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강(4)

             김 헌 일

     " 낮에 회사로 전화를 했어요. 미국사람이 받데. 꼬부랑 영어로. 겁이 나서 그냥 끊어버렸어. " 술기운 탓이었을까? 수옥의 목소리는 축축이 젖어 있었다.
     " 단골 손님들하고 제주도에 왔어요. 바람이나 쏘이자고 해서 서귀포엘 왔는데 돈 많은 사람들 접대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냐. 가라오케다 나이트다 해서 밤 열두 시를 넘기고 겨우 방에다 들여보냈어. 덕분에 술도 몇 잔 마셨어요. 많이 마신 건 아니고 그저 기분 좋을 만큼요. 그런데 … 허전해. 서울에서 이렇게 멀리 떠나오면 가슴이 후련해 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녜요. "
     나는 태평양 건너 한 작은 섬에서 어둠을 이고 앉아 전화통에 매달려 있는 수옥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먼저 하얀 피부가 생각났다. 그녀의 살갗엔 생전 햇빛 한번 쏘이지 못한 듯한 애처로움이 녹아 있었다. 그리고 윤기가 번들거리는 아트지에 한 방울 떨구어 놓은 묽은 먹물 자국을 연상케 하는 투명한 눈동자, 무엇에 저항이라도 하려는 듯 야무지게 닫혀진 작고 붉은 입술, 또 단아하고 자신감에 차 있는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고 거친 구석이 있어 보이던 표정이며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책갈피를 넘기듯 차례로 뇌리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들은 조각조각으로 외따로이 떨어진 단상들이었을 뿐, 서로이 조화를 이루어 생명력을 지닌 하나의 모습으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와 떨어져 있던 삼년이라는 세월이 제법 길었던 탓이었을까? 아니었다. 당초 그녀와의 관계는 별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만 직장으로 이따금 찾아오던 수많은 고객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아무 것도 아니었던 그녀가 자신의 전화번호를 일러주며 언제든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해 달라는 말을 해오면서부터 갑작스레 중요한 존재로 부각되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그녀는 때로는 하루 세끼 끼니며 빨랫감을 걱정해 주는 자상한 아내의 모습으로 그리고 때론 애틋한 그리움에 겨운 연인의 모습이나 친구의 모습으로 자주 전화를 보내왔다. 어떤 날엔 하룻밤에 세번이나 전화통을 울려댄 경우도 있었다.
     " 나 오늘 준호씨 생각 많이 했어요. 언제 오세요? 공항으로 마중 나가겠어요. 우리 하룻밤만이라도 멀리 여행 좀 떠나요. "
     그녀가 낙엽을 쓸어 가는 바람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속삭여 왔다. 그러나 그녀의 다짐이 결코 실현되지 못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미국에 떠나온 뒤 그녀와의 전화가 계속되면서, 그녀가 진실로 원했던 것은 나라는 구체적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차츰 하게 되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자신의 내밀한 고독을 달래 줄 어떤 비현실적인 존재일는지도 몰랐다. 신(神)과 같이 존엄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으면서도 자신을 향해 언제나 열려있을 따스한 인간의 귀를 그녀는 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정말 취해 있는 것일까? 잠시 침묵으로 뜸을 들이더니 몰아치는 한숨소리 속에 젖은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준호씨. 나 지금 발가벗고 있어요. 실오라기 하나 몸에 걸치지 않았어. 상상할 수 있어요. 내 모습? "

     날씨가 추웠다. 내복을 껴입고 두터운 털파카로 온몸을 감쌌음에도 문밖을 나서기가 무섭게 사지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이제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곳의 겨울엔 낮이 매우 짧았다. 심할 땐, 오전 열 시가 넘어서 느릿느릿 떠오른 태양은 오후 세시가 되기도 전에 훌러덩 서산을 넘어가 버리고 만다. 술취한 사람의 게슴츠레한 눈빛처럼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햇빛이나마 구경할 수 있는 것은 하루에 대여섯 시간에 불과했다. 하루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지독한 어둠 속에 꽁꽁 묶여 있거나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나 후라쉬에 의지하여 간신히 운신할 수가 있었다. 영하 삼사십 도는 간단히 넘나드는 혹독한 추위와 더불어, 이 길고 긴 어둠은 사람들의 마음도 형편없이 우그러뜨리고 말았다.
     해마다 겨울의 초입이면 사람들은 유형지에 갇히운 듯 암담한 기분에 젖곤 했다. 해만 지면 인적이 끊긴 거리에 네온간판만 무심히 깜박이고 가로등만 휑덩그러이 공중에 떠있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겨울엔 끔직한 사건도 자주 일어났다. 게다가 이즈음엔 지진이 자주 일었다. 도시의 서남쪽 90 킬로미터 지점 스파산에서 일어나고 있는 화산 폭발의 영향이었다. 한밤중 갑자기 싱크대 위에 수북히 쌓아놓은 사기그릇들이 소리내어 쏟아지거나 궁둥이를 붙히고 앉아있는 방바닥이 거대한 생물체의 잔등처럼 미끈거려 움직일 때, 나는 이 세상이 송두리째 땅끝 연옥에 서서히 굴러 떨어지고 있는 듯한 끔직한 환상에 시달리곤 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 있었다. 남들이 잠자리에 기어들 시간에 공항으로 출근을 한 나는 0 시 30 분 서울에서 도착할 비행기를 기다리며 탑승교(搭乘橋) 끝에 나아가 서 있었다. 눈앞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휑하니 널려 있었다. 만약 저승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 것이었다. 기내청소부 바야니, 빅터, 제프리, 정비사 스티브 그리고 잡역부 무차와 흑인 로렌스도 함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모진 추위에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린 채 침묵해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꺼칠해 있었고 짙은 피로감이 지친 얼굴 위에 묵은 때처럼 덕지덕지 끼어 있었다. 탑승교의 철제 바닥이며 별 하나 나와있지 않은 허공 등을 향하여 무심히 열려진 시선 속엔 제각기 두고온 고향산천의 모습이 깊숙이 잠겨 있는 듯 했다. 그들은 모두 사시사철 햇볕이 다사로운 남국의 고향을 떠나온 뜨내기들이었다.
     나는 아직 들어오지 않는 비행기를 찾아보기라도 하려는 듯이 탑승교 맨끝 난간에 매달려 하늘을 쳐다보았다. 순간 공중에 나풀나풀 날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비 같기도 하고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잎 같기도 한 어떤 것이 마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춤을 추듯 아득한 어둠으로부터 흰빛의 정결한 자태를 드러내며 날아들고 있었다. 그리곤 이내 허공을 하얗게 수놓으며 무더기로 쏟아져내리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눈이었다.
     " 히-야 ! 눈이다. 첫눈이 온다. "
     먼저 소리를 지른 건 멕시코인 무차였다. 좁다란 탑승교 안에선 돌연 소동이 일었다. 이히! 훌라! 얏홉! 남자들은 야성을 뽐내듯 저마다의 고향말인 듯한 괴상 망측한 소리를 질러대었고, 여자들은 앞을 다투어 탑승교 끝에 나아가 손을 내밀어 풀풀 날리는 눈 서너 송이를 받아내었다.
     " 이걸 모아서 부모님께 보내고 싶어. 내 고향엔 눈이 내리지 않아. "
     눈물이 글썽해 진 밤비가 두손을 소중히 모아쥐며 말했다.
     " 이번 크리스마스엔 꼭 집엘 가야겠어. 가서 예쁜 신부감도 골라야지. 그게 나의 꿈이야. "
     누군가 그 이야길 꺼내는 바람에 사람들의 소동은 크리스마스 캐럴로 번져갔다. 흰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아… .
     신이 나서 노래를 불러내는 사람들에 끼어 나도 목청껏 노래를 불러대었다. 모처럼 마음이 즐거웠다. 그리고 그 즐거움 속에서 오래 묻어둔 비밀처럼 서울의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의 생각이 머리를 쳐들고 일어났다.
     이제 곧 눈과의 질긴 싸움이 시작될 터이었다. 이곳에는 눈이 내렸다 하면 열흘이고 스무날이고 줄기차게 내렸다. 잠깐 세워둔 차에 수북히 눈이 쌓여 밥주걱처럼 생긴 서리 제거기로 눈이며 성에를 쓸고 긁어내느라 씨름을 하여야 했고 굵은 체인을 감아놓은 자동차가 길바닥이며 하수구에 사정없이 미끄러지고 처박히곤 하여서 그에 대한 대비도 하여야 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눈을 좋아했다. 마치 수십년지기 고향동무라도 만난 듯이 기뻐 날뛰는 저들이 바로 그 본보기였다. 그것은 어쩌면 온통 하얀 색으로 뒤바뀌어 버린 풍경에서 느낄 수 있는 비현실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 각박한 세상을 떠나 동화의 나라에라도 살고있는 것 같은 터무니없는 착각을 저것은 끊임없이 보내는 것이었다.
     비행기가 도착했다. 소금물에 절인 배춧잎처럼 늘어져버린 탑승객들이 어리둥절한 듯 눈알을 굴리며 내려왔다. 그리곤 알라스카의 두터운 어둠 속에서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을 하듯 숨가쁜 기세로 쏟아지고 있는 눈송이며 파르스름한 눈빛으로 빛나고 있는 산야의 모습을 발견해 내곤 탄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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