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순교자 성월이다. 우리는 신앙의 선조들이 뿌린 순교의 피를 밑거름으로 오늘의 한국교회로 성장해왔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선조들의 확고한 믿음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이 아름다운 시절을 맞아 인근의 순교성지나 사적지를 한 번 쯤 둘러보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역과 취지, 여건에 따라 적절한 성지나 사적지를 선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통상적으로 성지라고 일컬어지는 곳들은 엄밀하게 말하면 크게 성지와 사적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모두 100여곳이 넘는다. 워낙 큰 박해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전국 곳곳에 순교지와 사적지들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 수도권 및 중부지역
우선 수도권을 보면 서울 안에서 한몫에 둘러볼 수 있는 명동성당-서소문-당고개-새남터-절두산 코스가 좋다. 강화도에는 강화성당과 갑곶돈대가 있다. 성당 바로 위에는 병인박해 당시 박해의 온상이었던 관청리형방이 있고 강화대교 옆의 갑곶돈대는 병인박해 순교지이다.
중부 내륙의 대표적 성지로는 미리내가 있다. 김대건 신부의 묘소가 있는 미리내 성지를 비롯해 김신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골배마실과 은이공소를 한데 묶어 돌아보는 것도 좋다. 인근에는 에버랜드와 민속촌도 있다.
서해안쪽으로 가까운 곳에는 남양성모성지가 있다. 1991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성모 순례지로 선포된 이곳은 무엇보다 아름답게 꾸며진 풍경이 눈에 띈다. 성지 전체가 5단 묵주 형태로 꾸며져 있는 이곳은 병인박해 당시 무명의 순교자들이 치명한 곳이다. 인근에 제부도와 대부도 등이 있어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배론성지가 대표적이다. 1801년 황사영이 토굴에서 백서를 쓴 배론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배론신학당이 문을 열었고 최양업 신부 묘소가 있는 유서 깊은 성지이다. 인근에는 설립 100주년이 넘었고 성서학자인 고 선종완 신부의 기념박물관이 있는 용소막성당이 있고 남종삼 성인 생가도 있다.
◇ 충청도 이남 지역
충청도 지역에는 성지들이 꽤 많다. 솔뫼는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곳이고 해미는 1790년부터 약 100년에 걸쳐 1000여명의 신자들이 순교한 현장이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수도권과 한결 가까워진 일대에는 그밖에도 갈매못, 공세리, 다락골, 황새바위 등 수많은 성지와 사적지들이 인근에 몰려 있어 한 번 걸음에 박해기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
배티는 최양업 신부 사목활동의 본거지이자 유서 깊은 교우촌이다. 또 박해 당시 50여명의 순교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연풍은 황석두 성인의 고향이다.
이들 지역에는 또 많은 해수욕장을 포함한 관광지와 국립공원들도 몰려 있어 성지순례의 의미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순례자의 눈을 즐겁게 할 수도 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대구 북쪽 경북 칠곡의 한티성지가 눈에 띈다. 경신박해와 병인박해를 피해 산골로 숨어든 선조들이 현장에서 처형당하고 유해가 묻힌 곳이다.
대구와 영남지방 교회의 터전이 되어온 한티는 수차례의 박해 끝에 병인박해에 이르러 최후의 날을 맞았다. 또 하나의 사적지인 신나무골에서 한티까지 30리길은 도보순례 코스로도 적당하다. 부산지역으로 내려가면 오륜대순교자기념관이 대표적이다.
전라도 지역에도 성지와 사적지가 쌓여 있다. 전주 시내에만도 이중철 이순이 동정 순교 부부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진 치명자산을 비롯해 전동성당, 초록 바위 등이 있다. 나바위, 여산성당, 천호성지 등 대표적인 성지들이 호남지역에 있다.
다소 일정에 여유가 있으면 천혜의 관광지인 제주도의 성지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 마리아의 묘가 있는 대정성지와 신축년 제주도 교난의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황사평을 둘러볼 수 있다. 관덕정은 신축교난 당시 신자들을 처형한 곳이다.
사전준비와 순례지침
먼저 고해성사를 본다. 새로운 삶의 여정을 떠난다는 각오와 하느님과 화해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다음은 찾아가고자 하는 성지 또는 사적지의 역사, 그리고 그곳과 관련된 순교자들의 삶에 대해 알아본다.
그리고 성지 순례를 하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준비한다. 예컨대, 성지를 찾아 이동할 때 어떤 기도를 바칠 것이며 기도와 묵상 중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기록할 것인지까지도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떠난다면 보다 효과적인 성지순례가 될 것이다.
성지 순례는 관광으로 여겨서는 안되며 복장을 단정히 하고 기도서, 성가집, 묵주 등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물론 성지 순례 일정 동안 기도만 할 수는 없겠지만 주류와 각종 악기 등 오락 기구 등은 피하고 음식도 간소하게 하며 호화로운 복장, 식사 등은 절제해야 한다.
한편, 전국의 많은 성지와 사적지들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각자 정성껏 성지 운영을 위한 성금 봉헌에도 소홀해서는 안된다.
순례지에서의 몸가짐은 우선 주님과 함께 걷는 자세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또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참회와 회개의 태도를 갖춰야 하고 극기과 보속의 정신으로 참된 순례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종종 순례지에서 화초나 돌, 나무 등을 훼손하거나 가져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잘못된 자세로 오히려 잡초 하나라도 뽑고 쓰레기를 주으며 각종 공공 시설물을 내 것처럼 아끼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지에서는 박해와 순교 당시의 사건들을 실제로 느낄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고 순례 도중에 떠오른 기도와 묵상의 내용을 글로 적어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지순례 의미와 유래
「성지순례」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성스러운 땅, 즉 성지와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거나 성인들의 유적지인 성역을 방문해 경배를 드리는 신심행위를 말한다.
「성지」란 엄격한 의미에서는 예수님의 탄생과 활동, 고난과 죽음, 부활의 배경이 된 팔레스티나 전 지역을 말한다. 하지만 그 외에 세계 곳곳에 있는 성인 유적지나 순교 사적지 등 성역도 넓은 의미에서 성지라고 할 수 있다.
성지와 사적지는 구분되며 성지는 순교지와 유해가 묻혀 있는 곳, 그리고 유해가 보존되어있는 곳에 한해서 지칭하며 순교자나 성인들이 태어나거나 활동했던 곳, 교우촌 등은 사적지이다.
「성지순례」는 이처럼 성지와 관련되는 과거의 사건과 인물을 찾아가는 행위로써 신심 생활의 한 표현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확실하게 나타났던 팔레스티나 전 지역을 찾아 다니며 신앙을 다졌다.
이렇게 순례는 관광이나 여행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지난 1990년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미쉘 사바는 각국 주교회의 의장들에게 서한을 보내, 순례를 관광으로 혼동하는 나쁜 경향을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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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말>(시계 방향으로)
- 서소문. 한국교회 103위 순교성인 중 44위의 성인과 많은 순교자가 처형된 곳이다.
- 미리내성지 김대건 신부 묘소.
- 제주 정난주 마리아묘. 정난주는 백서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의 부인이다.
- 배티성지 맷돌모양의 십자가의 길(제4처)
<박영호 기자>young@catholictimes.org
출처 : https://m.catholictimes.org/mobile/article_view.php?aid=143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