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강(5)

             김 헌 일

     사람들이 다 내리자 우리들은 와르르 비행기에 올라갔다. 항공기 내부를 한바퀴 휘둘러보던 나는 후미 쪽에서 비행기에 남아 갓난아기를 돌보고 있는 한 흑인 사내를 발견하였다. 앞서 올라온 여자들이 올팬! 하고 소리를 지르며 벌써 그리로 몰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키가 천장에 닿을 듯 크고 궁둥짝 하나가 남산만한 거구의 사내가 겨우 제 손바닥보다 조금 큰 어린아이를 팔에 안고 우윳병을 빨리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그가 어린아이를 돌보는 양은 몹시 서툴러서 그 억센 나무둥치를 닮은 팔뚝 사이로 아이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하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사내가 서있는 곳 옆자리에 다른 아이들이 둘이나 더 있었다. 생후 육 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갓난아기들이 마치 군대에 입대라도 하려는 듯 머리를 박박 깎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녀석은 유아용 바구니에 담겨져 금방이라도 몸을 일으킬 듯 팔다리를 발짝거리고 있었고 다른 한 녀석은 맨바닥에 담요를 한 장 얇게 깔고 누워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황색 갈색 흑색의 여자들을 티없는 눈길로 어르며 방긋방긋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언뜻 보아 귀엽기 짝이 없는 아이들의 모습엔 그 동안의 길지 않은 생애 동안 겪어온 거친 삶의 흔적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피부는 생기를 잃고 창호지처럼 풀어져 있었으며 턱언저리엔 침과 때국물 그리고 게워낸 분유가루로 엉망을 이루고 있었다. 감기에라도 걸렸던 것인지 눈언저리엔 눈곱이 딱지를 이루고 콧구멍에선 누런 콧물이 질질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모두 미국에 있는 파란 눈의 양부모를 찾아가는 한국의 고아들이었다. 나는 아이들의 코를 닦아주고 가슴에 안아 보고 키스를 해 대는 이국의 여자들 사이를 빠져 나오며, 두 달 전 고향으로 가는 길목에서 죽은 노파를 생각해 내었다. 저들도 먼 훗날 고향을 그리며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게 될까?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에게도 모국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될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어머니 나라를 절천지 원수처럼 여기며 그들의 한 많은 생을 마감해 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통로를 걸어나왔다. 그때 항공기 유도사 로버트가 가슴속에 용솟음치는 분을 삭이느라 얼굴이 새빨개진 내게 다가왔다. 그는 닷새 전 알라스카의 삼림으로 사라져 버린 채 돌아오지 않고 있는 데릭과 절친한 친구였으며 나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 내일 크닉 빙하로 데릭을 찾으러 가보지 않겠어? 아무래도 느낌이 좋질 않아. 무슨 사고가 난 것이 분명해. "
     나는 두 말도 하지 않고 승낙해 버렸다.
     아까 정처도 없는 여행길에 나섰던 갓난아이들에게서 끊임없이 윤회하는 인생의 비극성 같은 것이 느껴졌고 그 비극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데릭의 모습이 설핏 보여왔던 것이었다. 어머니의 품을 떠나 멀리 타국으로 팔려나가는 아이들처럼 데릭도 어쩌면 그 자신의 요람을 떠나 어디론가 밀려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가슴에 맺혀왔던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간밤을 하얗게 수놓던 눈은 어찌된 셈인지 딱 그쳐 있었다. 서둘러 행장을 갖춘 로버트와 나는 무슨 단서라도 얻기 위하여 차로 30 분 거리에 있는 데릭의 집을 방문하였다. 우리의 노크소리가 나고 한참 뒤 현관문을 여는 데릭의 아내 리디아의 손에는 무거운 38 구경 권총이 들려있었다.
     우리가 놀라는 시늉을 하자, 그녀는 얼른 권총을 등뒤로 감추며 게면 쩍은 듯 웃어 보였다.
     " 너무 무서워서요. "
     그녀가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녀의 조바심과 공포는 짐작할 만 하였다. 바로 그저께 내가 사는 아파트에 느닷없는 총질을 해대던 한 사내가 한밤중 경찰에 체포되어 간 사건이 있었다. 평소 온순하고 사려 깊은 40 대 초반의 평범한 독신 남자였다. 그러나 그가 문득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영하 십도의 냉기가 맴돌고 있는 밖으로 나아가 빈 벽에다 대고 총알을 수십 발이나 난사해 대어야 했던 이유는 여태껏 밝혀지지 않았다. 짙어 가는 어둠과 추위 속에 그자의 성정도 함께 황폐해 졌던 것일까 아니면 그런 식으로라도 표출해 내지 않으면 안돼는 기막힌 사연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경찰의 집요한 추궁에 이년 전 돈벌이를 찾아 이곳으로 이주해 온 그가 한 말은 오직 외롭다는 한마디 말뿐이었다.
     " 밤엔 배게 밑에다 권총을 숨겨두어요. 그렇지만 잠을 이룰 수 없기는 마찬가지예요. 그이는 도대체 어디에 있죠? "
     그녀가 온몸으로 다시금 살아 오르는 악몽을 로버트가 능숙한 솜씨로 끓여온 커피 한 잔에 간신히 녹여내며 말했다.
     리디아는 필리핀 출신이었다. 그녀는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하여 두 군데의 직장을 다녀야 했다. 낮에는 오말리 가(街)의 한 작은 식당에서 음식을 날랐고 밤에는 호텔의 잡역부로 일했다. 나는 그녀의 한 마디를 기억해 내었다. 일년 전 그녀가 미국 시민권을 손에 쥐던 날의 일이었다. 보니페이스 가(街)에 있는 한 침례교회에서 축하 파티가 열렸다. 이민(移民)학교 주최의 파티였는데 그 자리엔 세계 각지에서 온 이주자들이 함께 모였었다. 세계 각지라지만 주로 동양계였다. 필리핀 태국 스리랑카 자유중국 그리고 한국계 이민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 중엔 베트남 난민도 하나 끼어 있었다.
     파티가 한참 무르익자 이민학교 여교장은 그날의 주인공 리디아를 연단으로 불러 세웠다. 키가 큰 금발의 여교장 옆에 선 리디아의 모습은 너무나도 초라했다. 피부는 유난히 검어 보였고 몸집은 왜소하기만 했다. 교장은 리디아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는데 그 모양이 상장을 받기 위하여 선생님에게 불려나온 시골뜨기 어린아이 같았다.
     여교장은 장황한 말로 리디아를 축하해 주고 나서 그녀에게 인사말을 청했다. 리디아는 정말로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듯이 두손을 뒤로 깍지 끼우고 상체를 이리저리 혼들어 댈 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교장은 서너 차례나 더 그 길다란 허리를 숙여 리디아의 귀에 소곤거려야 했다. 한참이 지난 뒤 얼굴에 핏기를 모은 리디아가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두 눈동자에 질끈 힘을 주고 한마디를 외쳐대었다.
     " 아임 프라우드 오브 아메리카! "
     사람들은 모두 힘차게 박수를 쳐주었고 더욱 얼굴이 빨개진 리디아는 자빠질 듯 연단을 뛰어서 내려갔다.
     고개를 수그리고 너덜너덜한 식탁보의 한끝에서 실 한 올을 풀어내고 있는 리디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녀가 지금도 여기에서의 삶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을 지 궁금하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니 사정은 어디나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우리가 자랑스럽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은 지구 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었다.
     아무리 하여도 여기에서 데릭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현관문을 나서는 나에게 리디아가 말을 건네 왔다.
     " 미스터 킴. 당신은 좋으시겠어요. 이제 곧 당신의 나라로 돌아가니까. "
     나는 한동안 그녀에게 해 줄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는 그녀에게 데릭은 곧 돌아올 것이니 걱정 말라고 일러주었고, 로버트는 고개를 끄덕여 내 말에 동의를 표해 왔다.

     로버트와 나는 곧 스워드 하이웨이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 고속도로는 앙커리지 시 북단을 빠져나가 인구 칠 팔백 안팎의 소읍 팔머와 서튼을 거쳐, 남쪽 추게취 산맥과 북방의 탈키트나 산맥 사이로 곡예를 부리듯 흘러내리고 있는 마타누스카 계곡을 따라 뻗쳐 있었다. 그러고 나서 유러카 대평원의 수많은 호수와 툰드라 지역을 숨가쁘게 휘돌은 다음, 다시 남쪽 연안의 부동항 발데즈로 꺾어져 내렸다. 그 길이가 장장 구백 여 킬로미터에 이르니 문자 그대로의 대로(大路)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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