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명되는 장사상륙작전
폭풍우와 기관총탄 뚫고 적(敵) 교란 위해 10시간 사투(死鬪)
생존자는 불과 400여명… 영덕군, 기념공원 조성나서
곽수근 기자
입력 2009.06.16. 03:38
업데이트 2009.06.16. 14:20
영덕 장사상륙작전 기념관... 잊혀진 772명의 어린 영웅들
[아무튼, 주말]
[고혜련의 삶이 있는 풍경] (18)
고혜련 칼럼니스트
입력 2026.05.30. 00:30
업데이트 2026.05.31. 02:03
전쟁 발발 약 3개월 후인 9월 14일, 이들은 부산을 떠나 이곳에 상륙해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200고지 점령, 적군의 후방 주요 보급로 차단 등의 역할을 수행했던 격전 속에서 병사들은 전사하고 함정은 좌초됐던 것. 그 희생 덕분에 9월 15일 거행된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했고 9월 28일 서울 수복에 이어 10월 1일에는 국군이 38선(線)을 돌파하게 된 것이다.
출처 :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6/05/30/F5PD5KL7MNCVJOULNDAJJKR36Q/
** 인천상륙작전의 진짜 영웅? 조국을 위해 희생된 772명의 학생들... 최태성이 말하는 장사상륙작전| 이만갑 497회
출처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15/2009061501895.html
출처 : http://month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6350
** 단점이 많지만 후회없는 영화[장사리:잊혀진 영웅들]리뷰
** The Making Of "BATTLE OF JANGSARI" Behind The Scenes
** 비사(秘史), 1950년 9월 장사 상륙작전 | 영화 장사리 보기전 곡 봐야할 실제 생존자들의 기록 [KFN스페셜]
** 조국을 위해 참전한 학생들.. 아무도 알지 못했던 인천상륙작전의 진짜 영웅들 | 이만갑 497회
** 북한에서 말하는 인천상륙작전‼ 인민군 한 중대가 3일 동안 연합군의 상륙을 막았다고 선동한 김일성 | 이만갑 612회
** 잘 싸우던 북한군은 왜 낙동강 방어선을 넘지 못했을까?
** KBS 역사스페셜 – 한국전쟁 최대의 미스터리, 북한군은 왜 3일간 서울에서 머물렀나 / KBS 1999.6.26. 방송
출처 :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6/06/23/NET2UYDPOBEENBEXMCIGRNIP2M/
출처 :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6/06/24/3Z32XRP3KZCVTK6XFM4DO3ZZ54/
미국은 178만명이 참전해 3만6574명의 전사자를 냈고, 영국은 1078명의 자국 청년들의 생명을 바쳤다. 튀르키예,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그리스,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벨기에,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뉴질랜드는 모두 수백에서 수십 명에 이르는 전사자를 냈다.
상식적인 보통 사람의 윤리적 직관이 향하는 결론은 분명하다. 이것은 감사를 표해야 마땅한 일이다. 지구 반대편, 어딘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싸운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하지 않는다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기준마저 버리는 일이다. 지난 5월 서울 광화문광장에 개장한 ‘감사의 정원’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전반적으로 우호적이었던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출처: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6/06/24/PKJAO3K7HNDJLMLXIFH2YIIOYI/
왜 ‘감사의 정원’일까? 알고 나니 더 뭉클한 광화문광장의 빛
** 흑백 영상이 아니라 더 현실적이다. 컬러로 보는 한국 전쟁 당시 생생한 모습|한국전쟁 75주년|특집 다큐|골라듄다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고, 9월 9일에는 북한 정부가 수립되면서 남과 북에는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단순히 이 날짜만 보면 마치 38선 남쪽에 먼저 정부가 세워짐으로써 통일 정부가 좌절되고 분단이 이뤄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1946년 2월 북한에 수립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사실상의 '정부'였습니다. 김일성 우상화를 본격화하며 토지 개혁, 산업 시설 국유화를 단행했고, 정식 정부 수립 전에 독자적인 화폐 발행과 군대 창설까지 마쳤습니다.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려 했던 김일성의 입장에서 보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그 야욕이 좌절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지 정비소들은 기술 부족으로 고치지 못했고, 결국 내 차는 마당 구석 망고나무 아래에 오랫동안 방치된 채 뽀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어야 했다.
완전히 멈춰 서 있던 차를 살려낸 이는 영국인 베테랑 정비사 람(Mr. Lamb)씨였다. 동부 아프리카를 순회하며 현대차들을 수리하던 그는 엔진을 통째로 분해하고 재조립해 차를 말끔히 살려놓았다. 수리가 끝나고 시동을 걸었을 때 들린 ‘부르릉’ 하는 힘찬 엔진 소리는 감동적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6·25 전쟁에 참전한 용사였다. 고장 난 차를 고쳐준 것도 고마운데,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던 내 조국을 지켜준 영웅이라니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사가 치밀어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