향기를 품은 산바람이 내 후각을 자극하며 양 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오는 길에 즐비했던 은행나무 가로수와 거침없이 질주하던 자동차와 어딘가를 바쁘게 걷던 형형색색의 봄 패션을 걸친 사람들이 내 풍경 속에서 사라지고 30미터를 솟은 소나무들이 시야에 빼꼭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언어로 형언 할 수 없는 상쾌함이 머릿속에서 신명나게 춤추는 듯했다. 평일의 정오를 갓 넘어선 이때와 사방을 에워싼 녹색의 녹음에 심취한 내발걸음이 등산로를 따라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무작정 산을 오르고 있었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며 느끼는 세상과의 단절로부터 찾아오는 상쾌한 평화가 나를 에워싸고 물 만난 고기처럼 팔딱팔딱 수면으로 솟아올라 재주를 부리고는 내 품에 불안감을 걷어내고 안정감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오늘 느끼는 이 안정감은 평소와는 뭔가가 달랐다. 분명하게 꼬집어 뭐가 다르다고 분류하거나 정의할 수 없는 추상적인 느낌이었다. 분명 뭔가 다른 건 확실했다.
내 앞에 할아버지 한분과 4살은 돼 보이는 여자애가 20미터를 앞서 오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자애가 돌부리에 발이 걸리며 철퍼덕 넘어졌다. 넘어진 것이 분통한지 여자애가 할아버지를 보며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곧 울음이 터질 듯한, 손녀를 보며 할아버지는 상냥하게 말했다.
“어이쿠, 우리 수진이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우리 수진이 넘어지고도 울지도 않고 착하다. 걷다보면 넘어질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 수진이 같이 울지도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서긴 쉽지 않은 용기 있는 행동이야.”
할아버지는 손녀를 향해 세월의 연륜이 묻은 주름살을 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여자애의 표정이 반전되며 햇살에 빛나는 환한 미소를 짓고는 손과 옷을 털털 털어내고는 고사리 손을 내밀었다. 할아버진 고사리 손을 포근히 잡고는 등산로를 천천히 바닥을 살펴 오르기 시작했다. 며칠 전, 난 평소의 흐름과는 다른 생소한 흐름에 두 번 휩쓸린 기억이 큐브에 생생하게 녹화돼 있었다. 그 광경이 환영을 불러들여 이틀 전, 저녁운동 하러갔던 온천천에서 본 광경을 뇌리에 일깨우고, 또 다른 세계의 내가 큐브 하나의 매듭을 풀어 영사기에 넣어 재생시켰다.
강물위로 어두워져버린 하늘을 도심의 눈들이 밝게 눈뜨며 꿰차가고 있었다. 어둠에 눈뜬 아파트의 눈동자들이 흘러가는 강물위로 흐트러지며 한 폭의 수채화처럼 검은 캔버스 위에 그려지고 산책로 주변에 피어난 봄꽃들이 제각각의 색상으로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삶을 영위하는 그 현장을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패션과 오늘의 일상을 얘기하면서 눈으로 즐기며 걷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오늘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하는 나만의 특별한 의식처럼 건강을 유지할 겸, 매일 4㎞∼5㎞정도를 거리를 걷고 있었다. 흘러가는 강물의 역방향으로 걷는 내 귀엔 스마트폰에서 재생되는 최신 발라드 음악이 흘러들며, 나를 주변의 세상이 던지는 질책 같은 시선으로부터 어느 정도 격리시켜 주었다.
격리된 세상을 즐기며 인라인스케이트장 옆 산책로를 걷던 내게 강습을 받는 제각각 무늬의 스케이트 유니폼과 안전보호구를 착용한 5살∼7살은 돼 보이는 12명 정도의 아이들이 한 줄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중 남자아이 하나가 처음 타는 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강사의 손을 붙든 채 공포에 질려 떼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선생님, 무서워요.”
강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뒷걸음질 치며 아이를 이끌었다. 그 광경에 내발걸음이 느려지며 나를 격리된 공간을 벗어나 온새미로 현실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했다. 잠깐 지켜보고 싶어 걸음을 멈췄다. 아이들이 새로운 뭔가를 습득해가는 모습은 파릇파릇한 새싹을 보듯 기분을 들뜨게 하면서도 내심 부끄러운 마음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여자애의 차례 일 때였다. 처음엔 강사의 손을 붙잡고 출발하더니 어느 순간 여자애가 강사의 손을 놓고 혼자 위태롭게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40여 미터를 아슬아슬하게 땅을 박차던 여자애가 이윽고 커브를 돌다 넘어지고 말았다. ‘철퍼덕’ 하는 소리가 제법 크게 귓가에 내리 꽂혔다. 강사가 부리나케 달려와 여자애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착용한 보호구 덕분에 여자애는 큰 부상은 입지 않은 듯 보였다. 강사가 상태를 다시확인하려는 듯 물었다. “다친 곳 없어? 아픈데 있음 선생님한테 말해.” 여자애는 망설임 없이 몸 구석구석을 털며 “넘어지면서 배우는 거 아닌가요? 저희 엄마가 저도 걸음마 배울 때도 많이 넘어졌다고 했어요. 보세요. 저 이젠 잘 걷고 잘 뛰잖아요.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다 보면 선생님처럼 잘 탈 수 있게 되잖아요? 그렇지 않아요?”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그 말에 강사의 표정이 흠칫 놀라며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기특한 듯 여자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자기, 무방비 상태의 나에게 수많은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화살이 가슴에 적중할 때 마다 마음에 통증과 더불어 화살에 맞은 또 다른 내가 뽑아 낸 화살의 상처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화살마다 아이가 했던 말들이 깊게 낙인처럼 새겨져 있었다. 부끄러움에 그 자리에 멈춰선 내걸음이 움직이더니 상처에 눈물이 멎을 무렵 난 이미 인라인스케이트장이 뿜어내는 강렬한 빛에 쫓겨 100m가량 벗어나 있었고, 인라인스케이트장의 야간 조명아래에선 어둠에 묻힌 내가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이 눈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소나무로 에워싸인 등산길은 어느새 사라져가고 고분정비 사업으로 잘려나간 수령이 30년 넘은 소나무의 주검이 몸뚱이가 토막난체 한가득 쌓인 공동묘지가 등산로 옆으로 이어졌다. 소나무가 없는 탓에 솔잎에 차양되지 않아 조금은 따가운 한낮의 햇살이 온몸으로 쏟아져 내렸다. 난 걸음을 재촉했다. 황토 흙을 박차는 걸음은 점차 빨라지고 걸음이 빨라질수록 뜨거워진 혈액이 온몸에 5월의 뜨거워지는 햇살을 생생하게 전해왔다. 5월의 햇살이 내 몸을 순환하는 동안 나를 흔들었던 할아버지와 여자애가 뒤로 점점 멀어지며 모습이 작아지더니 갈림길에서 다른 방향으로 접어들며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무 그늘이 내 몸으로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인공적인 고분정비 구간이 끝나고 솔향기를 뿜어내는 소나무 숲이 사방에 즐비하며 나타나기 시작했고 점차 숲의 일부로 묻혀가고 있었다. 등산로를 걷는 등산복을 입은 노년부부와 수다 떨며 지나가는 중년의 아주머니 몇 명이 스쳐지나갔지만. 무관심한 시선만 수박 겉핥듯 외양을 훑고는 개인의 일상으로 녹아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빽빽했던 소나무를 베어내고 그 터전위에 인간을 위해 조성된 인공적인 체육공원이 모습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이 타고 내려가는 작은 언덕에 벤치 몇 개와 그 아래로 돌로 화단을 만들어 영산홍과 철쭉을 심고, 갈색의 아스팔트를 기준삼아 좌우로 배드민턴장과 간단한 운동기구, 쉬어가라고 만들어진 정자, 맨 아래엔 화장실까지 그곳은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상실하고 산을 침입한 인간을 위한 문명의 혜택이 몇 년째 자리 잡아 가는 중 이었고 나또한 그 문명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는 한명의 인간이었다.
가볍게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소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체육공원 전체를 내려다보았다. 평일임에도 인근에 사시는 어르신 10여명이 아래 정자에서 언덕을 타고 올라 내려가는 바람을 시원스럽게 즐기며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또 보는구만 총각.” 귓가를 울리는 익숙한 목소리, 심장이 세차게 두방망이질 쳤다. 언덕을 타고 오르던 바람이 잦아들고 주변에서 들려오던 새소리 또한 침묵하듯 잦아들었다.
“안녕하세요? 여긴 어쩐 일 이세요?” 하필이면 할아버진 비어있는 두 개의 벤치를 놓아두고 내 옆에 앉았다. 할아버진 흰색의 모시옷감의 한복을 입고 넌지시 나를 쳐다보았다. 내 안에서 뭔가가 또 요통치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며 지켜온 나만의 세계의 국경선이 무너지고 할아버지가 그 안에 떡하니 들어서서 소요를 일으켰다. 난 지금부터라도 할아버지의 말을 모르쇠하기로 맘먹었다.
“내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어쩐 일이긴. 그래 그 벌레는 어쩌기로 했나? 내가 사는 동안 세상은 참 많이 변했지. 여기 만해도 그래, 총각도 자주 왔다면 알겠지만 저곳에 소나무 숲이 있었지.” 할아버지는 체육공원을 지긋이 내려다보며 나긋나긋한 어투와 회상에 젖은 눈동자로 말을 이었다.
“총각이 보호해온 벌레는 운이 좋은지도 몰라. 저마다 천적이 있기 마련인데 총각이 보호해주지 않나. 하지만 자연은 자연스러울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지. 치열한 자연의 섭리 속에서 살아남는 것 또한 생존의 의무이지. 그리고 총각은 어떤 사연 때문에 망설이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에겐 자신의 가치를 느끼도록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네. 그중 하나가 존재감이지. 그걸 느끼고자 인간들은 서로 협력하고 서로 싸우고 서로 사랑하는 거라네.”
내가 망설이고 있다는 할아버지의 말이 내 정곡을 찌르며 나만의 세계 속에 강력한 소요를 일으키고, 심장에서 뿜어져 나가는 피의 역동적인 흐름이 여과되지 않고 머릿속을 메아리치며 점차적으로 번져가더니 또 다른 기억중 하나가 영사기에 재생됐다.
도망치듯 인라인 스케이트장을 벗어났던 다음날 우연히 성당에서 예전에 cell을 같이하며 매주 얼굴을 마주했던 이성 친구를 발견했다. 어머니와 같이 주일 오전 미사를 봉헌하러 온 여자의 얼굴을 보자 뇌리의 연접들이 번개처럼 반응하며 그녀의 이름을 찾았다. 잠시 후, 뇌리 속에서 큐브의 매듭 하나가 풀리며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정하늘’ 12년이 흘러 혼기 찬 아가씨로 몸은 성장했지만 토끼처럼 맑고 빛이 깃든 큰 눈동자와 도톰한 입술, 통통한 계란형 얼굴만큼은 방금 과거에서 미래로 방금 날아온 듯 남아있었다.
‘미사를 봉헌하는 내내 아는 척을 해야 하나 말아야하나?’고민하며 내안의 또 다른 나와 줄다리기를 한참동안 해댔다. 미사는 파견성가가 끝나가고 있었고 하늘은 자리에서 얼어나 성전 밖을 향해 빠져나가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갑자기 발걸음이 주저 없이 움직이더니 손은 이미 하늘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또 다른 나의 승리였다. 하늘이 뒤돌아보며 나를 알아보지 못해 낯선 사람을 쳐다보듯 흠칫 놀란 눈동자로 ‘누구세요? 누구신데 제 몸에 손을 대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뭔가 말을 걸어야하는데, 예전과 다름없이 맑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빛이 깃든 눈동자를 보자 수초동안 모든 사고가 멈추었다가 심장이 고동치며 모든 사고가 되살아났다.
“혹시, 이름이 정하늘 맞나요?” 불안 반 확신 반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하늘을 향했다.
“맞는데, 누구세요? 아…아… 잠깐, 목소리가 낯익은데……” 하늘은 일시적인 혼란에 빠졌다가 내가 누군지 한참을 추리 중인 듯, 한 손을 살짝 들고 있었다.
“성당에서 cell 같이했던……” 난 일부러 말꼬리를 흐리며 더 잇지 않았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죄송합니다.’하고 그 자릴 벗어날 생각뿐이었다. 2년 동안 여러 대소행사를 같이 했었는데 짧은 순간이라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가 살아온 삶은 그냥 죽어 있는 삶 일뿐, 그리고 하늘은 총무 직을 맡아서 매월 회비 내라고 독촉까지 했던 꼼꼼하며 붙임성이 뛰어났던 마당발이 아니던가. 미사가 파하면서 사람들이 몰려나오며 성전입구가 웅성웅성 거리며 점점 혼잡해져갔다.
“아! 얼굴이 좀 변해서 이제 생각났다. 수성 맞지? 진수성.”
난 얼굴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늘의 표정이 화사하게 변하며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리고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을 품었다.
“미안, 오랜만이다. 너도 나이가 들긴 했네. 못 알아볼 뻔했다. 여전히 호리호리하네. 살도 안찌고 좋겠다.”
살짝 거침없는 하늘의 말이 맞긴 하지만 왠지 모를 섭섭함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그 순간에도 내 손은 바지 속 호주머닐 더듬고 있었다. 사실 하늘이라고 확신이 선 그 시점부터 그러고 있었지만 한쪽 손은 매만지던 휴대폰을 꺼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늘이 말을 이었다.
“요즘 뭐해?” 하늘이 한 말은 내가 세상에 발자취를 남겨오면서 제일 답변하기 가장 곤란한 질문 중 하나가 되어 고막을 울렸다. 사실상 난 맨주먹이었다. 나름 작은 사회생활이라고 일했던 편의점 야간알바를 관둔지도 4년이 넘어서고 있었고, 전문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응모를 준비했던 중편소설 두 편중 남은 한 편의 퇴고를 끝내고, 성취감에 너무 취한 나머지 불필요하게 생성한 파일들을 ‘쉬프트+딜리트’로 영구적으로 지우면서 힘겹게 써놓은 소설을 같이 지워버리고 말았다.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해 복구방법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파일을 살리지 못했고, 수개월의 노력은 눈앞에서 몇 초 만에 증발해버렸다. 머릿속이 하얗게 질리며 세상이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었다. 그 후, 백지만 봐도 끝을 알 수 없는 공포가 파도치듯 밀려들었다. 단어 하나를 쳤다가도 곧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어쩌다가 어떤 주제의 얼거리를 잡아도 머리는 다시 하얗게 질리며 백지상태로 돌아갔고, 결국 글자 한 자 쓸 수 없었다. 더불어 내 영혼 또한 삶의 생기를 잃고 빛바래 버려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내 마음 조차도 마음대로 가눌 수 없었다. 또 다른 내게 치유하기 힘든 깊은 상처가 생겨 버리고 만 것이다. 최악의 현실 속에서 시간은 조금씩 그 상처를 어루만지며 덮어주었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글자 한 자 칠 수 없었다.
“곤란하면 묻지 않을게.” 하늘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내게 연민이 깃든 표정을 지었다. 잠시 나를 측은한 듯 바라보다 다시 말을 이었다.
“cell같이 했던 애들 끼리 모임 하는데, 생각 있으면 참석해. 난 나왔으면 좋겠다. 일시하고 장소 결정되면 문자 보내줄게. 폰은 있지?”
“어, 최근에 개통했다.”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의 손이 호주머니에 넣고 있던 내 손목을 잡아채어 끌었다. 그러자 손바닥에 잡혀있던 휴대폰이 목줄메인 강아지마냥 끌려 나왔다. 그리고는 찰나순간의 망설임 없이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재빠르게 입력하고 내손에 다시 쥐어 주는데 5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곤 고개를 들더니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010-xxxx-xxxx 맞지. 난, 네가 꼭 나왔으면 좋겠다. 내가 상관일은 아니지만, 너 너무 표정이 어두워 보여……꼭 나와. 아! 회비가 있긴 한데 그건 내가 애들하고 상의해서 면제해줄게. 꼭, 나와! 문자 보낼게.”
초롱초롱 빛나던 눈동자를 보면서 난 어떠한 대답도 그 자리에서 바로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 몸은 속사포처럼 쏟아진 하늘의 일방적인 말 앞에서 최종 방어선이 무너져 사면초가에 처한 이름 없는 작은 왕국의 왕이 되고 말았다. 혼란을 잠재우며 평정을 찾고 보니 하늘은 이미 성전을 빠져나가는 혼잡한 인파에 뒤섞여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내 귓가엔 오직 웅성웅성 거리는 인파들의 뒤섞인 음성만 들려올 뿐이었다.
바람이 내 살결을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온도가 매우 차갑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할아버지가 내 손을 만지고 있는 게 아닌가. 난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를 50센티 가량 할아버지로부터 이격했다. 여전히 바람은 잠들어 있었고, 인기척도, 새들의 지저귐도 들려오지 않았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이 기묘한 느낌은 이상하리만큼 할아버지가 곁에 있을 때만 찾아왔다.
“그 녀석 하곤, 뭘 그렇게 놀래? 사내 녀석이 그리 겁이 많아서야. 내가 젊었을 땐,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었지, 그래서 내가 아주 잘 난줄 알았어. 내말 한마디에 움직이는 부하직원도 많았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세월이 흐르니 내 자리를 만들어 준 건 내가 했던 말을 군소리 없이 묵묵히 수행했던 그들의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이란 걸 알게 됐지. 치열하게 사랑하고 경쟁자를 누르며 사는 세상이지만 실상은 타인의 모습에 비친 내 모습이 모여서 진정한 내 모습이 만들어져 가는 거지.”
내가 그 말이 수긍이 되지 않아 난해한 표정을 짓자 할아버지가 잠깐 심드렁하더니 말을 이었다. “기차역, 지하철역, 도시의 쌈지공원 보호센터 같은 곳에 가면 노숙자들이 있지, 그들이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춰지는지 아는가?”
“그거야, 사업에 실패하거나. 부도가 나서 직장을 읽거나 부당해고를 당했거나 그런저런 이유로 가족들 볼 면목이 없어서…… 그런 곳에서 잠을 청하게 되니 불쌍해 보이겠죠.”
젠장, 할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말을 최대한 안하려고 경계하던 담이 무너지면서 나도 모르게 쇠붙이가 자석에 끌리듯 할아버지의 물음에 대답해 버렸음을 그 순간 깨달았다. 문자들은 이미 쏟아져 내렸고 형체가 없어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그 말도 맞네만, 그들은 스스로를 포기했기 때문에 타인에게 그렇게 비춰지게 되고, 그 모습들이 형상화되어 그들은 길거리를 배회하는 외톨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 한 거네. 만일 그들이 다시 재기하려는 의지만 보였다면 타인에게 비친 모습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이 내민 손을 붙잡고 새로운 삶의 모습을 형성하며 변모해 가겠지.”
그 말에 어안이 벙벙해지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할아버지가 내뱉는 낱말들이 화살처럼 날카롭게 날아들어 가슴에 내리 꽂히며 통증을 남기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리곤 무게가 실린 차갑고도 격앙된 목소리로 엄포를 놓으며 말했다.
“아직 늦지 않았네! 총각은 아직 청춘이지 않나. 망설이지 말게나. 그리고 모든 것은 자연 그대로의 법칙대로 일 때 가장 아름다운 거라네! 난 이제 산이나 한 바퀴 돌아야겠네.”
할아버진 벤치에서 일어나더니 언덕을 올라 위쪽 등산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향나무 군락의 오솔길로 들어서며 무성한 향나무의 품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잠시 후, 세상 속으로 새들의 감미로운 지저귐과 언덕을 타고 넘는 바람의 시원한 체온이 나를 에워싸더니 인기척이 언덕아래에서 부터 조곤조곤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몇 분간을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정확히 말해 뇌는 명령을 내렸지만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난 즉시 체념하고 나를 둘러싼 풍경의 삼매경에 빠져 순간을 즐기기로 작정하고 두 눈을 감았다. 기분이 한결 가벼워져가고 나의 세계를 뒤흔들던 소요 또한 점차적으로 잦아들었다.
⁂⁂⁂
“언니야, 치사하게 너 혼자 등산가고, 엄마는 안 데려 가고 섭섭하다. 엄마가 등산 좋아하는 거 알면서 평소엔 그렇게 밖에 좀 나가래도 방구석에서 컴퓨터만 하더니 오늘은 무슨 바람이고…….”
내가 전자 도어를 열고 현관에 들어서기 무섭게 부엌에서 어머니의 앙칼지면서도 약간 삐친 서운한 억양의 잔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들려온다. 그리고 ‘언니야’는 어머니가 내가 탐탁지 않을 때,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자 나를 칭하는 일종의 위로였다.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대수롭게 말을 흘려버렸다. 그리곤 곧장 내방으로 들어왔다. 혹시나 문자 온 게 있나 싶어 휴대폰의 활성화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부재중 전화 세 통과 문자 한 건이 왔었다고 알림표시가 떠있었다. 궁금증에 화면의 문자 아이콘을 터치하여 확인했다.
「맛이는 가일 사주께. 마중 나오나. 진짜 싼데 무거워서 모드러서 그런다.」라는 내용의 문자와 통화기록을 확인해보니 부재중 전화 또한 어머니의 번호로 온 게 전부였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저절로 탄식하듯 연거푸 터져 나왔다. 나한테 올 문제란 게 거의 어머니가 보낸 것 아니면 음란성 스팸메일, 그리고 친동생으로부터 간혹 걸려오는 전화 몇 통이 전부라는 생각에 내 현주소가 매우 초췌한 모습으로 현실에 반영되고 있는 까닭이었다.
인기척과 함께 어머니가 내방에 들어왔다. 보통의 50대 아주머니들이 그렇듯 나잇살로 통통한 복부의 체형을 가진 어머니 손에는 제철이라 값이 싼 딸기 한 접시가 들려 있었다. 내가 알기론 냉장고엔 딸기가 없었다. 그렇다면 저 접시에 담긴 딸기는 내가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먹으려고 사오 신 것이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언니야, 먹고 싶어서 샀는데 무거워서 버스타고 겨우겨우 들고 왔다. 엄마는 먹었으니까 이건 네 몫이다.” 어머니는 그러시면서 나를 향해 블록 나온 배를 퉁퉁 두드리며 연한 파랑색의 원피스를 쓸어 내리셨다. 그리고 이마와 미간이 약간 찌푸려지며 세월이 나이테를 세긴 주름이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뭔가 할 말 있을 때 나타나는 일종의 암시였다.
“언니야, 이제부터 종종 일찍 마칠지도 모르겠다. 일이 살살 끝나가네. 원단에서 일이 떨어져서……이번 달 말쯤이면 일이 없지 싶다. 다음 달부터 생활비 아껴야 하니까, 꼭 필요한 것 아니면 사지말자. 매해 만날 네 동생한테 손 벌리기도 미안하잖아.”
어머니가 일하시는 교복업체의 특성상 잠재적으로 줄어드는 학생 수와 더불어 여름엔 동복을 겨울엔 하복을 생산하니 항상 한 달간의 비수기가 찾아왔다. 그 시기가 지금 코앞에 다가왔음을 통보하신 것이었다. 어머니는 TV나 봐야겠다며 독서대가 놓인 하얀 공부책상에 딸기접시를 내려놓고 작은방으로 가셨다. 곧, TV가 켜졌는지 인기리에 재방되는 드라마 배우들의 목소리가 조곤조곤 들려왔지만 볼륨이 낮아 독서에 방해가 되진 않을 듯 했다.
독서 대를 세우고 90페이지만 남은「순례자」를 펼쳐 독서 삼매경에 빠져보려 내가 아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애를 썼다. 하지만. 내게 두각을 나타내는 낯선 단어들과 좀처럼 집중할 수 없는 마음가짐이 불안정한 내면의 세계로 부터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완전히 진압되고 해결됐다고 생각한 내안의 소요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통보하고 있었다. 문자들은 점점 낯설어지고 뇌리에 맴돌다 자연스럽게 큐브에 저장되지 못하고 고이며 썩어버려 문자들은 이미 처음 접하는 밀림의 오지부족 언어가 돼있었다. 난 결국 책을 덮고 말았다.
내방을 점령할 기세로 내 방 모든 유리벽을 투영하며 달려든 햇살의 몸뚱이가 서쪽을 향해가며 느릿느릿 후퇴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마지막의 방어선만큼은 사수하려 발악하는 햇살의 손아귀에 사육 통이 포함되어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사육 통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산초나무잎 더미 위에 올려둔 나뭇가지에 작은 실로 몸을 고정하고 꼼짝도 않던 녹색의 번데기가 점점 색이 바래져가고 등줄기에 아주 미약한 실선이 드러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 이건 애벌레가 나비로 태어나는 우화 과정의 시작이었다. 알에서 애벌레가 되고 번데기가 된 후 생사를 넘나드는 가장 힘들고 숭고한 과정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천천히 일어나는 변화지만 그 기묘한 변화가 파생시키는 다른 삶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위대한 시험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지켜보자니 답답함만 지진 후 일어난 해일처럼 무섭게 밀려들었다. 이제 오직 애벌레의 생사는 스스로의 의지에 달려있었다.
엄숙하게 느껴지던 자연의 정적을 깨는 문명의 음성이 들렸다. 귀에 낯익은 ‘메시지 왔어.’ 문자 알림소리였다.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휴대폰을 찾아 내방구석 구석 훑기 시작했다. 소리가 났던 근원지를 찾으려 애썼지만 이미 소리는 공중분해 되어버렸다. 어딘가에 있을 폰을 찾아 너저분하게 벗어둔 옷가지를 뒤지고 책장 위를 확인하고 하얀 공부책상의 책을 한권씩 들어가며 그사이에 숨어있는지 확인했다. ‘에이! 나중에 확인하자.’ 포기 하려던 순간 휴대폰을 발견했다. 휴대폰은 다름 아닌 짙은 갈색의 컴퓨터책상 위에 올려져있었다. 헛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휴대폰은 불과 내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던 거였다. 처음 보는, 정확하겐 내 폰에서 누군가의 이름으로 생명을 부여받지 못한 번호로부터 발송된 문자였다.
「하늘이다. 얘기 했는데 다들 한번 보고 싶다네. 회비는 됐고, 몸만 나와 장소는 XX역 지하철 8번 출구 1번가고 시간은 이틀 뒤 저녁 6시30분까지. 꼭 나와! 믿는다.@.@」
정하늘로부터 발송된 문자를 보자 내안의 소요가 점차 거세져 감을 느꼈다. 뇌리 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여러 나물들이 고추장과 뒤섞이는 산채비빔밥처럼 복잡하게 비벼졌다.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분명하게 나는 본능적으로 망설이다 모임에 갔을 때의 경우를 가정해서 벌어질 일을 머릿속에 소설로 썼다가 지우개로 깔끔이 지워버리고, 다시 안 갔을 경우를 가정해서 내 삶에 반복될 단순한 패턴의 일상을 머릿속에 그렸다가 지웠다. 성전의 문 앞에서 나에게 ‘꼭 한번 왔으면 좋겠다.’하던 하늘의 모습이 자꾸만 수면위로 떠올라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선명하고도 맑은 묘한 매력의 눈빛으로 내면의 나에게 외치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은 내게 힘든 시절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평생을 나를 지켜줄 것 같던 아버지를 여의고 실신을 반복하며 오열하는 힘겨운 나날들을 홀로 견뎌야했다. 그 힘겹던 고통 중에 나에게 손을 내민 친구가 나중에 성당에서 CELL장에 선임됐던 김강진 이었고, 강진의 첫마디는“나와 성당가자. 냉담하다 혼자 가려니 심심하다.”였었다. 물론 내가 ‘네가 뭔데 나한테 같이 가자 말할 권리가 있냐고?’고 반박할 수도 있었으나, 당시 나보다 덩치 크고 힘세던 강진에게 심신이 지쳐있던 나로선 맞설 의지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반강제적으로 성당을 함께 가면서 억척스럽게 느껴지던 이끌림에 의한 우정의 세월이 쌓여갔고 슬픔은 점차 마음속에서 그 자리를 잃어갔다. 고등학생이 돼서는 CELL이라는 가톨릭 청소년 모임의 회원이 되었고 각각 다른 학교와 다른 성장 환경에서 성장 통을 겪으며 짧은 인생을 걸어온 여러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 CELL로 묶인 친구들 중에서도 여자이면서도 남녀를 아우르는 묘한 매력을 지닌 여자애가 정하늘이었다. 물론 여러 친구들 중 수다를 잘 떨던 윤현지, 모범생 포스를 풍기던 한은주, 세련된 미남형 외모와 위트가 뛰어났던 정현수, 일정 정도의 거리를 두고 CELL이라는 소모임에 묶여 여려 대소행사와 회합 정도만 같이하는 동기들까지 이들이 나의 슬픔을 보듬어준 은인들임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의 이름은 지금도 큐브에 저장돼 소중하게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선배나 장이 하자는 대로 대소사를 수동적으로 함께했던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가던 무렵 친구들에게 상처를 줬을지 모를 편지 한 장만 회합 게시판에 붙여 놓고 CELL을 탈퇴해 버렸다. 속담 중엔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때의 사건이 세월이 흐르며 아무리 희석 됐다곤 하나 동기나 후배들에게 어떻게 각인됐는지 아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다. 더불어 필시 이번 모임에 참가하라고 문자가 오기까지 하늘과 강진의 영향력이 가장 컸으며 나의 참석을 수긍하기까지의 진통은 안 봐도 눈에 선했다.
그날 난 해가 저물도록 창밖을 내다보았다. 서서히 저물던 해가 땅거미와 함께 하늘 잠깐 붉게 태운 건 말고는 큰 사건이라 할 게 없었지만, 마음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내방전체가 가시로 뒤덮인 고문형틀처럼 느껴지긴 생전 처음이었다. 어둠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세상어디든 구석구석 공평하게 물들었다. 짙은 어둠이 물들기 시작하자 큰 길들 마다 문명이 어둠에 세차게 저항하며 붉은 눈을 뜨고 자기만의 세상을 자신만의 잣대의 밝기로 비추었다. TV소리는 여전히 들려 왔고, 어머닌 이미 잠이 드셨는지 육성이 들려오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갖고 싶어졌다. 그래서 작은방으로 건너가 어머니가 잠드신 것을 재차 확인했다. 두 눈은 꼭 감겨있고 세월과 싸운 인생의 흔적이 얼굴위에 그대로 주름으로 남아 있었다. 리모컨을 찾아 TV를 끄고 작은방 문을 닫고 내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성초에 불을 붙이고 묵주를 든 채, 성호를 그은 다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와 달라고.’ 아주 오랜만에 내가 믿는 하느님께 애타게 매달리며 청원기도를 했다. 나의 세상을 뒤엎을 만큼 역적혁명이 돼버린 소요로 내 세상은 붕괴 직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하느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길 잃은 어린양이 돼버린 저를 구해주셔야 할 분이 당신 아닙니까, …….’ 하지만 신은 내게 아무른 육성의 계시도 주지 않았다. 그저 어렸을 배운 한 내용만 머릿속에서 뜬금없이 떠올랐다.
『신은 인간을 사량하셨기에 인간에겐 창조하신 다른 동물에겐 없는 자유의지를 주셨다.』
갑자기 영문 모를 눈물이 흘렀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의 체온이 그대로 나를 따스하게 보듬었다. 그 뜨거움은 주체할 수 없는 회환, 증오, 사랑, 기쁨…… 세상을 살면 느껴온 모든 감정들을 머금고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을 그대로 눈물이 흐르도록 두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하지만 배는 그런 목적으로 만든 게 아닙니다.’ 내가 읽던 순례자의 한 구절을 내안의 또 다른 내가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그리고 곧 할아버지가 했던 말도 상기시켜주었다. “망설이지 말게…… 타인의 모습에 비친 내 모습이 모여서 진정한 내 모습이 만들어져 가는 거지.”
후회가 해일처럼 밀려들며 나를 위협했다. ‘현재의 내 모습은 모두 내가 자초한 것이었고, 하느님은 몇 년 이라는 세월을 마음아파 하시며 내가 스스로 일어서길 간절히 기다리고 계셨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강렬하게 내리쳤다. 폭설에 뒤덮이며 새하얗게 질려버린 세상처럼 머릿속이 비워지면서 편안함이 느껴지고 함락 직전의 내 세계는 모두 파괴되고 그 땅의 중심에 새로운 주춧돌하나가 놓여 있었다.
두 눈을 떴을 때 내방은 촛불이 밝힌 미약한 빛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여전히 어머닌 주무시는지 간간이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고, 내 볼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훔치고 성호를 긋고 묵주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내 몰골을 확인하려고 세면대 거울 앞에 서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아무런 무기 없이 맨주먹을 쥔 내면의 모습이 여과 없이 비춰졌다. 퉁퉁 부은 눈이 보기 싫어 세수를 하고 내방으로 들어서자 이유 없는 피곤함이 몰려들었다. 불가항력적인 달콤한 피곤함에 베게하나만 베고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꿈조차 꾸지 않는 깊고도 편안한 숙면이었다. 잠든 나를 비추는 건 오직 내가 켜놓은 촛불뿐이었다.
온몸에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하루를 열며 떠오른 해가 내방의 모든 결계를 투영하여 그 손길로 내 몸을 친친동여 메어 놓고 내가 깨어날 때를 기다리며 보듬어 주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몸도 마음도 상쾌한 기상이었다. 셋톱박스의 전자시계가 9시 30분을 지칭하고 있었고, 촛불은 스스로를 태우다가 자신의 많은 부분을 희생하고서 사그라지며 길었던 성초는 단초가 돼버렸고, 어머니는 분주하게 출근을 서두르며 여기저기 탈피한 흔적을 남겨 놓으셨다. 내방의 첫 경계 막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마당으로 햇살이 그림의 초안을 그리듯 선을 그으며 뻗쳐나가고, 나의 식물들은 밤새 접었던 잎들을 기지개 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자주 앉던 낡은 나무 의자가 주인 없이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불현 듯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할아버지와 대화하고 싶어서였다. 대충 수수하게 검정색 바탕의 트레이닝 복을 입은 후 매무새만 고쳐 잡고 곧장 아파트 마당으로 나와 주인을 기다리던 의자에 무단착석 했다. 그늘아래에 놓인 의자를 향해 햇살이 밑바탕을 그림을 점점 확장해오더니 내 몸 구석구석을 캔버스 속 밑그림에 그려 넣었다. 따뜻한 온기가 온몸의 혈관을 타고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 마다 스며들었다.
“안녕! 총각! 오늘은 웬일로 내 자릴 무단으로 앉았나?” 할아버진 ㉮동 입구에서 나오시며 입구에 놓인 의자 하나를 가져다 옆에 앉았다. 차림새는 어제 산에 보았던 그 복장 그대로였다. 언제나 할아버지가 나타날 때면 느껴지는 이 시간이 멈추어 버린 것 같은 느낌도 이제는 익숙해져 있었다. 난 이미 햇살의 밑그림에서 배제돼 버렸음을 감지했다.
“할아버진, 왜? 제 이름을 묻지도 않으시고, 저에 대해 뭔가를 아시는 듯, 망설이지 말라고 하셨나요?” 난 할아버지께 물었다.
“글쎄 이름은 세상의 사물을 구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 않나? 이름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 이름에 존재감을 부여하는 건 타인의 눈에 비친 총각의 모습인데, 총각의 이름이 그리 중요한가? 타인의 눈에 살인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악명 높은 이름이 될 테고, 아무런 굴곡 없이 평범하게 보였다면 범인의 이름이 될 테고, 선을 베풀어 덕을 보여줬다면 성인의 이름이 될 테지 안 그런가? 현재 총각은 아직 그 어느 쪽도 아니지 않은가.”
맞는 말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실, 할아버지께 자문을 구하고 싶은 게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나는 어제 내게 일어났던 모든 마음의 분란들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할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듣고도 그저 세월을 품은 주름살을 드러내며 너털웃음만 지으시다 입술을 가지런히 모으시고는 대답을 풀어놓으셨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했나? 그런 일들은 몸으로 부딪치면 저절로 해답이 나오겠지. 설령, 원하는 해답이 아니라고 해도 총각은 이미 그걸로 큰 한걸음을 뛴 거네. 위대한 역사적 사건들이 세상에 불현 듯 등장한 듯 보이지만 정작 그 발단은 한사람의 행위로부터 시작됐지. 그 예로, 2000년 전에 태어나 전생의 단3년 동안만 맨몸으로 활동하며 신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예수로 인해 인류는 죄를 용서받았고 그가 남긴 사랑이라는 유전자는 오늘날 까지도 세상을 흐르고 있지.” 할아버진 하늘을 넌지시 한번 응시하더니 말을 이었다.
“모든 변화는 자신의 의지로부터 기원하다는 걸 명심하게. 상처 받았던 친구들이 냉소적으로 대해도 그건 총각이 치러야 할 몫이고, 그 대가를 치러야만 그들의 눈에 비친 새로운 총각의 모습이 모여, 새로운 이름을 지닌 총각을 형성하는 거네.”
할아버지가 하늘을 또 다시 지긋이 응시하더니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망설이는 건, 망자의 삶에나 어울리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야. 내말 알겠나! 그리고 총각의 도움이 절실한 존재가 있지 않나? 난 이만 슬슬 가봐야겠네.”
“저기, 할아버지 성함이 …….” 나는 용기 내어 여쭈었다.
할아버지는 선명한 눈빛으로 차갑게 나를 주시하며 말씀하셨다.
“총각! 총각은 이미 나를 알고 있네. 그리고 난 이름이 중요하지 않네. 총각과 내가 옷깃을 스친 인연이란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리곤 거침없이 뚜벅뚜벅 철제문을 향해 걸어 가셨다. 내 시야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뒷모습에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꾹 참았다. 다시금 피부에 닿는 따스한 봄 햇살의 온기가 느껴지고 데워진 피가 혈관을 타고 몸의 세포하나 하나마다 순환을 시작했다. 난 햇살이 캔버스에 스케치중인 밑그림의 일부가 됐음을 직감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수레바퀴처럼 가슴을 맴돌았다. 별안간 뇌리를 스쳐는 뭔가가 있었다.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내가 ㉯동 입구에 들어서기 무섭게 햇살은 처음 그려 넣을 때부터 그랬듯 나의 허락 없이 캔버스의 밑그림에서 내 흔적을 지워버렸다.
햇살이 내방의 창 두 개를 투영하곤, 방안 깊숙이 잠식하며 들어오더니 내방 또한 밑그림 속에 그려 넣고, 창가에 놓아둔 사육 통은 일말의 여지없이 밑그림의 일부가 돼있었다. 방바닥에 몸을 누워 채집통 안을 유심히 관찰했다. 어제 누렇게 색이 바래가던 번데기가 햇살을 침투를 허락하며 등이 완전히 갈려져서는 남루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한 상태였다. 즉시, 내 눈동자는 번데기 속에서 여문 또 다른 생명을 찾아 통안 구석구석 가장자리를 따라 훑었다. 내가 찾던 생명체는 사육통의 파란색 덮개에 거꾸로 매달린 채 아직 덜 마른 날개를 말리고 있었다. 말라가는 날개의 혈관을 타고, 생사의 갈림길을 이겨낸 위대한 생명력이 흘러가며 연두색과 검정색이 어우러져 교회 유리장식에서 볼법한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케 해주었다. 날개의 문양이나 크기로 짐작해 볼 때 분명 ‘호랑나비’라고 불리는 요즘은 보기 힘들어진 나비였고, 나비는 말라가는 날개를 제자리에서 연신 퍼덕이며 나를 향해‘전 이제 세상에 나아갈 준비가 거의 다됐어요.’말하고 있는 듯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곤 할아버지가 낱말 하나하나 허투루 뱉는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내 앞에 있는 나비가 이전에 번데기시기였다고 얘기 한 적도 없고 오늘 우화 하리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어찌됐건 이제 나비는 내가 제공해 줄 수 없는 범주의 인생을 살아갈 때가 되었다. 난 속으로 신속히 결정을 내렸다. ‘그래, 오늘만 참아. 내일 오후에 보내줄게. 그동안 덜 마른 날개에 너의 꿈이나 한가득 품고 있어.’
무심코 컴퓨터 본체 위를 보니 2만원과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괄리비 주라.」엉성한 필체와 맞춤법에 어긋난 문장, 어머니가 놔두고 가신 것이다. 셋톱박스의 시계가 11시를 지칭하며 옅은 노란색 막대기를 선명하게 세우고 있었다. 얼마 후, 초인종이 울렸다. 절묘한 시점에 울리는 초인종 반장일수도 있지만 찰거머리 같은 교회전도사 일수도 있었다.
“누구세요?” 문밖을 향해 약간은 앙칼진 톤의 말을 내뱉었다.
“반장입니다. 관리비 받으러 왔습니다.” 익숙한 목소리에 안심하고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이번 달에 7톤 썼으니…… 다 더해서 총 18,000원 되네요.”
손에 들고 있던 2만원을 반장에게 건넸다. 돈을 받아든 반장은 장부를 보며 들고 있던 유성 불펜으로 우리 집 호수를 체크하고는 현관문을 나서려는 듯 몸을 휙 돌렸다.
“아주머니, 혹시 앞 동 사시는 늘 아파트 입구 의자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 뭐하시는 분인지 아세요?” 나도 모르게 현관을 나서려는 아주머니 뒤통수에 대고 묻고 있었다. 왜 내가 지금 질문을 했는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그러라고 시키고 있었다.
문을 나서려던 아주머니가 몸을 돌려 나를 응시했다. 돌아선 반장의 표정은 놀란 토끼마냥 생뚱맞은 모습이었다. 그리곤 차분하게 마음을 다잡는 듯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모르셨어요? 305호 할아버지가 최근까지 철학관인가 하시던 분인데, 며칠 전, 노환으로 돌아 가셨잖아요. 아마……” 반장은 손가락으로 날짜를 하나하나 샘하며 추리했다.
“딱 5일 됐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태연한척 하며 “진짜요? 그래도 노환으로 가셨다니 행복하게 가셨네요.”라고 대답했지만, 사실은‘아침에 저와 대화까지 나누었는데요.’하고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신뢰가 생명인 반장이 내게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임종하셔서 슬픈 긴해도 누구나 바라는 행복한 모범적인 임종은 맞죠!”
다시금 문을 나서려던 반장이 몸을 휙 돌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듯 오싹함이 엄습했다. 무슨 말을 할지 겁부터 났다.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라. 자꾸 깜빡하네. 여기 거스름돈.”
거스름돈을 주고는 반장은 다음 집을 향해 나가버렸다. 현관문이 닫히며 전자 도어 잠기는 소리가 이내 들려왔다. 그 후, 맥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침에, 아니 어제, 나를 붙잡으며 이야기하고 내가 이야기를 청해듣고자 했던 사람이 고인이라고, 귀신에게 사람이 이렇게 홀리는구나 싶었다. 머릿속에선 태풍에 휩싸인 바다처럼 혼란한 생각들이 높은 파도가 되어 내가 탄 배를 침몰 시킬 듯 사방에서 사정없이 때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파도에 난 침몰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며 버텨내고 있었다. 이대로 수장되긴 죽도록 싫었다. 몸을 일으켜 곧장 묵주를 손에 집어 들고 주기도문을 읊조렸다. ‘하늘에 계신…….’ 힘겨운 시련의 시간이 흘러갔다. 얼마 후, 서서히 성난 파도가 누그러들고 혼란스럽던 생각들이 깊은 해저로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마지막엔 한 가지 생각만이 홀로 수면위에 떠올라 있었다. ‘왜, 하필 나한테 나타나셨을까?’
그날 해넘이가 끝날 때까지 그 생각에 잠긴 채, 할아버지가 앉았던 의지를 내려다보았다. 할아버진 해넘이가 끝나도록 내 눈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몇 번의 만남으로 정이 들었다고 해야 할 까? 난 어느 순간 할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이유 또한 분명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모임에 가냐 안가냐?’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얼빠진 듯 생각에 잠긴 나를 흘겨보는 어머니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약해지려는 해답의 윤곽을 마음 정중앙에 단단히 메어 묶었다.
※※※
태양은 오늘도 어김없이 마당에 허락 없이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또한 예외 없이 매일같이 내방 창 두 개를 투영하는 햇살의 그림이 돼있었다. 어제 늦게 잠든 덕분에 오후 2시가 다 돼서야 겨우 깨어날 수 있었다. 몸에 피로가 느껴졌지만 머리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해서 기분이 스스로 들떠있음을 느껴졌다. 배가 고파왔다. 몸이 내게 같이 살자고 보내는 정해진 메시지였다. 대충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몇 가지만 챙겨 부엌 식탁에서 한 밥을 먹고 욕실로 들어가서 샤워까지 마치고 나오니 몸의 피로가 점차적으로 해소되면서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 선명하게 들었다.
대강 옷을 차려입고 창가에 앉았다. 무심코 시선이 의자를 향했다. 비어 있었다. ‘내가 그 동안, 할아버지의 혼령에 홀려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고마웠다. 적어도 내게 해코지하기는커녕 내 고민을 들어주시지 않았던가. 기억을 되짚어 할아버지의 마지막 행동을 떠올렸다. 하늘 쳐다보시던 모습, 그것도 두 번이나 이제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말라가는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어져갔다. 배돌이 같은 삶을 살았던 내게 잊지 못할 기묘한 체험을 허락하신 분께 감사할 따름이었다.
서랍장 하나하나 열어보며 입을만한 짙은 감청색 계통의 스키니 청바지와 흰색의 바탕에 가슴에 영어와 숲길풍경이 프린트 된 반팔 티셔츠하나를 꺼내었다. 신발은 뭐가 있나 찾아보았다. 최근에 산 검은색 운동화가 하나 있었다. 구두를 선호하는 않는 까닭에 신발장 안엔 구두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었고 닮은꼴의 전투화만 덩그러니 한자리 잡고 있었다. 현관입구에 검은색 운동화를 꺼내놓고 시계를 보았다. 셋톱박스의 막대기들이 3:30을 지칭하고 있었다. 약속한 장소와 집의 거리를 계산해볼 때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대로 방바닥에 누워 사육 통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나비는 얌전하게 더듬이와 다리들을 손질하고 있었고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삼각의 날개는 완전히 말라 햇살 속에서 보석처럼 군데군데 빛나고 있었다. 넋 놓고 한동안 매혹되어 있다 무심코 바라본 시계는 4시를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사육 통에 두었던 정신을 챙겨 준비한 옷들로 갈아입고 부엌으로 향했다. 일회용 봉지를 하나 꺼내어 들고 힘껏 흔들자 공기가 차면서 틈이 벌어지고 봉지는 팽팽해졌다. 봉지를 조심스럽게 들고 사육 통 입구를 열자 나비는 기다렸다는 듯 봉지 속으로 날아들어 날개에 생명력을 담아 연신 펄럭거렸다. 나비가 다치지 않게 봉지를 좀 더 크게 부풀리고, 양말과 준비한 신발을 신은 다음 휴대폰을 호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현관문을 나서자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며 두려움이 엄습했다. 각오는 했지만 몸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마.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어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그 상처 역시 사람 통해 치유 받아. 내가 오늘 상처받는 다면 감내해야 할 몫일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를 통해 치유 받을 수 도 있겠지.’ 내안의 또 다른 내가 육체를 향해 말했다. 심장의 고동이 안정감을 찾으며 몸이 점차 가벼워졌다.
햇살은 내가 마당에 들어서자 허락 없이 그림 속에 그려 넣었다. 나는 봉투를 열었다. 그러자 나비는 하늘을 향해 힘찬 날개 짓을 하더니 작별을 고하듯 내 주변을 몇 번 돌다가 아파트 담벼락을 넘어 시야에서 사라졌다. 정말로 자연의 품속으로 날아가 버렸음을 확인하고 곧장 맨션 입구로 향했다. 입구를 넘어서다 할아버지가 앉던 의자를 나도 모르게 쳐다보았다. 의자는 오늘도 주인 없이 비어 있었다. 이젠 다른 누군가 저 의자를 앉겠지만 아직까진 할아버지의 향수가 무겁게 배어 있었다.
“제 이름은 진수성입니다. 할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난 허리까지 숙여 빈 의자를 향해 인사를 하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문을 나섰다. 그늘을 벗어나자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이 걸어가는 내 모습을 자신의 그림 속으로 재빠르게 그려 넣고 있었다.


가작 / 수필 / 정연수 베로니카 / 범일


녹보수 한 그루


눈을 뜨니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일어나면 제일 먼저 베란다로 나가서 채소와 나무의 안부(?)부터 챙긴다. 누가 들으면 뭐 대단한 원예가라도 되는 듯이 생각할지 몰라도 내가 기르는 나무는 기껏해야 1m 키의 녹보수, 꽃기린 두 분, 개업한 가게라면 한두 개는 있을법한 산세베리아 한 분, 그 외 거의 장식용 수준의 조그만 화분에 다육 식물이나 선인장 등이 심어져 있을 뿐이다. 최근에 상추씨를 뿌려서 겨우 엄지손가락 크기만큼 자란 텃밭 아닌 텃밭도 제대로 채소를 길러 본 경험자가 보면 비웃을 일이다. 다이어트 용도로 구입한 고구마에서 뿌리가 나기에 그것도 물에 담가 햇빛 바른 곳에 두었더니 제법 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거실에는 스킨과 개죽순을 사다가 투명한 유리병에 기르고 , 내친 김에 대파의 뿌리 부분만을 잘라 놀고 있는 화분에 심었더니 또 쑥쑥 자라고 있다. 전문가라기에는 뒤죽박죽이요, 값나갈 정도의 난(蘭)도 하나 없는 초라한 화원이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오묘하다. 처음으로 녹보수 나무를 살 때만 해도 ‘아, 나도 나이가 드는구나’ 생각했을 뿐이었다. 자연이 좋은 줄이야 알지만 누가 다듬고 가꾸어 놓은 공원을 보는 것처럼 손쉽게 감상만 하고 싶지 거기에 내 시간과 열정(熱情)을 바치는 일은 자신 없는 무모함이자, 일종의 소모이자, 여유 있는 사람들의 향락(享樂) 정도로 치부했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중년의 나이 탓으로 여기며 시작한 식물 기르기가 내가 받은 고등교육에서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선지식(善知識)이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나무는 사다 두면 그냥 자라서 나를 기쁘게 해 줄 줄만 알았다. 그런데 7월 중순쯤 보니 잎이 누렇게 변하면서 문외한(門外漢)의 눈에도 시들시들 나무가 병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을 주지 않아서 그런가하고 물도 줘보고 영양제도 사다 물에 희석해 주어도 보았다.. 아무리 신경을 써 봐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다. ‘글쎄 안 하던 짓을 하니 죄 없는 나무만 잡지’ 싶었다. ‘이젠 포기다’ 마음먹고 거실에 있던 나무를 베란다에 옮겨서 보니 꼬물꼬물 하얀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거다. “아니 이게 뭐야!” 소리치고 들여다보니 하얀 솜사탕 같은 것이 가지 사이와 나뭇잎에 엉겨 붙어 있었다. 잘은 몰라도 나무가 이것 때문에 죽는구나 싶었다. 당장 컴퓨터에 앉아서 검색을 해봤다. 솜깍지벌레란다. 나만 고민인 게 아닌지 퇴치하는 자연요법도 제법 많이 포스팅 되어 있었다. 약을 치는 것보다는 맥주나 주방세제를 이용하는 방법이 마음에 들었다. 일단 하얀 그물이 쳐진 잎을 찾아 하나씩 닦는 것부터 시작했다. 몇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기어다니는 벌레는 좀 징그럽지만 휴지로 잡았다. 벌레라고 하니 벌레인 줄 알지 눈 나쁜 나한테는 그냥 큰 먼지처럼 보였다. 주방의 세제를 몇 방울 분무기에 넣은 뒤 물을 부어 희석한 뒤 나무에 흠뻑 뿌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두세 번만 분무하면 된다고 했다.
8월의 아침은 녹보수 나무를 보면서 시작되었다. 21세기 인류는 무한대의 정보를 얻을 수 있으나 쓸 만한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원시시대 사냥감을 찾던 때와 또 다른 유랑을 해야한다나. 인터넷의 정보를 맹신(盲信)한 탓인가. 조금은 나아진 듯도 하지만 여름인데도 녹보수는 신록(新綠)을 연상하리만큼 왕성한 생명을 뿜어내지는 않는 것이었다. 아픈 가슴을 누르며 여기저기 시든 나뭇가지를 잘라내고 내친 김에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화원(花園)으로 갔다. 증상을 얘기했더니 별거 아니란다. 처음엔 다들 나처럼 몰라서 나무를 죽이기도 하니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한다. 30년 경험의 사장님도 아직까지 책을 보시는 일이 있단다. 분무하는 약을 주시면서 나무에도 사람에도 해가 없는 천연약이란다. 진작 뿌려줬으면 나도 편하고 나무도 고생 안 했을 텐데 내 어리석음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용기도 좋지, 또 꽃 화분 몇 개를 사서 집으로 왔다.
나는 개를 좋아하지만 돌볼 자신이 없어 기르지 못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했었다. 그런데 식물은 왜 돌보아야 한다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식물도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생명인데, 동물과 다를 바 없이 틀림없이 생명인데 말이다. 내 의식 속의 꽃과 나무는 독립된 개체(個體)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세상에 있는 배경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혹시나 식물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주고도 소리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수첩을 준비했다. 그날부터 일종의 식물 일지를 기록한 셈이다. 물을 준 날짜는 원예 초보자에게 중요하다. 물을 많이 주면 죽는 다육 식물, 물을 안 주면 죽는 산호수, 햇볕이 필요한 나무, 반그늘을 좋아하는 나무 등등. 집에 있는 화분에 각자의 이름을 붙이고 각각의 생장 조건도 알아보았다. 전화할 때마다 나무 얘기만 했더니 언니는 나보고 무슨 학교 공부하듯이 화분을 기른다고 했다. 언니는 그냥 물을 줄 때 되면 다 안다고 했다. 자기가 기르는 꽃이 얼마나 잘 자라는지 자랑이 늘어졌었다. 백년초도 정말 예쁜 꽃을 피웠다고도 했다. 질투가 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사는 일에도 연륜(年輪)이 있어야 한다. 나는 중년이 싫지 않다. 젊은 날의 고뇌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컸다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만, 해풍(海風)이 지나간 고요한 바다와 같은 중년의 평안(平安)이 좋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내 인생에도 이처럼 연륜이 의미가 있는데 하물며 다른 생명을 기르는 일에 어이 인내(忍耐)와 고난(苦難)이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 과정 없이 기쁨만을 얻겠다는 생각이 애초에 잘못 되었음을 지금 알게 된 것만도 다행이다.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언니처럼 오랜 동안 나무와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짧지 않은역사(歷史)가 있어야 할 것이다. 분갈이를 해 주기 위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고, 겨울의 추위를 같이 견디는 동반자로서의 연민(憐憫)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때쯤이면 나도 척 보면 “목이 마르구나, 영양이 부족하구나, 추운가보구나” 그들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 내 경험담을 자랑스럽게 들려 줄 수 있을 것이다.
신앙(信仰)에 대해서 늘 부끄럽다. 신앙은 어쩌면 내가 기르는 녹보수 한 그루와 같을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집안 최초의 신자로서 그 나무를 내 손으로 직접 사 온 사람이다. 그 나무를 사올 때 열려 있는 아름다운 열매를 보고 늘 그렇게 풍성한 결실이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돌보지 않고 병들게 내버려 두었었다. 진지하게 성찰(省察)하는 시간을 내거나 정성을 다하지 않았다. 이제 단 한 잎도 남지 않은 내 나목(裸木)의 신앙 앞에, 누군가 사랑으로 가꾼 이 가을의 과목(果木)들이 보란 듯이 눈부시게 영글어 찾아왔다. 역시 나는 부끄럽다.
문을 열고 햇볕과 바람을 들여야겠다. 통풍(通風)을 시키지 않고, 영양을 못 챙겨서 병에 걸렸다고 했었다. 다 죽어가던 녹보수는 이제 완전히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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