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를 개국한 주원장은 정말 고려인가?


[異論의 역사(4)] 조선(朝鮮)의 혈맥 천자(天子)의 제국을 다스리다

‘조션인(女真族)’ 출신 태조 주원장, 몽골·고려의 핏줄 받은 영락제 한족(漢族)의 제국 명나라 황통(皇統)에 조선민족의 뿌리가 승계돼 17세기 몽골의 석학 룹상단잔의 <황금보강(黃金寶綱)>에서 밝혀

오늘날 지나인들은 주원장, 특히 영락제 이후 정례화된 ‘조선 공녀’와 ‘조선 환관’은 조선이 보낸 공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은 정반대다. 명 황제들이 황가의 혈통을 잇고,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조선에서 데려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명나라엔 여자가 없었을까? 그럼에도 수천 리 멀리 떨어진 조선에서 여인을 데려다가 황후·비빈으로 삼은 진짜 이유다. 결국 황제는 물론 그들의 황후·비빈과 측근인 환관들까지 조선민족이었다는 점에서 명나라는 조선민족이 다스리는 나라였던 셈이다. 



우리역사넷

주원장 [朱元璋]

개천에서 용이 된 인물

1328년 ~ 1398년

원말 당시 종교 집단이나 한족 군벌들은 사회 혼란을 틈타 중국 곳곳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홍건군(紅巾軍)은 원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한 세력이었다. 산둥(山東) 출신 한산동(韓山童, ?~1351)은 미륵불(彌勒佛)이 혼란한 세상을 구원하러 올 것이라는 믿음을 설파하는 백련교(白蓮敎)를 기반으로 한 종교 집단의 수장이었다. 1351년, 한산동이 이끄는 홍건군 세력이 창장강(長江) 하구 일대에서 봉기하였다. 한산동은 봉기 직전 체포되어 처형되었지만, 아들 한림아(韓林兒, 1340~1366)가 그의 뒤를 이어 홍건군을 이끌었다.

주원장은 홍건군의 수장인 곽자흥(郭子興, ?~1355)에게 투신하였다. 곽자흥은 주원장과 같은 안후이(安徽) 출신으로, 안후이 일대에서 홍건군 세력을 이끌고 있었다. 주원장은 곽자흥의 수하로 들어갔고, 곽자흥의 양녀 마씨(馬氏)와 결혼하면서 곽자흥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 곽자흥의 사후 주원장은 그의 세력을 이어받았다. 이후 주원장은 여러 인재들을 자신의 진영에 가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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