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3.29 03:20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이를 실용화하는 단계에서 집현전의 부제학인 최만리 등은 6가지 이유를 들어 이를 막는 상소를 올렸다. "집현전 학사가 한글에 반대하다니…." 세종은 대로했다. 최만리를 즉각 하옥하고 임금이 친국을 했다. 친국이라고 해도 고문이 아니라 토론 또는 설득의 자리였다. 최만리가 굽히지 않자 세종은 그를 풀어줬다. 그럼에도 최만리는 사직하고 낙향했다. 조정의 대신들이 최만리의 무례함을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진언하자 세종은 "노랫소리가 듣기 싫다 하여 새를 죽이려 함은 옳지 않다"며 그의 자리를 비워두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나 최만리는 끝내 향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500년 전의 얘기다.
** 천일야사 2 회 170104 "청백리의 상징 황희의 눈물"
[인간혁명 5회]지식붕괴의 시대, 세종의 공부법이 뜬다
이 같은 ‘세종의 공부법’을 요약하면 ‘질문하고 토론하라’입니다. 1만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세종실록’에서 임금의 표현 중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 하나는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입니다. 질문을 던져 상대방의 생각을 이끌어 내고 토론을 통해 지혜를 모으는 방식입니다. 국가의 중대사를 논할 때도, 집현전 학사들과 격의 없는 논쟁을 벌일 때도 세종은 가장 먼저 신하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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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현모의 세종이 펼친 ‘진짜 정치’ | 게재 일자 : 2018년 01월 17일(水) |
서둘러 제안하고 금방 유명무실해지는 관리들의 가벼움 ‘경계’ |
셋째, 유구(悠久), 즉 성과를 거둘 때까지 오래 시행해야 한다. 나랏일은 “오래도록 행하여 폐가 없게 해야 마침내 반드시 공효가 이루어질 것”인데, 그러려면 백성의 자발적인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은 “대개 나라에서 불러서 일을 시키면 반드시 싫어하고 꺼리지만, 스스로 서로 불러 모이면 즐겁게 일에 나선다”는 세종의 관찰이었다. 국민이 하고 싶은 일을 제안하고, 나라에서는 그것을 지원하고 지속시켜서 마침내 공효를 거두는 모습을 자주 보길 소망한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