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V 한국정책방송

[파워특강]2013.01.14 17:40

경연(經筵), 세종식 회의 방법 

-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 연구실장)

https://www.ktv.go.kr/program/home/PG1110786D/content/452378 




세종은 오로지 존경 대상? 세종을 질투하라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7> 한글날, 지도자 그리고 리더십

강응천 문사철 주간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0-09 오전 9:26:06

역사 오디세이
<1> 분단에 대한 배상…세 번째 8.15가 필요하다

<2> 8.29는 국치일일 뿐이다? "신한국 최초의 날"
<3> 서태지는 왜 노동당사 앞에서 발해를 꿈꿨나 
<4> 김구도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 당찮은 소리
<5> 해방 공간의 '전태일'들, 망각의 늪에서 구하라

<6> '단군이 오래전 건국', 그것만 자랑할 건가


세종의 천문학 프로젝트는 조선이 중국과 다른 나라라는 고민에서 비롯되었다. 중국의 역법을 존중하지만 지리적 여건이 다른 조선에서 그것을 100퍼센트 그대로 쓸 수는 없는 법이다. 세종의 한글 창제도 이 같은 맥락에서 중국의 유교 문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진 문화'를 조선에 맞게 받아들이고 조선의 모든 백성과 공유하려는 문제의식의 소산이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08392



chosun.com 

위클리비즈

[Weekly BIZ] [박현모의 '세종 리더십'] 사물 개개의 특성 살린 세잔의 그림에서 세종의 통치철학을 보다

박현모·한국형리더십개발원 대표

입력 : 2013.12.21 03:04


첫째, 세잔은 사물에서 반사되는 빛을 주로 그리던 종래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정물의 부피감과 배경의 공간적 깊이를 드러내 사물 개개의 특성을 살려냈다. 마찬가지로 세종은 인재의 개성과 신념을 존중하되 그 이질적인 인재들의 아이디어를 '합금'해서 뛰어난 정책을 만들어내곤 했다. 원칙을 강조한 '법가적' 인물 허조와 중용을 실천한 '유가적'인 황희, 소를 타고 다니며 피리를 불었던 '도가적' 인물 맹사성, 그리고 문장과 예법에 밝은 '불가적' 인물 변계량은 각자의 특장점을 발휘하면서 어전 회의라는 용광로에서 훌륭한 정책들을 만들어냈다.

출처: http://weekly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20/2013122001977.html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노랫소리 싫다 하여 새를 죽일 수는 없다"

  • 김대중 고문

입력 : 2016.03.29 03:20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이를 실용화하는 단계에서 집현전의 부제학인 최만리 등은 6가지 이유를 들어 이를 막는 상소를 올렸다. "집현전 학사가 한글에 반대하다니…." 세종은 대로했다. 최만리를 즉각 하옥하고 임금이 친국을 했다. 친국이라고 해도 고문이 아니라 토론 또는 설득의 자리였다. 최만리가 굽히지 않자 세종은 그를 풀어줬다. 그럼에도 최만리는 사직하고 낙향했다. 조정의 대신들이 최만리의 무례함을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진언하자 세종은 "노랫소리가 듣기 싫다 하여 새를 죽이려 함은 옳지 않다"며 그의 자리를 비워두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나 최만리는 끝내 향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500년 전의 얘기다.

출처: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28/2016032803197.html



** 천일야사 2 회 170104 "청백리의 상징 황희의 눈물" 

중앙일보

[인간혁명 5회]지식붕괴의 시대, 세종의 공부법이 뜬다

                                        

 이 같은 ‘세종의 공부법’을 요약하면 ‘질문하고 토론하라’입니다. 1만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세종실록’에서 임금의 표현 중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 하나는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입니다. 질문을 던져 상대방의 생각을 이끌어 내고 토론을 통해 지혜를 모으는 방식입니다. 국가의 중대사를 논할 때도, 집현전 학사들과 격의 없는 논쟁을 벌일 때도 세종은 가장 먼저 신하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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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현모의 세종이 펼친 ‘진짜 정치’게재 일자 : 2018년 01월 17일(水)
서둘러 제안하고 금방 유명무실해지는 관리들의 가벼움 ‘경계’


셋째, 유구(悠久), 즉 성과를 거둘 때까지 오래 시행해야 한다. 나랏일은 “오래도록 행하여 폐가 없게 해야 마침내 반드시 공효가 이루어질 것”인데, 그러려면 백성의 자발적인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은 “대개 나라에서 불러서 일을 시키면 반드시 싫어하고 꺼리지만, 스스로 서로 불러 모이면 즐겁게 일에 나선다”는 세종의 관찰이었다. 국민이 하고 싶은 일을 제안하고, 나라에서는 그것을 지원하고 지속시켜서 마침내 공효를 거두는 모습을 자주 보길 소망한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출처: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11701032630000001

                      


**[역사저널 그날] 18회 .2014.02.23. 1430년 조선, 첫 국민투표 하던 날

**[역사저널 그날] 112회 - 장영실 2부작 제1편 태종, 노비 장영실을 발탁하다   2018/2/21 

**[역사저널 그날] 113회 - 장영실 2부작 제2편 세종, 장영실을 버리다   2018/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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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의 실록 속으로]세종 치세에 여진·일본·아랍인 귀화 행렬… 明도 조선을 경계했다

‘천하 인재 모은 강한 나라’ 꿈꾼 세종 “귀화인도 우리나라 백성”
경제·안보 이유 “쇄국” 주장 물리쳐… 倭·여진·남만 등서 귀화
明, 세종 이민족 포용 정책에 “여진족 조선에 기울면 큰일” 경계

출처: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1/09/07/D4XWCF3XSBCLFGN5IOAJRC6VFM/

** [17회]여진족은 어떻게 청나라를 세웠을까? /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고기 좋아하고 운동 싫어했던 세종대왕, 이유는 따로 있었다


김세미 기자 김진철 기자 
등록 :2021-09-24 04:59수정 :2021-09-24 09:28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이지환 지음 l 부키 l 1만6800원

조선시대 세종대왕은 아버지 이방원이 함께 사냥을 가자고 조를 정도로 운동을 싫어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기를 좋아하고 운동을 싫어해서 비만해진 왕’ 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칼로 세워진 나라 조선에서 완벽주의자인 세종이 단순히 ‘하기 싫어서’ 무예를 멀리했을까? 합리적인 의구심으로부터 시작된 추리는 그가 운동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못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이유까지 밝혀낸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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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의 실록 속으로] 단호히 물러나 ‘권력 중독자’ 아님을 증명한 태종 이방원

태종 “아비가 아들에게 전위하는 건 천하고금의 떳떳한 일”
승지들에겐 “18년간 호랑이를 탔으니 이미 충분하다” 밝혀
드라마 ‘태종 이방원’ 속 전위하며 울부짖는 모습 사실과 달라

과연 그랬을까? ‘태종실록’ 18년 8월 8일 기사를 보면 ‘큰비가 왔다’고 되어 있다. 비 쏟아지는 사정전 뜰 앞 장면은 제대로 고증된 것이다. 이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정오 무렵 태종은 의관을 정제하고 보평전(報平殿·훗날 사정전)으로 들어갔다. “옥새 찍을 일이 있으니 속히 대보(大寶·임금 도장)를 바치라”는 왕명을 전해 들은 승지들은 보평전 문 앞으로 달려와 취소를 요청했다. 태종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사람을 보내 “세자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그 사이 대신들이 보평문 앞으로 몰려와 하늘을 부르며 목 놓아 울면서[呼天痛哭·호천통곡] 비상한 거조(擧措)를 멈춰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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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강 세우기... 한 가지 원칙으로 만 가지 일 처리한 세종의 비법

[박현모의 실록 속으로]
세종, 유능한 인재 가려 쓰고 엄정한 신상필벌로 공직 기강 세워
그물의 벼리[綱]를 들어올리면 그물눈[目] 펴지는 모습에 비유
인기영합 유혹서 벗어나 인재들이 신명나게 일하도록 만들어야




** [KBS] 대왕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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