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부산 가톨릭 문예 작품 공모
부 문
시, 시조, 동시(3편 이상),
수필, 콩트, 신앙 체험, 동화(20매 내외),
소설(70매 내외) - 200자 원고지 기준
시 상
최우수상 1명 - 100만원
우수상 2명 - 30만원
가작 및 입선 0명 - 부상
마 감11월 6일(일)
접 수 (613-816) 부산 수영구 남천1동 70-4 천주교부산교구 홍보전산실
이 메 일mun2011@catp.kr
유의사항 이름(세례명), 본당, 전화번호, 주소, 응모부문 반드시 기입
문 의051-629-8750(홍보전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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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제18회 가톨릭문예 수필 우수상 수상작 (자신에게 강해지기 위하여 - 고창표 안셀모)
* 2008년 제20회 부산가톨릭문예공모전 가작:
불만을 긁다
최윤희
삶은 간단한 몇 가지를 요구한다
나는 가난조차 벅차
뭔가 다른 꿈을 꾸지만
소화 안 되는 알갱이들이 몰려나와
늘 등이 가렵다
나 하나쯤 내 것인 줄 알았으나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이 등 뒤에 있었음을
제아무리 잊었다 해도
불만은 몹시 꿈틀대고
손쓸 수 없는 오지
닿을 수 없는 한 뼘 뒤
손톱을 세워 빡 빡 긁고 싶다
검은 피. 활화산처럼 터지도록 * 2003년 제15회 부산가톨릭문예공모전 소설 가작:(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id=won510&kkk=4)
박 신부의 편지
김 창 원(안토니오)
1. 새벽 등산길
하루의 건강을 여는 새벽 등산 길, 흙을 밟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푸른 숲 속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여러 사람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기쁨도 있다. 그분들을 하루도 안보면 안부가 궁금해진다.
진돗개를 끌고 오는 견 박사! 개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하여 개 박사로 통했으나 품위를 생각해서 견 박사라고 부르고 있다. 부인은 가톨릭 신자이다. 견 박사는 직장의 퇴근 시간이 늦어서 신앙 생활을 못하고 있다는 변명을 한다.
공구박사, 공구 상을 하는 부인인데 일요일이면 남편을 따라 백두대간을 종주 하는 등산 멤버이기도 하다. 성당에 가자고 하면 발에 역마살이 끼어서 일요일이면 산신령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엄살을 떤다. 초하루 보름에는 불공을 드리러 절에 가는 알뜰 주부다.
보험박사, 보험회사 중견간부다. 지체장애아들을 둔 마음이 아픈 어머니로 성당 교리 반에 나가고 있는 예비신자다.
약 박사, 약국을 경영하는 약사인데 약국에는 각종 영양제를 비롯하여 보약, 드링크제 등 좋은 약이 많을 터인데, 새벽 등산을 거르는 날이 없다. 약사인 그가 등산만큼 좋은 보약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도심의 야산이야말로 시멘트벽에 가로막혀 날로 심각한 공해에 시달리고 있는 도시민에게는 우리 집 뒤뜰 같은 포근함이 있고 산삼 녹용과도 같은 보약을 제공해 주는 보고라 하겠다.
하루종일 태양 에너지를 받아 뿜어 나오는 숲 속의 자양분은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황토방에 비길 수 있겠는가? 아침 등산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루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곳이라 하겠다.
체육공원에는 이른 새벽부터 저마다 익힌 체조로 체력단련을 하고 있으며 배드민턴 장에는 아침공기를 가르며 셔틀콕이 날고 있다. 또한 셋만 모이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다들 일가견이 있는 박사들이다.
알 박사, 50대 후반이지만 젊은이 못지 않은 단단한 체구로 하루도 산을 거르는 날이 없다. 젊은 시절에는 택시기사로, 건축회사 직원으로, 지금은 규모는 작으나 알뜰하게 꾸려가고 있는 자영업체의 경영주다. 아는 것이 많다고 하여 붙은 별명인데 주식 시세에서 인생문제에 이르기까지 척척박사다. 자연과 호흡을 같이 하는 새벽등산길에도 특종뉴스를 놓칠 수 없다며 소형라디오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다.
박 신부, 유일하게 박사가 아닌 박 신부로 통하기도 한다. 마른 체구에 희끗희끗한 머리, 단정한 용모, 박 신부는 예순 아홉의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 배드민턴 멤버 중 연장자이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배드민턴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친절한 강사가 되어주기도 하고, 고민이 있는 사람에게는 인생상담자의 역할도 마다하지 안는다. 그래서 그는 배드민턴 멤버의 회장이며 가까운 이들은 그를 박 신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박 신부도 알 박사를 만나기만 하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말대꾸를 했다가는 그의 해박한 지식으로 끝없는 인생 상담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공자, 맹자, 석가, 예수 등 종교 분야에는 더욱 열성적이다. 끝없는 진리의 세계, 깨달음을 지향하는 그의 노력은 눈물겹도록 진지하다.
박 회장이 알 박사를 처음 알았을 때는 그에게 가톨릭 신앙을 심어주고 싶어서 새벽마다 운동은 제쳐두고 복음전파에 전력 투구해 보았으나 결과는 논쟁으로 끝이 나고 마는 것이었다. 알 박사를 통해 얻은 것은 ‘다양한 지식은 병이다.’라는 말로 박 회장도 손을 들고 말았다. 박 회장은 그를 대하다보면 특히 종교 문제에 있어서는 먹구름이 태양을 가리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교회나 사찰, 성직자의 비리에서 출발하여 의심을 가지고 신앙을 난도질하니 알 박사의 논리에는 머리가 아프고 답답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독선적인 말로 멤버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도 하지만 박 회장만은 박 신부님, 하고 따르니 박 회장도 그를 피할 수만도 없는 입장이다.
2. 하늘나라
지난 금요일이다. 배드민턴 장에서 알 박사가 박 회장에게 말을 걸었다.
“박 신부님, 교회에서 ‘그리스도 왕국을 이 땅에 건설하자.’ 카는데 그 기 무신 말인 교?” 알 박사는 박 신부님, 하고 깍듯이 존칭을 쓴다. 박 회장은 오늘아침 또 알 박사에게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질끈 아파 왔다.
“알 박사, 그리스도왕국을 이 땅에 건설하자는 것은 즉 ‘하늘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자는 뜻입니다.”
“하늘나라는 죽어서 가는 저 세상 아입니까? 살아있는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에도 하늘나라가 있다면 매일 등산 오는 이곳 아닙니까? 숲에서 좋은 공기 마시고 산새소리도 듣는 이곳이 바로 하늘나라인데 무슨 하늘나라를 또 이 땅에 세운다는 말입니까?”
알 박사 특유의 흥분된 목소리다. 알 박사는 세상일에 대해서는 막힘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그도 하늘나라에 대해서만은 손에 잡히는 것이 없으니 실로 답답한 것이다.
“알 박사,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그 속에서 무한한 호기심과 경이로움을 느끼며 함께 호흡하고 동식물을 이용하여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하늘나라라고 하는 알 박사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르면 이 세상의 주인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이 세상을 지배하는 인간이지요.”
“알 박사, 그르면 인간의 주인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조물주라고나 할까요,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하였으니 하느님을 인간의 주인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렇습니다. 알 박사는 자연을 하늘나라에 비유했습니다만 많은 우리 조상들은 바위나 고목과 같은 피조물을 숭배하고 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점술과 같은 미신행위에 운명을 맡겼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쁜 것은 신이 아닌 것을 신이라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우상숭배는 금물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조물주의 손길을 느끼고는 있습니다만 성당에서 말하는 하늘나라는 어떻게 건설한다는 것입니까?”
“창조주 하느님에 대해서는 어떠한 종교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각자의 신앙과 길이 다를 뿐이라 생각되지요. 알 박사, 이 세상은 사랑으로 창조되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 “사랑으로 창조되었다고요”
“세상의 모든 동식물을 보십시오.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면서 본능에 의해 생존하고 번식되는 것을 봅니다. 나름대로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는 저 새들이나 나비, 벌이며 자연계의 번식을 보십시오. 사람들 보다 더 짙은 사랑을 하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은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천주교회에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사랑 그 자체이시다. 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이 사랑이라고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하고, 사랑을 빼면 시체라 카는 말이 있지만…”
“알 박사, 사랑을 다는 저울이 있다면 사랑을 저울질해 보고 싶습니다. 연인끼리의 짙은 사랑, 부부간의 아름다운 사랑, 부모자녀간의 고귀한 사랑, 사제간의 숭고한 사랑 등, 그런데 사랑의 저울이 있다하더라도 저울로는 도저히 달 수 없는 사랑의 원천이 있습니다.”
“사랑의 원천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성당에서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즉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박 신부님,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세상인데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다니 그 말을 믿으라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도 우리의 몸이 바로 법당이고 마음이 곧 부처라 하지 않았습니까.”
“박 신부님, 동물들은 배가 고파야 사냥을 하고 배가 부르면 잠을 자거나 아니면 월동준비를 하는 것이 고작인데 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여 남을 속이기도 하고 보다 더 많이 가지려 끝없는 욕심을 부리는 겁니까? 또 많은 자연을 파괴하고 유독 물질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습니까? 사람이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이어받았다고 했는데 고것이 맞는 말입니까?”
“알 박사, 동물은 본능에 의해서 행동하지만 사람은 동물이 갖지 못한 이성이 있어서 생각하고 판단을 해서 행동하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삼라만상 중에 둘도 아닌 인간만이 누리는 특권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르나 인간성이 물질 앞에 허물어져 가고 있는 세태가 안타깝습니다.”
“박 신부님, 인간의 교만함이 극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판이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이소. 서민들만 죽을 지경이 아닙니까? 정직하고 진실 된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할텐데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사회 정화를 위해 앞장서야할 종교단체도 그 비리가 심심찮게 지상에 보도되고 있지 않습니까?”
“알 박사, 인간은 세상 재물의 유혹을 받으며 죄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의 죄책을 받기도 하고 질병으로 고통을 받으며 인간성을 회복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죽음으로 삶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이 고통을 피하려면 조물주 하느님의 뜻에 따라 끊임없이 감사하고 또한 이웃과 더불어 사는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액땜을 한다고나 할까요. 알 박사, 일부종교단체의 비리를 보고 전체인 양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많은 종교단체에서 하고 있는 봉사활동은 왜 말하지 않습니까?”
“저도 천주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오순절 평화의 마을, 꽃동네 등 장애인 복지시설은 알고 있습니다. 박 신부님도 편하게 계셔야할 연세에 성당에서 뿐 아니라 무료급식소에 나가서 봉사하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천주교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격려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감사하는 마음이 인색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활동을 해보면 우리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알 박사, 오늘은 유익한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알 박사와 저의 대화는 언제나 논쟁으로 끝이 났는데 오늘은 진일보한 것 같습니다. 알 박사는 요즈음도 그렇게 바쁘십니까?
“퇴근 시간이 10시가 넘는 게 보통입니다. 죽을 지경이래요.” 알 박사의 말 중에 죽일 놈들, 죽을 지경이라는 말은 열에 여덟 번은 들어간다.
“알 박사, 다음 주일이 배드민턴 멤버들 단풍구경 가는 날 아닙니까 신청은 하셨소?”
“박 신부님이 가신다면 신청해야지요. 저가 만날 때마다 귀찮게 하는데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오늘 못다 한 하늘나라 이야기도 실 것하고 단풍구경도 합시다.”
박 회장은 단풍구경 겸 이번에야말로 알 박사의 눈에 박힌 가시를 뿌리째 뽑아주어야 되겠다고 다짐을 한다. 박 회장은 인생 상담을 하면서 못다 한 말은 편지를 써서 건네기도 한다. 아들 며느리에게도 연두교서를 보내듯 일년에 한 두 번은 편지를 꼭 한다. 박 회장의 끊임없는 호소력은 편지에 있다. 박 회장은 하느님을 모르고 진리에 목말라 하는 이들을 위해 항상 편지를 준비하고 있다.
3. 하늘나라에 하느님은 정말 계십니까?
이른 새벽부터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늦가을 찬 기온이 박 회장의 마른 체구를 파고든다. 관광버스에는 부부동반으로 온 멤버들이 여럿 보이고 알 박사는 미리 박 회장의 자리를 마련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박 신부님, 어서 오십시오.”
“허허, 오늘은 단풍놀이 가는 날이니 박 신부라 부르지 말고 박 회장이라고 불러주면 나도 마음 편히 놀다 올 것 같은데…”
“박 신부님, 그런데 날씨 보니까 단풍놀이는 틀렸습니다.”
차가 출발하자 어둠이 걷힌 차창 밖에는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알 박사는 밀감을 까서 박 회장에게 건네주며 말을 꺼낸다.
“박 신부님, 우리가 다급하면 ‘아이고 하느님!’하고 너나없이 하느님을 찾습니다만 정말 하느님이란 분이 계신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다급할 때 하느님을 찾는 것을 보면 하느님은 분명 어딘가에 계시고 믿을 만한 분이기 때문에 찾는 것 아니겠어요.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고향을 찾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하늘을 쳐다보아도 하늘에는 해와 달 그리고 떠가는 구름, 밤하늘에는 반짝이는 별 뿐입니다. 하느님이 하늘 나라 어디에 계신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성당에서는 십자가를 걸어놓고 하느님이라고 모시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알 박사,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궁금하시면서 성당에 나오시는 것은 주저하십니까? 십자가는 인류구원을 위해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천주교신자들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무거운 십자가를 외면하지 말고 잘 지고 갈 것을 다짐합니다.”
버스 안은 새벽 단잠을 설치고 온 탓인지 간간이 말소리가 들릴 뿐 다들 새벽잠에 빠진 듯 차창에 부딪치는 빗소리와 관광버스의 달리는 소리뿐 조용하다.
“알 박사, 아기가 태중에서 무엇을 먹고 자랍니까?”
“그야 탯줄을 통해 엄마의 영양분을 먹고 자라지요. 그리고 요즈음은 태중교육이라 해서 뱃속의 아이에게 교육도 시키는 모양입디다.”
“그렇습니다. 요즈음은 천재아이를 낳으려고 성급하게 태중교육을 시키고 있는데 욕심이 지나치면 머리만 큰 아이를 낳게 될까 걱정입니다. 아기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사랑을 먹으며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아기는 부모의 분신이 아닙니까. 하느님 앞에 모든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아기와 어머니처럼 말입니다.”
“박 신부님, 하느님은 어머니들처럼 우리 가까이 계시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음성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느님이란 분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단 말입니까? 세상의 어머니들이 아기를 돌보듯 하느님께서 인간을 보살피시고 돌보고 계신단 말입니까?”
“사람들은 하느님을 우리 눈으로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 말씀이라도 들을 수 있으면 성당에 열심히 다니겠다, 성당에 몇 년씩 다닌 신자들도 어리석은 하소연을 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 마음에는 자신을 지탱해 주는 양심이란 추가 있지 않습니까?”
“양심의 추란 무슨 뜻입니까? 양심대로 착하게 살아라 그 말 아닙니까?”
“하느님의 존재를 인간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구체적으로 알아야만 믿겠다는 지식인들을 봅니다. 알 박사도 그렇지 않습니까?”
“박 신부님, 요즈음 세상이 어떻습니까? 눈 깜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이 아닙니까? 눈에 보이는 것도 믿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으라고 하십니까?”
“우리의 몸에는 사물을 분별하는 눈과 소리를 듣는 귀가 있습니다만 마음에도 눈과 귀가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지만 결정을 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지요.”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는 첫 단계는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하고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박 신부님, 사바세계의 병은 마음에서 생기며 마음의 잡다한 생각을 비우고 나면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서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말은 저도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런데 스님들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오랜 세월을 수도 정진하는데 우리 같은 중생이야 마음 다스리는 일이 생각처럼 쉽겠습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종교마다 신앙의 길은 다 다르겠습니다만 제가 믿고 걸어온 천주교는 ‘계시종교’로서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계시종교라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인데요.”
“천주교는 인간이 스스로 진리를 터득해서 세운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직접 당신을 드러내시고 진리를 가르쳐주심으로서 이루어진 종교라 하여 계시종교라고 합니다.
“박 신부님, 점심시간인가 봅니다.
차가 휴게소에 들어서자 점심시간을 알리는 총무의 안내방송이 있었다. 이날 점심은 준비한 음식을 들고 나가 야외에서 신선한 공기 마시며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날씨가 궂으니 어찌하겠는가. 모두들 볼일을 보고 와서 좁은 차안에서 다리도 뻗지 못하고 점심을 들었다. 박 회장은 이웃들과 소주 두어 잔을 하고 휴게소로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총무인 공구박사가 알아보고 얼른 한 잔 뽑아준다. 박 회장은 차에 올라 오늘 일정도 의논할 겸 자리를 옮겨 총무 옆에 가 앉았다.
4. 생명
“신부님이 와 이라는 교? 여자 옆에 다 오시고.”
“오늘은 인생을 논하는 신부님이 아니고, 인생을 즐기는 회장인 기라. 알 박사 옆에 붙어서 왔더니 열이 나서 불 끄러 왔다 아이가.”
“남자들끼리 불은 왜 불이나요. 내가 소방서인 줄 아는가베.”
“절에 무엇 땜에 다니는데 소방수 할라고 다니는 거지.”
“신부님이 하느님 찾으시지 부처님은 말라고 찾아오는 교?”
“하느님께 가기 전에 보살임 먼저 찾아보고 가려고 왔다 아이가. 구박 좀 하지 마라.”
“왜요? 알 박사가 속을 뒤집던가요?”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오늘은 이바구가 진지하다 보니까 보살 님께 기 좀 받으려고…”
“아침마다 산에서 배드민턴으로 젊은 기를 넣어 주었으면 됐지, 차안에까지 와서 기를 받아야 되겠어요.”
박 회장은 공구박사가 주말이면 다녀오는 설악산, 지리산 등 명산의 정기를 매주 배드민턴을 치면서 받고 있는 셈이었다.
“보살의 마음은 강처럼 넓다 카더라. 천주교와 불교는 이웃 사촌 아이가.”
“뭐가 이웃 사촌인데요?”
“절에 가면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불상에 절하고 성당에 가면 예수님의 십자가상에 기도하니 이웃사촌이고, 불자도 제사 지내고 성당의 신자도 제사를 지내니까 이웃 사촌이다 그 말이지.”
“잘도 갖다 붙이십니다. 저 나무에 메달인 빨간 홍시나 좀 보세요. 얼마나 탐스럽습니까?”
박 회장은 어릴 때 추억이 새롭게 스쳐간다.
“농촌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옛 추억이 새롭고 마음이 평화스러울 수가 없는데 공구박사도 그런 모양이지?”
“그럼요. 설과 추석명절에나 고향을 찾아 부모님을 뵙는데 항상 돌아올 때마다 죄스러움을 느낀답니다.”
“그야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불효일 것이고 둘째는 도심의 콘크리트 문화에 굳어버린 몸과 마음이 고향의 순박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대할 때 부끄러운 마음이 되는 탓이 아닐까?”
“자라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고향에 자주 데리고 가서 정서적인 마음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자연과 친숙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으련만 학교, 학원, 컴퓨터에 시간을 다 빼앗기고 마니 걱정입니다.”
“그래도 공구박사야 정든 고향이 있고 보고 싶은 부모님이 계시니 뿌리가 있어 축복 받은 사람인 기라.”
박 회장은 ‘고향’ 하면, 노천명 시인의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 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나중엔 고향 가 살다 죽으리.’ 하는 애틋한 향수에 젖는다. 나이 예순을 넘으면서 마음은 언제나 고향을 향하고 있다. 오늘처럼 정다운 이웃이 있기에 우리 영혼의 고향 하느님의 품속도 따사롭게만 느껴진다.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침 비가 멈추어서 일행은 단풍구경을 할 수가 있었다. 계림 사로 오르는 길가 단풍이 곱게 물들어있다. 붉고 노란 단풍이 비바람에 떨어져 단풍융단을 밟고 가는 느낌이다. 박 회장은 불그죽죽하게 시들어 떨어지고 있는 집 뒷동산 단풍이 생각나 마음이 아프다.
계림 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 국보급 보물과 지방 문화재 등 옛 선인들의 얼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사찰과 단풍구경은 날씨 관계로 일찍 끝이 났다.
돌아오는 차안은 한바탕 노래와 만담으로 요란하다. 박 회장과 알 박사는 일찌감치 뒷좌석으로 자리를 피해 가 앉았다.
알 박사는 몇 잔술에 얼굴이 벌겋게 물들면서 눈에 이슬이 맺힌 듯 하다.
“박 신부님, 실은 오늘 의논드릴 게 있십니더.”
“무신 일인데, 알 박사답지 않게 심각한 모습을 해 가지고…”
“저의 며느리 말입니더 임신 4개월 째 아입니까 그런데 산부인과에 갔더니 풍진이라 카는 들어보도 못한 전염병을 산모가 했다 안 캅니까.”
박 회장은 알 박사의 ‘풍진’ 소리에 긴장이 되었다. 박 회장 역시 뒤늦게 본 막내며느리가 임신 중 풍진을 하는 바람에 마음 고생을 모질게도 했다. 지금은 귀여운 손자를 품에 안아보고 재롱을 지켜보며 세상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새 생명, 단 하나 핏줄로 마음이 뿌듯하다.
“알 박사, 그래서 어떻게 하고 있어요?”
“산모가 풍진을 하면 기형아나 정신 박약아가 출생할 확률이 높다고 하니 우째야되겠습니까? 아이들은 낙태를 시키려고 합니다. 평생을 두고 마음 고생을 하느니 아이는 또 낳으면 된다는 거지요. 하지만 우리 집안은 손이 귀한 집안인데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십니더.”
풍진은 임신 전에 풍진에 대한 항체검사를 해서 항체가 없으면 예방 접종을 필히 해야 임신 후 안전하다고 한다. 박 회장은 알 박사의 심각한 고민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알 박사는 외아들을 두었는데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는 공부하기를 싫어해서 알 박사의 회사 일을 거들고 있었다. 그런데 씀씀이가 헤프고 성실하지를 못해서 알 박사의 빈틈없는 눈에는 반 눈에도 차지 않는 애물단지였다. 결혼을 하면 좀 나을까했는데 서른이 넘어 겨우 짝을 맞춘 것이 자식 복이 없어서인지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알 박사, 저의 막내며느리도 결혼해서 얼마 동안은 직장관계로 피임을 하는 모양이더니 막상 아이를 가지려고 하니까 임신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다는 100일된 흑염소도 먹이고 하여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3개월 째인가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았더니 알 박사가 말하는 풍진이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산부인과에서는 은근히 낙태를 권유하기도 했지요. 천주교 신자에게 낙태는 하느님을 거슬러 는 가장 큰 죄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도 흔들렸습니다. 장애아이를 낳을 확률이 많다고 하니 자식이지만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경솔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하고 다짐은 했지요.”
“그래서요?”
“막내아이는 대학시절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도 하여서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아이인지라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해본 모양입니다. 태아의 외모는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았습니까?”
“낳았지요. 장애아라도 낳아서 기르기로 한 것입니다. 그동안 마음 고생이야 많았지요. 지금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기도 드린 덕분이지요.”
“박 신부님은 기도의 덕분으로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고 믿습니까?”
“꼭 그렇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이미 화살은 떠났습니다. ‘하느님, 건강한 아이를 낳게 해 주세요.’ 하고 간절한 기도야 드렸지만 장애아가 태어나더라도 잘 키우겠다는 다짐도 있었지요.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은 간절한 기도를 뿌리치지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박 신부님, 풍진이 각막을 건드리면 실명을 하고 고막을 건드리면 귀머거리가 되며 뇌에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다는데 그 소리는 못들었십니까?”
“그 소리야 산부인과에서 들었지. 그러나 태아의 외모가 정상인데 그 이상 의술로는 알아 볼 수 없는 하느님의 영역이 아닙니까? 순명 해야지요. 장애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부모들을 보면 생명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소중함을 느끼게 합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강 건너 불처럼 생각들 합니다. 우리사회도 선진국들처럼 장애인 복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알 박사, 우리 이웃에도 풍진으로 신생아에게 약간의 장애가 있었지만 간단한 수술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알 박사도 옳은 일을 위해서는 팔을 걷어 부치는 사람이 아닙니까? 임신 3개월 이후에 풍진이 온 산모는 기형아 출산율이 25%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육안으로 태아를 관찰하는 것도 하느님을 거슬러 는 일이지만 그 이상의 섣부른 판단은 자제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박 신부님과 좋은 자리를 한 것 같습니다.”
알 박사는 박 신부님, 이라고 부르면서 박 회장의 손을 꼭 잡는다. 박 회장은 알 박사를 위해 안주머니에 곱게 간직한 편지를 꺼내어 알 박사 손에 쥐어주었다.
박 회장은 여독 때문인가 가벼운 코를 골면서 잠이 들었고 알 박사는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편지는 ‘하늘나라 하느님에 대하여’ 라는 제목으로 쓰였고 다시 작은 제목 다섯 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5.하늘나라 하느님에 대하여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합니다만 알 박사와는 만났다하면 삶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어 왔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인연이 또 있겠습니까? 세상일에 대해서는 알 박사를 따를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여 알 박사라 부르고 있습니다만 하늘나라 하느님에 대해서는 저를 박 신부라 부르시니 오늘은 저의 마음을 실은 편지를 전합니다. 편지를 쓰다보니 제 신앙생활을 뒤돌아보고 채찍질하는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두서 없는 글이나마 하느님께 대한 의심을 풀고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서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천주교(가톨릭)는 어떤 종교입니까?
하느님! 하느님! 하고 부른다고 하여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응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어떠한 방법으로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알 박사에게 천주교는 계시종교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계시’라는 말을 한글 사전에 찾아보면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이 가르쳐 알게 함’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알 박사, 저는 여름이면 나무 위에서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하느님의 계시에 흠뻑 젖어듭니다. 여름장마가 지나가고 나면 나무등걸 여기저기에 매미가 벗어두고 간 허물을 볼 수 있습니다. 진흙을 뒤집어쓰고 나온 작은 애벌레 속에서 어떻게 예쁜 날개를 자랑하는 매미가 환생되었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매미는 애벌레로 7년 간 땅속에서 지내다가 한 여름으로 생을 마감한다고 합니다. 사람의 한평생을 70년이라고 하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매미의 짧은 일생을 생각해 보면 사람은 거듭 태어나야 함을 느끼게 합니다.
알 박사, 프랑스의 곤충학자 파브르는 말하기를 하느님은 신앙의 대상으로서만이 아니라, 눈에 잘 띄지 않는 조그만 곤충을 통해 그분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있으니까요”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양심은 바로 선하신 하느님의 소리로서 하느님이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계신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대자연과 인간의 양심을 통해 드러내 보이시는 것을 간접계시라고 합니다.
우리 마음에 대해서는 알 박사도 잘 알고 계시는 성철스님의 말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인간 모두가 부처님과 똑같이 영원한 생명 무한한 능력의 소유자인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팔만대장경도 똘똘 뭉치면 마음 심자 한자 위에 있다. 마음의 눈을 뜨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이 친히 인간에게 진리의 말씀을 알려주시는 직접게시가 있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하느님께서 어떻게 인간에게 진리의 말씀을 직접 알려준다는 것입니까? 하고 반문하시리라 생각됩니다만 직접 게시에 대해서는 저의 편지를 읽어나가시면 차츰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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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알 박사와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바가 있습니다만 하느님의 사랑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성서를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성서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읽어보았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서 기록된 책이라 하여 거룩한 책이라고 불립니다. 성서를 처음 대하면 신구약성서의 부피에 놀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벽에 부딪칠 것입니다. 그르나 목차별로 기본적인 내용만 도움을 받으면 하느님의 말씀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수세기가 흘러가는 동안 인간의 지식과 과학문명은 발달하여 인간이 살기 편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변하지 않아서 끊임없이 인간의 부도덕한 삶과 과학문명에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 탄생 2003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하느님의 지혜로 쓰여진 성서는 중단되지 않고 베스트 제1위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읽히고 있지 않습니까.
성서를 간략하게 안내하면, 성서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크게 구분합니다. 이것은 성서의 주인공이 되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의 이야기를 구약, 탄생 후 즉 서기가 시작되는 첫해부터의 이야기를 신약이라고 합니다.
구약성서는 천지가 창조되고 인간이 원시생활을 시작하면서 구전으로 전해오고 양피지나 그밖에 어떤 것을 이용해서 그림으로 어떤 상형문자의 형태로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져 왔습니다.
신약성서는 예수 탄생부터의 이야기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고들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 복음사가들이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를 적은 것입니다.
성서란 역사책과는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이해하고 읽어야만 합니다. 성서는 소설처럼 읽어나갈 수도 있겠습니다만 소설처럼 읽어나가서는 별 의미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무궁무진한 하느님의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성서가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아무리 퍼마셔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끝없는 인생의 갈증을 풀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 신약성서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에 대해 궁금증을 풀어나가야겠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방대한 드라마를 소개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좁은 소견으로는 바닷가의 모래알갱이들을 세는 일 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 탄생부터 기록된 신약성서의 주요부분은 “성탄 밤”을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내용들입니다.
신약성서는 4사람의 복음사가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각각 다른 측면에서 사실을 수집해서 기록한 내용들입니다.
서기 2003년 전, 이스라엘의 유다 산골에 죄 많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한 성자가 태어났으니 그가 바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느님께서 죄악에 물던 세상을 보시다 못하여 하느님이 몸소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예수가 하느님의 외아들임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그는 유다 산골 목수인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아닙니까?’ 성서의 기록에 보면 요셉과 마리아는 동정으로 사셨고 아기 예수는 하느님의 성령의 은총으로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신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공적으로 활동하신 3년 동안 하느님의 아들만이 하실 수 있는 인류구원의 큰 발자취를 이 세상에 남겨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이 당시의 지도자급 사람들의 현세적인 안 락과 시기심에 의해 십자가형을 당하셨습니다. 그르나 돌아 가신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불사 불멸의 행적을 몸소 남기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를 믿는 사람은 죽지 않고 영원한 새 생명을 얻게된 것입니다.
기도는 만병 통치약, 기적을 낳는 황금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기도는 만병통치약입니다. 아픈 사람이 있어도 기도, 사업 잘 되라고 기도, 입시 철이면 교회 성당 사찰 암자 바닷가 학교 교문 앞에서까지 기도의 행렬이 줄을 잇습니다. 성서에 보면 예수님은 나환자, 중풍환자와 같은 많은 불치의 환자들을 고쳐주었습니다.
마더 데레사, 가난하고 병든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생동안 밤잠을 설치며 손발이 닳도록 봉사의 삶을 살다 가신 수도자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성녀가 이와 같은 희생적인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오직 하느님께 의지한 기도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인간의 정성을 보시고 기적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도 같다고 하였습니다. 겨자씨는 세상의 어느 씨앗보다도 더 작은 것이지만 땅에 심어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 기적을 낳는 황금알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만, 결코 요술방망이로 착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몇 년씩 신앙생활을 한 사람도 진정한 기도의 맛을 들이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방황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알 박사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몇이나 됩니까?”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고향의 촌부인 친구를 가끔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기도는 마음을 비우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하느님께 다가서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바른 길을 찾아 나서는 첫 단계가 됩니다. 즉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 앞에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함으로서 자신을 정화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성직자나 수도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지요.
큰스님들의 화두를 보면 자신의 본성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의 깊은 뜻은 잘 모르겠으나 자신의 재능과 분수를 알고 한 번뿐인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느님께 드린 기도의 응답은 성급하게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아기의 이빨이 자라듯, 꽃봉오리가 서서히 피듯 기다려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성급하게 결과에 집착합니다. 인간의 잣대로 재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기도의 노력은 무산되고 맙니다.
기도할 때에 수험생을 둔 부모라면 수험생의 어려운 마음과 함께 하여야만 합니다. 아픈 자식이라면 그 아픔을 같이 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식으로 인해 부모가 은총을 받게 됩니다. 진실한 기도는 고통보다 더 큰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심어주셨다는 “영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영혼에 대한 이야기라면, 물레밖에 가진 것이 없었다는 인도의 위대한 영혼 간디를 생각나게 합니다. 또한 수많은 불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가신 성철스님의 누더기 가사장삼 한 벌이 생각납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천주교 안동 교구장 박석희 주교 님의 나눔과 봉사, 무소유의 삶이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천주교에는 많은 성인 성녀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도 지극히 작고 평범한 일,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일들을 가지고 가장 좋은 천상의 비단을 짜신 분이 계십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 24세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지만 위대한 영혼을 지니셨던 분입니다. 알 박사도 집 앞 청소는 물론 동네의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혼이라 하면 우리는 죽어서 가는 저 세상을 연상하게 됩니다마는 위대한 영혼은 이 세상에서부터 빛을 밝히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천주교의 교리 문답 첫머리에는
“사람이 이 세상에 무엇을 위하여 낳느뇨?”
“사람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에 낳느니라.” 하였습니다. 알 박사, 대리석을 망치로 두들기기만 하면 길거리에 버려진 못난 돌이 되겠지만 갈고 닦으면 아름다운 무늬 결이 살아나는 아름다운 돌이 되지 않습니까. 우리의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는 길만이 이 세상에서는 보람 있는 참 삶의 길이 될 것이요, 저 세상에서는 하느님 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
2002. 11. 7 박 회장 드림
알 박사는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옆자리에 자고 있는 박 신부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예수님이 이런 얼굴일까? 평안하게 잠든 박 신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의 손목을 슬그머니 잡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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