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시흥문학상 전국 공모 안내

         

미래 지향적인 생명도시 시흥시가 주최하고 사)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가 주관하는 제12회 시흥문학상 작품을 아래와 같이 공모합니다. 21세기 한국 문학을 짊어지고 나갈 전국의 시?수필 부문의 역량 있는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신선한 작품으로 한국 문학의 새 지평을 넓혀주시기 바랍니다.

          - 아 래 -

□ 공모부문 : 시 ? 수필

 

□ 주제 : 자유

 

□ 제출 작품 수 : 시 5편 이내, 수필 2편(작품 편수 미달 시 심사배제)

 

□ 응모자격 : 20세 이상, 지역 기성 신인 불문

 

□ 공모기간 : 2011.10.1.00:00 ? 2011.10.31.24:00 (1개월 간)

 

□ 응모요령 : 작품접수는 인터넷으로만 접수하며 우편 접수는 받지 않습니다.

 

□ 작품 접수처 : 시흥예총 홈페이지(http://www.sharts.or.kr)

 

□ 당선작 시상

 

? 대  상 : 1명             상금 ?4,000,000 및 상패

 

? 우수상 : 각 부문별 2명 상금 ?1,000,000 및 상패

 

□ 심사 발표 : 2011.11.10   ?시흥예총 홈페이지 ?시흥시청 홈페이지

 

□ 시상식 : 일시 및 장소 추후 통보

 

□ 응모요령

 

1. 응모작품을‘시흥예총홈페이지’에 출품하실 때. 1인 1회에 한하여 접수해야합니다.

 

2. 응모작품은 제출일 이전 미발표된 창작품이어야 하며, 시상일 전까지는 일체 타에 발표

 

를 금해야 됩니다

.

3. 응모된 원고는 일체 반환하지 않으며, 당선작의 저작권 등은 본 협회에 귀속합니다.

 

4. 기 발표된 작품이거나 표절이 밝혀질 경우 당선을 취소하고 상금을 반납합니다.

 

 

5. 심사는 관외 문단 권위자로 작품 마감 후 위촉하며, 당선작 발표 시 명단을 함께 공개합

 

니다.

 

6. 과년도 대상 입상자는 작품 출품하는 것을 금합니다.

 

□ 작품집발간 : 전년도 대상작과 본회 당선자의 당선작과 그 외 작품으로 작품집을 제작 발표합니다.

 

□ 문의처 :시흥문협 016-732-4366, 010-4426-0606

 

홈피담당 010-6257-7040 시흥예총 031)316-5700              

 

            (사) 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

             시 흥 문 학 상 운 영 위 원 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11/03
분 류 문인협회
ㆍ조회: 601  
제12회 시흥문학상 작품공모현황
제12회 시흥문학상전국공모 작품접수가 마감됨에 따라 작품접수현황에 대해 공지합니다.
* 총접수인원 670여명
* 시부문    2155편
* 수필부문  488편
좋은 글 보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작가를 꿈꾸시는 예비작가, 좋은 글을 쓰시기 위해 하얀밤으로 지내시는 모든 분들
건필하십시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11/10
분 류 문인협회
ㆍ조회: 722  
제12회 시흥문학상 수상자발표
제 12회 시흥문학상' 전국 공모를 2011년 10월 1일 부터 31일까지 한 달 간 공모하여 성황리에 마감하였습니다. 그동안 시흥문학상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면서 그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총 응모자는 670여명,
 시 부문 2,100여 편, 수필 부문 450여 편 접수
 
심사위원 
 시   부문  박찬일 시인(추계예술대학교 교수). 홍은택 시인(대진대학교 교수)
 수필 부문  오창익 수필가(《創作隨筆》발행인) 최균희 아동문학가(송파문인협회 부회장).
 
그동안 시흥문인협회는 장려상 등 다수의 수상자를 배출해왔으나 올해부터는 시흥문학상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대상 1명과 각 부문 우수상 2명만 선정하기로 '시흥문학상 운영위원회'의 결정이 있었습니다
 

 심사총평

32분의 시 160편이 본심으로 올라왔다. 수준이 고른 작품들을 낸 응모자가 여러 분 있었다. 응모작 중에 1편이 수준급이어도 나머지 작품들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문제는 공력이다. 그리고 내공이다. 내공은 내용과 관계하고 공력은 표현 능력과 관계한다. 대상으로 뽑힌 시 [늘 푸른 응급실]은 내공과 공력 모두에서 수준 위에 올라섰다. “늘 푸른 응급실 / 그곳은 따뜻한 밖이며 서늘한 안이다”에서 누가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수작을 받은 [유형별 연애 지침서]에서는 ‘모던’이 향기를 뿜어냈다. 일상에서 뿜어져나오는 형식이 만만치 않은 인생 역정을 상기하게 한다. [꿈 꾸는 거인] 외 4편 역시 만만치 않은 삶의 역정을 상기하게 하였다. 기계공업이 아닌 오래된 수공업에 의해 단련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선외가 되었다면 두고두고 아쉬워할 빌미를 제공했을 것이다. 선외로 남은 작품들에 대해서 한 마디 하면, 다시 강조하면, 고르지 않은 수준이 문제였다. 그리고 새로움의 부족이었다. 개성적인 제목의 부족, 개성적인 배치의 부족, 개성적인 내용의 부족이었다.

23분의 수필 46편이 본심으로 올랐다. 수필 우수작으로 뽑힌 [똬리]는 사라져가는 우리 삶 속의 생활도구를 소재로 하여 그 생김새, 구실들을 우주와 관련시켜 통찰한 것이 돋보였다. 어머님의 흐트러지지 않은 생활의 중심을 똬리와 연결시키고, 고된 삶을 받쳐준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 압권이었다. 특히 똬리를 어머니의 빛나는 왕관으로 끝을 마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수필 [피아니시모]는 “인생은 합창이다. 합창은 비빔밥이다”라고 본문에서의 표현처럼 더불어 사는 우리네 삶을 합창곡에 견주어 주제화시킨 수작이었다. 
                                                       심사위원장 :  박찬일

                                           심사위원 : 홍은택시인, 오창익 수필가, 최균희 아동문학가 
 당선자 명단


구 분

분 야

접수번호

성 명

제 목

대 상



596

이언지 (안산시 단원구)

늘 푸른 응급실

우수상



583

이면(전남 광양시 )

유형별 연애 지침서



102

김효용 (인천광역시 남동구)

꿈꾸는 거인

수필

 48

장미숙 (서울 송파구)

똬리

수필

 436

남택수 (대구광역시 중구)

피아니시모
 

시상식

일시 : 11월 25일(금) 오후 7시 

장소 : 시흥시 청소년수련관 한울림관<시흥문학 제21집> 출판기념회와 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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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작품

대상 (시)


 

늘푸른 응급실

                                             이언지


 

사람들은 신중한 보폭으로 그곳을 찾는다

푸른 링거병을 든 나무 간호사들은 한결같이 친절하다

피톤치드를 처방하는 의사의 얼굴은 깊이 아파 본 자에게만 보일 것이다

산이 뚜벅뚜벅 내게로 걸어온 순간 먼 슬픔은 시작되었다

하룻밤 사이 한층 다복한 꽃송이를 달고 선 산벚나무 아래

그곳 어디쯤에 흘렸을 내 눈물의 부스러기들을 더듬으며 산벚나무 하얀 꽃들을 올려다본다

제 살로 초록빛 띠를 두른 리기다소나무 옆

길게 팔을 늘어뜨린 산벚나무 하얀 손이 어깨를 건드린다

마주잡은 손의 감촉이 서늘하다

서늘함 속에 따뜻한 미소를 담고 사는 이들의 방

하얀 꽃잎 다섯 장에 서린 심연의 기둥을 들여다본다

사라져 갈 것이다 그 꽃들, 사라져 영원을 돌볼 것이다

나를 괴롭히고 고문하던 모든 것들을 서스펜스라고 하자

그때 점점 가까이 다가오던 노랫소리

홀로 오는 이들은 허리춤에 노래를 달고 오기도 하는데

기댄 사람, 누운 사람, 소리지르는 사람

마른 소나무 거꾸로 매달려 절벽에 의지하듯*

한순간 몸을 열어 귀기울이다 보면 아픈 시간도 금세 지나갈 것이다

늘 푸른 응급실

그곳은 따뜻한 밖이며 서늘한 안이다

처방전을 들고 내려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한 잎 나뭇잎을 닮았다


* 이백 촉도난

시 부문 - 우수상


유형별 연애 지침서


 

                                     이면(임현)
자판기
자판기 커피를 뽑을 땐 누군가 불쑥 내 손을 움켜쥘 것만 같아 허리를 숙이고 세상 가장 좁은 문에 기어들 듯 들여다보지 그러면 거기 작고 하얀, 뜨거운 손과 악수 할 수 있어 누군가의 심장을 녹여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지 몰라 데면데면한 얼굴들 사이에서 홀로 뜨거운, 키―스 들었어? 지금 네 손에서 뛰고 있는 그 박동소리


무엇보다 밀고 당기는 게 중요하죠 무턱대고 들어가려 했다간 벽이 됩니다 이건 원리예요 쉽게 변하지 않아요 열 번 두드려 안 열릴 문 없다지만, 요즘 세상에 어디 가당키나 한가요? 달로 내딛는 첫발처럼, 그래요 지구인을 위한 이벤트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쇼라구요 자존심은 6분의 1 만능열쇠나 맞는 열쇠나 그게 그거 아닌가요? 어쨌든 열어보란 소립니다 노크는 필수 기본부터 지켜요 그런데, 아까부터 왜 자꾸 밀어요? ‘당기시오’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윈도우

정기적인 업데이트 요망

막차

누군가의 내장이 되는 일이란 몰려오는 잠처럼 지루해 버튼같이 불거진 젖꼭지를 붉어질 때까지 누르고 싶어져 따옴표처럼 손을 들고 있어야 할 때도 있지 할 말 따위 그 안에 갇혀 들리지 않아 귀를 숨기고 자는 사람들 풍경이 바뀌어도 자리를 비킬 줄 몰라 동전 같은 무표정을 흔들고 싶어 꿈들이 짤랑짤랑 튀어나와 차창에 엉겨 붙을 거야 덜컹거리는 연애는 멀미가 나 뿌옇게 흐려지는 건 밖이 아니라 네 눈꺼풀이야 나는 온몸이 귀 먹먹한 고막을 뚫듯 밤을 미는, 지루한 숨소리를 듣는 중이지


시 - 우수상

꿈꾸는 거인

김효용

달의 지면을 외눈의 거인이 걷는다 당신의 방까지 이어진 가느다란 진동을 오랜 청취자인 화병이 듣고 있다 수도꼭지가 반쯤 자세를 틀고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감상을 쏟아놓는다 이국의 땅을 돌아온 침묵이 달의 계곡에 쌓이고 있다 들끓는 그 곳을 건너는 거인이 당신의 꿈을 꾸고 있다 길은 달의 뒷면으로 이어져있다 당신이 수도꼭지를 틀고 화병의 물을 가는 사이 달이 몸을 튼다 거인이 심연을 낚아 올린다


 
 

수필부문 - 우수상


 

똬리

장미숙

동그란 중심이 참 옹골지게도 생겼다. 그 작은 몸집으로 온 세상을 떠받쳤으니 어찌 야무지지 않겠는가. 이지러지지도, 모나지도 않은 동글동글 어여쁜 모양새는 맘씨 좋은 시골 아낙 같기도 하다. 소박하지만 단단하기는 또 어떤가. 무엇이든 다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부드럽다.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유연함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힘이다.

융통성은 만물을 소통하게 하는 통로이다. 완고하지 않으면서 품어주는 아름다움이 있었기에 수없이 많은 생들이 그 안에서 시름을 녹이고 위안을 얻었으리라. 그 무엇도 대신해줄 수 없었던 철저한 외로움과 고달픈 육신을 스스로 위무하며 인고의 탑을 쌓은 수많은 여인네들의 한숨이 배어있다.

촘촘한 결 사이사이에 쌓인 설움이 단단한 응어리가 되어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만들었다. 그 중심은 한사람의 몸을 바로세우고, 가까우면서도 때로는 가장 먼 가족의 마음을 잡아주고, 가문(家門)까지 일으켜 세워 한나라를 굳건히 하는데도 한 몫을 했던 것이다. 중심이란 모든 것의 가운데가 아니던가. 중심이 바로서지 않으면 쉬이 흔들리고 흔들리면 무너지기 십상이니 중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기 마련이다. 크든 작든, 잘났든 못났든, 생명이 있든 없든 각자 존재의 의미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렇다면 의미라는 것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사뭇 궁금해지기도 한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사물은 사람에게 좀 더 이롭거나, 좀 더 친근하거나, 좀 더 안전할 때 그 의미가 더해질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의미라는 것도 보는 이들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라고 하면 의미 또한 정해졌다 기 보다는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친정 헛간 모퉁이에 있던 오래된 상자 안에 멈추어버린 시간이 들어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똬리에서 나는 한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동그란 머리에 얹어 물건을 이고 나르는데 편리하도록 만들어진 똬리의 작은 원이 태초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 우주처럼 커다랗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짚으로 엮어 만든 작은 똬리가 가슴속으로 가득 차고 들어온 건 요즘 보기 힘들어진 물건이어서만은 아니었다.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존재의 의미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순식간에 날 과거의 시간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비어있지만 많은 이야기를 빼곡하게 담고 있는 중심 속에는 내 어머니의 동그란 삶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 이모, 고모, 외숙모, 언니 등 옛 시대를 산 여인네들의 삶도 숨어 있었다. 또한 찰박거리는 물동이를 이고 우물가를 종종거리며 다녔던 어릴 적 내 모습도 아른거렸다. 요즘은 민속박물관에 가야 만날 수 있는 똬리에 대한 기억들이 내 안에서 촘촘하게 살아나기 시작했을 때 똬리는 하나의 커다란 중심이 되었다.

요즘처럼 이동기구가 없었던 예전에는 물건을 이고, 지고,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똬리는 물건을 머리에 이고 다닐 때 중심을 잡아주고 완충역할을 해준 생활도구였다. 아무리 크고 무거운 것이라도 힘을 골고루 분산시켜 흔들림 없이 목적지까지 운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게 똬리였다. 하지만 똬리를 단순한 생활도구라고 정의하기엔 그 작은 몸 안에 담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나 무겁다. 여인네들의 애환을 간직하고 있어 그 존재의 의미가 애달픔의 대명사처럼 시리고 아프다. 똬리는 어떤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강인한 여인들의 삶을 대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생활이 어려울수록 삶은 흔들리게 마련이다. 삶이란 희로애락이 서로 교차한다고 하지만 기쁨과 즐거움보다 노여움과 슬픔이 더 많은 게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다. 특히 어려운 시기를 살았던 여인들의 삶은 고단함과 슬픔의 나날이었다. 가난과 시집살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굴레였고, 거기에 병치레를 하는 가족이라도 있으면 깊은 나락으로 순식간에 떨어지는 게 여인네의 삶이었다.

어머니의 삶도 그러했다. 순하고 손끝이 야무졌던 어머니는 열아홉에 한 살 아래였던 아버지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어머니는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아버지에게는 작은집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부모님이나 다름없었던 것, 작은집 식구까지 열세명이 한집에서 살았으니 어머니의 생활이 어땠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종가 집 종부인데도 대를 이을 아들을 일찍 낳지 못한 건 모두가 어머니 탓이었고, 그나마 삼년 만에 낳은 자식이 딸이었으니 그 실망이 오죽 했을까. 줄줄이 딸 셋을 낳는 동안 설움은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 눈물이 되고 한숨이 되었다. 눈물마저도 밖으로 흘릴 수 없어 어머니는 일찌감치 가슴에 깊은 샘을 팠노라고 했다. 그 샘이 종래에는 한의 역사가 되어 자식들의 가슴까지 적시곤 했다.

종가 집 종부의 삶은 고단했고 어머니의 머리에 얹힌 똬리는 늘 어머니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논밭으로, 샘으로, 장으로 이고 날라야 했던 물건들은 얼마나 많았으며 흔들리고 위태로웠던 마음을 다잡아야 했던 날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베를 짜느라 잠을 못자 눈앞이 흐릿해질 때면 행여 물동이를 깰까봐 똬리에 온 힘을 모았노라고 했다. 물동이보다 못한 당신의 운명을 탓하며 똬리 끈을 문 입술이 부르트도록 어머니는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콩쥐의 밑 빠진 독처럼 차오르지 않는 물두멍을 원망하며 샘으로 종종걸음을 쳤을 어머니에게 똬리는 고된 삶을 고스란히 받쳐준 하나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고통의 순간들이 때로는 삶을 지탱해주는 약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어머니는 몸소 보여주었다. 아버지마저 병으로 어머니의 짐이 되어버렸을 때 어머니는 악착같이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신 듯 똬리위에 비릿한 생선대야를 이고 새벽 장을 다니셨다. 당신의 몸무게만큼이나 무거웠던 대야는 어머니의 삶을 짓눌렀지만 어머니는 묵묵히 똬리 끈을 입에 물고 먼 길을 떠나셨다. 비린내와 땀 냄새가 깊이 배어든 똬리는 운명에 더 이상 질수 없는 어머니의 자존심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가 머리에서 똬리를 내려놓은 게 언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머니는 영원히 당신의 생에서 똬리를 내려놓지 못하셨다. 언젠가 어머니머리에 파마를 해드리다가 맞닥뜨린 동그란 상처는 세월이 어머니께 바친 핏빛 훈장이었다. 그날이후 어머니의 훈장은 또한 내 삶의 좌우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자칫 모든 것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었을 물리적인 힘과의 균형을 똬리가 잡아줬듯이 매번 위태롭게 흔들리던 집안을 바로잡은 건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이었다. 아버지가 병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도, 자식들이 빗나가지 않고 자기 몫을 하고 있는 것도, 집안대소사가 어머니 입김에 의해 좌우되는 것도 모두 어머니가 중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덕분이다. 말보다 몸으로 보여준 어머니의 철학에는 계산보다 덤이 먼저였고, 채움보다 비움이 먼저였던 것이다.

똬리는 이제 시간을 움켜쥐고 어둠속으로 침잠(沈潛)할 것이다. 이미 세상은 똬리의 존재와 상관없이 변했고 또 변해갈 것이기에……. 하지만 누군가는 기억 하리. 변한다는 건 겉으로 드러난 사물의 모습일 뿐, 그 근본은 깊은 침묵 속에 가라앉아 만물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것을……. 태우면 한줌 재에 불과할 똬리가 오늘 이 시간 내게는 왕관처럼 빛나 보인다.



 


 

수필 부문- 우수상

피아니시모

남택수

무대 위로 조명이 쏟아졌다. 갑자기 눈이 부시며 청중석이 어두워졌다. 조금 지나자 앞좌석의 얼굴들이 차츰 희미하게 나타났다. 무대 왼쪽에서 탑라이트를 받으며 지휘자와 반주자가 들어왔다. 객석에서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다. 지휘자는 까만 연미복을, 반주자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다. 관중을 향해 깊숙이 인사를 마친 지휘자가 뒤로 돌아서서 웃었다. 연주자들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억지로 웃었지만, 사실은 지휘자가 더 긴장하는 것 같았다. 무대에 입장하여 파트별로 줄을 서고 첫 곡을 연주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어찌나 긴지 조명을 받는 정수리가 뜨끈뜨끈하고 목덜미에 진땀이 배어났다.

지휘자를 향해 몸을 돌리고 다리를 약간 벌려 편한 자세를 취했다. 피아노의 첫 음이 울리고 지휘자가 가볍게 손을 움직였다. 첫 곡은 무반주 연주이다. 베이스와 바리톤 파트가 아주 여리게 두 마디를 먼저 부르면 테너가 따라 나와 화음을 붙였다. 객석에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귀와 눈을 어둠 건너편의 무대를 향해 집중하고 있다. 연주자는 내 목소리와 함께 옆 사람과 조금 멀리서 부르는 다른 파트의 소리도 함께 들어야 한다. 작고 여린 목소리가 모이고 섞여 화음을 이뤄 청중에게 전달된다. 높은 소리로 힘차게 부르는 합창이 웅장하고 큰 감동을 줄 수도 있지만, 청중은 작은 소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연주자 또한 작고 여린 음으로 나타내기가 훨씬 어렵고 까다롭다.

오늘은 정기연주회 날이다. 두 해 동안 연습한 결과를 발표하는 날이다. 100명이 넘는 남자들은 매주 월요일 저녁 함께 연습하였다. 단원들은 직업과 직장이 제각각이며 사는 동네도 서로 다르다. 여든이 넘은 노익장부터 40대의 장년도 있다. 뒷줄에는 키가 큰사람이 앞줄에는 작은 사람이 앉았다. 목소리의 높이와 색깔도 가지각색이다. 높고 뾰족한 소리, 낮고 굵직한 소리, 느끼하게 기름진 소리, 밝지만 튀는 소리도 있다. 또 이들은 살아온 길도 같지 않다. 대개 사회에서 제법 영향력을 행사하며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서로 다르고 개성 있는 사람들이지만 서로 양보하며 이웃을 돕는 자세를 배우고 체험한다. 합창은 성부聲部간 적당한 균형과 조화가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합창은 비빔밥과도 같다. 고슬고슬한 하얀 쌀밥 위에 콩나물무침, 무채, 비름나물, 고사리, 호박 양파 버섯볶음 등의 들나물을 색깔 맞춰 골고루 얹고, 다진 쇠고기와 달걀반숙에 고추장, 참기름을 살짝 둘러 고루고루 쓱쓱 비비면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르도록 맛있는 비빔밥이 된다. 참기름이 고소하다고 너무 많이 부으면 느끼해서 안 되고, 고추 값이 비싸다고 고추장을 듬뿍 떠 넣으면 매워서 먹지 못한다. 귀하고 비싼 것일수록 꼭 필요한 만큼만 넣어야 제 맛이 난다. 특히 향이 높은 재료는 더욱 그러하다. 합창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 파트의 인원이 두드러지게 많거나 적으면 균형이 깨어지고, 성량이 풍부하고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난 한 사람이 제소리를 끝까지 올린다면 소음騷音에 불과하다. 내 소리는 다른 사람의 소리와 반드시 어울려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높여 크게 불러야 할 부분은 몇 소절뿐이다.

초등학교 시절 음악 시간이 있었다. 전교에 하나밖에 없는 풍금을 쉬는 시간에 다른 교실에서 옮겨 왔다. 개미가 죽은 풍뎅이를 끌고 오듯 여남은 놈들이 풍금의 앞뒤 양쪽에 빽빽이 붙어 까치발로 들어야 했다. 손가락이 굵은 남자 선생님께서 두 발로 페달을 밟으며 풍금을 탔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반주에 맞춰 목청이 터지도록 노래를 불렀다. 그저 큰소리로 씩씩하게 부르면 되는 줄 알았다. 피아니시모(pp)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훈련소에서 군가는 무조건 크게 불러야 했다. 휴식시간에도 소대별 군가시합이 벌어졌다. 음정과 박자는 무시하고 목에 핏줄이 서도록 악을 썼다. 주먹을 불끈 쥐고 위아래로 흔들면서, 양손을 허리에 얹고 상체를 좌우로 반동시키면서 군가를 불렀다. 살벌한 감정의 표현이었다. 셈과 여림 가운데 오직 포르티시모(ff)만 존재하였다.

음악 실력이 뛰어나고 마음씨도 너그러운 지휘자는 극히 드물다. 오늘의 지휘자는 명문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음악대학 교수로 가르치다가 정년퇴직한 음악가이다. 가곡과 성가를 수십 곡 창작하였으며 그 가운데 널리 알려진 작품도 많다. 자신의 기대만큼 단원들이 따라주지 못하면 그만 신경질이 발동한다. 베이스파트가 연습할 때 테너파트가 떠들면 음정이 불안한 베이스 대신에 테너가 혼이 난다. 연습 중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은 켜지 못하게 하고, 한 곡을 연습하는 동안 수십 번을 끊고 다시 시키니 여간한 인내심으로는 견디기 어렵다. 단원 모두의 마음이 하나 되고 소리가 하나 되기까지 수백 번의 반복연습이 필요했다. 지휘자가 가장 강조하여 부탁하는 말은 ‘제발 자기 소리를 낮추고 남의 소리에 맞추어 감정을 조절하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곡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소프라노와 알토의 현란한 악상에 바리톤 베이스는 단조로우면서도 묵직하게 이를 받쳐 화음을 맞추는 형식이다. 피아노를 향했던 지휘자의 손끝이 합창단으로 돌아오면서 피아니시모를 요구한다. 네 파트가 모두 같은 음으로 시작하여 둘째 마디에서 알토와 베이스가 가사를 붙이고, 나머지 두 파트는 계속 허밍으로 진행되었다. 긴 머리의 예쁜 소녀가 들판을 지나 냇물을 건너고 자갈밭을 걷다가 숲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바람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으로 평화롭던 숲 속에 갑자기 사나운 짐승이 튀어나왔다. 짐승에게 쫓기는 소녀의 걸음은 빨라지고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무서운 짐승이 달려들어 넘어지는 순간 쾅하는 총소리에 짐승은 멀리 달아나고 주인공은 무사히 구출되었다. 이 순간 합창은 피아니시모에서 갑자기 포르티시모로 전환되었다. 균형과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가운데 다이나믹스 표현이 극대화되는 효과이다. 객석에서의 놀람과 감탄이 무대까지 밀려왔다.

지금까지 나의 삶은 피아니시모로 진행되었다. 어려서는 조부모가 계신 집안에서 어른의 말씀을 무조건 순종하였다. 자라면서 형의 그늘에 가려 항상 2인자에 불과하였고, 초등학교에서는 모범생이란 굴레에 갇혀 행동의 제약을 받았다. 도시의 상급학교로 진학하여 촌닭을 면하지 못하였으며, 군대에서는 졸병으로 억압을 받았다. 직장에서 기세부림은 언감생심이었고, 가장으로 자식 뒷바라지하다가 허리가 휘었다. 이제 할 일을 어지간히 했나 싶으니 팔다리가 저리고 체력이 고갈되어 마누라의 힐난에 맞서기도 버겁다.

인생은 합창이다. 합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각자의 목소리를 조절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내 주장보다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이웃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항상 조심하며 낮춰 살다 보면 언젠가는 큰 소리를 낼 날이 있게 마련이다. 합창이 피아니시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절정에서 포르티시모로 치닫는 것처럼.


 


평생학습센터 약도
주소 : 경기도 시흥시 은행로 179 (대야동 571-2)
TEL : 031)310-7800~25



시흥문학상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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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흥예총
작성일 2013/11/12
분 류 문인협회
ㆍ조회: 237  
‘제14회 시흥문학상’ 당선작 발표
시흥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수준 높은 창작문화의 활성화와 한국 문학을 짊어질 시․수필 부문의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을 위해 ‘제14회 시흥문학상’ 전국공모를 실시했다. 2013년 10월 1일 부터 31일까지 한 달 간 공모한 결과 응모된 작품 수는 국내를 비롯하여 해외까지 총 400여명이 응모하여 시부문 1520편 수필부문 475편이다. 이 중에 예비심사에서 시부문, 145편과 수필 60편의 작품을 본 심사에 올려 4명의 심사위원이 심사를 하고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알려드리겠습니다.

구 분 부야 접수번호 성 명(주소) 제 목
대 상 92 박윤근 - 전북 익산시 부송동 「안녕, 피쉬맨」외 4편
우수상 43 김유섭 - 경남 진주시 서장대로 「너에게 나라는 질량」외 4편
수필 15 김응숙 - 경남 양산시 소주동 「백열전구」외 1편
수필 19 박경대 - 대구시 남구 대명6동 「까치밥」외 1편

< 심사위원 프로필 >
 
시부문
손택수(孫宅洙)시인
1970년 전남 담양출생, 부산대학교 대학원 현대시 석사.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
저서, 시집-『호랑이 발자국』(창비), 『목련전차』(창비), 『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 산문집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와 『교실 밖으로 걸어나온 시』(실천문학사), 시해설집 『선천성 그리움』등. 수상- 제22회 신동엽창작상, 2008 오늘의 젊은예술가상(문학부문), 제 5회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제 3회 임화문학예술상 등. 현재- 중앙대, 한남대 등에서 현대시와 아동문학 강의, 실천문학사 주간을 거쳐 대표이사.

 정끝별 (鄭끝별)시인
1964년 나주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국문학박사
1988년 『문학사상』시 당선 1994년 『동아일보』신춘문예 평론 당선
저서-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등, 그 외 평론집 시론집이 여러 권 있음. 수상- 2008년 제23회 소월시문학상, 2004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유심작품상.  현재 명지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최성각소설가
1955년 강릉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및 동 예술대학원 졸업.
1976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198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당선으로 등단. 저서, 소설집- 『잠자는 불』, 『택시 드라이버』, 『부용산』, 『사막의 우물 파는 인부』 등, 생태소설집-『거위, 맞다와 무답이』, 『쫓기는 새』 등. 또한 에세이- 『달려라 냇물아』, 『날아라 새들아』 등, 생테서평집-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도 있음.
중앙대 명지대 강사, 건양대 겸임교수를 역임, 수상- 제2회 가천환경문학상, 제30회 요산문학상. 현재 풀꽃평화연구소 소장.

이순원소설가
1958년 강릉출생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소> 당선.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 수상,
저서, 창작집- 『그 여름의 꽃게』, 『얼굴』, 『말을 찾아서』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첫눈』 등,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수색 그 물빛무늬』, 『아들과 함께 걷는 길』 『19세』『나무』- 1996년 제27회 동인문학상, 1997년 제42회 현대문학상, 2000년 제1회 이효석문학상, 2000년 제 7회 한무숙문학상, 2006년 제1회 허균문학작가상, 2006년 제2회 남촌문학상. 등이 있다.


시흥문학상 심사평 - 손택수(孫宅洙)시인 / 정끝별 (鄭끝별)시인 / 최성각소설가 / 이순원소설가
올해로 14회를 맞는 ‘시흥문학상’에는 총 시 부문에 210여 분의 작품 1520편과 수필 부문에 197분의 작품 475편이 응모되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본심 대상작들은 시 29분, 수필 29분의 작품이었다. 시의 경우 시적 발상, 호흡, 이미지 구사, 적절한 잠언, 그리고 시의 길이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작품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비슷비슷했다. 낯익은 서정과 풍경과 구조에 기대고 있는 작품들이 많았고, 작품의 완성도의 측면에서는 딱히 흠 잡을 데는 없으나 작품의 열도(熱度) 혹은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작품은 드물었다. 수필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절한 묘사와 인용, 그리고 회상과 현재적 성찰의 적절한 안배는 안전하되 새롭지는 않았다.

특히 이번 심사는 난항이었다. 시와 수필 모두, 대상으로 선정한 작품들을 선자 스스로가 번복해야 했다. 선정 작품들에 대한 표절 및 기발표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의 경우는 표절로 판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시적 소재, 시어 사용, 이미지 전개, 구조의 측면에서 기성 시인의 작품과 너무 흡사했다. 수필의 경우도 전형적인 당선용 기획 작품(!)이라는 혐의가 짙었다. 둘 다 자격 미달로 탈락시킬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했던 이 심사과정을 굳이 공개하는 것은, 글 쓰는 우리 모두에게 경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우리가 왜 글을 쓰는지, 글을 쓴다는 게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그 초발심과 진정성을 다시 새겨봐야 할 것이다.

대상으로 시 부문의 ‘안녕, 피시맨’ 외 4편과 ‘입술’외 4편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숙고 끝에 선자들은 ‘안녕, 피시맨’ 외 4편의 손을 들어주었다. 완성도보다는 열도(熱度)를, 안전보다는 가능성을, 감각보다는 사유를, 이미지의 조탁(彫琢)보다는 통찰의 음역을 더 높이 평가했던 까닭이다. 또 다른 시의 우수작으로 뽑힌 ‘너에게 나라는 질량’외 4편은 요즘 시 답지 않게 낮고 소박한 목소리를 가졌다. 그래서 언뜻 보면 지나치기 십상인 작품이다. 그러나 선자들은 그 겸손함과 진정성을 높게 평가했다. 나직한 목소리로 거느리고 있는 시의 깊이가 결코 녹록치만은 않다. 수상작의 시적 개성들이 각각 다르기에, 선정 순위와 무관하게 시를 감상하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수필 우수작으로 뽑은 ‘백열전구’는 가난하던 시절 백열전구에 얽힌 추억과 함께 우리 주위에 따뜻한 것들이 자꾸만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린 작품으로, 무엇보다 문장이 반듯하며 어떤 사물을 통해 지난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다. 이제 정부시책에 의해 백열전구는 사라지더라도 이 세상의 다른 따뜻한 부화기에서 따뜻한 불빛이 쏟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또 다른 우수작으로 뽑은 ‘까치밥’은 감나무에 매달려 있는 홍시 이야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판기에서 자신의 커피만 뽑는 것이 아니라 혹 동전이 없을지도 모를 다음 사람을 위해, 자기 주머니의 잔돈을 전부 자판기에 넣어두고 가는 할머니를 통해 사랑나눔 실천으로서의 까치밥 이야기를 한다. 두 작품 다 따뜻함과 건강함이 수필문학의 향기와 함께 느껴진다.


대상
시 부문
안녕, 피쉬맨/ 박윤근
 
이 도심 주위로는 굵직한 어군이 형성돼 있다
수심의 저점을 읽은 누리꾼
솟아오르는 작은 고기, 민감한 입질도 놓치지 않는다
파도의 중간쯤에 구겨 앉은 남자 주위로
빠른 어족의 등락으로 물결이 친다
사내의 손이 마우스에 푸른 등을 켠 채
해저의 기억 안팎을 오가며 포인트를 찾지만
몇 시간 째 미끼만 갈아 끼우고 있다
밀물과 함께 고기 떼가 몰려든 온 객장은
상한가를 치고 빠져나갔지만
객장의 전광판에는 잡히지 않는다
불안해지는 일기예보 속
장세의 흐름이 하락 쪽으로 기울자
저울 위 생선처럼 저 남자
비릿한 땀 냄새를 풍기며 기우뚱거린다
팽팽하던 낚싯줄이 수면 아래로 풀려간다
증시 막장, 깜박이던 전광판 불빛도 꺼지자
어둠이 남자의 의자에 해초처럼 감긴다
저 깊은 바닷속으로 끌려가고 있다
오랜 시간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통발 하나
파닥이는 고기 한 마리 입에 문다
이곳에서는 철 지난 바다의 풍경을 묻지 않듯
도시에서 떨어져 나간 버그*처럼
사라진 남자의 행방에 대해 아무도 묻지 않는다

 *버그: 시스템 오동작의 원인이 되는 프로그램의 잘못.


시 부문 우수
너에게 나라는 질량/김유섭
 
너를 만날 때마다
무게의 눈금이 보고 싶지만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을 따라 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단다
이곳이 아름다운 별이라 하더라도
확신 없이 떠돌아야 하는 궤도
함께 웃고 떠들고 집으로 돌아와 백지처럼 증발해버린
너를 마주하게 되는 날들이 눈부셔
나는 자꾸만 허공 쪽으로 고개를 꺾고
허리마저 비트는 버릇이 생겼단다
가슴을 열어 펼쳐 보이는 그 짓
한 줌 부스러기 같아서
다가가 덥석 껴안았던 그 어색한 눈빛
나는 형틀에 묶인 얼굴로
내동댕이쳐져서 흘러 다닌단다
얼마나 자주 낯선 질량 속으로
나를 던져 넣어야 했던지
한 치 오차도 없는 저울의 계산법으로
너는 휘파람 불며
이 광활한 세계를 잘도 오가는구나

 
수필부문 우수
백열전구 /김응숙
 
 조심조심 책상 맨 아래 서랍을 열자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온다. 동시에 냉랭한 사무실의 공기를 밀어내는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인큐베이터처럼 환하고 따뜻한 서랍 속에는 탁구공보다도 작은 오골계 알들이 한가득 들어 있다. 서랍 위에 달려 있는 백열전구는 어미닭인양 끊임없이 알들을 향해 밝고 따스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이미 부화하기 시작한 알들의 내막에 생긴 실핏줄들이 환한 불빛에 힘줄처럼 도드라져 보인다. 그리고 서랍 깊숙이 갓 깨어난 병아리 한 마리가 체액에 털이 흠뻑 젖은 체 삐약삐약 힘차게 울어댄다.
 지난겨울 친구가 책상 서랍을 이용해 병아리를 부화시키겠다는 계획을 이야기 했을 때 나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간혹 화면이나 사진을 통해서 어미닭이 알을 품고 있는 장면을 보기는 했지만 인공 부화기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책상 서랍에서 병아리를 부화시키겠다니. 하지만 그 착상의 기발함에는 절로 탄성이 나왔다. 친구는 병아리 부화에 관한 온갖 정보를 수집해 서랍 부화기를 완성했다. 열을 감지하는 온도계와 그에 따라 작동하는 타이머, 알을 굴려 주는 장치 등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부화기의 중요한 장치는 백열 전구였다.
 백열전구는 이름 그대로 열을 내는 전구이다. 텅스텐으로 된 필라멘트에 전기가 흐르면 온도복사에 의해 대부분의 에너지는 열로 바뀌고, 단지 5% 남짓만이 빛을 낸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열로 인해 불빛이 노르스름해 지는 것이란다. 다시 말하자면 백열전구의 빛은 밝기 뿐 만이 아니라 따뜻함을 품은 빛인 것이다. 어미닭이 제 품의 따뜻함으로 잠든 알을 깨웠듯이 백열전구의 따뜻한 빛이 생명을 잉태시키는 것이리라.
 서랍에서 나오는 따뜻하고 노란 백열전구의 빛이 문득 나를 사십여 년 전으로 데리고 간다. 나지막한 슬레이트 지붕 아래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들창이 하나 있었다.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에 면해 있어서 창에는 항상 먼지가 뽀얗게 앉아있었다. 그 창은 밖을 내다보기에는 흐리기도 하거니와 너무 작았다. 게다가 들창이라 바람이 불면 받혀놓은 작대기가 굴러 떨어지면서 저절로 닫히곤 했다. 한 낮에도 반쯤 감긴 졸린 눈으로 희뿌연 잔광만을 여과하던 창이 그 존재의 이유를 밝히는 것은 밤이 되어서였다. 그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문패도 없는 길가 단칸방을 집으로 인식하게 해주는 유일한 표식이었다.
 당시 나는 야간 중학교 학생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밤 열시가 가까워져 마지막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줄달음치기도 일쑤였다. 그 시절 부산의 변두리 지역이었으니 가로등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버스에서 내려 그나마 알록달록한 불빛이 내비치는 시장거리를 벗어나면 달빛만이 발 앞을 비추어주었다. 시장 뒤편 주택가를 거쳐 보리밭을 지나고, 언덕으로 난 흙길 신작로를 한참이나 올라가야 슬레이트 지붕들이 이마를 맞대고 있는 동네가 보였다. 그 중 불 켜진 들창이 보이는 맨 앞집이 우리 집이었다.
그 불빛은 언덕을 반쯤 올라갔을 때부터 별빛처럼 보이다가 언덕 위에 올라서고 나면 방금 뜬 달처럼 나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노르스름하고 따뜻한 불빛이었다. 그제야 괜히 총총거리던 걸음이 느긋해지고 어둠에 눌려있던 가슴도 펴지곤 했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가난한 동네였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밤이 되면 전기세 한 푼이 아까워 책을 읽는 자식의 머리 위 전등도 꺼버렸다. 어둠보다 더 어둡게 가라앉은 동네에서 오직 우리 집 들창만이 마치 등대처럼 노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어두운 밤길을 더듬으며 돌아올 딸을 위해 어머니는 온 식구가 잠든 뒤에도 전등을 끄지 않으셨던 것이다. 월말마다 집주인으로부터 억울한 전기세 풀이를 당할 것을 뻔히 알고 계시면서도 말이다.
 조심조심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얼굴에 침과 콧물이 얼룩덜룩 묻은 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깊은 꿈나라에 들어 있었다. 하루치의 양식과 맞바꾼 노동으로 피곤하신 아버지와 어머니도 가늘게 코를 골며 잠들어 계셨다. 식구들은 따뜻하고 노란 백열전구 불빛 아래서 마치 한 둥지의 새들처럼 그렇게 몸을 부대끼며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백열전구의 생산과 사용이 금지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형광등이나 LED등처럼 밝고 효율이 높은 등을 사용해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정부시책인가 보았다. 수긍은 가지만 왠지 마음이 쓸쓸해진다.
 주위에서 따뜻한 것들이 자꾸만 사라져가는 것 같다. 털신, 벙어리장갑, 군고구마, 삶은 계란, 난로, 그 위의 도시락, 아궁이, 따뜻한 음색의 LP판, 그리고 백열전구까지. 무엇이든 가까이 두면 닮기 마련이다. 예전 그 어렵고 궁핍했던 시절에도 이런 것들이 곁에 있어서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울어대던 병아리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사이 알 하나에 가는 금이 그어진다. 병아리들의 부화가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백열전구의 따뜻한 불빛이 노랗게 새어나오던 들창이 있는, 그 아래 서로서로 머리를 맞대고 곤한 잠을 자던 작은 단칸방이 나와 동생들의 부화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백열전구의 따뜻한 불빛 아래서 저녁밥을 먹고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나갈 꿈을 꾸었었다. 그 불빛 아래에서 머리를 굴리고 머리가 커지면서 나는 부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백열전구는 사라지더라도 세상의 또 다른 많은 부화기들의 등에서 언제나 따뜻한 불빛이 쏟아지기를 바래본다.


수필부문 우수
까치밥 /박경대
  
 자판기에는 잔돈 몇 개가 들어있었다. 지루하던 수업이 끝나자 따뜻한 커피 생각이 간절하여 동전을 찾던 중이었다. 잔액이 남아 있다는 표시를 보자 웬 횡재인가 싶어 기분이 좋아졌다. 버튼을 누르는데 슬며시 웃음이 났다. 얼마 전에도 돈이 남아있어 한 잔 먹었던 기억 때문이다.
 한 달에 두 번 교리를 공부하는 불교모임에 연세가 높은 어르신이 많이 계신다. 아마 어느 분이 커피를 마시고 거스름돈은 깜빡 잊어버리신 것 같았다. 한 잔에 백 원밖에 하지 않지만 어쨌든 공짜 커피여서인지 맛이 더 좋은 것 같았다. 잔돈은 나처럼 운 좋은 누군가가 뽑아 먹으라고 까치밥처럼 남겨두고 왔다.
 며칠 전, 교외로 생수를 받으려갔다가 빨갛게 물들어가는 감나무를 보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달려있는 감을 보자 문득 가까이에 있는 시골집이 생각났다. 차로 불과 십 여분 걸리는 가까운 곳이기에 생수 통을 채우고 들러 보았다.
스산한 가을 햇볕 때문인지 집은 더욱 쓸쓸하게 보였다. 외로워 보이는 집은 나를 본 척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근처를 지나는 일이 있어야 휑하니 둘러보고 가는 주인이 섭섭했으리라. 애정을 가지고 돌봐주지 않기에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감이 익을 무렵이면 한 번쯤은 꼭 들린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홍시를 몇 년 전 우연히 따먹어 본 뒤론 달콤하고 쫀득한 맛에 푹 빠지고 말았다. 예전에 어르신들이 홍시를 좋아하시기에 연세가 들면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이제 나도 중년이 된 모양이다. 그렇다고 감 농사에 힘을 쓰는 것은 아니다. 거실의 화초에도 물 한 번 주지 않는 성격이라 나무를 돌본다는 것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을에 감이 익으면 몇 상자 따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감나무는 일 년에 네 번 정도 농약을 쳐준다고 한다. 그러나 장비도 없거니와 일부러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시골집을 장만한 이후 10여 년 동안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절반가량은 검은 점이 생기는 병으로 썩어 버리지만 먹을 만큼은 충분하여 병충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평상에 앉아 올려다보니 가지마다 빨간 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그것들은 잠시나마 허전했던 가슴을 꽉 채워주는 듯했다. 언제 또 오겠나 하는 생각에 감을 따기 시작했다. 두어 시간을 따고 보니 큰 물통에 가득하였다.  괜찮은 것을 골라보니 세 접 가량 되었다. 이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높이 달려있는 나머지는 까치밥으로 남겨두었다.
 다음날, 가족이 먹을 것은 떼어놓고 나머지는 다섯 개의 작은 상자에 담았다. 주위 분들에게 맛이나 보라고 보낼 참이었다. 옆에 있던 아내가 작년의 홍시가 아직 많이 남았으니 반 정도는 더 나눠주자고 하였다. 내가 보기에도  많은 것 같았으나 힘들여 딴 것이 아까워 그냥 나의 생각대로 나누어 주고 말았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시큼한 냄새가 나기에 어디에서 이런 냄새가 나는가하고 코를 킁킁대며 찾아보니 골방의 붙박이장에서 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뭔가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문을 열어보니 냄새는 감 상자에서 나고 있었다. 삭히는 약을 넣고 봉하여 두었는데, 꺼내어야 할 날짜가 지나있었다. 그러나 날짜가 지났다고 섞는 냄새가 날리는 없었다.
 불안한 심정을 억누르며 상자를 열어보니 절반 가까이 썩어가고 있었다.  놀라서 살펴보던 중 검은 점이 있는 감을 버리지 못하고 몇 개 넣었던 기억이 났다. 그 서너 개의 감이 삼사십 개를 상하게 만든 것이었다.
 썩은 감은 정원 구석에 파묻었다. 검은 점이 있는 것은 아깝더라도 넣지 말고 성한 감도 이웃에게 더 나누어 주자는 아내의 말이 감을 묻고 있던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엊저녁, 교리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갈려던 참이었다. 신발을 찾으면서 보니 할머니 한 분이 자판기에 여러 개의 동전을 넣고 계셨다. 커피를 드시려나보다 하는 순간 할머니는 그냥 나가셨다. 현관에서 살펴봐도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마침 관리실 근무자가 들어왔다. 관리인에게 방금 나가신 할머니가 돈을 넣고는 깜박하고 가셨다는 말을 해주었다. 다급하게 말하는 나를 보며 그는 빙긋이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 할머니는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실 때 항상 주머니의 잔돈을 몽땅 자판기에 넣어놓고 갑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큰 망치로 한방 맞은 듯 머릿속이 ‘쿵’ 하고 울려왔다. 공양과 보시에 관한 불법교리를 수업시간마다 듣고 있지만 실천 하지 않는 나와 달리 할머니는 뭇사람을 위한 사랑 나눔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누가 깜빡하고 잔돈을 두고 갔다며 웃으며 커피를 뽑아먹었던 나 자신을 생각해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무에 남겨두는 과일을 까치밥이라고 한다. 배고픈 까치나 날짐승들이 먹으라는 것이다. 먹을 게 궁하던 옛날에도 까치밥을 남겨두는 선인의 심중에는 욕심을 줄여 세상의 모든 생명들과 사랑을 나누라는 뜻이 담겨져 있으리라.
 얼마 전, 책에서 본 교리가 생각났다. ‘바람이 없는 보시, 남을 위하여 개천에 다리를 놓는 공덕, 목마른 사람을 위하여 샘을 파는 공덕 등 덕 쌓는 일은 셀 수 없이 많다.’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의 파동이 느껴졌다.
 ‘그래, 그 많은 복 짓는 일 중에 커피공양 또한 없겠는가.’
 무겁게 느껴지던 호주머니속의 동전들을 모두 털어 자판기에 넣고 돌아서자 집을 향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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